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 살인 아르테 누아르
카밀라 그레베 지음, 서효령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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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살인》




TV나 연예 잡지 속 가십 코너에 단골로 등장하는 바람둥이 CEO ‘예스페르 오레’. 그의 집에서 목이 잘린 채 널브러져 있는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머리는 몸통에서 잘려 바로 세워진 채 현관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유력한 용의자인 집주인은 행방이 파악되지 않고 차고에선 불이 난 흔적이 있는데 보험 사기가 의심되는 상태이다. 게다가 희생자의 신원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주인공인 강력계 형사 ‘린드 그렌’은 동료들과 사건해결을 위해 조사를 시작하는데 10여 년 전 미결 살인사건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당시 프로파일러였던 행동주의 심리학자 ‘한네’를 호출한다. 그러나 그녀는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데다 주인공인 형사와는 껄끄러운 관계임이 드러난다.


한편 소설엔‘예스페르 오레’의 약혼녀인‘엠마’가 등장하는데 사건 2개월 전 시점부터 자신과 오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의류 매장에서 일하던 엠마는 그 곳에 우연히 들렀던 자신의 회사 CEO와 드라마틱한 비밀 연애를 하게 된다. 그녀는 그에게 적지 않은 돈을 빌려준 상태였는데 그는 엠마에게 약혼반지만 선물한 후 둘만의 약혼식에 오지 않는다. 예상대로 그와는 연락이 두절되는데 그녀에겐 값 비싼 그림이 사라지고 핏자국만 남긴 체 고양이가 사라지는 등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소설은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전개한다. 그들의 현재 모습은 과거와 연결이 되어있다. 결정적으로 ‘엠마’의 과거가 현실 사건에 중요한 열쇠를 가지고 있고 ‘린드 그렌’과 ‘한네’의 과거 또한 ‘그들 자신’의 현실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요소이다. 사건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란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사건자체와 해결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스릴러는 속도가 빠르고 장면전환도 많아 지루할 틈이 없지만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와 관계에 집중하는 스타일은 속도가 느리고 곁가지가 많아 자칫 몰입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후자의 경우로 각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정말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사건을 생각하면 정말 답답했지만 인물을 생각하면 한 인물의 인생 전체를 들여다 본 것처럼 심리묘사 하나는 정말 대단했다.


이를테면 이 사건에 CSI나 본즈 같은 과학 수사대가 투입되었다면 금방 밝혀질 일을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야 겨우 밝혀지는 것이 그렇고, 인물들의 면면이 얼마나 어둡고 답답한지 도대체 그냥 멀쩡한 사람은 없는 건지 의문이 들기까지 했다. 거의 500쪽에 가까운 분량 속에 정작 사건 자체에 집중한 장면은 별로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속도감을 즐기거나 탐정 스타일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미스터리보단 스릴러에 중점을 두는 독자들 보단 등장인물의 심리묘사, 미스터리 자체에 중점을 두는 독자들에게 훨씬 재미있을 소설이다. 그리고 반전. 아마 이런 스타일의 소설이나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중반 부 넘어가면 범인을 눈치 채지 않을 까 싶은데, 이 소설은 반전 자체보다는 그런 반전이 일어나게 되는 ‘심리’ 에 중점이 있으므로 그 ‘과정’을 즐기면 좋을 것 같다. 역시 우리나라나 일본, 영미 스릴러 소설과는 그 스타일이 많이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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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지음 / 무소의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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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예술가가 자신의 과거 작품에 아쉬움을 가지는 것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문학 작품들은 꾸준히 개작, 증보판으로 재출간되고 음악가들도 아쉬움이 남는 곡들을 편곡하여 새 앨범이 싣거나 아예 앨범 자체를 리믹싱(Remixing)과 리마스터링(Remastering)을 하기도 한다. 영화도 감독 판이나 무삭제판이 따로 나오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예술가들의 노력에는 끝이 없는 것 같고 그들이 작품에 갖고 있는 욕심만은 다른 욕심과 달리 ‘애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집《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통해 처음 ‘류시화’를 알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이다. 그때 나는 여고생이었는데 그 당시 ‘류시화’는 소녀들의 감성을 제대로 매혹시킨 작가였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때는 놀랍게도 ‘시’를 읽는 시대였다. 수능시험을 앞둔 수험생이었지만 우리는 교정에 앉아 그의 시를 암송하곤 했다. 세상에! 보고 읽는 것도 아닌 암송이라니!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은 97년 1월,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남학생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개정판이 나와 과거와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해서 오랜만에 예전 책을 폈더니 시집 첫 장에 “97.1.16. 규덕이가..“라고 적혀있다. 대체 97년 1월에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순식간에 내 정신은 그 시절로 달려갔다. 결국 기억해내지는 못했지만.


새로운《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은 굉장히 얇아졌다. 비교해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시들이 사라졌다. 저자는 과거의 자신의 시를 자꾸만 고치게 되고 전부 다시 쓰고 싶어질 때도 있다고 하니 아마 이 시집을 처음 접한 독자들은 이 책에서 사라진 과거의 시들은 영원히 모른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이 먹는 게 참 싫은데 이럴 땐 또 좋은 것 같다. 나는 저자와 함께 늙어가고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된 것이니 말이다. 많은 시들은 그를 오랫동안 알아온 팬들의 기억 속에 각각의 추억들로 머무르게 될 것이다. 내게 기억나지 않는 ‘규덕’이라는 추억처럼 말이다.


또 하나 새롭게 다가온 시가 있다. 바로 『나무의 시』. 과거에는 “아들 미륵이 에게” 란 부제가 달려있었지만 새 시집에는 없어졌다. 예전엔 자상한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알려주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 말이다.


한 때 시인, 작가를 꿈 꿀 때가 있었다. 누구나 한번은 문학소녀의 꿈을 꾸던 예전 우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나는 그런 재능과 열정이 없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중했던 시절이 바로 이 시집 두 권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예전 시집을 보면 소녀시절의 내가 떠오를 테지만 먼 미래 새로 나온 이 시집을 보면 마흔을 몇 개월 앞두었던 내가 생각날 것이다.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두 시집 속 저자의 사진이다. 20년이 흘렀는데 왜 사진은 그때 그 사진인건가. 나만 늙은 것 같아 심술이 조금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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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고양이의 101가지 공통점
홍희선 지음 / 라이스메이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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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고양이의 101가지 공통점》




나는 고양이 4마리의 집사이자 가족이다. 인간 둘과 고양이 넷. 우리는 이렇게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다. 함께 사는 고양이는 모두 길에서 왔고 내가 의도해서 데리고(모시고) 온 경우는 단 하나도 없이 모두 이 고양이들에게 간택당해 반 강제로 함께 살게 되었다.

요즘은 일명 ‘고양이 집사’가 많아져서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지만 아직도 ‘고양이는 요물이다’, ‘주인을 못 알아본다’, ‘해코지 하면 복수 한다’ 등의 말을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일일이 대답을 하긴 하지만 나의 의견에 딱히 귀 기울이지는 않는 것 같다.


고양이는 혼자서도 잘 놀고 독립적이라 흔히들 말하지만 알고 보면 굉장히 다정하고 사랑표현에 적극적인 경우도 많다. 퇴근했다 집에 돌아오면 자다가도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 나오고 자기 기분이 좋으면 뽀뽀에 스킨 쉽이 얼마나 뜨거운(?)지 아는 사람만 알거다. 그리고 외로울 땐 굉장히 외롭다. 외로움이 깊어지면 우울증이 오기도 하고 하루 종일 잠만 자기도 한다.


14살이 된 우리 첫째는 7~8살이 되었을 때 갱년기가 왔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나 또한 고양이 집사가 처음이라 고양이의 일생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그럴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놀랐다. 미처 알지 못하고 그저 잠이 많아졌거니 그냥 내버려 둔 것이 못내 가슴 아프다. 그 고양이가 지금은 14살. 회춘해서 잘 살고 있다.


책을 읽고 사진을 보다 보니 작가 또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아 굉장히 반가울 때가 많았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집은 온통 고양이털로 가득한 채 청결은 그냥 포기하고 사는 데 작가는 오히려 더 깔끔해 졌다는 것과 1마리를 입양하다 2마리가 된 작가와 다르게 난 4마리가 되었다는 것 정도? 물론 작가 또한 몇 마리가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역시 고양이만큼 집사들도 많이 다른 것 같다.


주인과 소유물, 명령과 복종, 사육 이런 말들과 고양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고양이는 함께 살고 동등한 존재로 존재한다. 복종하지 않는 고양이를 보고 명령하면 복종하는 개보다 영악하다고 말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서로 원하고, 서로 노력하고, 서로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과 고양이는 친밀하고 내밀한 사이가 되고 갖가지 감정을 교감하는 깊은 관계가 된다.


이 책 속에는 이러한 과정과 일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색하고 관망하고 묘생의 여유를 아는 고양이와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깨달으며 때로는 고민하는 작가의 일상과 사색, 사랑스러운 사진들이 가득하다. 굳이 인간과 고양이의 공통점 101가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많은 일상들이, 손꼽을 만큼 멋지고 깊은 관계들의 면면이 드러나 있다.


아마 집사라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책이고, 고양이에게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도 참으로 좋을 책이다. 고양이 습성과 일생에 관한 책도 좋지만 ‘감정’, ‘교감’에 중점을 둔 이런 책도 고양이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소장용으로도 정말 멋진 책이 될 것이다. 여러모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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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세트 - 전3권
김홍정 지음 / 솔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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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아마 소설을 좋아해서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숙제하듯’ 책을 읽어본 기억이 한 두 번은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는 분량이 많아 호흡을 길게 하여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이미 시작한 것이 아까워 끝까지 읽어야 겠다는 오기가 발동한 경우일 수도 있다. 아니면 연작이나 시리즈로 출판되어 기다리면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겠는데 내게 이 책은 너무나 숙연하였기에 매일 숙제하듯 읽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나는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나 역사 팩션을 좋아해서 주로 읽는 편인데 이런 책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이어져 반전으로 그 정점을 찍고 작가와 독자가 두뇌싸움을 하면서 읽어야 하는 것에 큰 매력이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내가 주로 읽던 소설들과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긴 시절을 아우르는 작품이므로 나이와 경험, 시절에 따라 변화하는 등장인물들의 인생이 그대로 펼쳐지고, 이런 인물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사건들은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는 갖가지 인생살이를 만들어낸다. 등장인물의 가계도와 관계를 일일이 적어가며 읽어야 하기 때문에 대략 1권 까지는 계속 수첩을 뒤적여야 했다. 그러나 2권을 읽을 즈음엔 어느새 내가 이 소설 속 하나의 인물이 되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의 배경은 1부~2부까지는 ‘기묘사화’가 있었던 중종에서 인종까지 3부에선 문정왕후의 섭정을 지나 명종과 임진왜란이 있었던 선조대까지이다. 이 시기는 대표적인 드라마 ‘여인천하’를 비롯해 많은 드라마와 소설에서 다루었듯 공신들과 사림들의 대립과 정쟁이 극심했던 때로 수많은 사람이 권력의 다툼으로 이유 없이 죽어나갔던 시기이다. 이런 시대에서 어찌 가슴 치는 이야기들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소설《금강》은 이런 파란만장한 시대에 공신들의 반대편에 서서 왕도와 백성의 이상적인 삶을 꿈꾼 사람의 정신적 지주인 ‘충암 김정(실재 인물)’의 뜻을 함께한 ‘충암 동계’(허구)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전에도 ‘여자’가 주인공이 되는 소설들을 읽은 기억이 있지만 소설《금강》에서처럼 어느 조직이나 무리에서 제대로 중심이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소설 《금강》1부에선 연향, 2부에선 미금, 3부에선 부용이 그 주인공인데 1~3부를 통과해 이들 무리들을 결속 시키는 건 바로 ‘연향’이다. 1부에서 연향은 스승 충암의 가르침을 받은 남원, 정희중과 함께 동계를 만들어 결속하고 상단을 조직해 실질적인 동계의 중심이 되지만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만다. 2부에서는 정희중의 손녀 미금이 연향을 이어 그들 무리를 단속하고 연향의 정신을 이어 가지만 연향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을 단죄하는 것이 큰 줄기다. 역시 이 일이 빌미가 되어 역모로 몰리며 미금 또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연향과는 다른 미금의 매력은 그대로 살아있다. 3부는 연향의 딸인 ‘부용’이 주인공이나 그녀가 사랑한 사람이자 역성혁명을 일으켜 새 세상을 열고자한 한산수와의 사이에서 낳은 ‘창’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일으키고자 한 봉기가 큰 중심이 된다.


저자는 이런 큰 줄기 안에서 우리 소리의 아름다움과 여인들의 삶, 백성들의 고단함을 녹여내었다. 등장인물들의 정신적 지주인 충암은 정쟁으로 목숨을 잃었으나 모든 백성이 평등하며 배를 곯지 않고 본성대로 사는 것을 꿈꾸었고 제자들 모두 그의 가르침을 실현하고자 마을을 이루고 상단을 만들어 그대로 실천하였다. 그 중심에 ‘연향’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가족이었고 신분이 중요하지 않았다. 연향은 먼저 소리 채를 열어 여인들과 사람들을 모았고 이어 상단을 만들어 그 이익을 동일하게 배분하였다. 연향을 이은 미금은 상단을 더 키우고 그 아래 모인 사람들을 늘리고 마을을 만들었으며, 그 넓은 품 아래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꿈을 키웠다. 그러나 잇단 정쟁은 그들을 할퀴어 놓았고 그 가르침 속에서도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혁명을 통해 새 세상을 열고자 하였던 것이다.


나는 어느 샌가 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함께 밭을 일구고 한 상에서 밥을 먹고 밤이면 사랑을 했다. 소리 채와 상단의 이야기, 권력 쟁취를 위해 목숨을 건 인물들의 숨 막히는 수 싸움, 복수를 위한 활극, 상단의 일상을 그대로 재현해낸 활기, 운명을 개척한 민초들의 봉기까지 하나하나 그냥 흘린 이야기가 없었다. 이야기는 '금강'이라는 이름처럼 깊은 강처럼 느릿하게 흐르다가도 급류로 흘러 소용돌이를 만들곤 했기에 전체적으로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그냥 그들 속으로 들어가 한 바탕 꿈을 꾼 듯 했다. 그 만큼 이야기와 인물에 빠져들었고 그 만큼 대단한 작품이었다.


권당 500쪽이 넘으니 일반 소설책으로선 4~5권의 분량이다. 처음 《금강》을 받았을 때 그 묵직함에 놀랐고 정성들인 표지에 감탄했으며 한 권 한 권 읽으면서 작품에 빠져들고 인물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숙제하듯 한자 한자 정성들여 읽었고 그 정성이상으로 작가는 감동과 즐거움을 주었다. 각 권당 소설 앞부분엔 주요 등장인물 소개가 뒤쪽 부록엔 등장인물 소개, 용어 설명이 있고 특히 부록엔 조선 당쟁 진행도와 인물소개, 상단 뱃길 지도, 왜군 진격 로와 금강 인근지도, 문학평론가 정홍수, 임우기의 작품해설과 저자의 에필로그가 실려 있어 소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나는 나중에 발견했지만 이 부록을 먼저 읽거나 소설 읽는 내내 참고하면 더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을 읽는 2주간 정말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소설이 많은 분들께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아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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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전하는 인디언 이야기 - 마음의 위안을 주는 잔잔한 옛이야기
찰스 A. 이스트먼 지음, 김지은 옮김 / 책읽는귀족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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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전하는 인디언 이야기》




과거 인디언에 대한 묘사는 미개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종족의 이미지뿐이었다. 역사는 승자의 시각에서 써지는 것이니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한 미국인들의 행위를 합리화 하는 이유가 컸을 것이고 그들 삶의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럴 노력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그런 서구의 철학을 그대로 받았으니. 그러나 이런 이미지가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적어도 내게는) 바로 영화 ‘늑대와 춤을’(1991)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백인 남성이 그렇게 무시무시하다고 여겨지는 인디언 부족에 들어가게 되어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고 사랑을 하게 되는 과정이 무척이나 신비하고 아름답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바람이 전하는 인디언 이야기》는 인디언 ‘수우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앞서 말한 영화가 바로 ‘수우족’과의 이야기라 한다.(영화를 검색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새삼 놀랍다.) 이 책을 쓴 찰스A 이스트먼은 인디언 수우족 출신으로 그의 인디언 이름은 ‘오히예사’이며 인디언의 관점에서 최초로 인디언 역사를 서술한 작가라고 한다.


이 책은 크게 1부 전사들, 2부 여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 7,8 가지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책 소개에 따르면 구전되는 이야기이도 하지만 실제 역사이기도 하다고 한다. 이 각 이야기들에는 그들의 인생관, 생활 풍습, 가치관, 역사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야기는 특별히 흥미롭거나 재미있지는 않고 마치 늘 마시는 차처럼 담백하고 은은하다.


1부 ‘전사들’의 이야기는 한 소년이 태어나 전사가 되는 과정, 사냥을 하고, 다른 부족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반대로 다른 부족을 공격하는 행위들을 하며 진정한 전사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평화와 자연의 섭리를 지키고 다른 동식물들을 인간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왜 다른 부족을 침략하고 약탈하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일정한 거처 없이 마을을 이뤄 필요에 따라 이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정착하여 재산을 불리는 우리의 삶과 비교하여 판단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이 있을 뿐이니까.


2부 ‘여자들’의 이야기는 1부에 비해 인디언의 삶을 훨씬 많이 보여주는 것 같다.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크고 한 가정을 지키고 잉태와 출산을 통해 그들의 역사를 이어가는 주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들은 진정한 여성으로 인정받기 전까진 이름도 부를 수 없고, 여자들만의 언어, 여자들이 해야 하는 일들을 엄마에게 배우고 친구들과 함께 한다. 직접 가죽을 손질하여 옷과 장신구, 신발, 필요한 물품들을 만들고 ‘티피’라는 그들의 독특한 집을 만들고, 자신들을 아름답게 가꾸고 아름다운 언행과 품위를 유지하는 것을 익힌다. 이 모든 일은 그 윗대 할머니의 역할도 결정적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내가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웠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겐 차별이 없고, 구별이 있을 뿐이다. 생의 중요한 주기마다 부족의 어려운 사람들과 먹을 것과 물건들을 나누고 위험의 고비마다 그녀들은 용감하게 가족과 가정, 부족을 지키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런 일들은 고스란히 노래와 춤, 이야기로 이어지고 그대로 위대한 역사가 된다.


그 전에도 인디언의 책들을 읽어보았는데 이 책의 다른 점은 바로 ‘이야기’라는 것에 있다. 그 전에 책들은 종교관, 가족, 자연관, 시간개념, 동식물을 대하는 태도 등 잘 정리하여 알려주었지만 이 책은 ‘수우족’에 이어 내려오는 이야기를 담았다는데 그 의의가 있겠다. 우리에게도 구전되는 동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그들의 삶은 우리의 시각(서구적 시각)으로 이해도 잘 안 되겠지만 판단하고 재단해선 안 된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놓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껏 쓰고 버리는 것들이 인간과 동등한 것들이란 것,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다 오히려 잃어버린 것들. 그런 것들을 떠올리고 부끄러운 삶을 한 번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숨 한번 돌리게 해 줄 이야기들이 이 책 속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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