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숨
조해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좀 긴 시간 동안 이 책 《환한 숨》을 만났어. 단편소설 한편 한편 보고 생각해 봤다면 나았을 것 같은데 그러지는 못했어. 한편 보고 나면 또 다음을 봤어. 여기엔 단편이 열편이나 담겼어. 적지 않지. 열편을 하나로 말하기는 어려워. 저마다여도 비슷한 게 있을지도 모를 텐데. 지금을 사는 사람이라 해야 할까. 소설가 조해진 잘 모르는데, 마지막 소설 <문래>는 조해진 이야긴가 하는 생각을 했어. 소설 쓰는 사람 이야기여설지도.


 지금도 어디에선가 재개발이 일어나고 그곳에 살던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하겠지. 이 재개발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70년대, 80년대일까. 어쩐지 난 한때만 재개발이 일어났다고 여겼던 걸지도 모르겠어. 재개발은 지금도 일어나잖아. 여전히 그런 소설이 보이니 말이야. 그런 거 잘 쓰는 사람은 김혜진이 아닐까 싶어. 여기에 실린 <문래>는 예전 이야기야. 부모가 지방에 살다가 서울로 오고 문래 6가라는 곳에 살게 되고, 첫째는 외가에 맡기고 둘째는 집에 혼자 두고 문을 잠그고 부모는 일하러 나갔어. 그런 일이 70년대에만 있었던 건 아니던가. 여기 나오는 ‘나’가 어릴 때 집에 혼자 있었을 때 별 일 없어서 다행이군. ‘나’는 문래를 떠난 뒤 문래를 잊었다가 미국에서 문래와 비슷한 곳에서 문래를 떠올려. ‘나’는 문래를 잊은 걸 부끄럽게 여긴 걸지도. 지금도 문래 같은 곳 있겠어.


 이 소설집에 담긴 소설을 보면서 여기 나오는 사람이 하는 일이 여러 가지다는 생각을 했어. <환한 나무 꼭대기>에서는 간병인, <흩어지는 구름>에서는 대학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하나의 숨>에서는 고등학교에서 계약직으로 일했어. 이렇게 쓰고 보니 두편은 아주 다른 일은 아니군. 하나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하나는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거네. <흩어지는 구름>에서 ‘나’는 본래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사람이었어. ‘나’가 사귀는 사람이 영화를 만들려 했는데 잘 안 된 것 같아. ‘하나의 숨’은 어쩐지 슬퍼. 여기 나오는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야. 특성화고 아이가 실습 나갔다가 사고로 죽기도 했잖아. 그런 일 지금도 일어나겠지. ‘나’는 계약직 선생님이어서 하나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 정말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


 첫번째 소설도 조금 말해야겠군. <환한 나무 꼭대기>에서 강희는 혜원이 죽고 혜원이 관리해 달라고 한 아파트에서 살아. 혜원은 그 아파트를 언젠가 자기 아이한테 주라고 했는데. 혜원은 결혼하고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남편과 헤어지고는 만나지 못한 것 같아. 헤어진 남편은 아이와 미국으로 가. 혜원이 아들한테 전자편지를 보냈지만, 아이는 그걸 보지도 않고 답장도 보내지 않았어. 혜원과 남편은 왜 헤어졌을까. 갑자기 이런 게 알고 싶다니. 소설도 다 말하지 않기도 하는군. 강희가 산에 갔다가 돌아온 것도. 강희나 혜원이나 쓸쓸했군. 사람은 다 쓸쓸해. 혜원이 죽음을 맞을 때까지 강희가 곁에 있어서 혜원은 괜찮았을 것 같은데. 강희가 혜원이 준 아파트에서 조용히 사는 거 그렇게 나쁘지는 않겠지. 혜원 아들은 앞으로도 소식 없을 것 같아.


 다시 생각하니 소설 여러 편은 조금 다르면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오기도 하는군. <하나의 숨> <경계선 사이로> <파종하는 밤>에는 산업재해가 나오는 거. <경계선 사이로>는 신문기자 이야기군.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신문기자가 된 사람은 각서를 써야 했어. 시위에 참여하지 않고 노조도 만들지 않고 들어가지 않겠다는. 신문기자는 제대로 글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연진은 그런 기자가 되고 싶었을 텐데. 선배인 윤희 어머니는 청소하는 일을 했는데, 일하는 곳에서 사람을 줄여서 오래 일해야 했어. 그러다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는데, 어머니가 평소에 술을 마셨다면서 산업재해로 인정해주지 않았어. ‘하나의 숨’에서는 일터에서 하나한테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터 사람이 하나 엄마를 찾아오고 소송하지 않겠다는 서류와 위로금을 주었어. 하나 엄마는 나중에야 그걸 알았어. <파종하는 밤>에선 온도계를 만들던 남자아이가 수은 중독으로 죽은 걸 다큐멘터리로 만들려고 했는데, 그건 그저 꿈일 뿐이었을까.


 예전보다 일하는 곳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지. 여전히 산업재해는 일어나잖아. <눈 속의 사람>을 보니 언젠가 알게 된 책이 떠올랐어. 《구술사로 읽는 한국전쟁》(한국구술사학회 엮음, 휴머니스트, 2021)인데, 끝에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을 말했어. 어쩌다 보니 최길남은 정쟁 때 미군 말을 들어야 했지만, 눈 속에 있는 한 사람을 구했어. 누군가를 구하는 게 자신을 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높고 느린 용서>를 보니 미투가 생각나고 어떤 사람이 떠올랐는데. 교수인 아버지가 학생을 성추행 했다고 하면 아이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이야기는 미투 뒤 아버지가 사라지고 남은 식구 이야기 같은 느낌이었어. 피해자 식구도 힘들지만, 가해자 식구도 힘들 거야. 효진과 경진이 살기를.


 알쏭달쏭한 <숨결보다 뜨거운>이었어.




희선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3-03-19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중에 나온 단편들과 달리 한 시대를 뜨겁게 살다간 이들의 삶들이 담겨져 있네요.
요즘 가벼운 에세이들 웹소설, 숏트 영상만 읽혀지고 팔리는 시대에 이런 작품속에 담긴 인생의 밝음과 어둠 읽고 나면 마음 속에 잔향이 오래 갈 것 같습니다 ^^

희선 2023-03-22 23:29   좋아요 1 | URL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이나 일어나는 일이 담겨 있기도 하네요 소설가는 그런 걸 아주 잊지 못하겠습니다 여전히 지난 날 일어난 일을 소설로 쓰고 지금 일어나는 일을 쓰기도 하네요 제가 그런 걸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희선

페넬로페 2023-03-19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환한 숨‘ , 좋게 읽었는데 리뷰쓰기를 놓쳤어요. 세상엔 왜그리 슬프고 안되는 사람들도 많은지요^^
세상이 공평해지면 좋겠어요**

희선 2023-03-22 23:31   좋아요 2 | URL
어두운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희망을 찾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눈 속의 사람>은 더 그런 느낌이 듭니다 <하나의 숨>은 참 슬프네요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나니...


희선

2023-03-19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2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3-03-20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어제는 날씨가 조금 흐리고 차가운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어제보다 따뜻한 날이었어요.
이번주 화수목 날씨가 기온이 많이 올라갈 것 같은데, 이제 3월도 많이 지나왔네요.
편안한 하루 보내시고, 좋은 밤 되세요.^^

희선 2023-03-22 23:37   좋아요 2 | URL
어제 오늘 많이 따듯한 것 같기도 합니다 벚꽃 아직이지만 제주에는 피었다는 말이 있기도 하더군요 지금 피면 빨리 피는 것 같은데... 삼월 열흘도 남지 않았네요 하루하루 잘 갑니다 하는 것도 없는데... 이건 늘 그렇군요 서니데이 님 봄 가끔 만나세요 밖에서 걷기...


희선
 




어떤 건 조금만 해도 쉬고 싶어

쉽게 지치는 건

하고 싶지 않은 걸 해설까


하고 싶은 건 시간을 잊고

쉬지 않고 하지

정말 쉬어야 하는 건

그땔 거야


하고 싶은 걸

오래 하려면

가끔 쉬어야 해

알았지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운 모으기

──복짓기





보이지 않는 운을 모을 수 있을까


언젠가 일본 드라마에서

운을 모으는 사람을 봤어

어떻게 모았느냐고

다른 사람은 그냥 지나치는 걸 했어

좋은 일이라 해야 할까


길에 떨어진 휴지 줍기

또 뭐가 있을까

작은 것에 집착하지 않기


그걸 보고 나도 운을 모아볼까 했어


운 모으기라 했는데

이건 복짓기와 다르지 않겠어

자신보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생각하고 하면

훨씬 좋겠지




희선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페넬로페 2023-03-18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운 모으기 사례를 보니 사실 조금만 신경쓰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네요.
먼저 마음부터 잘 쓰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봐요^^

희선 2023-03-19 02:17   좋아요 1 | URL
자기가 좋으려고 하기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한 게 자신과 가까운 사람한테 가면 좋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괜찮겠습니다 아주 큰 일이 아니어도 괜찮죠


희선

2023-03-18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9 0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9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2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8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9 0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9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요리는?




 처음부터 이런 말 하면 재미없겠지만, 난 음식은 만들지 않는다. 그러니 잘 하는 것도 없다. 그렇다고 누가 해주느냐 하면 아니다. 해주는 사람 없다. 사다 먹지도 않는다. 사 먹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은 사 먹지 않지만 과자는 사 먹는구나. 요새는 과자도 조금 별로던가.


 밥은 할 수 있다. 밥은 어렸을 때부터 했다. 엄마가 아파서 집에 없었던 날이 오래 이어져서. 그때 좀 슬펐구나. 언젠가는 집에 쌀이 없어서 밥을 못 먹기도 했다. 내가 밥이 먹기 싫어서 안 먹은 게 아니고 쌀이 없어서 밥을 못 먹은 건데. 그런 때가 있었다니. 밥은 하고 다른 건 대충 만들어서 먹는다. 언제부턴가 밥 먹는 날보다 안 먹는 날이 더 늘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먹는 건 아니다. 밥이 아닌 다른 걸 먹는다.


 자신이 먹는 밥도 잘 해서 먹으라고 하지만, 밥 먹는 시간 조금 아깝지 않나. 한번 밥을 먹으려면 한시간 정도 걸린다. 짧으면 삼십분. 밥을 하고 먹고 설거지까지 하려면. 음식은 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먹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런 거 생각하면 조금 덧없기도 하다. 그래도 마음을 담아 음식하는 사람 대단하다 생각한다. 먹을 사람을 생각하고 이런저런 수고를 아끼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건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먹어야 한다.


 난 텔레비전을 안 봐서 잘 모르는데, 요즘은 먹는 방송을 많이 하는가 보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는데, 그런 방송을 할 수 있는 건 지금은 못 먹는 사람이 없어서란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잘 먹는다 해도 어딘가에는 밥 한끼 먹기 힘든 사람 있을 거다. 텔레비전 방송이 어두우면 안 되겠지만, 없는 사람도 생각하면 좋겠다. 내가 없어서 그렇구나. (20230313)








30 '어린 시절' 하면 떠오르는 친구가 있어?




 어린 시절 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거의 연락이 끊겼다. 어릴 때 친구가 하나도 없지 않아서 다행이다 여기기도 했지만, 연락하지 않으니 다행도 아닌가. 모르겠다.


 중학생 때 친구 하나가 생각났다. 내가 어떻게 하다 그 친구와 편지를 쓰게 됐는지 생각나지 않는데, 그 친구하고 편지를 썼다.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편지만 쓰다니. 학교에서 말도 거의 안 했다. 글로만 말했다. 난 그게 이상하지 않았는데 그 친구는 어땠을지. 지금 생각하니 비밀 친구 같았구나.


 난 어렸을 때 책을 읽지 않았다. 잘 모르기도 해서. 그 친구가 책을 주었는데, 그건 바로 《어린 왕자》였다. 언젠가 어떤 선생님이 모자를 그리고 이게 뭐냐고 물어본 적 있는데, 그 선생님이 언제 선생님인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그 선생님은 나이를 먹고도 어린이 마음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걸 이제야 알다니. 어릴 때는 어른은 어린이와 다르다 생각하지 않나. 지금은 내가 어릴 때나 다르지 않다 느끼기도 하지만. 그 선생님 이야기를 들은 게 먼저인지 책을 받은 게 먼저인지 이것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그게 생각나서.


 친구가 준 《어린 왕자》를 바로 읽었는지, 그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한번쯤 읽고 잘 모르겠다 했을지도. 시간이 흐르고 읽기는 했다. 그때도 어떻게 읽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어린 왕자》 하면 그 친구가 생각나기도 한다. 나와 중학생 때 편지를 나눈 친구. 지금 잘 지내고 있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20230314)








 서른한번째 물음을 다른 걸로 쓰기로 했다. 본래 물음 ‘31 내가 닮고 싶은 엄마의 모습은 어떤 거야?’ 에 답을 쓰기 무척 어려워서. 신이 모든 사람한테 가지 못해서 엄마를 세상에 보내줬다고 하지 않나. 누구한테나 엄마가 있기는 하지만, 함께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갓난 아기 때 버림 받거나 어렸을 때 엄마가 세상을 떠나거나 해서. 그밖에도 더 있겠다. 내가 그런 경우는 아니지만. 세상 모든 엄마는 대단하다. 그 말만 하고 싶다.




31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건 뭐야?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건 뭐냐고 묻는 데 대답하기도 쉽지 않구나. 기지개를 편다. 자고 일어났으니.


 사람이 다 아침에 일어날까. 아침에 자는 사람도 있지 않나. 내가 그렇구나. 새벽에 자려고 하는데 어쩌다 보니 이월부터 지금까지 늦게 잔다. 그렇게 자면 더 일어나기 힘든데.


 일어났을 때 바로 스트레칭 같은 거 하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이런 말을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잘 몰라서 대충 몸을 움직일 뿐이다. 일어나기 싫으니 일어났을 때 잠이 깨려면 몸을 움직이는 게 좋겠다. 앞으로는 잠이 깨면 일어나서 몸을 좀 움직여야겠다. 그러면 다시 자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지.


 정말 게으르구나. (20230315)








32 오늘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번은 정말 할 말이 없군요. 할 말이 없겠다 생각한 때 많네요. 제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다른 사람이 저한테 말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도 만나지 않으니 말을 듣지 못합니다. 실제 만나지 않는다 해도 이렇게 인터넷을 하기도 하는군요. 그때 들은 말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좋은 하루 보내라고, 이건 제가 하는 말이군요.


 듣고 싶은 말은 뭘까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네요. 잘 지내지, 잘 지내. 이런 말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안 좋은 말을 듣는 것보다 괜찮겠지요.

 좋은 하루 즐거운 하루길 바랍니다. (20230316)








33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어?




 이번 주는 왜 이렇게 어려운 것만 있는지. 쓰기는 하지만 뭐라 대답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난 지금까지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순간이 한번도 없어. 나이만 먹고 어른은 되지 못하는구나 싶어.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다 어른이다 하기도 하는군.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어른, 쉽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어릴 때 어른을 봤을 때는 대하기 어려웠는데,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아. 아니 난 모든 사람이 다 어렵군.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어른 안 되면 어때. 미안해. 어른이 되지 못해서. 아마 앞으로도 못 될 거야. 그렇다고 해서 아이처럼 떼를 쓰거나 하지는 않아. 그저 조금 철이 없을 뿐이야. 조금이 아니고 많인가.


 나이가 어려도 어른스러운 사람도 있군. 부모가 철이 없거나 부모가 없는 사람은 어쩐지 철이 빨리 드는 것 같아. 어릴 때는 나름 철 모르게 살기도 해야 할 텐데. 아니 꼭 그런 때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마음과 다르게 어른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 그것도 그렇게 쉽지 않겠지. 그런 사람은 가끔 그 어른이라는 말을 잠시 내려놓기도 해야 할 텐데, 그런 시간 있겠지. 있기를 바라. (20230317)







 한주가 또 가는군요. 이번주 뭐 하고 지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은 조금밖에 못 보고. 이월부터 죽 이러는군요. 그러면서 저를 아주 한심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꼭 해야 할 건 별로 없어서 그런가 봅니다. 꼭 해야 하는 건 없다 해도 안 하면 안 되는 것도 있군요. 그건 그저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거라도 잘 하면 좋을 텐데.


 지난주는 많이 따듯했는데, 이번주는 좀 쌀쌀하기도 했네요. 봄이 그렇죠. 변덕스러운 봄. 그런 거 때문에 아주 좋아하지 못하는 건지. 예전엔 봄이 올 때쯤 기분 좋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저 그래요. 이건 게으른 제 탓이군요.




희선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페넬로페 2023-03-18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 때부터 밥을 계속 먹어와서 그런지 밥과 반찬, 국, 찌개의 조합이 언제나 좋아요.
밖에서는 다른 걸 먹지만 집에서는 되도록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요즘 딸아이가 없어 저도 빵으로 끼니를 때울때가 많아요~~
엄마라는 단어속에는 왜이리 많은 것이 담겼을까요^^

희선 2023-03-19 01:57   좋아요 1 | URL
누군가와 함께 먹는다면 이것저것 챙겨서 먹겠지만, 혼자면 그런 거 잘 안 하게 되겠습니다 저는 늘 혼자 먹어서... 어릴 때는 그러지 않기는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제가 이상한 거겠지요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어요

많은 사람이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이런저런 감정이 들겠습니다


희선

stella.K 2023-03-18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음식해서 먹는 거 웬지 시간 낭비고
대충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원래 그렇게 살아오질 않아서 먹는 즐거움을 포기 못하겠더군요.
그러다 보니... 그 다음부턴 말 안해도 알겠죠? ㅎㅎ

이런 질문을 계속 이어가시는군요.^^

희선 2023-03-19 02:00   좋아요 0 | URL
stella.K 님은 저녁에는 안 드시잖아요 그건 좋은 거죠 저녁에 안 먹으면 잠도 편하게 잘 것 같습니다 몸도 잠을 잘 때는 쉬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장기라고 해야겠군요 음식 하는 걸 즐기고 즐겁게 먹는 것도 좋은 거죠

처음엔 하면 괜찮겠다 했는데, 조금 어렵기도 하네요 쓰고 싶지 않은 게 있기도 해서... 그러면 안 쓰면 될 텐데...


희선

책읽는나무 2023-03-18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끼라도 굶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하기 싫어도 억지로 밥상을 차려 먹다가, 아이들 개학하고 나면 혼자 밥을 먹게 되다 보니...이것 참~ 나 혼자 먹으려고 막 지지고 볶고 모든 게 하기 싫어져 대충 먹거나, 배가 많이 안 고프면 건너 뛰기도 하고, 라면이나, 빵으로 때우게 되는 삶으로 되돌아갔네요.
엄마라는 존재는 뭘까요?
참 아이러니 합니다.
그래도 희선님. 잘 챙겨 드세요.
덧 없어도 일단은 잘 챙겨 드셔야 합니다.
이것 참...요즘같은 저의 일상을 봤을 땐, 이런 말 할 자격은 없지만요ㅋㅋㅋ

희선 2023-03-19 02:15   좋아요 1 | URL
다른 사람이 있으면 뭔가 만들기도 하겠지만, 자기만 먹으려고 하는 건 귀찮기도 하죠 아침이나 저녁은 함께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은 학교에서 늦게 올지도 모르겠네요 학교가 아니고 다른 데서 공부를 할지도... 방학 끝나고는 주말에나 식구가 모여서 밥을 먹겠습니다 다 모이지 못하는 날도 있겠군요

책읽는나무 님도 잘 드셔야겠네요 저는 게을러서 그렇기도 해요 책읽는나무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주말이군요 주말이니 즐겁게 보내세요 밥 혼자 드시지 않아도 되겠네요


희선
 
이어달리기
조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쩐지 내 장례식엔 백명은커녕 그 십분의 일인 열 사람도 오지 않을 것 같다. 안 와도 괜찮지만. 누군가 그걸 해주기 어렵기도 하다. 그저 화장이나 해주면 다행일 것 같다. 그건 다른 사람이 해주어야 하는구나.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냥 죽을 때쯤 어딘가로 사라지는 게 나을 것 같지만 그것도 쉽지 않겠다. 그때 내가 어떨지 모르니 말이다. 걷다가 죽어야 할 텐데. 난 어딘가 많이 아프다 죽고 싶지 않다. 그저 살다가 잠을 자듯 떠나는 게 바람이다. 이건 큰 바람이겠다. 여기 《이어달리기》에 나온 성희는 암이었다. 암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성희는 조카 일곱한테 편지를 쓴다. 편지에는 조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 적혀 있었다. 성희는 조카 일곱을 만나고부터 한사람 한사람한테 뭔가 일을 하게 했다. 그걸 해내면 선물을 주었다고 할까. 그런 이모 좋을지 안 좋을지. 지금 난 귀찮아서 하기 싫은데 어릴 때 그런 사람을 만났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거면 해도 하기 싫은 거면 못할 거 아닌가. 성희가 만난 조카는 어느 정도 그걸 즐겁게 여긴 듯하다.


 성희가 만난 조카라니. 성희의 언니가 결혼하고 조카가 된 소정을 빼면 다 진짜 조카가 아니다. 친구 딸이거나 옆집 아이 옆집 세탁소집 아이 병원에서 만난 아이 애인 조카다. 그런데 왜 여성은 아이한테 자신을 이모라고 하라고 할까. 이모는 다른 엄마라는 뜻이기도 하지 않나. 이렇게 말하지만 고모보다는 이모가 가까운 느낌이 들기는 한다. 그러고 보니 성희가 만난 조카는 다 여자아이구나. 성희는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죽음을 앞두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른 사람보다 조카들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편지를 쓰고 저마다 할 일을 하면 무언가 주겠다고 했겠지. 성희는 꽤 부자인 것 같았다. 자신이 건물 주인인 엘리제는 레즈비언 전용 가게다. 어쩌면 성희는 레즈비언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있기를 바라고 그런 곳을 죽 이어갔는지도. 자신이 주인이기만 하고 그곳을 할 사람은 따로 두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아도 어딘가에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겠지. 성희 조카 일곱은 저마다 자신이 할 일을 하려고 한다. 아마 성희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걸 알아서였겠다. 성희는 좋은 이모였다는 생각이 든다. 한사람은 거의 부모한테 버림 받기는 했지만, 성희가 있어서 그나마 나았다. 진짜 조카가 아니어서 성희가 아이한테 편지를 보내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사람도 있지만 안 좋게 여긴 사람 있었을까. 책을 보니 안 좋게 여긴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것도 다행이다. 부모가 있다 해도 다른 괜찮은 어른이 있으면 사람은 훨씬 좋겠지. 성희 조카 조금 부럽기도 하구나. 난 성희 같은 이모는 별로 되고 싶지 않다. 되려고 해도 될 수 없구나. 누구하고든 잘 지내지 못하니 말이다.


 이 소설은 여성 이야기다. 세대가 다른 여성이라 해도 이렇게 지낼 수 있다는 이야기구나. 성희 조카가 다 친하게 지낸 건 아니지만, 몇 사람은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어쩌면 성희 장례식에서 만나고 앞으로 잘 지낼지도 모를 일이다. 성희 장례식은 성희가 죽기 전에 한 거다. 살았을 때 장례식을 했다는 말 어디선가 본 적 있는데. 실제 하는 사람 있을지도 모르겠다. 성희는 장례식에 조카와 백명이나 되는 사람을 불렀단다. 대단하다. 백명이라니. 내가 앞에서 왜 내 장례식에 올 사람 이야기를 했는지 알겠지. 내가 죽은 다음에 하는 장례식 무슨 소용인가. 살았을 때나 죽었을 때나 쓸쓸하겠지.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아니 죽은 다음엔 쓸쓸함 따위 느끼지 않겠다. 다행이다.


 사람은 저마다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겠지. 성희와 일곱 사람, 혜주 수영 지애 예리 태리 소정 그리고 아름 이야기기도 하다. 일곱 사람은 성희를 만나서 사는 게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성희는 좋은 어른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될까. 어쩌면 성희도 자신이 어른이다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성희는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한 걸 거다. 좋은 어른은 자신이 그렇게 여기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보는 게 아닐까. 한사람은 여러 사람과 이어지기도 했다. 조카뿐 아니라 성희도 조카가 있어서 좋았겠다. 진짜 이모와 조카도 사이 좋게 지내기 어렵지 않나. 이제는 이런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피붙이가 아니어도 이모, 고모 조카가 되는.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성희는 편지 쓰기를 좋아한단다. 이거 하나는 나랑 비슷하구나. 나도 편지 쓰기 좋아한다. 난 친구한테만 쓴다. 성희는 자신이 쓴 걸 기억한다는데, 난 기억하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 잊고 한 말을 또 하기도 한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편지 쓰는 이야기가 많지는 않지만, 이런 말하니 편지 쓰고 싶구나. 성희가 보낸 편지 받은 사람 좋았겠지. 조카뿐 아니라 애인도. 그랬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내가 쓰는 편지가 그러기를 바라설지도.




희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리의화가 2023-03-14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중국에서 자신이 죽기 전 장례식을 치른 사람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봤어요. 괜찮은 생각 같더군요. 자신이 죽기 전에 정말 친한 사람들만 불러서 미리 의식을 치르는 것, 남은 사람들에 대한 상실감을 줄여주는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희선 2023-03-18 02:42   좋아요 1 | URL
저는 인터넷에서 그 기사 제목 봤어요 제목만 보다니... 자신이 죽기 전에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이 좀 있기도 한가 봅니다 한국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일본에는 있다고 한 것 같기도 한데... 갑자기 헤어지는 것보다 먼저 마지막 인사 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실제 아주 헤어지면 슬프겠지만...


희선

서니데이 2023-03-16 2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내 장례식이면 나는 볼 수 없으니. 내가 있긴 한데, 있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자리네요.
생전에 아끼던 사람들과 모이는 것도 좋을 것 같긴 해요.
전에 오쿠다 히데오의 책에서도 비슷한 소재가 있었던 생각이 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희선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희선 2023-03-18 02:45   좋아요 1 | URL
죽기 전에 장례식 치르는 이야기 이게 처음은 아닐 거예요 저는 살았을 때나 죽었을 때나 올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네요 장례식 치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하고 싶어요 그저 화장하고 나무에 묻어 달라고 해야겠습니다(누군한테 그런 걸 말하나) 그전에 정리를 해야 할 텐데... 저는 죽음을 생각하면 정리가 생각납니다

서니데이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