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비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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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비》



 

이미 결말을 아는 이야기의 과정을 듣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예전 TV에서 방영 되던 어떤 사극이 인기를 얻을 때 한 네티즌이 ‘역사가 이러하므로 주인공은 어찌 된다’는 글을 올렸더니 왜 스포일러 뿌리냐고 뭇매를 맞은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참으로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역사에 얼마나 관심이 없으면 그런 상식 밖의 소리를 할 수 있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무녀들의 역모라니. 나는 당연히 그런 역사를 본 기억이 없기에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인가 했는데 실제로 일어난 역사였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 역모는 성공하지 못했기에 후대 사람에게 제대로 알려지지도 못했다. 나도 잘못하면 그 상식 없는 사람이 될 뻔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그 역모의 중심에 있던 만신 ‘원향’의 이야기는 주변 인물이었던 남성들과 다르게 추국 장에서의 발언조차 기록되지 못했다. 무리들 중 유일하게 여성으로 도성에 입성했으며 ‘대우경탕’을 일으키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용녀부인으로 추대된 거사의 중심인물임에도. 나는 그리하여 민중 반란의 실패와 여성의 실패 아니 유교 질서 속에서의 처절한 신분의 한계를 체험하고 말았다.

 

조선 숙종시절에 양반네들은 유교의 틀을 더 공고히 하기위해 도성에서 만신들을 몰아내고 핍박했다. 그녀들은 반상이 엄격히 나뉘던 신분제에서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속에서도 가장 밑바닥의 삶을 살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고통을 당하던 사람들을 보듬어 주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들은 그런 세상을 뒤엎어 버리려 했다. 용이 되어 승천하는 용녀부인이 큰 비를 내려 도성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린 뒤 세 세상을 열려했던 것이다.

 

소설 중에 만신 ‘원향’은 그렇게 죽어간 수많은 여성의 넋을 달래는 ‘오귀 굿’을 해 주었다. 아들을 낳지 못해 목매달아 죽고, 남편이 죽은 후 시아버지에게 능욕당해 강에 몸을 던져 죽고, 홀로 팔삭둥이를 낳다 죽고, 주인에게 능욕당한 다음 날 안주인에게 매 맞아 죽은 그 여인들의 깊은 한을 원향이 풀어준다. 그리고 그러한 원혼들의 절망과 희망을, 미래불인 미륵불의 힘을 받아 거사를 일으킨다.

 

그러나 그녀들의 계획에 어둠이 깃든다. 모두 세상을 뒤집어 보겠다고 힘을 모으긴 했으나 그녀의 의견과 다른 사람, 다른 욕망을 가진 무리들이 있었던 것. 몸도 마음도 정신도 깨끗하여 한 점 티끌 없이 오로지 신령의 힘이라야만 성공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원향과는 달리 ‘고깃국’을 즐기고 ‘칼’의 힘을 믿는 자들, 그 힘이 있어야만 세 하늘을 열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의 움직임이 원향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이 세상은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후천 세상을 열 미륵을 힘을 믿는 자들과 현재의 힘인 석가의 힘을 믿는 자들. 여성과 남성, 가진 자들과 가난한 자, 신분이 고귀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역사는 슬프게도 아직도 석가의 시절에 머물러 있고 ‘남성성’의 세계에선 전쟁과 기아가 끊이지 않으며, 그 속에서 핍박받고 멸시 받는 건 결국 여성성과 아이들, 기득권에서 밀려난 정상이 아니라 여겨지는 사람들 뿐.

 

그 안타까운 여정을 나는 ‘원향’과 함께 했고 ‘목매달고 배불뚝이이며, 퉁퉁 불어 시퍼렇게 변한, 매 맞아 철철 피 흘리는’ 여인들과 함께했다.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상처받고 고통 받은 이들을 자애로운 손길로 보듬어 주던 성인, 만신들과 함께 했다. 그저 신 내림만 받으면 만신이 되는 줄 알았던 그녀들의 고된 훈련과 정진을 함께 했다. 그래서 그녀들을 그리고 욕심과 목적에 눈이 멀어 중요한 걸 놓치고야 말았던 너무나 약하고 안타까운 사람들을 저 변방의 역사에서 중심의 역사로 생생히 돌려놓은 작가의 노고에 너무나 고맙다. 우리의 역사에 언제야 큰비가 내려줄까. 언제야 큰비를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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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이유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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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이유》

 


 

사랑해 마지않는 캐릭터 ‘존 리버스’의 6번째 시리즈가 발표되었다. 우리나라에 소개가 늦어져서 그렇지 이 시리즈가 탄생된 지 벌써 30주년이 되었고, 이 작품은 1994년에 발표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30주년을 기념한 스페셜에디션이 출간되고 리버스의 이름을 단 위스키까지 나왔다고 하니 자국민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 알만하다. 그래서 작품을 접할 때 마다 그렇지만 많이 부럽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랑받는 시리즈와 작가가 있는지 생각해 보면.

 

페스티벌로 달뜬 에든버러의 지하도 ‘메리 킹즈 클로즈’ 옛 푸줏간 자리에서 온 몸 6군데에 총을 쏘아 죽이는 ‘식스팩’이라는 형벌로 죽은 남자가 발견된다. 단서는 시신에 남아있는 문신sas 와 피해자가 바닥에 남긴 Nemo라는 단어. 존 리버스는 이 두 가지 단서를 가지고 수사에 돌입, 곧 스크틀랜드 수사반 SCS에 차출된다. 여기서부터 소설은 이 이야기와는 다른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지를 치기 시작한다. 나라에서 가장 거칠고 위험한 동네 가르-비에서 청소년들이 대립적인 갱을 만들어 전쟁을 벌이는 것 같은 양상, SCS에서 수사 중인 테러와 관련 있어 보이는 무기 밀수범죄 등과 이와 관련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수사도중 희생자의 아버지가 암흑의 제왕 ‘빅 제르 캐퍼티’ 임이 밝혀지고 리버스는 그에게까지 협박받는 상황이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쇄살인의 징후. 사건을 조사하면 할수록 위험에 노출되는 주인공, 그리고 얼스터 저항군, 붉은 손 특공대, IRA, UDA, 로열리스트, 소드 앤 쉴드 등 다양한 테러 무장 단체의 등장으로 소설은 점점 더 무시무시한 상상과 추측을 부추긴다. 그리고 작가 ‘이언 랜킨’은 이 많은 이야기들을 결국 하나로 묶어 내고야 만다. 주인공은 테러의 위험에서 어떻게 사건을 해결하게 될 것인가.

 

《치명적 이유》는 94년에 출간되었지만 담긴 이야기는 전혀 낯설지가 않다. 종교문제에서 비롯된 무장투쟁은 여전히 지구를 들썩이게 하고 있으니. ‘스코틀랜드의 파벌주의와 교파분열’을 주제로 삼은 이번 작품에는 온갖 종교무장단체가 출연한다. 역사적 배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조금 힘들다. 작품을 읽으면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파벌, 단체들의 명칭과 배경을 검색해가면서 읽느라 소설의 흐름을 놓치기를 여러 번, 뒤로 돌아가 다시 읽은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읽기 전에 ‘북아일랜드 분쟁’ 에 관한 역사를 대략적으로라도 공부하고 읽으면 훨씬 읽기가 쉬울 것 같다.

 

<참고1: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24XXXXX58378>

<참고2: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mirejet/220170566798>

 

내용을 대략 읽어보면 알겠지만 처음 시작은 종교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정치적, 지정학적, 사회적인 이유가 입혀지면서 종교문제는 다양한 색채를 띠게 되었다. 결국은 종교 분쟁으로 보이는 이익집단들의 시민을 향한 대 테러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누군가의 이익, 어느 단체의 이익을 위한 선동으로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과연 그저 ‘종교’의 문제인걸까? 스스로의 목숨까지 내던지는 것이.

 

흥미로운 소재로 가볍게(?) 시작한 소설이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만 쓴 작가라면 몇 십 년 동안 사랑받지 못했으리라. 시대와 사람과 정치와 권력, 부조리를 꿰 뚫어본 작가이기에, 그런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여 결국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존 리버스’였기에 그런 큰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우리에게도 이런 캐릭터와 작가가 나타나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존 리버스 시리즈도 꾸준히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아! 그리고 존리버스를 상징하는 치명적인 ‘아재개그’는 여전했지만 이야기의 무게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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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 짓기
정재민 지음 / 마음서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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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 짓기》

 


 

소설을 읽을 땐 머릿속으로 한 편의 영화를 상상하곤 한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에 맞는 배우를 설정 혹은 캐스팅하고 소설의 내용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확실한 경우나 이야기의 진행이 매끄러울 경우는 기승전결과 반전, 결말이 확실하고 속도가 빠른 블록버스터 같은 영화가 되고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캐릭터가 확실하지 않을 땐 조금의 각색이나 이야기를 연결해 주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런 틀로 작품을 본다면《거미집 짓기》는 어떤 장르의 영화가 될까? 소설은 1963년부터 시작된 탄광촌의 이야기와 2012년에 시작된 현재 화자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고 어느 순간 이 두 이야기가 만나게 되며 결말에 이르러 긴장감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모두가 가난했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갑갑한 현실 속에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그래서 사회에 만연하던 폭력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그 시절의 이야기. 석탄가루 때문에 검은 강이 흐르던 탄광촌의 암울한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현재의 시간이 만들어 내는 묘한 긴장감.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아마 두 시간이 어떤 식으로 교차될지 막연히 짐작은 하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지가 무척이나 궁금할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엔 그 의문점을 가지고 책장을 넘겼지만 그 교차점 보다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이야기’에 더 관심이 생겼다. 현재의 시간 속 화상으로 얼굴 반이 일그러진 대다 묘한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나와 동갑이고, 과거의 시간 속 탄광촌에서 자라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여자가 우리 엄마 또래라서, 그리고 그 여자의 엄마, 남편의 폭력에 무기력하게 말라가던 그 엄마의 답답한 삶에 감정이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든 것 같다.

 

그리고 현재 시간 속 화자이자 주인공인 소설가. 그는 첫 작품 이후에 이렇다 할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는 상태로, 캐릭터에 현실감이 없다는 혹평을 이겨내 보고자 호기심이 생기는 사람들을 인터뷰를 하다 사연이 많을 것 같은 ‘남자’를 만난다. 화상으로 얼굴이 반이나 망가졌으니 그 과정에 사연이 많을 것이라는 얄팍한 추측을 하며. 그리고 그를 인터뷰하다 어떤 부분에서 심기를 건드렸는지 그에게 구타를 당하고 이후 집착과 강박증에 사로잡혀 그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그 남자도 소설가의 행동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소설가가 그 남자를 향한 행동엔 사실 큰 개연성이 없다. 그래서 상상의 영화 속에선 소설가의 집착과 강박증을 부각하고 작품 활동이 잘 되지 않는 것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것을 그 이유로 삼는다. 알 듯 말 듯 소설가를 도발하는 남자의 행위, 제스처, 뉘앙스도 중요하게 부각시킨다. 그리고 남자와 관련이 있을 과거 탄광촌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도 폭력성과 암울함을 극대화 시킨다. 그렇게 서스펜스를 유지하다 결말에선 남자 둘의 강박증과 폭력성을 극적으로 충돌시켜 관객을 충격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반전!

 

아마도 이 영화는 ‘서스펜스 심리 스릴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 내면에 억압된 분노와 욕망, 폭력성이 어떤 식으로 표출 되는지가 관람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온갖 인간군상 들을 만난다. 그들의 행동은 오로지 그들의 생존을 위해한 것, 살기위해 자신이 받은 고통을 분출할 약자를 찾으며 이에는 피를 나눈 가족조차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 속에서 고통 받는 건 늘 아이들과 여성들이며 그 아이들이 커서 새로운 폭력을 생산하는 주체가 되는 아이러니.

 

결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할 것 같다. 어쩌면 개연성에 관한 부분이라든지 이런 저런 의문점을 한 번에 해소할 수 있을 만한 결말이긴 하다. 나는 과거 시간의 여인이 살아온 이야기 자체에 푹 빠졌었는데 이것만으론 이야기를 끌어갈 힘이 없다. 그래서 연결 고리로 현재의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본다면 작가의 의도는 적절해 보인다. 과거와 현재의 느슨한 연결고리, 소설가의 강박, 결말의 충격. 이 세 가지가 이 소설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수식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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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기 좋은 날 : 꽃의 정원 - 색연필로 그리는 38가지 아름다운 꽃 그림 그리기 좋은날 시리즈
페이러냐오 지음, 김민정 옮김 / EJONG(이종문화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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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좋은 날 꽃의 정원》

 


 

얼마 전에 ‘커비 로자네스’의 <판타스틱 월드>를 통해 ‘컬러링’ 이란 신세계를 접하고 색연필, 워터 브러쉬와 물감에 만다라 컬러링 북도 사서 짬이 날 때마다 색 칠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나는 원래 미적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구경하거나 색칠 팁을 참고하여 새로 생긴 취미를 이어가고 있다.

 

이 책《그림 그리고 좋은 날 꽃의 정원》은 컬러링 북에서 만나는 다양한 꽃을 잘 표현해 보고 싶어서 공부삼아 선택한 책인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컬러링 북은 아니다. 컬러링 북이라면 밑그림이나 도안이 있어서 원하는 재료로 색만 채우면 되지만 이 책은 그 범위를 넘어서 다양한 꽃들의 특징을 잡아서 스케치하고 색연필로 색칠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물론 스케치 도안이 있기 때문에 거기다 색을 칠할 수도 있지만 종이 재질이 색칠을 위한 것이 아님을 꽃 하나를 칠해 보고서야 알게 되어 문구점에서 스케치 북을 하나 사왔다.

 

일반적으로 컬러링을 하는 재료는 주로 색연필, 물감, 파스텔인데 이 책은 컬러링에서 가장 많이 쓰는 재료인 ‘색연필’을 사용하고 있다. 컬러링을 접하면서 색연필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아동들이 주로 쓰는 종이 말이 식이나 샤프식 색연필부터 전문가용 유성 색연필, 칠하고 나서 물을 묻히면 수채화가 되는 수채 색연필도 있고 이들이 종이 케이스나 철제 틴 케이스에 72색까지도 담겨 다양한 브랜드에서 시판되고 있다.

 

이 책은 그 중에서 ‘파버 카스텔(Faber Castel)' 사의 유성색연필 72색 세트의 색에 준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원서에 쓰인 색연필은 중국내에서만 유통되어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내가 가진 ’파버 카스텔 수채 색연필 36색‘ 과 ’스테들러 루나 24색‘을 조합해서 썼는데 쓸 때의 질감은 비슷하지만 상대적으로 수채 색연필은 발색력이 조금 덜 한 것 같아서 스테들러를 주로 쓰게 되었다.

 

책에는 벚꽃, 참나리. 동백, 부용, 비비추, 능소화를 포함해서 정원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꽃 38가지가 소개되어 있는데, 스케치부터 색을 선택하고 덧칠하며 명암을 만드는 방법, 가지와 잎을 함께 그려 꽃의 특징을 잘 잡아내는 과정과 팁이 순서대로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미적 감각이 전혀 없는 나는 스케치부터 힘이 들었고 당연한 수순으로 결과물은 참담한 수준이 되 버렸다. 그러나 스케치북에 직접 그림을 그리니까 컬러링과는 다른 즐거움이 있는 것 같다. 잘 하든 못 하든 이 그림은 온전히 나의 작품이니까.

 

꽃을 그리기 전에 실제로 꽃을 살펴보거나 사진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고 눈썰미가 있거나 나 같은 참담한 수준의 미적 감각이 아니라면 저자가 가르쳐주는 방식을 따라가면 멋진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른 컬러링 북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색연필은 책에서 추천하는 색연필을 구입하면 비슷한 색상 찾을 필요 없이 적힌 번호대로 사용만 하면 되니까 편리하긴 하겠지만 부담이 된다면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가볍게 시작하고 싶다면 30색 이상, 유성 색연필 구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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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의 테이프 스토리콜렉터 57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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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의 테이프》

 


 

괴담하면 도시 괴담과 학교 괴담이 떠오른다. 어느 학교, 어느 마을이든 이런 괴담하나 갖고 있지 않는 곳이 있을까? 꼭 아파트나 학교는 공동묘지 위에 세워지고 마을에는 꼭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가족이 있기 마련이다. 실체가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내가 아는 후배는 도시에서 좀 떨어진 산 중턱에 있는 대학교 근처 도로를 지나가다가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을 봤다고 했다. 참 웃긴 것이 이제껏 몇 십번을 들었는데도 늘 들을 때마다 새롭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게 되는 분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편한 술자리가 길어져 자정을 훨씬 넘긴 다거나 엠티나 캠핑을 가서 모닥불 앞에 앉았을 때 자신이 들었거나 겪었던 괴담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 하니까.

 

‘미쓰다 신조’ 하면 호러 미스터리의 장인이 아니겠는가. 나는 ‘사상학 탐정’ 시리즈로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호러와 유머, 추리와 미스터리가 적절하게 융합된 작품을 쓰는 작가로 기억한다. 이번 작품은 ‘괴담’을 엮은 단편집 이라 기대가 컸다. 특히 여름엔 이런 작품이 더 끌릴 수밖에 없는데다 표지에 그려진 노란 우비의 ‘그것’은 사람인지 귀신인지, 작품의 매력을 더욱 이끌어 올렸다.

 

읽다보니 그랬다. 대체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그러니까 각각의 단편들 사이에 있는 막간(1),(2)는 이 작품을 내는 과정에 있었던 이야기 그대로 인지, 아니면 이 조차도 창작인지 아리송했다는 말이다. 작가는 친절히 조언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가 이상한 경험 -편집자 도키토 미나미가 한 비슷한 체험-을 했다면 일단 기분전환을 하라고. 역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상한 경험을 한 이후로 작가의 작품은 밤에는 번연하지 않는다고. 그럼 나는 어땠냐고?

 

단편들 중에 생각만 해도 섬뜩한 작품들이 있었고 크게 와 닿지 않은 작품들도 있었다. 나는 그러니까 등장인물이 일단 상식적, 논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무섭다’란 생각보다는 ‘답답하다’란 생각을 먼저 하기 때문이다. 스쳐지나가는 것’에서 현관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주인공이 했던 행동은 좀 답답했는데 대체 그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원하는 건지 생각하면 또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우연히 모인 네 사람’은 그랬다. 산행을 위해 모르는 사람이 모였는데 이들을 모두 아는 주선자는 오지 않으면 기차 출발 시각까지 기다릴게 아니라 먼저 전화해보는 게 상식 적인 게 아닌지. 가만 생각하니 일본과 우리의 문화가 달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린 뭐든 빨리빨리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니까. 휴대폰은 어딜 가든 꼭 들고 다니고.

 

하여간에 그런 웃긴 생각을 하면서 내 스타일에 꼭 맞는 단편을 발견했으니 ‘시체와 잠들지 마라’ 가 그랬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곳쿠리님’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분신사바’로 알려진 주술로 점을 치는 할머니가 먼 친척의 장례식에 가야하는 손자를 위해 ‘시체와 잠들지 마’란 계시를 받아 당부를 한다. 그러나 시체를 뜻하는 줄 알았던 ‘시카바네’는 다른 말 이었다는. 그래서 끔찍한 결과를 맞이했다는 이야기.

 

‘죽은 자의 테이프 녹취록’은 이미 죽은 자가 녹음 한 것이 아니라 자살할 당시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적은 내용인데 그 내용도 뭔가 비밀이 있지만 그 테이프를 들은 사람 주변에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들에 관한 내용이다. ‘빈집을 지키던 밤’은 일일 아르바이트로 빈 집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는 사람의 이야기 인데 막상 그 집에 가보니 부부 중 한 쪽은 할머니가 살고 있어 빈집이 아니라고 하고 한 쪽은 할머니가 죽었다고 한다. 그 할머니는 산걸까 죽은 걸까. 뭔가 이상한 집 주인 부부의 행동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전체적으로 보면 아마도 이 단편들은 너무나 ‘일본 스러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자를 대하는 태도, 문제가 닥쳤을 때 해결하는 방법, 괴담의 스타일 등 우리의 괴담은 이야기의 기승전결과 디테일이 살아있다면 일본의 괴담은 뭐랄까 분위기나 소리, 느낌과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평소 일본 문화와 풍속 민담 등에 관심이 많았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고, 단편이 주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나는 밤에 읽어도 별 문제 없었는데 나처럼 둔한 사람이 아니라면 역자처럼 혹시 기묘한 체험을 할지도 모르겠다. 도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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