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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소메이 다메히토 지음, 정혜원 옮김 / 몽실북스 / 2021년 5월
평점 :
일가족 살인사건으로 일본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형수가 탈옥했다.
젊은 부부와 두살배기 아이까지 무참히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그에게서 살인동기는 찾을수 없었다. 그러나 방문 안쪽에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목격자가 있었다. '이오 요시코'는 거실에서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 어린 손자가 키가 크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칼에 죽었음을 증언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묻지마 살인을 한 그를 잔인하고 악랄한 미치광이 살인마로 규정했다. 헤이세이 최후의 소년 사형수 그의 이름은 '가부라기 게이치'로, 당시 그의 나이 겨우 18세였다.
놀랍게도 가부라기 게이치는 1년 넘게 도피생활을 이어갔다. 혹자는 이미 배를 타고 멀리 다른 나라로 떠났을 거라고 했다. 누군가는 온갖 변신술과 성형으로 계속 얼굴을 바꿔가며 국내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를 둘러싼 소문은 끊이지 않았고, 250만엔에서 시작한 현상금은 천 만엔까지 올랐다. 사람들은 잔인한 사형수를 어디서 마주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했지만, 그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했다.
다만 2020년 도쿄올림픽을 위해 지어지는 공사장에서, 도쿄의 한 잡지사에서, 지방의 작은 여관에서, 빵 공장에서 이름은 다르지만 그와 비슷한 생김새의 사내를 만난 이들이 있다. 문제는 이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이 만난 이가 살인자로 보이진 않았다는 것. 아니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 나서줬으며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눈으로는 자신들이 만난 이가 '가부라기 게이치'임을 확신하지만, 머리와 마음에서는 절대 동일인물일 수 없다고 부인한다.
그의 마지막 행선지는 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이오 요시코'가 있는 요양보호시설이다. 이곳에서 만난 '마이 사카이'는 모두에게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그에게 반한 나머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다가 일순간 얼어붙게된다.
책을 펼치자마자 잔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나 정신 못차리게 하더니 이 살인자가 탈옥까지 했단다. 어쩌려고?!!! 무려 620페이지짜린데, 도대체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 나가려나 궁금증 반 걱정스러운 마음 반으로 다음 장, 그 다음 장, 또 다음 장을 읽다보니 순식간에 이야기가 끝이 났다. 뿐만 아니다. 나도 앞서 소개됐던 이들처럼 '가부라기 게이치'에게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어려움에 처한 동료대신 부당한 회사로부터 상해위로금을 받아주고, 상처받은 이들의 편에 서서 힘이 돼주고, 사이비에 빠진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위치와 상황에 상관없이 언제나 점잖고 예의바르고 친절한 그를 누가 잔인한 살인자와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마음이 먹먹해지고, 그의 '정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 느껴졌다. 그를 도울 수 없는 나 자신의 무기력함이, 그를 향한 애틋한 마음과 안타까움이 뒤엉켜 두통이 밀려왔다.
그의 '정체'가 궁금하다면_보는 관점에 따라, 자신의 위치나 상황에 따라 분명 그의 '정체'가 달리 보일 것을 알기에 직접 만나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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