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츠메 우인장 17

  미도리카와 유키

  白泉社  2014년 01월 04일

 

 

 

 

 

 

 

 

 

 

 

 

 

여름에는 나츠메(夏目)를 만나야 한다. 별로 재미없는 말을. 겨울(2014, 1)에 나온 책을 이제야 보았다. 책을 보고 시간이 흘러도 얼마 본 게 얼마 안 되어서 예전보다 느려졌나 했다. 그런데 다 보고 나니 그렇게 느려진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얼마전에 ‘나츠메 우인장’에 나왔던 것을 찾아보려고 예전에 보고 쓴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니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왜냐하면 너무 못 써서다. 그때 왜 그렇게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고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만화를 본 다음에는 어떻게 쓰면 좋을까. 다른 책 보고 쓰는 것도 어렵고 만화 보고 쓰기도 어렵고. 나도 이것을 보고 나츠메가 어떤가를 말하는 게 좋을까. 나는 처음부터 봐왔으니 나츠메가 어떤지 알지만 나츠메가 대체 뭐하는 애야,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지금까지(처음 빼고) 말 안 했으니 잠깐 말해도 괜찮겠지. 나츠메는 고등학생이다. 맨 처음에 이런 말을, 2학년 된 거 아닌가 했는데 아직 1학년이다. 아니 이상하다, 전에 2학년 된 것 같은데 이건 언제 이야기일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해야겠다. 나츠메는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요괴를 볼 수 있다. 부모님은 일찍 세상을 떠나서 나츠메는 여러 친척집을 옮겨다녔다. 그러다 아버지쪽 먼 친척인 후지와라 부부 집에서 살게 되었다. 할머니 레이코가 남긴 요괴 이름이 쓰여 있는 ‘우인장’ 때문에 야옹 선생과 이런저런 요괴를 만났다. 그전까지는 나츠메가 요괴를 안 좋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괜찮아졌다. 나츠메는 우인장에 있는 이름을 요괴한테 돌려준다. 이름을 돌려받기 위해 나츠메를 찾아오는 요괴도 있지만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오는 요괴도 있다(우인장을 노리고 찾아오는 요괴도 있다. 우인장이 있으면 요괴를 부릴 수 있다. 요괴 이름이 적힌 종이는 요괴 목숨이기도 하다. 종이를 찢거나 태우면 요괴가 죽을 수 있다. 곧 우인장은 요괴 목숨 다발이다. 나쁜 뜻을 가진 사람이나 요괴가 그것을 가지면 안 되겠지). 나츠메는 요괴가 보이고 말을 나누게 되어서 우는 요괴를 보면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도 하다보니 길어졌다(별로 길지 않은가). 이번에는 우인장과 관계있는 일은 나오지 않는다.

 

요괴가 사람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있지만 사람과 같은 모습일 때도 있다. 나츠메는 우연히 남자가 떨어뜨린 봉투를 주워주고 자기 학교에 같이 간다. 남자 이름은 아오이다. 아오이는 어릴 때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학교에서 나오는 친구 니시무라가 나츠메한테 ‘혼자서 뭐해’ 하는 말을 듣고, 나츠메는 자기와 함께 있는 게 요괴라는 걸 알았다. 결국 이렇게 쓰는구나. 아오이는 예전에 여자아이를 숲에서 만났다. 이런 이야기 전에도 있었다. 이 작가(미도리카와 유키)가 그린 《반딧불이 숲으로》다. 그냥 생각나서. 아오이가 만난 여자아이 이름은 소노카와 가오루다. 가오루는 숲에서 나무 위에 혼자 있는 아오이를 만나고 오랫동안 숲에 다녔다. 중학생이 되고도. 아오이는 가오루와 자신이 다른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 걸 알고 가오루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왜 지금 만나러 온 거냐면, 가오루가 결혼한다고 초대장을 보내서다. 아오이는 가오루를 잊으려고 했지만 아주 잊지 못했다. 둘은 만나고 어떻게 됐을까. 바로 이 말로 넘어갔다. 말하면 안 되는 건 아니겠지(전에는 더 자세하게 말해놓고 이제와서 이런 말을). 가오루가 결혼한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었다. 가오루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다(아오이가 가오루가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했을 때 정말 그럴까 했다. 어떤 때는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서 사람이 죽었을 때도 있었다). 결혼한다고 한 것은 아오이를 잡기 위한 덫이었다. 아오이와 함께 있고 싶어서. 아오이는 가오루를 다시 만나고 가오루 곁에 있기로 한다. 사람과 요괴 사는 세계가 다르지만 만나버리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나츠메는 둘이 만나고 그렇게 돼서 기뻐했다.

 

야옹 선생이 늘 하던 것과는 다른 연회(술 마시러 간다)에 간다면서 나츠메한테 함께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봤지만 나츠메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에서 그 생각을 하다가 다른 연회는 어떨까 하다가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야옹 선생을 보고 따라갔다. 그런데 야옹 선생은 안 보이고 야옹 선생 닮은 돌이 있어서 나츠메는 그것을 주웠다.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 있었다. 야옹 선생이 그 집으로 들어간 건가 하고 나츠메도 들어간다. 집 안에 들어가니 상처가 많은 요괴가 있었다. 나츠메는 그 요괴한테 괜찮으냐고 했다. 나츠메가 자기한테 손을 대자 그 요괴는 ‘이제 내가 술래다. 숨어’ 했다. 술래가 어쩌고 해서 나쁜 요괴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요괴들이 놀이(숨바꼭질)를 하는 곳에 나츠메가 끼어들고 만 거다. 야옹 선생이 집에 오지 않아서 나츠메는 히노에, 미스즈, 중급한테 도움을 받았다. 나츠메가 잠을 자면 그 집에 가 있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요괴가 하는 놀이는 며칠 동안 이어지는 거였다. 놀이에서 빠지려면 나츠메가 처음 만난 요괴(유즈루)를 찾아야 했다. 나츠메는 술래가 되어서 유즈루를 찾아서 자신이 숨바꼭질에서 빠지는 걸 허락해달라고 했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고 그렇게 해결됐다. 야옹 선생은 나중에 집에 돌아왔다. 나츠메는 잠깐 야옹 선생 닮은 돌이 야옹 선생인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은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다음에는 사람들은 배우로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 모르게 요괴를 물리치는 일을 하는 나토리 슈이치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야기가 나왔다. 고등학생인 나토리를 보니 나토리를 만났을 때 나츠메가 생각났다. 나토리가 그때 나츠메와 비슷해 보였다. 아주 똑같지 않지만. 나토리 집안은 본래 요괴를 쫓는 일을 했다. 그런데 요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태어나지 않아서 그 일을 그만두었다. 그만둔 건 그렇다 치고 요괴가 복수하러 올까봐 무서워했다. 요괴를 볼 수 있는 나토리가 태어난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나토리 때문에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하기도.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나토리는 친구가 없었다. 요괴를 물리치는 일을 하는 사람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토리는 그곳에 찾아간다. 나토리는 자기와 같은 사람과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거다. 이건 나츠메도 비슷했다. 나츠메는 야옹 선생을 먼저 만나서 요괴를 좀더 알게 되었다. 나토리가 모임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마토바 세이지다. 마토바 집안은 요괴를 물리치는 집안에서 첫번째였다. 마토바는 요력도 셌다. 나토리는 그럭저럭이었다, 보통인가. 나토리는 마토바와 있는 게 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함께 큰 요괴를 잡았다. 이렇게밖에 말을 못하다니. 마토바는 힘을 길러서 요괴를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토리는 모임에서 만난 다쿠마 말을 듣고, 자신도 누군가를 위해서 요괴를 물리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토리가 만난 건 마토바만이 아니었다. 좀더 쉽게 생각하면 마토바는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요괴를 잡아서 없애려 하고, 나토리는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주기 위해 요괴를 물리치려고 하는 거다. 나츠메는 사람도 요괴도 같다고 생각하고 둘 다 똑같이 대한다. 나츠메는 마토바하고도 나토리하고도 같지 않다. 마토바는 나츠메를 만나도 그대로지만, 나토리는 조금 달라졌다. 그것보다는 나츠메는 나츠메로 있어도 된다고 했구나. 고등학생 때 나토리는 요괴를 물리치는 일을 하다보면 무언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했는데, 그게 나츠메가 아닐까.

 

어쩐지 이번에는 나츠메를 조금밖에 못 본 것 같다. 나토리 이야기가 있어서구나. 지금까지 요괴와 사람이 만난 이야기가 있었지만 나중에는 헤어졌다. 사람이 죽거나, 요괴를 볼 수 없게 돼서. 요괴가 힘이 다한 적도 있다. 이번에는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 이런 이야기가 한번 나와서 좋구나. 그 둘도 언젠가 헤어지는 때가 찾아오겠지만 지금이 중요하다. 나츠메는 그때 우는 건 누굴까 했다. 남는 쪽이겠지. 아니, 꼭 운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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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즈 스위트 홈 7

  코나미 카나타

  講談社  2010년 04월 23일

 

 

 

 

 

 

 

 

 

 

 

 

지난번(6권)에 치를 만나고 어느새 한해가 훌쩍 지나갔다. 그때는 바로 7권에서 10권까지 보려고 했는데, 지난해에는 치뿐 아니라 다른 만화도 거의 못 보았다. 그래도 나츠메 우인장은 보았구나(올해 나온 것은 아직이지만). 밀려있는 만화 언제 다 볼 수 있을지(원피스가 가장 많이 밀렸다). 이렇게 말하니까 만화 많이 보는 것 같다.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앞으로 천천히 보아야겠다. 그러다 보면 밀린 거 다 볼 수 있을 테지. 한해가 지나서 지난번에 어떤 이야기를 보았는지 다 생각나지 않는다. 겨우 하나, 치가 새 친구 얼룩고양이 코치를 만난 거다. 치하고 크기는 비슷하다. 그런데 치가 코치한테 꼬마라고 했다. 지난번이 아니고 이번에. 지난번에도 그런 말했을까. 밤에 치는 코치를 따라서 집을 나왔다. 치가 집을 나온 다음에 코치를 만났던가. 아빠는 치가 밖에 나간 것도 모르고 문을 닫았다. 뜰로 이어진 큰 창문이다. 지금 생각하니 치가 따라간 것은 코치가 아닌 검정고양이였다. 검정고양이가 다른 고양이와 만나고 있을 때 치가 공원에 있는 코치를 보고 따라갔다. 그러다 나뭇가지에 목걸이가 걸려서 그게 빠졌다. 고양이 목걸이는 잘 빠지게 되어있다고 한다. 잘못해서 목이 졸리지 않도록.

 

코치가 치한테 좋은 데 데리고 간다고 했던가보다. 거기는 길고양이한테 먹이를 주는 음식점 옆인 듯했다. 하지만 먹이는 없었다. 그곳이 쉬는 날이었다. 코치는 그만 헤어지자고 했는데 치는 코치를 따라갔다. 공원 안 수풀 속에 상자가 있었다. 거기는 코치가 자는 곳이었다. 코치는 길고양이다. 코치가 상자 안에 들어가니 치도 따라서 들어갔다. 그러고서 하는 말, ‘여기가 좋은 곳이야’였다. 코치는 치한테 좁으니까 나가라고 했다. 조금 끼이기는 했지만 둘이 붙어있어서 곧 따스함을 느꼈다. 치와 코치는 잠이 들었다. 거기에 검정고양이가 나타나서 치한테 ‘집에 가야지’하고 치를 물어서 상자에서 꺼냈다. 얼마 뒤 치가 깨어서 걸어가겠다고 했다. 치는 검정고양이와 헤어져 집에 갔는데 문이 닫혀있어서 밖에서 잤다. 아침에 치는 바로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엄마 아빠 요헤이가 치를 바로 못 보아서. 아침을 먹으려고 다 차린 다음에야 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다행히 요헤이가 밖에 있는 치를 보고 집에 들어오게 해주었다. 창이 커서 밖에 있는 치가 잘 보일지 알았는데 치가 작아서 못 보았나보다.

 

밖에 나갔다 온 치 몸이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서 엄마 아빠가 치를 씻겼다. 하지만 치는 씻는 것을 싫어한다.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니까. 씻기고 털을 말려주었지만 치 기분은 나빠 보였다. 아빠는 그 모습을 보고 고양이 빗으로 털을 빗겨주었다. 그랬더니 치가 기분 좋아했다. 요헤이네 집 텔레비전을 커다란 디지털 텔레비전으로 바꾸었다. 엄마 아빠 요헤이가 모여서 텔레비전을 보니까 치도 보았다. 그때 비둘기가 나와서 치가 ‘사냥감이다’ 하고 잡으러 텔레비전이 놓인 곳에 올라갔다. 그런데 비둘기가 치보다 더 커 보였다. 치는 깜짝 놀라서 거기에서 내려왔다. 나중에 아빠는 물고기가 나오는 곳을 틀고는 치한테 그것을 보라고 했다. 꼭 아이한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빠는 어릴 때 금붕어를 키우고 싶어했는데 못 키웠던가보다. 치 먹이를 사고 오던 길에 금붕어를 보았다. 집에 치가 있어서 안 된다고 생각했다가 사 버렸다. 치도 금붕어 보기를 좋아하겠지 하면서. 하지만 치는 아빠 생각과는 달리 금붕어를 사냥감으로 여기고 잡으려고 했다. 치와 아빠 서로 다른 말을 할 때 웃겼다. ‘아빠, 치 사냥감 갖고 싶어. 나 줄거야?’ ‘치도 금붕어 보는 거 재미있지, 많이 봐.’ 말이 통하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지. 말이 통해도 다른 사람 마음을 모르기도 하는구나.

 

곧 비가 내릴 것 같은 날 치는 집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무슨 냄새가 난다고 했다. 요헤이와 엄마를 따라가려고 한 듯한데 놓쳤다. 그리고 길을 잃었다. 치는 걷다가 코치를 보았다. 밤에 왔던 음식점 옆이었다. 거기에는 코치뿐 아니라 다른 길고양이도 있었다. 먹이를 먹으러 온 거였다. 치는 코치한테 우리집 어디야 했다. 먹이를 다 먹은 코치는 곧 비가 내릴 것을 알고 비를 피하러 갔다. 치도 코치를 따라가서 비를 피했다. 같이 비 피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치가 자꾸 우리집이라고 하니, 코치는 오래전(아주 오래전은 아니겠지만)에 상자에 함께 있던 형제를 아이가 우리집에 데리고 간다고 했을 때를 떠올렸다. 코치는 치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집으로 가다가 둘은 길에 떨어진 닭튀김을 보았다. 치가 반씩 먹자고 하고는 더 많이 떼어갔다. 코치는 냄새를 맡고는 치한테 그것을 먹지 말라고 했는데 치는 먹어버렸다. 거기에 검정고양이가 나타나서 코치는 치가 이상한 것을 먹었다고 말했다. 검정고양이가 치한테 먹기 전에 냄새 맡아보지 않았느냐고 하니, 치는 냄새는 안 맡아 보았는데 맛은 별로였다고 했다. 검정고양이가 치가 먹지 않은 것을 냄새 맡아보고는 상했다고 했다. 치는 상한 닭튀김을 먹은 거다.

 

검정고양이와 코치는 같이 치가 집에 돌아가게 해주었다. 치가 집에 가는 것을 보고 둘은 괜찮을까 했다. 닭튀김을 먹었을 때는 괜찮았던 치가 집에 갔을 때는 이상해졌다. 얼마 뒤 치가 먹은 것을 토했다. 엄마 아빠는 그런 치를 보고 놀랐다. 책을 보고는 치가 토한 게 털뭉치인가 했다. 하지만 털뭉치로는 보이지 않았다. 자꾸 토하는 치를 보고 다시 책을 찾아보았다. 곧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치는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힘이 빠진 치는 잠을 잤다. 엄마 아빠 요헤이가 그 모습을 보았다. 거실 창 밖에서 검정고양이와 코치가 안을 보고 있었다. 둘을 엄마 아빠 요헤이도 보았다. 치가 걱정돼서 보러 왔나보다 했다. 사람으로 치면 치는 식중독에 걸린 건가. 바로 토해서 낫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앞에서 코치가 치한테 뱉으라고 했구나. 코치는 길고양이여서 먹이를 바로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검정고양이도 길고양이였던 적이 있었을까. 코치가 사람과 살게 되는 날도 올까. 그런 이야기가 나올지 안 나올지. 고양이가 사람과 사는 게 아주 좋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코치가 조금 쓸쓸하게 보였다. 치가 ‘우리집’이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

 

오랜만에 귀여운 치를 만나서 즐거웠다. 그리고 요헤이네 식구들과 검정고양이와 코치를 만난 것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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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싸움

 

  또 하나의 약속

  이상민 글   김태균 각본

  가연  2014년 02월 03일

 

 

 

 

 

 

 

 

 

 

 

 

봄이 슬픈 건지

이 이야기가 슬픈 건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슬픈 건지

 

이거 봄 타는 거?

 

 

 

요즘은 영화와 함께 책도 나오는 듯하다. 이런 책을 처음 보아서 이렇게 말했다. 원작이 있어서 그것으로 영화를 만들기도 하지만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소설도 함께 준비하는가보다. 예전에는 시나리오만 모아둔 책이 나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영화에는 영화만의 것이 있고 소설에는 소설만의 것이 있다. 어쩐지 지금은 영상과 글이 서로 보조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을 나쁘게 볼 수 없겠지.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둘 다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잘 모르는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나한테는 이런 말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와 책을 모두 보는 게 아니니까. 예전에는 영화를 가끔 보았지만(그것도 텔레비전 방송으로 해주는) 지금은 거의 안 본다. 그러니 영화와 책이 함께 나오는 것은 나같은 사람한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책으로나마 어떤 영화인지 알 수 있으니까(드라마도 책으로 나오기도 하는구나).

 

한때는 텔레비전을 보았지만 몇 해 전부터는 안 본다. 그래서 우리나라 일뿐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텔레비전을 본다고 해서 그런 것을 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텔레비전 방송이 다 나쁜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이것을 안 보기 시작하면 괜찮은 것도 챙겨서 보기 어렵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다시보기로 볼 수 있지만. 내가 텔레비전을 보던 때 사회고발 방송도 가끔 보았다. 생각나는 것은 <PD 수첩>뿐이다. 그런 방송이라도 보았다면 이 책에 나온 일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도 몰랐다.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는 석면을 쓰던 때가 있었다(지금도 쓰고 있을지도). 그게 산업혁명이 일어난 뒤였던가. 이럴 때 역사를 잘 알면 멋지게 말할 텐데. 아무튼 이 석면 때문에 병에 걸려서 죽은 사람이 많았다. 그때 사람들은 자신이 왜 아픈지 잘 몰랐을 것이다. 언제 석면 때문에 일하는 사람이 병(암)에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 잘 모르고 병에 걸린 사람이 보상을 받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석면은 아니지만 예전에 한번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 어떤 회사(공장)에서 일해서 백혈병에 걸렸다는 이야기. 그게 어떤 회사였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 일하는 사람을 위해서 싸운 사람이 있다. 전태일이다. 전태일은 공부를 좋아했지만 집이 가난해서 학교에 재대로 다니지 못했다. 먹고 살려고 서울에 올라가서 일을 했는데 일하는 곳 환경이 아주 나빴다. 전태일은 대학생 친구를 알게 되고 노동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혼자서 노동법을 공부한다. 노동법을 공부한 전태일은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찾으려고 했다. 1970년대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많이 걸린 병은 결핵이다. 이것 말고도 더 있을 거다. 그것 또한 산업재해다.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사람들이 일하는 곳 환경이 70년대보다는 좋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돈을 벌러 온 사람은 나쁜 환경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 나온 곳은 우리나라 경제를 좋게 해준다고 여기는 반도체 공장이다. 우리나라 경제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은 한둘이 아닐 거다. 조금 넓게 말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뒤에 있는 말을 보면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사회고발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윤미는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다. 하지만 윤미가 그곳에서 일하고 한해 넉달 만에 건강이 나빠져서 속초 집으로 돌아온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백혈병이었다. 한해가 지나고 회사 사람이 윤미네 집에 와서는 윤미한테 사표를 쓰라고 하고 돈을 건네주면서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마라 한다. 속초에서 오랫동안 택시운전을 해온 윤미 아빠 한상구는 사람 얼굴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떤지 알았다. 한상구는 회사 사람이 무엇인가 속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윤미 병원비 때문에 돈을 받는다. 한상구는 나중에야 윤미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해서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윤미가 죽고 한상구는 윤미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 이런 싸움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듯하다. 그야말로 달걀로 바위치기니까. 그래도 한상구는 윤미 아빠로서 해낸다. 한상구 혼자였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무사, 변호사, 제보자 그리고 같은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사람들이 함께 싸워서 이루어냈다. 윤미가 산업재해를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이다. 소설에서는 윤미가 일한 곳을 진성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삼성반도체다. 이상한 일은 윤미가 그곳에서 일하기 전에도 병에 걸린 사람이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그런 일이 알려지지 않았을까다. 윤미 아빠 한상구처럼 용기를 내서 싸운 사람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한상구는 윤미 같은 아이가 더는 없기를 바라기도 했다. 앞에서 말한 전태일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노동운동을 한 거였다. 한사람은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없다. 하지만 한사람이 한사람이라도 구한다면 그것은 널리 퍼지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의사(형사)를 보았다. 자기 아이도 구하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다른 아이를 구할까 하는. 그렇지만 그것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 바로 앞에 있는 사람한테 그것을 써야 하니까. 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것까지 생각난다. 나는 왜 이럴까.

 

이런 이야기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좋다고 본다. 아직도 힘들게 싸우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을 보고 힘을 내고 끝까지 가기를 바란다.

 

 

 

 

☆―

 

“법이란 게 본래 그래요. 힘 없는 사람들이 법을 만들었겠어요?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 보호하려고 만든 거지.”  (228쪽)

 

 

 

 

 

 

 

그리움

 

박노해

 

 

 

공장 뜨락에

다사론 봄볕 내리면

휴일이라 생기 도는 아이들 얼굴 위로

개나리 꽃눈이 춤추며 난다

 

하늘하늘 그리움으로

노오란 작은 손

꽃바람 자락에 날려보내도

더 그리워 그리워서

온몸 흔들다

한 방울 눈물로 떨어진다

 

바람 드세도

모락모락 아지랑이로 피어나

온 가슴을 적셔오는 그리움이여

스물다섯 청춘 위로

미싱 바늘처럼 꼭꼭 찍혀오는

가난에 울며 떠나던

아프도록 그리운 사람아

 

 

 

 

 

 

 

조금 다른 추리소설

 

  메르카토르는 이렇게 말했다  メルカトルかく語りき (2011)

  마야 유타카   김은모 옮김

  문학동네  2014년 02월 17일

 

 

 

 

 

 

 

 

 

 

 

 

이 세상에 나온 추리소설 가운데서 내가 만나본 것은 아주 조금이다. 몇 해 전에는 이런 게 있다는 것도 잘 몰랐다(시간이 조금 흘렀으니 이제 이런 말은 그만해야 할 텐데).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이런저런이라고 했지만 그렇게 여러가지를 본 것은 아니다. 거의 소설만 만나보았다. 이야기를 좋아해서 그랬는데, 내가 본 책을 모두 다 알고 본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른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것은 조금이라도 쓰려고 한다는 거다(잘 쓰면 좋겠지만 여전히 못 써서, 그게 조금 아쉽다). 그저 읽기만 했을 때와는 마음이 달라졌다고 본다. 그리고 책을 본다고 해서 사람이 그렇게 많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주 조금 바뀔 수도 있다고 본다. 내 경우는 마음이 조금 바뀐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떤 것은 그대로고 안 좋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책을 보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살면 더 좋겠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는 책을 보았을 때 잠깐이고 시간이 흐르면 잊고 만다. 사람은 쉽게 잊는다. 잊어야 살아갈 수 있지만, 덜 잊는다면 좋겠다(잊지 않기 위해 쓴다고 하지만 반대로 잊기 위해 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어떤 말은 한번이 아니고 몇 번이고 보기도 한다. 그럴 때 예전에 그런 생각했지 한다. 어쩌면 그래서 비슷해 보이는 책일지라도 보고 또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주제가 담긴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그것을 모두 기억한다면 좋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같은 성경 말씀도 있다. 비슷한 주제라 해도 작가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 보인다.

 

잠시 다른 길로 샜다. 그렇다고 해서 책 이야기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보면서 지금까지 쓴 것과는 다르게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좋은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책을 본 다음에 나는 언제나 어떻게 쓸 것인가 얼개를 짜지는 않는다. 거의 그냥 쓴다(가끔 이상한 말이 튀어나오기도). 그리고 읽으면서 어떤 것을 써야겠다고 생각해도 쓸 때는 잊어버리고 못 쓰기도 한다. 쓸거리를 먼저 생각하고 잘 짜맞추면 좋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버릇은 없어서. 그러고 보니 이런 생각도 했다. 이제부터는 짧아도 내용보다는 생각이나 느낌을 더 쓰면 어떨까 하는. 다른 것(구성이나 글이 어떻다 인물이 어떻다 하는 것은 잘 모르니 내버려두고)은 어렵더라도 느낌이나 생각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생각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가 아니어서 말이지. 내가 자주 쓰는 말은 생각이다. 그래서 생각만 하는 건가, 생각을 한다고 해도 좋은 생각을 더 많이 하면 괜찮지만 안 좋은 생각을 더 많이 한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해야지 생각하고 바로 한다. 생각만 하고 안 하는 게 더 많지만. 그런 것은 생각하기보다 몸을 움직이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대체 책 이야기는 언제 할거야’ 하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보다는 앞은 그냥 넘어갔을지도.

 

마야 유타카 책은 두번째다. 그리고 메르카토르 아유를 만나는 것도. 첫번째는 아주 잠깐밖에 못 보아서 잘 안다고 하기 어렵다(많이 보아도 모르지만). 그때는 메르카토르라고만 하고 아유라는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다른 책 《날개달린 어둠》을 먼저 만난 사람은 메르카토르를 알고 메르카토르 친구면서 조수인 미나기 산조도 알겠지. 나는 이 책을 보고 처음으로 알았다. 미나기 산조는 미스터리 작가다. 미스터리를 쓰면서 탐정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미나기는 조수라니. 처음 보았을 때 메르카토르는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겉모습(턱시도에 실크해트를 쓴)은 평범하지 않았지만 말하는 것은 아주 남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나만 그렇게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메르카토르는 제멋대로다. 자신은 천재 탐정으로 못 푸는 수수께끼(사건)가 없다고 여기고 자신을 굳게 믿는다(나는 나도 믿지 못한다, 이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적도 있다). 메르카토르는 다른 탐정하고는 조금 다르다. 내가 탐정을 많이 아는 것은 아니고 그 탐정이 어떤지 잘 모르지만. 단 한사람만 말한다면 코난이다. 코난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되고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탐정이다. 만화에 나오는 인물이어서 이런 식으로 설정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코난을 좋게 생각한다. 메르카토르는 어떤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 보기 위해 바로 해결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 사람을 죽일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거의 모든 탐정은 사람이 죽는 것을 막지 못한다. 탐정은 그 점을 아주 안타깝게 여긴다. 하지만 메르카토르는 그런 마음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말하니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피도 눈물도) 없는 탐정 같다. 실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메르카토르는 아주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휘둘릴 것 같아서 친구로 사귀고 싶지 않지만. 여기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메르카토르가 해결한 사건도 많다고 한다.

 

이 책은 다른 추리소설과 조금 다르다. 다른 형식을 가진 책을 본 적이 있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어쨌든 추리소설에서는 범인을 찾아낸다. 그 뒤 범인이 어떻게 되는지 나오지 않지만. 수수께끼를 풀고 범인을 찾아내려 하는 것은 같지만 확실하게 누가 범인이다 하지 않는다. 한해전 죽은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사건이 일어나면 범인을 알 수 있다고 하고, 어떤 때는 범인이 없다고 하기도 한다. 조금 웃겼던 것은 미나기한테 추리소설가로 범인과 맞닥뜨리는 일을 해보라고 한 거다. 미나기는 메르카토르 때문에 이런저런 일을 겪는다(마지막에는 사람을 죽였다는 말까지 듣는다). 그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지 미나기는 언제나 메르카토르와 함께 다닌다. 어쩌면 소설 재료를 얻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메르카토르한테 괴롭힘 당해도 그냥 참을 수밖에 없으려나. 그것보다는 그것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이런 말을 하다니. 그러고 보니 메르카토르를 사디스트라고 했구나. 그러니 두 사람은 잘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홈즈와 왓슨을 잘 모르지만 이 두 사람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사건이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아 뒤끝이 조금 안 좋지만, 이것은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친구들이 서로 의심했으니까. 메르카토르가 친구들의 의심을 거두어주었다. 여기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중에 무엇인가 밝혀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열린 결말이라고 하던가. 어떤 이야기가 끝났다고 해서 그게 끝은 아니니까.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나오지만 그속에 있는 사람은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를 바라기도 한다.

 

 

 

희선

 

 

 

 

☆―

 

“네 추리, 그거 정말이야?”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큰맘 먹고 물어보았다.

 

메르카토르는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는 듯이 웃었다.

 

“내 논리는 틀림없어. 난 정답률 백 퍼센트의 탐정이거든.”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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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달빛에 빛나는 벚꽃

한때뿐인 아름다움

스러져감은 자연스러운 일

슬퍼하지마

 

 

 

 

해마다 사월 십일이 넘어서 피던 벚꽃이 벌써 피어버렸다. 삼월에 그렇게 따듯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른 해보다 따듯했기 때문에 꽃이 빨리 피어버린 거겠지. 꽃이 피었다, 했는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서 꽃잎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비는 오지 않고, 바람만 조금 불었다. 그 바람에 꽃잎이 흩날렸을 테지.

 

 

 

 

 

멸화 - 꽃을 사르는 불, 이경민 (노블마인, 2014)

 

꽃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책을 먼저 말하면 좋겠다. 우연히 나오게 된 것을 알게 되고 운이 좋아서 작가 사인이 들어간 책을 받았다. 곧 만나볼까 한다. 조선시대 소방관이 멸화군인가보다. 이런 것도 모르고 있다니(들어본 적 있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얼마전에 김진명 소설을 보면서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은 한성대화제의 미스터리를 밝히려는 이야기다. 한성대화제가 아주 큰불이었나보다. 말에 그렇게 나타나 있는데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 큰불을 내서 왕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을까. 그런 음모도 있을지 모른다고 책소개에 쓰여 있다. 그리고 범인으로 잡혀 처형당한 사람들한테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도 알아본다고 한다.

 

 

 

 

 

 

“너무 오래 기다렸어. 이자가 깨어날 때까지.”

화마에 모든 것을 잃고 다시 불과 싸우는 남자, 호림

 

“믿어요. 난 당신을 믿고 있어.”

궁궐에 매인 몸으로 자유를 꿈꾸는 여자, 채령

 

“네가 죽어줘야 바람대로 되는 것이다.”

가슴속 불을 차가운 가면으로 가린 남자, 의준

 

“내가 원한 길이야. 나 스스로 원해서.”

스스로 휘황한 불꽃이 된 여자, 자란

 

-책 뒷면에 있는 말

 

 

 

 

 

 

 

다정한 호칭, 이은규 (문학동네, 2012)

 

오랜만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시집을 샀는데 아주 많이 달라진 것을 알았다. 사실은 지난해 사고 며칠전에 한번 보았다. 샀을 때도 보고 시집이 예전보다 커졌네, 했다. 이렇게 나오게 된 지는 좀 된 것 같은데 내가 알고만 있었고 사지는 않아서 몰랐다. 이 시집은 한번 훑어보았다. 훑어보았다는 게 맞는 말이다. 그런데 처음 보았을 때 마음에 딱 드는 시가 없었다. 시인이 생각나는 시말도 있었다. 이상, 윤동주, 기형도 어쩌면 기형도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흐가 떠오르는 한줄도 있었다. 다른 시인 이야기도 있는데 누군지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보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나을지,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드는 시를 찾으면 좋겠다. 그리고 잘은 아니더라도 무엇인가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다정한 호칭은 무얼까,

지금 생각나는 건 이름.

 

 

 

 

 

 

 

 

붉은 까마귀, 마야 유타카 (북스토리, 2014)

 

아직까지 마야 유타카 소설은 만나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책이 여러권 나온 사람인데 그렇게 되었다. 마야 유타가 소설에는 메르카토르 탐정이 나온다. 메르카토르라는 말로 알라딘에서 한번 찾아보니 지도를 그린 사람이 나왔다. 그때는 지도를 그린 사람으로 알았고, 다시 보니 지리학자였다. 그 메르카토르를 생각하고 이 이름을 쓴 것인지 그것은 나도 잘 모르겠다. 메르카토르가 여기에서는 짧게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카인과 아벨 형제가 나온다. 카인과 아벨은 성경(구약)에 나오는 이름인데, 인류가 가장 처음 저지른 형제 살인사건이 바로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일이란다. 그런 이야기와는 별로 상관없을까. 카인은 동생 아벨이 죽임 당한 수수께끼를 풀려고 어떤 마을에 간다고 하는데 정말 수수께끼를 풀려고 가는 걸까. 읽어보면 알겠지. 형제와 자매는 세상에 나서 처음 경쟁하는 사이로,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가장 미워하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까마귀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나온다고 하니, 새가 사람을 공격해서 죽이는 영화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새>를 언제 보았지. 아주 옛날에 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영화를 소개하는 방송에서 잠깐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 본래 제목은 그냥 ‘까마귀(鴉 갈가마귀)’다. 붉은 까마귀는 피를 뒤집어쓴 까마귀일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섭구나. 붉은 까마귀에서 붉은 것은 피가 아니고 저녁놀인가보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마크 펜더그라스트 (을유문화사, 2013)

Uncommon Grounds (2010)

 

이 책은 지난달에 도서관에서 보고, 언젠가 빌려다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마시는 건 인스턴트지만 그것도 커피는 커피니까. 예전에 아프리카 아이들이 커피와 초콜릿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을 해도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지구촌에 그런 아이가 아프리카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이 책을 보면 조금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책도 다 보고 정리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씨앗 편지, 에롤 브룸 (책과콩나무, 2010)

 

편지에 오늘이 나무를 심는 날이다, 썼더니 이 책이 생각났다. 다 쓰고 나니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병속에 담긴 편지》와 예전에 읽어본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시에 사는 여자아이 안케는 학교에서 하는 행사 때 풀색 풍선에 씨앗을 매달아서 날려보냈다. 거기에는 편지도 있었다. 그것을 시골에 사는 남자아이 프레디가 받았다. 받았다기보다 땅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런 우연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표를 붙이고 주소를 제대로 써서 보낸 편지가 아니니까. 안케네 학교에서 답장을 받은 사람은 일곱뿐이었다. 처음에 프레디는 나무 씨앗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빠가 심어보는 게 좋겠다고 해서 심은 거다. 프레디는 농장 언덕에 옮겨 심은 나무를 926그루까지 세고는 더 세지 못했다. 이 말을 보고 씨앗이 엄청나게 많았나보다 했다. 안케와 프레디는 그 뒤에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것도 아홉 해나. 그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언제나 좋지만은 않았다. 안케는 안케대로 프레디는 프레디대로 힘든 때가 있었다. 그래도 둘한테 편지가 힘이 되어주었다. 프레디가 심은 나무가 커다란 숲을 만들었지만 폭풍우가 치고 불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불이 난 일은 나무가 씨앗을 여기저기로 퍼뜨릴 수 있게 해주었다. 안 좋은 일이 나중에 좋은 일로 바뀐 거다. 그곳은 다시 멋진 숲이 되었다.

 

지금까지 나무를 심어본 적 없다. 기념 나무를 심기도 하던데 그런 나무 한그루쯤 있으면 좋겠다. 뜻깊은 일이 없어서.

 

 

 

 

 

봄꽃

 

함민복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사월에는 지난달보다 책을 좀더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기는 했지만 잘될지 모르겠다. 사실 보는 것은 괜찮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집중해서 잘 본다면 어렵지 않을까. 그것보다는 재미있게 보아야 할 말도 좀 생기는 듯하다. 아니 그때그때 다르다. 내가 잘 모르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텐데 사람은 자기한테 익숙한 것만을 좋아한다. 자기도 잘 모르는 것을 보고 재미있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자세가 좋은데.

 

이런 말하면 내가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벚꽃 냄새를 잘 모르겠다. 냄새가 나기는 하는 걸까. 그런데 얼마전에 벚꽃 냄새를 맡은 것도 같다, 달콤했다. 그게 맞는 걸까.

 

 

 

꽃은 피고 지고

사람은 오고 간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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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0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10 0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제 시작

 

  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ソロモンの証 第I部 事件 (2012)

  미야베 미유키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2013년 06월 12일

 

 

 

 

 

 

 

 

 

 

 

 

세권에서 이제 겨우 한권 보았습니다. 다음을 바로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정리를 조금 해두는 게 좋을 듯해서 이렇게 씁니다. 아이들도 여럿 나오고 그 아이 부모도 나오더군요. 이런저런 가정입니다. 얼마전에 이 이야기를 다른 데서 보았는데, 그게 이거였구나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집안에 건강이 안 좋아서 부모의 관심을 많이 받아서 남은 아이는 그것 때문에 좀 안 좋다는 말도 있었는데, 그것은 죽은 가시와기 다쿠야 집이더군요. 먼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말해야겠네요. 1990년(지금에서 오래전입니다) 12월 25일 성탄절(성탄절 전날 풍경도 조금 나옵니다) 도쿄 조토 제3중학교 2학년 노다 겐이치는 뒷문으로 학교에 들어가서 눈속에 묻힌 같은 반 아이 가시와기 다쿠야의 시신을 봅니다. 가시와기 다쿠야는 학교 옥상에서 스스로 떨어져서 죽은 것으로 보이고 그렇게 결론납니다. 그런데 얼마 뒤 가시와기 다쿠야가 학교의 나쁜 아이 패거리한테 괴롭힘 당하고 그 아이들한테 죽임 당했다는 고발장이 옵니다. 고발장은 교장선생님, 담임선생님 모리우치, 그리고 2학년 A반 반장인 후지노 료코한테 보냅니다.

 

고발장을 보내는 사람이 누구인지 책을 보는 사람한테는 알려줍니다. 고발장을 받아야 하는 세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은 그것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일과 관계없이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진짜 미워해야 하는 사람은 자기 남편인데.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비뚤게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발장을 쓴 아이도 그렇군요. 고발장을 쓴 미야케 주리(이름이 나오니까)는 가시와기 다쿠야가 죽은 일로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오이데 패거리를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미야케 주리가 오이데 패거리한테 괴롭힘 당한 까닭은 여드름 때문입니다. 그런 것 때문에 남을 못살게 구는 오이데, 이구치, 하시다가 나쁘기는 하죠. 미야케 주리는 담임선생님, 반장인 후지노 료코도 싫어했습니다. 얼마전에 본 글에 ‘악의는 진화한다’는 말도 있던데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미야케 주리는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도와준 아사이 마쓰코가 사고가 났을 때는 마쓰코가 죽기를 바랐습니다. 실제로 마쓰코가 죽었을 때는 미야케 주리가 이상해졌지만(충격받은 거겠지요). 이 말을 좀 빨리 했군요.

 

가시와기 다쿠야는 확실히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라 여겼기 때문에 교장선생님과 경찰은 고발장을 아이들한테 숨기기로 하고 그것을 누가 썼는지만 알아냅니다. 숨기기로 한 판단이 잘못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야케 주리가 고발장을 썼다는 것을 알았지만 바로 무엇인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긴 미야케 주리를 불러다가 무슨 말을 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고 시간이 흘렀다면 미야케 주리 마음을 풀어주었을 테지만, 담인인 모리우치 선생님을 미워하는 사람 때문에 고발장을 텔레비전 방송국 사람이 받게 됩니다. 가시와기 다쿠야 부모도 알게 되어, 우리 아이는 불량 아이들한테 죽임 당한 것이냐 하는 말을 합니다. 고발장을 받은 텔레비전 방송국 기자 모기는 그 일을 방송으로 내보냅니다. 그 일 때문에 아사이 마쓰코는 교통 사고로 죽습니다. 그다음에는 아이들을 괴롭힌 오이데 슌지 집에 불이 납니다. 가시와기 다쿠야 귀신에 씌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어쩌면 정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 하나가 죽은 일은 아주 큰일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도, 왜 그렇게 했을까를 밝혀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시와기 다쿠야는 일기도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그걸로 끝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왜 죽었을까를 밝혀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네요. 경찰은 그런 일에 시간을 내지는 않겠죠. 그래도 가끔 혼자서 알아보는 사람도 있던데, 여기에는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미야케 주리가 그런 고발장을 쓴 거겠죠. 아이들을 괴롭히는 오이데와 이구치, 하시다도 그냥 내버려두었기 때문이겠죠. 아무리 오이데 아버지가 큰 소리치고 화를 내도 거기에 맞서야 하지 않았을까요. 오이데 아버지는 자식이 잘못을 해도 벌을 받게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는 오이데를 때렸을 것도 같지만, 그걸로 끝입니다. 그저 돈만 벌려고 했어요. 오이데 패거리한테 맞은 피해자한테는 돈을 주고 일을 끝내려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오이데를 따끔하게 혼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혼이 나서 오이데가 마음을 바로잡을지는 모르겠지만. 1990년인데 그렇게 옛날 같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앞에서 여러 가정이 나온다고 했잖아요. 가시와기 다쿠야 집도 그렇게 괜찮지 않았습니다. 다쿠야한테 네 살 많은 형이 있는데 따로 떨어져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집안이 다쿠야를 중심으로 돌아갔거든요. 다쿠야는 어릴 때부터 자주 아팠는데 이것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뭔가 달랐습니다. 그것을 이용하는 머리가 좋은 아이였습니다. 다쿠야가 죽고 엄마가 형 히로유키한테 하는 행동을 보니 《퍼펙트 블루》가 생각나더군요. 여기에서는 동생이 아닌 형이 죽었지만. 그런데 엄마가 왜 네가 아닌 그 애가 죽었을까 하고 말하는 것은 똑같았습니다(‘퍼펙트 블루’에는 다른 비밀이 있지만). 가시와기 다쿠야 시신을 가장 먼저 본 노다 겐이치 집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엄마는 마음이 건강하지 못했고, 아빠는 그런 엄마 때문에 힘들어하고 그래서 다른 곳에 가서 살려고 했습니다. 노다 겐이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는 《낙원》이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거의 잊어버렸는데도 말입니다. 다행하게도 노다 겐이치는 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노다를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거든요. 가시와기 다쿠야 방송이 나간 뒤 노다 겐이치는 학교에서 다른 학교 아이를 만납니다. 그 아이는 대체 누구일지, 아주 잠깐 나왔는데 가시와기 다쿠야를 아는 아이였습니다. 2학년 A반 반장 후지노 료코 집은 괜찮습니다. 아빠는 형사고 엄마도 일을 해서 바쁘지만 료코와 이야기를 잘 합니다. 료코가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려는 거겠지요. 하지만 료코 엄마는 료코한테 너는 아직 어리니 가만히 있어라 하더군요. 이 말 때문은 아니지만 가시와기 다쿠야가 죽고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료코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무엇을 하는지 나오겠지요.

 

 

 

 

☆―

 

같은 학년이나 같은 반이라고 모두가 격의 없이 지내는 건 아니다. 현실은 반대다. 성적. 겉모습. 운동신경. 적절한 형편에 재치 있는 말을 던지는 능력. 밝거나 어두운 성격. 학생들은 서로 온갖 잣대로 측정하고 측정 당한다. 그렇게 해서 친하게 지낼 상대를 정한다. 선생님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어른 사회에 구별이나 격차가 있듯 학교에도 그런 것이 있다. 아이들은 누구나 그것을 안다. 이해한다. 인정한다.  (353쪽)

 

 

“지금껏 우리는 선생님이나 매스컴 같은 둘레 사람들한테 모든 걸 맡기고 아무 행동도 하려 하지 않았어. 그래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 좀더 일찍 우리가 바로 나서야 했던 게 아닐까?”  (667쪽)

 

 

“이제 지긋지긋하다고요. 경찰도 학교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죠? 그러니 우리 매스컴을 믿으라는 건가요? 그런 말이 하고 싶어요? 그러니 우리한테 뭐든 다 털어놔라, 모든 정보를 넘겨라, 너희한테 해로울 건 없을 거다?”  (690쪽)

 

 

 

 

 

준비하다

 

  솔로몬의 위증 2 : 결의   ソロモンの証 第II部 決意 (2012)

  미야베 미유키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2013년 06월 26일

 

 

 

 

 

 

 

 

 

 

 

 

조토 제3중학교 2학년 가시와기 다쿠야가 죽고 시간이 흘렀다. 가시와기 다쿠야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걸로 마무리지었지만, 얼마 뒤 학교의 불량한 아이들이 가시와기 다쿠야를 죽였다는 고발장이 날아왔다. 그리고 그 일이 텔레비전 방송에 나오고 2학년 A반 아사이 마쓰코가 죽었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을 즐기던 오이데 슌지 집에 불이 나서 할머니가 죽었다. 이런저런 일이 끊이지 않는 조토 3중학교의 인상은 아주 안 좋아졌다.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마음은 어떨까, 그렇게 좋지는 않을 것이다. 바깥에서 보는 사람은 아주 적고 자극을 주는 말만 듣고 조토 3중학교를 안 좋게 여길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확실한 것은 가르쳐 주지 않고 너희는 몰라도 된다고 말하는 것을 참지 못한 아이, 2학년 A반 반장이었던 후지노 료코는 가시와기 다쿠야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얼마 앞두고 그 일을 2학년 A반이었던 아이들한테 말한다. 우리 힘으로 가시와기 다쿠야의 죽음의 참모습을 밝혀내자고, 자신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 다른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내가 어땠던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떠오른 게 거의 없었다. 책을 보다보면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일을 경험할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잘 모르겠다. 설명이 모자란 듯한데, 그러니까 내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가운데 낄 수 있을까다. 아마 어렵겠지. 그냥 잠시 생각해본 거다. 이렇게 책으로나마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후지노 료코가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이것은 료코만 그런 것은 아니다. 무엇을 몰랐느냐 하면 오이데 슌지 편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무슨 편 가르는 것 같은데, 이 말보다는 오이데 슌지한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고 해야겠다. 이 세상에 사정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료코와 아이들은 가시와기 다쿠야를 죽였다는 말을 들은 오이데 슌지를 피고로 재판을 열기로 한다. 이런 이야기할 때는 조금 재미있게 보였다. 무엇인가 시작할 것 같아서.

 

처음에는 료코가 오이데 슌지를 변호하려고 했는데 오이데 아버지 때문에 료코는 검사가 되었다. 오이데 슌지를 변호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다른 학교 학생 간바라 가즈히코였다. 그리고 노다 겐이치는 조수를 하겠다고 했다. 간바라 가즈히코는 노다 겐이치가 가시와기 다쿠야 시체를 본 곳에서 만난 아이다. 그 아이가 또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 나왔다. 간바라 가즈히코한테는 어렸을 때 엄청난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엄마와 간바라를 때렸다. 그러다 아버지가 엄마를 죽이고 아버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간바라는 이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인데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다니. 솔직히 간바라 마음이 어떨지 잘 모르겠다. 그것을 봤을 때 《츠나구》(츠지무라 미즈키)에 나온 남자아이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 아이도 부모가 그런 식으로 죽었다고 알고 있었다. 비슷한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츠나구’에 나온 남자아이 부모는 사이가 좋았다. 간바라는 가시와기 다쿠야와는 어떤 사이였을까. 노다 겐이치는 간바라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변호인 조수를 하겠다고 했던 거다. 가장 많이 달라진 사람은 노다 겐이치다. 겐이치 엄마는 여전히 아프지만 겐이치가 아빠와는 곧잘 이야기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이제는 아니다. 간바라와 가시와기 다쿠야 일은 다음에 더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간바라가 오이데 슌지 변호를 맡은 것은 자신한테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고 했으니까. 가시와기 다쿠야한테 해주지 못한 일을 오이데 슌지한테 해주려는 것일까.

 

앞에서 말하다가 말았는데 오이데 슌지는 아버지한테 맞았다. 오이데 아버지는 폭력으로 엄마와 오이데를 꼼짝 못하게 했다. 엄마는 슌지를 걱정하는 것 같지만 밖으로 자주 나갔다. 노다 겐이치는 오이데 슌지가 집에서 맞고 밖에서 풀었나 했다. 하지만 이것은 좋게 봐줄 수 없다. 아무리 집에서 그런 일이 있다 해도 다른 사람을 때리고 괴롭히면 안 된다. 오이데 아버지 회사 고문 변호사가 오이데 슌지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오이데 슌지한테 제대로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괴롭힘 당하는 사람 마음도 몰랐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미야케 주리를 괴롭힌 일도 오이데 슌지는 잊고 있었다. 돈이 최고고 아내와 아들을 폭력으로 지배하는 오이데 아버지는 달라질 수 있을까. 그래도 오이데 슌지는 앞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재판이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미야케 주리한테도 그러기를 바란다. 료코는 변호인이었을 때는 고발장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검사가 되어서 그것을 그냥 놔둘 수 없게 되었다. 미야케 주리한테 안 좋은 감정을 가졌던 료코는 주리 말을 믿고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는 많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뭉뚱그려서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다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선생님이 아이들한테 관심을 가질 수 없겠지만 담임선생님은 자기 반 아이들을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선생님도 사람이기에 아이들을 모두 좋아하고 똑같이 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게 하려고 애써야 한다. 2학년 A반 담임이었던 모리우치 에미코는 아이들을 가르친 지 얼마 안 되었고, 아이들을 똑같이 대하지 않았다. 귀찬은 일은 피했다. 이것은 모리우치 선생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학교는 오이데 슌지, 하라다, 이구치가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일을 아주 못하도록 하지 못했다. 한번 말한다고 그 말을 듣지 않을 테지만. 그것도 있지만 학교(선생님)는 괴롭힘 당하는 아이도 모르는 척했다. 이런저런 문제가 없는 학교는 없을 것이다. 선생님만은 인격을 보고 뽑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선생님도 경험이 쌓이면서 나아지는지도. 뭔가 좋은 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 책 제목인 ‘솔로몬의 위증’에 맞는 일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권에 나오려나보다. 아니 위증은 꼭 재판에서만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재판을 준비하는 아이들 대단해보였다. 그런 것을 몇 사람은 안 좋게 봤지만 아이들을 응원해주는 어른도 있었다. 재판을 해서 상처받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필요한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그리고 재판을 하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전보다는 좀더 나아질 것 같다.

 

 

 

 

☆―

 

“우리는 지금껏 아무것도 못했어. 어중간한 처지에서 방송국이 일으킨 소동에 휘말리기만 했고, 그러면서도 진실이 뭔지 누구한테도 듣지 못했어. 그런 게 불만스럽지 않았니? 난 너무 싫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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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었지만, 뭐라고 말을 꺼냈다가 말썽에 휘말리긴 더 싫어서 입다물고 있었어. 난 중학생이니까 부모님과 학교에 맡겨두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그랬더니 결국 어떻게 됐어? 고발장 건은 해결되지 않고, 아사이가 죽고, 이구치와 하시다한테 그런 일이 생기고, 게다가 이게 끝도 아니야. 이번에는 오이데 집에 불이 났어. 다들 벌써 알겠지만, 누가 일부러 불을 지른 걸 수도 있어! 불이 나기 전에 죽이겠다는 협박 전화가 걸려왔대. 오이데 아버지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말하는 거 봤지?”  (17~18쪽)

 

 

“아사이라는 아이는 억울하게 죽은 거야. 정말 운이 나빴어. 조금만 더 일찍…… 뭔가 할 수 있었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212쪽)

 

 

가즈히코가 글을 외는 듯한 투로 말했다. “나한테 가치 있는 것은 내 둘레에 없다. 세상 어딘가에,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 나를 둘러싼 것은 쓰레기뿐이다. 언제쯤이면, 어떻게 하면 이 쓰레기 더미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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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현명한 녀석은 타협할 줄 알아. 자기가 아이라는 사실이 어떤 뜻인지 이해하지. 꼭 남한테 말하거나 일기에 쓰지 않더라도 알고는 있어. 아니까 잊고 살아갈 수 있는 거야.”

 

그러나 가시와기는 달랐다.  (324쪽)

 

 

“고발장을 쓴 여자애한테도.”

 

“누군가 자기 말에 귀기울이고 믿고 편들고 함께 싸워주는 경험이 절실하게 필요할지도 몰라. 바로 지금 너희가 슌지 군한테 해주는 것처럼.”  (377쪽)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닷새

 

  솔로몬의 위증 3 : 법정   ソロモンの証 第III部 法廷 (2012)

  미야베 미유키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2013년 07월 10일

 

 

 

 

 

 

 

 

 

 

 

 

짧다고 생각하면 짧고 길다고 생각하면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가 이 책을 본 시간보다 책 속 시간이 더 길지만, 다른 때보다 이번에는 느리게 봤습니다. 마지막에서야 조금 부지런히 봤습니다. 어떻게 결론이 날지, 그것보다 가시와기 다쿠야가 죽은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또 가시와기 다쿠야는 어떤 아이였나도 알고 싶었습니다. 1, 2권에도 조금 나왔지만 다쿠야 형 히로유키는 다쿠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불량한 아이들 오이데 슌지, 이구치, 하시다는 다쿠야를 어쩐지 기분 나쁜 녀석이라고 했어요. 다쿠야 부모, 아버지가 법정에서 다쿠야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쿠야는 생각이 깊고 삶과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아이였다고 하더군요. 아버지는 다쿠야를 특별하게 여기고 자라면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답니다. 그런 말을 할 때 형 히로유키는 그것은 아버지가 만든 다쿠야의 허상이라고 했습니다. 누구 말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없습니다. 사실 가시와기 다쿠야 자신이 말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쿠야는 이 세상에 없어서 그럴 수 없다는 게 아쉬웠습니다.

 

오이데 슌지 패거리가 가시와기 다쿠야를 죽였다는 고발장을 쓴 미야케 주리도 증인으로 나온다고 해서 사람들 많은 데서 말할 수 있을까 했는데 미야케 주리 때는 다른 사람은 볼 수 없게 했습니다. 학생들이 하는 재판이지만 진짜 재판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실제 재판을 본 적은 없지만. 저는 미야케 주리가 하는 말을 보면서 여전히 화가 났는데, 배심원을 하는 아이는 슬펐다고 하더군요. 그 아이는 죽은 아사이 마쓰코를 생각했거든요. 미야케 주리는 살아서 말을 하는데 아사이 마쓰코는 죽어서 말을 할 수 없다면서. 오이데 슌지를 따라서 아이들을 괴롭히고 나쁜 짓을 하던 하시다도 말을 했습니다. 이구치가 먼저 했지만. 가시와기 다쿠야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을 때 하시다는 다쿠야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다쿠야가 기분 나쁜 말을 해서 하시다는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고 하더군요. 중학생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말이어서 그랬습니다. 기분 나쁜 것보다 무서워진 거였습니다. 하시다는 그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더군요. 어른이나 친구한테 말했다면 좋았을지도 모를 텐데. 하시다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던 것인지도. 무슨 말이었는지는 말하지 않고 이런 말을 했군요. 다쿠야는 오이데 슌지, 이구치, 하시다한테 누군가를 죽여달라고 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또 죽음입니다. 다쿠야는 살아가는 것보다 죽음을 더 생각했습니다. 불합리한 세상을 살아가서 뭐 하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생각을 조금 바꿔서 이 세상을 바꿔야겠다 생각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다면 다쿠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을지도 모르죠.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거나.

 

아이들은 하시다 말을 듣고 다쿠야한테 말을 해볼걸 그랬다고 합니다. 이 학교에 다른 사람한테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만화를 보면 그런 사람 하나쯤은 있어서 혼자 있는 사람을 조금 귀찮게도 하거든요. 솔직히 저는 혼자 있는 사람 가만히 두지 않는 사람 별로지만, 나중에는 혼자였던 사람이 나아지기도 해서 그런 사람 있는 거 나쁘지는 않구나 했습니다. 가시와기 다쿠야가 생각이 깊다고 해도 아직은 어리거든요. 그러니까 다쿠야가 다른 아이들과 바보 짓(바보 짓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은 아닙니다)도 하고 놀기도 해야 했는데 그런 일은 거의 안 했습니다. 이것은 어느 한쪽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다쿠야 형 히로유키가 이런저런 말을 했을 때 후지노 료코는 히로유키가 다쿠야한테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도 맞습니다. 히로유키는 부모에 대한 서운함이 있어서 그러기도 했을 거예요. 그리고 다쿠야 엄마 아버지는 다쿠야를 조심스럽게 대했습니다. 부모가 마음을 써주는데도 다쿠야는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한 것 같더군요.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상대한테 그대로 전달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아이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오이데 슌지 변호를 맡은 간바라 가즈히코입니다. 간바라는 다쿠야와 초등학생 때 같은 학원에 다니면서 친구가 되었습니다. 다쿠야는 간바라가 일곱살 때 겪은 일을 알았습니다. 그 일을 다른 사람한테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남다른 관심을 가졌습니다. 아버지가 엄마를 죽이고 스스로 묵숨을 끊었는데 간바라는 왜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지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정말 다쿠야는 간바라가 지금 괴로워하고 살기를 바랐던 걸까요, 아니면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부러워했던 걸까요. 3권을 보다보니 미나토 가나에 소설 두편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장편 《소녀》고 다른 하나는 중편 <15년 뒤의 보충수업>입니다. ‘소녀’에는 죽음을 생각하는(자기와 가까운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가 나오고, ‘15년 뒤의 보충수업’에는 중학생 때 친구한테 일어난 일에 관심을 갖고 마음을 썼다면 나쁜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옵니다. 간바라가 나빠지지 않은 것은 간바라를 거두고 키워준 부모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간바라를 따스하게 감싸준 어른이 있었던 거예요. 다쿠야한테는 다쿠야를 이끌어줄 사람이 없어서였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쿠야 자신이 다른 사람이 내미는 손을 잡지 않은 것 같기도 하거든요. 누군가 다쿠야한테 아무리 도움을 주고 싶어해도 그 마음을 다쿠야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혼자가 되는 거죠. 그래도 끈질기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간바라는 간바라대로 힘들어서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책을 본 지 얼마 안 되어서 이렇게 쓰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내가 왜 이렇게 썼을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안 좋은 일이 있었다 해도 살면서 언제나 안 좋은 일만 있었을까요. 가시와기 다쿠야는 이것을 잘 모르더군요. 그리고 다쿠야가 잘 몰랐던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이것은 어렸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안 좋은 세상을 살아가도 뜻이 없다는 생각을 하다니.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지만, 살아가는 뜻을 찾기보다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 또한 그것을 잘 못하고 있지만. 미야케 주리 말을 잘 들어준 사람은 간바라더군요. 그것 때문에 주리가 더 나빠지지 않고 자신이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오이데 슌지는 재판 때 상처를 받았지만, 슌지가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한 것에 견주면 덜하다고 봅니다. 재판이 끝나고 슌지도 달라졌겠지요. 학교라는 사회에서는 어느 한쪽만 잘 하면 안 될 듯합니다. 어느 사회든 그렇겠군요. 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기와 상관없고 귀찮은 일은 보아도 못 본 척하기 일쑤니까요. 그래도 아주 조금은 관심을 갖고 보면 좋겠습니다.

 

이 책(세권)을 보는 동안 이상한 꿈도 꾸었습니다. 잘 생각나지 않지만, 오래 보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시와기 다쿠야 같은 아이가 실제로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아이 대하기 어려울지라도 관심을 가져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죽어서 알게 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많은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게 덧없다 해도 살아있는 게 낫다고 봅니다. 작은 즐거움은 자주 느낄 수 있잖아요.

 

 

 

*그냥

 

얼마전에 본 책에는 사는 게 먼저고 생각하는 것은 나중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번쯤, 아니 몇 번이고 나는 왜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겠지요. 그때 바로 답은 알 수 없을 겁니다. 답을 몰라서 아쉬워하기보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살아가는 것도 괜찮겠네요. 이 세상에는 답이 없는 게 많습니다. 그리고 답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자기한테 맞는 답을 찾으면 좋을 듯합니다. 이 말 조금 상관없는 걸까요.

 

 

 

희선

 

 

 

 

☆―

 

놀라움이 평상심이면 된다. 살다보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다고 평소에 생각해놓으면 된다. 어쩌다 흠칫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생리 반응이지 놀라움과는 다르다.  (209쪽)

 

 

“이 재판에서는 아무도 이길수 없어.” 료코가 말했다. “모두 상처투성이야. 진흙탕에 빠졌어. 얻을 게 하나도 없어. 그래도, 그렇다 하더라도 그냥 내버려둘 순 없으니까,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니까 다들 애쓰는 거야. 올바른 일을 하고 싶으니까.”  (404쪽)

 

 

─나 있잖아, 후지노.

 

자기 방 벽을 바라보고 주리가 중얼거렸다.

 

─어제 병원에서 깨달았어.

 

의식을 되찾고 몸을 일으켜, 병실 화장실에 가서 언뜻 거울을 본 순간 깨달았어.

 

─그제 뉴스에서, 체포된 가키우치 마나에라는 사람 사진을 봤을 때,

 

저런 얼굴을 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누구 얼굴인지 알았어.

 

내 얼굴이다. 주리는 생각했다. 가키우치 미나에 얼굴은 나와 똑같다.

 

그것은 거짓말쟁이 얼굴이다. 거짓말을 해서 남한테 상처주고 자신도 상처받은 사람 얼굴이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절망한 사람 얼굴이다.

 

─그게 내 판결이야, 후지노.  (508쪽)

 

 

“본 법정에 불려온 증인은 모두 선서를 했습니다. 평의에 들어가기 전 배심원 여러분도 마음속으로 선서해주십시오. 진실을, 오로지 진실만을 마주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해주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 평결에 오이데 슌지라는 한 중학교 3학년생 마음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비뚤어지고 철없고 제멋대로지만, 그래도 틀림없이 사람 마음입니다. 살아있는 마음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 기회를 없애지 말아주십시오. 피고인이 이 법정에서 여러분한테 걸었던 것을 받아들여주십시오. 앞으로는 지금껏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마주하고 바뀌어갈 기회를 피고인한테 주십시오.”  (621쪽)

 

 

 

 

 

 

 

     책을 보다가 그림을 이어보니 이어졌다 학교가 실제 이런 모습은 아닐 테지만...

 

 

 

 

 

밑에 있는 말은 미야베 미유키가 한 겁니다 제가 듣고 우리말로 옮겼지만 틀린 부분도 있을 겁니다. 여러번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이 있어서 대충 끼워맞췄습니다. 혹시 틀린 부분 아시는 분 있으면 가르쳐주세요. 미야베 미유키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겼다기보다 조금 바꾸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군요. 이것도 많이 해봐야 좋아질 텐데...

 

미야베 미유키 사진을 본 적 있는데 얼굴하고 목소리가 어울립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희선

 

 

 

 

 

 

신초사 공식 사이트를 보시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미야베 미유키입니다. 이번은 다섯해 만에 나온 현대 미스터리로 《솔로몬의 위증》이라는 작품을 내게 되었습니다. 10년 걸린 작품으로 제1부, 제2부, 제3부 세 권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쓴 것 가운데서 가장 긴 작품입니다. 이 더운 여름에 이렇게 긴 책을 읽게 해서 조금 미안합니다. 먼저 제1부에서는 어떤 학교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어떻게든 좋게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 마음과 행동이 뒤로 갈수록 나쁜 쪽으로 나아가서 자꾸 일이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집니다. 그 안에서 무대가 되는 학교 학생들이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어떻게든 자신들이 그 일을 헤쳐나갈 수 없을까 하는 것까지가 제1부입니다. 그 뒤 제2부 결의, 제3부 법정까지 가져갑니다.

 

단지 제1부에서 주요 인물이 모두 나오니까 거기에서 ‘아, 이 아이가 주인공인가’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떤 노릇을 하는가’ ‘이 선생님, 아 우리 학교에도 이런 선생님 있지’ 하는 그런 인물을 찾는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뜻 깊은 이 작품 제목이 ‘솔로몬의 위증’인데, 법정 미스터리여서 위증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쓰고 싶었습니다. 왜 ‘솔로몬의 위증’인가 누가 위증하고 있는지 이 제목에는 어떤 뜻이 있는 것인지 저 자신도 작품을 끝내 보고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가장 지혜 있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가장 옳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또는 가장 권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 어떤 것일까 하는 식으로 저도 지금 생각했습니다. 제1부, 제2부, 제3부 읽으시고 먼저 제1부를 읽으신 뒤 ‘솔로몬의 위증’이라는 제목은 어떤 뜻인지도 여러분 저마다 수수께끼로 풀어주신다면 무척 기쁘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세요.

 

 

 

 

 

신초사 공식 사이트를 보시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미야베 미유키입니다. 《솔로몬의 위증》 모두 세 권, 끝까지 써서 책이 나오게 됐습니다. 이 작품 연재가 끝났을 때 저도 담당 편집자도 손을 맞잡고 마라톤을 다 뛴 듯한 마음으로 갑자기 힘이 다 빠져버렸지만, 먼저 이 세권을 읽어주신 분 고맙고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고 말하고 싶습니다. 길었습니다. 그리고 긴 사건이었고 해결까지도 길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와서 많은 사실이 새로 파헤쳐져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여러가지 나타났습니다. 제1부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 좋아한 사람이 뜻밖의 얼굴을 보여주거나, 싫다고 생각한 사람이 뜻밖에 힘을 내거나, 여러가지 형태로 일이 작품 안에서 이러나도록 저도 열심히 쓰려 했습니다. 여러분 저마다 마음속에 마음에 드는 인물이나 '아, 이 애한테는 배신당했다' 거나 '이 애 뜻밖에 좋은 아이였구나' 하거나 '이 사람 마음은 알겠다' 하는 그런 울림같은 게 남아있다면 좋겠습니다. 10년 걸려 쓴 작품으로 저도 이 작품 원고가 끝나서 드디어 졸업한 기분입니다. 제가 이 작품을 써서 얻은 것을 다시 다음 작품으로 이어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가져온 곳 : http://www.shinchosha.co.jp/solomon/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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