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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기쁨 - 그날 이후 열 달, 몸-책-영화의 기록
배혜경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1월
평점 :

내가 어딘가 아프거나 다른 사람 때문에 병원에서 지내야 한다면, 난 책도 영화도 못 볼 거다. 실제로 병원에 있어야 했을 때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멍 하니 앉아 있었다.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있었던 적은 한번도 없다. 지금까지 병원 신세 안 진 거 다행이다 여겨야 할지. 앞으로도 그런 일 없어야 할 텐데. 내 보호자는 나일 뿐일 테니 말이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 많지 않을까. 그런 사람은 아파도 쉽게 치료 안 해주려나. 그러지는 않겠지. 얼마전에 병원에서 다른 사람한테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해서, 잠시 이런 생각을 했다. 난 큰병 걸리면 안 되겠다. 그게 내 마음대로 되려나. 운동, 걷기라도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나 혼자여도 어떤 일이든 내가 하려고 말이다.
이 책 《고독한 기쁨》에는 배혜경이 발목뼈와 복사뼈를 다치고 만난 책과 영화 이야기가 담겼다. 몸이 아프면 다른 건 거의 생각하지 못하고 안 할 것 같은데 배혜경은 그러지 않았다. 평소에도 책과 영화를 좋아했으니, 다리가 편하지 않아 움직이지 못해도 책와 영화는 만났겠다. 그때 몸을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아픈 아버지도 생각했다. 몸에 갇힌 아버지. 자신이 아프지 않으면 아픈 사람 마음을 모르기도 하겠지. 배혜경은 자신이 아파서 움직이기 어려웠을 때 아버지 마음이 어땠을지 더 많이 생각했겠다. 아버지가 좀 나아지기도 했는데. 그런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때 마음 많이 아팠겠다. 아버지와 함께 좀 더 시간을 보내고 가고 싶은 곳도 있었을 텐데.
사람은 책과 영화가 없어도 살 거다. 사람은 좀 더 괜찮게 살려고 책과 영화를 만들었겠다. 예술이라고 할까. 먹고 사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것에 마음을 돌릴 여유가 없을 거다. 어떤 예술이든 누구나 즐기면 좋을 텐데. 그렇게 되려면 예술이 좀 더 사람 삶에 다가가야겠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학교가 생각났다. 사실 난 학교 다닐 때 책을 거의 안 보고 음악이나 미술 잘 몰랐다. 지금도 다르지 않던가. 학교가 누구한테나 예술을 알려준다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즐기는 법 같은 거. 학교에서는 예술을 즐기는 것보다 그저 시험 보려고 배우는구나. 조금 아쉽다.
잠깐 다른 말을 했다. 난 영화도 거의 안 본다. 책과 영화를 다 좋아하고 보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배혜경은 책과 영화를 모두 좋아하고 깊이 본다. 예전에 만난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에도 영화 이야기가 담겼고, 만나지 못한 책 《고마워 영화》도 있다. 난 책만 보고 끝나는데, 배혜경은 소설 영화가 있으면 찾아봤다. 부지런해야 그렇게 하겠다. 책보다 잘 만든 영화 만나기는 어렵지만, 반대로 영화를 보고 책을 만나면 영화에서 말하지 못한 걸 알게 돼서 괜찮기도 하다. 배혜경은 《파워 오브 도그》(토머스 새비지)를 말했구나. 이 책 제목과 같은 책 예전에 봤는데, 그건 마약 카르텔 같은 게 나오는 거다. 책 내용은 잊어버렸는데, 그 책을 하루 내내 읽은 건 기억한다. 두권에서 한권을.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구나.
열달 동안 쓴 글이 책이 되어 그 시간은 언제나 남아 있겠다. 배혜경은 자신의 책을 보면 그 시간으로 돌아가겠다. 책을 쓰면서 그 시간을 다시 산 듯하다고 했구나. 이런 말 다른 사람도 하던데. 난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없고, 지나간 시간 떠올리고 싶지 않은가 보다 생각했다. 실제 그렇다. 별 일 없는 나날을 보내기도 하니. 사람마다 다른 거다 생각해야지. 책에 담긴 게 자기 이야기가 아니어도 그걸 보면 자신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것도 다시 사는 것과 비슷할까. 난 참 말, 아니 글로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는 게 많구나. 뚜렷하게 쓰지 못해서 가끔 잘못 읽히는가 보다. 잘못 본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하지만. 작가가 쓰지 않은 행간은 읽으려 하면서 내가 쓰지 않은 건 읽으려 하지 않는구나 하고 조금 섭섭하게 여기기도 한다(제대로 써야 알지). 이 말 왜 나온 거지. 난 작가도 아닌데, 큰걸 바라면 안 되지.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게 생각해야 한다. 이 책 보면서 책을 보고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난 모르는 사람인데 누군가를 구하는 사람도 있다니. 하면서 그런 사람을 대단하게 여겼다. 다르덴 형제 영화에는 부모가 아니지만, 누군가한테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 나오는가 보다. 그걸 보고 나니 <원피스>에도 그런 사람이 나온다는 게 생각났다. 가장 처음 떠오른 건 박연병(납중독 비슷한)에 걸린 로를 구하려고 애쓴 코라손(본래 이름은 로시난테)이다. 루피, 사보, 에이스한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나미는 친엄마가 아닌 사람이 나미를 길렀다. 쵸파, 로빈, 프랑키한테도. 로빈은 로빈을 사랑하는 엄마가 있었구나. 엄마가 죽게 됐을 때는 엄마 친구가 로빈을 엄마 대신 지켜주고 살게 했다. 코알라도. 코알라는 어인이 도와줬다. 내가 떠올리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자신과 가깝지 않은 누군가를 살리고 살게 하는 사람이 나오는 책 많겠다. 현실에도 그런 사람 있구나.
책과 영화 그리고 몸 이야기지만 여기엔 배혜경 삶이 담겼다. 또 시간이 흐르면 이 시간이 지난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배혜경은 삶을 글로 쓴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건 삶을 제대로 마주하고 사는 거겠다. 배혜경은 시각장애인이 듣는 책 낭독 녹음봉사도 오래 이어서 했다. 그건 시각장애인만 들을 수 있다니. 앞으로 배혜경이 건강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즐겁게 하기를 바라고, 언젠가 그런 이야기가 담긴 책 만나고 싶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