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ienne Balibar, “Avant-propos pour la réédition de 1996”, in Pour Marx, La Découverte, 1996.

 “맑스를 위하여”―하나의 호소, 거의 구호에 가까운 이 제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또는 아마도 새롭게, 30년 전과 마찬가지로 높고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하지만 다른 이유들 때문에, 그리고 전혀 다른 맥락에서 그렇다. 알튀세르의 책은 이제 새로운 독자들에게 전달될 것이고,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예전의 독자들의 경우는 사람 자신만이 아니라 텍스트를 수용하는 방식까지도 크게 변화했다.

1965년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되었을 때는 자신의 고유한 논리 및 윤리를 지닌 특정한 방법에 따라 맑스를 읽자는 선언과 동시에 맑스주의, 좀더 정확히 말하면 진정한 맑스주의(한 운동, 한 “당파”와 분리할 수 없는, 그리고 이를 공개적으로 내세우는 이론, 철학으로서)를 위한 선언이 중요한 문제였다. 오늘날의 경우는, 아마도 이 책에서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려고 하는 또는 심지어 상상적으로 이를 재개하려고 하는 향수에 젖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돌이킬 수 없이 끝나버린 맑스주의의 종언 이후, 맑스주의를 넘어서, 맑스를 읽고 연구하고 토론하고 활용하고 변혁하자는 호소가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한 세기 이상 동안 맑스주의로 존재해 온 것에 대한, 이를 우리의 사고 및 우리의 역사와 결부시키는 복합적인 연계들에 대한 놀랄 만한 무지나 또는 보수주의적인 경멸을 용인하면서 그렇게 하자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배제(foreclusion)는 늘 그렇듯이, 때로는 상반된 색조를 띠기도 하는 가상과 오류의 반복만을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호소는 맑스 자신이 맑스주의와 맺고 있는 심층적으로 모순적인 관계, 이를 입증해 주는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분석하려는 집요한 노력에 대한 호소다.

사실 이 책에는 맑스주의에 이론적인 실체와 형태를 부여하고자 하는, 저물어가는 20세기에 이루어진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웅변적인 그리고 또한 가장 설득력 있는 논거를 지닌 시도들 중 하나가 담겨 있다. 맑스에 대한 해석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이 시도는 분명 맑스의 작업 및 그 계승자들의 “작업들”들에 대한 인식과 동시에 몰인식을 표현해 주었다(tradusait). 하지만 이 책에는 또한―적어도 나는 어느 때보다도 이를 더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맑스의 사고 양식, 또는 알튀세르가 제안한 표현에 따르면 그의 “이론적 실천”에 고유한 어떤 것이 다시 출현했는데, 이는 어떤 “맑스주의”로도 환원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고유한 방식에 따라 맑스주의의 한계들을 드러내 주는 데 기여했다. 이는 이 사고양식에 구성적인 명제들 및 아포리아들로 거슬러 올라가서 내부에서 이 작업을 수행했기 때문에 더욱 더 강력한 기여였다.

이 때문에 1965년 『맑스를 위하여』의 출간(및 몇 주 뒤에는 『자본을 읽자』라는 집단 저작의 출간)이 곧바로 점화하고, 앙리 르페브르 같은 위대한 맑스주의자들 및 레몽 아롱 같은 맑스주의의 위대한 적수가 참여한 “상상적 맑스주의”와 “현실적 맑스주의” 사이의 논쟁은 오늘날 더 이상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모든 맑스주의는 상상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들 중 일부, 서로 매우 다르고 사실은 매우 적은 또는 소수의 텍스트들이 대표하고 있는 몇 가지 맑스주의는 여전히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따라서 현실적 효과들을 생산하도록 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 나는 『맑스를 위하여』의 “맑스주의”가 능히 이것들에 포함된다고 믿는다. ...

하지만 꼭 필요한 몇가지 역사적이고 전기적인 정보들을 제시하기에 앞서, 이 기록과 그 독자들 사이에 여러 개의 가리개―여러 가지 설명틀―을 만들어 놓을지도 모를 “낡아빠진” 독해의 시도를 예방하고 싶다.

『맑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텍스트들은 1961년에서 1965년 사이에 출간되었다가 한 권에 묶였다는 점을 잘 알아 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는 한편으로는 스탈린의 범죄에 대한 “흐루시초프의 보고”(1956)와 부다페스트 봉기 및 수에즈 파병(둘 모두 1956에 벌어졌다), 쿠바 혁명의 성공(1959), 알제리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알제리 무장 봉기 이후 드골 장군의 권력으로의 복귀(1958-1962), OECD의 창립(1960), 베를린 장벽 축조(1961) 같은 프랑스사 및 세계사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1965), 중국의 문화 혁명(1966에 시작), 프랑스와 다른 나라(멕시코, 독일, 미국, 폴란드 ...)에서 68년 5월에 일어난 사건들, “프라하의 봄” 및 체코슬로바키아 침공(마찬가지로 1968년), 사회당과 공산당 사이의 “좌파 연합에 따른 공동 강령”(1972), 70년대 “유로 공산주의” 탄생, 아옌데 정권의 몰락 및 아옌데 피살(1973),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1974) ... 등과 관련되어 있었다.

『맑스를 위하여』의 테제들을 맑스주의 및 맑스에 대한 논쟁의 역사만이 아니라 20세기 철학사―이 테제들은 이 역사 안에 아주 가시적인 흔적을 남겨 놓았다―안에 위치시키기 위해서는 이 책이 1960년이라는 아주 놀라운 해 바로 다음부터 쓰여졌다는 사실을 알아두는 게 유익할 뿐 아니라, 아마도 필수불가결할 것 같다. 1960년 이 해에는 메를로-퐁티의 『기호들』([모스에서 레비-스트로스까지] 및 [마키아벨리에 대한 노트]가 수록된)과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 비판』(레비-스트로스는 1962년 『야생의 사고』에서 이 책에 답변할 것이다), 질-가스통 그랑제(Gilles-Gaston Granger)의 위대한 인식론 저서 『형식적 사고와 인간 과학』 및 가스통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 앙리 에(Henry Ey)가 조직한, 라캉을 중심으로 한 정신분석에 관한 본느발 회의, 마지막으로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 의식』의 불어 번역(저자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이 출간되었다. 앙리 르페브르의 『일상 생활 비판』(1958, 1961)과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1961), 자크 데리다의 『후설 『기하학의 기원』 서론』 및 레비나스의 『총체성과 무한』, 하이데거의 『니체』 강의 출간은 『맑스를 위하여』의 시작과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계획적으로가 아니라 “개입”이라는 우연적 기회들에 따라 『맑스를 위하여』가 쓰여지고 있는 동안, 장-피에르 베르낭의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사상』(1965),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1963),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 변동』(1962),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1963), 르루아-구랑의 『행동과 말』 및 레비-스트로스의 『신화론』 1권(1964), 칼 포퍼의 『추측과 논박』과 비유멩의 『대수의 철학』(1962), 그리고 또한 코이레의 『뉴턴 연구』(1965)가 잇따라 출간됐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출간된 후 곧바로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1차원 인간』, 피에르 쉐퍼의 『음악대상론』, 장켈레비치의 『죽음』, 바르트의 『비평과 진리』, 벤베니스트의 『일반 언어학의 문제들』, 푸코의 『말과 사물』, 라캉의 『에크리』, 캉길렘의 [개념과 생명][1968년 『과학사 및 과학 철학 연구』에 재수록] 등이 뒤따랐는데, 이 모두는 또 하나의 놀라운 해인 1966년에 출간되었다 ...

요컨대 프랑스 대학의 심장부에 거주하는 프랑스 공산당의 “기층”의 투사[평당원, militant “de base”]인 한 철학자의 『맑스를 위하여』의 저술 및 출간은, 점령 기간 중에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냉전이 “평화 공존”으로 역전(또는 연장)되었을 때, 탈식민화가 불가피하게―하지만 항상 힘겨운 투쟁 끝에―일반화된 반제국주의와 사회주의로 향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들의 경제적 성장과 문화적 변동이 부와 권력의 분배에 대한 반대를 확대하는 데까지 이르렀을 때, 서유럽에서 (여전히) 민족적이고 (얼마간) 사회적인 국가가 세계화로의 전환점을 준비하고 있는 반면, 동쪽에서는 스탈린 이후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공공연하거나 잠재적인 위기가 여러 가지 형태로 “혁명 속의 혁명”(레지스 드브레)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처럼 보였을 때인 전후의 긴박한 정세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두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고 이 책은 전쟁 직후와 관련하여 철학 논쟁이 자신의 대상 및 스타일을 바꾸고 있던 시기에 출현했다는 것을 알아두는 것도 유익하다. 단지 “의심의 철학들”―그 위대한 스승은 니체이고, 부차적으로는 프로이트 내지는 “구조주의들”이다―, 즉 사회적 실천과 의미작용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들(disciplines)에게 그것들에 본래적인 과학성을 부여하려는 야심을 지닌 철학들이 주장되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푸코가 자신의 천재적인 종합적 정식화의 능력으로 곧바로 말하게 될 것처럼 “지식과 권력의” 질문들이 오랫동안 도덕과 심리학(여기에는 현상학적 심리학도 포함된다)의 질문들을 압도하게 될 것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또한, 그리고 아마도 무엇보다도 이 시기 전체 동안 역사와 인류학, 정신분석과 정치를 관통하면서 철학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더 자신의 타자, 자신의 무의식, 비철학에 직면하고, 이것들과 대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철학이 당시에 추구하던 것이 자신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비판과 자신의 재구성의 수단들을 발견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분명히 바로 이것이, 모든 믿음들 및 소속들과 관련된 문제는 제쳐 둔다면, 철학이 맑스와 치열한 논쟁을 벌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다, 이 모두는 유용하고 필수적이다. 하지만 거듭 말하거니와 『맑스를 위하여』는 기록 문헌(document)이 아니다. 이는 책이며, 여기에는 두 가지의 타당한 이유가 존재하는데, 이제부터 가능한 한 간명하게 그 이유들을 환기해 보고 싶다.

첫째로 『맑스를 위하여』는 용어의 강한 의미에서 쓰여진 것이다. 이 책은 알튀세르의 철학 스타일을 가장 명료하게 표현해 주는 것들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다수의 미간행 원고들―이중 어떤 것들은 매우 이른 시기의 원고들이고 또 어떤 것들은 말년의 원고들이다―의 출간 덕분에 우리는 이제 이 스타일이, 고전들의 취향으로 가득차 있고 영성과 역사에 대한 관심에 푹 젖어 있는, 매우 논쟁적인 한 사춘기 소년의 펜으로부터, 그 이후에는 우수한 대학 논문을 쓴 젊은 필자로부터 쓰여진 몽상들과 에세이들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추구되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중에 가면 이 스타일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 유물론”을 그 고유한 지반 위에 체계화하는 데 기여하려는(concurrence) 이론적 투사의 시도 속에서, 그리고 허구적인 법정에 제출하기 위해 쓰여진 검사의 구형논고이자 동시에 변론인 자서전의 고백(나는 이 주장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 속에서 사라지고, 예외적으로 번득이는 자취 속에서 엿보일 뿐이다. 하지만 『맑스를 위하여』에서―이미 저 비범한 『몽테스키외, 정치와 역사』[PUF, 1959; 1992년 Quadrige 총서로 재출간]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마키아벨리와 우리』[L. Althusser,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II, ed. François Matheron, Stock/IMEC, 1995, pp. 42-168]라는 “책”(왜냐하면 이는 한 권의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이 그의 책상서랍에서 그에게는 유일하게 “이론”의 영예를 얻을 만한 것으로 보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에서―이 스타일은 가장 훌륭하게 표현되고 있어서 이 책의 첫 번째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는 과학의 엄밀함에 대해 말하고, 그 수사법적, 개념적 경제성을 통해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주는 스타일이면서 또한 매우 예외적으로 정열적인 스타일이기도 하다. 즉 알아내기 힘든 원천들에서 체험된 그 모든 정열이 일종의 추상의 서정주의(언젠가 알튀세르가 크레모니니에 대해 “추상 회화”가 아니라 “추상적인 것에 대한 회화”라고 말하게 될 의미에서)로 표현되는 스타일인 것이다. “결과들의 힘”([아미엥에서의 주장])이 공언되는 이 스타일은, 원하는 모든 것을 파스칼과 루소에게, 페귀와 사르트르(이는 분명한 사실이다)에게, 맑스와 니체에게 빚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절대적으로 독특한,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공적인 어조를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이는 우리에게 글쓰기의 발명 없이는, 이 글쓰기가 “편”드는(prend le “parti”) 개념에 의한, 이 개념을 위한 글쓰기의 발명 없이는 철학―추론적이든 반성적이든, 아포리즘적이든 논증적이든 간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해 준다.

두 번째로, 『맑스를 위하여』는 아무런 고유한 교의도 제시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는 주어져 있는 한 교의(또는 이론), 즉 맑스의 교의를 위해 “봉사한다.” 하지만 이 교의는 실존하지 않는다는, 적어도 체계적 서술의 형태로는 실존하지 않는다(왜냐하면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론화는 분명히 이 교의의 희화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는 기묘한 특수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알튀세르가 설명하듯이 구상[ébauches]과 응용, “전제 없는 결론들” 내지는 “맑스주의의 이론적 작업들” 및 “실천적 작업들”에서 그 자체로 정식화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답변들의 형태로 이를 발견함과 동시에 진정으로 이를 생산해야 한다.

즉 개념들을 명명하고 분절하고, 개념들이 그 속에 놓여 있는 테제들(사실은 물론 가설들)을 언표해야 한다. 알튀세르가 『맑스를 위하여』에서 맑스로 하여금 그가 실제로 말했던 것 이상을, 그리고 그와는 다른 것을 말하게 하면서, 하지만 또한 인식론과 정치, 형이상학의 모든 영역으로 맑스에서 유래한 질문들과 통념들을 수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으면서, 놀랄 만한 개념적 도구들의 배형(constellation)을 생산함으로써 끊임없이 수행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알튀세르는 [서문]([오늘], II, p. 24)에서 자신이 제시한 맑스 독해의 가설들을 “문제설정”(그는 이를 1963년에 죽은, 그리고 이 책이 헌정된 자크 마르탱(Jacques Martin)에게 빌려 왔다고 말한다)과 “인식론적 절단”(그는 이를 자신의 선생이었던 가스통 바슐라르에게 빌려 왔다고 말한다)이라는 주요한 두 가지 이론적 개념과 결부시켰다. 사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두 개념―이 개념들이 제기하는 문제들과 함께―은 “알튀세르주의”의, 또는 오히려 그가 인식론 담론에 남긴 흔적의 서명 표시로 표상/대표된다. 『맑스를 위하여』의 기획에 본질적인 이 개념들은 하지만 분명히 『맑스를 위하여』의 이론적 내용 전체를 소진시키지는 않는다. 나로서는 이러한 단순화된 소개―여기서는 토론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논쟁의 소재를 지적해 두는 게 문제다―가 지닐 수 있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 상호 독립적인 통념들과 질문들의 세 가지 배형을 확인해 두고 싶다.

한 가지 배형은 “인식론적 절단”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사실 이 개념에는 이론적 실천, 과학성, 그리고 관념들이나 사고들 자체가 아니라 이것의 물질적 가능성의 체계적 통일성으로 사고된 문제설정(이 개념은 아마도 하이데거의 프로블렘슈텔룽(Problemstellung)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유래한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들뢰즈와 푸코의 “문제화”(problématisation) 개념과 이를 비교해 보면 아주 흥미로울 것이다) 같은 개념들이 속할 만한 충분한 권리를 갖고 있다.

여기가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지점인데, 이는 과학이라는 관념이 품고 있는 정서들 및 이 관념이 포함하고 있는 난점들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이 점에 관해서는 두 가지 관찰만 제시해 두겠다. 알튀세르는 상이한 자기비판들(특히 “변증법적 유물론” 또는 “이론적 실천의 이론”이 과학 담론으로 간주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철학 담론으로 간주되어야 하는지에 관하여)을 전개할 때에도 (『자본』에서 제시된 것과 같은) 맑스의 이론이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적인 중핵을 포함하고 있다는 관념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은 반면, 맑스 이론의 과학성에 대한 관점에서는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전혀 그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연구인 [알튀세르의 대상](국역: [철학의 대상: ‘절단’과 ‘토픽’], 윤소영 옮김, 『알튀세르와 맑스주의의 전화』(이론, 1993) 참조].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이는 (이데올로기적 가상들을 넘어) “현실적인 것으로 회귀”한다는 관념으로부터 “이론적 전유”―이는 동시에 과학이 대립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과학”이자 이데올로기에 고유한 가상적 권력에 대한 과학이기도 하다―라는 좀더 스피노자적인 관념으로 진화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맑스를 위하여』 및 후속 논문들이, 실존하는 과학성의 모델을 맑스주의적 논쟁 안으로 “수입”한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또는 어쨌든 동시에) 역사유물론 (및 정신분석)이 구성하는 (갈등적이면서 엄밀한) 독특한 인식의 실천으로부터 출발해서 “과학” 개념을 개조하려고 한 것인지 질문해 볼 수 있다(또한 마땅히 질문해 봐야 한다). 이 경우 “과학”이 우리에게 절단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맑스의 절단에 고유한 명증성(흄식의 감각론적 형태뿐만 아니라 헤겔식의 사변적인 형태까지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경험론 및 직접성에 대한 비판으로서)이야말로 과학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우리가 다시 질문해 보도록 촉구한다. 다시 말해 과학이 포함하는, 하지만 과학이 필연적으로 그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지는 않은, 인식과 진리 효과들 자체에 관해 질문해 보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공된 두 번째 배형은 구조라는 통념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이 통념은 분명 체계적 통일성 내지는 “총체성”라는 관념에 준거하지만, 이 후자는 완전히 내재적인 방식으로, 또는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효과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부재하는 원인”의 양식으로 자신의 효과들 안에서 주어질 뿐이다(알튀세르는 나중에 이를 자신의 다양한 양태들 안에 내속하는 스피노자의 실체와 비교하게 된다). 문제는 맑스 및, 그와 그 이후의 다른 맑스주의자들(특히 정세, “구체적 상황”에 대한 분석을 할 때의 레닌)이 역사 안에서 발견하고 싶어 하는 인과성의 유형 자체이기 때문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의 다양성이 실천들의 다양성이라는 점이다. 실천들의 총화를 구조화하는 것은 실천들이 서로에 대해 작용하는 방식을 가지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알튀세르는 실천들은 오직 본질적이고 환원불가능한 과잉결정의 양식으로 서로에게 작용한다고 말하는데, 어떤 “복잡성의 감축”도 이 과잉결정 너머에서 선형적 결정 관계의 단순성을 재발견할 수 있게 해주지 못한다. 그와는 반대로 여러 실천들 중 하나에 의한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이 주장되면 될수록, 이와 상관적으로 이질적인 “지배”(domination), 또는 “지배작용”(dominance)의 필연성이 생겨 나고, 따라서 “순수한” 경제적 경향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의 다양화가 생겨 난다. 그리고 이 장애물들이야말로,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유일하고 진정한 “역사의 동력”을 이루는 계급투쟁의 소재 전체를 구성하는 것들이다.

구조에 대한 이러한 관점 ... 은 인문과학들의 인식론을 분할하고 있는 방법론적 “개체론”과 방법론적 “유기체론” 내지는 “전체론”에 대한 이중적 거부에 의해 부정적으로 표시된다. 따라서 이 관점은, 적어도 형태상으로는, 근원적으로 관개체적인(transindividuelles) “관계들”(“rapports” ou “relations”)의 결합으로서의 사회적인 것을 이론화하는 데서 철학적인 표현을 제공해 준다. 맑스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고전적인 관념론 및 유물론에 직면하여 이러한 이론화의 필요성을 깨달은 뒤, 계속 이에 관한 작업을 시도했다. 구조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피콜로 극단: 베르톨라치와 브레히트(유물론적 연극에 관한 노트)]에서 제시되는 것처럼, 주관적 시간들의 분리 내지는 거리두기의 구조라는 관점에서 비범하게 소묘되고 있는 “의식”이라는 인간학적 범주에 대한 비판을 자신의 대응물로 지니고 있다. 이 논문은 책 전체의 이론적이고 기하학적인 중심이지만, 이 책에서 이 논문은 “도둑맞은 편지”로 나타나는데, 이는 누구도 이를 그 자체로[즉 이 책의 중심으로] 읽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는 이 논문이 미학에 관한, 연극에 관한 논문이라는 암묵적인 이유(raison honteuse)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렇다면 다시 한번, 알튀세르가 여기서, 궁극적으로는 역사나 역사성이 아니라, 아주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 안에서 우연의 필연성을 사고하기 위해―단지 맑스 이론의 “시작들” 및 진화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구조”라는 관념을 활용하는 방식에 내재하는 난점이 드러나게 된다. 한편으로 과잉결정이라는 관념은 사건이 포함하는 예견불가능성과 비가역성의 역설적 결합과 함께 사건의 가지성에 응용되었다( ... “정세” ... ). 다른 한편으로 이는 생산양식들의 범역사적 비교에, 따라서 계급투쟁 및 사회구성체의 역사적 경향에 응용되었는데, 여기서 문제는 이것들을 진보의 이데올로기들 및 경제주의적 진화주의와 “역사의 종말”이라는 종말론에서 떼어내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한다면 한편으로는 공산주의 혁명들에,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적 이행들에 응용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이 양자는 같은 것이 아니다. 연속적인 것으로 제시되는 [모순과 과잉결정], [유물변증법에 대하여]라는 위대한 두 논문을 읽거나 다시 읽어본다면, 내 생각으로는, 첫번째 논문은 사건에 대한 사고쪽에서 과잉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비해, 두 번째 논문은 경향 및 시기 구분쪽에서 이 개념을 이끌어낸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분명 하나의 관점을 다른 관점과 대립적으로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해결책은 『맑스를 위하여』에서, 그리고 여기에 나타난 구조에 대한 관념에서 이 두 관념 사이의 긴장, 또는 상호성으로서의 역사성이라는 질문에 대한, 결론은 아니겠지만, 매우 밀도있는 논의를 확인하는 데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데올로기라는 통념 및 질문 주위에서 조직되는 배형이 남아있다. 한편으로는 (정치적이면서 철학적인 이유들 때문에) “이데올로기(들)”에 대해 말하기를 중단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 통념에서 해석학이나 역사에 대한 담론의 계보학의 주요 장애물을 발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 문제에 대한 30여년 간의 토론―이 역시 하나의 주기를 이루고 있다―이후에, 아마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튀세르의” 관점에 대해 간단히 몇 마디를 결론적으로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 통념은 그의 철학적 기획 및, 담론으로서, 학문으로서 철학과 그가 맺고 있는 관계의 핵심 자체를 구성한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라는 통념은 철학이 자신의 “자기의식”―옳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간에―을 통과해서, 그 자신을, 그 자신이 아닌 것, 즉 사회적 실천들의 장 안에, 자신의 물질적 가능성의 조건들과 관련하여 위치시킬 수 있게 해주기(또는 가설상으로는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한 그 자신을 제거해 버리거나 “반영물”로 환원시키지는 않고서. 바로 이 점에서 이 통념은 알튀세르의 이론을 그의 철학적 모델들, 즉 스피노자 및 어떤 프로이트와 결합시키는 능동적인 혈통 노선을 구성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철학 담론의 자율성과 자족성의 이론가가 아니라 타율성의 이론가들이다. “토픽”, 즉 사고가 분석하는 갈등의 장 안에서 사고의 위치에 관한, 따라서 사고의 현실적이지만 유한한 역량에 관한 이론가들인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후에도 이데올로기 일반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결코 변화하지 않았다. ... 이데올로기는 역사적 존재(Sein)에 대한 의식(Bewusstsein), “물질적인 실존 조건들”을 반영하고 “현실적인 것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져 있는”(즉 추상적, 관념적인) 담론들로 표현되는 “사회적인 의식의 형태”가 아니다. 이는 개인들이 자신들의 실존 조건과 맺고 있는 관계를 상상적으로 영위하는 의식 및 무의식의(재/인지 및 몰인식의) 형태다. 바로 여기에 적어도 모든 이데올로기적 구축물의, 특히 계급 투쟁의 연속적인 형성체들 속에서 역사적 이데올로기들(“중세적”이고 “부르주아적”이며, 또한 “프롤레타리아적”인)이 담당하는 기능의 기본적인 수준, 근본 층위가 존재한다.

이로부터,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의 종언 역시 그것이 이데올로기의 종언 또는 사회적 관계들의 투명성으로의 회귀의 다른 이름인 한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파괴적인 사실의 확인이 직접 따라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알튀세르는 단지 “자신의 진영에 맞서” 집요하게 작업(그는 이것이야말로 철학의 본질적 기능들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철학자는 진영을 가져야 한다)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명백한 형태상의 모순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는 계속해서―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맑스를 위하여』는 오직 이를 주장하기 위해 쓰여졌다―이데올로기에 대한 이 정의는 유일하게 인식가능한 맑스주의적 정의, 어쨌든 “사회적 관계”에 대한 맑스의 이론화와 일관된 유일한 정의이며, 이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론을 보완할 수 있게 해준다. 분명 (다시 한번 내 주장에 대해 기꺼이 책임을 지겠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이러한 정의는 맑스 자신(엥겔스의 경우는 제쳐 두고)이 정식화할 수 있었던 정의들(특히 『독일 이데올로기』에서)의 정반대일 뿐만 아니라, 알튀세르의 집요한 적용은 사실은 맑스주의 이론 및 그 공언된 완결성에 대한 “해체”로 인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알튀세르가 그러한 정의야말로 “유물론적”이라고 주장하면 할수록, 아무런 어긋남 없이 “유물론적”이면서 동시에 “맑스주의적”인 철학의 지평은 점점 더 그 앞에서 멀어져 갔다.

분명 이 지점에서 알튀세르의 자기비판들에 대해 한 마디 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간략하게, 그저 독자들이 가장 특징적인 텍스트들을 참조하게 하는 정도로 그치고 싶다.

이제 우리는, 이름 그대로 지칭되든 아니든 간에, 다수의 “자기 비판들”을 보게 된다. 이 자기 비판들은, 다른 사정이 동일하다면, 자신을 정당화하고, 자신을 정정하거나 와해시키고(심지어 자신을 파괴하고), 아마도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에게 복귀하려는 양가적인 성향을 표현하는데, 이는 전혀 알튀세르에게 (심지어 철학자들에게) 고유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의 경우에 자기 비판은 그의 실존 및 그가 이론과 맺고 있는 관계의 독특성을 비가역적으로 표시할 만큼 통상적인 비율을 넘어서는데, 이는 그의 사상의 내적인 성향 때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주위의 끔찍한 압력 때문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정정들이 반복되고, 또 이처럼 반복되면서 전환된다는 데 있다. 우리는 또한 알튀세르 자신이 제시한 몇 가지 “길 안내”를 갖고 있지만, 이는 같은 길을 지시해 주지 않고 있으며, 이는 심지어 『맑스를 위하여』를 독해하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여기서 제안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이 주해들―이것들은 때로는 그 자체로 매우 흥미있으며, 또는 문제를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한다―을 사상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이를 텍스트의 문자에 체계적으로 투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앞에서 우리는 『맑스를 위하여』를 그 시대와 그 환경 속에서 읽어야 하지만, 이를 기록 문서로 전환시키지는 말아야 한다고 제안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재발간에서 편집자는 매우 정당하면서 신중하게도, 알튀세르가 『맑스를 위하여』의 외국어 번역본들을 위해 1967년에 작성한, 그리고 거기에서 제시된 해명들 및 평가들은 프랑스 독자들에게도 똑같이 가치를 지니는 [독자들에게]라는 서문을 [후기]라는 이름으로 포함시키고 싶어했다. 이 [서문]에 반영되어 있는 입장들(“이론주의”에 대한 자기 비판, “구조주의”에 대해 거리두기, 과학과 철학의 차이에 대한, 그리고 철학과 정치, 특히 혁명적 정치의 내적 연관성에 대한 강조)은 『레닌과 철학』(1968) 및 『자기 비판의 요소들』(1974)에서는 이론의 시각에서, 『입장들』(1976)이라는 논문 모음집 안의 몇몇 텍스트들(특히 [혁명의 무기로서의 철학] 및 마르타 아르네케르의 저서에 대한 서문으로 쓴 [맑스주의와 계급투쟁])에서는 정치의 시각에서 다시 제시되고 가공된 자기 비판들과 같은 것들이다. 이 자기 비판들은 알튀세르 자신이 선택했던 투쟁 동지들이지만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었던, 하지만 또한 이론의 고상한 시선을 위해 “계급 투쟁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환기시키려고 했던 양쪽 편(프랑스 공산당(PCF)의 공산주의자들과 맑스-레닌주의 청년 동맹(UJCML)의 마오주의자들)에서 동시에 가해졌던 폭력적인 압박을 반영하고 있다. 좀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이 자기 비판들은 자신의 이론적 수단들을 통해 확장된 맑스주의 이론의 장―여기서는 착취 및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조건들이 “최종 심급에서 결정적이다”―안으로 당대의 68년 5월 및 다른 사건들을 끌고 들어가 해명하려고 했던 알튀세르의 시도를 반영한다. 또는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이 자기 비판들은 하나의 “실천”으로서 이론을 끝까지 사고하는 데―이 시도가 사활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해도―는 난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아무런 회고적인 진리도 지니고 있지 않지만, 이 문제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상이한 시기에, 상이한 목적에 따라 생산되었고 상이한 측면들에 집중하고 있는 두 개의 또다른 “자기 비판”을 지적해 두고 싶다. 하나는 [아미엥에서의 주장](1975년에 쓰였고, 1976년 에디시옹 소시알에서 출간된 논문 모음집 『입장들』에 재수록)에서부터 1980년의 파국 이전이나 이후에 쓰인 매우 암시적인 또는 매우 밀도높은 몇 개의 텍스트들(1984년 페르난다 나바로와의 『대담』[『철학에 대하여』, 서관모,백승욱 옮김(동문선, 1995)]에서 나타나는, 근대의 변증론자들보다는 에피쿠로스에서 영감을 받은 “불확실성의 유물론”을 인식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암시 같은 것들)에까지 진행된다. 과소결정이라는 단어가 이전의 저작들에서 단 한 차례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알튀세르는 1975년 국가 박사학위 심사위원들에게 제출한 [아미엥에서의 주장]이라는 텍스트에서 모순과 그에 고유한 “불균등성”에 관해 수수께끼처럼, 과잉결정은, 이것 못지 않게 본질적인 과소결정이 없이는 결코 작용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양자가 교대로 작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과적 결정 자체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동일한 구조에 양자 모두가 구성적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여기서 주석 및 보충이라는 은폐된 형태로 이루어진 자기 비판을 읽어내야 할까? 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자기 비판은 다른 것들보다 더 구성적이라는 점에서 훨씬 흥미로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비판이 제공하는 암시―우연의 필연성을 “구조적으로” 해명한 이후,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는 이러한 우연의 우연성, 동일한 사건의 내부에서 공존하는 가능태들 내지는 경향들의 “과소결정된” 다양성을 표현하는 것이다―는 하나의 테제나 심지어 하나의 가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철학적 프로그램이라는 점 역시 확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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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론>을 <학문>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좀 막연하고, 더 나아가 애매성이 있습니다. <이론>은 분명 science는 아니지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 discipline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이론>의 특징은 하나의 특정한 분과학문에 따라 정향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이론>의 이런 비분과적인 성격은 단지 그 소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작업방식과 스타일에도 담겨 있습니다. <이론>과 관련해서 그 독특성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고 또 스스로의 작업을 자각적으로 <이론>이라 부르고 있는 사람들은 꽤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도 꽤 잘 알려져 있는 프레드릭 제임슨 같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우리나라에는 주로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로 알려져 있지만, 본인 자신은 자신의 작업을 <이론>이라 지칭합니다. 그에게는 <이론>이 전통적인 철학을 대체하고 포괄하는(헤겔의 의미에서 <지양하는>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매우 중요한 학문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곧 <이론>은 전통적인 철학처럼 보편학이라는 과도한 야심을 갖지 않지만, 또 철학처럼 하나의 특정한 분과학문으로 경직되어 있지도 않고, 더 나아가 이론과 실천, 학문과 현실의 관계를 자체 내에 품고 있다는 의미지요.

 제임슨과 다른 의미로 <이론>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인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론>은 미국의 철학계가 유럽철학을 수용하는 한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류 철학 제도 내에 편입시키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도 바깥으로 완전히 몰아내는 것도 아니죠. 반면 문학부 쪽에서 보면 <이론>은 비평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하고 형성하는 한 방식, 그 결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론>의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제도적인 <의도>나 <목적>을 훨씬 넘어서는 또는 일탈하는 결과가 생겨났다는 점입니다. <이론>이 도입되고 형성되는 시점은 제도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연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편의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일단 시작된 과정이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사실 <이론>은 이미 어떤 정형적이고 완성된 틀을 갖고 있는 학문이라기보다는 계속 변모 중에 있고 진화과정 중에 있는 것이어서, 이게 앞으로 어떤 식으로 변모할지 정확히 예견하기는 좀 어려울 듯한데요.

어쨌든 <이론>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초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이제는 상당히 자신들의 작업의 성격에 대해 자각적인 것 같다는 인상입니다. 앞에서 말한 프레드릭 제임슨도 그렇고, 에드워드 사이드나 가야트리 스피박 같이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캘리포니아 대학 수사학과에 있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같은 사람, 버클리 대학 인류학과의 폴 레비나우(Paul Rabinow) 같은 사람, 노스웨스턴 대학 인문학부에 있는 새뮤얼 웨버(Samuel Weber) 같은 사람, 뉴욕 주립대 비교문학과에 있는 로돌프 가쉐(Rodolphe Gasche) 같은 사람, 존스 홉킨스 대학 정치학과의 윌리엄 코널리(William Connolly) 같은 사람, 영국 서섹스 대학에 있다 얼마전 미국 에모리 대학으로 옮김 제프리 베닝턴(Geoffrey Bennington) 같은 사람, 얼마전 국내에도 다녀간 지젝(Zizek), 또는 안토니오 네그리와 『제국』을 공저한 듀크 대학의 마이클 하트나 미국의 대표적인 알튀세르 연구자인 워렌 몬탁(Warren Montag) 같은 사람은 영미권에서 대표적인 <이론가>로 불리는 사람들이고, 또 이를 잘 자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유럽 같으면 철학자로 불릴 만한 사람들이고, 사실 유럽에서는 이 사람들을 모두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소속도 그렇거니와 굳이 자신을 철학자로 부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사람들은 철학을 자신들의 작업의 매우 중요한 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있고, 또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엄격한 철학 훈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버틀러 같은 사람들은 독일에서 가다머나 토이니센 밑에서 헤겔을 공부한 사람이고, 새뮤얼 웨버도 독일에서 아도르노 밑에서 공부한 적이 있고, 제임슨은 독일 철학과 프랑스 철학에 무불통지인 사람이고, 가쉐 역시 독일 관념론 철학에 정통한 사람이죠.

하지만 철학은 이들 작업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자신들이 공부한 철학을 자신들의 각각의 작업의 분야에서 직접 활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컨대 버틀러는 페미니즘과 퀴어이론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고, 이 영역의 문제들을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에서 철학을 활용합니다. 제임슨은 초기에는 변증법 문학이론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나중에는 좀더 일반적인 문화이론의 영역의 문제들을 고찰하는 데 철학을 동원하지요. 이는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다만 그들이 관심을 가진 영역이 문학이론인지, 인류학인지, 사회학인지, 정신분석학인지, 탈식민주의인지 등이 다를 뿐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들은 엄밀한 철학적 능력을 갖추고 각 분과학문에서 활동하는 전문학자들로 보는 게 타당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들의 작업을 <이론>이라는 일반 명칭으로 묶기에는 이들의 관심사라든가 작업 내용, 스타일들이 너무 다양하고 이질적이기 때문이지요. 이 점에 관해서는 저도 뭐라고 딱부러지게 드릴 말씀이 없는데, 제가 미국에서 공부한 적도 없고, 멀리 떨어진 외부관찰자로서 이것저것 단편적인 면모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론>이라는 공통의 명칭으로 묶이고 있고, 또 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작업이 갖는 <이론>으로서의 독특한 성격을 얼마간 자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이들의 작업을 <이론>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분류해 놓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또 너무 글이 길어졌는데요. 어쨌든 제가 볼 때 중요한 것은, 초창기에는 제도적인 우연이나 편의성에서 출발했던 것이 이처럼 새로운 학문 영역, 또는 이론적 작업 영역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 사람들이 이런 걸 만들어냈을까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이 사람들의 문화적 수준이 높다든가, 풍부한 재정적 뒷받침이 있었다든가, 인적 자원이 풍부했다든가 하는, 특수한 환경적 요인도 있겠지만, 보편적인 요인들, 다시 말해 우리도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고, 성취할 수 있는 요인들도 있었다는 거지요. 이런 의미에서 앞의 글에서 몇 가지 측면(학문적 태도, 총서, 학술지, 출판제도 등)을 제 나름대로 한 번 말씀드린 겁니다.

변변치 않은 생각에 이렇게 관심을 보여주시고, 긴 답변까지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 경험을 말씀드리면, 저는 이렇게 번역이 엉망으로 된 책들을 읽으려면 짜증이 나고 답답하기도 해서 도무지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인공지능 연구에서 60%의 정확성만으로도 학습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한편으로는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이 가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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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 김에 한 가지 더 쓰자면, 이렇게 프랑스 철학책들이 무책임하게 번역되고 출판되는 행태는 여러 가지 복합적 원인들의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 문제는 외래 사상과 문화의 수용이라는, 좀더 일반적이고 중요한 문제와 관련이 있고, 여기에 대해 많은 시사점들을 제공해 주는 것 같습니다.

최근 뿌리없는 학문에 대한 비판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제기되고, 우리 학문, 우리 사상에 대한 반성과 모색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우리 현실에 맞지 않고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은 <외국 학문과 사상의 무분별한 추종과 수입>이 많이 질타받고 있지요. 저는 정말 이런 문제제기에 공감하고, 이런 문제의식과 자세가 우리의 학문제도 내에 확고하게 뿌리내리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외국의 학문과 사상을 무조건 백안시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일부에서는 국학과 외국의 학문, 특히 서양 학문을 다소 대립적으로 보기도 하는 것 같더군요. 사실은 <국학>이라는 이름 자체가 아주 이상한 것이고, 역설적인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학문의 성격과 형세를 집약적으로 표현해 주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외국의 학문과 사상을 어떻게 잘 수용하고 변용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 같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례로, 미국 학계에서 <이론theory>이라고 통칭되는 새로운 학문분야의 등장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미국에서 직접 공부하지 않았고, 그저 이런저런 학술지들이나 책, 또는 이런저런 학자들의 발언 같은 데서 얻어들은 거라서,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별로 자신은 없지만, <이론>은 미국 학계가 외국의 학문과 사상을 수용하고 변용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 또는 하나의 가설입니다.

<이론>이라는 분야는 미국의 주류철학(분석철학이나 현상학)과 대비되는 유럽철학 및 인문학의 흐름을 지칭하는 명칭인데, 주로 영문학과나 불문학과, 독문학과, 비교문학과 같은 문학부들, 그리고 인문학부(humanity) 같은 데서 많이 한다고 합니다. 유럽, 특히 프랑스의 철학자들이 소속되어 있는 곳도 이런 곳이고, 또 강의나 강연, 연구활동을 하는 곳도 이런 곳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데리다나 발리바르 같은 사람도 캘리포니아 대학의 버클리 분교 소속으로 있죠. 그리고 사실 우리가 볼 때에는 철학자들로 분류될 수 있는 미국의 학자들도 소속은 이처럼 문학부 쪽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구요.

이 <이론>이라는 분야는 60년대 말, 특히 1966년에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열린 유명한 구조주의 회의가 시발점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회의에는 데리다와 라캉, 롤랑 바르트, 지라르, 장-피에르 베르낭 같이 이후에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과 문화계를 대표한 사람들이 거의 모두 참석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의 이후 미국에 본격적으로 구조주의를 비롯해서 프랑스의 철학과 이론이 수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미국의 철학계는 분석철학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철학과에서는 이 사람들을 수용할 만한 여지가 없었고, 대신 이 사람들은 불문학과나 비교문학과 또는 영문학과 등으로 초빙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프랑스 철학자들 및 다른 유럽의 철학자들이 이렇게 문학부 소속으로 활동하게 된 건 얼마간 우발적인 제도적 환경 때문이었는데, 이게 참 놀랍게도 매우 중요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미국의 문학이론계는 50년대까지 신비평이라는 흐름이 지배적이었는데, 60년대 이후로 소수의 이론가들이 이 흐름을 대체할 새로운 비평이론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공명한 게 바로 구조주의였는데, 구조주의는 신비평의 이론적 엄격함 못지 않은 엄밀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신비평처럼 문학 자체의 영역에 폐쇄되어 있는 게 아니라, 사회 및 문화 일반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 문학계에서 구조주의는 점차 확산되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구조주의 자체는 아시다시피 원래 철학에서 처음 시작된 게 아니라, 인류학이나 기호학,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및 과학사 같은 인문사회과학 영역에서 시작되었고,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론가들이나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철학자들이 이 분야의 문제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다듬어지고 세련된 지적 흐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구조주의 철학은 철학자들의 성향과 관심사에 따라 매우 다양한 면모와 이론적 발전을 보여주었지요.

그래서 구조주의는 처음에는 문학의 방법론이나 비평의 원리로 도입되었지만, 워낙 그 성격 자체가 학제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고 인문사회과학 영역 전반을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어서, 처음 도입의 의도를 넘어서 자체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구조주의는 좁은 의미의 문학의 분야를 넘어서 인문사회과학 영역 전체에 걸친 논의에 개입하게 되고, 이런 분야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해 주게 됩니다.

 아울러 70년대 초에 미국에서는 이처럼 인문학 전반의 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학술지들이 창간되는데, Diacritics나 Critical Inquiry 같은 학술지들이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이 학술지들은 구조주의를 비롯한 프랑스 철학만이 아니라, 기호학과 문학이론, 인류학, 사회학,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 영화이론,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같은 다양한 분야의 논의들을 소개하고 토론하기 위한 장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 학술지들의 대표적인 필자들이 바로 데리다, 폴 드 만, 푸코, 리요타르, 에드워드 사이드, 가야트리 스피박, 주디스 버틀러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학술지들이 큰 성공을 거두고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비슷한 성격의 학술지들이 여럿 창간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또 <이론>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론>과 관련해서 한 가지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출판사들의 작업입니다. <이론>이 뿌리를 내리고 확산되는 데에는 출판사들의 역할이 매우 컸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특히 미네소타 대학 출판부에서 1980년대와 90년대 중반까지 약 15년간 발행했던 <문학의 이론과 역사Theories and History of Literature> 총서가 큰 역할을 했는데요. 이 총서는 Wlad Godzich(폴란드 태생의 비교문학자인데, 발음이 어떻게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와 다른 독문학 전공자(이름이 생각나지 않네요^^)가 편집 책임을 맡아서 100여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들은 주로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철학자, 문학이론가, 비평가들의 번역서이고, 일부는 미국 학자들의 저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총서에서 출간된 대표적인 책들로는 리요타르의 『포스트 모던 조건』, 『갈등』, 들뢰즈/가타리의 『카프카. 소수 문학을 위하여』, 아도르노의 『미학이론』, 블랑쇼의 『무한한 대화』, 만프레트 프랑크의 『신구조주의란 무엇인가?』, 장-뤽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 아감벤의 『언어와 죽음』, 바흐친의 『도스토예프스키 시학의 문제들』 등이 있습니다. 많은 이론가들이 지적하듯이, 이 총서는 미국 학계에 유럽의 철학 및 문학이론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총서 이후에는 스탠포드 대학 출판부에서 지금도 출간 중에 있는 <자오선Meridian> 총서나 <현재의 문화적 기억Cultural Memory in the Present> 같은 총서가 비슷한 역할을 계속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MIT 대학 출판부에서 나오는 <독일 사회사상 연구Studies in German Social Thought> 총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하버마스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수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이론>이라는 분야는 이제 단순히 문학이론이나 문학비평의 한 조류가 아니라, 새로운 학문으로 평가받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데리다 같은 사람은 <이론>의 등장을 20세기 후반의 가장 주목할 만한 학문적 사건으로 들고 있기도 합니다. 미국 철학과에서 학생이 푸코나 데리다, 들뢰즈에 관심을 보이면, 교수가 그런 건 <이론>이니, 철학과 말고 다른 데 가서 하라고 말한다는군요. 그런데 <이론>에서는 분석철학의 작업까지도 수용하고 있으니, 참 놀라운 잡식성이자 왕성한 생명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고, 별로 근거도 없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는데,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면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이론>을 길게 소개한 건,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이 <이론>이라는 분야가 외국의 학문과 사상을 수용하는 매우 흥미로운 방식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국내의 어떤 프랑스 철학 전공 선생님들은 미국의 프랑스 철학 수용은 왜곡투성이라고 폄하하시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게 강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론>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미국 사람들은 외국 학자들의 책이나 글을 논의할 때 엄격하게 영역본을 중심으로 논의를 합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외국의 원전을 인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요. 더 나아가 이 사람들이 프랑스나 독일의 이론을 수용하는 방식을 보면, 이 사람들은 그 이론을 원래의 맥락에서 분리시켜서, 자기 나라, 자기 학계의 맥락 속에 집어넣습니다. 그 이론이 원래 그 나라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역할을 했느냐보다는, 이것이 자기 나라, 자기 학계의 맥락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의미를 갖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거지요.

그래서 가령 로티 같은 사람이 데리다를 수용하는 방식을 보면, 이 사람이 도대체 데리다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로티는 데리다 자신보다는 신실용주의의 맥락에 부합하는 데리다의 측면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미국 사회학자들은 푸코의 권력이론에 대해 배타적인 관심을 보이고,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이나 퀴어 이론가들은 후기 푸코의 ⌈성의 역사⌋에 관심을 국한하지요. 또 최근에 발간된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들은 인종이론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이는 푸코가 프랑스 사회에서 논의되고 평가되는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고, 따라서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일면적이고 폭력적인 수용방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지극히 주체적이고 생산적인 수용방식입니다.

재미도 없는 글이 자꾸 늘어지는데, 정말 두 가지만 더 얘기하고 끝내겠습니다. <이론>의 사례에서 덧붙여 주목해야 할 점은 학자들이 논의를 조직하는 방식과 출판계의 작업 방식일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론>이 그처럼 확산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말했던 학술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반면 국내의 경우에는 Diacritics나 Critical Inquiry에 비견될 만한 학술지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창작과 비평』이나 이전에 나오던 『현상과 인식』, 또는 『이론』 같은 학술지가 한 사례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창작과 비평』은 그 위상에 비하면, 아직도 동인지의 성격(또는 백낙청 선생의 잡지라는 성격)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국내에는 아직 대중성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한편으로는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쉽게 반증될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예컨대 『이론』 같은 경우는 쉽지 않은 내용들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1만부 이상씩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이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지, 대중성이나 상업적 수익성의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학진에서 시행하고 있는 우수학술지 인정제도는 잘못하면, 이런 식의 학술지의 출간을 더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행 제도는 너무 분과중심적이고, 또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공인 학술단체 중심으로 평가의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연구업적을 인정받기 위해 공인 학술단체에서 내는 전문학술지에만 투고하려는 상황에서, 위와 같은 성격의 학술지들이 출간되고 정착될 수 있을지 다소 의문입니다(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제도 자체를 없앨 수는 없겠지요).

출판계의 역할과 관련해서는 먼저 국내에도 <총서> 체계가 빨리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이나 유럽, 특히 프랑스 학계는 철저하게 총서 체제로 운영되고 있어서, 학문적인 신뢰성과 체계성을 확보하고, 또 연구업적의 축적이 가능합니다(그 나름의 문제도 있겠지만요).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대중적인 관심이 많은 분야일수록 출판사들이 상업적인 목적에 따라 자의적으로 책을 선정하고 출판하기 때문에, 신뢰성이나 체계성도 없을 뿐더러, 졸속 번역과 출판으로 대중의 지적 의욕을 저하시키고 경제적인 낭비만 일삼는 결과를 낳습니다. 학문의 축적 같은 것은 당연히 생각하기도 어렵구요.

그런데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대개 영세한 곳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출판사들에 <총서>를 하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 출판부나 일부 대형 출판사들이 좀더 투자를 많이 해서, 모범적인 <총서>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도 각 분야에 걸쳐 유능한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현재의 출판체제는 이 분들이 역량을 발휘하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길을 거의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문의 자생성이나 외래 학문과 문화의 주체적 수용을 논의하는 것은 자칫 공염불에 그칠 우려가 있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지금까지 제가 너무 뻔한 얘기를 너무 지루하고 길게 말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랬다면 젊은 친구의 치기 정도로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데리다의 『불량배들』이나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때문에 너무 열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좀 자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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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처음 글을 올리는 데, 이렇게 부정적이고 답답한 글을 올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며칠전 인터넷 서점에서 얼마전 출간된 데리다의 [불량배들]이라는 책을 구입했습니다. 저는 올해 초 파리에 있을 때 막 출간된 이 책을 사서 읽었는데, 현재의 세계정세에 관해 데리다가 체계적으로 논평하고 있는 점이 매우 흥미있었고, 또 책의 내용도 플라톤에서부터 20세기의 칼 슈미트나 벤야민, 장-뤽 낭시에 이르는 서양의 정치철학 전통에 관한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어서, 잘 번역해서 출간한다면 국내에 좋은 논의거리를 제공해 주겠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4월 경에 [휴머니스트]라는 출판사에서 전화를 해서, 이 책을 번역해 볼 생각이 없는지 물어 왔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3월경 문학과 지성사에서 이 책의 번역권을 얻으려고 갈릴레 출판사에 연락을 했더니 이미 저작권을 다른 출판사에서 사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느 출판사인지, 혹시 동문선 출판사가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재빨리 저작권을 사갔더군요.

어쨌든 저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만, 제가 논문 준비 때문에 당장은 겨를이 없으니, 내년까지 시간적인 여유를 좀 주면 해보겠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대번 난색을 표시하면서, 다른 역자를 좀 추천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서울대 불문과 강사로 계시는 박성창 선생을 추천했는데, 이전에 데리다 책도 한권 번역하고, 불어 능력이라든가 프랑스 문화에 대한 이해라든가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볼 때, 제일 적합한 역자 중 한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국 박성창 선생도 시간이 없었는지,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을 번역한 이경신 씨가 이 책을 번역했더군요. 저는 사실 이 책을 인터넷 서점에 주문하면서 한편으로는 반가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히 불안했습니다. 이경신 씨가 번역한 [니체와 철학]은---책 자체가 번역하기에 그리 까다롭지 않긴 하지만---꽤 읽을 만했기 때문에, 그래도 좀 믿을 만한 역자를 골랐구나하고 내심 안도했고 또 반가웠지요. 하지만 불안했던 이유는 번역이 너무 빨리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저한테 전화가 온 게 4월달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의 번역은 빨라야 5월 중에나 시작되었을 텐데, 11월 말에 책이 나왔으니, 결국 5개월 안에 번역을 끝냈다는 이야기지요.

5개월 안에 번역을 끝내는 게 기술적으로는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문제는 데리다의 글쓰기가 상당히 미묘하다는 점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데리다는 글쓰기 자체가 글의 철학적 내용을 수행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의적인 의미를 지니는 단어나 구절, 문장을 잘 구사하고, 논의의 전개 역시 수사학적 어법과 철학적 논증이 미묘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번역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의 저작들, 특히 나중에 나온 저작들은 이전 저작들에서 사용했던 개념들이나 논증, 문제들을 별다른 지시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의 작업들에 익숙하지 않을 경우, 논의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불과 5개월 만에 출간된 이 번역본에 불안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 불안감은 그대로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한 마디로 이 번역본은 오역이 없는 페이지가 없다고 할 만큼 수많은 오역들 및 비문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정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동문선이나 인간사랑 같은 일부 출판사에서 최근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프랑스 철학자들이나 정신분석 관련 이론가들의 저작권을 모두 독점하고, 능력도 책임의식도 없는 역자들을 고용해서 대량으로 오역본들을 남발하고 있긴 하지만, 저는 그래도 능력과 책임의식을 갖춘 역자들이 여럿 있다고 생각해 왔고, 이경신 씨도 그 중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너무 어이가 없고 실망스러운 번역이었습니다.

 최근 나온 권순모, 이진경이 번역한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도 같은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이 책의 번역이 잘 됐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어떤 철학 사이트에 들러 봤더니 프랑스 철학을 전공하는 모 교수가 이 책의 번역을 칭찬하더군요. 불과 하룻만에 책의 절반 가까이를 읽었고, 원전을 읽는 것에 비해 많은 시간을 벌었다면서요. 저로서는 참 이해할 수 없는 게, 저는 이 책의 원전을 일주일 정도면 읽는데(4-5차례는 읽은 것 같습니다), 이 번역본은 하루에 20쪽을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매쪽마다 서너개의 작은 오역들이나 틀린 정보들이 나오고 있고, 거의 매쪽마다 심각한 오역이 하나씩 나와서, 원본과 대조해서 일일이 수정하다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책의 번역이 잘 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이 책에 많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는 의미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스피노자 철학에 관해 그만큼 무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책이 내용이나 논변이 매우 미묘한 데 반해, 들뢰즈의 문체가 매우 간결하면서 유려하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경신 씨나 이진경 씨 같이 제가 얼마간 신뢰하던 역자들이 이처럼 무책임하게 책을 번역해 놓는 걸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김성도 교수나 양운덕 선생이 데리다 책을 형편없이 번역해서 내놓았을 때도 그랬지만, 한국의 지식인들(특히 프랑스 철학 관련)이 과연 지식인으로서 책임감이나 윤리의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데리다 책 한 권을 번역할 때, 20000원 정가에 2000부를 찍고 6% 정도의 인세를 지급한다면, 240만원 가량이 외국으로 지급됩니다. 이 정도의 돈이야 학습효과만 충분히 얻을 수 있다면, 큰 돈이라고 보기 어렵겠지요. 그런데 이처럼 엉망으로 번역되면,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책을 산 독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게 될까요?

 1) 자신의 지적 능력을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데리다는 무언가 심오한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가 능력이 없어서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따라서 이들은 프랑스 철학은 너무 어려워서 자기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는 거의 프랑스 철학 및 철학책들을 접하지 않을 겁니다.

2) 반대로 프랑스 철학자들은 제대로 논변을 구사할 줄도 모르는 형편없는 놈들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실제로 어떤 동양철학 전공 선생님은 어떤 프랑스 철학자의 책을 아예 갈기갈기 찢어버렸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학계나 문화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프랑스 철학은 철학도 아니다>라는 말이 널리 유포되어 있는 게 전혀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 데리다를 비롯한 프랑스 철학에 강한 관심을 갖고 있고, 또 열심히 공부하려는, 하지만 아직 프랑스어나 외국어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이들은 어떻게든 이 책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겠지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現>이라는 경구를 믿으면서 몇번씩 읽고 공책에 옮겨적으면서, 골똘히 의미를 따져보려고 노력할 겁니다. 또 이렇게 해서 <나름대로> 이 책을 다 읽고 난후 뿌듯한 감정도 갖게 되겠지요. 그런데 이들이 이 책을 읽고서 뭔가 얻은 게 있을까요? 아마 이러저러한 단편적인 정보나, 이해될듯 말듯한, 그래서 더 오묘하게 보이는 문체(!)에 대한 알 수 없는 매력 정도겠지요.

저는 사실은 프랑스 철학이 국내에서 이렇게 큰 대중적인 관심을 유지하고 있는 게 좀 신기합니다. 이렇게 많은 오역들과 잘못된 정보들이 넘쳐나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이런 철학에 매력을 느끼고, 공부할 동기를 얻는지 이상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들뢰즈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그래도 국내에 번역된 책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들뢰즈 책들의 번역상태가 낫고, 또 거의 모든 책들이 번역되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러니 결국 들뢰즈나 네그리의 (또는 이전의 알튀세르나 푸코의) 저서들만이 어느 정도 학습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겠지요.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는데, 어쨌든 저는 이번 기회에 이렇게 프랑스 철학이나 다른 이론서들의 무책임한 번역과 출판의 행태를 그래서 수수방관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의 20여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이런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건, 우리 지식인 사회의 자정 능력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것, 또는 아직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자리잡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뜻하고, 이럴 경우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대다수의 선량한 독자들과 우리 지식계일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되면 계간지 등에 프랑스 철학의 국내 수용 및 번역의 문제점들에 관해 좀더 체계적으로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보다 더 능력 있고 영향력 있는 분들이 직접 나서 주신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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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3-12-29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문제제기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데리다에 '갑작스런' 신간이 퍽 반가웠고, 한 카페에 소개도 했었는데, 좀 면목없게 돼 버렸네요. 저도 산발적으로 그런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번역의 문제점들에 관한 좀더 체계적인 지적"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향력 있는 분들' 기다리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활동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03-12-31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3-12-31 0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본의아니게 실례를 저질렀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 글쎄요,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번역의 문제점에 관해서는 좀더 체계적으로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마침 1월 초에 낼 번역책의 [해제]를 쓰고 있는 중이어서, 며칠 있다가, 가능하면 그 사이트에도 게재를 하겠습니다. 사실은 1월 초에 낼 책이 피에르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라는 책이고(이렇게 말하면 결국 제 신원이 드러나겠지요), 이 책의 [해제]에서도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가 지니고 있는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는 주로 개념 번역의 문제여서 선생님께서 궁금해하시는 점에는 큰 도움이 안될 것 같습니다(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요). 하지만 이 일이 끝나는 대로 좀 시간을 내서 제가 생각하는 문제점들을 몇 가지 지적해 보겠습니다.
위의 글들은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이트에 푸념삼아 올렸던 글들이고, 프랑스 철학책들의 번역의 문제점 및 이를 산출하는 원인들에 관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 [나의 서재]에 올려둔 건데, 일이 참 공교롭게 되어, 선생님께 피해를 드리게 되었군요.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호네트가 하버마스의 후계자라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인정의 정치, 인정 투쟁의 문제가 미국에서 논의될 때 호네트의 책이 주요한 전거로 활용된다는 점을 지적하려고 했던 거지요. 어쨌든 관심을 기울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출처 : balmas님의 "이론에서는 혁명, 현실에서는 민주당"

그리고 한 마디 첨언한다면, 제가 김소연 후보에 대해 지지 서명을 한 것은, 계급 정당을 세워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계급 정당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고 믿고, 그것을 추진하는 분들에게 도덕적으로, 또 가능하다면 조금이나마 물질적으로도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김소연 후보를 지지한 것은, 랑시에르가 말했듯이 몫 없는 이들이 발언할 수 있게 공간을 열어놓는 일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지, 계급 정당이 현재 한국정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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