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철학자네트워크(PEN Corea. Philosophical Engagement Network Corea)

수신: 대한민국 정부 법무부 강금실 장관
      대한민국 국회 국회의원 제위


송두율 교수 무죄 석방과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를 탄원함


■ 탄원자: 전국철학자네트워크(PEN Corea) 서명 철학자 259인

■ 일  시: 2004년 7월 15일

■ 탄원건 연락처:

   김상봉 (문예아카데미 교장)/대표연락처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280-4 건국1호빌딩 5층 Tel.02)739-6854~6 oudeis@hanmail.net
   김양현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300 전남대학교    Tel. 062) 530-3221 yhkim2@chonnam.ac.kr
   홍윤기 (동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울시 중구 필동 3가 26 동국대학교       Tel. 02) 2260-3181/8838  hyg57@chol.com

■ 첨부: 총 7쪽 중
    1. 송두율 교수의 무죄석방과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전국철학자 259인 성명 및
        탄원 기자회견 ‘이제 국가의 품격을 찾을 때다’ 전문
     1. 위 성명서 서명자 257인 명부

강금실 법무부 장관 및 대한민국 국회의원 여러분,


국사에 다망하신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04년 7월 15일 오늘, 전국철학자네트워크(PEN Corea. Philosophical Engagement Network Corea)를 통해 ‘송두율 교수 무죄석방과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전국 철학자 257인 기자회견’을 열었던 저희 철학자 259인은 바로 이 기자회견 안건을 위해 작성했던 성명서 ‘이제는 국가의 품격을 찾을 때다’를 동일 목적의 탄원서로 전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성명서 본문에서 분명히 표현하였지만 저희는 재독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송두율 교수를 둘러싼 사건에 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여러분께 전달하고 합니다.


첫째, 현행 국가보안법의 근본 취지에 비추어 보더라도 송두율 교수는 무죄석방되어야 합니다.

둘째, 송두율 교수를 당장 무죄 석방할 용기가 없다면 현임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논의가 일정 논점으로 수렴될 때까지 송 교수를 불구속 재판하도록 배려해 주십시오.

셋째, 이제 그 법적 항상성과 공정성, 현실적 적합성, 무엇보다 반헌법적인 국가보안법을 완전 철폐하는 데 노력해 주십시오.


이런 취지로 진행된 기자회견의 성명서와 서명자 명부를 첨부하오니 깊은 배려 있기를 간구합니다.

2004년 7월 15일

송두율 교수 무죄석방과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를 탄원하는
전국 철학자 259인 일동
송두율 교수의 무죄석방과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전국 철학자 259인 성명 및 탄원

이제 국가의 품격을 찾을 때다

송두율 교수 사건을 재판하는 서울 고등법원 항소심 판사 제위 귀하,
송두율 교수 기소 업무를 최종 주관하는 강금실 법무장관 및 송광수 검찰총장 귀하,
송두율 교수 사건을 지켜보는 대한민국 국회의원 및 시민사회의 시민 여러분,

우리 한국 철학인들은 재독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뮌스터 대학 송두율 교수가 작년 2003년 9월, 37년의 망명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귀국한 이래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말없이 주시해 왔습니다.

이런 긴 방관은 그가 당한 불행하고도 부당한 고난에 비추어보면 참으로 무책임하고도 부적절한 처신입니다. 무엇보다 송 교수가 귀국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한국 철학?전체를 망라하는 2003년 한민족 철학자 연합대회의 공식 초청에 있었음을 감안하면 한국 철학계가 무관심 속에서 그의 고통을 방관했다고 지탄받아 마땅한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국 초기 관계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그의 지인들조차 몰랐던 과거 행적이 알려지면서 한국 지식인들과 일반 대중들 사이에 도덕적 실망감과 책망이 확산되었습니다. 이 때 우리 철학계는 송두율 교수와 더불어 사회적 견책을 함께 받는 심정으로 그 광적인 비방과 중상을 감내했습니다. 한 인간의 도덕적 실책에 편승하여 실정법의 이름으로 권력의 폭압을 가하라는 수구 언론의 비열한 선동주의를 통해서나마 도덕적 실망이 달래지길 바랬던 것입니다. 그것은 송두율 교수 개인이 감내해야 했던 윤리적 책임의 몫이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 국가의 법 기구가 나서서 냉철한 이성으로 송두율 교수의 삶과 그의 인간적, 학문적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민주화된 우리 국가의 품에 포용하는 조치를 취해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여러 국제적 인권 기구, 국제연합(UN) 그리고 무엇보다 전세계에 산재한 우리 철학계의 외국 지성인 동료들이 한국 관계 당국에 간곡한 구원 요청을 제출하면서 우리 철학계의 침묵을 질책하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인내성을 갖고 대한민국 시민과 법기구의 민주적 양식(良識)을 우선적으로 존중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04년 3월 30일, 송 교수를 겨울 냉기가 몰아치는 독방에 5개월 넘게 감금하고 난 뒤 나온 1심 판결은 단지 송 교수의 신체와 그의 정신적 정체성을 위협에 빠트렸을 뿐만 아니라 그를 그렇게 단죄하도록 방조한 이 국가의 품격을 심각하게 실추시켰습니다. 우리의 철학적 양식으로 볼 때 대한민국 국가는 송두율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낙인찍음으로써 스스로 자기 품격을 훼손시키는 과오에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어느 면에서 송두율 교수 개인보다 이 대한민국 국가의 품격과 우리 자신의 인격이 위기에 빠지는 것을 구하기 위해 다시 한번 궐기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1심 재판 결과에 대해 강력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1. 우리는 1심 재판부가 송두율 교수의 제반 활동과 관련하여 양심과 사상의 문제에 관한 법적 판단에서 가장 중시해야 하는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을 입증해야 할 책임을 방기하고 마치 송두율 교수의 행적이나 사상 ’때문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북한으로부터 우리 국가에 위협이 오는 것처럼 단정한 그 무분별한 판단력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각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외적으로 표현되었을 때 그것을 제한할 수 있는 조건에 관해 가장 적절한 규정을 담았다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요하네스버그 원칙>에 따르면, 한 국가의 체제를 가장 극렬하게 비판하고 부정하는 사상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행위라 할지라도 다음과 같은 경우가 아니면 절대 제약되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즉 그런 사상이 1)‘급박한’imminent 폭력의 사용을 선동하려고 의도한 경우, 2)그로 인해 ‘실제로’practical 폭력이 유발되리라고 판단되는 경우, 3) 이런 사상이 그와 같은 폭력이 발생했거나 발생할 조짐이 있다는 사실과 ‘직접적인’immediate 관련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송두율 교수의 사상이나 학문, 또는 기타 북한을 드나든 행적이 급박한 폭력의 사용을 의도한 것이거나, 그런 폭력을 실제로 유발하였거나 유발할 조짐이 있던가, 아니면 북한에서 유발했다고 믿어지는 폭력 사태와 즉각적인 관계가 있다고 입증된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송 교수의 행적 때문에 대한민국 국가 체제 또는 그와 관련된 국가 활동이 명백하게 저해받을 정도로 위협받았던 경우가 현존했던 적이 있었습니까?

   현행 <국가보안법>은 그 제1조 제1항에서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 대상으로 삼으며, 특정 활동을 이런 반국가활동으로 해석함에 있어서 엄격한 해석을 의무시하고(제1조 2항)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에서 있는 대로 추적해 드러낸 송두율 교수의 37년 망명 생활을 샅샅이 훑어보더라도, 그가 노동당에 가입한 것까지 포함한 그 어떤 활동도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유신과 제5공화국에 걸쳐, 그의 귀국으로 인해 새로 드러난 북한과의 접촉 사실까지 감안하더라도, 북한의 사회주의나 주체사상체제보다는 오히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복원시키는 데 유익하게 작용했던 활동을 더 많이 한 것으로 인식됩니다.

2. 무엇보다 우리는 학문하는 철학자들로서 1심 재판부가 학문적 활동의 비판적 전문성과 학문공동체 내에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진리 확정의 상호주관적 절차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송두율 교수의 집필활동을 놓고 “순수한 학문활동의 일환으로 이러한 저술을 하였다고 볼 수 없고, 북한과의 의사 연락 하에 북한의 주체사상을 전파하고 김일성, 김정일 체제를 선전할 목적으로 이와 같은 저술활동을 한 것으로” 단정한 점에 관해 경악을 넘어 허탈함을 느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판결은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방법론이 “북한 사회의 결과물을 경험적으로 치우침이 없이 올바르게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북한사회, 김일성, 김정일을 미화, 찬양”하려는 의도에서 “분석, 평가대상에 대한 심한 편파성의 결과”로 나왔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재적 방법론은 남한의 ‘북한바로알기운동’을 겨냥하여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유포하기 위해 전술적으로 채택된 선전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단정은 일단 학문적 논증 및 비판의 공동체 안에서 방법론이라고 고지되고 나면 그 방법론이 어떤 검증 과정을 거치는지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나온, 그야말로 음모론적으로 굴곡된 피상적 추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1심 재판부의 피상적 이해와는 달리 학문세계에서 ‘방법론’은 연구 대상 전체를 샅샅이 보려는 관점에서 제시되지 않습니다. 방법론은 항상 그 방법을 통해 보고자 하는 대상의 특정 측면, 즉 특정한 학문적 문제 의식에 답을 줄 수 있는 부분을 보고자 해서 고안됩니다.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방법론은 외재적이거나 선험적 방법으로 볼 수 없었던 북한 사회의 부분, 그것도 중요한 부분을 보고자 하는 것이었지, 북한 사회 전체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학문적 방법론의 숙명입니다. 따라서 어떤 연구 대상이든 한 가지 방법론만으로는 그 대상의 모든 측면을 볼 수 없습니다.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방법론은 북한 사회를 이해할 때 결여되어 있었던 그 사회 내의 행위 주체들의 동기연관, 그것도 그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동기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북한 지도층을 근접 관찰하고 그들과 비교적 솔직히 대담했던 결과적 정보들을 국내의 언론 및 학술 매체들을 통해 그야말로 친북적이라는 인상을 줄 정도로 아주 정직하게, 학문적 성과의 공개 원칙에 입각하여, 국내 독자들과 연구자들에게 공개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한국 학계에 찬반 양론의 담론장을 형성했습니다. 다시 말해 송두율 교수는 민주 사회에서 보장되는 학문적 검증 절차를 합리적으로 밟아나가고 있었고, 당연히 그 과정을 통해 내재적 방법론의 적용상의 문제점에서 그 자체의 문제점까지 비판적 검토가 이루어지는 참이었습니다.

   학계에서 송두율 교수가 북한에 관해 공개한 정보들은 상당한 정확성을 가진 것으로 인정되면서도, 다른 그 어떤 방법론도 그렇지만, 완벽한 것으로 공인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문적 불완전성을 법적 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까? 그것도 7년이나 징역을 살아야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3. 우리는 송두율 교수의 저작물이 국내 주사파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 때문에 한국 사회가 상당히 위기에 빠진 듯한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애쓰는 재판부의 판결을 보면서 한국 사법부의 일부 판사들이 얼마나 한국 사회의 흐름과 차단되어 사회적 무감각 상태에 매몰되어 있는지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학생운동 및 변혁 운동에서 주사파는 80년대 초 5공 군부독재체제의 폭압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남한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하였습니다. 주사파 발생과 확산의 가장 결정적 계기는 폭력적 억압을 일상화시킨 결과 당시 대학생들로 하여금 자유민주주의가 짓밟힌 대한민국의 현실에 절망하게 만들었던 전두환 정권의 공포정치였습니다.

4. 우리는 송두율 교수가 자성적 성찰문을 발표한 작년 10월 2일부터 그 엄혹한 추위를 지낸 현재까지 일관되게 대한민국 헌법과 자유민주주의에의 충실성에 입각하여 모든 담론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재판부가 전혀 주목하지 않는 그 냉혹한 무신경에 분노합니다. 자존심을 가진 지식인이 공중 앞에서 자신의 과오를 상당 부분 인정하면서도 파괴되지 않은 자기 모습을 보여 주려고 분투하는 정경은, 이 순간 우리 사회가 누리기에는 과분한, 인간 정신력의 또 다른 성과라는 점을, 바로 이런 점에 항상 유의하는 우리 철학인들이 주목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하는 것입니다.

송두율 교수의 범죄구성행위라고 하는 것들을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분단체제 아래서 남한의 독재정권들이 북한보다는 남한의 국민들을 억압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그어놓은 경계선을 일상적으로 드나들며 통상적인 교류 활동을 한 정도입니다. 바로 이런 일상적 활동 범주들이 국가보안법에 반국가단체구성(3조), 잠입․탈출(6조), 회합․통신(8조) 등의 거창한 법률개념으로 채색되어 범죄구성요건으로 적시되어 있는 한 재판부는 그런 활동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1조 1항)에 아무 지장이 없는데도 그런 활동을 범죄행위로 분류하는 거창한 재판 절차를 소모적으로 진행시켜야 할 것입니다.

백번을 양보하여 현행 국가보안법을 글자 그대로 해석, 적용하더라도 송두율 교수의 범죄라고 되어 있는 모든 활동을 범법 행위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이런 우매한 법이 계속 존속되는 한 우리 국가의 시민의식은 계속 위축될 뿐만 아니라 모든 일상 행위가 언제든지 범죄화될 수 있는 여지가 강하게 남습니다. 이런 법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우리 국가의 언행은 세계시민사회 앞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더 이상 국가가 스스로를 바보로 만들고 우리가 우중(愚衆)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국가가 그 품격을 찾을 때입니다.

이에 우리 철학인들은 항소심 재판부, 법무장관, 검찰총장, 그리고 대한민국 국회와 시민사회의 시민들께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 탄원합니다.

첫째, 재판부는 현행 국가보안법으로라도 송두율 교수를 무죄 석방하라.
둘째, 송두율 교수를 무죄 석방할 용기가 없다면 국가보안법의 유효성에 대한 국회의 토론 과정이 끝날 때까지 불구속 재판하라.
셋째, 한국 사법기구로 하여금 계속 무의미하고 우매한 판결을 하도록 강요하는 국가보안법을 전면 폐지하라.

2004. 7. 15.

송두율 교수의 무죄석방과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전국 철학자 257인

강성화(서울대) 강중기(서울대) 강지영(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강지은(건국대) 강철웅(서울대) 구미숙(부산대) 권광호(부산대) 권서용(부산대) 권순홍(군산대) 권인호(대진대) 김기현(전북대) 김광수(한신대) 김남두(서울대) 김대오(한신대) 김도종(원광대) 김동기(한국철학사상연구회) 김동규(부산대) 김동규(연세대) 김명석(경북대) 김명주(부산대) 김민영(경북대) 김방룡(원광대) 김병환(부산대) 김상득(전북대) 김상봉(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김상현(서울대) 김상희(부산대) 김석수(경북대) 김선욱(숭실대) 김성관(원광대) 김성민(건국대) 김성우(상지대) 김세서리아(성균관대) 김세정(충남대) 김승태(한남대) 김시천(숭실대) 김원열(한국기술교육대) 김양현(전남대) 김영례(전북대) 김영배(경성대) 김영희(부산대) 김옥경(연세대) 김용섭(영남대) 김우철(한철연) 김인곤(서울대) 김인석(숭실대) 김의수(전북대) 김인순(동국대) 김재홍(가톨릭대) 김재희(서울대) 김정옥(부산대) 김종국(고려대) 김종식(부산대) 김주연(서울대) 김주일(성균관대) 김준수(부산대) 김준호(부산대) 김재기(경성대) 김재홍(가톨릭대) 김진근(교원대) 김진석(인하대) 김창준(부산대) 김치완(부산대) 김태완(숭실대) 김학권(원광대) 김학근(목포대) 김현돈(제주대) 김홍경(미국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남순예(충남대) 노성숙(이화여대) 노양진(전남대) 노호진(서울대) 노희천(순천대) 류근성(전남대) 류시열(신라대) 류종열(한철연) 맹주만(중앙대) 문동규(전남대) 문성원(부산대) 문현병(신라대) 문창옥(연세대) 민영현(부산대) 박구용(전남대) 박대원(경북대) 박만준(동의대) 박민미(동국대) 박병기(전남대) 박병기(전주교대) 박병섭(전북대) 박상환(성균관대) 박성규(서울대) 박승찬(가톨릭대) 박완규(충북대) 박영균(건국대) 박영욱(건국대) 박용주(부산대) 박유정(부산대) 박은미(건국대) 박정하(세종대) 박정훈(한철연) 박종식(부산대) 박준건(부산대) 박진(동의대) 박채옥(전북대) 박치완(한국외대) 박필배(성균관대) 박해용(울산대) 반성택(서경대) 배용균(충남대) 배식한(세종대) 백금서(전남대) 백승영(서울대) 백영제(동명정보대) 백은기(전남대) 백훈승(전북대) 변순용(전남대) 서상복(서강대) 서영화(상지대) 서유석(호원대) 서정국(경북대) 선우 현(청주교대) 선재순(전남대) 설헌영(조선대) 성진기(전남대) 송명철(조선대) 송영배(서울대) 송인창(대전대) 신승환(가톨릭대) 신원봉(영산대) 신은화(경북대) 신응철(전남대) 신정근(성균관대) 신종섭(원광대) 신하령(숭실대) 심혜련(건국대) 안동교(전남대) 안상헌(충북대) 안옥선(순천대) 안현수(부산대) 양선이(서울대) 양승호(전북대) 양재혁(성균관대) 양해림(충남대) 여현석(방송통신대) 연효숙(연세대) 염수균(조선대) 우환식(충북대) 원승룡(전남대) 위상복(전남대) 유현상(상지대) 유초하(충북대) 윤선구(서울대) 윤용택(제주대) 윤종갑(부산대) 이강서(전남대) 이강화(대구대) 이기백(성균관대) 이명기(연세대) 이명훈(한남대) 이병옥(연세대) 이병창(동아대) 이봉규(인하대) 이봉재(서울산업대) 이삼열(숭실대) 이상곤(원광대) 이상봉(경북대) 이상용(부산대) 이상인(연세대) 이상화(이화여대) 이상환(경북대) 이상훈(대진대) 이성백(서울시립대) 이성훈(경성대) 이승환(고려대) 이안나(부산대) 이엽(청주대) 이영철(부산대) 이유달(서울대) 이유진(동국대) 이윤일(관동대) 이재봉(부산외대) 이재성(계명대) 이정은(연세대) 이정호(방송통신대) 이종철(연세대) 이중원(서울시립대) 이중표(전남대) 이철승(성균관대) 이찬훈(인제대) 이창구(전북대) 이창재(성공회대)  이충진(한성대) 이하배(성균관대) 이한홍(부산대) 이향준(전남대) 이혜경(서울대) 임정아(전북대) 임재진(조선대) 임채광(한남대) 임형석(부산대) 장복동(전남대) 장원태(서울대) 장춘익(한림대) 장은주(영산대) 장정욱(경북대) 전영길(호언대) 전재원(경북대) 정낙림(경북대) 정대성(연세대) 정대현(이화여대) 정미라(전남대) 정륜(전북대) 정세근(충북대) 정용수(부산대) 정원규(서울대) 정원섭(서울대) 정원재(서울대) 정윤승(충남대) 정은해(서울대) 정종환(원광대) 정준영(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정호근(서울대) 정호영(충북대) 정희승(조선대) 전호근(한국철학사상연구회) 조광제(철학아카데미) 조대호(연세대) 조민환(춘천교대) 조윤호(전남대) 조은평(건국대) 조준호(조선대) 조항구(경북대) 조홍길(부산대) 진태원(서울대) 최대우(전남대) 최성식(전남대) 최소인(영남대) 최유진(경남대) 최윤수(성균관대) 최종덕(상지대) 최종천(순천대) 최한빈(천안대) 하상필(부산대) 하영미(부산대) 하용삼(부산대) 하주영(영산대) 한대희(호언대) 한수선(부산대) 허우성(경희대) 허재훈(경북대) 홍원식(계명대) 홍윤기(동국대) 홍일희(전남대) 황갑연(순천대) 황병윤(부산대) 황수영(서울대) 황지윤(부산대) 황희경(영산대)

전국 철학자 총 259인

기타 동의 표명하신 분: 3인
이남석(강릉대 인문학연구소) 임순광(경북대 비정규직 교수, 사회학) 조영준(카셀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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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번역 검토-1

몇 사람에게 이 책에 관한 서평을 쓰겠다고 약속을 한 뒤 몇달 동안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이제서야 간단하나마 서평을 쓰게 되었다. 이처럼 늦어진 이유는 물론 이런저런 다른 일들 때문이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또 다시 말도 안되는 오역으로 점철된(그럴 것이라고 예상되는) 데리다 번역본을 원문과 하나하나 대조해가면서 짜증내고 분노하고 한숨쉬고 하는 지겨운 일을 될 수 있는 한 피해보려는, 자연적인 심리적 또는 생리적 거부반응 때문이었다(그럴 걸 왜 약속을 했던가 ... 무용한 정열이여!). 

  그 약속을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 더 미루면 결국 쓰지 못할 것 같아서, 엊그제 집에서 책을 붙잡고 읽기 시작했다(원래는 구내서점에서 이 책을 읽을 생각이었으나, 며칠 전 원서를 끼고 구내서점에 가보니, 아뿔싸! 한 권 있던 책이 이미 도서관에 납품되었단다. 이런!! 그러니 어쩌겠는가, 약속을 이미 해놓았으니, 책을 사서라도 읽어야지 ... 그래서 결국 3만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이 책을 사고 말았다. 제발 번역이 괜찮아야 하는데, 제발 그래야 하는데라고 되뇌이면서 ...).

  그래서 책을 읽었는데(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아직 읽고 있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역시 실망스럽다고 해야 할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지 사실은 상당히 혼란스럽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역자가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 상당히 애를 많이 썼다는 점이다. 사실은 출판사 쪽에서도 나름대로 신경을 쓴 것 같은데, [역자 후기]에 따르면 일본어 번역본에 실린 역주(140여쪽에 달하는 분량이라고 한다. 존경할 만한 자세다)를 번역해서 역자에게 제공해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애를 쓴 결과, 70여쪽을 읽어본 것에 기초해서 말하자면, 그래도 읽을 만한 번역본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전혀 말도 안되는 오역들이 매쪽마다 나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 해도 이 번역본은 여전히 불만스럽고 문제가 있는 번역본이다. 몇 쪽에 한 두번씩 상당히 중대한 오역들이 발견되고 있고, 이 오역들은 데리다의 논의의 핵심 내용과 관련되어 있어서, 비록 한 두 개의 오역이라 할지라도 2-3쪽에 걸친 논의 내용을 충실히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 번역본은 사소한 몇 가지 잘못들을 범하고 있는데, 이런 잘못들이 번역본만 읽는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큰 불편함을 준다는 점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가령 이 번역본에서는 “écriture”라는 데리다의 핵심 개념을 어떤 경우에는 “에크리튀르”로 표기하고, 어떤 경우에는 “문자”나 “문자 언어”로, 또 어떤 경우에는 “기호표기”나 “글쓰기”로 번역하고 있다. “문자기록”이나 “기록” 같은, 이 개념의 의미를 훨씬 충실히 살려낼 수 있는 번역어가 있음에도, 이처럼 한 단어를 여러 개의 번역어로 표현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이렇게 해서는 개념의 통일성을 제대로 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번역본만 읽는 독자로서는 그때그때마다 원어를 상기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더 나아가 역자는 어떤 경우에는 “inscription”을 “문자 언어”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혼동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역자는 “production”이라는 단어를 앞부분에서는 줄곧 “창출”이라고 번역했다가 30여쪽 뒤에서부터는 다시 “생산”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경우 누가 이것들 모두가 “production”이라는 단어의 번역어라고 생각하겠는가? 더욱이 데리다는 관념, 이념, 의미 등과 같은 사유활동의 결과들은 어떤 신학적이거나 정신적인 창조물이 아니라 물질적인 기록작용의 결과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produc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창출”이라고 번역한다면, 데리다의 의도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결과를 낳고 만다.

  또한 역자는 “renvoi”나 “renvoir”, 또는 “renvoir à”라는 말들을 “되돌려보내기”(21), “...으로 귀결된다”, “...으로 되돌아가며” 등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는 문장의 의미가 전혀 이해될 수 없다. 이 책에서 사용된 “renvoi”라는 단어는 기호들이 외부의 사물을 가리키지 않고 기호들끼리 서로서로 참조하는, 또는 지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곧 차이들의 체계로서의 기호체계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다. 아울러 “renvoir”나 “renvoir à”는 “되돌려보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에 준거하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각각의 논의 맥락들이 이해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자주 쓰이는 “effacer”라는 단어도 이 책에서는 “소멸하다”로 주로 번역되고 있는데, 이 역시 이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effacer”라는 단어는 “écriture”라는 개념, 곧 “기록”이라는 개념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단어로, “지우다”, “삭제하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이를 “소멸하다”로 번역하게 되면 독자들이 데리다 논의의 의도와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직 고작 70여쪽을 읽어봤을 뿐이지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그래도 뒤로 갈수록 번역이 나아진다는 점이다. 읽어갈수록 계속 더 번역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

  이제 이 책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오역의 사례들을 제시해볼 생각인데, 여기서는 가벼운 오역은 놔두고 논의의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오역들만 검토해보겠다.

10쪽
“[루소의 텍스트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제1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제시된 명제들에 긴밀하게 종속되어 있다.] 이 명제들이 요구하는 바는 독서를 할 때 최소한 그것의 중심축은 역사의 고전적 범주들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역사는 사상사와 문학사는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철학사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러한 축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는 고전적인 규범들을 존중해야만 했다. 아니면 적어도 존중하려고 애썼다. 비록 시대라는 말이 이러한 고전적 규범들이라는 결정 요소들로 완벽하게 규명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역사적 총체성과 마찬가지로 구조적 형태도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부분은 큰 문제는 없는데, 두 가지 정도가 눈에 걸린다. 우선 독서의 “중심축은 역사의 고전적 범주들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와 “당연한 것이지만, 이러한 축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는 고전적인 규범들을 존중해야만 했다. 아니면 적어도 존중하려고 애썼다” 사이의 관계가 불분명하다. 이 양자의 관계를 좀더 분명히 밝혀야 독자들이 논의의 전개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마지막 문장이 잘 이해가 안되는데, 이는 역자가 원문의 “이 규정들ces déterminations”이라는 지시대명사를 잘못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문을 보자.

원문 p. 7
“Cellis-ci exigent que la lecture échappe, au moins par son axe, aux catégories classiques de l'histoire: de l'histoire des idées, certes, et de l'histoire de la littérature, mais peut-être avant tout  l'histoire de la philosophie.
  Autour de cet axe, comme il va de soi, nous avons dû respcter des normes classiques, ou du moins tenté de le faire. Bien que le mot époque ne s'épuise pas en ces déterminations, nous n'avions à traiter d'une figure structurale autant que d'une totalité historique.”

위에서 지적한 두 가지 문제점을 감안해서 다시 번역하면, 위의 번역문은 다음과 같이 수정될 수 있다.
“이 명제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요구한다. 곧 독해는, 적어도 그 중심축은 역사―사상사 및 문학사는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도 철학사를 포함하는―에 대한 고전적인 범주들을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중심축 주위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고전적인 규범들을 존중해야 했다. 또는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시도했다. 비록 시대라는 단어가 하나의 구조적 형태와 하나의 역사적 총체라는 규정들로 소진되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러한 규정들을 다루어야 했다.”

그 다음 문장을 보자.
15쪽
“이러한 부적절함은 언제나 이미 운동을 야기시키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무언가가 이 부적절함을 있는 그대로 나타나게 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이를테면 책임지는 것을 [16쪽]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 문장에서는 “부적절함”이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분명치 않다. 이는 우리가 앞의 문장들을 인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역자가 “inadéquation”이라는 단어를 “부적절함”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그리고 “운동을 야기시키기 시작했었다”라고 했는데, <어떤 것>의 운동인지가 분명치 않다. 이 역시 번역의 잘못 때문에 생겨난 모호성이다. 마지막으로 “책임지는 것을 [16쪽]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역시 불어 단어의 뜻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다. 원문을 보자.

p. 13
“Cette inadéquation avait toujours déjà commencé à donner le mouvement. Mais quelque chose aujourd'hui la laisse apparaître comme telle, en permet une sorte de prise en charge ...”

이 문장들 전체를 다시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불일치[문자기록의 표음화가 세계 문화를 독점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시점에 과학의 진보는 문자기록의 표음화에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는 것]의 운동은 항상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어떤 것이 이러한 불일치의 운동에 대해 일종의 부하(負荷)prise en charge를 허락함으로써, 이 운동이 있는 그대로 나타나게 만들고 있다.”

보다시피 역자는 “불일치”라고 번역해야 할 “inadéquation”을 “부적절함”이라고 번역해서 논의의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더 나아가 역자는 “donner le mouvement”이라는 숙어를 너무 곧이곧대로 해석해서 “불일치가 <다른 어떤 것의> 운동을 야기시키다”로 번역하고 있는데, 현재의 문장에서 이는 불일치 자신의 운동을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prise en charge”라는 어구 역시 “책임지다”는 뜻을 가진 “prendre en charge”라는 숙어와 혼동하고 있는데, 이 어구는 그런 뜻이 아니라 이미 작용하고 있는 운동에 새로운 동력원이 공급되었다는 것, 곧 부하를 받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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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17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 관한 검토 첫번째 부분입니다. 변죽은 요란하게 울려놓고 정작 내용은 빈약해서 민망하기 짝이 없군요. 앞으로 적어도 2장 [언어학과 문자학](전체 분량의 1/4 정도)까지는 내용을 검토해서 올리겠습니다. 나머지는 시간관계상 생략 ......(^^;;;)
하지만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밀려 있는 터라, 매일 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2-3일에 한번씩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또 약속 ...-.-;;;).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나쁜 번역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안심하고 추천할 수 있는 번역도 아닙니다. 구매 여부는 알아서 판단하시길 ...

쎈연필 2004-07-17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도 모르는 게 많지만, 공부하듯이 정성껏 읽겠습니다(읽고 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노고가 많으십니다. 항상 고맙구요, 응원합니다.

balmas 2004-07-17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힛, 그렇게들 말씀하시면 쑥스럽죠.^^
 

 

오마이뉴스

 

 

"한미 동맹 국익론은 변형된 숭미, 사대주의"

[인터뷰] '파병재검토 결의안' 앞장선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

 


▲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
ⓒ2004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을 무조건 지원해줘야 한다면 박정희 유신체제와 뭐가 다르냐. 한미동맹은 노무현 후보보다 이회창 후보가 더 잘할 수 있다. 그렇게 하라고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찍어준 것은 아니지 않느냐. 신기남 의장의 '한미동맹 강화론'은 변형된 숭미사대주의 논리다."

'국군부대의 이라크 추가파견 중단 및 재검토 결의안'에 서명한 50명의 여야 의원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파병 반대 논리를 펴고있는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은 청와대와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었다.

김 의원은 14일 오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파병 불가피론을 주장하거나 침묵하고 있는 젊은 개혁성향 의원들에 대해서도 "의원으로 재선, 삼선하는 것보다 일관성을 지키는 게 더 소중하다"며 일침을 가했다.

특히 김 의원은 신기남 의장이 최근 방미 중에 한 '한미동맹 강화' 발언에 대해서도 "변형된 숭미사대논리이며, 분단국가 정치인으로서의 철학이 없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외국군대가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참전한 6.25 전쟁에 대해 '은혜'라는 발상은 이회창 후보와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국회 윤리특위 위원장인 김 의원은 '윤리특위가 지금까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 "지금까지는 여야가 안건을 합의해서 상정해야만 하고, 3개월 지나면 자동 소멸되는 허점이 있었다"며 "바로 공청회를 열어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 잠자는 윤리특위를 깨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의원과의 인터뷰는 14일 오전 10시25분 국회 윤리특위 위원장실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미동맹? 노무현 후보보다 이회창 후보가 더 잘한다"

ⓒ2004 오마이뉴스 이종호
-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15일 본회의에서 파병재검토 결의안을 직권상정해달라"고 요청했다는데.
"어제(13일) 개회 직전에 김 의장을 만나서 이야기했다. 국회법을 보면, 국회의장이 시한을 정해서 상임위에 검토하라고 얘기하거나 안건을 바로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작동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파병 재검토 지지자들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문제제기 하는 것이다. (파병 재검토 지지자들을 늘리는데 있어서) 한나라당은 친미적 속성상 힘들고, 열린우리당은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늘(14일) 기존의 파병재검토 결의안과는 별도로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보고서에서 밝혀진 잘못된 이라크 전쟁 중단 촉구 결의안'을 만들어 본회의장에서 서명을 받을 예정이다. 국군 파병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은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의원들이 동참할 것으로 본다. 일단 이런 결의안이 통과되면 결정적으로 (파병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본다."

- 김선일씨 피살 직후에는 70% 가까이가 파병반대 입장을 보였는데, 7월초 여론조사를 보면 파병찬성론이 다소 앞서는 것으로 나온다. 왜 그렇다고 보는가.
"우리 근현대사가 갖고 있는 수난의 역사 때문이다. 옳은 게 꼭 이기는 것은 아니고 이긴 자에게 빌붙는 것도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패배주의가 있다. 해방 이후 친일파가 오히려 기득권이 되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다 하층민으로 전락했다. 그걸 보면서 역사적 패배의식, 역사적 허무주의 같은 것이 생긴 것 같다."

-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파병 재검토 불가 입장이 확고하다. 당 전체 분위기 놓고봐도 파병 불가피론이 우세한 것 같은데.
"아직도 우리 정치인들이 낡은 권위주의 정치문화, 정당문화에 찌들어있는 것 같다. 당청 관계보다 근본적인 것은 국회와 정부와의 관계다.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무조건 추종하는 게 아니라 견제해야 하는데 이것을 착각하고 있다. 대통령을 무조건 지원해줘야 한다면 박정희 유신체제와 뭐가 다르냐."

- 특히 젊은 개혁성향 의원들 가운데 적지않은 사람들이 파병 불가피론을 주장하거나 침묵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국회의원이 재선, 삼선을 하고 입각하는 것보다 자기 삶을 부정하지 않는 일관성을 지키는 게 더 소중하다고 본다. 자꾸 한미동맹을 강조하는데, 한미동맹은 노무현 후보보다 이회창 후보가 더 잘한다. 김용갑 의원이 미국 집권세력으로부터 더 신뢰를 받는다. 그것을 하려고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찍어준 게 아니지 않느냐. 이는 대선과 총선의 민의에 어긋나고, 어떻게 보면 자기 배반의 역사로 거침없이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기남 의장의 변형된 숭미사대 논리, 분단국가 정치인으로서 철학 없다"

ⓒ2004 오마이뉴스 이종호
- 신기남 의장의 논리 가운데 하나가 '미국은 우리나라의 혈맹이자 유일한 동맹국이다', '국익을 지키는 것이 자주인데, 지금 한미동맹 강화만큼 우선하는 국익이 어디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변형된 숭미사대 논리다. 중공군도 세계전략 일환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지만 전쟁 이후 북한에게 '도와줬으니 말 잘 들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고, (강요했다 하더라도) 북한이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청일전쟁 당시에도 일본이 '조선왕조를 지켜줬다'고 했는데 그게 우리나라를 지켜준 것이라고 이해해도 되나. 외국군은 어디까지나 외국군인데,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안간다. 그런 발상의 뿌리가, 우리가 집권하면 안된다고 했던 이회창씨의 논리와 차이가 없다고 본다."

- 신기남 의장은 국내에 와서도 '대외용 발언이라고 자꾸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데 국내에서도 말을 바꾸지 않겠다'고 못박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방미 중에) 가족사를 얘기하면서 부친이 빨치산 토벌대장이었다고 했는데, 그게 분단국가 정치인에게 자랑거리인가. 토벌한 사람이나 토벌 당한 사람이나 모두 가슴 아픈 역사의 희생자라고 생각해야지, (부친이) 토벌대장을 했다는 게 무슨 자랑이냐. 분단국가 정치인으로서의 철학 없이…. 납득이 안 간다."

- 개혁당을 같이 했고, 개혁 성향 인사 1순위로 꼽혔던 유시민 의원이 추가 파병에 침묵하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유 의원과 직접 얘기를 해봤는데 적극적 찬성도 아니고 고뇌를 하더라. '전략적 모호성'인 것 같은데, 나처럼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서지 않아 오해를 받는 것 같다. 유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 정책에 대해서 적극적인 지지를 하고있지 않나. 사실 노 대통령의 개혁과제가 걸림돌 없이 나가면 '경호할 사람 많이 있으니까, 유 의원은 2선에서 머무르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요즘 행정수도 이전 문제나 언론개혁 등 개혁과제들이 저항을 받고있지 않나. 그런 면에서 유 의원의 태도를 충분히 이해한다."

-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의원들이 정부쪽 입장을 엄호하면서 파병찬성 쪽으로 먼저 기울었는데.
"노 대통령이 청와대 만찬에서 의원들에게 '각자 역할에 따라 책임의 무게가 다르다, 이해해달라'고 했는데, 그 표현 안에 대통령의 고뇌가 녹아있다고 본다. 내가 저 위치에 있을 때 지금의 입장을 계속할 수 있는지, 나에게도 반문해보곤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분명히 국회의원이고, 노 대통령하고 아무리 친해도 어쨌든 입장이 틀리지 않나. 나는 국회의원으로서 내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입장을 정리한 것 뿐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은 전 당원 표결로 결정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대통령도 결과를 수용하고 열린우리당 소속 전체 의원도 그걸 수용할 수 있지 않느냐. 지금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의 절대 다수가 파병 반대론을 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게 국제적으로도 '윈-윈'이라고 본다. 대통령이 (투표) 과정에서 파병찬성 입장 표명하고, 당원들은 이를 '노'하는 긴장감 있는 그런 절차를 거치면 누가 그런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겠나."

"이라크 파병 찬반은 전당원 투표로 당론을 결정해야"

ⓒ2004 오마이뉴스 이종호
- 최근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한나라당보다 뒤쳐졌다. 열린우리당의 위기의 원인을 어떻게 보나.
"국민들과 괴리를 갖고있는 당의 노선 때문이다. 국민들이 '니들 배불렀구나, 배에 기름기 꼈다, 기득권 편입 유혹에 들어가는구나' 그런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리 보수노선을 걸어도 영남권에서 박정희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겠나. 절대 그렇지 않다. 반대로 우리 지지 기반은 열린우리당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지금 흩어진 지지 기반이 다시 돌아오겠는가 하는 걱정이 든다."

- 미국의 국익이 우리나라의 국익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보나.
"미국의 국익과 우리나라의 국익이 다를 수 있다. 동북아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의 틀이 생겼지 않나. '동북아 중심국가론'도 북한을 빼놓고는 불가능하다. 대륙간 실크로드나 시베리아 가스 수송을 하더라도 북한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반대로) 미국은 일본을 중심으로 한국을 자신의 안보전략 틀에 예속시키고 동북아에서 영향력 발휘하려고 한다. 미국은 통일 한반도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불안해 한다."

- 그동안 국회에 윤리특위가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16대 국회에서도 윤리특위가 제 기능을 발휘했다면 방탄국회라는 비판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원론적으로는 윤리특위는 의원들의 자격심사, 윤리심사, 징계권을 갖는데 한번도 제대로 작동이 안됐다. 문제는 여야가 합의해서 안건을 상정해야만 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3개월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소멸한다. 이 부분에 대해 국회법을 손질해야 한다.

이번에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도 윤리특위에 자동 상정돼 논의된 결과를 국회에 본회의 보고하는 절차를 거쳤다면 이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 일본, 유럽은 의회의 윤리특위가 막강해서 자정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국회 윤리특위의 활성화 방안이 국회개혁, 정치개혁과 직결되기 때문에 정개특위와 개혁경쟁을 할 것이다. 공청회를 열어 제도적 보완을 하고 잠자는 윤리특위를 깨워내겠다."

ⓒ2004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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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1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원웅 의원의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가 왜 이렇게 참신하게 들리나?
평화개혁당 운운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신기남의 궤변, "파병 규모, 인구비례로 보면 적정"

"국민들은 여러가지 따지지 않는다"고 반전여론 폄훼도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규모와 관련, "인구로 보면 우리나라의 4분의 1 수준인 네덜란드도 상당히 많이 (파병)하고 있다"며 "인구비례로 보면 감내할 수준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손석희, "인구 비례로 따지면 일본이 더 보내야지"
  
  신 의장은 16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본인이 자청한 '네티즌과의 논쟁' 차원에서 출연한 자리에서 '우리가 자이툰 부대를 파병할 경우 3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하는 것인데 이렇게 많은 군대 보낼 필요 있나'는 사회자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신 의장이 "파병하고 있는 나라들의 인구로 보나, 친밀도로 보나 그런 정도는 맡아야 할 책임의 분량 아니냐"며 "그만한 것(자이툰 부대 파병)은 감내할 수준"이라는 주장을 재차 표자, 사회자는 "단지 인구비례로 따지면 일본이 더 보내야 한다. 일본 인구가 우리보다 더 많지 않나"며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자 신 의장은 "일본은 자위대이기 때문에..."라며 말끝을 흐리면서 "하여간 한미양국 논의 끝에 적절한 병력을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더이상 논란을 피했다.
  
  하지만 이같은 신 의장의 주장은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인도나 파키스탄 등이 미국의 추가파병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고, 우리나라가 미국-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3천7백명을 이라크에 파병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는 궤변이라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신기남 "국민 감정은 다분히 감정적인 부분이 많아"
  
  "반미시위가 자주냐"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신의장은 또한 이날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폈다.
  
  신 의장은 이날 "양국의 지도자들은 논리적으로 따지고 국익을 생각해서 합리적인 수준으로 생각하는데 국민 감정은 다분히 감정적인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여러가지 따지지 않는다"며 일반 국민들의 반미감정을 '다분히 감정적 문제'로 폄훼했다.
  
  신 의장은 이어 "한국에서 반미감정이든 미국의 반한감정이든 양국간의 역사적 관계나 국익에 기초한 외교 관계 같은 본질적 문제를 깊이 고려하기보다는 민족적 자존심 또 개별 사안에 대한 태도 등 감정적 측면이 좌우한 경향이 있다"며 "우리 지식인들이나 정치적 지도자들은 너무 감정적으로 나가기보다는 냉정하게 역사적 관계를 이끌어야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사회자가 "대중심리적으로 접근하면 그럴 수 있지만 참여하는 개인은 깊은 생각 끝에 집회에 참여한 것인데 국민들의 그런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정치인 역할 아니냐는 아쉬움도 있다"고 응수하자, 신 의장은 "그래서 지도자와 일반 국민들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 역사적인면, 외교정책적인 면 등을 소개하고 국민들이 새로운 정보에 바탕을 둔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진지한 대화 나눌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이에 사회자가 재차 "청취자 입장에서 들으면 국민감정은 감정적 차원이고 지도자는 냉정한 판단을 하니 우리가(지도자) 잘 아니깐 그냥 따르라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며 반박하자, 신 의장은 "그렇게만 곡해하면 안된다"고 발끈해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다음은 손석희 사회자와 신기남 의장의 일문일답 중 파병관련 부분 전문이다.
  
  일문일답
  
  손석희: 방미도중 문제가 된 발언이 여러가지 있어 우선 사실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의 외교정책 1조는 한미동맹 강화다', '반미시위 참가자 즉흥적이고 단편적인 경향이 있다', '우리의 유일한 동맹은 미국뿐이다'. '고 김선일씨 피살사건과 유사한 사건 발생해도 추가파병 원칙에는 변함없다' 등. 이중에 틀린 말이 있나.
  
  신기남: 말이라는게 항상 좀 정확히 보도되지 않을 때도 있고 어느 한 부분만 떼어 옮기면 전체가 이해 안되는 경우도 있으니 일일이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손석희: 청취자 중 한 분이 '자주라는 것이 남의 도움 받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우리나라 일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국민에게 험악하게 싸운다고 질책하신 의장님, 한미동맹 강화 노선은 포기할 수 없는 제 1원칙이라 강조했는데 정말 한미동맹이 자주에 우선한다고 생각하시냐'는 질문을 했다.
  
  신기남: 한미동맹과 자주 간의 관계가 양자택일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세계 어느나라나 외교를 하는 목적은 자기 이익을 얻자는 것이다. 철저한 국익을 얻기위한 경쟁이고 기브앤 테이크가 원칙이다. 미국과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 군사, 안보, 문화 등 모든 분야가 해당된다. 우리 필요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실리 얻는 것이 자주적인 태도 아니냐. 한미동맹도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적극적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자주인데 뭐가 더 중요하냐고 묻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손석희: 그런 답이 나오면 자연히 국익의 실체가 뭐냐는 질문이 따라온다. 이같은 질문이 파병이 처음 결정됐던 작년부터 계속되는 것을 보면 정부가 국익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신기남: 전쟁에 참여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 누가 있나. 미국사람들도 안 좋아 하는데 우리도 고민끝에 결정한 외교 정책이다.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또 한미동맹에 입각해, 또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라크 평화 정착 도와주고 재건에 목적이 있으니 그런 명분을 갖고 (파병하는 것이다).
  
  손석희: 우리가 파병하면 미국이 의리 지켜준다는 것이 전제돼야 혈명 아니냐. 그런데 현 상황을 보면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있고 이라크 파병 이유 역시 어떻게 보면 자기 군대 빼고 다른 나라 군대 끼워넣겠다는 것인데 여기에 무슨 실익 있어 우리가 부응해야 하나.
  
  신기남: 그런 얘기 다 같이 해야 한다.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파병을 결정한 것도 치열한 논쟁 끝에 국익의 형량과 국익을 비교해 결정한 것이다. 이라크 파병도 결국은 국익이라는 외교 정책의 일환으로 결행한 것이다. 현재 34개국이나 이라크에 파병하고 있고 한미동맹이라는 것이 얻을 수 있는 국익이 있기 때문에 파병도 국익이라는 기준으로 논란끝에 신중하게 결정한 외교 정책이다.
  
  손석희: 33개국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자이툰 부대를 파병할 경우 3번째 많은 병력을 파병하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군대 보낼 필요 있나.
  
  신기남: 참여하고 있는 나라의 인구로 보나, 친밀도로 보나 그런 정도는 맡아야 할 책임의 분량 아닌가. 인구면에서 우리나라의 4분의 1 수준인 네덜란드가 상당히 많이 (파병)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구비례로 봐서도 감내할 수준이라고 본다.
  
  손석희: 파병의 규모를 인구비례로 따지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나.
  
  신기남: 현재 파병된 병력이 6백명인데 실제 4백명 정도 남았다. 그만한 것은 감내할 수준이 아닌가.
  
  손석희: 단지 인구비례로 따지면 일본이 더 보내야 한다. 일본 인구가 우리보다 더 많지 않나.
  
  신기남: 일본은 자위대이기 때문에. 하여간 한미양국 논의 끝에 적절한 병력을 결정한 것이다. 전투부대도 아니다.
  
  손석희: 미국에서 한 발언 중 네티즌들이 비판하는 부분은 한때 자주 외교를 주장하던 신 의장이 미국에 대한 촛불시위 폄훼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반미시위 참가자들이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면이 있다는 표현은 과하지 않나, 또 다수는 추가파병을 원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가 궁금하다는 의견도 있다.
  
  신기남: 신문에 보도된 그대로 얘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얘기는 한 적 있다. 반미든 반한이든, 미국에는 또 반한 감정이 있다. 우리가 성조기 불태우는 것을 보고. 이게 참 문제다. 양국의 지도자들은 논리적으로 따지고 국익을 생각해서 합리적인 수준으로 생각하는데 국민 감정은 다분히 감정적인 부분이 많이 있다. 국민들은 여러가지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서 반미든 미국의 반한감정이든 일부 있는데 양국간 역사적 관계나 국익에 기초한 외교 관계 같은 본질적 문제를 깊이 고려하기 보다는 민족적 자존심, 개별 사안에 대한 태도 등 감정적 측면이 좌우한 경향이 있다. 우리 지식인들이나 정치적 지도자들은 너무 감정적으로 나가기 보다는 냉정하게 역사적 관계를 이끌어야할 책임이 있다.
  
  손석희: 대중심리적으로 접근하면 그럴 수 있지만 참여하는 개인은 깊은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다. 국민들의 그런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정치인 역할 아니냐는 아쉬움도 있다.
  
  신기남: 그런 마음도 나눴고 미국 지도자들도 미국 반한 감정도 그런 면 있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지도자와 일반 국민들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 역사적인 면 외교 정책적인 면 소개하고 국민이 새로운 정보에 바탕을 둔 판단 내릴 수 있도록 진지한 대화 나눌 필요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여기 MBC라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방송국 프로그램 나와 얘기하는 것도 국민과 대화를 통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국민과 함께하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손석희: 청취자 입장에서 들어보면 국민 감정은 감정적 차원이고 지도자는 냉정한 판단을 하니 국민은 우리가 잘 아니깐 따르라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신기남: 그렇게만 곡해하면 안된다. 많은 정보를 드리고 냉정한 판단할 기회를 주는게 우리 임무라고 생각한다.
  
  손석희: 일본과 중국을 견제하는 현실적 수단은 한미동맹. 중국 무시하고 미국 중심 아니냐.
  
  신기남: 일본 중국을 견제라고 말한 것은 아니나 지정학적 위치가 있다. 4대 열강이 주변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진로, 안보면에서 심각하게 잘 고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미동맹의 필요성 더 높아진다. 역사적인 교훈도 있다.

   
 
  이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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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16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놈 참, 충성심에 눈이 멀어도 유분수지 ...
정말 당의장 자격 있다, 자격 있어.
 

 

경향신문

 

[이광훈칼럼] 집단적 思考의 함정

 

얼마전 미국 상원은 이라크전이 중앙정보국의 잘못되거나 근거없이 과장된 정보 때문에 일어났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중앙정보국의 잘못된 정보평가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집단적 사고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상원의 이같은 보고서는 이라크전이 잘못된 정보에 의한 잘못된 전쟁이라는 주장을 공식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당초 전쟁 명분으로 내걸었던 ‘이라크가 9·11테러에 관련되거나 지원했다’는 근거는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후세인이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쌓아두고 있을 뿐 아니라 10년 안에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정보도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상원 보고서가 지적한 대로 이같은 ‘세계적인 정보 실패’를 근거로 전쟁을 일으킨 것은 결과적으로 부시 행정부의 집단사고 때문이었다.

9·11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은 성조기 배지를 달고 공석에 나타났다. 아마도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정부의 항재전장(恒在戰場) 결의를 과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자 파월 국무장관을 비롯한 핵심참모들도 약속이나 한듯 일제히 성조기 배지를 달기 시작했다. 그 성조기 배지에는 또한 부시를 정점으로 한 동지적 결속과 일체감을 다지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美, 근거없이 이라크 침공-

그러나 돌이켜보면 일제히 달기 시작한 그 성조기 배지야 말로 부시 행정부의 집단적 사고를 가꾼 토양이 되었다.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나 조직이 어떤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이라고 심리학자들은 정의하고 있다.

이같은 집단적 사고가 지배하는 조직에서는 만장일치를 깨뜨리는 소수의견이나 비판적인 사고는 동지적 결속을 위협하는 ‘불온(不穩)’으로 낙인찍히게 마련이다.

집단사고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흔들리거나 한 사람의 카리스마적 지배자가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조직일수록 더 많이 나타난다. 이런 조직에서는 “윗분의 결심이 섰다. 모두가 힘을 합쳐 그 분의 결심을 실천해야 한다”는 한마디에 모든 부서가 일사불란한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이렇게 되면 가장 정직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정보도 윗분의 구미에 맞게 윤색되거나 왜곡되게 마련이다. 만약 윗분의 결정에 토를 달거나 성공을 의심했다간 ‘왕따’당하거나 추방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 새삼 집단적 사고의 함정을 경계하는 것은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 그토록 활발하게 쏟아져나오던 다양한 의견들이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목소리로 획일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당정이 일제히 나서서 복창하고 ‘실시!’를 외치기에 바쁜 것이 참여정부의 요즘 모습이다. ‘계급장 떼고…’ 운운하던 것도 행정수도 이전문제가 첨예한 정치쟁점으로 떠오르기 전에 있었던 옛날 얘기다.

물론 지금도 정책토론회도 있고 공청회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같은 모임의 대부분은 이미 결정된 정책을 다짐하는 결의대회나 윗분의 결심을 실천하기 위한 전진대회처럼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다른 어느 정권보다도 열린 정부임을 자랑하던 참여정부가 출범 1년6개월도 안되어 집단적 사고에 빠져들어 획일적이고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참여정부 획일성도 우려대통령의 한마디에 일제히 복창하는 모습은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김명수 시인의 ‘하급반 교과서’라는 시를 떠올리게 한다. “…한 아이가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그렇다 그렇다!’ 하고 읽으니/‘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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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1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해찬 총리 임명 역시 당을 견제하기 위한 노무현의 뜻을 담고 있다고 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