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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1-25  

balmas님, 아래 사진의 도자기들이 바로 이탈리아 도공들이 제작한 백자들이에요. 2001년 이탈리아 세라믹 비엔날레에서 히트쳤던*^^*

이수경씨는 조선 백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탈리아의 도공들에게 몇년 전 작고하신 김상옥 선생님의  <백자부(白磁賦)>라는 시와 도자기 사진들을 보여주었대요.(제 사촌동생 말로는 이 시는 고등학교 모의고사에서도 곧잘 나온대요-_-;; 머..백자는 선비의 순수한 절개를 암시한다..머 이런게 아닐까요??) 이탈리아 도공들은 이를 토대로 자기네들이 상상한 위의 백자를 만들게 되었던 거죠. 그런데 잼나는 사실은 이탈리아 도공들이 읽었던 김승옥 선생님의 시는 컴퓨터 자동 번역 프로그램을 이용해 한글을 영어로 번역한 다음, 이것을 다시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것이라는 점이죠. 2000년도 즈음에 컴퓨터 번역프로그램이란 아마도 신뢰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을 거에요. "Time flies like an arrow"가 "시간 파리들은 화살을 좋아한다"고 번역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돌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이탈리아 도공들은 번역 프로그램의 질과는 상관없이 조선백자를 정성스레 빚었겠죠. 이수경씨는 이렇게 하이브리드한 도자기가 탄생하는 과정을 일부러 비디오로 담았는데, 당시 한 평론가가 이를 보고 위트가 넘치는 최고의 탈식민지주의적인 작업이라고 평했어요. 이 작업이 이탈리아에서 소개된 후 한국에 들어와서 제작한 작품이 바로 balmas님이 서재에 올린 임항택 선생님이 깨트린 도편을 붙여 만든 번역된 도자기들이랍니다.

이수경씨가 <번역된 도자기들>로 미술계를 놀라게 하기 전에, 제가 찍은(?) 작품이 있었는데요 한 번 올려볼게요. <순간이동 연습용 그림(Painting for out of body travel)>이란 제목의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그림입니다.


오른편에 헬멧과 구명조끼, 팔꿈치 보호대를 천장에 매달아 놓은게 보이시죠.

저걸 착용하고 밑의 깔판 속으로 순간이동하나봐요^^;; <이상한 나라의 폴>이란 만화가 생각나네요.




이 그림은 80년대 강남에 우후죽순으로 생긴 아파트 실내에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 바로 입주자의 교양 수준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키치적인 그림에서 착안했다고 작가가 얘기하더군요. 일단 그런 그림을 입수한 후 반으로 뚝 자릅니다. 그러면 가운데 부분의 공백이 생기게 되는 그 부분을 작가가 아크릴 물감으로 색칠하는 거죠. 그림 오른쪽 밑부분에 손잡이가 보이세요? 이 손잡이로 그림 길이를 맘대로 조정할 수 있어요. 아파트라는 서양식(?) 공간 예절에는 반드시 쇼파가 있어야 하잖아요. 80년대 초반에 강남에 아파트가 생기면서 싸모님들은 한결같이 쇼파 위 벽이 허전하다는데 공감하고 그림을 사서 걸었었죠. 그런데 당시 동양화들은 대부분 세로로 길쭉한 액자에 표구되어 있었기 때문에 쇼파 위 벽에 걸기에는 무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싸모님들은 과감히 화가들에게 가로로 그려달라고 부탁했다죠. ㅎㅎ 그래야 쇼파 위 벽에 떡 하니 보기 좋게 걸어놓을 수 있으니까요. 사실 요즘도 심심찮게 재력있는 싸모님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그림 크기를 작가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이수경씨의 풍자가 예사롭지 않죠?


 
 
balmas 2008-01-26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쫄바지님, 고맙습니다. "번역된 도자기" 연작 시리즈가 그렇게 시작된 거군요. 나머지 작품들도 정말 흥미롭네요. 이 사진들과 쫄바지님 설명은 여기 두기는 아까우니까 제가 페이퍼로 옮겨놓을게요. :-)
 


류우 2008-01-25  

오랜만에 와 봅니다^^

대학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공부를 업(業)으로 하려하니 바빠서인지, 아니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자주 못 찾아뵙게 되는군요(조금은 궁색한 변명인가요?ㅋ)

 

어쨌든! 오랜만에 발자국 꾹~ 찍고 갑니다-

 
 
balmas 2008-01-25 0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오랜만입니다. 대학원 시험 준비를 하나 보죠? 열심히 해서 꼭 합격하기를 바랍니다. ^^
 


자꾸때리다 2008-01-24  

발마스님 질문이 있는데요.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저 말고도 여럿 있을 것 같은데요....

대문자 "역사"의 진보 같은 것이 없다면, 모든 것이 우연이라면,....

"진보" 정치라는 것이 가능한가요???????

 
 
자꾸때리다 2008-01-2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리고 제가 철학교수님들을 만나뵌 적이 거의 없어서 그런데요. 누군가를 "~~주의자"라고 부르는 경우 중에서요, 예컨데 "성균관대 박종현 교수는 플라톤주의자다" "이기상 교수는 하이데거주의자다" 등등 이라고 부를 때, 그렇다면 그 분들이 정말 플라톤처럼 이 세계 너머의 참 본질의 세계가 있다고 믿거나, "존재의 빛" 같은 게 있다고 믿으시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전에 젊은 플라톤 전공자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은 언어 없는 사유가 있다라고 주장하시고 (예컨데 "저기 사람이 하나 있다" 같은...) 형이상학적 본질도 있다고 믿으시길래 적잖이 당황한 적이 있어서요...

balmas 2008-01-25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Grimaud님, 대문자 역사의 진보가 없다면, 바로 "모든 것은 우연이다"라는 말이 성립이 되는 건가요? ^^; 우연은 늘 필연의 틈새, 필연들의 연쇄 고리가 서로 마주치고 엇갈리는 곳에서 나타나는 게 우연인데, 필연 없이 어떻게 우연만 따로 있겠습니까? 진보 정치가 가능할지 묻기 전에 우선 과연 "모든 것은 우연이다" 이런 명제가 진짜 성립할 수 있는 말인지 먼저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

그건 저도 모르죠. 그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아닌지 ... 플라톤주의 같은 경우는 특히 쓰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뜻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지칭하는 사람이 "플라톤주의"라는 말로 무엇을 뜻하는지 먼저 따져봐야 할 겁니다.

자꾸때리다 2008-01-25 14:53   좋아요 0 | URL
"대문자 역사"가 없다면 "이렇게 될꺼야"라는 필연은 있을지 몰라도 "이렇게 되어야만 해!"라는 필연은 불가능하지 않나요...? 또 움베르트 에코가 ‘세계 내의 모든 질서는 신의 것이지만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로 객관적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말도 세계의 우연성에 대한 언급이 아닌가요?...도덕 법칙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과학 법칙 역시 우연적이라면...

자꾸때리다 2008-01-25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정말 철학 교수님들 중에 세계 너머의 세계의 존재를 믿는 분도 있으신가요? 종교인 빼고...

balmas 2008-01-26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움베르토 에코가 그런 말을 했나요? 저는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데, 혹시 어떤 책의 어떤 부분인지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이렇게 될꺼야"라고 한다면, 그건 필연과는 좀 다르고, 오히려 "개연"이나 "추측"에 가까운 거 아닌가요? Grimaud님은 필연과 우연을 말하면서, 단어들을 좀 정확하지 않게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필연과 우연이라는 범주가 존재론적 범주라면, 개연 같은 건 인식론에 속하는 범주일 테고, 당위 같은 건 윤리적 범주겠죠. 그런데 Grimaud님은 이 세 가지 측면을 한데 섞어서 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군요. 우선 필연과 우연이 어떤 범주인지 좀 정확히 경계 설정을 해놓고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문자 역사와 진보 사이에 왜 필연적인 관계가 성립해야 하는 건지, 그것부터 생각을 좀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또 필연적인 관계가 성립한다면, 그 때 그 필연의 성격은 어떤 건지, 가령 존재론적인 필연성인지
아니면 당위적인 성격의 것인지, 또는 인식론적인 법칙에 해당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겠죠.

저로서는 왜 양자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선 스스로 그 관계를 명료하게 밝혀야겠죠.

철학 교수들 중에 "세계 너머의 세계의 존재"를 믿는 분이 계신지 안 계신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이라면 믿는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요? "세계 너머의 세계의 존재"를 이야기하는데 종교인을 빼야 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당연히 그 분들을 포함해서 생각해야겠죠.그렇다면 그런 분들이 당연히 계시겠죠.

그런데 사실 "세계 너머의 세계"라는 표현 자체는 사실 좀 애매모호한 점이 있습니다. 첫번째 세계는 "감각적 세계"나 "현상 세계", 또는 "대상들의 세계"를 가리킬 수도 있고(이 경우 두번째 세계는 "비감각적 세계"나 "본질 세계", 또는 "주체적 세계"를 가리키겠죠), 아니면 "현세로서의 세계"를 뜻할 수도 있고(이 경우에는 "내세", "죽음 이후의 세계"), 또는 "지구로서의 세계"를 뜻할 수도 있겠죠(이 경우 두번째 세계는 "외계인 또는 외계 생명체의 세계"가 되나요? ^^). Grimaud님이 뜻하는 게 두번째 "현세로서의 세계"를 넘어선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믿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다른 경우라면 상당히 많을 수 있죠.

자꾸때리다 2008-01-26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종교인들 중에서는 그런 분들이 당연히 많겠죠. 그저 저는 이성적 추론을 중요시 하는 철학자들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나 해서요... 특히 자기가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기시는 분들의 경우도요... 저는 세계 너머의 세계를 단순히 현상계 너머의 본체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세계를 뜻했네요...

제가 말한 "이렇게 될꺼야"는 자연적인 필연성을 뜻한 것이었어요. 물론 그런 자연적 필연성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지, 인식가능한지는 인식론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요. 제가 의미한 것은 그런 자연적인 필연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초월적 수준의 형이상학적 당위, 예컨데 소크라테스가 자신은 언제나 자신의 행위의 이유를 찾으려 했다고 할 때 그런 "근거"들, 신의 명령이나 이데아들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의미한 것이었네요...

balmas 2008-01-26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자연적인 세계"라는 말도 여전히 애매하긴 하죠. 님이 말하는 "본체계"도 초자연적인 세계의 일종일 테고, 내세의 세계도 그렇고, 비감각적 세계나 본질 세계도 마찬가지고, 또 주체적인 세계(이런 투박한 표현을 계속 쓴다면)도 그렇겠죠.

형이상학적인 당위의 필연성이라 ... 그런데 그리모님은 그게 진보와 어떤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자꾸때리다 2008-01-26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칸트의 본체계에는 신과 같은 존재자의 세계도 포함되긴 하네요. 다만 저는 인식론적인 한계 너머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차원이 다른 세계를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다만 저는 형이상학적 당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약 선과 악에 대한 초 역사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가치-도덕 판단 역시 역사적인 우연성을 띄게 되어서 결국 상대화 되어버리지 않는가라는 고민이 있어서요... 제가 진보적인 가치라고 소중히 여기는 것도 다른 입장에 선 사람에게는 "너만의 생각일 뿐" 이라는 비아냥을 받게 되지 않을런지...

balmas 2008-01-26 0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그리모님 생각을 좀더 정확히 알겠네요. 그리모님 이야기는 결국 상대주의, 특히 가치와 관련된 상대주의에 관한 문제겠군요. 그렇다면 그런 고민을 해볼 수 있겠죠.

이 문제는 그리모님이 앞으로 스스로 좀더 공부를 해봐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간단히 한 가지 점만 지적해둘게요. 우선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라는 게 과연 일의적인 개념인지, 다시 말해 그 자체로 절대적인 개념들인지, 아니면 상이한 다른 해석의 여지를 포함하고 있는 개념인지 생각해볼 수 있겠죠. 제가 보기에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라는 말 자체는 "추상적"인 관념들입니다. 다시 말해 무수히 많은 상이한 규정들을 추상하고 있고 따라서 무수히 많은 해석의 여지가 존재한다는 뜻이죠. 따라서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에 관해 좀더 의미있는 논의를 하려면 그것들을 어떤 규정들, 어떤 입장들과 관련시켜서 생각해보는 게 좋죠. 가령 절대주의의 경우에는 플라톤식의 절대주의(정말 그렇다고 가정한다면)도 있을 수 있고 칸트식의 절대주의 내지 하버마스식의 완화된 절대주의도 있겠고, 아니면 레비나스식의 절대주의도 생각해볼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상대주의의 경우에도 로티식의 상대주의도 있을 것이고, 푸코식의 상대주의나 니체식의 상대주의, 또는 리오타르식의 상대주의나 레비스트로스식의 상대주의도 있겠죠.

이렇게 생각해보면, 사실 그리모님이 처음에 제기한 문제는 너무 큰 문제, 다시 말하면 너무 추상적인 문제라는 게 쉽게 드러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는 사실 거의 모든 철학자들의 사상이나 입장과 관련되는 문제거든요.

그래서 제가 권하고 싶은 것은 이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이 주제에 관한 대표적인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문제의식을 좀더 구체적이고 좀더 정확히 가다듬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좀더 고민의 내용도 뚜렷해지고 좀더 깊어질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농담삼아 한 마디 하자면 "너만의 생각일 뿐"이라는 건 비아냥일 수도 있지만, 거꾸로 엄청난 칭찬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존재한 다른 모든 철학자들과 다른 자신만의 생각을 갖는다는 건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ㅋㅋㅋ
 


좋은날 2008-01-24  

안녕하세요^^; 휘수라고 합니다.

새움에서 하는 세미나는 흠, 시간이 참 애매해서 꾸준히 참석하기가 버겁네요. 흐...ㅠ_ㅠ

그나저나 여쭈어 볼 것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이번에 수강편람을 뒤져 보니까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마르크스의 유령들'로 강의를 하시는데, 저 같은 학부생도 청강가능한가요?   

 
 
balmas 2008-01-24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휘수 오랜만이다. ^^ 새움 세미나는 시간이 안되면 할 수 없지 뭐. ㅎㅎ
데리다 강의는, 글쎄, 석박사과정생을 위한 강의긴 한데, 학부생이 청강하는 것이 안되는지는 잘 모르겠네. 특별한 내규 같은 게 있을 것 같지는 않고 ... 나는 별로 금지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대학원 강의니까 다뤄야 할 내용도 많고, 논의도 좀 쉽지 않을 테고 ...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학부생이 청강하는 것을 따로 금지하거나 할 생각은 없으니까 알아서 해라. :-)
 


자꾸때리다 2008-01-22  

발마스님 세미나는 언제쯤 종결이 되는 것인가요? 저는 방학 중에 끝나는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야기가 학기 중에도 계속 이어진다고 하더라구요. 저 방학 끝나면 공포스런 본과 생활을 시작해야 해서 근본적으로 참석 불능인데... 방학 중에는 어디까지 나가실 계획이신가요?

 

p.s 발마스님 블로그에서 연상되는 모습하고 오프라인에서 뵈는 모습하고는 정말 동일인이라고 믿겨지기 힘들더군요...허걱...인터넷에서는 중고딩스런 문체에 개그본능 분출하시지만 막상 오프라인에서 보이는 모습은 문자 그대로 "근엄한 교수의 표상" 그 자체이신듯....ㅋㅋㅋ

 
 
balmas 2008-01-22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시구나. Grimaud님 이제 본격적으로 고생문이 열리네요. ㅎㅎㅎ
이 세미나는 1차 계획만 해도 아마 1학기 내내 계속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방학 중에는 아마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논문은 끝내고 {재생산에 대하여}를 시작해야 할 텐데, 모르겠네요. :-)

ㅋㅋㅋ 온라인의 모습이 아마도 본 모습이 아닐까요? 오프라인에서는 철학에 억눌린 모습이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