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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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참 좋다. 표지의 노오란 은행나무 앞 벤치에 앉아 앞을 보고 있는 저 두 사람의 마음처럼 말이다. 요즘 뭔가 따뜻하고 되돌아보면 흐뭇해질 추억들이 필요했던가 보다. 어쩌면 연이은 폭설로 얼어붙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소설은 시대의 변화속에 쇠락해 가는 한 마을 사진관의 이야기다. 전통을 내세우며 고집을 부리는 할아버지와 그의 유일한 제자인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나 사이에 일어난 소소한 일상이야기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사진관의 풍경을 심은하와 손석규가 나왔던 영화를 떠올렸다. 물론 내용은 둘이 전혀 상관없다. 가장 찡한 장면은 마지막이었다. 할아버지가 죽기 전 손자와 그의 친구들의 졸업사진을 찍어주는 장면.. 할아버지의 진실한 삶이 주인공에겐 한장의 사진이 되어 평생을 그의 곁에서 지켜줄 힘이 되었으리라..  

'할아버지, 이제 됐어요.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대로 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을게요. 제 키 이상의 허세는 부리지 않을게요. 입이 찢어져도 불평하지 않을게요.  

이 세상이 빨간색과 파란색, 노란색으로 되어 있다고 믿지 않을게요. 이 세상의 모든 풍경과 인물은 빛과 그림자의 흑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요.  

움직이는 것은 천 분의 1초씩 멈춰 있는 것의 연속이에요. 그래서 인간은 한순간도 낭비해서는 안 돼요. 천 분의 1초의 멈춰 있는 자기 자신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할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그 어려운 말도 저는 이제 똑똑히 이해하고 있어요.'  (p.260) 

 특별한 어떤 순간을 위해 우리는 사진관에 가서 자세를 바로 하고 사진을 찍는다. 찰나의 순간동안 최대한 멋진 표정을 지으려고 하고, 사진이 잘 나오길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매 순간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인생에 많은 날들이 마음 속에 여러장의 사진으로 차곡차곡 남을 것이다. 2010년 나는 열심히 살았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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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펭귄클래식 7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진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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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고 한들 무슨 소용인가, 자기의 영혼을 잃게 된다면?"     p.343 

아름다움과 젊음, 이 두가지 만큼 모든 인간이 갈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 것은 아마 없지 않을까. 아름다워지기 위해, 한살이라도 어려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이 소설이 거의 100년전에 씌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요즘의 상황과 비슷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바질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본 도리언은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이 영원히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에 초상화가 자신을  대신해 늙어가길 바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실제로 그는 마흔이 다되었지만 소년과 같은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초상화가 나이를 먹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에게 평생의 짐으로 남게된다. 타락하고 추하게 되는 자신의 영혼의 모습이 초상화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는 살인까지도 저지르게 된다. 소설은 아름다움을 지상최대의 목적으로 삼은 인간의 파렴치함을 보여준다.  

도리언의 인생에 있어서 헨리의 역할은 치명적이었다. 그를 이러한 삶으로 이끈 것도 탐미주의적 성향을 지닌 헨리의 사소한 한마디 한마디였다. 사람은 살면서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상호작용한다. 그런면에서 볼 때 도리언에게 가장 영향을 미쳤던 것은 타인의 말이었다. 도리언이 조금만 더 자신의 심지가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그가 껍데기에 불과한 아름다움과 젊음에 그렇게 목을 매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곳곳에 특히 헨리의 말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심어놓았다. 대화는 사변적이다 못해 가끔 잠시 멈추고 생각을 해야한다. 읽다가 포스트잇을 많이 붙여놓았다.  

표지의 남자가 섬찟함을 준다.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은 표정인데.. 한번은 읽다가 잠들고 다음날 깨었는데 바닥에 떨어진 이 책의 표지를 보고 깜짝놀랐다. 이런 섬뜩함을 도리언은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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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손톱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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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 

 도저히 끝까지 안 보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잠시 접어두고 쉴 틈을 주지 않고.. 그런데 의외로 2/3지점에서는 살인범이 누구이며 법정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게 된다. 이 소설의 재미는 제일 마지막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험프리스가 감방안에 도대체 누구지 누구지 누구지?를 연발하는 그 장면..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앞부분의 다소 허망한 나의 추리도 보상을 받은 듯 했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사는 것은 그 댓가를 요구한다. 험프리스는 자신의 거짓된 생활로 말미암아 나름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그가 해야했던 일은 가짜 돈을 유통하러 다니는 일.. 우발적으로 살인도 저지르지만.. 결말은?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제목의 이와 손톱이 누구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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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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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직도 챈들러가 쓴 필립 말로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책이 그냥 그랬다. 차라리 <벽장 속의 치요>가 재밌었던 것 같다. 필립 말로처럼 서른세살인 주인공 모가미는 사립탐정이다. 하지만 사무소에 들어오는 일의 80%는 읽어버린 동물 찾는 것과 20% 불륜관계 추적이다. 소설의 대부분의 사건이 잃어버린 동물을 찾아주는 내용이다. 탐정으로서의 실력도 영 어설픈데다가, 기껏 채용한 비서는 팔십세도 넘는 할머니다. 이 소설의 유머는 이 할머니로 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우낀 할머니가 등장하는 소설은 많은데 우낀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소설은 여태 보질 못했다.) 위기의 상황에서 우연인지 계획인지 모를 할머니의 등장으로 사건도 해결되고 생명도 건질 수 있다. 사건이 다 종결되고 소설의 말미에 아야(할머니의 이름)의 유품 중에 <기나긴 이별>이 있다. 15페이지 정도 읽은 흔적이 보인다. 아야는 모가미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이겠지? 모가미를 위해 준비해온 계란은 늘 완숙계란이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듯 누군가에겐 완숙계란이 누군가에겐 반숙이 누군가에는 날달걀이 맞을 것이다. 물론 나같이 계란을 싫어하는 사람은 계란 근처에도 안가겠지만... 인생은 완숙계란이라는 아야의 말을 되새기며 내 인생은 어느 정도로 삶아진 계란일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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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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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남자가 어느 날 이유없이 쫓기게 된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 남자가 도망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쫓기면서 살지언정 그 쫓기는 것이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우울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재밌게 읽었지만 우울하다. 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의 무력감, 좌절을 이 소설을 통해 처절히 맛본다. 그나마 이 소설에서 건진 건.. 지난 시절에 대한 회상, 추억 정도..가 아닐까. 시시한 일로도 신바람이 날 수 있었던 시절. 무익한, 요즘말로 잉여짓을 해도 즐겁고 시간가는게 두렵지 않았던, 아니 오히려 시간이 참 안갔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도 한때인지 지금은 마음이 그렇게 되지 못하도록 막는다. 아오야기의 도주에는 그런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를 믿고 도와준다. 모리타가 말했듯 '습관과 신뢰'로 인간은 살아가는 것일지도.  

아오야기의 인생처럼 자신의 인생이 '지나치게 예상 밖'이 되는 것을 그 누구도 원치 않는다. 누구나 나의 가까운 미래이든지 먼 미래이든지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도 그것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원하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지나치게 예상 밖이 되더라도 아오야기가 최선을 다해 도망쳤듯 우리도 최선을 다해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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