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수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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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중고서점에서 데려왔다. 한창 책에 대한 책에 빠져있을 때이긴 했지만 조금 자제하려고 할 때여서 지나치던 중이었는데 마치 자신을 데려가라고 하는 듯 한 눈에 확! 들어왔다. 작가 이름이 한 몫 했다. 아직 알베르토 망구엘의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익히 여기저기서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책에 대해 통달해 있는 사람의 독서는 어떨까 싶어서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다양한 글을 쓰지만 그보다 문학 선집 편집자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작품을 읽고 각 작품들에 대해 많은 의미를 부여할 줄도 알고 일종의 리스트를 만드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단다. 항상 책을 붙들고 읽는 사람, 그 중에 특히 좋은 작품들은 반복해서도 읽는 전문가가 "예전부터 좋아해 온 몇몇 책들을 다시 읽어보고...(중략)... 어느 신문 기사에 통찰력을 제공하는가 하면, 이런저런 장면에서 반쯤 잊었던 일화가 떠오르고, 낱말 하나를 단초 삼아 긴 사색에 잠기기도..."...9p 한 후 그 순간들을 기록해보기로 한 것이 바로 <독서 일기>이다. 


한 달에 한 권씩의 기록이 꼬박 1년을 일어진다. 6월부터 시작하여 다음 해 5월까지 이어진 이 독서 일기에는 그러므로 12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하게 되는 리스트 담기에는 실패했다. 12권 중 우리나라에선 아예 출판조차 되지 않은 책도 있고 너무 오래되어 절판된 책이나 유명 작가의 유명해지지 않은 책도 있어서다. 비 영어권 도서도 있다. 심지어 내 경우는 아는 책이 3권 뿐, 읽은 책은 단 한 권 뿐. 그러니 솔직히 이 작가의 생각을 따라잡기가 조금 버거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같이 읽고 알아야 뭘 따라가든지 하지. ㅋㅋ


그럼에도 이 책을 다시 팔거나 나눔하지 않고 소장해야겠다 마음먹은 이유는, 그냥 이 작가의 사고 흐름이 조금 정신없긴 하지만 분명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도 없이 나열되는 많은 작가들과 다양한 책들의 설명이 그저 존경스럽다고 할까. 언젠가 한 권 한 권 찾아 읽은 후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책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우리의 경험과 허구의 경험 사이, 그러니까 우리의 것과 지면에 실린 두 개의 상상 사이에 우연의 고리를 걸어야 할 것이다."...28P


책은 분명 한 번으로 끝낼 수가 없다. 나의 경험이 달라지고 상황이 달라지면 별로였던 책이 나의 구원이 될 수도, 내게 위로가 될 수도, 힘 내게 하는 원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책에 대한 책은 여전히 내게 꼭 필요하고 중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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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좀 예민해서요 - 감각 과민증 소유자의 예민하고 예리한 일기
이현동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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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곤란하다. 

최근 "예민"이니 "까칠"이니.. 하는 주제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는 것을 보면서 현대인들이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일도 아니어서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곰" 스타일이고 둔감한 편이지만 내 배에서 태어난 두 아이는 많이 예민한 편이다. 아직 어린 둘째보다는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첫째가 훨씬 심하다. 

 

처음에는 그저 청소년의 특성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 정도가 많이 심했다. 특히 청각이 그렇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청각이 좋아서 공부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며(딴 생각을 하면서도 선생님 말씀을 놓치지 않았고 그냥 흘려들은 것들도 다 기억하고 있었다) 장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온갖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참을 수 없어 한다. 그래서 찾아봤다. 이 아이를 데리고 신경정신과라도 가야 하나 해서. "청각과민증"이라는 증세가 있었고 역시나 현대인의 스트레스 때문이란다. 지금은 가급적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한다(본인은 언제 그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좀 예민해서요>를 선택한 건 부제인 "감각 과민증 소유자의 예민하고 예리한 일기" 때문이었다. 이런 증세가 인터넷에 쉽게 검색될 정도라면 우리 아이만 그런 건 아닐테고 그런 비슷한 증세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공감하면 아이도 좀 편안해지지 않을까... 해서. 책은 아이에게 건너간 지 이틀만에 돌아왔다. 다 읽어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 못 읽겠단다. 왜? 라는 질문에 "여기도, 여기도... 여기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여기저기 지적한다. 음... 역시 우리 애가 예민하구나, 생각했다. 

 

자, 이제부터는 내가 읽은 감상이다. 

난 의사도 아니고 예민한 타입도 아니다. 그러니 함부로 이분의 증세에 대해서 "그건 아니에요"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분, 감각과민증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여러 감각 중 한두 가지는 좀 더 발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 경우는 청각과 후각, 촉각이 많이 발달했다. 둔한 나도 시각과 후각이 발달되어 있다. 100미터도 훨씬 앞에서 피우는 담배 냄새도 귀신같이 찾아낼 수 있다.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도 중요하다. 내가 어린 시절에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들을 탐구했는지에 따라 성인이 되어서도 그것들에 남보다 더 많이 알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굳이 감각과민증으로 포장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예민함"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에만 집중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남에게 최대한 피해를 안 주고 싶다고, 그래서 나도 피해 받는 것이 싫다고 작가가 말했다. 그래서 남에게 대놓고 지적질 하지 않고 속으로만 한다고. 애정하는 사람들에게만 거슬리는 것을 지적질 한다고.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인 것을 안 사람들은 이미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나의 기준을 남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방해받는 것이 싫으니 내 구역에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대신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건 어떨까. 너무 뻔한 문장이지만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쓰고 나니 꼰대 같아서 좀 짜증나지만, 나는 그렇다는 거다. 뭐, 아니면 할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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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희순 - 노래로, 총으로 싸운 조선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정용연.권숯돌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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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광복절은 코로나로 인해 예년처럼 역사를 되새기고 훌륭한 독립운동가들을 기념하는 일이 조금은 퇴색된 느낌이다. 그러다 흔치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만나 반갑다. 아이들도 쉽게 접할 수 있게 그래픽 노블로 장단하고 너무나 멋진 표지 속 포즈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냥 독립운동가가 아니다.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다. 세상에. 의병장이라니~!


1961년 서울 청계천에서 독립운동가의 후손 이야기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시대를 거슬러 1935년의 조선독립단의 이야기로, 다시 1910년의 고향 이야기를 거쳐 1935년으로 돌아가 이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글을 쓰는 희순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목차로는 들어가며와 제 1화까지의 이야기지만 여기까지가 사실 프롤로그가 아닌가 싶다. 문학적으로는 뛰어난 도입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째서 윤희순 여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곡기를 끊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일생록>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픽노블이기에 사실 읽는 사람으로서는 여기저기 시대를 넘나드는 이야기에 조금 정신이 없었다. 




윤희순은 조선이 가장 어지러웠고 외세에 휩쓸려가던 1860년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새어머니의 장례 때 온 손님이 눈여겨보고 마찬가지로 유학자인 외당 유홍석의 장남 유제원과 16세에 혼인하여 춘천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남편은 글공부 가고 시아버지는 개항 반대 상소로 집을 비우기 일쑤였던 이때부터 희순은 야무지고 당차게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여자라 해도, 아무리 남녀가 유별하다 해도 들어야 할 때가 오면 들어야지. 총이든 칼이든."...84p


외당 유홍석과 의암 유인석은 유학자로서 개항을 반대했다. 시대가 더욱 혼란스러워짐(을미사변, 을미개혁으로 인한 단발령)에 의병단을 구성한다. 한동안 윤희순은 그렇게 나라를 위해 싸우는 남성들을 위해 가정을 돌보았다.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점점 의병들의 성과가 나아지지 않음에 직접 행동에 나서게 된다. 처음엔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동네 아이들, 아녀자들에게 가르쳤다. 하지만 직접 의병을 돕는 모금을 하러 다니는가 하면 없는 살림에도 의병들을 돕는다. 




더 나아가 "아녀자 의병단"을 만들어 훈련시키고 시아버지를 따라 간도로 옮긴 이후에는 독립운동가를 육성하는 노학당의 교장이 되는가 하면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이후는 남은 의병들을 찾아다니며 조선독립단을 조직하여 무장 투쟁에 가담한다. 


"항일 인재란 단순한 싸움꾼이 아니다. 신구 학문을 아우르는 문화 지식이 있고,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노력에 국권 회복을 위해 복숨을 바칠 각오까지 장전한 사람들이다."...330p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어떤 교육을 받았든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항상 감동을 준다. 특히 의병장 윤희순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뛰어나다.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가부장적 환경에 익숙할텐데도 옳지 않은 모습을 보고 그대로 참지 않는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일 게다. 


"부디 기억해다오. 좋은 옷, 기름진 음식, 푹신한 잠자리에 입히고 먹이고 누이진 못했으나 우리는 너희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것을."...412p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제목이 <의병장 희순>인 만큼 희순만의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한 여성이 여성이 활동하면 안 되었던 조선 시대에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의병장이 되었는지 의병장이 되어서는 어떤 활동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는지(물론 필요하긴 하다) 희순의 이야기보다는 시대적 배경의 설명과 그녀의 주변 인물들(대부분 시아버지)의 의병 활동 이야기가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나 싶다. 그분들이 돌아가시고 그녀 혼자 활동했던 이야기는 뒷부분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버려서 많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독립운동가.. 하면 유관순만 떠올리는 우리에게 더 많은 여성들이 있었노라고 알려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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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삼킨 아이
파리누쉬 사니이 지음, 양미래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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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불편했다. 작가 파리누쉬 사니이의 <나의 몫>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그땐 이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조금은 시간이 지난 이야기라서 그렇다고 위안 삼으며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란이라는 나라가 세계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이름난 나라이기는 하지만, 물론 이란의 모든 남자들이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책 속 남성들의 권위적인 모습에 기가 빨린 느낌이다. 


전작 <나의 몫>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흔히 읽을 수 없는 이란의 작품이기에 선택한 <목소리를 삼킨 아이>는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말을 못했던 아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씌어진 작품이다. 소설은 20살의 생일을 맞은 샤허브가 사진 한 장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는 형식이다. 뿐만 아니라 샤허브와 샤허브의 엄마 미리얌이 번갈아가며 서술한다. 때문에 같은 상황에서 샤허브와 미리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아빠 나세르인데 아빠가 직접 서술하지 않고 샤허브나 미리얌을 통해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부분이 좀 아쉬웠다. 내가 읽기 불편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나세르인데 말이다. 


샤허브는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오랜 기억인 네 살에 말을 하지 못했다. 사촌들은 이런 샤허브를 "벙어리"라거나 "멍청이"라고 불렀지만 샤허브는 그렇게 말해주며 웃어주고 맛있는 걸 사주었기 때문에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로소 그 말들이 자신을 놀리고 있었던 말이라는 사실을, 웃음에는 즐겁고 기뻐서 웃는 웃음뿐만 아니라 비웃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런 주위 사람들의 행동이 샤허브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얼마나 속상하게 하고 울리는지를 알고 그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나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내가 벙어리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예민하게 인식했다. 내 영혼이 그때처럼 깨어 있던 순간은 그 후로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12p


보통 만 3세까지가 아이들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게 발달하는 시기라고 한다. 아이를 직접 키우다 보면 우리 아이가 천재가 아닌가 싶은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그런데 샤허브는 말을 하지 못했고 자신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해 이렇게 발달시키다 보니 외부인의 입장에선 샤허브가 이상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사실 좀 말이 늦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조금 더 읽다 보면 사실 샤허브는 말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직접 목소리를 내려 하면 심장이 쿵쾅대고 목구멍이 조여오는 느낌에 말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가장 많이 관찰하고 이해해주어야 할 아빠 나세르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아이를 판단하려 했고 엄마 미리얌 또한 자신만의 우울에 빠져 있어 아이의 눈빛을 보고 소통하고 그나마 아이 편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완벽한 보호막 역할은 하지 못함으로서 샤허브의 "벙어리"는 일곱 살까지 계속된다. 


소설 속엔 샤허브가 함구증이 된 이유가 이것일까, 저것일까 추측하게 하는 여러 단서들이 나온다. 하지만 특정적으로 이것이다라고 보여주는 대신 이 가족이 샤허브라는 아이로 인해 어떻게 붕괴되는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아직 어린 아이인 샤허브는 샤허브대로 가족을 오해하고, 가족 또한 샤허브가 말을 하지 않으니 이해할 수가 없고 가족들 간에도 오해와 불신이 쌓인다. 그러니 외할머니 비비의 등장은 이 가족에겐 구세주와 같았을 것 같다. 아이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시는 분, 딸의 우울과 무기력함을 꼬집어 충고해주실 수 있는 분, 사위의 일중독과 가정의 소홀함도 꾸짖어주실 수 있는 분으로 말이다. 


사실 앞부분의 내용에 비하면 뒷부분은 후다닥 끝내버리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래서 20살이 된 샤허브에게도 아직 어려움이 있음이 안타깝다. 물론 누구나가 여러 사람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적일 필요는 없다. 있는 그대로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할 줄 아는 사회가 진정 배려할 줄 아는 사회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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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호원숙 그림 / 열림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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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언제부터 우리집에 있었을까. 출판은 2007년이라는데 내 책 띠지에는 2009년 봄이라고 씌여있으니 나는 2009년 봄에 구입했나보다. 처음엔 호기롭게 침대 옆 서랍장 위에 자리했다. 자기 전 한두 꼭지라도 읽고 잠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번 들춰보지 못하고(사실 난 절대로 침대에서 책을 읽지 않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몇 달을 그상태 그대로인 게 미안해서 잠시 애정하는 책장에 꽂아둔 게.... 벌써 11년이 지났나 보다. 그새 박완서님은 돌아가시고 나는 그 사이 <나목>을 읽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를 다시 읽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구입했다.


박완서님은 유독 자전적인 이야기를 소설로 많이 쓰신 분이라 나는 가끔 이분의 삶과 소설 속 내용을 헷갈려하곤 한다. 둘을 떨어뜨려놓으려 해도 워낙 강한 이미지로 남아있어 그런지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마냥 이분의 과거인 것만 같다. 그러다 <호미>를 읽으니 이제야 작가 박완서가 보인다. 그래서 좋았다. 많은 산문 중에 <호미>를 선택했던 건 언젠가 정원 생활을 꿈꾸는 나의 대리 만족이기도 했고 소설에서 좀 분리시키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호미>는 그런 본인의 전원 생활 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첫 챕터인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의 내용이 맞다. 혼자 사부작거리시며 스스로가 정한 이미지 따라 정원을 가꾸시는 모습과 그 와중에 생각하게 된 것들, 꽃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 뒷부분의 이야기들은 본인이 생활하시면서 겪으신 일들과 그 와중에 생각하게 된 것들, 느끼게 된 것들, 깨달음이 담겨 있다. 오히려 이 부분에서 박완서님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 좋아하는 작가라고 어쩌면 내 머릿속에서 신격화했을 이미지를 조금 깨어 보기도 하고 친근한 이웃집 어머니처럼 다가가기도 한다. 그저 편안하고 사려깊고 배려심 깊은 분일 거라는 생각에서 '아, 이분도 나와 같은 옹고집이 있구나.', '아기처럼 병원도 가기 싫어하시네.' 하고 말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니 어쩌면 이분은 자신의 치부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이렇게 글로 다 표현했을까 싶어져 다시금 존경하게 되는 것이다. 


뒷부분으로 가면 분위기가 또 바뀐다. 맛있게 먹거나 추억에 남은 음식 이야기를 통해 맛깔난 표현에 감탄하기도 하고 같은 문인들을 보내면서 쓴 추억과 추모의 글들은 짠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엔 전원 생활이 궁금해서 구입한 책이었는데 오히려 이 뒤쪽의 글들이 더 가슴에 남는 건 공감에서 오는 저릿함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박완서 님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와 독재 시절 등 우리나라의 격변기를 모두 거쳐 온 분이다. 그렇기에 그의 소설 속엔 역사 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 된다. 그럼에도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밝고 순수하게 웃는 인자한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박완서님의 또다른 책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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