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가족놀이 스토리콜렉터 6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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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가족놀이》

 

 


이 작품은 팬들에게 ‘미미여사’란 사랑스러운 별명으로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 의 작품 중 세 번 째 로 접한 작품이다. 일본에선 추리, 미스터리 소설들이 크게 본격파와 사회파로 나뉘는 것 같은데 미미여사는 대표적인 사회파 작가로 꼽힌다.

 

미스터리, 트릭, 반전 등의 장치로 극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본격파와는 달리 사회파는 범인의 심리묘사, 범죄가 일어나게 된 개인적, 사회적 배경 등을 중시하는 작풍을 가진다. 한국에서 인기 많은 ‘히가시노 게이고’도 사회파에 속하며, 내가 접한 한국 작가 중엔 김성종이나 도진기 등이 사회파에 속하는 것 같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온라인에서 비롯한 범죄들의 종류와 수법이 매우 다양해 지고 있다. 금전이나 물품사기로 직접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알아낸 개인정보들을 이용해 해를 가하거나, 인신공격으로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기도 한다. 온라인 게임은 그 자체로 폭력성을 부추기거나 2차 피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내 직업군에서 누군가가 라이브 음악시장이 위축된 이유를 스마트폰과 인터넷에서 찾는 것을 보면 거대한 온라인 시장, 온라인 세상과 현실과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 지는 것 같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 이런 온라인 세상 속에서 가상으로 ‘가족 놀이’를 하던 사람들이다.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공존하는 재개발 도시에서 한 남자가 칼에 찔려 잔인하게 살해 되었다. 여자의 비명에 놀라서 나온 한 주민의 신고로 사건 현장은 발견되었고 살인 사건을 수사하기위해 전담팀이 꾸려졌다. 주인공인 다케가미, 치카코, 도쿠나가, 이키에는 한 팀이 되어 사건을 조사한다.

 

피해자에게는 아내와 딸 ‘가즈미’가 있었다.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피해자가 인터넷에서 가상 가족 놀이를 하던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딸 ‘가즈미’, 동생 ‘미노루’ 의 역할을 하던 4명 이었다. 놀랍게도 피해자의 실제 딸 이름이 가상 가족의 닉네임으로 쓰인 것이다.

 

소설은 가상 가족 3명과 실제 딸 가즈미를 만나게 한다. 물론 매직미러를 사이에 두고 가즈미는 가상 가족 3명을 취조하는 장면을 보며 자기 가족을 미행했던 사람이 이 안에 있는지 확인하게 되는 것이지만. 실은 소설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취조실 안에서 3명의 가상 가족을 취조하는 장면이 대부분이며 생각해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특별 수사본부가 만들어지는 처음의 분량이 조금 길다 싶을 정도다.

 

어쩌면 미스터리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범인을 좀 일찍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이 사회파 미스터리의 재미는 트릭보단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있다. 그들이 왜 현실 가족을 두고 가상 가족을 만들어야 했는지, 그 안에서 그들이 충족시키고자 했던 욕구는 무엇이었는지, 이렇게 가족이 붕괴되고 있는데 그들은 대체 현실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의 생각들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용의주도하고 똑똑했다. 이런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만나게 되니까. ‘그래, 그래. 그 정도는 너도 알겠지. 하지만 요건 생각 못했을 걸?’ 정도의 아주 상큼한 반전이랄까? 내용을 보면 심각하지만 그리 심각하지 않게 한 숨에 읽을 수 있었던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역시 나는 머리를 너무 많이 써야하는 본격파 보다는 생각할 지점들이 많은 사회파가 좋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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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점
김희재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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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점》



 

이 소설을 먼저 영화로 만났다면 자극적인 화면에 적잖이 놀랐을 것 같다. 물론 상상력을 부추기는 데는 소설만한 것이 없지만. 작가의 전작들 ‘실미도’나 ‘공공의 적2’는 모두 영화로 보았기에 작가의 이야기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전작들의 내용도 평범하진 않았다. 자극적이고 가슴 안에 뭔가에 불을 지피는 것 같은 얘기들. 정의감이나 분노 같은.

 

이 소설 속에도 검사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번엔 여성이다. 권력을 가지고 노는 잘나가는 검사가 아니라 겨우 겨우 굴러가는 것에 고마워해야할 찌그러진 소형차를 타고 남편과 두 딸을 외국에 공부하러 보낸 기러기 엄마. 그녀는 범죄 조직의 윗선을 검거할 절호의 기회 앞에서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 기업 며느리의 살인사건을 맡게 된다.

 

피해자는 몇 년 동안이나 여대생들의 워너비가 되어온 아나운서이다. 그녀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외교관이자 대기업의 후계자인 남자의 아내이고 재벌가의 며느리였다. 그런 그녀가 실종 된지 며칠 만에 한 유명한 화가의 집에서 나체로 발견되었다. 몸속엔 정액이 발견되었고 그 정액의 주인인 화가가 체포되었다.

 

화가는 누구보다 반듯하고 단 하나의 오점도 발견되지 않을 것 같은 피해자와 사랑한 사이라고 주장한다. 아니 사랑한 사이가 아니라 화끈하게 즐겼던 사이라고, 화면에서 보던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그러나 남편은 주장한다. 그녀는 누구보다 반듯하고 절제력이 강한 완벽한 사람이었다고. 그래서 부부는 서로를 아끼고 존경했다고.

 

다행히 재벌가의 영향 때문인지 언론에서 떠들어대지는 않지만 검사는 피의자인 화가와 한 판 승부를 벌인다. 검사는 피의자의 화려한 언변과 사람을 가지고 노는 듯한 능수능란함 앞에서 증거를 찾고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며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화가를 의심하기도 때로는 남편을 의심하기도 하며 작가의 밀당 작전에 기분 좋게 말려들었다.

 

남편이 보이는 아내를 향한 지고지순한 모습이 과연 진심일까. 피해자가 보였던 모습이 과연 본연의 모습일까. 화가는 미치광이 살인마일까. 검사는 과연 윗선과 재벌가의 압력 앞에서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을까. 등등의 고민을 하며 소설 속에 빠져들었고 정말 순식간에 다 읽어버리고야 말았다.

 

결말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내려질 것 같다. 작가에 대한 평가뿐만이 아닌, 대한민국 검사 혹은 공권력에 대한.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각자의 삶, 복잡다단하고 다양한 감정들과 아픔과 생각들과 인생들을. 아마 작가도 이런 기분을 느끼기를 바란 것이리라.

 

미술에서 ‘소실점’은 원근감과 입체감을 나타내는 도구이다. 하나의 그림에 하나의 소실점이 있기도 하지만 여러 개의 소실점을 설정하면 한 화폭이 여러 개의 ‘시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결국 사람도 세상살이도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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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령군 - 조선을 홀린 무당
배상열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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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홀린 무당 진령군》

 

 

2015년 말~2016년 초에 ‘장사의 신-객주2015’ 라는 드라마가 방송되었다. 조선 후기의 보부상과 상인들을 중심으로 한 민초들의 이야기와 배신 때문에 망해버린 상단의 후계자가 상단의 행수와 대 객주를 거쳐 거상으로 성공하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는 음모와 배신, 사랑과 우정, 돈과 세상을 두고 거래를 하는 상인들의 호방한 이야기에다 출연자들의 선 굵은 연기 때문에 꽤 띄엄띄엄 이지만 꽤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그때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주인공을 너무나 사랑하여 집착이 되고 결국 그의 정인까지 살해한 인물, 비범한 신기로 훗날 명성황후의 최측근인 ‘진령군’에까지 봉해진 무당이 등장한다. 이 책은 바로 그 무당인 ‘진령군’을 비롯한 조선 후기 철종의 승하부터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역사교양서다. 철종 승하 후 후계가 없던 차에 이하응은 효명세자의 빈이었던 효유대비와 손잡고 12살 된 그의 둘째 아들 ‘이명복’을 보위에 올리게 되는데 바로 그가 26대 고종이다.

 

어린 자식을 보위에 올리는 이유는 당연히 ‘섭정’을 위해서겠다. 대원군으로 격상된 이하응은 효유대비와 긴밀히 협력하며 비변사 폐지, 토지개혁, 호포제 등을 통해 개혁을 감행한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어둠이 짙은 것처럼 그의 개혁은 결국 관료사회 하향평준화를 불러오고, 병인박해, 쇄국, 경복궁 중건 등의 통치 행위로 나라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결국 이 실정이 빌미가 되어 하야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아들인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되고 왕비인 민자영은 정치의 전면에 나선다. 문제는 그 시대가 세계열강들이 수탈의 마수를 뻗을 때라는 것이었다.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 가진 자들은 배를 불리려 하고 엄격한 신분제 속에서 생각할 권리조차 없었던 민초들은 상상 이상의 억압 속에 시달린다. 여러 번의 민란이 일어났지만 관료들은 외세를 끌어들여 민란을 제압했다. 나중엔 나라의 임금이라는 자가 외부의 열강이 아닌 백성들을 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설픈 신기로 민자영의 혼을 쏙 빼놓은 자가 바로 ‘진령군’이다. 자신이 사는 곳으로 도망온 민자영에게 곧 환궁하게 될 거라는 말 한마디로 훗날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되는 사람, 권력자들의 두려움을 교묘히 이용하고 그들의 영혼까지 홀려버린 사람. 상인, 관료들과 손잡고 재물을 축적하고 인사까지 좌지우지 하며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의 식량을 바다에 산에 공물로 바치는 행위를 마다하지 않았던. 어쩌면 이렇게 닮았을까. 아니 문제는 진령군이 아니다. 이런 사람에게 의지한 권력자가 문제일 뿐.

 

돌아가는 상황이 어쩔 수 없이 망국으로 갈 수 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조선은 썩어 있었다. 언제나 기회는 있었지만 무능한 왕과 자신들의 영달만을 추구한 관료들은 그 기회를 모두 날려버렸다. 그 끔찍한 상황에서도 백성은 왕을 끌어내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아쉬움 투성이다.

 

2017년이 과연 그 시대의 모습과 뭐가 다른가 생각하게 된다. 일본, 중국, 미국을 위시한 열강들 사이에서 싸드도 위안부 합의도 대통령과 관료들은 철저하게 국민을 무시하고 유린했다. 무능한 대통령은 최씨의 성을 가진 ‘진령군’에게 나라의 운명을 맞기고 몇 백 명의 생명이 수장될 때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었다. 과거 진령군이 그러했던 것처럼 최씨는 국가의 중대한 일을 결정하고 기획하고 인사에 까지 관여했으며 부를 축적했다. 이를 알면서도 방관한 같은 당의 사람들은 아직도 케케묵은 진영논리를 이용하여 탐욕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다른 점이 있다. 우리 국민은 이제 원하고 요구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광장을 지키고 촛불을 들어 대통령을 탄핵시킨 국민들을 이제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다. 탐욕에 눈이 먼 정치꾼들만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나는 역사가 발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경험을 되돌 릴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을 지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그 과거 나라를 잃어버린 그 때와는 분명히 다른 미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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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가게
너대니얼 호손 외 지음, 최주언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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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가게》

 

 

소설로 판타지 작품을 읽는 것은 나에게 정말 힘든 일이다. 상대적으로 영화는 판타지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SF영화-이유를 생각해보니 나는 글로 읽은 내용을 시각화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직관적이고 도약적인 이야기보다는 현실 세계와는 다른 세계관을 가진 기, 승, 전, 결의 구조가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소설을 고를 땐 신중한 편인데, 판타지 중에서도 결국 추리나 미스터리 스타일의 작품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이 소설집을 내가 어떻게 읽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작품, 동화 같고 판타지 같다’는 홍보 문구와 노란색의 표지 디자인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

 

이 책에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마술가게’, ‘초록문‘, ’눈먼 자들의 나라‘,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목소리 섬’, 로드 던세이니의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나다이엘 호손의 ‘페더 탑’ 총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나는 허버드 조지 웰스의 작품들 중 ‘마술가게’와 ‘눈먼 자들의 나라’를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사고로 눈먼 자들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 남자는 ‘눈먼 자들의 나라에선 외눈박이가 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이미 어둠에 적응하여 ‘본다’는 사실 자체가 지워져 버린 나라에서 결국 눈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오히려 ‘본다’는 감각이 목숨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기까지 한다. 내가 가진 모든 감각이 생경하게 다가오는 순간 이었다.

 

한 아이와 아빠가 있을 것 같지 않는 곳에 있는 ‘마술가게’에 들어가 진짜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아이는 그 곳 주인에게 선물을 받지만 그 선물이 가진 비밀을 아빠는 잘 알지 못한다. 마녀가 이상한 것들로 허수아비를 만든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고귀한 신분의 사람이라 칭송하지만 허수아비는 자신의 본 모습을 보고 절망에 빠진다. 허수아비는 어떤 선택을 할까?

 

어찌 보면 황당하고 상상력이 부족하면 머리가 지끈 거리기도 할 작품들. 몇몇 작품들은 머릿속에 남아있는 영상들을 떠올리며 읽을 수 있었고 어떤 작품은 활자만 읽다 그만두기도 했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가로 막았던 가장 큰 문제는 자꾸만 작품들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찾고 있었단 것이다. 이런 작품은 그냥 맘 편하게 상상의 나래를 펴며 읽으면 되는데 나는 자꾸만 ‘주인공이 왜 이럴까, 저러면 되는데‘ 식의 분석을 하고 있었다.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다.

 

불혹의 나이가 되어 가장 두려운 것이 ‘꼰대’가 되는 것이다. 상상력이 줄어들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결국 나만 옳다는 생각이 고착되는. 판타지 소설은 이런 끔찍한 상황을 방지해 줄 것 같다. 감정, 감각, 사고가 딱딱해 지는 것을 막아주고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게 시간을 끌어줄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어린이보다 나처럼 뇌가 딱딱해 지는 걸 걱정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진심이다. 오해는 금물, 물론 꼭 그 이유만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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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날개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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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날개》

 


믿고 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가가 형사 시리즈. 생각지도 못했는데 신작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그럼에도 내용까지 충실하니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신작이라고는 하지만 일본에선 이미 오래전에 출간되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가가형사 시리즈는 2017년 현재 총 9권 발간되었는데 순서대로 1.졸업, 2.잠자는 숲, 3.악의, 4.둘 중 누가 그녀를 죽였다, 5.내가 그를 죽였다, 6.거짓말 딱 한 개만 더, 7.붉은 손가락, 8.신참자 이고 마지막이 바로 ‘기린의 날개‘다. 일본에선 전작인 ‘신참자’가 TV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되었고, 그 후속작인 ‘기린의 날개’가 ‘기린의 날개: 극장판 신참자’로 2011년 개봉했다._네이버 영화_

 

나는 이 작품들 중 1, 6, 7권을 빼고는 다 읽은 것 같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가가형사 시리즈의 특징이라면 바로 가가형사의 ‘발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추리소설의 주인공들은 셜록 홈즈 같은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도 있고 몸으로 부딪혀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액션 스릴러 형사스타일도 있는데 가가 형사는 ‘발품 파는’ 형사다. 증거물을 기본으로 피해자가 가해자가 했을 행동과 그 이유를 주변 인물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관련 장소 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추적한다.

 

《기린의 날개》에서도 끊임없이 걷고, 택시를 타고, 질문을 하고 살핀다. 또 관련 장소에 가면 어김없이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물건을 산다. 파트너이자 사촌 동생인 ‘마쓰미야’와의 케미도 느끼며 함께 걷고 또 각자 발품을 파는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사건의 배경이 되는 도시를 함께 걷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 도시 특유의 정휘, 노포들의 정감어린 분위기에 젖어들게 된다. 그러니 당연히 속도는 느리다.

 

천재적인 탐정의 도약하는 추리도, 활극으로 줄 수 있는 긴장감도 아닌 주변인물의 행위와 장소들에 담긴 특별한 의미, 질문과 답변을 토대로 사건을 구성하다보면 가가형사와 함께 사건의 경위를 추리하는 특별한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바로 이 점이 가가 형사 시리즈의 매력이다.

 

《기린의 날개》의 배경은 도쿄의 니혼바시. 일본 도로의 중심이 된다는 ‘니혼바시’ 다리 ‘기린 조각상’ 앞에서 칼에 꽂힌 체 발견된 남자의 사건을 추적한다. 남자는 근처 지하도에서 칼에 찔렸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굳이 몇 백 미터를 걸어와 조각상 앞에서 쓰러진 것인데 병원으로 후송된 후 결국 사망하고 만다. 곧 경찰은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는 범인을 추적하는데 용의자로 보이는 남자가 경찰을 피하다 차에 치여 의식불명 상태가 된다.

 

경찰은 용의자를 범인으로 잠정 단정하고 사건을 수사하고 가가형사와 마쓰미야는 한 팀이 되어 탐문수사를 시작한다. 여기서 가가형사의 발품이 시작 된다. 시간을 역으로 피해자의 경로를 추적하는 두 사람, 피해자와 용의자가 만난 이유, 결정적 증거물인 칼의 소유경로 등 그 둘의 행적을 추적하다 뜻밖의 사실이 밝혀진다. 용의자가 파견 노동자로 일하던 공장에서 산재사고 은폐가 있었던 것, 그리고 용의자가 그 일의 피해자 였으며, 그 범죄에 고위직이던 피해자가 연루되어 있었던 것. 언론에선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뒤 바뀐다.

 

그런 와중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하나하나 새로운 단서를 추적하는 가가형사. 소설은 여러 가지 단서들을 던져주며 독자들을 시험한다. 나도 잠깐 이상한 쪽으로 사건을 바라보기도 했는데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소설은 흘러간다. 그리고 결국 직면하기 어려운 진실 앞에 서게 된다.

 

뭔가 화끈하고 뒤통수 때리는 반전을 원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은 읽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의 스타일을 알고, 좋아하는 독자라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작품이다. 잔잔하지만 늘어지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긴장감, 니혼바시 특유의 정취, 사건 이면의 진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긴 여운을 남기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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