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좀 나아졌을 것 같은데

 

  살고 싶다 : 제10회 세계문학상

  이동원

  나무옆의자  2014년 05월 23일

 

 

 

 

 

 

 

 

 

 

 

 

군대가 어떤지 나는 잘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국민이 꼭 해야 하는 일 가운데 국방의 의무가 있다. 이것은 남녀 모두한테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는 조금 불만을 가지고 있을 듯하다. ‘왜 우리만’ 하는. 그냥 보내는 두 해 조금 넘는 시간은 빨리 가지만 군에서 보내는 두 해 이상은 잘 가지 않을 거다(지금은 두 해 안 되려나). 먼저 그곳에는 남자들만 있고 상하관계가 뚜렷하고 해야 하는 것 지켜야 하는 것도 많다. 잘 모른다면서 이런 말을. 책 같은 데서 조금 본 것뿐이다. 일어나고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군대에 갔다 오고는 몸이 좋아지기도 한다. ‘군대 체질인가 봐’ 하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두 그럴까. 군대 이야기를 보다보니 학교도 생각났는데, 학교가 군대보다 좀 나을 것 같기는 하다. 개성을 존중해주지 않는 것은 비슷하지만. 군대는 모두 같아야 한다. 튀면 안 된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일반사회와 동떨어져 있고, 그곳에는 그곳만의 규칙이 있다. 그것을 지키지 않고 적응하지 못하면 아주 힘들다. 군대 잘 적응하면 그럭저럭 지내겠지만 그러지 못하면 지옥같은 곳일 듯하다. 하루가 한 해 같을지도.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계급이 조금씩 올라서 전역할 때가 다가온다.

 

가끔 군대에서 사고,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는 그럴 때마다 걱정이 크겠다. 혹시 저 안에 자기 자식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아들이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괴롭힘 당하는 건 아닐까 하고. 돈과 힘있는 사람은 군대도 가지 않게 하기도 하고, 뒤로뒤로 미루다 잠깐 다녀오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자식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부모도 걱정하겠다. 군대에 가야 하는 사람이 생각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은 군대가 더 심할까. 학교나 일반사회에서는 계급이 없으니까 쉽게 ‘그러지 마’ 할 수 있지만, 군대에서는 계급이 높은 사람한테는 함부로 말하기 어려울 거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거다. 계급과 상관없이 잘못된 일을 하는 사람한테는 그러지 못하게 말해야 한다. 이렇게 말은 잘하는구나. 내가 그런 처지에 놓인다면 잘 말할 수 있을지. 같은 곳에 있으면 그곳이 어떤지 서로 잘 아니 좋게 지내면 좋을 텐데 왜 자기보다 밑에 사람을 괴롭힐까. 사람은 이상하다. 어느 때는 힘과 마음을 모아 대단한 힘을 내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자신만 생각하기도 한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어느 자리에 있든 사람답게 살려고 애써야 한다.

 

이 책에는 군대 이야기보다 군 병원 일이 나온다. 일반병원이 아니어서 여기도 힘있는 사람은 그 힘을 쓰고 자기 쪽 사람한테는 좋게 대하고 다른 사람은 심하게 대한다. 군대에서 다치면 군 병원에 가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다. 그저 훈련받지 않고 잠시 쉴 뿐이다. 시간이 흘러 자대에 돌아가면 그곳에서 겉돈다. 위에서도 밑에서도 그 사람을 업신여긴다. 이필립은 군대에서 무릎을 다치고 병원에 여러 번 갔다 왔다. 군대에 오기 전에 이필립은 자신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군대에서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다. 이필립 같은 사람이 실제로도 많겠지. 어느 날 높은 사람이 이필립을 찾아와서 예전에 있었던 병원에 다시 가라고 한다. 이필립이 알아보아야 하는 것은 정선한 병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까닭이다. 군대에서 자기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한테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다. 정선한은 괴롭힘과는 조금 다른 일을 당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은 그저 자신이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또 한사람은 정선한의 마음을 잘못 받아들였다. 나쁜 일을 당하면 다시 누군가를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군 병원 안에서도 힘을 가지고 휘두르는 사람이 좀 우스웠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살아남으려고 한 건지도.

 

누군가를 짓밟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으면 안 된다. 이필립이 전역을 앞두고 쉬게 되었는데, 그때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필립은 사회는 군대와 다르겠지 생각했는데 별로 다르지 않았다. 힘있는 사람이 힘을 휘두르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 잘해주고 다른 사람한테는 힘든 일을 시켰다. 그래도 하나 군대와 다른 게 있다. 그것은 절대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는 거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군대도 해당하지 않을까. 윗사람이라고 해서 꼭 옳은 건 아닐 테니까. 밑에 사람이 하는 말을 윗사람이 잘 들어야 하는구나. 군대도 수직이 아닌 수평이 된다면 좀더 나을 텐데. 조금 어려울까. 앞으로 군대가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일반사회와는 다르지만 그곳도 소통이 중요하다고 본다.

 

피하지 않고 겪어야 하는 괴로움이나 아픔처럼 군대도 우리나라 남자한테는 꼭 다녀와야 하는 거다. 그 시간을 나름대로 잘 지냈으면 한다. 잘 모르는 내가 이런 말을. 이필립은 그동안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아버지를 알려고 하기도 한다. 군대는 아버지 같은 거라고도 하는데 이필립 아버지는 권위만 내세우는 아버지는 아니었다. 이필립은 군 병원에서 만나 친구가 된 정선한도 생각했다. 정선한한테 마음을 더 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주 힘든 사람은 한마디 말에도 힘을 얻을 거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듣고 싶어하는 쪽인지도). 아니, 들어주기라도 하고 싶다(이 말 얼마 전에도 했구나).

 

 

 

 

☆―

 

“더러운 꼴 많이 볼 거다. 억울하기도 할 거고 모멸감도 느낄 거야. 인간이란 게 이런 거구나, 세상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거구나 싶을 거야. 너 자신이 아무 쓸모도 없게 느껴져서 죽고 싶을 수도 있다. 그래, 나처럼 될 거야. 하지만 여기가 끝은 아니잖아? 나갈 때가 오잖아? 군 생활 잘하지 못했다고 좋은 삶 살지 못하란 법은 없잖아.”  (86쪽)

 

 

“네가 없으면 죽겠다는 사람과는 만나지 마라. 사람은 사람을 채워줄 수 없다. 날 채워줄 수 없는 사람한테 나를 채워주길 기대하고 요구하니까 결국은 바닥을 드러내고 메말라 갈라져버린다. 자신이 없으면 살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남은 사람 삶을 부수는 사랑은 없다. 포도 냄새만 첨가한 탄산 주스처럼 그것은 사랑이라 했을지 모르나 실체는 다른 것이다. 사랑은 상대를 세워주는 것이다.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명을 낳는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나도 사랑은 가슴에 남아 그 남은 시간을 살아가게 한다. 나는 누구보다 너와 엄마를 사랑하지만 너와 엄마가 없어도 살 수 있다. 너도 그래야 한다.”  (110쪽)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 것이냐고 묻는 사람.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가 아니고 ‘옳은 것을 함께 지켜나가자’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면 괜찮지 않겠냐?”  (156쪽)

 

 

 

 

 

 

 

한번 가면 자꾸 가고 싶어지는 곳

 

  벚꽃 흩날리는 밤   宵 (2006)

  기타모리 고   김미림 옮김

  피니스아프리카에  2014년 03월 20일

 

 

 

 

 

 

 

 

 

 

 

 

 

단골 손님 가운데 누군가 “내 그림자를 찾으러 이 가게에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하고 얼근하게 취해서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별 뜻 없는 공허한 넋두리일 뿐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가슴 속 어딘가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저도 모르게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자신의 발이 닿는 범위 안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안도감을 안겨준다. 혹은 맥주와 술안주, 그밖에 여러 가지 요소가 정신을 맑아지게 하는 곳, 그곳이 바로 ‘가나리야’다.  (13쪽)

 

 

사람은 왜 술을 마실까요. 하나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어린왕자가 자기 별을 떠나 세번째로 간 별에는 술꾼이 살았습니다. 어린왕자가 술꾼한테 왜 술을 마시느냐고 하니, 술꾼은 잊기 위해서 합니다. 어린왕자가 무엇을 잊기 위해서냐고 하니, 술꾼은 술을 마시는 부끄러움이라고 하지요. 거의 안 좋은 기분을 날리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을 좋아해서 마시는 사람도 있겠지요. 거기에 빠져서 의존하지 않는다면 조금 마시는 건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술 조금은 약이 되어도 넘치면 독이 되잖아요. 저는 싫어합니다. 무슨 맛으로 마시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런 말을. 누군가는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좋다고도 하는데 그런 분위기는 어떤 건지. 술 싫어한다면서 왜 이런 말을 했느냐구요. 이 책 속에 나오는 맥주바 가나리야 때문입니다. 맥주바기는 한데 가나리야에 도수 다른 맥주 네가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 구도 데쓰야가 나름대로 만드는 음식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주 가끔은 맥주가 아닌 다른 술을 주기도 하는군요. 구도는 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술이 없어도 맛있게 먹을 만한 걸 줄 것 같아요. 이것은 저만의 바람일지도 모르겠군요. 가나리야는 그리 크지 않아요. 어쩌다 가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단골이 많습니다.

 

가나리야가 어딘가를 떠오르게 하지 않나요. 저는 지난번에도 그곳이 생각났는데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그곳은 <심야식당>입니다.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겠군요. 심야식당 주인(이름은 모르는군요)은 재료가 있다면 손님이 해달라는 음식을 해주기도 합니다. 가나리야는 메뉴가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않고, 구도가 말하는 것을 달라고 합니다. 구도는 손님 마음을 잘 압니다. 관찰력이 뛰어나지요. 구도는 안락의자 탐정입니다. 심야식당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가나리야를 찾아오는 손님은 수수께끼를 가지고 옵니다. 그곳에서 만난 손님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뭘까’ 하기도 하고, 구도가 생각한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탐정은 적은 정보로도 잘 알잖아요. 구도도 별말 안 들어도 어떤 일인지 그 일 뒷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잘 알더군요. 확신이 없을 때는 조사를 해보기도 합니다. 신중한 사람이군요. 형사인 사람이 구도가 형사를 하면 범인이 벌벌 떨겠다고 했습니다. 구도 앞에서는 무슨 말이든 솔직하게 하게 되어서요. 그런 사람이 있는 걸까요. 보면 무슨 말이든 하게 되는. 어쩌면 ‘이 사람한테 말해도 다른 데 퍼질 일은 없겠지’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가깝지도 않고 아주 멀지도 않은 사이로 인상이 좋아서일지도. 구도는 요크셔테리어가 사람이 된 듯한 모습과 분위기라고 합니다. 요크셔테리어 들어봤지만 정확히 어떻게 생긴 개인지 모릅니다. 이 말에서는 그저 친근함이 느껴질 뿐입니다.

 

식당, 맥주바가 배경인 이야기뿐 아니라 커피집이 배경인 이야기도 있어요. 책으로 본 건 아니지만 원작은 책입니다. 커피 한잔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말도 하더군요. 그 커피집을 하는 사람은 오래전에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날 아침에 아버지가 커피 한잔 마시고 가라고 했는데 그것을 마시지 않고 나가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커피를 마셨다면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 텐데 했어요. 죽은 사람은 좀 나쁜 사람입니다. 나쁘다고 해서 죽어도 괜찮다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가 죽고 그 사람은 형무소를 나와 커피집을 합니다. 아버지와 같은 커피맛을 내고 싶다고 했어요.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들 이야기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기도 합니다. 바람난 남편 때문에 마음 아픈 아내, 아픈 아내 병간호에 지쳐서 나쁜 마음을 먹은 남편, 형무소를 나와 마음잡고 살아가려는 사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칼로 찌르고 그 마을에 온 여자, 남편이 죽임 당한 사람. 생각나는 건 이 정도네요. 이런 사람들이 커피집에서 남자가 내리는 커피를 마시고 생각합니다. 심야식당, 맥주바 가나리야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겠지요.

 

저는 어디 다른 곳에 가서 무엇인가를 먹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곳에 가는 걸 좋아해야겠군요. 저는 이렇게 책으로 가보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가나리야 주인 구도가 만드는 먹을거리는 글로만 보아도 맛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것보다 이런 이야기만 했군요. 가나리야라는 곳이 실제 있는 것처럼. 이야기는 다섯편입니다. 이번이 두번째로 첫번째는 《꽃 아래 봄에 죽기를》입니다. 여기 담긴 이야기는 저마다 재미있습니다. 안락의자 탐정이라고 해서 엄청난 일을 푸는 건 아닙니다. 한사람 죽기는 하는군요. 여기 나온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에 안 드는 일 때문에 어떤 일을 꾸미는 사람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귀찮고 크게 바라지 않아서 안 하는 거고, 실제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좋은 이야기도 있지만, 죄 없는 개를 이용한 사람도 있어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행복한 것은 예전 남자친구가 불행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 사람이 잘되면 자신은 잘 안 된다고 여겼어요. 자신이 잘되고 잘 안 되고는 다 자기 하기 나름인데 말입니다. 그 여자가 했을 법한 일은 무섭더군요. 그렇게까지 안 했다면 좋을 텐데요.

 

한해 전에 죽은 아내가 남긴 마지막 선물을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인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아내가 남편한테 복수하려고 한 건 아니다 생각했어요. 같은 여자라 해도 저도 여자 마음을 잘 모르지만, 아주 모르는 건 아닌가봅니다. <벚꽃 흩날리는 밤에>에 나오는 연두색 꽃이 피는 교이코가 보고 싶기도 하네요. 우리나라에도 이 꽃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에서는 아이를 생각하는 엄마 마음도 볼 수 있군요. 아이는 자라면서 엄마를 원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믿고. 어른 사정 때문에 아이가 마음을 다치는군요. 이런 일은 실제 일어나기도 하겠네요.

 

사람들이 가나리야에 가는 건 맥주와 구도가 해주는 맛있는 먹을거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말을 나누기도 하거든요. 뭔가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는 살짝 구도한테 말해도 괜찮습니다. 그곳에 가면 마음 편하고 즐거운 거겠지요. 거기에서는 하루 동안 있었던 안 좋은 일 쉽게 잊겠습니다. 책을 보는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 거네요.

 

 

 

희선

 

 

 

 

☆―

 

뚜껑을 열자마자 맛있는 국물 냄새가 김과 함께 코끝에 전해진다. 유자 껍질을 넣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상큼한 냄새도 풍겼다. 조금 전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구도는 조금 독특한 메뉴를 준비해 봤다며 이 요리를 추천했다. 구도가 이렇게 말할 때는 자세히 묻지 않고 바로 주문한다.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는 데다가 무엇보다 이렇게 주문해서 나온 음식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어긋났던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12쪽)

 

 

“뭐, 요리는 그 녀석, 혀에 뭔가 특별한 장치라도 있는 것 같다니까.”

 

“우리들은 마법장치라고 하죠.”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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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반짝 변주곡

  황경신

  소담출판사  2014년 07월 28일

 

 

 

 

 

 

 

 

 

 

 

   글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쓰다니. 그것보다 별로 생각나는 게 없어. 이번에 만난 책에 실린 글 제목은 ㄱ에서 ㅎ까지야. 차례가 사전과 같아. 나도 따라서 ㄱ에서 ㅎ까지에 맞는 제목으로 글을 써볼까 하다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만뒀어. 대신 첫소리 ㄱ이 들어가는 말부터 시작하기로 했어. 어쩌면 중간에 쓸데없는 말을 할지도 모르지. 이렇게라도 ㅎ까지 쓴다면 좋겠지만 끝까지 못 쓸지도 몰라. 처음부터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황경신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언제일까. 잘 생각나지 않아. 다른 데서 먼저 알고 페이퍼(PAPER)를 본 건지, 페이퍼를 보고 나서 안 건지. 황경신 하면 페이퍼와 뗄 수 없는 이름이기는 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페이퍼를 만든 김원 아저씨일지도 모르겠지만. 페이퍼는 잡지 이름이야. 몇해 전까지 보았는데 지금은 안 봐. 사도 다 볼 때가 별로 없어서 그만 보기로 했어(어쩐지 김원 아저씨한테 미안하군). 그때 ‘책을 다 못 보는 것은 책이 크기 때문이야’ 하는 핑계를 댔어, 나한테. 페이퍼에는 멋진 사진과 글이 실려있어. 그 책을 보고 나도 사진을 잘 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물론 글도 잘 써 보고 싶었지. 지금은 사진 잘 안 보게 되었어. 맞다, 달마다 주제가 있었어. 책 속에는 그 주제에 맞는 글과 사진 그리고 그림이 있었어. 그것을 보면서 이런 것은 대체 어떻게 쓸까 했는데, 아직도 글 쓰는 건 어려워. 페이퍼 안에는 황경신 글도 있었어. 시간이 흐르면 그 글이 모여서 책이 되기도 했어. 황경신은 신화, 그림도 이야기했어.

 

 

 

                
                
                
                

                      지금이 11월이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네권 모두 2007년 페이퍼다

                    올해 페이퍼는 열아홉살을 맞이했다고 한다 다음해에는 스무살이다

 

 

 

 

 

   다락방이 있었어.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에, 그리고 인터넷 속 페이퍼에도. 다락방이 있는 집은 그렇게 크지 않아. 아니 내가 모르는 거고 큰 집에도 다락방 만들겠다. 내가 살았던 곳은 방 한 칸에 작은 다락이 있었어. 천장이 낮아서 일어설 수 없지만 앉으면 괜찮았어. 혼자 있기에 딱 좋은 곳이지. 난 그곳에서 라디오를 듣고 편지를 썼어. 편지쓰기보다 숙제를 했던가. 책은 안 읽었어. 또 생각하니 아쉽다. 책 읽기에 좋은 곳이었는데. 그렇게 멋진 일은 없었지만 다락방이 있던 곳에 살아본 것은 괜찮은 일 같아. 다락방은 집집마다 달랐을 것 같기도 해. 자신이 기억하는 다락방과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다락방 다를지도 모르겠어. 이것도 조금 재미있지.

 

 

 

 

 

   라디오는 내 친구

      (책도 내 친구)

      언제나 내 곁에 있지

      “고마워”

 

 

 

 

 

   마지막 남은 이야기에서 ‘밀리언 달러 초콜릿’을 말했는데, 나는 ‘초콜릿 우체국’을 생각하고 그것을 꺼내 보았어. 책 제목을 보고 이것은 그냥 ‘초콜릿 우체국’이네 했지. 곧 ‘밀리언 달러 초콜릿’은 더 나중에 나온 책으로 봤다는 게 생각났어. ‘초콜릿 우체국’은 어느 날 초콜릿 우체국을 본 ‘나’가 그곳에 들어가서 지난날 자신이 지난날 그 사람한테 초콜릿을 보내는 이야기야. 본래는 초콜릿을 주지 않았는데. 주소 몰라도 찾을 수 있다고 하더군. 신기한 이야기지. 2월 14일이 지나자 초콜릿 우체국은 연기처럼 사라졌어. ‘나’는 집에서 지난날 그 사람한테서 받은 편지, 물건을 보다가 시집 속에서 ‘초콜릿 잘 받았어’ 하는 말이 적힌 종이를 봐. 지난날이 조금 바뀌어도 지금은 그대로인 듯해. 그래도 추억이 하나 늘어난 거니 괜찮은가.

 

 

 

 

 

   밤, 좋아해. 낮도 좋아해.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좋은 거구나. 아니 사실 밤을 조금 더 좋아해. 어두운 것보다 조용해서 좋아하는 것 같아. 별은 낮보다 밤에 더 잘 보이잖아. 밤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지금 보는 별빛은 아주 오래전 별빛이구나(언젠가도 한 말). 어쩐지 밤에는 낮보다 신비한 일이 더 많이 일어날 것 같아. 무서운 일도 일어나지만. 좋은 것만 생각하고 싶지만 늘 반대도 생각해. 빛과 어둠은 바로 가까이 있기 때문이겠지. 살아가는 일도 그렇구나. 기쁜 일 반, 괴로운 일 반.

 

 

 

 

 

   시간은 흘러간다

      사람도 흘러간다

      마음도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에

      아쉬워하지 않기

 

 

 

 

 

   어느새 ㅇ이라고 하고 싶은데 아직 여섯이나 남았어. 무엇을 쓸지 정하지 않고 그냥 떠오르는대로 쓰니 이야기가 뒤죽박죽이야. 황경신 책을 읽고 느낌을 써 본 적은 겨우 한번이야. 그것은 느낌이 아니었군. 마음에 드는 제목과 내가 쓰고 싶은 제목으로 짧게 썼지. 얼마전에도 한번 그렇게 해 보았는데 좋은 게 생각나지 않아서 유치한 것만 썼어. 그때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어. 어떤 글을 보면 나도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막상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하지’ 하는 거야. 황경신은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부러워. 멋진 이야기, 감동을 주는 이야기 쓰는 사람은 다 부러워.

 

 

 

 

 

   지난날도 다가올 날도 아닌 바로 지금

 

 

 

 

 

   천마디 마음 없는 말보다

      한마디 마음 담긴 말이 듣고 싶어

      아니, 아니,

      네가 하는 말은 뭐든 좋아

      내가 다 들을 테니 말해봐

 

 

 

 

 

   코코아, 커피 뭐가 좋아. 쌀쌀할 때는 따듯한 게 좋지. 나는 더울 때도 따듯한 걸로 마셔. 물은 차가운 거. 이건 언제나 그렇구나. 날이 차고 건조할 때는 따듯한 물 많이 마시면 좋대. 내가 이런 말할 처지는 아니구나. 알아도 그렇게 안 하거든. 사람 체질에 따라 물이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겠지. 어쩌다가 이렇게 흐른 거지. 코코아든 커피든 반가운(좋은) 사람과 함께 하길.

 

 

 

 

 

   텅 빈 내 마음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따듯한 시,

      따듯한 노래,

      따듯한 마음,

 

      따듯한……

 

 

 

 

 

   피아노는 기다렸다. 뚜껑을 열고 자신을 쳐줄 사람을. 한때 피아노 둘레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피아노 소리에 맞춰 노래했다.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피아노가 하는 일은 그저 자리를 차지하는 것뿐. 피아노는 차라리 누군가 자신을 부수어 추운 밤을 따스하게 보내길 바랐다. 피아노한테는 그런 기회도 오지 않았다. 그러고도 오랫동안 피아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한자리에 머물렀다. 피아노 자신이 무엇을 기다렸는지 잊어갈 무렵 여자아이가 찾아와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한적한 시골 버스 정류장

 

 

해철이는 학교가 끝나면 어김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가끔 아이들과 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참았다.

 

해철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와 살았다. 어느 날 해철이 엄마는 어디론가 떠나게 되었다. “해철아,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엄마가 나중에 해철이 데리러 올게.”  “엄마, 어디가, 언제 올 건데?”  “미안하다, 해철아.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해철이 걱정은 말고 잘 살아.” 하늘이 할머니가 말했다. “엄마, 엄마!” 해철이 울음소리에도 해철이 엄마는 밖으로 나갔다. 엄마를 따라 나가려는 해철이를 할머니가 잡았다. 다음날부터 해철이 해바라기가 시작되었다. 정류장에 버스는 자주 오지 않았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가끔 버스가 서면, 해철이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세 해가 지나도록 해철이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해철이는 엄마를 믿고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해철이가 정류장에 가자 버스가 왔다. 누가 내리는지 버스는 잠시 멈추었다. 버스에 가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떠난 그 자리에 해철이 엄마가 서 있었다.

 

 

(본래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바꿨습니다. 이런 글에 이름을 써서 미안하군요.)

 

 

 

희선

 

 

 

 

☆―

 

이상한 일이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단단하고 부서지지 않는 사랑과 평화를 집 안에 가둬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창 밖을 바라보면서, 바람 불고 햇살이 비치는 거리를 그리워한다.  (17쪽)

 

 

이제 아셨군요. 내가 왜 볼펜이 되고 싶어하는지. 나는 내 삶에 욕심을 내지 않아도 좋을 거예요.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멋진 사람을 만나고 더 큰 행복을 누리겠다는 욕심 같은 건 지나가는 개한테나 던져주면 그만이죠. 누군가한테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아도 좋을 거예요. 좀 더 사랑받고 싶다거나, 좀 더 사랑하고 싶다거나 하면서, 자만과 자학을 오가는 정상이 아닌 정신 상태로 밤마다 쓸데없는 감성에 빠지지 않을 수 있어요. 나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지 않아도 좋고, 세상을 구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는 다른 누군가의 마음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하지 않고도 살 수 있어요. 내가 아닌 누군가 되지 않고도 죽을 수 있어요.  (38~39쪽)

 

 

우리는 서로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소중한 것을 공유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쉽게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 살며,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곳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사랑한 것은 저마다 만들어 낸 허상.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점점 멀어지고 있던 거였다.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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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12-1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한 글이군요. 이 글을 읽으니 지나간 몇 가지 것들이 저도 추억이 됩니다. (자꾸만 옛날을 추억하는 것은, 단지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 뿐일까요) 페이퍼 잡지 같은 것 말이죠. 예전에 누군가가 `페이퍼`라는 잡지가 좋다고 해서 저도 몇 번 사본 적 있어요. 예전에는 잡지 한 권만 사서 들고와도 뭔가 마음이 들뜨고 그랬는데, 이제는 별로 그런 감흥이 없어요. 학교 앞에 있는 작은 서점에 잡지가 나오는 날을 미리 물어봤다가 나왔다고 하면 연락받고 가서 사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을 뿐더러, 그런 잡지도 거의 사라지고 없군요. 핫뮤직이나 키노나 서브나 같은 잡지들 말입니다. 이제 집으로 잡지를 가져다주는 좋은 시스템(?)에서 살고 있는데, 왜 그런 감흥은 사라져버렸는지 참으로 모를 일입니다.

시간도 흘러가고, 사람도 흘러가고, 결국 마음도 흘러가니, 말씀하신대로 흘러가는 것에 아쉬워하지 않는 것이 맞는 걸까요...


희선 2014-12-12 01:37   좋아요 0 | URL
지금은 책이 나오는 날을 물어보고, 그날 사서 왔을 때 감흥은 없어도, 책을 산 다음 그게 오기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잖아요 오면 책이 왔구나 하는 기쁨을 느끼고... 아쉽게도 그러고 나면 기쁨이 줄어드는군요 책을 보는 기쁨보다 책을 사는 기쁨이 더 크다니, 이상한 일이네요 저는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서도 페이퍼는 책방에 가서 사왔어요(한달에 한번 나와서 그런 건지도) 집에서 좀 먼 곳인데, 그게 나오는 날쯤 가죠 그날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도 있어서 다음에 다시 가야 했어요 그걸 사서 올 때는 기뻤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그것은 차례대로 안 봐도 괜찮았군요 지나간 일을 떠올리고 그땐 그랬지(노래가 생각나는군요) 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아쉬워요 시간이 더 흐르면 ‘그렇구나’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지나가면 늘 아쉽기 때문에 그때 잘하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군요 그리고 지나가지 않으면 아쉬운지 아쉽지 않은지 모르는 것도 있어요 지금 아는 건 뭐지, 싶기도 하네요

흘러가고 바뀌어가는 것도 있지만 그대로인 것도 있겠죠 뭔가 하나쯤......

며칠은 덜 추웠는데, 다시 추워지고 다음주에는 더 추워진다고 하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나 : 오랫동안 혼자 사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건 외로움일까.

 

너 : 그런 말이 많지.

 

나 : 쓸쓸하지 않다면 오래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까.

 

너 : 그건 살아보지 않으면 모를 것 같아.

 

나 : 사람은 하고 싶고 바라는 게 있어야 살아가는 게 즐겁겠지.

 

너 : 그렇지 않을까.

 

나 : 무엇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거 하나라도 있다면 혼자여도 살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아.

 

너 : 혼자라 해도 진짜 혼자는 아닐지도 몰라.

 

 

 

 

 

조용하고 쓸쓸한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김동영

  달  2013년 11월 19일

 

 

 

 

 

 

 

 

 

 

 

 

의학이 아주 발전한 세상은 어떨까. 지금도 사람은 오래 살아간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더 오래 살지도 모르겠다. 어떤 수술을 해야 그렇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수술을 받을까.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을 것 같기도 한데 실제 어떨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오래 사는 것도 가진 사람이나 하지 않을까. 있으니까 오래 살아도 걱정 없을 거다. 없는 사람은 오래 살면 더 비참해질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라니. 여기 나온 ‘나’도 아주 없는 사람은 아니다. 대학교수를 하다가 연구소를 다녔다. 나이가 여든일곱이 되어 정년을 맞았다. 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하지 않았다. 남 말할 처지가 아니다. 나도 다른 계획없이 살고 있으니 말이다. 여든일곱에 정년을 맞다니 하고 놀랄지도 모르겠다. 소설속 세상은 의학이 발달해서 사랑니에 있는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그 수술을 한 나이에 겉모습이 멈춘다. 나이를 더 먹어도 늙지 않는다. 그것은 겉만 그렇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했기 때문에 암에 걸려도 죽지 않았다. 가끔 의학에 도움을 받으면 젊은 모습으로 오랫동안 살 수 있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을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노인 일자리가 가장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진데. 그런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많다고 한다. 어쩐지 줄기세포 이식수술을 받은 사람은 거의 그것을 괜히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 사람 이야기가 많아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수술을 하기 전에 제대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은 사람이 많았나보다.

 

‘나’는 여든일곱을 맞고 연구소를 그만두었다. 어떤 연구소냐 하면 수학 공식 연구 아니 검토라고 해야 하나. 일을 그만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사는 곳에 들어가야 하는 걸까. ‘나’는 그곳에 가는 걸 잠시 늦추고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글로 적기로 했다. 누군가한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정리였다. ‘나’가 글을 쓰는 곳은 카페 ‘노웨어’다. ‘나’는 그곳에서 주인 J와 고등학생 여자아이를 만난다. J와 음악 이야기를 하다 친해지고 여자아이하고도 비슷했다. 여자아이한테는 지난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음악, 책. 나이를 먹으면 지난 일을 떠올리고 살아간다고 하는데 ‘나’도 그랬다. 이럴 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겉모습은 오십대고 진짜 나이는 여든일곱이라는 거다. 겉모습 때문에 여자아이는 ‘나’를 아저씨라고 했다. 여자아이는 ‘나’가 말해주는 것을 재미있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해주지 않는 이야기니까. ‘나’는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게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혼자 있으면 옛날 일을 생각했다. 첫번째 부인, 두번째 부인 그리고 딸과 아들. 지금도 식구가 참 멀어진 느낌인데 이 이야기에서는 더 멀다. 딸은 줄기세포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아들은 그것을 자연에 거스르는 일이다 생각했다. 나라라는 것도 없어졌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어버린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때가 지금과 같은 2014년이다. 연도를 좀더 뒤로 했다면 나았을 것 같기도 한데. 아니다, 우리 세계하고는 다른 세계라 생각하면 괜찮겠다. 세계가 여러개 있으면 과학, 의학이 저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이상하게 나이 많은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쓸쓸한 느낌이 든다. 이 소설도 그렇다. ‘나’가 쓸쓸해했다. ‘나’와 친하게 지낸 사람들은 지금 거의 남아있지 않으니까. 이 점은 조금 이상하다. ‘나’와 친한 사람은 다 오래 사는 것을 싫어했다는 말이 되니까. ‘나’가 남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다른 사람이 하나 둘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그렇구나 할 텐데. ‘나’는 이제와서 왜 자신이 줄기세포 이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둘레에 사람이 없다 해도 그렇게 희망이 없을까. 오래 살면 사는 게 지칠지도 모르겠다. 함께 추억을 나눌 사람도 없다면. 사실 나는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나’가 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잘하지 못하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직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제대로 해 본 게 없다. ‘나’는 겉모습과 나이가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자연스럽게 나이 들었다면 좀 달랐을지도.

 

지금도 나이하고는 다르게 젊은 모습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것은 성형수술로 그렇게 만든 거겠지. 사람은 나이 드는 것도 두려워한다. 어쩌면 죽는 것보다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더 두려워하는지도. 책속에 나온 것 같은 시대가 올까. 아주 아니다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성형수술보다 안전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자연을 거스르면 거기에 따르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젊은 모습으로 오래 살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좋아할까. 앞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구나. 오래 살아도 할 게 없으면 그 시간이 지루할 것이다. 친구가 있어서 가끔이라도 만나면 모를까. 나이 먹고도 지루하지 않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다른 것은 잘 안 할 것 같다. 지금처럼 책이나 보면서 살겠지. 알고 싶은 게 언제나 있으면 좋겠다. 가끔 뭔가 안다고 좋을 게 뭐가 있을까 하지만. 옛날을 기억하고 살기보다 지금을 잘 살아가는 게 좋겠다. 지나간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잠깐 그리워하는 건 괜찮지만 거기에 매이면 안 좋다. 아쉽게도 나는 그런 때도 없다(슬프구나).

 

이 책을 쓴 작가를 아주 몰랐다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조금 알고 있어선지 작가 자신의 일도 썼다는 걸 알았다(작가는 나를 잘 모른다). 그것을 느낀 사람은 나만이 아니겠다. 다른 작가도 자기 일을 소설에 쓸 때가 있을 것 같다. 그런 거 몰라도 상관없겠다. 글을 보는 거지 작가를 보는 건 아니니까.

 

 

 

 

☆―

 

“죽을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아. 거의 모든 친구들은 죽었거나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식구들도 어딘가에 있긴 하지만 이젠 만나지 못하니까.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었지. 마치 세상 모든 사람이 나만 빼고 모두 숨어버린 것 같구나.”  (64쪽)

 

 

“사람이 늙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야. 겉모습은 바뀌지 않더라도 몸안에서는 나이가 들어간단다. 당연히 기억력도. 그리고 결국 죽어.”

 

“죽어요?”

 

“그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단다. 그리고 녹슬어가는 기계처럼 노쇠해가고……. 오래 살긴 하지만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렇구나. 이상하네요. 저는 그냥 그대로 멈춰 있는 줄 알았는데.”  (102쪽)

 

 

 

 

 

 

 

잠깐 시간 내줘

 

  말하자면 좋은 사람

  정이현   백두리 그림

  마음산책  2014년 04월 25일

 

 

 

 

 

 

 

 

 

 

 

*밑에 쓴 제목은 여기 실린 소설 제목이기도 합니다. 다른 건 소설과 별로 상관없지만, ‘비밀의 화원’ ‘시티투어버스’는 소설을 본 느낌에 가깝습니다.

 

 

 

 

견디다

 

 

사는 건

견디는 일

언젠가 좋은 날도 오겠지

그런 날이 오지 않으면 어때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멋진 일이야

 

 

 

 

 

비밀의 화원

 

 

여자가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뭐지’하는 생각이 들지도 몰라. 그때 찾아낸 곳에서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 그곳에서는 자신을 누구 엄마, 누구 아내라 하지 않아. 아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 일 잘하고 쉴 때는 여기저기 다니는 이십대 아가씨가 말이야. 거기에 잠깐 빠지는 것은 좋지만 그게 바로 나야, 하면 안 될 것 같아. 내가 그렇지. 집에서 식구들한테 자신이 지금 어떤지 솔직하게 말하고, 예전에 자신은 무엇을 좋아했는지 지금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그러면 자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사는 건 아니잖아.

 

 

 

 

 

또다시 성탄절

 

 

멈추지 않는 시간은 또다시 그날을 데리고 온다.

다시 찾아와서 좋지만 그날이 언제나 같은 건 아니다.

어느 한 날을 정하고 해마다 추억을 만들면 어떨까.

자신이 태어난 날도 좋지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온 성탄절이 더 좋겠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그날 추억만 떠올리게 될지도.

추억은 많지 않아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하나라도 마음에 깊이 새기면 좋은 거겠지.

 

 

 

 

 

시티투어버스

 

 

새해 첫날에는 시티투어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그것을 모르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자기 혼자라면 쓸쓸하겠지. 누군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 조금 나을지도. 그렇게 모르는 곳에서 두 사람이 만나서 시작할 수 있을까. 영화와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다. 때로는 현실이 더 영화나 소설 같다고 하기도 하는구나. 두 사람이 꼭 남자 여자가 아닐 수도 있다. 남자 둘은 좀 재미없을까. 그때는 나이 많은 아저씨와 고등학생 남자아이면 괜찮을지도. 두 사람은 잠시 그 도시를 함께 돌아보다 이야기를 나눈다. 아저씨는 아들을 남자아이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거다. 이것은 있을 것 같은 이야기 아닌가. 집에서는 자기 마음을 잘 말하지 못하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는 스스럼없이 하는 건 아쉬운 일이다. 누구나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큰눈

 

 

일백년 만에 내린 큰눈은 사람들 발을 묶어두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짧은 환상,

산골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가 보고 싶을 때는 밤하늘을 봐

 

 

 

 

 

그 여름 끝

 

 

올여름은 다른 해보다 그렇게 덥지 않았다. 입추가 지나자 벌써 가을이 온 것 같았다. 아침 저녁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한때는 여름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좋은 일 없는 여름이지만 간다고 하니 조금 아쉬웠다. 가을 겨울 봄이 지나면 다시 여름이 오겠지만.

 

그 여름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초등학생 아니면 중학생 때였던가. 그 아이를 마지막으로 본 건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다시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여름이 끝나갈 때마다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렇게 가깝지 않으니까. 가끔 어떤 말을 보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니 신기하다. 추억이 없어도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는 거겠지. 이 세상에 그 사람이 없다 해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좋은 거겠지.

 

 

 

 

 

잘 가 하는 말 대신

 

 

우리가 지금 헤어진다고 해도 이게 마지막은 아니겠지

살아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거야

조금 흔한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은 “잘 가”하는 말 대신 “잘 부탁해” 했어

이 말 좋지 않아

 

“앞으로 잘 부탁해”

 

 

 

희선

 

 

 

 

☆―

 

‘자신을 완벽하게 고백하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어떤 표현도 할 수 없다.’  (198쪽)

 

 

 

 

 

  

반달가슴곰/가문비나무  산양/모데미풀   수달/산개나리   하늘다람쥐/솔나리   새홀리기/참배암차즈기

사향노루/설악눈주목   담비/노랑무늬붓꽃   꼬리치레도로뇽/금강초롱꽃   금강모치/구상나무   열목어/주목

 

 

백두대간에 자생하는 고유 동식물

 

2014년도 크리스마스 씰 그림은 우리 고유의 자연문화의 인식을 다시 생각함과 함께, 환경오염, 기후변화로 점점 본래 모습을 잃어가는 자연을 주의 깊게 살피어 경계하는 마음을 갖게 이끌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나라 백두대간에서 자생하는 동식물을 소재로 살려 썼습니다. 백두대간을 총 10개 구간으로 구분하고 해당 구간에 서식하고 있는 20종의 고유 동물을 골라 동식물 저마다의 특징을 나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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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어떤 것을 보다가 예전에 읽은 책 제목과 내용을 잘못 기억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잘못 기억한 것을 다른 데 쓰기도 했다. 그때는 고쳐야 할 텐데 했지만 어디에 썼는지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두기로 했다. 그걸 고치라는 것인지 며칠 뒤에 어디에 잘못 썼는지 알았다. 게으른 나는 아직 고치지 않았다. 제목과 내용 짝을 잘못 지어 기억하다니. 그 두 책은 예전에 읽기만 하고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한권은 뒤에 인쇄가 안 된 부분이 있었다. 제목은 잘못 기억했지만 그것은 잊지 않았다). 예전에 읽은 책 가운데는 아주 잊어버린 거 많다. 읽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기도 한다(읽으면서도 잊어버리는구나). 책을 읽고 난 다음 쓰고 안 쓰고하고는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았느냐에 따라 기억하고 잊어버리는 것일 거다. 책을 읽고 쓴다고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잊는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 낫겠지 생각하지만 잘 모르겠다. 나중에 내가 써둔 것을 보면 그 책이 조금 생각나기도 하지만, 어떤 말은 왜 썼는지 모르기도 한다. 그걸 자꾸 생각하다보면 왜 썼는지 생각난다. 끝내 생각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다음은 별로 상관없는 소설 세 편, 거기에서 둘은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어서. 올해 히가시노 게이고 책 많이 나왔다. 많이보다 엄청을 써야 할 듯. 히가시노 게이고가 실제 많이 쓰는 것도 있고, 우리나라에 올해 나온 것 가운데는 예전에 쓴(일본에 나온 지 오래된) 것도 있다.

 

 

 

 

비밀을 감춘 집

 

  수차관의 살인   水車館の殺人 (2008)

  아야츠지 유키토   김은모 옮김

  한스미디어  2012년 03월 29일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책은 별로 못 본 작가가 아야츠지 유키토다. 그래도 관 시리즈 첫번째인 《십각관의 살인》은 보았다.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대작이라고 한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도. 어쩌면 이 집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것은 관 시리즈에 들어가지 않는다. 왜일까. 이 나카무라 세이지도 수수께끼에 싸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죽은 지 한해가 지나고 여섯달 뒤에 십각관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또한 나카무라 세이지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차관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시간으로 보면 수차관 사건이 먼저 일어난 거였다. 그때 일어난 일은 가정부 네기시 후미에가 탑방 발코니에서 떨어져 수로에 빠져서 죽고, 그날 수차관에 찾아온 네 사람 가운데 한사람인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수차관 주인 후지누마 기이치 친구 마사키 신고를 누군가 죽이고 몸을 여러 토막으로 잘라서 소각로에서 태웠다. 후지누마 잇세이가 그린 그림 하나도 사라졌다. 경찰은 이 사건을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마사키 신고를 죽이고 그림을 가져간 걸로 마무리 지었다.

 

한해가 지나고 1986년 9월 28일이 돌아왔다. 수차관은 후지누마 기이치가 열한 해 전에 지었다. 후지누마는 열두해 전에 차 사고로 심하게 다쳤다. 그 뒤에 휠체어를 타고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손에는 장갑을 끼었다. 사고를 같이 당한 사람이 마사키 신고로, 마사키 애인은 죽고 마사키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 평소에 수차관에는 집사 구라모토와 후지누마 기이치, 후지누마 아내 유리에만 있었다. 가정부는 가끔 일하러 왔다. 수차관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 먼 곳에 있다. 유리에는 이제 스무살로 수차관에서 지낸 지 십년이 되었다. 바깥 세상은 하나도 모른다. 이곳에서 한해에 한번 모임을 가졌다. 후지누마 기이치 아버지 후지누마 잇세이는 환상화를 그렸다. 9월 28일은 후지누마 잇세이 기일로 미술상, 외과의, 대학교수, 절 부주지(오이시, 미타무라, 모리, 후루카와) 네 사람이 왔다. 후루카와는 한해 전에 어딘론가 사라졌다. 그대신 후루카와를 알고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를 아는 시마다 기요시가 찾아왔다. 후지누마 기이치는 수차관을 짓고 아버지 그림을 되사들여 그곳에 모두 모아두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림 ‘환영군상’을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은 보고 싶어했다.

 

지금이 1986년이지만 소설은 1985년 9월 28일에서 29일에 일어난 일도 말해준다. 시작할 때 충격을 주고, 그때 생각한 게 하나 있는데 맞았다. 그 뒤 일은 제대로 생각 못했다. 불청객으로 보이는 시마다 기요시가 탐정처럼 나온다. 1985년에도 그렇고 지금도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비가 세차게 내려서. 한해 전에는 천둥 번개도 쳤다. 무엇인가 일어나기에 딱 좋은 날이다. 한해가 지난 지금도 일이 일어난다. 두 사람이나 죽는다. 그렇게까지 죽여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시마다 기요시는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사람을 죽일 만한 사람이 아니다 생각했다. 시마다는 그때 일을 밝혀낸다. 벌써 이런 말을 꺼내다니. 그 사람은 언제부터 그 일을 계획했을까. 그 사람 처지를 생각하면 안 되기도 했다.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책 제목은 ‘수차관의 살인’이니 누가 죽지 않으면 안 되기는 한다. 이런 소설을 볼 때면 늘 생각한다. 소설 안에서는 원한을 오래 끌지 않으면 안 되고, 한순간 일어나는 화도 참으면 안 되겠다는. 소설을 보고 사람의 끝없는 욕망을 보고 기분 나빠하지만 자신한테도 그런 모습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할 듯하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수차관 있는 곳 참 좋을 것 같다. 그곳을 지은 후지누마는 세상 사람을 피해 그곳에서 살았을 테지만, 그런 집을 지을 돈이 있었으니 그렇게 살 수 있었다. 한가지 문제는 아버지 제자 딸인 유리에까지 세상과 연을 끊게 한 거다. 유리에는 어리다. 바깥 세상이 어떤지 알고 나서 바라면 수차관에서 살게 해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자신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데 아내로 삼다니. 유리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곳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유리에는 그곳을 떠나고 싶어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세상 사람과 동떨어져 자연과 살아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거다. 나는 본래 사람 사귀는 걸 못해서. 할 수 있는 한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수차관 있는 곳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집은 싫다. 건축가가 감추어둔 공간이 있는 집은 재미있을 듯하다. 나카무라 세이지는 자신이 설계한 집에 그런 곳을 만든다고 한다. 수차관에도 있었다. 거기에는 후지누마 잇세이가 마지막으로 그린 환영군상도 있었다.

 

여기 나오는 후지누마 잇세이 같은 화가가 정말 있을까. 잇세이는 환시자로 마음의 눈으로 잡은 환상 풍경을 그렸다. 사람들은 그 환상에 사로잡힌 건지도. 마지막 그림에는 누군가의 일이 그려져 있다. 잇세이는 앞을 보는 사람이기도 한 건지. 이런 화가 진짜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도 일어날 테니까.

 

 

 

 

☆―

 

“마치 이 커다란 집을,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이 골짜기 이 공간에 멈추어두기 위해 움직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요.”  (43쪽)

 

 

“아버지처럼 나도 그 그림이 무서워. 꺼려질 만큼 오싹해. 그래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뒀어. 아무한테도 보여주기 싫고, 나도 보고 싶지 않거든.”  (93쪽)

 

 

 

 

 

 

 

현실이 괴롭고 힘들어도 제대로 마주해야

 

  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

  パラレルワルド·ラブスト (1995)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옮김

  재인  2014년 05월 26일

 

 

 

 

 

 

 

 

 

 

 

패럴렐월드, 곧 평행우주(세계)는 지금 이곳과 똑같은 세계가 또 있다는 거다. 이곳과 그곳에 사는 사람은 똑같지만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평행우주가 단 하나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꽤 많을 수 있다.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무엇을 결정할 때마다 평행우주가 생겨난다는. 그러면 셀 수 없을 만큼 평행우주가 있겠다. 결정한 일을 하고 사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아쉽게도 우리는 하나밖에 모른다. 그래서 살아가는 게 참 힘들다. 평행우주가 생겨난 것은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자신을 생각하면 재미있을 테니까. 내가 아는 건 겨우 이 정도뿐이다. 좀더 깊게 생각한 책도 있는 듯한데 그런 건 본 적 없다(이 말은 제목만 아는 미치오 카쿠 책 《평행우주》를 생각하고 쓴 건데, 여기에서는 평행우주라기보다 우주를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생각한 것은 그런 건데, 그런 것과는 좀 다르다. SF 같으면서도 좀더 현실에 가깝다. 다른 공간을 찾는 게 아니고 뇌에 자극을 주어 현실과 똑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을 연구하는 사람이 나온다. 또 다른 사람은 기억과 관계있는 것을 연구한다. 공통점은 뇌다.

 

지금 뇌 연구는 어느 정도나 했을까. 이 책은 1995년에 나온 거다. 그전에 히가시노 게이고는 《변신》이라고 해서 뇌이식수술을 받은 사람 이야기를 썼다. 지금도 뇌이식은 할 수 없지 않을까(얼마전에도 비슷한 말을. 뇌이식을 하면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변신’ 봤지만 거의 잊어버렸다. 해설을 쓴 사람이 이 책 이야기를 잠시 해서. 이 책 ‘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를 보면서 어떤 실험을 하는 것이어서 기억이 조금 이상해지는 건가 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쓰루가 다카시가 연구하는 차기형 리얼리티인가 했다. 다카시 뇌에 자극을 주어서 이 사람이 바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지만 갈수록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카시한테 일어난 일은 기억이 바뀐 거였다. 그 연구는 다카시 친구인 미와 도모히코가 했다. 왜 다카시 기억이 바뀐 걸까. 차근차근 보다보면 그 까닭은 나온다. 처음에는 그 일을 꾸민 게 도모히코인가 했다. 책을 보면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도모히코와 도모히코 연구를 돕던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연구실 사람들은 도모히코는 미국에 갔다 하고, 또 다른 사람(도모히코를 돕던 사람)은 한해 전에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것은 정말일까.

 

다카시가 어떤 일을 기억하게 되자, 지금 애인인 마유코가 사라지고 곧 상사도 모습을 감추었다. 다카시는 마유코가 자기 애인이라 여겼지만, 한해 전에 미와 도모히코가 자기 애인이라 하고 마유코를 소개한 일을 기억해냈다. 그 일을 아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 기억이 실제와 다르면 혼란스러울 듯하다. 다카시는 자신한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알려고 한다. 다카시가 그러게 할 때 우리는 한해 전에 다카시와 도모히코 그리고 마유코한테 일어난 일을 알게 된다. 그것은 다카시가 기억해 내는 것이기도 하겠지. 사람은 자신한테 일어난 일에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슬프고 괴로운 일은 잊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런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책에서는 안 좋은 일을 잊게 해주는 약을 주었다. 사실 그것은 나라에서 사람을 통제하려는 거였다. 쓸데없는 생각 못하게. 슬프고 괴로운 일을 잊게 해주려고 무언가를 연구해도 그것은 나쁘게 쓰일 수 있다. 과학에는 그런 위험한 면이 있다. 누군가는 위험을 느끼면 그것을 그만두려고 할 테지. 세상에는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어서. 한사람이 사라지면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 또한 그러하겠다.

 

여기에 커다란 음모가 숨어있는 건 아니다. 잠깐 그렇게 보이기도 했지만. 아니 어쩌면 그런 것을 적게 느끼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마음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이것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도 그렇다. 아니 상대가 확실하게 했다면 괜찮았을 테지만 그 사람도 흔들렸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을 접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하는 노랫말이 생각나는구나. ‘잘못된 만남’ ‘사랑과 우정 사이’도 있다. 우리나라 노래에도 이런 이야기가 많구나. 아마 내가 말한 것 말고도 더 있을 거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어느 한쪽이 물러나기도 하겠지. 어쩐지 그럴 때가 많을 것 같다. 그게 서로 좋을 테니까. 마음을 감추고 물러나는 사람, 마음을 나타내고 다른 사람이 물러나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 뒤 그 사이는 깨어질까. 마음을 감추었을 때는 괜찮겠지만 드러내면 깨어질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사람이 많은데 어떤 때는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 마음이 오래 가면 좋을 텐데, 시간이 흐르면 흐릿해진다. 그때는 그것을 잘 모른다. 사람은 다 그렇다. 나도 비슷하다.

 

두 사람만 좋은 게 아니고 둘레에서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만남은 정말 좋은 거다. 아니 둘레에서 축하해준다 해도 그 안에 마음을 숨긴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겠구나. 좋은 사람을 만나도 쉽게 다른 사람한테 소개하지 않기. 이러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두 사람 마음이 단단해졌을 때라면 괜찮을지도. 이런 말보다 다른 말을 해야 하는데. 슬픈 일 괴로운 일에서 달아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그런 일을 겪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슬프고 괴로운 일을 많이 겪어도 마음은 무뎌지지 않을 거다, 그래도. 그것은 나를 만드는 기억이고 추억이니까.

 

 

 

 

☆―

 

“자신 따위는 없어. 있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는 기억뿐. 모두 거기에 얽매여 있는 거야. 나나 다카시 씨나.”

 

“그러니까 기억을 바꾼다는 것은 자신을 바꾼다는 뜻이 되겠군.”

 

“그래. 바꿨으면 좋겠어, 자신을.”  (468~479쪽)

 

 

 

 

 

 

 

꾸기 알은 재능일까

 

  꾸기 알은 누구 것인가   カッコウの卵は 誰のもの (2010)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옮김

  재인  2013년 11월 15일

 

 

 

 

 

 

 

 

 

 

 

 

“재능 유전자란 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 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 신고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건 내가 녀석 피에 뻐꾸기 알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야. 그걸 본인이 고마워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지.”  (395쪽)

 

 

“그런데 그 뻐꾸기 알은 내 것이 아니야, 신고 것이지. 신고만의 것이야. 다른 누구 것도 아니고. 유즈키 씨 당신 것도 아니지.”  (396쪽)

 

 

뻐꾸기 하면 다른 새 둥지에 자기 알을 낳기만 하고 새끼를 키우지 않는 게 생각난다. 그런 뻐꾸기를 아이를 낳고 제대로 돌보지 않고 다른 곳에 보내는 부모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 책 제목을 봤을 때는 그게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것은 뻐꾸기가 아닌 ‘뻐꾸기 알’이다. 이제야 그것을 깨달은 느낌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뻐꾸기 알을 재능이라 말한다. 글을 쓰기 전에 그렇게 생각했을까. 뻐꾸기 알을 자기도 모르게 아이한테 물려주는 재능(유전자)이라 보고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하고. 아니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야기를 쓰다보니 어떤 사람이 그 말을 꺼낸 거다. 그래서 제목이 이렇게 된 거다. 이것은 좀 아닌가. 이야기를 쓰기 전에 어느 정도 설계도는 그렸을 테니까. ‘백은의 잭’과 이 책 가운데서 무엇을 먼저 썼을까. 스키 선수가 나와서 스키장이 배경인 ‘백은의 잭’이 생각났다. 이걸 쓰다보니 그것도 생각난 거 아닐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쓸거리가 그렇게 바로 떠오를까. 하나를 쓸 때 거기에서 또 다른 게 떠올라서 쓰는 건 아닐까 싶다. 떠오르면 그것을 내버려두지 않고 바로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나중에 쓰는 것도 있겠지).

 

지금 과학은 사람 유전자를 어느 정도나 알까. 여기 나온 것처럼 유전자로 운동선수 재능을 알 수 있을까. 스키 선수 히다 카자미, 스키 선수로 잘될 유전자를 가진 도리고에 신고. 두 사람이 가진 패턴은 다른 거다. 카자미한테는 비밀이 있어서 아버지 히다 히로마사가 유전자 검사에 응하지 않는다. 도리고에 신고 아버지한테 F패턴 유전자가 있어서 아들 도리고에 신고 유전자를 검사하니 같은 게 있었다. 신고 엄마 아버지는 헤어졌다. 아버지는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고 제대로 일을 못해서 집안 형편이 안 좋았다. 신세 개발 스포츠 과학연구소에서는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해주는 대신 도리고에 신고한테 크로스컨트리 부문 스키를 하게 한다. 신세 개발 스포츠는 운동선수도 키우고 과학연구도 하는 곳이구나. 과학으로 운동선수를 뽑은 것일 수도 있을까. 카자미는 아버지가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올림픽에 나간 스키 선수였다. 카자미는 어릴 때부터 스키를 타고 재능이 보였다. 아버지는 카자미가 올림픽에 나가고 메달을 따기도 바랐다. 하지만 신고는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신고는 스키 훈련을 받기로 했다. 하고 싶은 게 없었다면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신고는 음악을 좋아하고 기타를 치고 싶어했다.

 

앞에서 카자미한테 비밀이 있다고 했는데 카자미는 히다 딸이 아니었다. 히다는 이 일을 카자미가 중학교에 올라갈 때 알았다. 히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내 도모요 화장대를 정리하다가 아기 유괴 사건이 실린 신문기사를 본다. 신문 날짜는 카자미가 태어난 때와 가까웠다. 이 일을 보면 도모요가 다른 사람 아기를 훔쳐다 자기 아이라고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히다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죄책감 때문에 도모요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는 건 그게 아니기 때문이겠지. 모든 일을 다 알고 나서도 도모요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잘 모르겠다. 남편을 속이는 게 괴로워였을까. 그것도 있겠지만 진짜 자기 아이를 잃은 데서 온 우울증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무한테도 그 일을 말하지 않았으니까. 식구라도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다. 신고도 아버지한테 자기 마음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아니, 두 사람 다 그랬구나. 못살면 못사는대로 살아가면 될 텐데.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재능이 있다면 그것을 이용해서 먼저 돈을 벌고, 나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 어떨까 하는. 이건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해야 즐거우니까. 남이 무언가를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은 것이기도 하다.

 

어떤 한사람이 가장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좋게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옛날 일을 알아서 배신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아들이 죽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사람은 어떤 일을 결심해도 마지막에는 자신한테 좋은 쪽으로 결정하고 마는구나. 좋은 쪽이라고 해서 이익을 얻는 건 아니다. 누군가하고 관계를 그대로 지킬 수 있는 거다. 나는 어떤 일을 밝힌다고 해도 무엇이 크게 바뀔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사자는 내 생각과 달랐다. 혹시 이것은 히가시노 게이고 생각이기도 할까. 예전에 본 《내가 옛날에 죽은 집》에 나온 사람은 부모가 친부모가 아닌 걸 알고 달라졌다. 이 말 때문에 누가 누구한테 무엇을 밝히지 않았는지 알겠다. 어떤 일은 묻어두는 게 낫기도 하다. 이번에는 빨리 알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잃을 것을 생각하고 시간을 끄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웃음은 누군가의 울음이 있어서기도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게 웃기 어려울까. 행복과 불행이라고 할까 하다가 웃음과 울음이라 했다. 누군가 죽는 데서 이야기는 좋게 끝나기 어렵겠다. 이런 일이 있다면 이 사람처럼 하지 않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쉽게 일어나기 어려운 일일지도.

 

여기에서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재능’은 누구의 것도 아닌 그것을 가진 사람 것이다는 거다. 자신이 가진 재능과 하고 싶은 게 딱 맞아떨어지면 좋겠지만, 재능과 하고 싶은 게 다를 수도 있다. 재능 때문에 그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걸 억지로 시키지 않아야 한다. 좋아하지 않는 걸 억지로 시키는 일 자주 있을까. 부모가 자기 아이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일이 생각난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걸 아이가 이루기를 바라는 부모도 있다. 부모는 부모 아이는 아이다.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 부럽고,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걸 잘 아는 사람도 부럽다. 부러워만 하면 안 될 텐데.

 

 

 

희선

 

 

 

 

☆―

 

“망설여, 뭘?”

 

“지금까지 제가 고집해 온 방식이나 생각이요. 전 저마다 지니고 있는 재능을 살리면 삶도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어요. 스포츠든 예술이든, 남보다 뛰어난 결과가 나오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고, 설사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더라도 차츰 열의를 보이고 몰두하게 될 거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삶의 자양분으로 삼으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건 나도 동감이야.”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더라고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하나도 기꺼워하지 않는 사람 말이에요. 바로 도리고에 신고처럼 말입니다. 신고한테 올림픽은 꿈도 무엇도 아닙니다. 신고 꿈은 마음껏 기타를 치는 거죠. 프로 뮤지션이 되지 못하더라도,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상관없어요. 그저 음악을 듣고만 있어도 신고는 행복합니다. 그런 사람한테 누가 ‘너는 재능이 있다’고 하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시키는 건 인격을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닐까요.”  (397~3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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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이런저런 사람이 있다

 

  그 무렵 누군가   あの頃の誰か (2011)

  히가시노 게이고   이혁재 옮김

  재인  2014년 04월 30일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산다. 모두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갈까. 열심히 살아서 꿈을 이루고 자신이 바라는 성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돈이 좀 있는 사람 덕을 보려는 사람도 있다.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남을 속이고 죽이기까지 하면 그 뒤에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도 나와 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본래 성격과 다른 자신을 연기해서 자신이 저지른 죄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이 꾸미고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아마 거의 없을 거다. 세상은 어떻게 보면 무섭다. 그렇다고 그런 것만 보고 살아가기 어려울 거다. 믿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마음 한쪽에 의심이 싹튼다고 해도 말이다.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일까. 보이는 것을 못 본 척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세상에 나쁜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한순간 그렇게 되는 것일지도.

 

아버지 재산이 많으면 자식과 친척은 그 재산에 욕심을 낸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닐 텐데 이런 소설에는 그런 사람이 자주 나온다. 유언장에 써서 그런 건지도. 아버지가 쓴 다른 유언장이 사라졌다.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사람 딸이 나타나서 아버지는 유언장을 다시 썼다. 그 유언장을 찾으려는 사람과 찾지 않으려는 사람. 그 안에 자신한테 좋게 적혀 있으면 세상에 알리겠지만 반대로 안 좋으면 없애려고 할 거다. 그러니 누구보다 먼저 유언장을 찾아야 한다. 찾은 유언장에는 두 자식한테 줄 돈을 한사람한테 주라고 쓰여 있었다. 아버지는 정말 그런 유언장을 남겼을까. 또 다른 수수께끼가 나타났다. 그것은 쉽게 풀린다. 완벽하게 모두를 속였다고 생각했겠지만 나쁜 것은 들키고 만다. 돈이 사람 마음을 갖고 노는 듯하다. 나쁜 것은 돈일까. 다른 사람 말에 넘어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평상심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못하는구나. 실수였다 해도 깨끗하게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도 한다. 그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오랫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아서 양자를 들이기로 하고 그 아기를 만난 날 남자는 엄청난 일을 알게 된다. 좀더 자기 지위를 높이기 위해 조건이 좋은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저지른 죄. 죄를 짓고도 잘 살아가던 날 그게 자신한테 돌아왔다. 아니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그 일에 두려움을 느끼고 거기에서 달아났다. 이것은 죄를 뉘우쳤다기보다 자신이 한 일이 드러날까봐 겁을 먹은 것뿐이다. 오래전에 죄를 짓지 말지 불쌍하구나. 왜 사귀는 사람 결혼하는 사람 따로 생각할까. 두 사람 다 그렇게 생각하면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저마다 다르게 생각하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 비행기 사고로 아내 영혼이 딸 몸에 들어간다. 이것은 장편 《비밀》이 나오게 한 이야기다. 장편이 아닌 단편이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게 나오지 않는다. 그랬을 거다 생각해야 하는 거구나. 남편은 딸 몸에 아내 영혼이 들어와서 그것을 딸로 봐야 할지 아내로 봐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장편에서 그랬다는 거다. 여기에서도 그런 마음이었겠지. 아내는 정말 딸을 위해서 산 걸까. 사람은 영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아내 마음에는 다시 산다는 것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니. 딸 대신 자신이 살아서 마음 아팠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면 딸을 위해 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구나.

 

아무리 명탐정이라 해도 나이를 먹으면 일을 그만둬야 하는 건지. 세상이 예전과 다르게 바뀐 게 더 크게 움직였다. 탐정보다 과학이 다 알아내주었다. 그런데 탐정이 쓰려는 수기 때문에 안 좋은 사람이 있었다. 오래전에 일어난 살인사건 때문에 힘들었는데 탐정이 수기를 쓰면 그 일이 다시 이야깃거리가 될 게 뻔했다. 탐정을 속일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탐정이 푼 사건이 정말 옳았는지. 탐정은 그 일 때문에 수기를 쓰지 못했다. 나이를 먹고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해결한 일이라 해도 그냥 놔두는 게 나을 듯싶다. 글로 써서 남기는 건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죄를 지었을 때 자신이 형벌을 골라야 했다. 하나는 호랑이, 하나는 여자였다. 여기에 하나가 더해졌다. 죄를 지은 사람이 고른 문 뒤에 있는 것은 여자였다. 그 사람은 여자와 결혼하고 살았다. 그런데 여자는 술꾼이었다. 그런 여자라 해도 헤어질 수 없었다. 그게 바로 벌이니까. 그 사람은 자신이 고른 게 여자도 호랑이도 아닌 다른 거였나 했다. 예쁘지 않아도 여자여서 처음에는 좋았겠지만 살아보니 그게 더 끔찍한 일이었다. 죄를 지으면 그에 맞는 벌을 받는다, 일까.

 

자고 싶고 죽고 싶지 않지만, 자면 죽는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 죄를 뒤집어쓰고 죽는다면 억울하겠다.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났다면 좋을 테지만 어쩐지 어려워보인다. 세상에는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이용해서 잔인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그런 사람 눈에 띄지 않고 걸려들지 않는 거다. 자신이 정직하게 살아도 안 좋은 일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왜 21세기에 잭인가

 

  살인마 잭의 고백   切り裂きジャックの告白 (2013)

  나카야마 시치리   복창교 옮김

  오후세시  2014년 03월 06일

 

 

 

 

 

 

 

 

 

 

 

1888년 런던에서 8월 31부터 11월 9일까지 두달 동안 ‘적어도’ 매춘부 다섯이 죽임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장소는 이스트 엔드 화이트 채플 지역. 피해자 모두가 예리한 날붙이로 목을 베인 뒤에 장기를 빼앗김으로 그때 런던 시내를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다(‘적어도’ 라고 한 것은 그 피해자가 좀 더 많았다는 설이 있기는 하나 수법 차이로 동일범 짓이라고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50쪽)

 

 

잭은 19세기 런던을 두려움에 몰아넣은 살인마다. 끝내 잭은 잡히지 않았다. 지금은 21세기니 잭은 오래전에 죽었겠지. 이 잭 이야기는 여러가지로 나왔다.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 예전에 본 만화속에서 잭을 모티프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거기에서는 다 만들었을까(그 만화는 보다 말았다). 잭이 무서운 건 사람을 죽이고 장기를 빼가기 때문일 거다. 오래전에 잭은 그 장기를 먹었다는 말도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정말 그랬을까.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니 참모습은 알 수 없겠다. 이 책 제목 ‘살인마 잭의 고백’에 나온 잭은 바로 그 잭이다. 공원에서 발견된 여자 시체에는 장기가 없었다. 장기를 꺼낸 솜씨가 좋았다. 경찰은 범인이 의료 관계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해부학을 잘 아는 사람 현역 의사, 의대생, 정육업자……. 얼마 뒤 방송국과 신문사에 범행 성명이 온다. 그것을 보낸 사람은 자신을 잭이라고 했다. 그런 일이 진짜 일어나면 무섭겠다. 책이니까 이렇게 볼 수 있는 거긴 하다.

 

첫번째 피해자를 검시한 사람은 범인한테서 아무런 망설임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같은 일이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그렇다, 그 말은 맞았다. 그 뒤에 두 사람이 더 잭한테 죽임 당하고 장기까지 빼앗겼다. 잭이 사람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반드시 공통점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 사건을 맡은 사람은 많지만 자주 보이는 사람은 이누카이와 고테가와다. 이누카이는 본부 형사고 고테가와는 관할 경찰서 형사다. 이누카이는 범인을 잘 잡는 형사고 고테가와는 형사가 되고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두번째로 죽임 당한 사람도 여자였다. 사실 두번째 때 같은 점을 알았다. 무엇이냐 하면 둘 다 이식수술을 받은 거다. 장기는 같은 기증자 거였다. 그렇게 이식수술을 받은 사람은 둘이 더 있었다. 둘 가운데서 한사람이 먼저 죽임 당했다. 이누카이와 고테가와가 이식 코디네이터를 찾아가서 장기 기증자와 기증받은 사람을 가르쳐달라고 했지만 그 사람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환자 정보는 본래 가르쳐주는 게 아니기는 하다. 사람 목숨이 걸려있을 때는 가르쳐주어야 하는 거 아닐까. 이식 코디네이터가 장기를 기증한 사람과 받은 사람을 가르쳐주지 않은 데는 다른 까닭이 있었다. 이런 일(이식 코디네이터)은 잘못하면 감정에 휩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그걸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

 

사람을 죽이고 장기를 빼간 것은 범인이 정신이 이상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런 것을 즐긴 걸까. 그러고 보니 한사람한테서 장기를 받은 사람이 죽임 당했구나. 고테가와는 이런 말을 했다. 마술사의 속임수를 알려면 오른손이 아닌 왼손을 잘 보아야 한다고. 이 말처럼 잭은 무엇인가를 숨기기 위해 그런 짓을 한 거다. 잘못한 일을 솔직하게 말하고 어떻게 하면 그 잘못을 바로잡을지 생각하는 게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보다 나을 텐데. 죽임 당한 사람은 장기 이식을 받기 전에 괴롭게 살았다. 장기 이식을 받는다고 해도 건강이 아주 좋아지는 건 아니다. 이식받기 전과는 달랐겠지만. 새로운 삶을 사는 느낌을 가진 사람도 있었을 텐데 잭은 그것을 빼앗았다. 세 사람 가운데서 한사람은 여러 사람한테서 도움을 받고 신장이식을 했다. 그러나 사는 게 쉽지 않았다. 면역억제제는 평생 맞아야 하고 일도 찾지 못해서 도박에 빠졌다. 그런 것을 도움을 준 사람들이 알고 실망했다. 장기이식을 하지 않으면 죽을 사람이 이식을 받고 목숨을 이으면 처음에는 기쁠 거다. 하지만 늘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준 목숨이니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좋은 마음으로 행한 일이라고 해도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좋은 일을 할 때는 결과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다. 나쁜 짓만은 안 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다.

 

사람이 살아있을 때 줄 수 있는 장기도 있지만 죽었을 때 줄 수 있는 것도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죽었다고 할 수 없다. 뇌사판정을 받은 것뿐이다. 나는 뇌사가 어떤 건지 잘 몰랐던 것 같다. 뇌가 죽으면 사람은 더는 생각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다. 그냥 두면 결국 장기와 함께 사람은 죽는다. 그렇게 죽게 놔두는 것보다 다른 사람한테 장기를 주고 죽는 게 더 낫다고 여기고, 뇌사판정을 받은 사람한테 장기를 기증해달라고 한다. 물론 그 사람 식구한테. 전에는 그게 좋은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뇌가 죽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아주 죽은 건 아니니까 말이다. 아주 죽으면 장기는 쓸 수 없다. 그랬구나, 장기를 기증하는 일은 그런 거였다. 그런 장기를 받은 사람이 잘 살아가면 좋을 텐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다. 또 이런 말로 흐르다니.

 

 

 

*더하는 말

 

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에 묻어가서 나쁜 마음을 드러낸다. 잭이 범행 성명을 보내자 그것을 따라한 사람이 많았다. 자신이 잭이라고 하거나 누군가 잭이라 했다. 경찰은 그게 진짜가 아니라 해도 확인해보아야 한다. 진짜가 섞여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익명에 숨는 사람 많겠지. 그런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 매스컴도 그것을 이용한다.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까. 아니 윤리를 생각하면 모두 그렇게 되지 않을 거다. 윤리를 크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세상이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윤리를 지키려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은 아주 어두워지지 않을 거다.

 

 

 

 

☆―

 

“다른 사람 장기를 받았으니 살아가는 것에 책임이 생길 거야. 게으름 피우거나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결단코 용서받지 못할 테니까. 살아가는 것에 속박될 거야. 둘레에서 감시받고. 사야카는 그것이 무서울 뿐이야.”  (289쪽)

 

 

 

 

 

 

 

화가는 어느 때든 그림을 그리고 싶어한다

 

  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   エコル·ド·パリ殺人事件 (2011)

  후카미 레이치로   박춘상 옮김

  한스미디어  2014년 01월 29일

 

 

 

 

 

 

 

 

 

 

 

에콜 드 파리는 제1, 2차 세계전쟁 때 활동한 화가를 일컫는 말로 모딜리아니, 수틴, 파스킨, 위트릴로, 후지타 쓰구하루, 사에키 유조가 있다. 화가 이름을 몇 사람 썼는데 그밖에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에콜 드 파리는 미술에서 무슨 파라고 하는 것 가운데서 ‘파리파’라고 하는 거다. 에콜 드 파리에 들어가는 사람은 같은 시대에 활동한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다. 한사람 한파라고 한다. 파라는 건 왜 나눌까. 그것을 모르면 그림을 설명하기 어려워서일지도. 그림 그리는 사람 생각과 다르게 어떤 파에 들어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에콜 드 파리였던 사람은 별로 잘살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여기에 들어가는 화가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잘살지 못한 사람이 다른 파 화가보다 많은 것 같다. 때가 안 좋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딜리아니는 처음에 조각을 하다가 그림으로 바꾸었다. 이 사람 형편이 안 좋은 걸 파리 화상들이 알고 있었는데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모딜리아니가 죽으면 그림값이 오를거라고 생각했다. 예술은 때로는 잔인하다. 모딜리아니가 죽고 임신 여덟달인 아내도 뒤따라 죽었다. 그렇게 죽다니.

 

일본에서 손꼽히는 화랑인 아카츠키 화랑은 에콜 드 파리 화가 그림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밤 화랑 주인 아카츠키 히로유키는 자기 집 서재에서 칼에 찔려 죽었다. 서재는 밀실이었다. 아카츠키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은 누군가 서재 창문으로 나가 발코니에서 뛰어내린 발자국과 가슴에 칼을 망설임없이 찔러서였다. 괴로워보이는 아카츠키 얼굴도. 아카츠키를 가장 처음 본 사람은 집사다. 사람이 죽으면 경찰은 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지, 누군가한테 죽임을 당한 건지 살펴본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닐지도. 처음부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네, 하는 생각은 안 하고 조사를 해 보고 결론을 내리겠다. 왜 이런 말이 나온 건지. 운노는 수사 1과 강력범죄 수사 10반 형사들과 아카츠키 시체를 보러온다. 그날 운노 조카 신센지 슌이치로가 나타난다. 다카츠키 콜렉션을 보러왔다고 했다. 설명하기는 어렵구나. 형사들이 수사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 듯하다.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했지만 알 수 없었다. 슌이치로는 운노한테 아카츠키 히로유키가 쓴 책 《저주받은 화가들》을 보면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 말은 운노뿐 아니라 이 책을 보는 사람한테도 한 것 같다.

 

탐정이 나올 때는 형사는 엉뚱한 쪽으로 생각한다. 실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소설에서는 탐정을 돋보이게 하는 걸거다. 운노 조카 슌이치로가 무엇인가를 할 것 같았는데 그게 바로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쓸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카츠키 아내가 밤마다 밖에 나간다는 말을 듣고서야 슌이치로가 나섰다. 아무도 알지 못한 것을 슌이치로는 알았다. 아카츠키 히로유키가 쓴 책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맞았다. 슌이치로가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에콜 드 파리 사람과 닮았다. 어떤 조직에 들어가지 않고 살아가기. 좋은 말이 있었는데 정리 못하겠다. 자기 스스로 일을 하게 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마음은 편할 거다. 여기에 나온 사건 광역 우 34호는 《살인마 잭의 고백》을 생각나게 했다. 노란 옷을 입은 여자를 죽이고 몸 속 한 부분을 가져가서. ‘살인마 잭의 고백’하고는 조금 다른가. 아니 어쩌면 19세기 영국 런던에서 매춘부를 죽인 살인마 잭과는 비슷할지도. 이 일은 아카츠키 아내 때문에 해결한다. 그것을 좋게 봐야 하는 건지. 밀실이 어떻게 풀리는지 말 안 해도 괜찮겠지. 밀실은 누구를 위해 만든 걸까.

 

그림은 영감이 뛰어날 때만 그려야 할까. 나이가 적을 때 말이다. 스스로 붓을 꺾고 그림을 그만 그리면 좀 낫겠지만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게 만들면 괴로울 거다. 아카츠키가 쓴 《저주받은 화가들》에도 나이를 먹어서까지 그림을 그리는 건 안 좋다고 했다. 일찍 죽거나 예술가로서 죽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사람 그림값은 비싸지니까. 화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화가는 언제나 그림 그리는 것만 생각한다고 한다. 자기가 예전만큼 그리지 못한다고 해도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둘 수 없을 거다. 화가한테 그림 그리는 일은 살아가는 것이니까. 그림은 젊을 때 그린 것만 비쌀까. 피카소 그림은 젊을 때 그린 게 비싸지만, 세잔 그림은 나이 들어서 그린 게 비싸다고 한다. 이 말은 우연히 들었다. 글도 일찍 죽은 사람 글은 지금까지도 읽힌다(글이 좋아야 하지만). 일찍 죽는 사람은 자신이 빨리 죽을 것을 알고 있는 거 아닐까. 그래서 그때 잘 그리고 잘 쓰는 건지도. 모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은 안 좋은 형편에서 더 좋게 나오기도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기도 할 거다. 좋을 때 기쁠 때도 좋은 게 나온다고 생각한다.

 

돈과 상관없이 그 사람이 바란다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 사람은 그것을 늦게 깨달았구나. 그림은 잘 봐도 사람 마음은 모르다니. 사람을 좋아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 곁에 붙잡아두면 그걸로 끝났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늘 보살펴주어야 한다. 거의 그렇게 살아갈거다. 몇몇 사람만이 그냥 내버려둘거다.

 

 

 

희선

 

 

 

 

☆―

 

예술가는 글을 쓸 수 없다면,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곡을 지을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절정에서 죽어야만 한다. 물론 세상을 떠나는 게 더 바람직하겠으나 그렇게 못하겠다면 예술가로서 죽어야 한다. 그것이 예술가라는 선택받은 아니, 저주받은 인종에게 찍힌 낙인이다.  (169쪽)

 

-별로 마음에 드는 말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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