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복지 실현을 위한 한반도 군축 선언


2004년 7월 26일 오전 11시

안국동 느티나무 까페



사회 : 참여연대 평화군축 센터

여는 말씀 : 홍근수(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공동대표)

취지발언 : 정태춘 (가수, 우리땅지키기 문화예술인연대)

한미동맹 현대화에 대한 비판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

선언문 낭독 : 정성훈(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여성 1인

참가단체 발언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유의선 사무국장)

정성훈(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


선언 참가 단체(41개 단체)

반전평화기독연대, 불교인권위원회,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여성단체연합, 전교조, 진보평론, 녹색평론,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전국빈민연합, 문화연대, 군축․평화를 위한 문예 행동단, 우리땅지키기 문화예술인연대,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주한미군철수국민운동본부, 민족화합운동연합, 사월혁명회, 통일연대, 대항지구화행동, 평화바닥, 평화네트워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택대책위원회, 전쟁없는세상,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초록정치연대, 이라크평화네트워크, 민중의료연합,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 모임,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장애인이동권연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평화와 복지 실현을 위한 한반도 군축 선언

- 정전협정 51주년, 한반도 군축과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한다 -


<전문>


2004년 7월 27일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51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멈춘 상태로 보내왔던 것이다. 우리는 정전체제 하에서 끊임없는 전쟁의 공포를 겪어야 했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쓰여져야 할 소중한 자원을 소모적인 군비경쟁으로 낭비되면서 심각한 인권유린과 생존권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또한 한반도의 정전체제는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부당한 영향력을 가져와 정상적인 주권을 행사하지 못한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이처럼 정전체제는 한반도 주민과 공동체의 삶을 총체적으로 짓눌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를 넘긴 정전체제의 종식은 아직도 기약이 없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도 부족하기만 한 현실이다.


정전협정 체결 51주년을 맞이한 한반도는 희망과 불안,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한의 화해협력을 향한 노력은 꾸준히 진척되고 있다. 비록 실천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상 최초로 남북한 군장성들이 만나 서해상의 무력충돌 방지와 상호간의 선전 활동을 중지하기로 한 것은 희망과 기회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핵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고, 주한미군 재편과 협력적 자주국방을 두 축으로 삼고 있는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새로운 위협을 잉태시켜 가고 있다. 또한 수많은 한반도 주민들이 생존의 벼랑끝에서 허덕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군사비는 여전히 최우선적인 특혜를 받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의 선택이 갖는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첨예한 군비경쟁으로 얼룩진 지난 세기의 과오를 극복하고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를 만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냉전적 세계관과 막강한 군사력이 안보를 지켜준다는 ‘낡은 사고’에 갇혀 또 다시 불안한 21세기를 잉태시켜 나갈 것인가?


우리는 이 중대한 역사의 기로에서, 조속한 평화협정의 체결과 군축을 통해 공고한 평화체제를 실현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점을 호소하고자 한다. 우리는 아울러 이와 같은 중대한 전환기에 한미동맹이 군비증강에 기반을 둔 군사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공고한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 아래와 같이 10대 요구 사항을 발표한다.

< 10대 요구사항>


첫째,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 성실하게 임해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나서야 한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이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성실한 협상을 외면해왔다. 이는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MD 등 파괴적인 무기를 만들고 공격적 군사전략을 채택하며 궁극적으로 강압적인 수단을 통해 북한의 붕괴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다. 미국은 이제부터라도 군사적 일방주의를 버리고 상호주의 정신에 바탕을 둔 협상과 타협에 나서야 할 것이다.


둘째, 미국은 한반도에 첨단무기 배치 계획을 중단하고 대북한 선제공격전략을 공식적으로 철회해야 한다. 미국이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하고 이를 가능케 하는 군사력을 배치하면서 북한의 무장해제를 추진한다는 것은 타당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접근법이다. 미국은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약소국가에 대한 전쟁위협 중단과 군축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용산기지 등 기존의 기지이전 협상을 전면 중단하고 주한미군의 감축에 따라 기지 역시 대폭적으로 축소되어야 한다. 또한 동두천 등 미군 기지가 폐쇄되는 지역 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기지 폐쇄시 오염된 토지를 원상회복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넷째, 주한미군의 동북아 기동군화를 비롯한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 계획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대한민국의 헌법을 위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특히 우리는 미국이 한국을 MD의 전초기지화로 삼고자 하는 의도를 경계하며, 이러한 계획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다섯째, 협력적 자주국방을 조기에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국군의 대대적인 국방비 증액과 전력증강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정부는 막대한 예산 낭비와 남북관계의 불안을 가져오는 군비증강 계획 대신에, ‘군사 주권’의 핵심 요소인 작전지휘권의 완전한 환수부터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방비의 규모 역시 세계평균인 GDP 대비 2.5% 수준 이하로 축소해나가야 할 것이다.


여섯째, 군 문민화․투명화․비리근절 등 전면적 군 개혁에 나서야 한다. 군 개혁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지역에서 남북 군간의 교신내용을 군의 최고통수권자이자,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에게까지 왜곡해서 보고했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성역화되어 있는 군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간인 국방장관 기용을 포함한 군의 문민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현재 광범위하고 자의적으로 지정되고 있는 군사기밀규정을 대폭 완화하고 자의적 적용을 막을 국가기밀기본법을 제정하여 군운영을 투명화해야 한다. 아울러 국방비 증액에 앞서 군 조달 시스템, 비효율적 군수산업 구조, 육군병력 위주의 비효율적 병력구조 등에 대한 총체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일곱째, 남-북-미 3자는 즉각 군축 협상에 나서야 한다. 이미 인류 역사상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무기와 병력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배치된 상황에서 더 많은 무기와 병력은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자원의 낭비와 자기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뿐이다. 따라서 남-북-미 3자는 주한미군을 포함하여 한반도에 배치되어 있는 병력과 무기를 대폭 감축하는 협상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여덟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권리를 인정하고 병역거부자들이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제를 즉각 도입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인권의 보편성에 어긋나는 처사이다. 특히 대체복무제의 도입은 추가적인 예산 부담 없이도 사회복지를 획기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고, 사병 복지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아홉째, 남북관계를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분단에서 통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북대결형 법적, 제도적 장치의 정비가 시급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의 폐지, 국방백서의 주적 표현 삭제, 헌법의 영토 조항 개헌, 남북교류협력법제의 개정 등이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끝으로, 기존의 남북, 북미 평화협정이라는 경직된 틀에서 벗어나 실현가능하고 공고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평화협정 체결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반세기가 넘도록 지속되어온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킨다는 의미와 함께,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적인 과제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요구 사항을 바탕으로, 무모한 군비경쟁을 중단시켜 군축을 실현시키고 조속히 평화협정이 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2004년을 반세기를 넘긴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삼아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동아시아의 공동안보 실현을 위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


2004년 7월 26일

<첨부> 한미동맹 현대화에 대한 비판


우리는 먼저 냉전과 정전체제의 유산인 한미동맹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은 정전체제와 함께 한국전쟁이 낳은 역사적 쌍생아이다. 그리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것은 우리의 양보할 수 없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 정부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서 한미동맹의 강화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특히 우선 부시 행정부의 주한미군 재편과 노무현 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한미동맹의 현대화’라는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2003년 5월 14일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명시된 것으로써,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기술력을 활용하여 양국 군을 변혁시키고 새로이 대두하고 있는 위협에 대한 대처 능력을 제고함으로써 한미동맹을 현대화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러한 총론 수준의 합의를 바탕으로 미국은 주한미군의 재편을 추진하고 한국은 연합방위체제에서 한국군의 역할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반세기를 넘긴 한미동맹이 기존의 불합리한 요소들을 바꾸고 건전한 관계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과거의 낡은 관성은 거의 고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새로운 위험을 내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 큰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현대화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과 군축 실현, 그리고 동북아의 공동안보에 기여하는 방향이 아니라, 대규모의 군비증강에 기반을 둔 군사주의적 접근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한미동맹의 현대화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강경책과 비타협주의, 그리고 북한 핵문제로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한반도 군사력의 급격한 변화는 더욱 심각한 불확실성을 잉태시킬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이 선제공격 전략을 철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을 유리하게 하는 방향으로 군사력을 재편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군사적 긴장과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주한미군 재편 계획에 따라 병력수를 줄여나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이 약 110억달러를 투입해 주한미군의 전력을 증강시키고, 한반도 인근에서 대규모의 군사력 증강을 추진하는 것은 단호히 반대한다. 특히 미국이 수원, 오산․평택, 군산, 광주 등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들여놓고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춘 이지스함을 동해에 배치하는 것은 한반도를 미국의 MD 전략의 전초기지로 삼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스텔기 전폭기와 북한의 지하시설을 겨냥한 신형 미사일의 배치는 미국의 선제공격 전략을 더욱 의심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아울러 보수 언론과 야당에서 주한미군의 병력 감축을 ‘안보공백’과 동일시하면서 이를 정치 쟁점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주한미군을 비롯한 미국의 군사력이 크게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안보공백’을 운운하는 것은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미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향후 한미동맹이 "지역동맹"이라는 이름 하에 타지역에서의 미국의 부분별한 무력 사용이나 대중국 봉쇄 및 포위에 활용될 가능성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한국이 타지역에 대한 미국의 무력 개입의 중간기지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한국이 불필요한 외부의 무력 분쟁이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걸친 이라크 파병 결정은 이와 같은 우려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넷째, 용산기지와 2사단을 비롯한 미군 기지 이전이 미국의 세계전략 하에서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특히 우리는 용산기지는 물론이고 2사단의 이전 비용까지 한국이 부담할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용산기지는 한국이 요청했기 때문에 한국이 부담하고, 2사단 이전은 미국이 요청했기 때문에 미국이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반환되는 용산기지는 약 80만평인 반면에 평택에 새롭게 건설할 예정인 기지 부지는 이에 4배인 약 320만평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이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시킨 다음에 2사단을 합류시키려는 계획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용산기지는 2007년까지, 2사단은 1년 뒤인 2008년까지 '같은' 평택 기지로 이전시킬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한국은 용산기지보다 4배가 큰 기지를 건설해줘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 부담이 불가피해지고, 미국은 확장된 평택 기지에 용산기지와 2사단을 통폐합시킴으로써 실질적인 비용 부담은 거의 없게 될 공산이 크다.

다섯째, 우리는 미군 기지 이전이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사와 생존권을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 양국 정부가 동두천 등 미군을 상대로 해 생계를 유지해온 주민들의 생계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이나, 평택지역으로 남한 미군기지의 통폐합을 추진함으로써 해당지역 주민들의 생존권과 평화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끝으로 우리는 한미동맹의 현대화라는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표현과는 달리 협력적 자주국방은 군비증강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의 속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의 군사적 종속을 고착화시키고 국민 복지에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며 한반도 군축과 평화체제 구축에도 역행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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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25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벌써 왔다가셨네 ...
 
 전출처 : 바람구두 > 책과 알라딘 서재에 대한 25문 25답

01. 당신은 책을 좋아합니까? (좋든 싫든) 그럼 그 이유는 뭐죠?

- 예, 책을 좋아합니다. 나는 지난 20여년간 책을 읽었고,  책 사기를 즐겼지요. 그것 때문에 더 잘 살게 되었냐고 한다면? 천만에요. 전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었기 때문에 인생이 특별히 더 지루해지지는 않았어요. 책 읽기로 인해 사는데 혜택을 보았거나 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받은 적은 없지만, 그저 내 인생의 살아가는데 보다 많은 자극들 - 즐거움, 고통과 슬픔, 즐거움 - 을 선사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큼 명확한 것은 없지요. 가령, 내 인생에 보다 많은 자극적인 요소들을 그것들이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02. 한 달에 책을 몇 권 정도 읽나요?

- 경우에  따라 다르고, 책에 따라 다르고,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도 포함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요. 경우에 따라 한 달에 30여 권을 읽을 때도 있고, 정독을 해야 하는 경우나 진도가 더딘 책들에 도전한 경우엔 10여 권 정도를 읽을 때도 있습니다. 만약 읽은 책을 다시 읽고 또 다시 읽고 하는 것들을 포함한다면, 특히나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들을 읽을 때 다른 책의 데이타와 비교하면서 읽어야 하는 경우(그 책들을 포함해서 말한다고 해도) 대략 한 달 평균 10여 권 이상은 읽는 것 같습니다.

03. 특별한 독서 취향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어요?

- 특별하다고 하면 특별한 거겠지요. 잡독에 난독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어느날은 서양마법에 대한 책을 읽다가 다음날엔 칼 맑스.엥겔스를 읽는 스타일이니까요. 만화책부터 고전에 이르기 까지 읽는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 증세가 있습니다. 

04.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뭐죠?

-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어제 선물 받은 책인데,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였습니다. 사찰장식, 즉 불교미술에 대한 하나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네요. 죽여주던군요. 덕분에 상식이 많이 늘겠더군요.

05.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어떤 거죠?

- 원칙적으로는 책이 날 배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문제는 소화력일 텐데요. 공자 가라사대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안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한 것처럼... 좋은 책과 나쁜 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읽은 책과 그렇지 못한 책이 있을 뿐이지요. 흠, 이건 지나치게 잘난 척하면 읊조린 멘트같고, 실제로 책을 고르는 기준은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 작가는 믿을 만한가(번역작가도 포함해서), 출판사는 등등을 고려해서 고르게 됩니다.
 
06. 책은 사는 편인가요, 아니면 빌리는 편인가요? 빌린다면 어디에서 빌리죠?
 
- 책은 대개 사 봅니다. 빌린 경우(절판도서)도 있는데, 빌리면 원칙적으로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제 원칙이거든요. 흐흐. 만화책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도서대여점을 이용하는 편입니다만 구입하는 만화들도 제법 있습니다.

07. 특히 좋아하는 작가와 싫어하는 작가는 누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뭐고요? (장르 불문하고)
 
- 이건 질문으로 뽑으면서도 하기 싫은 거였는데, 왜냐하면 구체적으로 말하는 거(어쩐지 기밀노출하는 것 같아서) 저는 절 감동시켜주고, 압도해주는 작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작가는 속내가 빤히 보이는 작가들을 싫어합니다.

08. 특히 좋아하는 장르와 싫어하는 장르가 있다면 어떤 거죠? 그 이유는 뭐고요?
 
-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별도로 없고, 특히 싫어하는 장르가 있다면 "이렇게 하면 10억 번다"는 류의 책들을 싫어합니다. 뭐, 인간경영학 같은 류의 책들이나 어줍잖은 명상도서류들도 싫어해요. 이유? 이유?

첫 번째 부류의 책들은 제가 돈 벌기 싫어서 그렇구요. 인간경영학 류는 읽고 나서 실천해보려고 하면 이미 까먹고 만데다가 그렇게 실천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경영하고 싶지 않고, 세 번째 부류의 책은 그런 거 읽고 명상할 시간에 제가 기르는 화초들 들여다보는 편(현재는 신고니아와 아카시아 묘목을 기르는 중임)이 명상에는 훨씬 도움이 된다는 차원에서... 흐흐

09. 소설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과 싫어하는 인물은 누구죠?
 
- 글쎄, 소설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을 고르라면 아무래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흐흐. "삼포 가는 길"의 "백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절 떠올리게 해서 좋고, 백화의 경우엔 그녀가 정말 행복했으면 싶어서요. 싫어하는 인물은 별로 없는데....

10. 일반적인 책말고 만화책도 좋아하시나요?

- 예, 그럼요. 물론이죠. 답하면서 보니 도대체 이건 왜 물어본 거지요. 어차피 싫어하던 말던 다음 질문이 계속 만화책 얘기인데도... 흐흐

11. 만화책 중에서 인상깊었던 작품이나 작가를 꼽아본다면요?

- 당연히 여러 편인데요. 폼 잡으면서 말하자면 남들도 다 좋아하는 레이몬드 브릭스의 것들부터 시적해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것들, 그외에도 꽤 많아요.
 
12. 만화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과 싫어하는 인물은 누구죠?

- 나오키의 몬스터에 나오는 "요한"을 좋아해요. 싫어하는 인물은 글쎄... 없는 듯....
 

13. 기억에 남는 대사나 문구가 있다면 말씀해보시겠어요? (만화든 소설이든 그 외 어떤 장르든 - 책)

- 도와줘! 내 안의 몬스터가 파열할 것 같아.(몬스터 중에서) 흐흐...


14. 특별히 게임, 영화 등 다른 매체로 제작됐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거죠?

- 역시 몬스터...


15. 다른 매체로 제작된 것 중, 좋았던 작품과 나빴던 작품을 꼽으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역시 어떤 장르든)

- 반지의 제왕이지... 흐흐. 글쎄 나빴던 걸 기억할리 없잖아.


16. 번역도서를 읽을 때, 특별히 선호하는 번역(자)작가가 있나요? 있다면 누구의 어떤 작품?

- 몇몇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도 앞서 좋아하는 작가와 싫어하는 작가처럼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싫음(역시 기밀누설 -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몇몇 분들에게 누가 됨). 하여간에 있다는 걸 말해두고 싶고, 개인적으로 그분에게 무척이나 감사를 드린다는 사실만큼은 꼭 밝히고 싶다. 번역작가가 없다면 내가 읽고 싶었으나 읽지 못할 책이 엄청 많았을 거라는 점.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 최소한 내게는 우리 말로 번역된 책이 아니라면 세상에 없는 책이나 마찬가지니까.

17. 그 번역작가의 어떤 면 때문에 그를 선호하게 되었나요?

- 앞서 좋아하는 작가의 경우 날 감동시키거나 압도하는 경우에 좋아한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는데, 우선 좋은 작품을 먼저 읽고 감동했기에(물론 여러가지 고려가 따랐을 테지만) 번역해준 것에 감사하는 측면이 있고, 대개 번역작가에게 감동할 때는 그런 안목과 식견이다. 그리고 성실한 번역을 사랑한다. 영문 제라늄을, 한글 제라늄으로 옮길 때 성실한 번역가는 실제 제라늄을 한 번쯤 실물로 보거나 하다못해 사진으로라도 찾아봐준다.  그게 번역과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 차이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번역과 편집의 공통점 - 모르면 모르는 거다. 모르면 자기가 뭘 잘못하는지도 모르고 틀려버린다. 그래서 번역작가의 가장 으뜸 덕목은 안목과 식견과 더불어 성실함으로 무장한 치밀함일지도... 그런 번역작가를 좋아한다.
 
18. 번역된 작품과 국내 작가의 작품 중에서 우선 순위를 두어 읽게 되는 도서는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원칙적으로 국내 작가 우선이다. 그 이유는 먹고 살게 해줘야 하니까.  지금 우리가 많이 안 읽어주면 앞으로 여러 방면의 연구가들이 좋은 책을 내주길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물론 고르게 발전해가야겠지만....
 
 
19. 요 근래 읽어본 것 중 가장 최악이었던 책은 어떤 것이죠?

- 최악인 책은 기억하지 않는다.


20. 요즘의 도서 시장에 대해 어찌 생각하세요?(가령, 특정 장르의 문제나 인터넷 서점의 미래 등에 대하여)

- 아직도 복마전이다. 유통망 좀 제발 개선해다오. 영화판처럼 어떤 의미에서 거대 자본의 투자가 필요한 건 아닌지...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이라도...

21. 최근 읽은 작품 중 괜찮다 싶은 책 세 권을 꼽아보시겠어요? 왜 그 책들을 골랐나요?

- 페로티시즘 : 야한 그림이 많다. 흐흐. 농담이고, 에로티시즘과 페미니즘의 결합이란 재미에서....
- 바람이 불 때에 : 레이몬드 브릭스의 책이다, 조만간 서평 써야지... 룰루랄라.
- 또 뭘 봤더라... 기억이 가물가물...
 

22. 앞으로 책의 미래는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 계속 잘 될 거다. 그래야 하고.... 왜냐하면 아무 때나 펼쳐들고, 메모하고, 다시 기억하고... 그러기엔 아직도 책만한 매체가 없으니까.
 

23. 앞으로 책을 쓰게 된다면 어떤 책을 쓰고 싶고, 쓰게 될 것 같나요?

-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싶고, 쓰게 될 거다. 흐흐.


24. 제게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책 한 권이 있다면 무엇을 권하고 싶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 아무 거나 옆에 있는 책들부터 빨랑 해치워라. 선물해준 이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흑흑.
 

25. 알라딘 서재 중 즐겨찾는 곳이 있다면 대략 몇 군데이고, 그곳을 즐겨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어, 그러니까. 난 남들 서재에 가서 잘 못 논다. 잘 놀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략 50여 곳 정도가 되니 와, 많구나. 주로 스텔라, 비발, 마태우스, 마냐, 조선인, 갈대, 메시지, 가을산, 물만두, 책울타리 님 등의 서재(아, 기억력의 한계니까 여기서 언급안되었다고 삐지기 없기다)에 가서 읽는다. 왜? 재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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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24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시간나면 한번 해봐야겠군.

조선인 2004-07-24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랑 하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가을산 2004-07-2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저는 발마스님 건줄 알았잖아요.
 
 전출처 : 릴케 현상 > 조선일보가 쳐들어온다고?

[고종석] 조선일보가 쳐들어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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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쳐들어온다고?


19세기 초 영국의 젊은 엄마들은 아이가 칭얼거리면 ‘나폴레옹 온다!’는 말로 울음을 그치게 했다고 한다. 대륙을 제패한 프랑스 황제가 그 시대 영국인들에게는 공포의 상징이었던 모양이다.

한국인들에게도 어린 시절의 ‘망태할아버지’나 ‘에비’의 기억이 있지만, ‘나폴레옹’은 그 실체가 또렷한 데다가 당대 ‘선량한 영국인 공동체’ 전체의 적이었다는 점에서 한국 아이들의 공포 대상과는 성격이 좀 달랐다. 나폴레옹이 도버해협을 건너온다는 데야, ‘선량한 영국인’이라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일치단결해야 하는 것이다.


근자에 노무현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나 노 정권의 강고한 지지자들 사이에서 옛 영국인들의 ‘나폴레옹’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조선일보다.

이들은 주변에서 무슨 추문이 터지기만 하면 우선 “조선일보가 온다!”고 외치고 본다. ‘포로코’라는 필명의 네티즌이 한 웹사이트에서 지적했듯, 옛 군사정권이나 조선일보가 일이 잘 안 풀린다 싶으면 “북한이 쳐들어온다!”며 불안을 조장했던 식이다. 호시탐탐 개혁세력을 해코지할 기회만 엿보고 있는 조선일보의 말을 왜 믿느냐고 질책하기까지 한다.

이 글에 대한 뒤틀린 비방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얼마간 눅이기 위해, 구차한 신원 진술을 하자. 나는 세칭 안티조선운동의 활동가까지는 못되지만 꽤 어기찬 지지자다. 지난 7년간 나는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술집이나 식당에서든, 종이신문으로든 인터넷으로든, 조선일보를 보지 않았다.

몇몇 신문의 미디어 난에서 비판을 위해 인용된 조선일보 기사를 스쳐 지나가듯 본 것을 제외하면, 그 기간 동안 내 경험세계에서 조선일보는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 신문에 대해 내가 느끼는 거리감은 직업적 안티조선 운동가들이나 노 정권 주변 사람들 못지않다는 것을 믿어줘도 좋다는 뜻이다.

다시 돌아가자. 조선일보는 악인가? 7년 전까지의 독자로서, 그리고 그 이후의 간접적 수용자로서 판단하건대, 그렇다. 나는 이 신문의 상업주의적 반공놀음과 종파주의적 선정성이 다원적 민주주의와 열린 사회의 장애물이라고 판단한다. 또 나는 조선일보가 글쓰기의 권력화를 가장 추악하게 실천하고 있는 비윤리적 신문이라고 판단한다.

다음, 정권 주변 사람들이 최근 부쩍 더 암시하고 싶어하듯 이 신문은 만악의 근원인가? 이 신문은 늘 사실을 왜곡하는가? 코웃음 칠 얘기다. 일반적으로 고부 갈등이나 비련애사가 조선일보 탓이 아니듯, 일반적으로 정권 주변의 크고 작은 추문을 조선일보가 조작해내지는 않는다.

물론 일단 터진 추문을 이 신문이 악의적으로 부풀려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는 있고, 조선일보는 그 분야의 전과가 화려하다. 그러나 정권 주변의 최근 추문과 관련해서 당사자들이 보이는 태도는 조선일보만 아니었으면 추문이 아예 없었을 것이라는 식이다. 그것은 논리의 앞뒤를 바꾸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개혁세력’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몸가짐과도 거리가 있다.

그 다음, 악한 집단의 적대자는 저절로 선한가? 그렇지 않다. ‘식인귀’ 부시와 적대자였다는 사실이 사담 후세인의 ‘식인귀 아님’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조선일보에 대한 사나운 비판이 그 비판자가 조선일보와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사소한’ 추문들의 책임소재를 놓고 최근 조선일보를 격렬히 비판하며 “조선일보가 온다!”고 외친 정파는 정작 그 추문들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닌 이라크 파병이나 송두율씨 인권을 두고는 조선일보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 정권의 핵심과 그 지지자들이 조선일보와는 비길 수 없을 만큼 자유민주주의에 친화적이라는 것은 안전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집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고서는 제 정당성을 주장하지 못하는 ‘개혁세력’을 보는 일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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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07-24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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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요즘 우리 소설 읽기의 괴로움

요즘 우리 소설 읽기의 괴로움

김명인(문학평론가)

요즘 이례적으로 소설을 많이 읽습니다. 이번 학기 강의를 세 군데서 하는데 그 세 군데가 모두 소설을 읽지요. 월요일에 하는 [오늘의 한국문학], 시 소설을 나누어 읽지만 주로 90년대 단편들을 읽습니다. 수요일에 하는 [비평연습], 이번 학기는 소설비평 실습을 하니까 역시 당대 소설들을 읽지요. 목요일에 하는 [북한문학의 이해] 역시 주로 소설을 읽습니다. 지난 주엔 [피바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 [꽃파는 소녀] 등 대작들을 읽었고 이번 주에는 [청춘송가], [벗] 등 조금 나긋나긋한 것들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격주로 하는 세미나가 둘인데, 하나는 [1920년대 소설읽기], 지금 몇 달째 현진건, 나도향, 최서해, 조명희를 겯들여 주로 염상섭이라는 인간과 대결하고 있습니다. 장편만으로도 [만세전], [해바라기], [너희는 무엇을 어덧느냐]를 읽고 이제 다음 주엔 [사랑과 죄]와 [이심]에 도전합니다. 또 하나는 [당대소설비평], 여기서는 막 나오는 계간지들에 실린 소설들을 '남독'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 [오늘의 한국문학]은 김용택, 도종환, 안도현 등 시인을 다루었고 수요일의 [비평연습]은 정도상의 [개잡는 여자]와 김원일의 [너는 누구냐]였습니다. 그리고 목요일엔 아까 말한 대로 80년대 북한장편들을 읽었지요. 오늘은 [당대소설비평] 세미나가 있는 날, 어제 하루종일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소설 각 5편씩 물경 10편을 읽어제꼈습니다.

그나마 강의 때 읽는 소설들은 일정한 검증을 거친 작품들이라 그리 손해본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 주에 읽은  [청춘송가]와 [벗] 등 북한소설들은 오랜만에 사람과 세계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주는 명작(銘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읽는 최근 남한땅에서 만들어진 소설들은 참 고통스러운 독서를 강요하더군요.
창비와 문학동네면 사실상 현재 한국문단의 쌍끌이 잡지들이고, 거기 동원된 작가들도 [창비]에는 박완서, 서정인, 김인숙, 공선옥, 하성란, [문동]에는 김승희, 김훈, 이승우, 이응준, 윤성희 등으로 이름난 작가들이지요. 그런데도 별 한 개를 주기가 아까운 작품이 수두룩했습니다. 박완서와 서정인 두 노년작가들의 두서없는 요설, 한 문체 한다는  김승희, 김훈의, 문체를 무색하게 하는 어긋난 욕망의 표백, 이승우의 고질적인 싸구려 알레고리, 이응준의 지리멸렬, 윤성희의 대책없고 긴장없는 온정주의, 글쎄 김인숙에게서 보이는  소설가적 자의식의 편린과 하성란의 우연성 탐구 정도가 조금 와 닿고, 그저 요즘 내겐 보증수표처럼 보이는 공선옥만이 약간의 감상주의가 걸리긴 하지만 기대에 답하는 작품을 내놓았더군요.

하루종일 소설읽기. 그것도 좋을지 어떨지 모르면서도 한 손엔 연필을 놓지 않고 읽어내려야 하는 일의 지겨움을 아는지요. 게다가 어제는 끼니마다 소식(少食)으로 일관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하루종일 뱃속이 거북해서 책상 앞에 정좌하기가 힘겨워 거실 바닥에 뒹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TV시청용 안즘방이 의자에 깊이 등을 기대고 앉거나 하면서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오직 공선옥의 소설을 읽을 때만 책상머리에 고쳐 앉았지요.

지성과 윤리, 보다 정확히 말하면 윤리적 지성 혹은 지성적 윤리가 부족한 것이 우리 소설입니다. 물론 그것은 논리화되고 도그마화된 어떤 것이 아니라, 몸과 가슴으로 먼저 느껴지는 생짜의 어떤 감각 같은 것이겠지요. 요즘 우리 작가들에게는 그게 없습니다. 그저 나태한 아노미의 충만인 셈이지요. 나는 요즘 우리 소설의 지리멸렬은 여기서 온다고 봅니다. 소설이 무엇보다 공동의 운명에 관한 서사라는 사실을 이 작가들은 의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자신이의 그 공동의 운명의 서사적 대리자라는 그 끔찍한 사실을, 일종의 무당이어서 그 운명에의 예감 때문에 먼저 병들고, 먼저 미치는 존재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의식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껏 게을러진 이 비평가의 몸을 벌떡 일으켜 잠시 읽던 페이지를 접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그리하여 책상 앞에 정좌하지 않으면 죄스러울 것 같은 그런 소설 쓰는 작가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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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통해 나를 찾아가는 여행”
[인터뷰] 한국일보 연재 ‘호두나무왼쪽길로’ 출간한 만화가 박흥용씨

 

안경숙 기자 ksan@mediatoday.co.kr

 

   
▲ 이창길 기자 photoeye@
“바람이 불면 나는 날개를 편다. 깃털 핥는 바람 소리. 날아봐. 날아봐…”

아이는 마을 어귀에 있는 커다란 호두나무 아래서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돈을 벌러 서울로 떠났다. 호두나무 위에서는 영동역을 지나가는 경부선 기차소리가 들린다. 기차를 타면 엄마가 있는 서울에 갈 수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한번도 호두나무 바깥세상을 겪어보지 못한 아이는 그렇게 기차소리를 따라 엄마를 찾아나서곤 했다.

열아홉이 돼서야 엄마가 재가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는 늘 엄마를 기다리던 호두나무를 불태운 뒤 무작정 오토바이를 끌고 호두나무를 벗어난다. 아이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만화를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만화가 박흥용씨. 지난해 3월부터 1년동안 한국일보에 연재한 <호두나무 왼쪽길로>가 올해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코믹 어워드 부문에서 작품상 부문의 장편/연재만화상과 함께 만화스토리상을 받았다. 올해로 8회를 맞는 SICAF는 국내 최대의 만화·애니메이션 전시 행사로 8월4일부터 10일까지 일주일 동안 서울 삼성동 코엑스와 서울시청 앞 잔디공원 등에서 열린다.

  호두나무 바깥세상 연결고리는 ‘오토바이’

<호두나무 왼쪽길로>는 여행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여행 만화이자 성장 만화다. 주인공 박상복의 고향인 충북 영동에서 출발해 김천, 함양, 남원, 목포, 부산, 밀양, 문경을 지난다. 영동을 중심으로 ‘8자형’으로 돌아다닌다.  여행 도중에 역사적인 사건을 만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의 얘기도 나온다.

   
▲ ⓒ 이창길기자
박흥용씨는 “연재가 되던 지난 1년 동안 독자들의 반응이 어떤지 잘 알 수 없었는데, 좋은 작품으로 평가해 줘서 고맙다”면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도 결국은 여행인데, 만화를 통해 짧게라도 자신을 찾는 전국 여행을 했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힌다.

그러면서 큰 주제를 가진 만화를 신문에 매일 연재한다는 게 얼마나 고단한 작업이었는지 털어놓았다.

“일주일 단위로 원고를 끊어서 마감했어요. 20대 때 여기저기 쏘다녔던 경험대로만 쓰기에는 세월이 너무 많이 변해 얼마나 변했는지 알아보려고 만화에 나오는 장소를 일일이 다녔죠. 그러다 보니 지방 취재에 2~3일, 만화 작업에 2~3일이 걸려 쉴틈없이 일주일을 보냈어요. 독자들에게 좀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뛰어나니며 취재했고, 돌아오면 다시 그걸 조립했죠. 기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 역시 ‘초읽기 마감’에 시달리다 보니 많이 지쳤던 것 같아요.”

   “컴퓨터로는 펜화의 묘미 살릴 수 없어”

아이가 호두나무 바깥세상과 만나는 수단은 ‘오토바이’다. 이는 박씨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아이는 한때 자전거로 엄마를 찾아 떠나려고 하는데, 몇 시간 못 가 엉덩이가 너무 아프다는 걸 깨닫고는 오토바이로 바꾼다.

상복은 뚜렷한 목적 없이 일단 호두나무를 벗어나지만, 첫사랑이었던 경희 누나로부터 ‘딸기’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딸기의 등장과 함께 상복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목도하게 되는데, 박씨는 광주의 상처를 피하지 않고 재조명했다.

“처음에 광주 여행을 했을 때가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2~3년 전이었죠.거기에 중국인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의 화교 학교를 우연히 들렀더니 학교를 관리하는 사람이 ‘누구냐. 나가달라’면서 경계하더라구요. 왜 그런 경계심을 갖는지 의아했고, 그러다가 이런 사람들이 객관적인, 비교적 다른 시각으로 광주를 봤다면, 한발 거리를 둔 상태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접했을 때는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 ⓒ 이창길기자
<호두나무 왼쪽길로>에는 광주뿐만 아니라 현대를 사는 여러 사람이 나온다. 신혼여행 온 고아 부부, 자살을 시도하는 명예퇴직자, ‘이태백’ 청년 실업자, 치매에 걸린 노인…. 상복은 이들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성장한다.

긴 여행을 마친 상복은 다시 고향 영동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태워버려 밑둥이 잘린 호두나무는 ‘애타는 기다림이 없어지니까 마음 속 가득했던 기대의 신비가 다 사라져 버린’ 현실이다. 여행의 목적인 ‘딸기’는 찾지 못했지만, 그것은 결국 돌아가신 아버지였음을 암시하면서.

인터넷 때문에 출판만화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박흥용씨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출판만화는 인터넷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맛이 있다고 강조한다.

“독자들이 인터넷으로 보고 싶은 만화를 골라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컴퓨터 화면은 펜으로 그린 가는 선을 다 날려 버리기 때문에 펜화의 묘미를 살릴 수 없습니다. 펜화에서 얻어지는 감동들은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죠. 긴 이야기를 읽을 때도 출판 만화가 좋습니다. 아무리 편해도 컴퓨터 앞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겠어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탱화(불교의 신앙을 그린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자랐고, 형은 유화를 그렸지만, 동네에 살던 만화가와 ‘접선’하면서 오랫동안 만화와 함께 해 온 박흥용씨.

<내 파란 세이버>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 등으로 ‘작가주의 만화가’로 평가받는 박씨는 그 형용어구에 맞게 나이가 들수록 고향,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본능을 다룬 만화에세이를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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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2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힛, 이 양반도 양반되기는 어려울 듯.
여름아이, 아니 자명한 산책님이 좋아할 만한 인터뷰군.
새 책이 나왔다구? 그럼 또(-_-;;;) 주문해야지 ...

로드무비 2004-07-22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두나무 왼쪽 길로> 기대됩니다.
늘 좋은 기사 퍼다주셔서 감사합니다.^^

balmas 2004-07-2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말씀을 ...
좋은 기사 같이 읽으면 더 좋은 거죠, 뭐.^^

2004-07-23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4-07-23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자명한 산책님, [문익환 평전을 만화로 낸다면 이희재님과 박흥용님 중에 누가 더 어울릴까요?]가 뭐 그렇게 큰일날 말이라고 "서재주인에게만 보이기"로 질문하셨어요? (ㅋㅋㅋ 너무 했나?)
제 생각에는 두 분이 동시에 그린 다음에 평가를 하면 좋을 듯한데요. 그렇게 되면 독자들에게는 행복한 일일 텐데 ...^^

릴케 현상 2004-07-24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사실은... 두분 다 할 생각이 없을까 봐... 걱정이어서

로드무비 2004-07-25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희재님을 좋아하지만 막연하게 문흥용님이 더 어울릴 듯.

balmas 2004-07-25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박흥용(엥, 문흥용?????) 한 표요~~~
이희재 추천 없습니까?
알라딘에서 투표를 해서, 집단 건의를 한번 해볼까요? ㅋㅋ

로드무비 2004-07-26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담도...^^

릴케 현상 2004-07-28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흥용 한 표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