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韓派외국인들, "한국인들,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知韓사이트 '반크'에 김선일씨 관련 항의 메일 잇따라

 

  “TV에서 (김선일씨 관련 소식)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오늘 한국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을 보고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당신들은 (어떻게) 다른 한국 사람에게 그렇게 잔인하고 이기적일 수 있는가.”
  
  “사람 생명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김선일씨는 살해됐다. 한국은 살해를 도운 것이고 그것을 지켜봤다. 한국이 김선일씨를 죽인 것이다.”
  
  김선일씨 피랍과 살해 과정을 지켜본 외국인들이 강한 ‘반한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특히 그동안 한국에 호의적인 감정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어서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고 김선일씨 관련 정부 대응 실패, ‘지한파’ 외국인들 강한 반감 
  

  한국을 홍보하며 사이버 외교사절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반크(www.prkorea.com)'측은 25일 현재 “고 김선일씨 사건 이후 강한 반한 감정을 드러내는 e-메일 등이 접수되고 있다”며 “김선일씨 사건을 계기로 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급속도로 나빠지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반크는 외국 교과서의 한국 관련 오류 시정을 비롯한 '일본 교과서 왜곡 바로알리기 운동' 등을 펼쳐왔으며 특히 동해 표기와 관련해 한국측 입장에 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현재 한국에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외국인 회원만 3천여명에 달하는 반크에서는 한국과 관련한 사안이 있으면 회원들이 활발한 의견 개진을 해왔다.
  
  반크에 접수되고 있는 항의 메일 가운데 벨기에의 페트릭은 “TV에서 (김선일씨 관련 소식) 보고 정말로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 한국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을 보고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며 “당신들은 (어떻게) 다른 한국 사람들에게 그렇게 잔인하고 이기적일 수 있는가”라며 김씨가 피랍된 상황에서 정부가 즉각 파병방침을 재천명한 데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지한파 외국인들의 편지
ⓒprkorea.com

  “노 대통령 연설에 충격, 잔인하고 이기적”-“생명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살해돼”
  
  유럽 지역의 미첼도 메일을 통해 “어떻게 김선일씨 사망을 앉아서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김씨 생명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그는 죽었다”며 말했다.
  
  그는 “한국은 이라크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고 추가 파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항상 한국이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한국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너무 상처를 받았다. 한국에 대한 사랑하는 감정이 사라졌다”고 강한 실망감을 표출했다.
  
  그는 또 “인간 생명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김선일씨는 죽었다. 그것은 너무 잔인하다. 한국은 살해를 도운 것이고 그것을 지켜보았다”며 “한국은 김씨를 죽인 것이고 한국이 살인자”라며 극도의 반감을 표출했다.
  
  그는 이어 “3년동안 한국어를 배워왔고 15년간이나 한국에 호감을 가져왔다”며 “그러나 내일부터 더 이상 한국어를 배우지 않을 것이며 한국을 증오할 것”이라고 강한 톤으로 밝혔다.
  
  젠이라는 이름의 체코인도 “체코 사람들은 당신 한국인들에게 정말 분노했다”며 “할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해서 우리 가족은 한국의 팬이었고 언제나 지지했었지만 지금은 한국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젠은 “자국민이 이라크에서 죽고 있는데 앉아서 보고만 있는 나라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며 “한국은 인류애를 저버렸다”고 비난했다.
  
  반크 관계자, “6년이래 항의메일 받기는 처음”
  
  반크 관계자는 이와 관련, 25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반크가 생긴 지 6년 이래 한국에 대한 실망과 항의 메일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현재 한국인과 한국정부에 대한 극심한 반감을 드러내는 각 나라 외국인들의 e-메일이 접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등 한국을 적극적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며 “사랑할수록 미움의 강도도 강한 법인데 이번 사건에 대한 실망이 크게 다가오고 있는 듯 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은 이해하지만 한국인에 대한 비판은 이해할 수 없다”며 “외국 언론사들이 한국인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얼마나 가슴아파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반크에서는 외국회원들 및 반크와 자매결연을 맺은 각 나라 학교, 학급 학생들에게 한국인들이 노력했던 과정과 슬퍼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 등을 알려나가는 활동을 기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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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2004-06-25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는 “그러나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은 이해하지만 한국인에 대한 비판은 이해할 수 없다”며 “외국 언론사들이 한국인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얼마나 가슴아파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고 우려했다.>

-> 파병을 강행 혹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네이버의 라이브 폴에서 60%를 상회했다고 신문에 났더군요. 그게 고인에 대해 '가슴아파하는' 태도인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외국 언론에서 '평범한 한국인들'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면, 아마 저 사람들의 혐오감은 더 커지지 않을까요. 프흡.


balmas 2004-06-25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여론조사라는 게 워낙 조작 가능성이 많으니까, 그대로 신뢰하기는 어려운데 ...
어쨌든 매우 불길한 일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내일 파병철회 집회에 총력을 기울이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모모님도 내일 오실 거죠?^^
 
 전출처 : 수수께끼 > 가짜 고구려 불상...정말인가? 가짜인가? (3)

 앞면은 <금동계미명 삼존불>과 같고 뒷면의 명문은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명문을 그대로 배꼈다는 북한의 불상이 정말 가짜인가? 어떻게 동 시대에 제작된것이 아님에도 명문은 똑 같을까? 배꼈다고 하는 명문의 내용은 무엇인가? 등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아래의 그림 두개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그림은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전면과 광배 뒷면의 사진입니다.



 

 

 

 

 

 

 

 

 

 

 

 

 

이 불상은 1963년도에 경남 의령에서 농부에 의해 발견이 된 불상으로 신라의 영토였던 지역에서 발견이 되어 아직도 논란이 많은 불상인데 뒷면의 명문에 의하여 고구려의 불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불상은 정영호 선생에 의하여 수습되었는데 당시 이 불상이 안치된 장소는 절터나 무덤이 아니라 임시로 무너져 내리지 않을 정도의 돌 함을 쌓고 그 속에 넣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정영호 선생은 이 불상이 북한군의 호지불로 후퇴 당시에 임시로 숨겨 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충식 선생은 이 불상의 크기가 16.2cm에 달하는 것으로 보아 호지불로 소지하고 다니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기에 정영호 선생의 북한군 호지불설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신라 영토에서 발견된 것은 다소 의아하지만 경주의 호우총(壺우塚)에서 광개토대왕의 무덤에 사용되던 청동호우가 발견된 사례도 있어 다른 각도로 생각을 해 볼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이 불상은 발견후 광배 부분에 손상을 입어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같이 동강난 것을 접합을 했습니다.  장충식 선생은 만약 호신불로 소지하고 다녔다면 금을 입힌 불상의 어느 귀퉁이는 마모가 되었을텐데 전혀 그런 흔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이 불상의 제작연대에 대한 논란입니다. 延嘉는 고구려의 연호로 己未年인데 539년부터 60갑자의 차이를 학자마다 보이고 있어 539년, 599년, 479년, 419년으로 보는가 하면 심지어는 시대를 아주 낮춰서 고려 광종시대인 959년으로 편년을 잡는 학자도 있는것 처럼 편년에 대한 정확한 결론도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전반적인 의견은 539년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불상의 세부 표현기법이나 양식을 논하는것은 조금 어렵기에 생략을 하고 바로 명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광배의 뒷면에는 47자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명문은 모두 해독이 가능한데 명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延嘉七年在己未高麗國樂良

東寺主敬第子僧演師徒十十十十人共

造賢劫千佛流布第十十九因現義

比丘法潁所供養

연가 7년 기미년에

고려 낙랑 동사라는 절의 주지이며

부처님을 공경하는 제자 승연을 비롯한

사도 40명이 현겁 천불을 만들어 유포한

 29번째 인현의불을

비구인 법영이 공양한다

 

  이 명문은 국내에서도 단 두글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입장이며 최근에는 불교의 경전인 <현겁경>에 나온 내용을 주장하여 비교적 타당성을 인정하는 추세인데, 문제는 오역한 명문을 북한의 유물에 그대로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컨닝을 하였는데 다시 고친것을 모르고 틀린 답을 그대로 적어낸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그럼...문제가 되는 내용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불상을 발견한 후에 학자들은 명문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위의 파란 밑줄친 내용을 다르게 해석을 하였습니다. 

因現義 이라고 해석된 부분을 回現歲佛로 해석하였던 것인데 이 명문에는 붉은 표시를 한 "歲"와 回現歲佛에서의 "歲"는 비슷하게 새겨져 있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回現歲佛' '回現義佛' 해독하는것이 타당하다 할것입니다.  회현세불이란 의미는 억지로 해석하자면 다시 태어나는 부처라는 의미가 되는데 그런 의미로 사용될 경우의 새로운 세상이란 의미는 '現世'가 맞는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回現義佛이란 한자는 <현겁경(賢劫經)>에서 말하는 因現義는 것을 밝혀내게 된 것입니다.

좌측 사진에 나타난 '回'자는 '因'의 고어로 판단이 되는 것이며 이는 불교의 경전에 나타난 "제29인현의불"과 같은 내용으로 가운데 들어있는 'ㅁ'이 바깥의 'ㅁ'좌측에 붙은 글자라는 것입니다. 고어라는 것도 경전의 내용과 일치하기에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유물인 <연가7년명 금동일광삼존불>에는 모두 46자의 명문을 담고 있는데 47자의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에서 '主'자가 빠졌고 마흔을 뜻하는 "十十十十"대신 "此"로 음각되어 있는 것입니다.

 똑 같은 명문이 서로 다른 불상에 새겨진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특히 잘못 판독되었던 부분을 그대로 배끼는 실수를 북한 유물에 저질렀던 것입니다. 주최측에서도 이 문제에 대하여 북한의 유물에 새겨진 명문은 후대에 새겨진 것이라는데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편이지만 유물 자체는 고구려 유물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 유물이 평양의 고구려 왕궁터에서 발굴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번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좌측의 명문 확대사진에서는 분명히 "回(회)"로 읽어야 될 한자입니다만, 문헌자료에 해당하는 불교의 경전인 <현겁경>이 있었기에 회가 아니라 "因(인)"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미술사학에서는 이렇게 문헌자료와 실물자료의 일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한솔동의보감에서 열렸던 전시회에 출품된 북한의 유물은 어떤 경로로 우리 나라에 들어와 전시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북한에서는 국보급 유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주최측에서 주장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유물 자체는 비교적 나이가 들은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이 유물에 대한 명확한 출처를 밝힐 수 없었기에 똑 같은 명문을 새긴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먼 훗 날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한가지...저도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명문에 대한 구구한 논란이 될 때 "回"로 이해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관련 문헌을 찾아내고 그러므로써 명문에 대한 올바른 판독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정확한 출토 경위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어야 할것이며 중국의 불상의 형태에 대한 연구로 제작년대가 언제인지도 명확하게 밝혀져야 할것입니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로는 539년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비교적 많은데 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바로 불상의 탄생이 언제인가를 알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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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수수께끼 > 가짜 고구려 불상...정말인가? 가짜인가? (2)

  (1)편에 이어 북한의 불상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불상의 형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신문에 난 사진을 옮긴 것인데 좌측이 북한의 문화재라고 주장하는 <연가7년명 금동일광삼존상>이며 <우측이 우리 국보 72호로 지정되어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계미명 금동삼존불상>입니다.

신문사진을 스캐닝해서인지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지만 좌측의 북한 유물은 우측의 유물보다 비교적 정교하게 제작이 되었습니다.

 똑 같아 보이는 두 개의 불상은 인물의 선이나 옷자락, 그리고 광배(인물상 뒤어 있는 배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왼쪽의 것은 인물도 선명하고, 옷 주름이나 손의 모습이 비교적 상세하게 표현이 되어 부드러움 보다는 날카로운 면이 돋보이는 편이며 오른 쪽의 국보 72호는 연꽃 대좌를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편입니다. 이런 면 이외에는 광배에 담겨있는 문양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북한의 유물에 나타난 광배의 문양은 선(線)의 형태가 강하게 나타 난 문양이며, 우리 국보는 선이 아니라 낮은 돋을 새김을 하여 화염의 형태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북한의 유물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또렷함이고 남한의 유물은 부드러움이 강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드린것은 두 유물을 비교하여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우선은 국보 72호로 지정된 <금동계미명 삼존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알아보겠습니다.



좌측의 사진이 바로 국보 72호인 <금동계미명삼존불>입니다. 이 불상은 구리로 만든 불상에 금을 입힌것으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양쪽에 보살이 있습니다. 높이는 17.5cm이며 광배만의 높이는 12.5cm로 광배가 전체 높이의 약 2/3 정도 됩니다. 이 불상은 중국 남북조 시대에 나타난 삼불상 양식을 따른 삼국시대 작품입니다.

 가운데 석가여래의 갸름한 얼굴은 약간 앞으로 숙여져 예불을 드리는 중생을 굽어보는 형식이며 입가에는 살짝 웃는 미소를 머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소는 서산에 있는 삼존불의 미소(이 미소를 김원룡 박사는 '백제의 미소'라고 이름 붙였습니다)처럼 신격화보다는 인간에게 친밀감을 준다고 하겠습니다.

석가여래의 머리부분 뒷편에 둥근 형태는 두광(頭光)이라하여 성스러운 부처의 머리 윗쪽에 남는 서기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이 두광은 4개의 동심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맨 가장자리의 원 안에는 연꽃과 당초, 인동초 문양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뒷편은 몸의 서기를 나타내는 신광(身光)인데 불꽃(火焰:화염)무늬가 담겨 있습니다.

  이 삼존불은 대좌와 본존, 그리고 광배를 각각 따로 만들어서 꼬다리로 조합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부분별로 주조하면 보다 섬세하게 만들수 있는데 이와는 반대로 <연가7년명 금동불>은 전체가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이 불상에서 자세히 살펴 볼것은 이러한 문양이 선으로 이루어진것이 아니라 주물에 의하여 많이 또는 조금 튀어나오도록 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양각, 또는 돋을 새김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불상의 조성은 주로 밀랍을 이용해서 기본적인 조형물의 바탕을 만든 후에 틀을 만들어 구리를 녹인 물을 부어 만든 것입니다. 북한의 유물은 방법은 같은 방법을 사용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밀랍을 이용한 바탕의 틀을 만드는 과정에서 세밀하게 양각의 형태로 만들지 못하고 선을 그은 것 처럼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불심이 깊지 않은 사람이 제작을 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옛날만한 세밀한 기술을 발휘할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진정으로 부처를 섬기기 위해 만들었다면 북한의 유물과 같이 대충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불상을 비롯한 종교와 관계돤 것의 조성에는 많은 정성을 필요로 하며, 마음마저 정갈하게 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대충대충 하지는 않기 때문에 불심과는 관계 없이 조성된 것으로 판단이 되는 것입니다.


 

 

 

 

 

 

 

 

 

 

 

 

 

  위의 좌측 사진은 본존의 세부 모습입니다. 일반적으로 육계라고 부르는 머리위의 살상투가 둥근 공모양을 하고 있으며 얼굴의 세부 표현은 인자한 표정으로 상당히 섬세한 표현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측의 사진은 광배의 뒷 부분인데 윗쪽에는 명문이 있고 아랫쪽에는 본존과 연결하는 꼬다리가 있습니다. 이 삼존불의 광배 뒷면에는 모두 17자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1자는 아직까지 판독되지 못하였습니다. 음각된 명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癸未年十一月一   日寶華爲亡  父趙ㅁ人造(계미년 11월 1일에 보화가 돌아가신 아버지 조ㅁ인을 위하여 만들다)                 * 명문중 'ㅁ'은 아직 정확하게 판독이 되지 않은 글자 입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신문에 게재된 사진으로 봐서는 두 불상의 형태는 비슷하나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더 중요한것은 광배의 뒷쪽에 있는 명문(銘文)입니다. 북한 유물의 명문은 위의 명문이 아니며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명문을 그대로 배꼈다는 것입니다. 국보 119호인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광배 뒷면에 어떤 명문이 있기에 그 명문을 그대로 배낀 가짜라고 하는지..... 그 이야기는 (3)편에서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如       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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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수수께끼 > 가짜 고구려 불상...정말 가짜인가? ( 1 )

  지난 달 4일 조선일보에는 "서울온 北 고구려불상은 가짜"라는 제목으로 A21면에 제법 크게 기사를 실었습니다. 작은 제목으로는 '장충식 교수"南 불상 베끼다 틀린 명문 새겨"'였는데 이 기사의 주요 내용은 4월 9일부터 제기동의 한솔동의보감에서 열리고 있는 '2004 남북공동기획 고구려문화전'에서 전시중인 고구려 불상에 대하여 그 진위를 논하는 글이었습니다. 어느 전시회에 전시중인 작품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이지만 전시회가 개최될 때마다 가끔은 이런 문제가 대두되어 전시 주최측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몇 가지를 예로 든다면 국전에서 대상을 받은 '지하철의 모습'이라는 유화작품이 사진 작품을 보고 그대로 베꼈다고 해서 대상을 취소해야 하느냐 아니냐를 두고 심사위원회의를 했지만, 어차피 화가는 사물을 보고 그리는 것이며, 그림에서의 예술적 창의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로 삼을 수 없다고 해서 그대로 놔둔 적이 있었고(물론, 저는 사진도 보고 회화도 보았지만 표현 방식의 차이일뿐 완전히 똑같은 작품이라고 봐야될 정도였으며 제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대상 자격을 박탈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류화가 천경자의 작품을 두고 본인이 가짜라고 주장하여 한동안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다가 결국은 작가가 우리 나라 땅에서 사는것이 싫다고 조국을 버리고 해외로 나간적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문화재 분야에서는 김정희의 글씨와 겸재 정선의 그림에 대해 모 전문가가 시중에 나도는 것들은 모두가 위작이거나 가짜라고 해서 온통 바글바글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시회에 전시되어 있거나 경매장 등에 나오는 작품에 대하여 가짜 운운하는것은 자칫 전시 관계자와 등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발생함은 물론이고 학문적으로는 확실한 문헌근거나 입증할 방도를 마련치 않는다면 오히려 역공속에서 헤어나기 힘든 지경에 처하게 될 수도 있기에 상당히 조심을 해야 할것입니다. K박물관의 C실장이 자신이 가장 뛰어난 전문가라는 생각으로 겸재 그림에 딴지를 걸었다가 무척이나 혼이 난 적이 있었는데 진위를 구별하는 명확한 방법이 없는 한은 차분히 그 진위를 다져보는 학문적인 전개절차를 거쳐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것입니다. 고구려 불상이 가짜라고 지적한 장충식 교수는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나름대로 불상과 석조물에는 정평이 있으신 분으로 문화재위원이며 개인적으로는 제 은사의 한분이시기도 합니다. 처음 이 기사를 접할 때...깜짝 놀랐습니다. 함부로 그런 논리를 전개하실분이 아니신데 단정적으로 가짜라는 말씀을 하셨고 이것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보도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가짜다 아니다..라는 논란의 대상이 된 전시품은 북한에서 가져왔다는 <연가7년명 금동일광삼존상>인데 이 전시품이 우리 나라의 국보 제 72호인 <계미명 금동삼존불상>을 그대로 본 뜬 뒤, 국보 제 119호인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뒷면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그대로 음각한 짬뽕의 성격으로 만들어진 가짜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기사의 옆에는 우리 나라 국보와 전시중인 북한의 문화재를 나란히 싣고 비교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언뜻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자세히 살펴보면 많이 다른것을 알 수 있는데 주최측에서는 "유물에 새겨진 명문은 후대에 새겨졌다는 의문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유물 자체가 문제가 있는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하여 유물 자체는 고구려 유물이 맞다고 강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짜라고 주장하는 측은 이 유물이 1960년대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시 유물이 가짜라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전에는 국보로 지정되었던 "별황자총통"이라는 조선시대의 대포가 가짜로 밝혀지고 이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킨 주동인물인 해군 대령이 구속이 되고 이를 만들어 준 기술자(?)들이 구속되기도 했었고, 이로 인하여 당시 지정을 위한 심의에 참석했던 문화재위원들은 그 명성에 완전히 X칠을 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만큼 문화재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에 의심을 가게 만든것은 물론이고 국보로 지정 당시 시중에 가짜라는 말이 떠돌았음에도 안이하게 대처했던 문화재청도 많은 책임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의 유물이 가짜다 아니다 하는 문제는 심각하게 접근을 해야 할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하여 몇 차례에 걸쳐 관련되는 사진과 관련 학자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진실은 무엇인가에 접근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학술적으로의 전개는 다소 무거울것 같아 가능하면 알기 쉽도록 풀어가며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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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발~* > [펌] 조심해야할 인터넷 헌책방

2. 다음으로는 도움이 안 되는 곳, 조심해야 하는 인터넷 옛책방 이야기입니다.


인터넷 고서점은 자료나 학문 연구를 하는 분들이(서울과 지역 모두) 어떤 책이 없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잘 살펴서, "막상 찾으면 보이지 않고, 평소에는 흔한"
조금 값나가는 책을 몇 갑절 뻥튀기를 해서 높은 마진을 붙여 팔곤 합니다.

책마다 값과 값어치가 있기 마련이고, 헌책방마다 다 다른 책값을 붙입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어쩔 수 없이 사야만 하는 얼개를 악용하는 일은 썩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바람직이라... 바람직을 안 좋아하는 쥔장이 이런 말을 쓰니 참 얄궂네요.
뭐랄까요. 속임수랄까요? 꾐수랄까요?

책을 팔고자 하면 얼마든지 팔 수 있습니다.
좋은 책이라면 누구에게든 팔 수 있어요.
그러나 어느 책이 이름난 작가가 썼다든지, 첫판(초판)이라든지,
판이 끊어진 책(절판)이라든지, 찍은 부수가 얼마 안 된다든지,
지은이 서명이나, 책을 받은 유명한 사람 이름이 들어갔다든지...
이런 까닭 몇 가지로 책값을 터무니없이 받는 곳도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나라 인문사회과학 책이라든지,
웬만한 고서라 하는 책은 '잘 안 팔렸기' 때문에 '첫판만 있는 수'가 잦습니다.
그래서 외려 2쇄나 3쇄가 드물고, 4쇄나 5쇄는 아주아주 적기도 해요.
그래서 희귀성 값어치로 치자면 2쇄나 3쇄가 더 높은 값어치를 지니기도 합니다.
(첫판은 3만 부 찍고, 2쇄는 1000부 찍었다고 생각해 보아요)

또한 어떤 책은 '팔렸다'고 말하며 "재고없음"으로 올려놓았지만,
실제로는 팔리지 않은 책인데, 그렇게 해 놓고 마치 잘 팔리는 책인 듯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목록에 올리며 책값을 올리는 수도 있습니다.
굳이 책값을 올리지 않아도, 올리기 무섭게 품절이 되었다가 금세 새로 목록에 뜨는 책 가운데
이런 책이 많습니다. 완전히 속임수예요.
그래서 그런 사이트를 자주 쓰고 잘 아는 사람은 따로 알음알음하여
'품절로 등록된 책'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둘레 가까운 곳에 증인이 있습니다. 그렇게 책을 산 경우를 손수 보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고칠 문제를 고치지 않고서는
우리네 헌책방 문화가 조금도 나아지거나 좋아질 수 없습니다.

쥔장이 이런 문제를 지켜만보다가 정식으로 내놓은 데에는
<길창덕 만화-꺼벙이,기린원(재판)>라는 책을 이곳(노마드북)에서
터무니없는 값을 붙여서 올렸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정식 첫판도 아니고,
1986년에 '기린원'에서 복간하면서 널리 퍼진 이 흔한 만화책을
무려 5만 원에 올려놓았거든요.
뭐, 5만 원이든 50만 원이든 올리는 사람 마음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길창덕 씨가 그린 만화책 가운데 1970년대에 나온
"훨씬 더 드물고 소중한 사료 값어치가 있는" <순악질 여사,백제>는
1980년대 재판본 <꺼벙이> 값의 1/2도 안 되었습니다.
더구나 1980년대 재판본 <꺼벙이>는 1,2,3권 모두 있는 것도 아니고
딱 하나만 있는 짝퉁인데도 말입니다.
(헌책방에서는 '여러 권 완본'일 때는 값이 오르지만 '짝퉁'일 때는 값이 떨어집니다.
안 그런 책도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요)

쥔장이 문제 삼은 뒤에 그 사이트에서는 이 책값을 슬그머니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다른 인터넷 고서점 사이트에서도
길창덕이니 김수정이니 박수동이니 허영만이니... 이런 만화가 1980년대 흔한 책도
몇만 원씩 붙여서 파는 게 유행이 되었습니다.

갑작스레 만화 수요가 늘어서 이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제대로 값을 붙여서 귀한 옛책으로 대접할 책을 대접하는 것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영리와 돈에 마음을 빼앗겨
흐리멍텅한 장삿속으로 헌책방과 옛책방을 물먹이는 짓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은 하루빨리 사라져야겠고,
올바르면서 아름다운 책장사로 거듭나야 할 줄 압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노마드북> 문제만 이야기했으나 다른 인터넷 옛책방이나 헌책방
가운데에도 너무 높거나 지나친 값을 붙이는 문제뿐 아니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모습이 많아요. 그런 문제들... 그냥 보아넘기는 일은 옳거나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곪은 자리는 칼로 도려내야 합니다. (2003.11.13) / (2004.5.11.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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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옛책방들을 다닐 때에는 조심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아직 우리 나라는 헌책방이나 옛책방 문화가 튼튼히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다지 값어치가 있지 않은 책을 `그 책을 바로바로 사야 한다'는 까닭 때문에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쓸 위험이 있습니다.

-> 노마드북

그런 위험성이 짙은 곳 가운데 하나로 <노마드북>이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위험성이 짙기 때문에 따로 사이트 주소는 올리지 않겠습니다.

이곳에 올라오는 책들을 살피면 책값은 비싼 편이지만 찾기가 힘들어서
많은 다리품을 팔지 않고 즐거이 살 수 있는 책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책들은 책이 지닌 값어치나 시중값보다 지나치게 높게
매겨져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헌책방을 즐겨 다니는 분들로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책들이지만
헌책방이 없는 전국 곳곳에 계신 분들로서는 찾기가 어려운 책들이 있어요. 흔하지만요.
그런 책들이 여러 인터넷 헌책방이나 옛책방에서는 지나치게 높은 책값으로 올라와 있는
때가 잦습니다.

나아가 책마다 책 값어치를 올리거나 제대로 된 값어치를 매기는 일은 좋지만,
아직 `고서'라 하기에는 이르거나 알맞지 않은 책을 품절이나 절판된 `유명작가' 책이라고 하여
뻥튀기 값이 붙기도 합니다.

책마다 지닌 고유하고 아름다운 값어치를 살리는 일은 자연스러우며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를 너무 장삿속에 기울여서 값을 헤아린다면 상행위와 헌책방 유통 구조를 흐리는
나쁜 짓이 되고 맙니다.

지금 <노마드북>은 그런 상행위를 흐리고 책값을 뻥튀기 하는 일에 적잖은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너무 낮게 매겨져 있는 한국 책값을 차츰차츰 올릴 찾을모는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찾을모를 몇몇 인터넷 옛책방에서 경쟁이나 하듯 지나치게 올리는 일은
조금도 아름답거나 알맞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반드시 고쳐져야겠으며, 인터넷으로 상행위를 하는 책방들은
깊이 있게 헤아리고 생각해야 좋겠습니다.

책은 편집자와 책방과 독자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즐기는 문화물입니다.
이런 문화물이 잘못된 독자나 잘못된 편집자나 잘못된 책방 때문에
물이 흐려지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기울어져 버린다면
그나마다 출판 후진국인 우리 나라가 더더욱 후진으로 뒷걸음질치면서
어설프면서 어줍잖은 출판 환경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쪼록 <노마드북>이라는 곳이 이런 모자라고 아쉽고 안타까운 모습에서 벗어나
올곧고 아름다운 길로 발돋움하는 인터넷 옛책방으로 거듭나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노마드북>이 제자리를 찾기 앞서까지는 이곳에서는 책을 안 사는 편이 낫겠다고 보며,
스스로 고치고 달라질 때까지는 이 글을 그대로 남겨둘 생각입니다.

-(2004년 5월 11일 지금 다시 살펴보아도 그닥 나아지지 않아 글을 그대로 둡니다)

~~~~~~~~~[문제가 된 책과 얽혀서 쓴 글도 붙여 두겠습니다]~~~~~~~~~~~~~~

.. 만화책 <꺼벙이>가 50000원? ..

인터넷 옛책방인 ㄴ사이트에 만화책 <꺼벙이>가 떴다. 책값은 무려 50000원. 잘못 보았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하지만 틀림없는 `5만 원'이었다. 그런데 웃긴 일이 있다. 같은 사이트에 올라온 다른 길창덕 씨 만화책인 <순악질 여사,백제(1979년,2쇄)>는 고작 `2만 원'인 것. 만화책 사료로 따지면 <꺼벙이>보다 <순악질 여사>가 몇 갑절 높다. 높을 뿐 아니라 무척 드물기도 하다.

사실 만화책 <꺼벙이>는 이젠 그다지 흔한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한 동네 헌책방에서 1000원~5000원 사이에 살 수 있는 만화책이다. 좀 비싸게 바가지를 쓴다는 생각이 드는 책값이 5000원이고 보통 1000원이나 2000원에 판다. 그만큼 흔하고 널린 책이란 거지.

하지만 만화책 <순악질 여사(길창덕 그림)>는 어느 헌책방에 가도 적어도 5000원부터 기본이 10000원은 받으며 20000원 넘게 받는 헌책방도 있다(하지만 이렇게 비싸게 팔면 누구도 사지 않는다). 그리고 이 만화책은 `없어서 못 파는' 책이라 하겠다(다만 없어서 못 파는 책이라 해도 지나친 책값을 붙이면 안 사기도 한다).

우리가 찾기 어렵고 드물고 소중한 책이라서 퍽 높은 값을 매기는 일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터무니없고 지나친 뻥튀기 책값은 아니다. 책이 지닌 값어치를 북돋우고 살리는 일은 좋다. 하지만 엄청난 바가지에다가 뻥튀기는 아니다. 그건 우리네 책동네와 책 문화를 죽이거나 짓밟는 나쁜 짓이다.

사실 <순악질 여사>라는 만화책이 드문 책이고, 나도 아직 사지 못했기 때문에 책값 20000원에 떴을 때 살까 말까 오래 망설였다. 하지만 그 책이 지닌 값어치를 살핀다면 10000원이 가장 알맞고, 아무리 비싸도 15000원을 넘기지는 말았어야 할 책이다. 5000원이야 발품 판 값으로 쳐 줄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정 그 책을 사서 봐야 할 찾을모가 생길 때까지는 사고프지 않다. 더 나아가 웬만한 동네 헌책방을 부지런히 다니면 1000원에도 살 수 있는 만화책 <꺼벙이>를 50000원에? 웃기고 자빠졌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우리 집에는 만화책 <꺼벙이>가 1,2,3권이 다 있다. 상태도 아주 깨끗하다. 1권은 여벌이 하나 더 있는데 무척 낡았다. 그러니 내게는 <꺼벙이>가 네 권 있는 셈이고 세 권은 짝 맞춘 판으로 깨끗한 `첫판'으로 다 있다. 그렇다면 그 책은 얼마쯤 되는 값어치일까?

내 생각으로는 만화책 <꺼벙이,기린원(1986)> 1,2,3권 짝 다 맞춘 판으로 알맞은 값어치는 5000원이다. 세 권 다해서 말이다. 바가지를 씌운다면 10000원까지는 줄 수 있지만, <꺼벙이> 세 권에 만 원을 부르면 사기 어렵다. 7000원까지는 봐줄 수 있다. 그런데 짝도 맞지 않는 <꺼벙이>를 한 권에 5만 원? 그렇다면 세 권이면 15만 원인가? 나아가 `짝을 다 맞추었'다면 값은 더 뛸 테니 20만 원쯤 부르겠다 싶구나.

한번 물어 보고 싶다. 내게는 <꺼벙이>가 세 권 아주 깨끗한 첫판으로 짝이 다 맞춰져 있으니 세 권을 단돈 `오만 원'에 사가겠느냐고 말이다.

우리 나라 인터넷 헌책방은 문을 연 지 얼마 안 되었다. 책이 지닌 값어치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고. 하지만 지킬 것은 지키면서 책 문화를 살찌워야 할 줄 안다. 바르고 곧은 살뜰한 길로 나아가야지 싶다. 인터넷 헌책방이나 옛책방을 꾸리면서 비싼값을 붙이는 일은 사실 `전국 곳곳'에 있는 헌책방 독자 주머니를 터는 도둑질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꺼벙이> 같은 만화책은 서울 시내 동네 헌책방을 잘 뒤지면 어렵지 않게 싼값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서울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책을 어떻게 사나? 서울까지 와서 헌책방을 다녀도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차삯만 많이 들겠지. 그러니 그런 전국에 있는 독자들로서는 `오만 원' 주고 사는 편이 훨씬 값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인터넷 헌책방과 옛책방은 높은 책값을 뻔뻔스럽게 붙여서 팔아먹기도 한다. 이런 대목은 앞으로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택배비나 인건비를 헤아려서 조금 이윤을 더 붙이는 일은 좋다. 더불어 이런 일은 아주 자연스러우며 당연하다. 그러나 `이윤'이 아닌 `폭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폭리'를 얻으려는 인터넷 헌책방이나 옛책방은 우리들이 `책 안 사기 운동'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몰라서' 책값을 그렇게 붙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1979년에 나온 훨씬 더 드물고 소중한 사료가 되는 <순악질 여사>보다 흔하고 널린 <꺼벙이>라는 짝 잃은 만화를 더 비싸게 값을 치는 현실은 그저 `몰랐다'는 핑계를 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잘못해서 `0'을 하나 더 붙였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 책이 올라온 지도 여러 날이 지났는데 안 고친다. 나아가 `0'을 하나 뺀 5000원이란 값도 턱없이 비싸다.

제발이지 인터넷으로 헌책방이나 옛책방을 꾸리는 이들이 마음을 제대로 다져 먹기 바란다. 책 공부도 부지런히 해 주기 바란다. 나아가 `이윤'을 얻으면서 책장사를 하는 바람직한 길로 나아가면 좋겠다. `폭리'를 얻으며 우리네 헌책방 시장을 흔들고 비트는 나쁜 짓은 그만두기 바란다. 동네 헌책방을 다니며 헐값에 사서 인터넷 목록에는 턱없이 비싼값으로 올려서 높은 마진으로 소매 손님(동네 헌책방으로 손수 찾아가서 책을 사는 사람)에게도, 동네 헌책방 임자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치는 그런 악덕 장삿속을 하루빨리 걷어치우기 바란다. (200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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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뒤에 붙임) 이번이 벌써 몇 번째 일인지 모르겠다. 아주 너르고 흔한 동시집을 `이름난 작가'가 썼다는 까닭 하나만으로 `삼만 원'이란 값을 붙인 적이 있도 있다. 그 책 또한 헌책방에서 `1000원'에 팔아도 안 사 가는 그런 책이었다. 물론 책을 알아보는 눈이 없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 더불어 아직 값어치를 받지 못한 헌책에 소중한 값어치를 붙이는 일도 될 테고. 그렇지만 지킬 건 지키면서 제대로 된 책 값어치를 매기며 책 문화를 북돋워야 한다. 어줍잖고 어처구니없는 장삿속으로 헌책 시장을 뒤흔드는 미꾸라지 짓은 부디 앞으로는 없길 바란다. 앞으로 또다시 이런 나쁜 짓이 드러난다면 그때는 그곳 사이트 실명을 밝히며 "그 사이트에 올라온 책은 사지도 팔지도 않기 운동"을 할 생각이다.

출처: 우리말과 헌책방 쉼터: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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