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 맞다와 무답이 담쟁이 문고
최성각 지음, 이상훈 그림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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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의 뒷표지, "세상이 개떡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일용할 양식처럼 이 소설을 복용"하라는 이외수님의 추천사가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가슴속에 황무지를 간직하고 있다면 죄인이므로 그럴 때 내리는 처방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고요. 또, 약발도 끝내군다고요.^^ 끝까지 다~ 읽고 난 지금은,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세상은 아름답다고........

<<거위, 맞다와 무답이>>는 생태소설입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계시는 최성각님께서 거위, 맞다와 무답이를 키운 2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 어떻게 거위라는 동물을 키우게 되었는지... 이름은 왜 맞다와 무답이가 되었는지... 이들이 어떻게 커 가고 그 주위 사람들이나 동물들과 어떻게 어울렸는지.... 

어렸을 적 이웃집 거위 때문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있던 그래풀(최성각 작가님의 별명)님이 거위, 맞다와 무답이를 키우며 부성애를 느끼고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예쁩니다. 들고양이와 친해지려 애쓰던 노력도 뒤로 하고 거위들을 지켜내기 위해 불침번을 서고, 밥그릇의 밥을 생쥐들에게 빼앗기는 것을 목격하고 고민에 고민 끝에 밥그릇을 천장에 매달 궁리도 하고, 곁을 잘 두려하지 않는 거위들에게 섭섭함도 느끼는 그래풀님이 어찌나 공감이 가고 애틋하던지요.

거위라는 동물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던 연구소 사람들이 맞다와 무답이와 함께 하며 사계절을 나고서는 거위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도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저돌적인 맞다와 언제나 조용히 순종적인 듯한 무답이의 모습이 마치 손에 잡힐 듯 느껴집니다. 

  

느긋하고 순리대로 흐르는 맞다와 무답이의 삶이 마치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애교도 부리고, 때론 불평도 할 줄 알고, 꾀도 부릴 줄 아는 맞다와 무답이를 보며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것은 맞다와 무답이의 죽음까지 이어집니다.
마지막까지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맞다와 무답이가 어찌나 안타깝던지요!

이외수님의 말씀처럼, "어떤 나무들이 이파리를 나부끼고.... 어떤 새들이 알을 품고.... 어떤 음표들이 반짝거리..."게 만드는 책입니다. 짧지만 그 감동은 배가 됩니다. 내용 뿐만 아니라 어휘 하나도, 문체도 반짝반짝 빛이나 이 책을 더욱 값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잊혀진 동물이라는 거위를 저도 키우고 싶어졌습니다. 넓은 마당이 있고, 연못이 있는 그런 곳에서 꿈처럼... 바람처럼.. 거위 한 쌍과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제 가슴에도 나무 이파리와 새와 반짝이는 음표가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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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째 매미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쓰요 지음, 장점숙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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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계획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랑했던 남자의 아이를 딱 한 번만 보고나면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에 그 집을 방문했던 것. 매일 아침 부인이 남편을 역까지 바래다주러 나간 20여분 동안 아이가 집에 혼자 있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렇게 그 집 안으로 들어갔다. 6개월 정도 된 아이는 울고 있었다. 하지만 기와코가 안자 울음을 그치고 웃었다. 그 웃음이 기와코를 받아들여주는 듯 해서, 그렇게 기와코는 아이를 안고 도망을 친다.

<<8일째 매미>>는 총 2부로 되어 있다. 1부는 기와코가 아이를 유괴하여 도망쳐 다니는 3년 반 동안의 이야기를 무척이나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2부는 그로부터 18년 후의 그 아이, 에리나(혹은 가오루나 리브가)의 이야기이다. 1부에서는 기와코와 가오루가 경찰의 수사를 피해 달아나는 과정이 너무나 긴박해서 그 밖의 사소하거나 자세한 부분들에 대한 의문을 일일이 따져볼 수가 없다. 

처음에는 유괴라는 범죄는 그 어떠한 변명이나 이유가 있다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도둑맞은 그 부모나, 친부모를 모르고 자라는 아이의 인생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하지만 기와코와 가오루의 애착관계를 바라보며 나도모르게 이해하고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나 자신도 당황스럽다. 아마도 가오루에 대한 기와코의 마음이 친부모 이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기와코가 가오루를 자신의 아이라고 때때로 착각하듯이 읽는 나도 이들이 친부모자식 간이라고 착각하게끔 만드는 작가의 능력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내막은 이해되더라도 유괴는 어쩔 수 없는 범죄이므로 결국, 기와코는 잡히고 가오루는 에리나가 되어 친부모에게 돌아가게 된다. 

2부는 에리나가 지구사를 만나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며 자기자신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유괴되어 유괴범에게 자랐던 아이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살아가야만 했던, 친부모에게로 돌아왔으나 이미 가정은 다른 평범한 가정이 아니었던, 그 모든 것이 모두 자신 탓이었던것만 같았던 에리나의 이야기이다. 

매미는 7년을 땅 속에서 보내다가 땅 위로 올라와 딱 7일만 살고 죽는다고 한다. 하지만 8일째에도 살아남은 매미가 있다면 그 매미는 오래 살아남았기 때문에 기쁜걸까? 아니면 모두 죽고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남았으므로 불쌍한걸까...

"기억나? 7일 만에 죽은 매미보다도 8일째에 살아남은 매미가 더 불쌍하다고, 네가 그랬잖아. 나도 줄곧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구사는 조용히 말을 잇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8일째에도 살아 있는 매미는 다른 매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으니까. 어쩌면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눈을 꼭 감아야 할 만큼 가혹한 일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319p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에, 평범한 삶을 살지는 못했던 주인공들. 그들은 모두 8일째를 살고 있는 매미일지도 모른다. 이성적으로는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들은 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되풀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허물을 하나 하나 벗어가며 성충이 되는 매미처럼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그래도 희망은 있고,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리라. 

"기와코는 걸으면서 두 손을 하늘에 비쳐 봤다. 무슨 까닭일까? 남을 미워하다가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남의 선의에 기대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버리고, 도망치고, 또 도망치는 동안 모든 것을 잃어버린 빈껍데기가 되었는데도, 이 손 안에 아직 뭔가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기를 안아 들었을 때 두 손 가득 퍼지던 따스함, 부드러움, 묵직한 무게감, 이미 잃어버린 것이 아직 이 손 안에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343p

이 책을 시작하며 어떻게 유괴범이 주인공일 수 있는지 격분하던 내가, 이 책의 주인공 모두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다. 즐겁지만은 않은 내용이지만, 마지막이 희망적이어서 기쁘기도 하다. 8일째를 살아가는 매미처럼 가장 힘이 들고, 끝도 없이 절망적일 때에도 다른 매미들이 못 보는 푸른 하늘과 초록 나무를 볼 수 있어 기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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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들
아일린 페이버릿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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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하게 하려면 책을 읽을만한 환경을 만들어주라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 첫번째 환경은 단연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종일 자기 책만 읽는 엄마를 둔 7살짜리 딸은 어이없는 눈초리로 '그만 좀 읽고, 나랑 좀 놀지?'라는 텔레파시를 팍팍! 보내오곤 한다. 내가 책을 읽을 때, 옆에 나란히 앉아 자신의 책을 읽는 딸아이의 모습을 바라고 상상해 보건만... 진실은 엄마 책을 들여다보며(절대로 보아서는 안되는 책까지..) 관심을 보이거나 말을 걸며 방해하기 일쑤이다. 아마도 우리 딸은 내가 읽는 책들에 질투를 느끼나보다. 

<<여주인공들>>의 페니 또한 그렇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페니는 자기네 민박집에 묵으러 오는 소설 속 여주인공들에게 엄마를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여주인공들이 묵으러 오다니? 늘 선망해 바라마지 않던 여주인공들을 현실에서 마치 언니처럼, 친구처럼, 동생처럼... 만나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판타스틱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페니에겐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힘들고 고뇌에 차 있을 때 잠시 쉬러 오는 여주인공들을 보살피는 엄마에게 페니는 언제나 뒷전이었던 것이다. 

착하고, 순종적이었던 페니는 열살을 넘어 열세 살이 되자 자신들만 생각하고 징징거리고, 오만방자한 여주인공들에게 완전히 질리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변화는 페니가 사춘기에 돌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페니를 화나게 한 것은 자신의 엄마뿐만 아니라, 침실까지도 빼앗아간 데어드르(<비애의 데어드르> : 신화)가 나타났을 때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처음, 페니가 선택한 것은 "반항"이다. 자신을 내버려 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기로 한 것!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결과는 악한일지도 모르는 코노르를 만나게 된 것과 세상사람들 잣대대로의 인정을 받기 위한 정신병원행이었다. 단지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행동이, 자신의 삶에 들어온 여주인공들에 대해 맞서게 되고, 더 나아가 세상과 맞서는 과정을 밟게 된다.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뱃속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흐느낌을 누르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엄마의 어린 딸이 아니라는 혼란과 분노가 나를 휩쌌다."...56p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어야하는 여주인공들의 출현으로 인해 페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그러한 삶을 살아왔던 어머니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엄마 아래 편안한 생활을 영위해 왔던 때와는 달리, 정신병원에서의 홀로된 생활은 말할 수 없이 불편하고 부조리하다. 그러한 때에 페니는 그동안 여주인공들과의 소통과 경험들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내재되어 있던 것들을 떠올려 현명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여러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귀찮기만 했던 여주인공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페니는, 엄마의 삶도, 자신의 삶도 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페니의 아빠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부분에선 조금 생뚱맞았지만 전체적으로 여주인공들이 내 삶 속에 들어온다는 설정이 무척 재미있다.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 위로를 받으러 온다면... 잘 위로해줄 자신은 없다. 아마도 나는 미성숙한 페니처럼 여주인공들의 운명을 바꾸려고 설득하고 있지나 않을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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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기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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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부터 정신이 없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도 모두 다르다. 언젠가 이런 식의 플롯을 가진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제목도 잘 생각나지 않지만... 이 책처럼 미스테리였고, 전체 흐름 중 중요한 몇 장면이 맨 앞부분을 차지하고서 강한 임팩트를 준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하스다시 구로누마. 이름 그대로 검은 늪이 있는, 음울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곳에서 한 가족 네 명이 홀연히 사라지는 "행방불명" 사건이 일어난다. 게다가 5년 전에는 이 늪의 반대쪽에 자리잡은 또다른 일가 네 명의 살인사건이 있기도 한 곳이다. 하지만 그 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한 것처럼, 이 가족의 실종도 다른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있다. 9월 초에 사라진 이들은 벌써 2개월째 어디에서도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또 한 사건! 도쿄에 사는 한 추리소설가가 만원 전철에서 성추행범으로 오해받은 뒤 그 여성(알고보니 남성이었지만)에게 사과받을 목적으로 미행하고서 알아낸 사실이 있다. 최근 도쿄에서 벌어지는 괴한 습격 사건의 범인이 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은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고 정식으로 사과받으려고 했던 미행이 결국은 자신의 추리소설을 완성시키기 위한 범인의 미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일어난 때는 8월 말이다.

소설은 이 두 사건이 번갈아 교차하면서 서술된다. 다키자와가 실종 사건의 뒤를 쫒는 르포라이터 아기라시 미도리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과 함께, 도쿄의 괴한 습격 사건의 범인의 뒤를 밟아가며 자신의 추리소설을 완성시켜가는 추리소설가의 이야기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이야기는 시간도 화자도 다르기 때문에 이 두 사건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일가족 실종의 전말은 어떻게 되고, 괴한은 누구인지를 추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추리는 해보지만 자신은 없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아!!!" 하는 탄성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단란하게만 보였던 가족이 실종된 후, 아기라시 미도리의 취재로 드러나는 이 가족의 뒷모습은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 어머니의 빚문제, 아내의 불륜과 딸의 혼전임신까지... 한 가족 내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가족"이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다키자와가의 집 옆에 위치한 구로누마가 암시하는 것은 바로 이런 단란하게만 보였던 가족의 검은 내막이 아니었을까. 또, 자신의 추리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경찰에 바로 신고하지 않고 범인을 미행하는 자는 어떠한가. 이 사람은 범인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을 비슷한 상황에 몰아넣고 범인의 광기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가.

끝까지 읽지 않으면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끝까지 읽고나서도 몇 번이나 앞이나 뒤를 뒤적거린 후에야 이 사건들의 전말을 알 수 있게 된다. 매우 흥미진진한 소설이었다. 이렇게 눈으로 영화를 보듯, 소설을 끌어나갈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순서를 뒤섞어 플롯을 짜듯, 두 사건이 일어나고 결국은 만나지는 이 순서를 여러 화자와 시간으로 나누어 뒤섞어놓았다. 그래서 읽는 이는 추리하고 싶어도 마지막까지 읽지 않으면 추리를 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은 처음이었는데, 그의 "~자(者)" 시리즈는 아직 한국에서 출판되지 않은 것 같다. <<행방불명자>> 안에서 이 "~자" 시리즈가 언급되어 읽어보고 싶었는데, 무척이나 안타깝다. 그만의 서술트릭을 조금 더 만끽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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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퍼시 캉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끌레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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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방법, 즉 나를 나로서 표현하는 방법으로 난 무엇을 선택하고 있을까? 난 좀 게으른 편이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신경쓰면서도 나를 어필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조금 똑똑해보였으면 좋겠고(이른바 지성을 갖추고..) 자상하고 배려있는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지만 완전 이기적인지라 별로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그 외 외모적으로는 .... 더없이 게으르다. 어찌보면... 결국은 완전 내키는대로네.ㅋ 

한때 프랑스 정보국에서 일했던 69세의 엠므씨는 자신의 집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공동묘지에 엿먹이기를 할 정도로 호전적이며, 매일 아침 저녁으로 심장 발작에 대비할 정도로 세심한 사람이다. 또 멋진 옷을 골라 입을 줄 아는 우아한 사람이며 예전의 것들을 더 좋아하는 습관에 길들여진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매일 들고다니는 우산이 우산의 역할보다 지팡이로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로 허영기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자신이 당한 불공정함 앞에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정도로 공격적인 사람이기도 하며 그가 하고자 결심했던 바를 행할 정도로 결단력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엠므씨를 이루는 이 모든 성격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자 줄거리이고, 핵심이다. 200페이지가 되지도 않는 이 작고 얇은 책 속에는 엠므씨의 마지막이, 하지만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무척이나 흥미롭고 강렬하며 산뜻하다. "죽음"이 어찌 산뜻할까마는 엠므씨의 허영과 자의식과 그의 결단력까지 어우러져 그의 죽음만큼은 더없이 깔끔하고 산뜻해졌다. 

시작은 이랬다. 그가 젊었던 시절부터 사용해 왔던 그만의 향수 <머스크>가 사실은 천연 향수(사향 노루의 성 분비물에서 추출된 것)였고, 이제는 더이상 그 천연 재료를 사용하여 향수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몇 십년 동안 그가 그의 이미지로 사용해 오던 그 향수가 앞으로는 절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인된 "코"들이 인정한 인공 향으로 만든 대체 향수가 있지만, 엠므씨에게 더이상 그 새로운 향수는 그만의 머스크가 아니었다. 한순간에 그의 젊음이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에 엠므씨는 좌절한다. 천연 머스크로 그의 노화를 가렸던 것은 사실 그의 허영심이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었고, 그의 젊음이었다. 

"늙기를 거부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허영기에서 시작된 일이 이제 존재의 드라마로 변해버렸다."...94p

하지만 엠므씨는 공격적이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허물어진 자신의 삶을 놓아버리진 않았다. 언제나 바라던 것처럼 자신이 원할 때 자신이 원하는 우아한 방식으로 생을 마치고 싶어했다. 그래서 머스크 향이 남아있을 동안만큼은 그는 그로서 존재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의 성격만큼이나 깔끔하고 철저한 준비! 향을 잃은 자신은 자신이 아니듯이 머스크향을 지닌 자신으로서만 남기로 결정한다.

"그 자신은 이미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러니까 절대로 진짜 죽지 않을 것처럼."...143p

나와는 전혀 다른 듯한 엠므씨의 생활과 결정과 삶이 왜인지 이해가 되는 것은 엠므씨가 마지막까지 자신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른사람들처럼이 아닌 나 자신의 삶을 살았으므로. 강박적으로까지 보여질지 모르는 부분들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감싸안고 자신이 아닌 것들을 과감히 잘라내는 엠므씨의 결단력이 부럽기도 하다. 나는 무엇으로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 조금 더 "나"다운 것들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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