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샹보거리>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데샹보 거리
가브리엘 루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이상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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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두의 눈을 피해 숨어서 책을 읽는 아이였고, 이제 나 자신이 소중히 여김 받는 한 권의 책이 되고 싶었다. 익명의 존재, 여자, 아이, 친구의 손에서 넘어가는 몇 장의 삶이 되어 다만 몇 시간만이라도 그들을 내 곁에 붙잡아둘 수 있으리라. 이에 비길 만한 소유가 있을까? 이보다 우애 넘치는 침묵, 이보다 완벽한 이해가 있을까?-259쪽

엄마는 당혹스러운 듯했다. 그렇지만 내가 일상보다 허구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이미지의 힘, 적확한 단어 하나가 드러내 보이는 사물의 경이로움,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문장이 담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가르친 장본인이었다. -261쪽

"글쓰기는 가혹하지. 그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까다롭고 요구가 많은 일일 게다……. 정말로 진실한 글을 쓰려면 말이야. 말하자면, 자기를 두 쪽으로 쪼개는 셈이 아닐까. 한쪽은 아등바등 살아야 하고, 다른 쪽은 응시하고 판단하는 거지……."-261쪽

그래도 나는 여전히 모든 것을 갖기 바랐다. 안식처처럼 따뜻하고 진실한 삶-이따금 가혹한 진실을 견딜 수 없더라도-과 영혼 깊은 곳의 울림을 포착할 수 있는 시간을 모두 바랐다. 걷는 시간과 잠시 멈춰 서서 이해하는 시간이 다 내 것이기를 바랐다. 길에서 조금 비껴나는 때도 있고 남들을 얼른 따라가서 신나게 외치는 때도 있었으면 했다. -262쪽

"크리스틴, 무슨 일을 하면서 살 건지 생각해봤니? 이제 너도 졸업반이잖아. 찬찬히 생각해봤어?"
"하지만, 엄마, 저는 글을 쓰고 싶은데요……."
"엄마는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크리스틴. 너도 직업을 선택해야만 할 거야. (엄마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밥벌이를 해야지……."-296쪽

밥벌이라니! 그 말이 얼마나 비루하고, 자기밖에 모르고, 탐욕스럽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밥벌이를 해야만 사는 건가? 단 한 번의 생애를 아름다운 충동으로 사는 게 더 가치 있지 않나? 아니면, 삶을 유희하고, 목숨을 무릅쓰고……. 아아, 나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고만고만한 밥벌이로 살아가다니! …… 그날 저녁 나는 꼭 누구에게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넌 돈을 치러야 해’라는 말을 까놓고 듣는 기분이었다.-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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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지날 때까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피안 지날 때까지
나쓰메 소세키 지음, 심정명 옮김 / 예옥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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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백수 서생 게이타로는 평범한 것을 거부하는 '로맨틱한' 청년이다. 모험담을 탐독하고, 이상한 것에 흥미가 있으며 뭔가 놀랄 만한 사건과 맞닥뜨리고 싶어 하루 종일 전차를 타고 거리를 헤맨다. 그러다가 ‘소매치기도 하나 못 만난다’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좀더 진지하게 말하자면 그는 ‘인간의 연구자’가 되고 싶어 한다. “인간이라는 기묘한 존재가 어둠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경탄하며 바라보고 싶”(42)은 것이다.

그는 ‘자유로운 엇박자’(51)를 원하지만, ‘성격은 시적일지라도 살아가는 것은 산문적었기 때문에’ (53) “공상은 이제 당분간 그만두기로 했어.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까.”(46)라는 말을 입에 올린다. 그러다가 얼치기 탐정 노릇을 맡아,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쌍의 남녀를 미행하기도 한다.

게이타로가 숱하게 입에 올리는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그는 ‘romantic ロマンチック 소설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로맨틱’ 하면 분홍색 리본이나 레이스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될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에서 ‘로맨틱’은 어디까지나 ‘소설적인’이라는 의미와 가깝다.

로맨 어쩌고 하지 않습니까, 당신 같은 사람에 대해서. 나야 학식이 없으니까 요즘 유행하는 하이컬러한 말을 잘 잊어버려서 난처한데 뭐라고 하지요. 그 소설가가 쓰는 말은……” (143)

그에게 일감을 준 친구의 이모부가 하는 말을 보더라도 당시 ‘로만치쿠ロマンチッ’라는 말은 갓 수입되어 근대 교육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 자주 오르내리던 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게이타로는 근대소설의 유입과 더불어 탄생한 인물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며, 소설과 운명을 같이하는 인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게이타로라는 인물을 ‘근대소설이 낳은 인물형’으로 보는 것과는 별도로 『피안 지날 때까지』를 ‘근대 소설’로 볼 것이냐는 또 다른 논의를 요구하는 문제인 것 같다. 나쓰메 소세키가 서문에서 “사실 나는 자연주의 작가도 아닐뿐더러 상징주의 작가도 아니다. 요즘 자주 귀에 들리는 신낭만주의 작가는 더욱 아니다. 나는 이런 주의들을 드높이 표방하여 길 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 정도로 내 작품의 색깔이 고정되어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또 그런 자신감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을 뿐더러 가라타니 고진 또한 ‘소설처럼 보이지만 근대소설에 반하는 사생문’(책날개 인용)으로 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좀더 확인하려면 소세키의 초기작과 후기작을 두루 읽고 일본 근대문학에 대해서도 좀 더 공부해봐야 할 것이나, 내가 무슨 학자도 아닌 만큼 학술적인 관심은 조금 접어두기로 한다. 다만 나쓰메 소세키가 근대문학과 함께, 그러나 근대문학과 거리를 두며 열심히 소설을 썼단 작가였다는 점을 기억하기로 하자. 언젠가 시간이 될 때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다시 읽어보자는 생각도 든다.

게이타로, 그리고 (이 리뷰에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스나가 모두, 나의 이십대를 강렬하게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나는 이 소설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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