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오늘은 내 인생이 먼저예요
이진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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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면서 생각나는 책 한 권. ㅋㅋ

우리 둘째가 읽는 책 <괴물 예절 배우기> 속 괴물 로지가 인간의 예절을 너무나 중요시 해서 식당에 가면 "미안하지만, 차림표 좀 보여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장면. 상대방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저 예의로 쓰는 말이다. 그런데, 내 인생에 있어 남에게 "미안하지만"이라는 말을 굳이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ㅎㅎ


평소 이런 류의 책을 즐겨 읽지는 않는다. 이런 류...가 뭘까. 그림 많고 글이 덧붙여져 있는 책. 뭔가 자기계발스러운 책(남들은 자기 계발 읽고 잘도 성장하더구만, 나는 왜 이렇게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지~). 자존감을 불러일으키려 애쓰는 책(2,3년 전부터 이런 책이 유행인 듯). 이유는 별 거 없다. 내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아서다. 읽고 나면 허무하고 시간 낭비 같고 곧 잊혀져 버리고.^^;


그럼에도 이번에 이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한 이유는, 다시 제목으로 돌아온다. 어린 시절 내가 생각나서, 그 어린 시절의 나보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시절을 보내고 있는 큰아이가 생각나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그림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삶의 여정을 드러낸다. 이렇게 그림으로 가득한 페이지도 있고 글로 가득한 페이지도 있다. 그림과 글이 잘 어우러져 있다. 작가의 생각을 잘 표현해 낸 글이지만 비슷한 내용이 계속 되므로 조금 지루해질 수 있을 때 이런 그림들이 분위기를 전환시켜 준다. 그런 의도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작가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그런 일들이 어떻게 지금의 작가를 만들었는지 이해하게 되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아주 공감이 가진 않았다. 지금 읽고 있는 책, <기시미 이치로의 삶과 죽음>에서 기시미 이치로는 심리 상담을 할 때 원인론이 아니라 '목적론'으로 접근한다는 말을 한다. 이 문장이 참 와 닿았다. 과거의 나는 이미 일어난 일이므로 거기에 묶여있지 말고 앞으로의 나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 어떤 '나'가 되고 싶은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나라고 과거 생각을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과거로 인해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난 그걸 "성장"이라고 부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거야.'라는 응원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100p




굉장히 힘든 시절을 거쳐 작가님 곁에 있어주는 좋은 남편을 만난 후 무척 안정적으로 느껴지는데 결혼을 해서가 아니라 곁에 그렇게 괜찮다고 꼭 손 잡아줄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긍정적인 모습과 이제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는 작가에게 응원을 보낸다.


#미안하지만오늘은내인생이먼저예요 #위즈덤하우스 #이진이 #글과그림 #나부터챙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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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삶에 대한 커다란 소설
수지 모건스턴 지음, 알베르틴 그림, 이정주 옮김 / 이마주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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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모건스턴의 책은 동화책으로만 읽었었다. 기발하기도 하고 아기자기 귀여운 동화들은 감동을 주기도 하고 교훈을 주기도 한다. 수지 모건스턴의 청소년 소설은 사실 처음이라 어떤 분위기일까 좀 궁금했다.


처음엔 좀 이상했다. 일기인 것 같기도 하고, 혼자만의 생각인 것 같기도 한 주인공 보니의 독밸이 영 적응이 되지 않아서다. "잠, 아니면 삶?"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잠을 자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자라고 하는 부모에 대해서 "기상, 아니면 늦잠?"을 통해 늦잠 자고 싶은 마음에 대해 설명한다. 그렇게 하나씩 쌓인 이야기가 얽혀 이야기가 쌓여가면 겨우 보니의 생활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기엔 언제나 당당하다가도 자신의 생활이 가장 엉망인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왜 남들과 다를까 주변을 원망하다가도 다시 원인 모를 근자감이 생기기도 한다. 비교는 할 수 있어도 근본적으로 가족에 대한 애정이 있는 한 버틸 수 있다. 더불어 힘들고 짜증나고 예민해질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신만의 방이 있다면 더욱더!


보니에겐 자신의 가족이 늘 미스테리다. 외할머니서부터 시작해서 엄마도 혼자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집에선 비밀에 부쳐졌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 행복한 듯 보이는 아빠는 육아에 도움이 필요할 때만 보니를 부른다. 하지만 늘 적절할 때에 딱 맞는 교훈의 말을 해주시는 외할머니가 계시고 비록 보니가 작가가 되는 걸 극구 반대하시지만 보니에 대한 사랑만큼은 늘 느낄 수 있다.


그런 관계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완벽하게만 보였던 친구 도렐리의 가족에도 분열이 생기고 엄마에겐 전혀 의외의 남자친구가, 보니는 그렇게 꿈꾸던 글짓기로 인정받아 글짓기 대회 결승에 나가게 된다.




보니의 일상이 쌓인 이 이야기들의 정점은, 보니가 글짓기 대회에 다녀와 그 초고를 엄마에게 읽어주는 부분이다. 중간중간 엄마의 반응은 둘째치고 보니의 이 초고 내용 자체가!!! 압권이다.


"나에게 살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는다면, 나는 온종일 울 거예요.

더 이상 보지 못할 해돋이를 위해 울 거예요.

더 이상 내 흔적이 남지 않을 내 침대와 내 이불, 내 베개를 위해 울 거예요. ...(중략)"...135p


마치 시 같은 이 아름다운 글은 "살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는다면에 대한 답을 쓴 것이지만 그 속엔 보니가 사랑하는 일상의 아름다움이 가득 담겨있다. 비록 자기 방 하나 갖지 못하고 아빠 없이 오랜 세월 살아야 했고 예쁘지 않은 얼굴에 많은 것들을 스스로 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에서 느끼고 향유할 수 있었던 그 많은 것들이 모두 담겨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보니의 삶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읽고 있으면 울컥해진다.


그렇구나. 짜증 가득했던 하루가, 어쩐지 나에게만 계속 나쁜 일만 일어나는 것 같은 요즘도 어쩌면 아름다운 하루일 수도 있겠구나~하고.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 네가 쓴 것처럼 말이야. 불완전해도 말이야."...142p


살아있다는 사실에, 건강하다는 사실에, 오늘 하루도 별탈 없이 잘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내작은삶에대한커다란소설 #수지모건스턴 #이마주 #모두의동화 #청소년소설 #감동 #인생은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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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기에 더욱 빛나는 일본문학 컬렉션 1
히구치 이치요 외 지음, 안영신 외 옮김 / 작가와비평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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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훌륭한 작품을 몇 남기지 않고 안타까운 삶을 일찍 마감한 작가들이 있다. 어느 나라나 그렇다. 아주 오랫동안 좋은 작품을 계속 내주는 작가들과 비교하면 더욱, 그들의 삶이 안타깝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이런 좋은 작품을 계속해서 읽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짧았기에 더욱 빛나는>은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난 일본 작가 6명을 선정하고 그 작가들의 문학 특성을 잘 나타내는 두 편씩을 싣고 작가의 생애와 두 편의 해설을 함께 담은 아주 구성이 좋은 "일본 문학 컬렉션" 첫 번째 책이다. 기획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이름을 들으면 익히 잘 알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지만 읽어보지 못했던 작품들이라 더욱 의미있었다. 


6명의 작가는 히구치 이치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가지이 모토지로, 나카지마 아쓰시와 다자이 오사무, 미야자와 겐지로 그들의 작품은 공통된 분위기나 비슷한 점은 없다. 오히려 그래서 각 작가들의 특성이 잘 느껴져서 좋았다. 히구치 이치요의 무척이나 여성스럽고 여성만이 알 만한 감정 표현, 특히 하층민의 처절함과 마지막 반전까지 놀라워서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는 "기적의 14개월"을 넘어 더 오랫동안 그녀가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안타까웠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들은 읽을 때마다 무척 감성적이면서도 내밀한 감정이 잘 느껴져서 좋다. 나카지마 아쓰시의 작품은 무척 특이했다. 처음엔 판타지 소설인가 싶었는데 작가 소개를 읽고서야 "남태평양 섬의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군궁주의 일본의 지배하의 자유롭지 못한 암담한 현실"{...141p)을 쓴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한 권의 작품들 중에 가장 특이하다고 느꼈던 작가였던 것 같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는 역시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웠다. 


이번에 읽을 때엔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었는데, 그것보단 기분에 따라 골라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러려면 어떤 기분에 어떤 작품을 읽어야 하는지 알아야 하니, 어쨌든 이번 일독은 의미가 있었다고 해야겠다.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도 조금 편안할 때, 혹은 조금 우울할 때 읽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번 작품들 중에도 그런 작품들과 진지하고 싶을 때, 다른 작품과 비교할 작품들 등 가까이 두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생애를 아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는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히 작성하였습니다. *


#짧았기에더욱빛나는 #일본문학 #작가와비평 #짧은생의일본작가 #단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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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y 얼굴을 잃어버린 소년 현북스 청소년소설 6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현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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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문화라는 것이 있다. 물론 각 세대마다 그들이 자라온 환경, 시대에 따라 그들만이 지니는 문화가 존재하긴 하지만 청소년기에는 특히 더 그들만 공유하는 문화가 더 짙다. 거기에 끼지 못하면 '참 독립적인 사람이구나'라거나 '특이하네'를 뛰어넘어 왕따가 되거나 무리에서 이탈되어 외로운 시기를 보내게 되기도 한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남들에 의해 그렇게 되는 건 너무 힘들다.

<The Boy 얼굴을 잃어버린 소년>은 그런 과정과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루이스 새커는 이미 청소년 소설계에 <구덩이>라는 작품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라섰으니 검증 없이 읽어도 재미있고 공감 가득할 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얼굴을 잃어버린 소년>을 읽는 내내 내 청소년 시기와 내 아이의 청소년 시기를 떠올리게 됐으니 청소년들이 직접 이 소설을 읽는다면 공감 백배가 되지 않을까.

데이비드와 스콧은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 하지만 올해 스콧은 학교에서 잘 나가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며 데이비드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데이비드를 비하하거나 이용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는 그런 스콧과의 관계를 위해, 또 자신도 그런 잘 나가는 친구들 속에 끼기 위해 위험한 도전에 함께 하게 된다.

아이들 사이에 "마녀"로 소문 난 베이필드 할머니의 지팡이를 훔치러 함께 한 그들은, 할머니 앞에서 착한 척을 하다가 할머니를 쓰러뜨리고 얼굴에 레모네이드를 부은 뒤, 지팡이를 훔쳐 달아난다. 이 상황 속에서 그저 지켜만 보던 데이비드는 어쩌지 못하는 사이에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게 되고, 그 순간 아주 짧은 죄책감을 뒤로 한 채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려 버린다. 그때 할머니 입에서 쏟아진 저주의 말.

그 후 데이비드에겐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 일들은 모두 할머니에게 했던 일들의 반복이었다. 처음엔 믿지 않았던 데이비드도 자신이 정말로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데이비드는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데이비드는 베이필드 할머니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린 이유가 로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로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왜 신경을 써야 하지?"...19p

"데이비드는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더 거짓말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죄책감은 처음에는 작았지만, 거짓말을 할수록 피노키오의 코처럼 점점 더 커지는 게 느껴졌다. "...158p

일본어 표현 중에 자신을 지키지 못하면, 얼굴을 잃었다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선 이 관용어를 사용해 데이비드에게 일어난 사건과 감정을 묘사한다.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데이비드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좀더 쉬운 길을 택한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꼬여가고 자신의 친구들을 위해, 동생을 위해 무엇이 옳은지 그 옳은 것을 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책의 뒷부분 쯤에서 손원평 <아몬드>의 윤재와 같은 반 친구들이 생각난다.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비방하고 비웃으며 전혀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보다 더욱 비인간적으로 보이던 그 아이들이 이 소설 속에서도 존재한다. 어떤 행동을 해서라도 조금 도드라져보이는 것이, 힙하고 멋있는 걸까?

옳은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은 그런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다. 이름 없는 아이로 남기보다 나답게 자신을 찾는 데이비드의 이야기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히 작성하였습니다. *

#더보이 #얼굴을잃어버린소년 #루이스새커 #청소년소설 #현북스 #또래문화 #바른가치관 #옳은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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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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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눈 뜨고, 매일 밤 자기 전에 하는 일이 있다. 핸드폰 속 뉴스 기사를 훑어보는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유독 눈에 띄게 늘어난 기사들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다. 바로 가정 폭력 문제다. 특히 아이에 대한. 그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저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몇몇의, 나와 상관이 아주 먼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아주 한순간, 조금만 어긋나도 어느 집에서나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부모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적절히 아이와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해 왔다. 

 

<완벽한 아이>를 읽기 전부터 대강의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조금은 담담히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결론을 알고 있으니 조금 쉬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한 그 이상의 내용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말도 안되는 절망의 상황은, 그것을 감내해야 할 대상이 독자가 아니라 바로 모드 자신이었기에 더욱 비참하고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모드 아버지의 기이한 행동들은 "미쳤다"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아이를 만들기 위해 그 어머니를 직접 고르고, 교육시키고 시간이 되었을 때 아이를 위한 어머니로 준비시킨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기나 한가. 또한 아무도 소통할 수 없는 곳으로 이사를 하고 그곳에 칩거하며 사회와 분리된 "완벽한 아이"를 만든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이냐 말이다. "완벽한 아이"에 대한 기준 자체가 틀렸다. 이 아버지에게 있어 완벽한 아이란, 자신이 살던 가난과 전쟁이 난무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아이이다. 더 나아가 그런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 우위에 서야 하는 아이였다. 그러니 이 아버지가 아이에게 가르친 것들이 마치 첩보원이나 스파이가 배워야 할 것들처럼 인간성이 배제되고 기계처럼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살아남기 위한 교육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 낙점되어 교육받아 온 모드의 어머니 또한 모드에게 "엄마"로서의 존재보다는 완벽한 아이로 만들기 위한 선생님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모드의 아버지를 남편으로서가 아닌, 구렁텅이 가난한 삶에서 구해준 영웅과 다시 아이를 교육시켜야 하는 감금된 생활로 내몬 장본인으로 바라보며 모드에게서 동지애와 질투심, 경쟁심을 느끼며 바라보는 인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아이에게 숨기기보다는 드러내놓고 자신의 감정 해소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누군가 내 안에서 절규한다. 린다처럼 죽도록 절규한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못한다.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116p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도 없이,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도 부족한 이 아이가 도대체 어떻게 이 생활을 15년이나 버틸 수 있었을까. 

 

너무 어릴 때부터 자행된 이 폭압적이고 말도 안되는 교육은 모드를 점점 피폐하게 만들지만 그녀에겐 조건 없이 사랑을 나누어주는 동물들과 몰래 접하고 읽었던 훌륭한 책들이, 그 등장인물들이 그녀에게 그나마 숨통을 틔어줄 수 있었다. <변신> 속 그레고르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몬테크리스토 백작> 속 당테스를 통해 긍정과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통해서는 아버지가 말하는 완벽한 인간들과 전혀 다른, 삶으로 진동하는 인간상을 발견하고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해보려고도 한다. 청소년기가 오고 부모의 세뇌에서 조금씩 벗어나 온전히 바라보게 되었을 때, 모드는 더 절망스럽지 않았을까. 어째서 나에게... 왜 우리 부모가...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완벽하게 미워할 수도 없어 미워하는 자신의 감정에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상황 속에서도 모드는 <적과 흑>의 마틸드를 통해 전사가 되기로 하고, <페스트>를 통해 자신의 진로를 정하기도 한다. 또, 음악도 있었다. 아버지 때문에 배우기 시작한 음악이었지만 이 음악을 통해 모드는 좋은 스승을 둘이나 만났고 그들에게서 진정한 음악의 아름다움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정말로 모드를 이 악의 소굴로부터 구한 것은 역시나 "사람의 온정"인 것 같다. 첫 번째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데콩브 선생님의 엄격하지만 따뜻한 눈빛, 무엇보다 그녀의 공정함은 어른 모드가 다른 어른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인물이다.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데콩브 선생님을 기억하고 데콩브 선생님에게서 배웠던 것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두 번째 선생님이었던 몰랭을 통해서는 결국 모드가 이 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했던 몰랭 선생님의 끝없는 애정이야말로 모드가 마지막 힘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이 집을 떠나고 싶어 죽을 지경이지만, 동시에 두려워서 떨리기도 한다. ...(중략) ...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벌써 아버지가 그립다. 나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서 도망치고 싶다."...310p

 

어릴 적 기억의 파편 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하교 후 안방에서 주무시는 엄마의 뒷모습을 봤다. 아마도 난 그날 엄마에게 안기고 싶었나 보다. 조용히 다가가 뒤에서 엄마를 안았다. 그때 엄마가 내 손을 잡더니 "얘가 왜 이래~ 더워 죽겠는데!"하며 뒤로 휙! 치우셨다. 그때의 민망함이란! 정말 오래된 기억이다. 벌써 30년도 넘었으니. 그런데 이 기억 하나가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 그때 즈음 <빨강머리 앤> 열 권을 친구들과 돌려 읽고 있었다. 8권인가에서 앤이 막내 딸의 말에 웃음을 참으며 진지하게 들어주려 하던 장면이 내겐 가장 감명깊은 장면이었다. 그때 다짐했다. 나도 꼭 앤 같은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비웃거나 무시해서 아이가 민망해 하거나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이다. 

 

부모의 말 한 마디는 생각보다 아이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친다. 부모는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거나 농담일지 몰라도 아이들에겐 인생의 지침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진로를 정하거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때로는 아이들에게 말 할 때 무섭다고 느끼곤 한다. 농담일 때에는 정확하게 농담이라고 밝힌다. 혹시 나도 모르게 상처주는 말을 했다면, 며칠이 지난 후에라도 미안했다고 사과한다. 그래도 몇 년이 지나면 아이의 기억과 내 기억이 또 다르다.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했을 때보다 5배의 긍정적인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절대로 1 대 1이 아니라고. 

 

모드가 결국 그 집을 나와 비록 너무나 어려운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지금 이렇게 훌륭한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만 하다. 모드가 자란 시대는 이미 한참 전이다. 그런데 이 세상엔 모드의 부모와 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자식이 자신의 소유물 쯤 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평범한 가정처럼 보이더라도 얼마든지 내 아이가 나 대신 이루어줬으면 하고 바라는 부모들, 어느 정도의 훈육은 괜찮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감정 스레기통으로 생각하는 부모들까지. <완벽한 아이>를 통해 지금 자신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되돌이켜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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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8-0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ilovebooks 2021-09-13 09:33   좋아요 0 | URL
우왓! 전 이제 알았네요...ㅎㅎㅎ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8-06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lovebooks님 당선 축하드려요^^

ilovebooks 2021-09-13 09: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계정에 들어온 적립금을 보고서야 알았어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