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와 돈에 관련된 직업 2 - 은행·증권·보험 관련 직업 미래를 여는 경이로운 직업의 역사
박민규 지음 / 빈빈책방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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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은행을 통해 금융거래를 한다. 예를 들어 일정한 수입에 일부를 때어 저축을 하거나, 사업자금이 필요하여 대출의 문을 두들기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개인의 영역에서도 금융이 지니는 영향력은 곧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결코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때문에 그러한 직종에 종사하는 '전문가' 즉 은행원과 같은 직업은 오래도록 엘리트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누려왔다. 물론 이는 현대에 이르러 굳어진 평가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끔한 양복차림에 냉철한 이미지를 드러내며 막대한 숫자를 주무르는 은행원의 모습은 여느 다른 매체를 통하여 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느 이미지를 어필하는데 성공한 편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와 같은 이미지는 현대의 것... 즉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것이다. '노동을 하지 않고 막대한 돈을 버는 사람' '노동자의 피와 땀을 하찮게 여기게 만드는 사람' '어디까지나 나의 돈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신용과 믿음을 가진 사람'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평가 속에서 점차 대금업자에서 금융업자로 성장하기까지, 오래도록 이들은 전통적인 신앙과 정치.경제적 특이점의 틈바구니에서 미움받고 시기받는 존재로서 크나큰 설움을 감내해야 했다.

돈을 빌려준 대금업자는 악착같이 빚을 받아냈다. (...) 동시에 대금업자를 악마로 취급하며 도시 밖으로 추방하고, 재산을 모두 빼앗기도 했다. (...)

21쪽 고대 문명과 은행의 기원

'돈이 돈을 낳는다.'

이는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가치이자, 금융의 기능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활에 가깝다. 물론 이를 '사회적 경제활동을 촉진한다' 라는 그럴싸한 문장으로 포장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금융이 그 힘을 키우는 동시에 자신의 존재 의의를 드러내기 위해라도 금융은 스스로의 '신용'과 함께 '투자'와 이익'을 끝임없이 추구해야 한다.

이에 결과적으로 금융의 현재와 미래, 즉 보다 다양한 거래와 서비스의 확장에 있어서, 분명 현대의 모습은 보다 진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자본이 보다 미래의 사회적 위험을 줄이는 완충작용을 해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흔히 이전 국가와 사회가 보장하는 공공의 자본과 달리, 민간자본이 가지는 유연함에 기대하는 정치적 해석이 늘어감에 따라, 이후 세계적으로 보여지는 자본의 모습은 탈국가, 심지어는 (가상자산과 같은) 탈금융(또는 탈중앙화)과 같은 전대미문의 흐름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미래에는 지금과 같은 은행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대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또는 온라인 쇼핑을 하면서 이와 결합된 금융서비스를 자연스럽게 이용할 것이다.

150쪽

그러나 이전 은행업의 발전사에 '화폐'가 등장한 이후 오늘날까지 금융이 세계의 여러 자산가치의 기준을 세우고 있는 역활만은 여전히 굳건하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 책에 주목한 금융의 역사에 비추어,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경제의 변화에 민감해지고, 또 보다 미래지향적인 투자에 매력을 느끼는 것 이면에는 단순히 '보다 더 큰 수익'을 원하는 막연함 만이 아닌, 근래 보다 밀접해진 세계화에 맞추어 사람들이 금융과 투자에 대한 지식, 더욱이 분석을 공유하고 확산하는 통신기술의 힘을 통한 보다 폭넓은 (구조의)이해가 가능해졌기에 발현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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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와 돈에 관련된 직업 1 - 상인·회계사·광고인 미래를 여는 경이로운 직업의 역사
박민규 지음 / 빈빈책방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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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문명을 만들어가는 와중 어쩌면 서로가 필요한 물건을 확보하는 것 등을 포함한 초기 상거래에 대한 의의는 생각보다 중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에서 처음 등장하는 그리스 로마 문명에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발달한 해상무역의 존재를 지워버리게 된다면, 과연 그 고대문명의 존재는 성립할 수 있을까? 더욱이 오래도록 로마가 경이적인 대도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정복과 문화 그리고 상업시스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도로와 해로의 확대와 이용이 활발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이처럼 고대의 상업에서 현대의 상업으로 이어지는 오랜 시간동안 소위 장사꾼은 크게 이익을 도모하는 목적을 위해 끝없이 (당시의)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상업(직업)을 보다 자유롭게 선택하고, 공정한 국가의 법과 규칙의 보호를 받으며, 더욱이 장사꾼이라는 이유로 정치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상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이전 여러 다양한 국가체제와 지도자(또는 독재자)의 손아귀에서 '살 길을 열였던' 여러 상인들의 역사는 의외로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익숙한 지식의 범위에 든다.

중국 최초의 왕조는 '상'이다. (...)지역마다 필요한 물품을 구해 서로 바꿔주는 일을 했다. 이 일을 하는 상나라 사람들이 하는 일이 '상업' 상나라 사람들이 교환하는 물건은 '상품' 이다.

32쪽 고대 중국 상인

허나 반대로 상업의 발전사에서 보여지는 교역의 이면에는 식민지와 노예와 같은 보다 부정적인 면면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끝없는 팽창과 부의 확보를 위해서 언제부터인가 인류는 제국주의 체제에서 비인도적인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아니 도리어 이를 통해서 발전한 기술 문명을 앞세워 멋대로 문명과 야만을 구분지으며 그들 스스로의 기득권을 누려온 사실이 있다.

때문에 현대에서 상업의 길을 걸어가려는 이가 있다면, 당연히 스스로가 생각한 수익 시스템과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 책에 표현된 여러 직업의 등장과 변화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직업에 기대하는 가치 또는 상식이 그 어느 역사에 원인을 두는가에 대한 나름의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인의 일은 돈과 관련된 일이다 보니 다른 사람과 이익을 두고 다투는 경우가 많다. (...) 동료 상인과도 때로는 협력하지만 때로는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 갈등을 잘 조정하는 능력도 상인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수천 년 전 고대 상인이나 21세기의 상인이나 변하지 않는 특징이다.

135쪽

각설하고 세상에는 '상도덕'이라는 가치가 존재한다. 소위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정직'과 '신용'을 외면한다면 그는 상인이 아니다. 그 어느 세상에서 가장 먼저 돈과 물품의 흐름를 쫒아 성공과 이익의 길을 개척한 이들이 바로 상인이요, 그 이름을 알리는 행위가 광고였다. 그야말로 이들은 상업의 최전선에 서서 크게 인류의 발전사에도 거대한 영향을 미친 '실행자'의 역활을 수행해 온 것이다. 세상에 비단길이 저절로 열렸겠는가? 망망대해의 해로가 저절로 그려졌겠는가? 이에 상인이 그 역활을 다하며 만들어간 세상의 모습이 과거와 미래 그 무엇이 변화하고 또 남게 될지에 대한 나름의 탐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 책이 지닌 최대의 가치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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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 - 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2
임용한.조현영 지음 / 레드리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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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국가간의 무력충돌과 분쟁 그리고 이를 통하여 역사가 후대의 자손들에게 던져주는 여러 교훈적 가치들을 접하는데 있어서 나는 먼저 '어떠한 것을 마주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했다. 예를 들어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탐구하는 '인문학'의 개념에 있어서도 전쟁은 많은 생각거리를 가져다 준다. 물론 당시 역사적 이유와 환경과 기술의 한계를 통하여 전장에서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실패의 역사와 함께, 이에 그 한계를 넘어 최선과 성공의 길을 열어간 여러 위인들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영광과 굴욕를 나눈 가장 큰 원인을 발견하고 이를 현실의 삶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나만의 교훈으로 삼는 것' 어쩌면 현대 많은 이들이 전쟁사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에는 위의 가치가 크지 않은가 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의 내용을 접하고 있으면, 여느 전쟁사적 가치와는 다른 여러 복잡한 의문이 떠오른다. 실제로 현대전을 치룬 중동전쟁의 내면에는 흔히 대한민국의 국민이 지니고 있는 전쟁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 누구에게 전쟁의 책임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중동전쟁에 던져보면 이를 쉽사리 정의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오늘날까지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영토분쟁은 단순히 땅의 경계 뿐만이 아니라, 여러 서방 강대국과 중동 여러 국가간의 정치적 이해관계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더욱이 아주 오래전부터 속된 말로 '대책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종교와 민족의 갈등도 녹아있으니, 이에 언젠가 안정과 화합의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을 표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책임한(또는 무지한) 태도를 드러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어이없게도 팔레스타인 학살은 아랍국가들의 욕망과 정치, 전쟁을 통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 (...) 준비 안된 전쟁에 민중의 감정과 정치가 개입했고, 전쟁 이후에는 각국의 정치 지형을 파괴하고 흔들었다.

90쪽

결국 사막의 땅과 하늘을 내달리던 무기들은 파괴와 희생만을 낳았고, 더욱이 그 상처는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았다. 이에 저자는 담담히 전쟁의 성격과 흐름, 그리고 그 혼란속을 나아간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 나아가지만, 특히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가치관으로서 인간의 오랜 고뇌, 언제나 어리석음과 헛된 반성을 반복하는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적어도 불완전한 평화를 이어가기 위해서 인간과 사회 또는 국가의 각각의 영역에서 무엇을 이루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것과 같은 감상을 받았다.

전쟁의 역사는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인간이 평화와 정의를 바라는 마음 만큼이나 얼마나 쉽게 이기심과 이해관계에 굴복하는지 보여준다. (...)

540쪽

'전쟁의 참상에 휩쓸리다.'

이전부터 전쟁을 겪은 이들과 역사는 흔히 위와 같은 표현을 써 왔다. 물론(당연하게도) 세상 누구도 전쟁의 한가운데 발을 디디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수 많은 국민들이 전쟁을 부르짖고 정치인들이 공공연히 전쟁을 입에 담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의 지식과 인간의 이념에 비춘 정의는 그 빛을 바르게 잃게 된다.

과거 세계대전으로 확대 된 전쟁이 그 몸집을 키워갈때, 과연 그 때의 모든 사람들이 전쟁의 필요성을 인정했을까? 아니면 반대로 전쟁을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국가는 전쟁과 분쟁을 멈추지 않았을까? 혹여 믿어 의심치 않은 인간의 평화를 향한 신념과 이성, 문명인으로서의 교양은 처참한 결과를 피할 수 없는 전쟁을 막을 효과적인 방파제가 될 수 없는 것인가...?

이에 수 많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히지만, 적어도 저자는 나름의 길라잡이 역활을 자청한다.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평화와 번영이라면 적어도 전쟁이 그 조건에 끼어들이 않게끔 모두가 '몸부림쳐야 한다' 소위 인간의 내면에 깃든 전쟁의 씨앗, 소위 편견과 증오, 부정적인 혐오의 감정을 모두 지워버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같이 인간이란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위의 감정 등을 필사적으로 경계해야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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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섹타겟돈 - 곤충이 사라진 세계, 지구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까
올리버 밀먼 지음, 황선영 옮김 / 블랙피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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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삶' 이는 수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 살아감에 있어서, 크게 추구하게 되는 (당연한) 욕망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인간은 문명사회가 만들어낸 시스템을 곳 잘 누리게 될 뿐만이 아니라, 이후 발전해야 할 비전을 위해서 필요한 요소로서 지혜를 갈구하고 또 실용적인 기술과 과학이 가져다줄 가능성에 크게 기댄다.

때문에 인류가 가꾸어 갈 지구의 모습 또한 분명 현대의 것과 다른 가치관과 필요성에 의해서 변화할 것이다. 다만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순간 잃어버릴 수 있는 것 또는 이미 잃은 이후에 필요성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면 과연 인류는 이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가까운미래 가장 우려스러운 '기후변화' 와 함께 아직 지구의 생명체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 인류가 어느날 수 많은 다른 생명을 잃게된다면... 이에 그 결과가 가져올 후유증의 심각성을 깨닫고 해결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인류의 능력으로 얼마만큼 벌 수 있을까?

이에 이제까지 많은 학자들이 '인류의 위기'를 주장해 왔다. 또한 이 책 역시 의외로 오래도록 주장되어온 곤충의 역활 또는 다양한 유기체의 의존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생물 다양성'이 곧 인류의 존속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성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여러 학술적 지식을 습득하는데 목적을 둔다.

곤충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은 놀라울 만큼 간단할 수 있다. (...) 아폴로 11호를 만들고 (...)황급히 백신을 개발할 필요도 없다. 다행히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보다 훨씬 느긋하게 할 수 있다.

351쪽

혹여 이 세상에 벌들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에 단순히 인간이 벌꿀을 먹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단순한 해답을 내놓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더 나아가 곤충의 객체가 줄어 1.2차 소비자의 균형까지 흔들 수 있을 정도의 생태계 파괴가 일어나는 순간에서, 과연 인간은 그 위기의 고리를 끊어내고 독자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에 의외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식과 지식을 앞세워 다양한 주장을 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와 곤충의 소멸과 같은 위기론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또는 인간이 이룩한 어려 혁신적인 가치관으로 이전 자연과 생태계가 행한 역활을 대신할 '대체품'(로봇과 같은 것)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단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인간이 자연의 회복을 위해서 이제까지의 생활방식을 벗어던지고 보다 불편한 것을 감내해야 하는 어느 주장 등을 통해서 보다 변화한 시대의 조건에 따를 것인가에 대한 질문(필요성)은 이제 미래의 지구와 인류의 생존을 담보로 한 갈림길의 막바지에 도달한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때문에 아직 곤충의 생태계가 복원될때까지 인간이 '부지런하지 말 것'을 주문한 책의 내용은 의외로 단순하면서도 희망적인 기회가 남아있음을 드러내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신이 곤충에게 수 많은 알을 낳을 수 있게 한 것, 빠른시간에 수를 늘릴 수 있도록 만들어낸 것은 곧 위기의 생태계 또한 의외로 빠른 시간에 회복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에 인류가 여러 이유로 행한 것... 특히 다양한 약물의 살포와 농경지의 확대를 잠시 줄이거나 멈출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결국 그 당사자인 '현대를 사는 인류'가 선택하고 실행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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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 일본 원자력 발전의 수상한 역사와 후쿠시마 대재앙
앤드류 레더바로우 지음, 안혜림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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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해보면 나는 의외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많은 서적을 접해왔다. 먼저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현실을 드러낸 '사진집'에서 시작하여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주제로 한 '르포르타주'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는 나 스스로가 국제사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때, 가장 크고 심각한 재난으로서 위의 사건을 마주하고 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라 여긴다.

그렇기에 이 책 또한 그 관심의 연장선에서 선택한 것이자, 보다 폭넓은 사실을 마주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서 나름 만족스러운 감상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까지 해결되지 못한 원자력 발전소의 문제, 특히 지역(도시)의 오염제거와 방사능 오염수 처리 등은 소위 노동자의 헌신과 희생을 발판으로 개선되어가고 있지만, 문제는 애초에 절대 안전을 사수해야 했던 국가 안전 시스템의 실패가 단순히 거다란 재난에 의하여 발생한 것 만이 아닌, 오래전부터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 '일본의 (조직) 경직성' 과 '현상에 책임을 지지 않는 문화' 등이 만들어낸 일종의 인재라는 주장이 제기 된 것이다.

야쿠자 연합체가 일부 하청 업체를 운영하고 원자력 발전소에 조달한 임금을 빼돌려 자금을 모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 "원자력 발전소가 동네에 들어오면 왜 우리가 그렇게 많은 돈을 벌까?"라 물었다. (...) 간단하다. 우리는 불평하는 사람이 누구든 닥치게 할 수 있어서 돈을 번다. (...)

원자력 마을과 안전사고 1980년대

이에 생각해보면 '일본의 원자력 발전의 역사' 는 지난 대한민국이 겪어 온 과정과는 다른 특이점이 존재한다. 먼저 세계대전중 원자폭탄을 겪은 국가가 다시 '원자력'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고, 특히 이전 지방 분권적으로 성장한 전력 사업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역시나 '관료'와 '(국영)기업'의 유착관계가 형성되어 굳어진 결과는 곧 조직의 집단주의와 순종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적당한 대응 '시스템'과 '메뉴얼'을 갖춘 원자력 발전사업은 어찌저찌 기능해왔다. 그러나 인간이 생각한 재난 위력과는 차원이 달랐던 동일본 대지진은 시시각각 원자력 발전소를 위협했으나, 정작 이에 맞서 운영을 맡았던 '관리자'들은 진정 자신들에게 부여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시미즈 마사타가는 (...) 3월 15일 간 총리에게 질책을 들을 때까지는 무대 뒤에서 움직이고 있었으나 이후에는 적어도 6일 이상 개인 집무실에 은둔했고, 회사의 다른 간부들이 참석하는 위기 대응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으며 사실상 도쿄전력의 리더 자리를 비워두었다.

331쪽 / 여파

결국 새로운 시대, 다양한 기술과 효율성을 도입하고, 또 그에 따른 성과를 배경으로 나름의 정치 경제적 지위를 다졌던 '관리자'들이 막상 위기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순간에 보여준 바는 심히 상식적이지 않을 뿐 만이 아니라, 무책임과 무능함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왔다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또는 주장)을 마주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현재 일본의 안타까운 모습이라 생각하고 싶기는 하지만... 반대로 최근 부족한 에너지와 원전기술의 수출과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대한민국이 원전을 늘리려고 하고 있는 점, 특히 중대한 재난과 참사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은 이전 일본이 보여준 모습과 비교하여 그 어느것도 나은 것이 없어 보인다.

때문에 이후 먼 미래에 이르는 시간동안 대한민국의 원자력은 안전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지금까지 사고가 없었던 것을 폄하하려는 뜻은 아니지만, 언젠가 감히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닥쳐 피해를 입을 경우 과연 한국의 사회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솔선하고 또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보여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나는 나름 부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다.

2013년 12월 이 나라는 아주 엄격한 특정비밀보호법을 통과시켰다.(...)정부가 대중의

철저한 검토를 피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숨길 수 있게 이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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