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달리기
조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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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내 장례식엔 백명은커녕 그 십분의 일인 열 사람도 오지 않을 것 같다. 안 와도 괜찮지만. 누군가 그걸 해주기 어렵기도 하다. 그저 화장이나 해주면 다행일 것 같다. 그건 다른 사람이 해주어야 하는구나.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냥 죽을 때쯤 어딘가로 사라지는 게 나을 것 같지만 그것도 쉽지 않겠다. 그때 내가 어떨지 모르니 말이다. 걷다가 죽어야 할 텐데. 난 어딘가 많이 아프다 죽고 싶지 않다. 그저 살다가 잠을 자듯 떠나는 게 바람이다. 이건 큰 바람이겠다. 여기 《이어달리기》에 나온 성희는 암이었다. 암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성희는 조카 일곱한테 편지를 쓴다. 편지에는 조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 적혀 있었다. 성희는 조카 일곱을 만나고부터 한사람 한사람한테 뭔가 일을 하게 했다. 그걸 해내면 선물을 주었다고 할까. 그런 이모 좋을지 안 좋을지. 지금 난 귀찮아서 하기 싫은데 어릴 때 그런 사람을 만났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거면 해도 하기 싫은 거면 못할 거 아닌가. 성희가 만난 조카는 어느 정도 그걸 즐겁게 여긴 듯하다.


 성희가 만난 조카라니. 성희의 언니가 결혼하고 조카가 된 소정을 빼면 다 진짜 조카가 아니다. 친구 딸이거나 옆집 아이 옆집 세탁소집 아이 병원에서 만난 아이 애인 조카다. 그런데 왜 여성은 아이한테 자신을 이모라고 하라고 할까. 이모는 다른 엄마라는 뜻이기도 하지 않나. 이렇게 말하지만 고모보다는 이모가 가까운 느낌이 들기는 한다. 그러고 보니 성희가 만난 조카는 다 여자아이구나. 성희는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죽음을 앞두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른 사람보다 조카들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편지를 쓰고 저마다 할 일을 하면 무언가 주겠다고 했겠지. 성희는 꽤 부자인 것 같았다. 자신이 건물 주인인 엘리제는 레즈비언 전용 가게다. 어쩌면 성희는 레즈비언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있기를 바라고 그런 곳을 죽 이어갔는지도. 자신이 주인이기만 하고 그곳을 할 사람은 따로 두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아도 어딘가에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겠지. 성희 조카 일곱은 저마다 자신이 할 일을 하려고 한다. 아마 성희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걸 알아서였겠다. 성희는 좋은 이모였다는 생각이 든다. 한사람은 거의 부모한테 버림 받기는 했지만, 성희가 있어서 그나마 나았다. 진짜 조카가 아니어서 성희가 아이한테 편지를 보내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사람도 있지만 안 좋게 여긴 사람 있었을까. 책을 보니 안 좋게 여긴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것도 다행이다. 부모가 있다 해도 다른 괜찮은 어른이 있으면 사람은 훨씬 좋겠지. 성희 조카 조금 부럽기도 하구나. 난 성희 같은 이모는 별로 되고 싶지 않다. 되려고 해도 될 수 없구나. 누구하고든 잘 지내지 못하니 말이다.


 이 소설은 여성 이야기다. 세대가 다른 여성이라 해도 이렇게 지낼 수 있다는 이야기구나. 성희 조카가 다 친하게 지낸 건 아니지만, 몇 사람은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어쩌면 성희 장례식에서 만나고 앞으로 잘 지낼지도 모를 일이다. 성희 장례식은 성희가 죽기 전에 한 거다. 살았을 때 장례식을 했다는 말 어디선가 본 적 있는데. 실제 하는 사람 있을지도 모르겠다. 성희는 장례식에 조카와 백명이나 되는 사람을 불렀단다. 대단하다. 백명이라니. 내가 앞에서 왜 내 장례식에 올 사람 이야기를 했는지 알겠지. 내가 죽은 다음에 하는 장례식 무슨 소용인가. 살았을 때나 죽었을 때나 쓸쓸하겠지.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아니 죽은 다음엔 쓸쓸함 따위 느끼지 않겠다. 다행이다.


 사람은 저마다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겠지. 성희와 일곱 사람, 혜주 수영 지애 예리 태리 소정 그리고 아름 이야기기도 하다. 일곱 사람은 성희를 만나서 사는 게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성희는 좋은 어른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될까. 어쩌면 성희도 자신이 어른이다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성희는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한 걸 거다. 좋은 어른은 자신이 그렇게 여기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보는 게 아닐까. 한사람은 여러 사람과 이어지기도 했다. 조카뿐 아니라 성희도 조카가 있어서 좋았겠다. 진짜 이모와 조카도 사이 좋게 지내기 어렵지 않나. 이제는 이런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피붙이가 아니어도 이모, 고모 조카가 되는.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성희는 편지 쓰기를 좋아한단다. 이거 하나는 나랑 비슷하구나. 나도 편지 쓰기 좋아한다. 난 친구한테만 쓴다. 성희는 자신이 쓴 걸 기억한다는데, 난 기억하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 잊고 한 말을 또 하기도 한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편지 쓰는 이야기가 많지는 않지만, 이런 말하니 편지 쓰고 싶구나. 성희가 보낸 편지 받은 사람 좋았겠지. 조카뿐 아니라 애인도. 그랬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내가 쓰는 편지가 그러기를 바라설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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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3-14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중국에서 자신이 죽기 전 장례식을 치른 사람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봤어요. 괜찮은 생각 같더군요. 자신이 죽기 전에 정말 친한 사람들만 불러서 미리 의식을 치르는 것, 남은 사람들에 대한 상실감을 줄여주는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희선 2023-03-18 02:42   좋아요 1 | URL
저는 인터넷에서 그 기사 제목 봤어요 제목만 보다니... 자신이 죽기 전에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이 좀 있기도 한가 봅니다 한국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일본에는 있다고 한 것 같기도 한데... 갑자기 헤어지는 것보다 먼저 마지막 인사 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실제 아주 헤어지면 슬프겠지만...


희선

서니데이 2023-03-16 2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내 장례식이면 나는 볼 수 없으니. 내가 있긴 한데, 있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자리네요.
생전에 아끼던 사람들과 모이는 것도 좋을 것 같긴 해요.
전에 오쿠다 히데오의 책에서도 비슷한 소재가 있었던 생각이 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희선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희선 2023-03-18 02:45   좋아요 1 | URL
죽기 전에 장례식 치르는 이야기 이게 처음은 아닐 거예요 저는 살았을 때나 죽었을 때나 올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네요 장례식 치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하고 싶어요 그저 화장하고 나무에 묻어 달라고 해야겠습니다(누군한테 그런 걸 말하나) 그전에 정리를 해야 할 텐데... 저는 죽음을 생각하면 정리가 생각납니다

서니데이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영혼 없는 말은 어떤 걸까요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말’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네요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말은

세심함이 없는 거겠습니다


사람마다 성격은 다릅니다

누군가는 세심하고

누군가는 덜 세심합니다

모두한테 세심함을 바라면 안 되겠지요


영혼 없는 말은

적당히 흘려 들어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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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3-17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혼 없는 말이라도 이왕이면 기분 좋은 말을 듣고 싶군요.ㅋㅋ

희선 2023-03-18 02:39   좋아요 1 | URL
안 좋은 말 안 하겠지요 거의 좋은 말이죠 가끔 좋은 말이어도... 자신을 생각하고 해주는 말이니 고맙게 여겨야겠네요


희선
 




사람이 희망일까


상처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낫게 해주는 사람도 있어


크게 기대하지 않고

마음을 나눠야지


같은 사람과 마음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이 같지 않기도 해

그것도 괜찮아


사람 마음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아

그걸 탓하면 괴로울 뿐이야

그냥 가게 둬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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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바닷속에선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 같아

조용하고 숨이 막힐 듯한 바닷물이 짓눌러서

깊은 바닷속 물고기는 납작해


깊고 깊은 바닷속엔

인어가 사는 용궁성이 있을까

깊고 깊은 바닷속엔 갈 수 없어서

상상만 커져가


이건 좀 현실인데,

깊고 깊은 바닷속엔

사람이 버린 쓰레기가 가득할 것 같아

쓰레기여도 저절로 분해되고

물고기한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깊고 깊은 바닷속은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곳이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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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3-17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쓰레기를 물고기가 먹고 그 물고기(생선)를 우리가 먹고...
그러니 우리가 그 쓰레기를 먹는 거죠.
자연을 소중히 지켜야겠어요.

희선 2023-03-18 02:36   좋아요 1 | URL
바다에 미세플라스틱이 많다는 말 듣고, 물고기가 그런 걸 먹는다는 걸 알고 물고기는 안 먹어야겠구나 했습니다 참치캔을 먹었네요 지구를 생각해야 할 텐데... 지구가 병들면 그게 다 사람한테 오는군요


희선
 




쌓이는 그리움

쌓이는 미움

쌓이는 고마움

쌓이는 원망

쌓이는 미안함

쌓이는 슬픔

쌓이는 기쁨

쌓이는 화

쌓이는 너

쌓이는 나



쌓이는 눈……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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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3-17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쌓이는 사랑
쌓이는 감사한 마음...

희선 2023-03-18 02:34   좋아요 1 | URL
안 좋은 것보다 좋은 걸 쌓고 쌓이면 좋겠네요 그래야 할 텐데...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