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 것이었던
앨리스 피니 지음, 권도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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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내 것이었던》

 


 

영문 원 제목과 한국어판 제목이 다른 경우를 종종 본다. 영화도 그런 경우가 있는데 간혹 우리말 제목을 왜 이렇게 정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 소설도 실은 제목의 느낌이 많이 달라 과연 이 변화가 소설의 느낌을 어떻게 달라지게 할지 궁금했다.

 

소설을 다 읽은 뒤 생각해 보니《원래 내 것이었던》이란 우리말 제목은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제와 소재 감정, 뉘앙스, 인물들의 연결고리 등 소설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문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에 상당히 많은 의미와 인물과 관계가 얽혀있다. 놀랍게도. 원 제목《SOMETIMES I LIE》는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단서 혹은 소재로 등장하는 ‘일기장’에 관련된 것인데 질투, 욕망, 애증, 원한 등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말 제목보다는 좀 순화된 느낌이 있다. 그러니까 이 제목은 진짜 잘 뽑았단 말이다. 우리의 정서에 딱 맞게!

 

소설은 주인공인 ‘앰버’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정신을 차리면서 시작된다. 2016년 크리스마스 즈음의 어느 날,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의식은 돌아왔지만 코마상태에 빠져있다. 아무도 그녀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걸 모른다. 그녀는 사고 당시의 기억이 거의 지워진 상태고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료기구들과 사람들의 대화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생각해 내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유명한 라디오 방송의 보조 진행자이고 작가인 남편 폴, 여동생 클레어 가족이 그녀의 가족 전부인 듯 하다.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심지어 사고의 가해자로 의심받는 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나아가 클레어와 불륜관계 인 것 까지도. 앰버의 기억은 뒤죽박죽이고 끊임없이 악몽에 시달린다.

 

소설은 중환자실의 앰버 시점인 ‘현재’, 사고가 나기 전 상황인 ‘그때’, 1991년 그녀가 어렸을 때 썼던 일기장 속의 이야기인 ‘이전’ 시간의 시점이 교차로 서술된다. 그녀는 중환자실 베드에 누워 한 번씩 들르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의 상황을 짐작하고 자신이 사고가 나던 상황을 재구성하려 애쓴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관계의 비밀.

 

그녀는 강박장애에 시달리는 예민한 사람이었고, 그녀와 함께 방송하는 ‘매들린’은 그녀를 내 쫓으려 했으며 그녀의 여동생은 남편과 불륜관계였다. 과거를 재구성하며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하나하나 기억해낸다. 그리고 과거의 일들까지!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며 독자에게 온갖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을 만드는 순간 보란 듯이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그게 아니었어’ 놀리듯이 이야기를 뒤집는다. 그렇게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로 변형되고 이런 식으로 여러 번의 영리한 ‘반전’을 지나 완결된 결말에 다다른다. 그러나 작가는 마지막까지도 독자를 편하게 놔두지 않는다.

 

대체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해 낸지 모르겠다. 두 자매의 엉큼하고도 끔찍한 비밀, 놀라운 복수와 치밀한 계획은 읽는 내내 독자를 이야기 속에 가둬놓는다. 가독성이 좋고 긴장감은 끝까지 힘을 잃지 않았다.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삼켜버린 욕망과 증오, 애증과 시샘과 질투는 사람들의 인생 까지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다. 정말로 영리하고 놀라운 작가다. 차기작도 너무나 기대된다.





예매 http://www.ticketlink.co.kr/product/2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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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없는 남자 한국추리문학선 2
김재희 지음 / 책과나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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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 없는 남자》

 


 

믿고 보는 작가 ‘김재희’의 신작《표정 없는 남자》가 출간되었다. 김재희 작가는 참으로 독특한 작가이다. 현대물과 역사물에 스릴러와 서정성을 넘나드는 작풍, 여러 작품에서 등장하는 프로파일러나 학예사, 굿판의 묘사까지. 모두 소설을 신비롭게 만들어주는데 일조하는 요소들도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표정 없는 남자》는《봄날의 바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앞선 요소 중에서 프로파일러와 서정성을 가져왔다. 경찰생활을 그만두고 종편채널에서 방송 활동을 주로하게 된 프로파일러 ‘감건호’가 역시 등장하고 남모를 아픔을 가진 남녀의 아슬아슬한 사랑과 애증, 그리고 집착과 폭력이 주된 요소로 등장한다.

 

사실, 작품을 읽기 전에는 ‘감건호’ 시리즈라고 해서 프로파일러의 역할이 클 거라고 생각했지만 감건호도 등장하는 형사도 실은 큰 활약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사건도 현재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고 그 해결도 수사에 의한 것은 아니었으니, 이 둘의 역할은 주인공은 도와주는 것에 더 큰 비중이 있었다.

 

주인공 유진과 준기. 이 둘은 모두 각자 직장생활을 하고 나름의 일상을 잘 영위하는 듯 보이지만 둘 다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남모를 비밀을 가지고 있고 속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약하고 외로운 존재들이다.

 

이 둘은 늦은 밤 클럽에서 우연히 만나 유진의 직장인 출판사 일로 조금씩 가까워진다. 유진은 주로 일반인의 감성을 담은 에세이 위주의 책을 만들고 백화점 비누매장에서 일하는 준기는 미소 훈남으로 불리며 이달의 사원으로 뽑히기도 하는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이다.

 

외롭고 비밀을 가진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비밀의 크기만큼이나 불안하다. 영화로 만들어 졌다면 시종일관 불안한 서스펜스가 이어졌을 것이다. 유진은 비록 자신보다 많이 어리지만 자신을 아끼고 따뜻하게 이해해주는 준기에게 점점 더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일상은 안정되기는커녕 점점 더 엉망이 되어간다. 그와 거리를 두려는 유진에 대한 준기의 집착은 날로 커지기만 하고 결국 폭력까지 쓰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늘 그렇듯 폭력은 반복된다. 폭력 후의 사과와 달콤한 보상,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되는 폭력. 그 순환되는 일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유진.

 

그녀의 유일한 친구 재인이 그와 헤어지라고 설득하지만 그녀는 이제 그녀의 말도 좋게 들리지 않는다. 과거 그의 아버지 실종사건을 조사했던 형사 경식과 프로파일러 건호의 경고에도 그녀는 그와의 관계를 끝내지 못해 괴로워한다. 폭력은 중독되고 자신을 파괴한다. 자신만 잘 하면 나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매번 합리화하지만 폭력의 마지막은 언제나 파멸만 있을 뿐이다.

 

말이 좋아 데이트 폭력이지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폭력은 쉽게 끝낼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둘 사이의 애착관계는 폭력을 용인하고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때의 안정과 만족감이 폭력의 심각성을 퇴색시키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피해자가 이별을 이야기 하는 순간 폭주할 위험까지도 내포하고 있기에 더욱 위험하다. 그러니!

 

소설을 읽으면서 준기가 서로의 핸드폰에 위치추적 앱을 깔고 유진의 핸드폰을 검사하며 소유욕을 드러내고, 그녀의 SNS에 폭력적인 댓글을 달 때부터 나는 소설 속 유진에게 당장 헤어지라고 지금 아니면 기회는 없다고 되 뇌이고 있었다. 제발 헤어져야 하는데 왜 이렇게 끌려 가냐고 가슴을 치면서.

 

나는 현실에서 이런 일을 많이 봐왔다. 늘 같은 문제로 만났다 헤어지길 반복하는 사람들, 그렇게 힘들게 헤어졌으면서 다시 만나는 사람도 그전 사람과 꼭 닮은 사람을 고르는 사람들, 자신만 잘 하면 언젠가는 상대방이 바뀔 거라고, 자신만 잘 하면 그런 상황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소설은 그래서 내겐 조금 힘든 작품이었다.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나 답답하고 안타까웠고 그녀를 이해해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의 외로움이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일로 고통 받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지만 그들이 좀 더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면 좋겠다. 자신을 좀 더 사랑하고, 자신의 아픔을 좀 더 직면하게 된다면, 이런 이들을 도와주는 사회적 장치가 좀 더 촘촘하다면 좋을 텐데. 이번 작품은 그래서 여러 생각과 깊은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심리스릴러, 서스펜스를 즐기는 분들이라면 이 작품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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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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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기담》

 


 

2014년《밤의 이야기꾼》으로 알게 된 ‘전건우’ 작가의 신작이 발표되었다. 출간 전 연재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던 《고시원 기담》은 한번 손에 들면 놓기가 힘들 정도로 몰입도가 좋다. 그만큼 재미있다는 이야기. 소설가는 이야기꾼이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소설은 작가의 사회초년생 시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되었다. 취직을 해서 처음 서울로 올라가 수중에 돈 한 푼이 없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고시원 생활은 어쩌면 슬픈 과거일 수도 있지만 이런 작품을 탄생시킨 소중한 자산이 되기도 하였으니 어쩌면 고마운 경험이 되지 않았을지. 창문이 있는 방은 3만원 더 비쌌다지만 나였어도 그 방을 선택했을 것 같다.

 

소설의 배경은 몇 번의 화재와 부도로 주인이 여러 번 바뀐 ‘고문 고시원’이다. 원래는 ‘공문’ 고시원이었으나 태풍이 ‘o'을 가져간 뒤로 아예 이름이 바뀌어 버린 것. 화재나 부도도 그렇지만 그 건물을 산 사장들이 죽거나 감방에 들어가고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에다 주변 상권의 몰락으로 정말 을씨년스러운 곳이 된 데다 사장이 고시원을 허물겠다 발표한 후 이제 8명만이 3층에 모여 살고 있는 곳이 되었다.

 

소설은 챕터마다 입주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추리소설을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인 행시 준비생<그 남자, 어디로?>의 홍, 일하던 공장에서의 사고로 뜻하지 않게 초능력을 얻게 된 필리핀 이주 노동자 <오캐이 맨>깜, 무협지를 좋아하고 무술을 익힌 취업준비생 <취업 무림 패도기>의 편, 빚 때문에 도망을 다니다 매일 사람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는 일을 하는 <매일 죽는 남자> 최, 킬러 아버지의 뒤를 이어 소녀 킬러로 활동하는 <사투 소녀>의 죽음의 천사 정, 319호 팽귄맨, 305호 노랑머리, 그리고 310호 뱀 사나이와 말하는 고양이까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고시원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와 무서운 비밀에 다다르게 된다. 각자의 이야기도 미스터리로써 완결성을 갖지만 각자의 이야기들은 결국 ‘뱀 사나이’에 다다르게 되고 고시원으로 모이게 된 그들은 위험을 알면서도 서로를 위해 절대 악에 맞서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이름은 알 수 없이 성과 별명으로만 표현되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들을 모아 놓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비록 이름이 없는 그들이라도 자신들만의 꿈이 있고 달달한 로맨스와 정이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다가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휴식처인 고시원, 그리고 그 곳에 자리 잡은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 마지막 대결장면은 그래서 더 스릴이 넘쳤다.

 

역시 작가는 ‘이야기꾼’이다. 이 세상에 함께 살면서도 그 곳에 존재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엮어낼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놀랍다. 그래서 소설은 정말로 ‘전건우’ 답다. 하나의 작품 안에 미스터리, 호러, 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전혀 위화감 없이 버무려 놓을 수 있고 끔찍한 내용이지만 ‘말하는 고양이’처럼 귀엽고도 비장한 존재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도, 캐릭터들이 너무나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럽다는 것 또한 이 소설의 매력이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어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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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한 남자 스토리콜렉터 66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이한이 옮김 / 북로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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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한 남자》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에미머스 데커’. 그는 과거 형사였고 그보다 더 과거에는 미식축구 선수였다. 그는 선수시절 강한 타격으로 뇌손상을 입어 과잉기억 증후군과 공감각이 생겼지만 그를 그 자신이게 했던 어느 한 부분 즉 사교적이고 유머러스했던 모습은 잃어 버렸고 냉담하며 사회적 신호는 인지를 하지 못하게 돼버렸다. 그는 현재 FBI 합동작전 부서에서 재미슨, 밀리건, 보거트와 함께 미제사건을 담당하고 있지만 FBI의 상징인 후버빌딩 앞에서 벌어진 한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되면서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어느 아침, 정부 상대 민간 도급업자로 성공한 남자 ‘대브니’ 가 후버 빌딩 앞에서 자신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여자 ‘앤 버크셔’를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그 자리에서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우연히 그 모습을 목격한 데커는 자신의 팀원들과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사건은 지지부진하다. 남자는 정부 상대로 어마어마한 거래를 하는 성공한 사업가이고 피해자 여성은 가톨릭 학교 대체교사로 근무하며 호스피스 병동에 자원봉사를 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둘 사이의 접점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이때 ‘하퍼 브라운’이란 국방 정보국 DIA 소속 요원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반전된다. 남자가 국가 기밀을 팔아넘긴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것. 그러니 FBI는 이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통보를 한다. 그러나 데커 팀은 이에 반해 수사를 계속 하고자 하고 국방 정보국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피해자 여성에게 수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가 자신의 직업으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고급 아파트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지만 남들에게 보이기엔 그렇지 않도록 위장한 것. 10년 전 과거의 자료는 찾을 수도 없고 급기야 그녀의 숨겨둔 농장과 허름한 창고에서 증거물로 보이는 USB를 찾았지만 누군가가 그들을 습격하여 증거물을 뺏기고 만다.

 

데커는 하퍼 브라운을 설득하여 결국 수사 과정을 공유하게 된다. 그들은 데커를 중심으로 이 두 사람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남자의 가족과 여자의 학교, 호스피스 병동 을 수사하며 점점 더 진실에 가까워진다. 그 과정에서 하나 둘 드러나는 진실과 반전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 하나의 의문만 남겨 둔 데커. 남자는 왜 하필이면 후버빌딩 앞에서 자살을 하여야 했는가? 결국 마지막 남은 이 질문 하나가 소설을 절정으로 이끄는 기폭제가 된다.

 

《죽음을 선택한 남자》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과잉기억 증후군’을 가진 남자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괴물이란 불린 남자》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소설에 2번 째 시리즈 주인공인 ‘멜빈 마스’가 등장하고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모든 장면들 때문에 전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는 소설을 구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는 사회적 신호를 인지하지 못해 대화 도중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팀원들에게 걱정을 안기기도 하며 수사 도중에 만난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룸메이트로 함께 살게 된 파트너 ‘재미슨’과의 관계에서 잃어버렸던 그의 인간적인 면을 서서히 찾아가는 모습도 보여주어 다음 시리즈에서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소설은 어찌 보면 꼭 이래야만 하나, 할 정도로 정직하게 수사가 진행된다. 어떤 스릴러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직관이나 우연에 의해 사건이 해결되기도 하지만 이 소설에선 오로지 ‘증거’와 ‘증언’ 들, 그리고 이를 해석하고 추리하는 데커와 파트너, 하퍼 브라운의 착실한 수사와 발품으로 사건이 해결된다. 데커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널려있는 객관적 사실에서 유의미한 것들을 찾아내고 이것들을 이어가며 사건을 파헤치고, 오로지 ‘왜?’ 라는 질문을 따라가며 결국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사람들을 구해낸다.

 

스릴러 소설에서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특히 시리즈로 이어지는 작품에서는 어떠한 지위를 가지는지 스릴러 팬이라면 너무나 잘 알 것이다. 그리고 이 캐릭터가 사랑을 받을 때라야만 시리즈가 생명력을 얻는 다는 것도. 이미 3편까지 내려온 이 시리즈가 왜 사랑을 받는지 이번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에 ‘데커’도 이름이 올랐고, 이 시리즈도 모두 다 찾아보고 싶다.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무조건 좋아할 만한 작품이고 잔인하지 않은 흥미로운 소설을 찾는 독자에게도 추천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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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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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다시 돌아가고픈 시절을 떠올려 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시골 살던 유년 시절, 막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이었던 때를 떠올리지만 그 마냥 찬란하고 아무 걱정 없던 시절도 지금 생각해 보면 무섭고, 암울하고, 누구에게도 말 못할 비밀을 간직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초크맨》같은 스릴러의 소재로 써도 무방할 정도의. 누구에게도 말 못할.

 

《초크맨》이 그런 소설이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그저 순진하고 착하고 솔직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아이들이 만든 무리가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생각해보라. 자신이 그러했던 시절을. 소설은 주인공이 막 사춘기에 접어들던 12살 1986년과 30년이 흐른 후인 2016년 현재의 시점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초크맨》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풀어놓고 있다.

 

주인공 무리들은 어린 시절 누구나 그렇듯 모여 놀고, 장난치고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가지고 자신들만의 의사소통 방식을 만들며 일상을 공유한다. 그들이 보는 어른들의 세계는 이해하기 어려운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떠 달리 보이기 시작한 여자 친구의 몸에 난 멍을 보고 그녀의 부모와 연결시키기 어렵고 친구의 형이 자신에게 어떠한 끔찍한 행동을 해도 겁이 나서 부모님께 말씀 드릴 수도 없다. 자신의 의도치 않은 작은 행동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 지 눈앞의 일도 유추하지 못한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직장을 가지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다.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은 또 그들이 어렸을 때처럼 사고하고 성장한다. 그러나 어른도 마찬가지다 어린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도 아이였던 적이 있었으면서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지독한 아이러니라니!

 

주인공과 그 무리들은 평화로운 동네에 사는 친구들이다. 그들은 분필로 막대인간을 그려 자신들만의 암호를 만들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장난을 치곤했다. 친구들 각자 자기만의 색이 있었고 암호체계가 있는.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의 분필장난으로 놀이터에 모이게 된 친구들은 분필로 그려진 암호를 따라가다 목이 없는 한 소녀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을은 발칵 뒤집혔고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자살하겨 결국 사건은 종결된다.

 

그리고 현재. 주인공 앞에 그간 연락하지 않고 살던 그 무리의 친구 하나가 자신을 찾아와 과거 살인 사건인 ‘초크맨’에 대해 언급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근처 강에 빠져 사망한 사건이 벌어지고 때마침 자신과 다른 친구들에게도 분필과 초크맨이 그려진 편지가 배달 된 것을 알게 되자 주인공은 기억 깊이 넣어 두었던 30년 전의 사건을 해결해야 함을 알게 된다. 30년 전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에 초크맨의 망령이 다시 나타난 건 대체 무슨 이유일까.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 난 분필로 그린 막대 인간이 시그니쳐인 연쇄살인마를 상상했고 진범이 잡히지 않았거나 원조 초크맨을 흉내 내는 새로운 범인이 있지 않을 까 생각했다. 그러나 소설은 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전개되어 굉장히 놀라웠고 우연과 필연이 얽히고설켜 30년을 잇는 거대한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저 평화롭고 목가적으로 보이는 마을. 자녀들에겐 늘 완벽해 보이는 부모, 그저 순진하고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과 놀이에 실은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면? 그들 모두 자신들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면? 진실을 밝히는 것은 언제나 용기와 이와 비례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주인공은 어떻게 비밀을 밝히고 진실을 찾게 될까? 그들은 모두 자유로워지게 될까?

 

《초크맨》은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적당한 서스펜스가 끝까지 유지되고 하나하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순간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과거의 진실을 찾아갈 때 독자 또한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작가의 인간의 깊은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 이지만 어찌 보면 주인공의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매우 흡족할 만할 소설이고 다양한 면을 발견할 수 있는 멋진 작품이다. 이 작품이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다음 작품도 너무나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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