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깨닫는 것은 삶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고없이 찾아오는 많은 것들로 인하여 꿈은 항상 꿈으로 그치고 마는 경우가 태반이다. 농경시대의 삶은 생노병사의 흐름이 급변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물론 제도적 변화나 국가의 흥망으로 인한 구조적 문제를 제외하고- 예측가능한 테두리내에서 행동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를 한번 둘러보자. 사방에 죽음의 냄새가 깔려있고, 사랑 또한 공기 속에 부유하고 있다. 누구나 어느 순간 느닷없는 사랑과 죽음 앞에 당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음~ 이건 마치 무슨 보험 광고 같기도 하다. 실은 그렇다. 이 시대는 보험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갑자기 닥칠지 모르는 무엇인가를 대비해서 어떤 준비를 해 두어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외출>의 두 남녀는 이런 느닷없이 다가온 사고로 만나게 된다. 외도하는 두 남녀의 각기 다른 남편과 아내로서 만나게 된 두사람은 그야말로 느닷없이 사랑에 빠진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닥칠지 모르는 교통사고가 하필이면 외도하는 두 남녀에게 닥침으로써 사랑의 첫 대면을 하게되는 남녀 주인공은 혼돈스럽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사실(배우자의 외도)과의 만남은 혼돈이다. 사고로 누운 배우자가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는 바람과, 살아서 변명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지나면 애증도 사라지고, 이해의 폭은 넓어진다. 그러나 이해는 어디까지나 이해이고, 그것이 변치않는 사랑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우연성은 <외출>의 영문제목 April snow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4월에 내리는 눈이란 무엇인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다. 봄을 좋아하고, 눈을 좋아한다는 주인공의 바람을 한번에 해결시켜버린 4월의 눈은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들이 삶으로 편입되고,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린(교통사고로 죽게되는 남자) 삶의 아이러니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랑도 죽음 마냥 결국 누군가에게 아무런 예고없이 닥치는게 현대인의 운명이지 않을까?
그런 장난같은 운명에 우리가 그나마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동병상련. 같은 일을 같이 겪는 사람들만큼 가까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도 없다.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사고가 주위에 널려있듯이, 특별한 경험의 공유 또한 이미 일상다반사가 되어버렸다. 사랑의 가능성 또한 일상다반사가 되었지만, 헤어짐도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초연해지기도 쉬워졌다. 그래서일까, <외출>에서 나타나는 사랑은 뜨겁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냥 흘러가는 바람마냥 세월속으로 따라간다. 하지만 그 잔잔한 흐름이 알 수 없는 애틋함을 가져다준다. 알수 없는 사이, 우리는 서로 위로가 되어준 것일까? 사랑의 종점이 과연 어떻게 될지 여전히 우리는 똑같이 알 수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은 되어주기를 바랄뿐이다.
그럼에도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특히 배용준이 흘리는 눈물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감정의 과잉처럼 느껴진다. 한 순간의 사랑이지만 헤어져야만 하는 사랑의 아픔 때문일걸까? 아니면, 자신도 이런 불륜을 해보니, 아내가 가졌던 그 불안하지만 달콤한 사랑을 이해하게 됐기 때문일까? 즉, 그 이해는 바로 불륜에 대한 이해이며, 따라서 그것은 불륜으로부터 배척당한 자기자신에 대한 존재를 자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일지도...
그런 감정의 과잉에 조금 영화보기가 괴로운 것을 제외하면, 영화의 끝맺음은 마음에 와 닿는다.
손예진 : 어디로 가죠? 배용준 : 어디로 갈까요? (눈이 덮힌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사랑에 대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엔딩장면은 크레딧의 마지막까지 시선을 사로잡아둔다 )
아무도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느닷없이 찾아오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