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미국 중심 외교, 이제 그 장막을 걷어야 한다

 

김보영 기자

김선일씨가 결국 죽임을 당했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의 바람과 달리 '파병방침 불변'이라는 정부의 꿋꿋한 방침 아래 희생된 첫 민간인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테러범들이 한국 정부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를 읽는 동안 공포의 가쁜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던 김선일씨에게 조국, 대한민국은 무엇이었는가. 무고한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존재 이상, 이하도 아니었음을 우리는 모두 확인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김선일씨의 죽음을 보면서 생각난 것은 우습게도 고등학교시절 국사 수업 시간이다. 그 때 우리는 '우리 민족은 매번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을지언정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고 배웠다. 이를 듣고 어떤 친구는 "우리 민족은 바보 같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 덕에 그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테러 뉴스는 단지 '국제' 뉴스에 지나지 않았다. 누가 그것이 국내 뉴스가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대한민국'

세계 3위 규모의 파병을 결정하면서 정부는 줄곧 '평화와 재건'을 위한 파병이라고 주장한다. '평화와 재건을 위한 파병'인 만큼 김선일씨의 죽음으로 파병 입장에 어떠한 변화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 사람들에게는 외국 군대의 주둔 자체가 치욕스러운 것이라고, 이라크를 접해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데도, 정부는 귀를 막은 듯 오로지 '평화와 재건을 위한 파병'이라는 공허한 외침을 반복할 뿐이다.

정부의 말대로 '재건'을 위해서라면 건설 인력을 보낼 일이지, 왜 군대를 보내는가. 또 '평화'를 위해서라면 이라크 국민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 군대를 보내야 맞는 것 아닌가. 정작 해당 국가는 우리를 반기지 않는데, 오히려 그들을 매주 수십 명씩 희생시키는 등 갖은 만행을 일삼고 있는 미국의 요청에 의해 군대를 보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만으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물론 테러범들의 만행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테러 위협이 날로 증가하는 미국에게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 비판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 스스로 무덤을 팠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파병 찬성론자들은 여전히 '국익'을 논할 것이다. 파병으로 미국의 비위를 맞춰주면 북한 핵 문제를 원만히 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햇볕정책을 이끌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핵문제의 해법은 미국과의 동맹보다 오히려 북한과의 대화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가 파병으로 미국의 비위를 맞춰준다 해도 핵 문제의 해법은 고도로 계산된 그들의 손익계산서 아래 이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코 자신들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우리와의 의리를 지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러워지는이 현실로….

실익 없는 '미국중심 외교'

이것은 우리 정부의 '미국중심외교' 태도가 초래한 결과이다. 파병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국익도 미국중심외교라는 틀 안에서만 국익일 뿐이다. 세계는 점점 다극화하고 있으나 우리는 여전히 미국중심의 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외교통들은 미국중심의 외교에 길들여진 사람들로 가득하다. 정부뿐만 아니라 언론도 마찬가지다.

"미국에는 각종 언론사의 특파원이 바글거려도 세계 최대 규모의 국가연합체인 유럽연합 사무국에는 상주하는 특파원 하나 없다"는 우리나라 유럽연합 대사의 하소연이 미국중심 외교의 단면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비단 이라크전뿐만이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계획(MD, Missile Defence)에 편입되면서 중국의 군사적 1차 공격대상국이 됐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 계획은 중국을 가상적대국으로 삼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은 중국에 가장 인접해 있는 남한을 미사일 방어 체제의 최일선 전진기지로 고려해 왔고, 김대중 정부에서 이를 거부하려 했으나 결국 받아들임으로써 현실화됐다. 이로써 중국과 미국 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경우, 우리 나라는 중국의 제1차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는 북한만이 우리 군사 경계의 대상이었던 범위를 넘어선 것이지만, 그런데도 정부의 외교정책은 여전히 미국중심 외교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우리나라가 아무 이유 없이 중국의 제1차 공격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미국중심 외교'는 '국익'은커녕 우리의 목숨을 점점 죄어오고 있다. 김선일씨의 희생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첫 사례이다.

정부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김선일씨의 희생 및 테러범들의 위협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 오히려 '미국중심의 외교'라는 우리 외교의 한계가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난 일이 이번 김선일씨 사건이다.

이렇게 사건의 본질이 명백한데, 유독 정부여당과 조중동은 여전히 '미국중심 외교'에 집착하고 있다. 그 곳에 더 이상 국익은 없다. 국민을 죽음의 위협 속에 빠뜨리는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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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성명서] 2004년 6월 23일

이라크인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와 폭력을 부추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야만적 행위다

- 이라크 침략전쟁에 동참한 노무현정권에게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이 있다 -


1. 침략전쟁에 동참한 노무현정권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한다. "무고한 민간인을 해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가증스러운주장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태의 원천이며 수많은 "무고한" 이라크인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미국은 아무런 근거도 명분도 없이 침략전쟁을 감행하여 무고한 이라크인을 대량 살육하였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꼭두각시 정권을 내세워 노골적으로 이라크를 강점하려 하고 있으며, 미국의 천인공노할 만행에 처절하게 저항하는 모든 이라크인들의 목소리를 무참히 짓밟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침략과 점령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한국군 파병은 무슨 근거로 용납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피랍사건이 발표된 후 오히려 노무현정권이 보인 오만방자한 태도가 죽음을 재촉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노무현정권을 마치 정의와 진리를 실현하는 사도라도 된 것인양, 파병강행의 입장을 더욱 더 세차게 몰아붙였다. 이라크인이 반대하더라도, "평화와 재건을 위해 파병하기 때문에 우리는 정당하다"는 식의 논리로 온 국민을 기만하려는 더욱 뻔뻔스러운 작태를 서슴지 않았다. 어떤 논리를 대더라도 이 사태의 책임이 침략전쟁에 동참한 노무현정권에게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2. 이라크인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와 극단적 폭력을 부추기는 모든 주장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또한 고 김선일씨 사건을 계기로 극히 무분별하게 이라크인에 대한 증오와 "복수"를 운운하며 극단적인 폭력을 부추기는 모든 주장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네티즌 의견 중에서 '김정일한테 양해구하고 전군 다 파병해라'라는 글이 네티즌으로부터 가장 공감을 많이 받고 있다"는 둥의 기사를 대량 유포하고 있다. "네티즌"의 이름을 팔아, 극단적 증오와 폭력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류의 모든 행동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야만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의 이라크 전쟁이 이라크와 세계인에게 극단적 폭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침략전쟁과 점령, 파병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을 "복수와 더 큰 폭력"으로 몰고 가려는 세력이야말로, 전쟁으로 인한 죽음과 고통이 진정 무엇인가를 아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세력이며, 야만이 도래하기를 기대하는 가장 위험천만한 세력이다.

3. 고 김선일씨와 모든 이라크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우리는 고 김선일씨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그의 죽음에 슬퍼하는 모든 국민의 애절한 심정에 함께 한다. 또한 우리는 이라크에 대한 미국과 UN의 경제봉쇄, 침략전쟁, 저항세력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 등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을 빼앗긴 모든 이라크인의 고통에 대해 그 아픔에 함께 하고자 한다.

지금도 이라크 현지에서는 미국이 저항세력 색출을 명분으로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있으며, 매번 수십명 이상의 무고한 이라크인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의 죽음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모든 국민의 목소리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과 학살이 중단되어야 하며 한국군의 파병이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모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시종일관 무시하고 국민을 기만하려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에게는 민중의 심판만이 남았을 뿐이다.

2004년 6월 23일
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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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6시 현재 이라크 추가파병 찬반을 묻는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 라이브 폴에서 파병 반대 입장이 점차 줄어드는 반면 찬성 입장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다음> <네이버> <야후코리아> 세 곳을 대상으로 22일 밤 9시(1차), 23일 오전 11시30분(2차), 23일 오후 6시, 세 시점별 파병반대 추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다음> : 71.1% → 63% → 47.8% (찬성 49.9%)
<네이버> : 61.9% → 56.3% → 36.8 % (찬성 61.2%) - 네이버의 경우 3차 조사 시점에서 질문내용이 바뀜. 기존부대도 철수 18.8%, 추가파병 철회 18.0%, 기존 정부방침대로 파병 13.8%, 전투병도 파병 47.4%
<야후> : 60% →37% → 37% (찬성 63%)


위에서 보여지듯 23일 새벽 2시 김씨 사망 사실이 보도된 이후 포철사이트 세 곳 모두에서는 파병의견이 계속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김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파병 입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묻는 <다음>과 <야후> 결과를 살펴보면 파병 '반대'에서 '찬성'으로 바뀐 경우가 그 반대 경우보다 2배 가량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는 김씨 사망 소식이 일차적으로 네티즌의 '분노'를 야기시킨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네이버에서 실시중인 라이브 폴 결과를 살펴보면 전투병도 파병해야 한다는 의견이 47.4%에 달해, 김씨의 사망 사건을 주도한 이라크 무장단체에 대한 네티즌들의 적개심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23일 저녁 7시 현재 세 포털 사이트 라이브 폴 결과는 파병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우세로 역전된 상황에서 점차 그 간격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에서는 "일부 언론에서 김씨의 사망을 놓고 '보복을 선동'하는 보도태도를 보여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조갑제 "노 정부 최선을 다했다... 파병 후 복수" 운운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은 2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김선일씨 살해-대한민국은 응징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김씨 피살 사건과 관련 파병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현 정부의 태도를 지지하고 나섰다.

조 편집장은 해당 글에서 "노무현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처리에 있어서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며 "정부의 방침대로 파병은 더욱 단호하게 변함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 편집장은 파병 이후 "우리 군대가 이라크에 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라크 주권당국과 협조하여 김선일씨 살해범들을 색출, 처벌하는 일"이라며 "정당한 복수를 주저하는 국가는 국민들뿐 아니라 적(敵)이나 우방으로부터 경멸을 당한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죽음에 관한 '미국 책임론'에 대해서는 "미국은 지금 인류의 안전에 도전하고 있는 일부 이슬람 과격분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을 국제사회의 대표자로서 수행하고 있다"며 "김씨는 인류와 국가의 대의(大義)를 위해 희생된 셈"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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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6-23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더 추세를 지켜봐야겠지만, 현재 여론에 이상기류가 조성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일자 [조선일보] 사회면 톱기사 제목을 보십시오.

"테러 응징못하면 문명국 아니다"
분노한 시민들, 상황파악 못한 정부에 비난 빗발

정말 제목을 절묘하게 잡아놨습니다.

흥분한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해서 파병의 당위성을 부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무현 정부의 잘못을 여기에 결부시킴으로써 이중적 효과를 얻겠다는 뜻입니다. 최소한 파병을 정당화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잘못을 노무현 정부에게 전가함으로써, 노무현 정부를 고립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지요.

TV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병찬성론과 파병반대론을 "공평하게"(?) 다루고 있는데, 실제로는 김선일 씨에 대한 국민들의 애도의 감정을, 김선일 씨의 "부당한 죽음"과 결부시킴으로써, 결국 알게모르게 테러응징론 쪽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때문인지 포털 사이트 여론조사에서는 점차 파병찬성론이 파병반대론과 격차를 벌이면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반면, 파병반대론은 한차례 더 냉정하게 사고해야 얻을 수 있는 결론이기 때문에, 파병찬성론보다 정서적 호소력이 부족합니다.  

자칫 이렇게 하다가 911 테러 이후 미국에 불어닥쳤던 메카시즘적인 테러응징론이 우리나라에서도 세력을 얻게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탈리아에서도 자국인 피살 이후 파병찬성론이 비등해졌다고 합니다.

당장 해야 할 일은 파병반대 집회에 꾸준히 참석하고, 여론의 기류를 바로잡기 위해 각종 포털 사이트 여론조사에 참여하고,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에 파병반대를 호소하는 글을 남기는 일일 듯합니다. 우선 이 일에 모두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balmas 2004-06-24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SBS 마감뉴스를 봤는데, 해설위원이 근엄한 표정으로,
일부 여야의원들이 파병원칙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하면서, 제 2, 제 3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파병이 관철되어야 한다고, 내뱉더군요.
하루가 멀다하고 미국 민간인들이 참수되고, 미군이 이라크에서 지옥같은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정말 저 사람들이 제 정신 가진 인간들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KBS나 MBC도 같은 입장이라면, 정말 큰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조선인 2004-06-24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SBS의 반동지수는 한없이 올라가는 거 같습니다.
민영방송 출범을 끝까지 반대했던 교수님이 생각나네요.

balmas 2004-06-24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BC와 KBS는 좀 제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은데, 정말 걱정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가 정말 중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민주노총, 화물연대에서 파병철회 투쟁에 동참을 선언했습니다! 정말 고무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출처 : 물만두 > 김선일씨를 애도하며...

먼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고인의 명복을 빌 자격도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고인이 고통없이 가셨기를 바랍니다. 또한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대통령께 한 말씀 드립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아닌 외아들을 가진 이 땅의 아버지이기를 바랍니다.

또한 당신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인권 변호사였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자국민 한 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하는 당신이, 그리고 우리 나라 모든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남의 나라 국민을 위한다고 총을 앞세워 그 땅을 밟으려는 것인지요.

그들이 싫다고 합니다.

가지 말아야 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였습니까?

국제 사회의 약속이 중요하다고요?

그 국제 사회의 약속 때문에 우리가 분단된 국가에서 살고 있는 거라는 걸 아십니까?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돕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점령을 당했고 식민 지배를 당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약자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당한 자만이 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국민의 생명과 다른 나라 사람의 생명보다 국가의 이익이 중요합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왜 인권 변호사였습니까?

그때와 지금의 자리에서 바라 본 세상은 다른가요?

당신이 진정 그때의 인권 변호사 노무현이라면 그 자리로 돌아오십시오.

적어도 지금의 당신 모습보다 그때의 모습이 더 당당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부끄러워 하십시오.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이 예전 당신이 그렇게 싫어하던 사람들 모습 그대로라는 것, 그렇게 비춰진다는 것,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김선일씨의 희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가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희생당한 그 나라의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제발 파병을 철회하십시오. 지금 있는 군대도 철수하십시오.

그것만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임을 빨리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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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쎈연필 > 몸을 잿더미처럼 뒤지며

늘 부드러운 얼굴로
도란도란 얘기하는 그의 입에서
말 대신에 철조망이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내가 뭘 잘못 보고 있는가 해서
눈을 감았다 다시 떠보았지만
여전히 그의 입에서는
국수공장 분틀에서 뽑혀나오는 국숫발처럼
줄줄 철조망은 밀려나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이렇게
영영 썩지도 않고 녹만 벌겋게 슬어가는
사람들의 입에서 거칠게 내뿜어진 철조망 다발이
가는 데마다 산같이 쌓여 있고
사람들은 그 틈에서 서로 싸우고 찌르고 가로막고 피흘리며
마냥 허우적거리다 쓸쓸히 죽어가는 것이었다

                                       이동순,「철조망 세상」


외로운 네가
허공을 향해 조선낫을 휘두를 때
흰옷 입은 우리들은 아리랑을 불렀다
사랑과 집념을 위해
아니 그보다는 한맺힌 네
슬픔과 기다림의 절정을 위해
너는 낯선 땅 힘센 미국 선수의
빛나는 부와 프론티어 정신 앞에
덜그럭거리는 조선맷돌 하나의 힘으로
네 슬픔의 마지막 절정 위에 큰칼을 씌웠다
돈이 많은 나라
자국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아낌없이 사랑과 포탄을 쓰는 나라
우리들은 오늘 그 나라 대통령이 원하는
레바논 전쟁에 우리들의 꿈을 팔 것인가 생각하고
아침 저녁 TV는 우리들의 희망 위에
또 한겹 두터운 포장지를 씌우겠지만
너는 부서질 줄을 알고
너는 너의 슬픔의 한없는 깊이를 알고
너는 너의 사랑의 겸허한 목소리를 알고
너를 기다리는 사립문 위
어머니의 오랜 박꽃까지 알면서도
덜그럭거리는 조선맷돌 디딜방아 한 방으로
이 낯선 힘센 나라의 콘크리트
벼랑 위에 부딪쳐 쓰러지는구나
사랑이 많은 나라
그리움이 깊어 속살 푸른 가을하늘의 나라
득구, 너의 고향 북한강에 지금은
늦가을의 골안개 희게 흩어지고
네가 싸운 미국땅 부러우면서도
아무런 부러움도 남길 것 없는 타인의 땅을 생각하며
우리들이 세워야 할 힘센
사랑과 희망의 푸른 그날을 위해
오늘 네 쓰러진 머리 힘빠진 목줄기에
네 어린 날 검정고무신짝으로
네 고향 북한강 푸르디푸른 그리움의 강물을 쏟는다

                                               곽재구,「김득구」

 

며칠째 석양이 현해탄 물구비에 불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닻을 내린 거룻배 위에는
저승의 뱃사공 칼롱의 은발이
석양빛에 두어 번 나ㅡ부ㅡ끼ㅡ더ㅡ니, 동서나북
금촉으로 부서지며 혼비백산
숲에 불을 질렀습니다.
으ㅡ아, 솔바람 불바람 홀연히 솟아올라
둘러친 세상은 넋나간 아름다움
넋나간 욕망으로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아세아를 건너지른 <오그덴 10호>가
현해탄에 당도한 건 바로
이때입니다.

오그덴 10호는
몇 명의 수부들을 바다 속에 처넣고
벼락을 때리며 외쳤습니다.
오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 안락한 처마밑에서
함께 살기 원하던 우리들의 아벨,
너희 따뜻한 난롯가에서
함께 몸을 비비던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 풍성한 산해진미 잔치상에서
주린 배 움켜 쥐던 우리들의 아벨
우물가에서 혹은 태평 성대 동구 밖에서
지친 등 추스르며 한숨짓던 아벨
어둠의 골짜기로 골짜기로 거슬러오르던
너희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믿으의 아들 너 베드로야
땅의 아버지 너 요한아
밤새껏 은총으로 배부른 가버나움아
사시장철 음모뿐인 예루살렘아
음탕한 왕족들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야
너희 식탁과 아벨을 바꿨느냐
너희 침상과 아벨을 바꿨느냐
너희 교회당과 아벨을 바꿨느냐
독야청청 담벼락과 아벨을 바꿨느냐?
회칠한 무덤들, 이 독사의 무리들아
너희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 고통을 짊어진 아벨
너희 족보를 짊어진 아벨
너희 탐욕과 음습한 과거를 등에 진 아벨
너희 자유의 멍에로 무거운 아벨
너희 사랑가로 재갈물린 아벨
일흔 일곱 날 떠돌던 아벨을 보았느냐?
아흔 아홉 날 한뎃잠을 청하던 아벨을 보았느냐?

이제 침묵은 용서받지 못한다
돌들이 일어나 꽃씨를 뿌리고 바람들이 달려와 성벽을 허물리라
지진이 솟구처 빗장을 뽑으리라
바람부는 이 세상 어디서나
아벨의 울음은 잠들지 못하리

오 불쌍한 아벨
외마디 소리마저 빼앗긴 아벨을 위하여
나는 너희 식탁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아방궁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별장을 엎으리라
나는 너희 교회당과 종탑을 엎으리라
소돔아 너를 엎으리라
고모라야 너를 엎으리라
가버나움아 너를 엎으리라
예루살렘아 너를 엎으리라
천사야 너도 엎으리라
깃발을 분지르고 상복을 입히리라
생나무 마른 나무 함께 불에 던지고
바다더러 산 위로 오르라 하리라
산더러 너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바람부는 이 세상 어디서나
이제 침묵은 용서받지 못한다
울지 않는 종은 입에 칼을 물리고
뛰지 않는 말은 등에 창을 받으리
날지 않는 새는 뒷축에 밟히리
뒷날에 참회는 적당치 못하다
너희가 쫓아 버린 아벨
너희가 쫓아 묻어 버린 아벨
너희가 쫓아 묻고 부인한 아벨
너희는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시치미뗀
아벨의 울음 소릴 들었느냐?
금동이의 술잔에 아벨의 피가 고이고
은소반의 안주에 아벨의 기름 흐르도다
촛노잉 녹아 흐를 때 아벨이 울고
노랫가락 높을 때 아벨이 탄식하도다

오 불쌍한 아벨을 찾을 때까지
나는 이 세상 어디든 달려가
너희 잔치상과 보신탕을 엎으리라
너희 축복과 토룡탕을 엎으리라
너희 개소주와 단잠을 엎으리라
돌들이 일어나 옥답을 일구고
지진이 솟구쳐 평지 풍파 일으키리라
바람더러 주인이라 주인이라 부르리라

너희의 어둠인 아벨
너희의 절망인 아벨
너희의 자유인 아벨
너희의 멍에인 아벨
너희의 표징인 아벨
낙원의 열쇠인 아벨
아벨 아벨 아벨 아벨 아벨……

그때 한 사내가
불 탄 수염을 쥐어뜯으며
대지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ㅡ우리가 눈물 흘리는 동안만이라도
주는 우리를 용서하소서

다음달 신문은
오그덴 10호가
현해탄의 대기권을 완전히 떠나갔다고
보도했습니다.

                                           고정희,「이 시대의 아벨」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 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15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 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 대학에 다니면서 사년 동안을 제철 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 번도 장안 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 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ㅡ제3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 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 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김수영,「거대한 뿌리」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 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째 네번째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의 포로수용소의 제 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비켜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알 수가 없다
내가 자꾸 무덤 곁에 오게 되는 이유
무덤 가까이에 몸을 둬야
겹겹의 모래 구릉 같은 하늘을 이고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이
무덤처럼 형체를 갖는 이유

그러나, 알고 있다, 오늘도 나는
내 봉분 하나 넘어가지 못한다
새들은 곳곳에서 찢긴 하늘처럼 펄럭이고
그들만이 유일한 출구인 듯 눈이 부시다

알 수가 없다
무덤만 있는 이곳에 멈춰 있는 이유
막막함을 구부려 몸 속으로 되밀어넣으며
싱싱했던 것들이 썩는 열기를
느끼고 있는 이유

사람들이 몇 줄 글로 남겨놓은
비문을 찾아 읽거나
몸을 잿더미처럼 뒤지며
한 생명이 곁에 있다

                                            조은,「무덤을 맴도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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