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누가 내 서재를 보고는 화장품 관련 일을 하냐는 질문을 해서 당황한적이 있었다. 푸훗.. 그러니까 나에 대해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이 서재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재미있어졌다. ㅋㅋ
내가 언제부터 화장품에 버닝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니.. 흠, 2003년 끝자락 정도부터 인것 같다. 그때부터 화장품에 관심이 생기게 된 듯. 사실 그 전에야 대충 스킨 로션 정도 잡히는대로 사서 썼고, 심각하게 각질이 일어나는 환절기에만 에센스나 크림을 살짝 발라주었던게 전부다. 민감성이기 때문에 주로 순한것 위주로 샀고 저렴한 것 위주로 골랐다. 마몽드나 이니스프리, 식물나라 (이건 한참 전..) 그런 것들.
하지만 결국 이십대의 마지막을 목전에 앞두고 보니 이래저래 피부에 신경을 쓰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본래 귀찮아서 화장도 거의 안하고 파우더나 아침에 두어번 두들기는게 다였으나.. 이제는 기름종이도 갖추고 제법 -_-;; 화장에 신경쓰게 된다.
화장을 완벽하게 하고 다니는 여자를 보면 (속눈썹까지 붙이고 완벽한 입체 화장)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특별한 직업 (모델이라거나, 안내데스크 직원... 기타 등등) 때문에 반드시 완벽히 화장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서도 저렇게 화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도통 이해가 안갔기 때문이다. 화장을 지우면 거의 못알아볼 수준이라면 난감하지 않은가.
한번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침에 몇시에 일어나냐고. 여섯시 반.. 이라는 대답을 듣고.. 삼사십분 더 자는게 낫지 않나요? 하고 되묻자 피식.. 웃기만 했다. 내가 물어본 그 사람은 얼굴이 예쁘다고 하긴 힘든 편이었다. 한 시간 정도 화장을 하고 난 후의 얼굴로 말해도. 아마 그것은 그의 대단한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성형 수술을 하는 대신 그는 매일아침 졸린 눈을 비비고 억지로 일어나 한시간 가량 공들여 완벽한 화장을 하고서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슬프기도 하고 또는 대단하기도 한 일인듯 여겨졌다. 여하튼 본인을 가꾸는데 그렇게 열심이라는 데에 돌을 던질 수는 없었다.
뭐, 아는 사람이야 다 알겠지만 화장은 하는 것도 성가신 일이지만 중간중간 수정하고 고치는 일과 나중에 지우는 일이 더없이 귀찮은 일이다. 지성피부가 아니라 다행히 화장이 번지거나 기름기가 줄줄 흐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침에 하고나온 그대로 저녁때까지 가는 건 아니다. 그러니 중간에 기름종이 한번, 수정 파우더 한번은 해주는게 좋다. 여기에 클렌징은 아이메이크업 따로 지우고 전체 클렌징 로션으로 지운 뒤 마무리는 폼 클렌징. 이렇게 되다보니 역시 귀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화장을 하고자 노력하는 건 스스로 게으르지 않으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나역시도 누군가를 처음 대할때 그 대상이 여자일 경우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과 완벽한 메이크업은 아니더라도 화장에 신경을 쓴 사람과는 이미지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얼굴엔 각질이 일어나있고 입술은 갈라져서 터졌으며 눈썹 정리도 안해서 들쭉날쭉인 사람과의 첫대면과.. 기본적인 피부 관리를 하는 사람으로 보이며, 살짝 윤기가 도는 립글로스를 바르고 피부톤 정리 정도라도 하고 나온 사람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대충 잡히는 대로 옷을 꿰어 입고 세수만 하고 허겁지겁 지각할까봐 뛰어나온 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지 못하고 불안하다. 거기에 화장품 파우치까지 놓고 온 날에는.. -_-;; 갑자기 미팅이 잡힐까봐 걱정이고 사내에서도 타 부서를 찾아갈 일이 있으면 영 찜찜하기 때문. (한데 대부분 이런날 반드시 중요한 미팅이 갑자기 생기고, 타 부서장을 찾아가 뭔가 부탁을 해야할 일이 생겨버린다. >.<)
내가 화장품에 버닝하게 되면서 느낀 재미는 여성성에 대한 심취다. 난 서른이 넘어서야 여자라서 느낄 수 있는 몇가지 기쁨을 몸소 체험하게 되고 스스로 신기해 했다. 앗, 이런 기분이로군. 하면서 쿡쿡거리며 웃었다. 마치 여자놀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이전의 나는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전사.. 싸움꾼 같았단다. --;
화장품 버닝도 여자라서 누릴 수 있는 기쁨 중 하나라고 할까. 아무려나 지금의 나로서는 서랍 가득 마스크 팩을 넣어두고 저정도면 꽤 오래 버틸 수 있어.. 라고 안도하면서 마치 곳간에 쌀이라도 가득 넣어둔 사람마냥 든든함을 느끼는 것이다.
또 주변에 이런저런 화장품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일도 나름 즐겁고 기쁘다. 한데 슬슬, 화장품 버닝도 이제 그 정점에서는 내려가고 있다. 아마도 내년에는 다른데로 관심을 옮겨갈지도.
아래 책들은 이제 막 화장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에게 딱 어울릴만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