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넘어 도망친 21살 대학생 - 울면서 떠난 세계여행, 2년의 방황 끝에 꿈을 찾다, 2024년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홍시은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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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멋대로 흩날리는 머리카락, 편하지 않은 것은 어느 것도 걸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옷차림, 기능에만 충실하겠다는 기물들, 멀리 보이는 낡고 거대한 피라미드와 고집 센 자아가 느껴지는 뒷모습이 어우러진 표지가 묘하다. 21살 대학생이 학교에서 도망쳐 울면서 세계여행을 떠난 2년간의 이야기를 두고, 책에는 자랑스럽게 2024년 청소년 교양도서 추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것 또한 묘하다.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진학을 하라고 목표를 쥐어주었다가 이제는 꿈을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이 묘한 궁금증을 다 읽고 나면 납득할 수 있을까. 

 " 반대로 나는 몸뚱이에서 터져 나오는 실을 뜯어내는 데에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모든 강의가 비대면으로 전환된 이후 얄팍했던 의지마저 박살이 났다. 나는 어떠한 열정도 느끼지 못했다. 강의를 듣는 것도, 책을 펴는 것도, 심지어 의미 없이 숨을 쉬고 있는 것조차 귀찮았다. 하지만 학업을 쉽게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두려움이었다.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은 두려움, 사회에서 버려지고 싶지 않은 두려움, 뒤처지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결국, 용기를 내어 학교를 도망쳐 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1" 

 그런 의문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이 '떠남'에 대한 이유를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세상을 마주보고 사람을 경험하고 실수와 실패에 부딪혀봐야 할, 성숙의 거리감을 코로나에 빼앗긴 세대를 조금쯤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타인을 NPC처럼 취급한다, 마땅한 대답이나 반응없이 상대방을 응시하기만 한다, 마스크를 벗는 것에 민감하다 등등 요즘 MZ라는 말로 뭉뚱그려 버렸던 세대의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어본 듯 했다. 게다가 다들 문을 닫고 더욱 안으로 고립되기를 힘썼던 코로나 시기에 떠난 여행이라니 사람이 사라지고 시간이 멈춘 듯한 관광지들을 오롯이 차지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떠날만 했구나 이해가 됐다.   

 아프리카에서 보냈던 시간들 중에 춤에 대한 이야기(90)는 꽤나 공감도 되고 감동적이었다. 부족함을 내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함께이고 싶어하는 마음 모두가 이해가 됐다. 무심히 한 말을 꼭 지키려는 카툴라(109)를 통해 그동안 뿌려두었던 빈말들을 반성하기도 했다.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이 다이버가 되기 위해 회사 밖으로 뛰쳐나간 적이 있는데 그가 말했던 '다합(115)'이라는 곳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서야 이해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인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비겁하지만 그 '인도스러움'을 보며 나는 가지 않을/못할 그 곳을 누군가 대신 경험해서 알려준다는 점이 좋았다. 세상 가기 어려울만한 여행지를 골라다닌 저자 덕분에 열정과 기운 가득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전설이 된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원래는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처럼, 그의 도전은 때로 너무하다시피 무모하다. 특히 비자가 없는 상태에서 우간다에 입국하려고 한 시도나 숙소없이 밤길을 걷다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재워달라고 했다는 주항의 일화(126)는, 게다가 무지와 무례를 포용해준 상대의 선의와 예외적 경우를 두고 '우리가 경험하는 기적의 갯수는 얼마만큼 무모한 세상에 닿았느냐가 결정한다며 최악의 결과를 예상하고 책임질 용기가 있다면 몇 번이고 기적에 닿을 때까지 몸을 던져도 된다(49)'며 말을 맺는 부분은 어리석다고 여겨졌다. 낯선 나라에서 책임져야 할 최악의 결과가 대체 무엇일줄 알고. 안전하게 최선을 다해 준비해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자기 생에 주어진 시간과 젊음도 아껴야 한다. 

 " 세상에 없으면 안 되는 것은 없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것들마저 일상에서 비롯된 착각일 수도 있다. 74" 

 어느날 갑자기 자유를 꿈꾸며 세상 밖으로 뛰쳐 나가는 젊음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흔하다. 솔직하자면 '낭만'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그것이 더이상 특별하거나 고유하지는 않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고 체력이 고갈되면서 일상을 충실히 쌓아가는 사람들의 꾸준함에 더 매혹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도망이 마주보기보다 더 쉽다는 것을 삶의 앞으로 끌려나갈 때마다 느꼈다. 하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도 좋다. 도망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시간을 갖는다는 건 젊음의 특권 아니겠는가. 젊음들에게는 시간이 많고 때로 서툴긴해도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을만큼 유연하다. 그가 만난 사람들, 경험했던 비일상, 느꼈던 감정들이 가슴 속에 오랜 시간동안 남아 새로운 도전을 위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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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연금저축으로 1억 모으기 - 연금저축, IRP, ISA 절세삼총사와 ETF를 활용한 연금부자 시크릿
미즈쑤(김수연)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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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성을 가장 앞에 두고 생각하는 성향인데다 자산 관리에 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이 주식이나 코인으로 돈을 벌었다고 해도 '좋겠다, 부럽다'고만 할 뿐 직접 시도해 본 적은 없다. 처음 카드를 만들 적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쓸 수 있는 금액 이상의 소비를 해보지도 않았다. 필요할 때 없으면 사람을 가장 아쉽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돈이고, 세상 내 마음대로 되는 것들이 그리 많지 않은데 나의 소득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그나마 내 계획과 영향 아래에서 조절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였다. 이렇게 잔잔히 흘러가는 경제 생활 속에서 하나의 변수가 있다면 바로 노후다. 우리사회는 갈수록 더 젊은 나이에 인력을 교체하고 있고, 사람들의 기대 수명은 갈수록 연장되어 간다. '지금'은 괜찮지만 '앞으로'의 생활도 계속 괜찮을 수 있을까? 이런 불안이 고개를 들 무렵 '직장인 연금저축으로 1억 모으기'를 읽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1억을 모으겠다는 목표나 의지는 없었다. 모으는 건 나중에 하고 우선은 빚이나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컸는데 읽다보니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되는 거 아닐까 마음이 움직인다. 경제나 자산 관리 같은 분야에 대해서는 백지나 다름없이 아는 것이 없어서 읽다가 몇번이나 잠드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잘 읽혀서 조금 들여다보다 보니 몇 장이나 페이지가 넘어가 있었다. 멋모르고 삼성전자 주식을 사모으던 경험부터 너무나도 화제가 됐던 '10만 전자' 주식 바람이 휩쓸었던 때까지 이어지는 내용이 자연스럽고 흥미진진해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기 시작했다. 카드 명세서를 보면서 이걸 다 누가 썼나 확인해보는 것도, 언제까지 지금의 수입이 지속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공감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주제들이었다. 굉장히 솔직하게 '괜찮은 척'했던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드러냈는데 뭘 그렇게까지 싶으면서도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전문 용어가 나오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싶어진다. 특히 IRP로 세액 공제가 되는 투자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말정산도 대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는 점이 보수적인 예비 투자자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삼전 주식 때도 그렇지만, 연금저축 한도 700만원을 채우기 위해 모아둔 액세서리를 팔던 부분에서는 당시에 비해 무섭도록 오른 금 가격과 앞으로의 정세가 불확실하니 금을 안전자산으로 보유해두는 것에 대해서 비교해보게 되기도 했다. 물론 저자는 내가 이렇게 재고 따지는 동안 더 열심히 새로운 자산 관리 종목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때로는 성급히 가입한 상품을 섣불리 해지하기도 하면서. 자산 관리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기도 하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을 담아내고 소소한 일상을 '투자에 도움 되는 뚜벅이 직장인의 습관(126)' 같은 내용에서 마치 글로 보는 브이로그처럼 소개하기도 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열심히 발전시켜 나간 정보를 다 공개해도 괜찮을까 궁금할만큼 열심히 정보를 알려준다. ETF 투자 상품의 목록을 줄줄이 실어 놓기도 하고 연금저축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한 대상으로 나눠 알려준다. 책을 통해 ISA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되었는데 어떤 장점이 있는지 하나씩 꼽아가며 소개하고, 직접 얼마의 금액으로 어느 기간동안 투자해서 어떻게 공제를 받을 수 있는지 '숫자'로 보여주니 더 관심이 가게 된다. 특히 '아껴서' 투자하는 꾸미지 않은 실생활을 보여주며 관리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투자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자연스럽게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점이 좋게 보였다. 자산 관리에 대해 잘 모르지만 리스크가 적고, 연말정산 세액공제가 되는 투자를 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첫 시작으로 삼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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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내가 원한 것
서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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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가 잠깐 멈추고 책 날개를 들추었다. 작가에 대해 적힌 소개는 몇 줄 뿐이라 1부를 읽으며 이 사람, 뭐지? 왜 귀엽지? 생각한다. 작가에게 여름은 사랑과 동의어인 것일까. 어떻게 이토록 사랑에 진심일까. 멀거니 타인의 입에 들어갔다 천천히 녹아내리는 사탕을 지켜보는 기분이 든다. 사람이, 연애가, 사랑도 너무 좋아서 어디에든지 걔가 어제, 우리 오늘, 나 내일 하고 적어 올리고 싶어하는 친구 같기도 하다. 달겠지, 싶으면서 누군가의 내밀한 것을 어쩔 수 없이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민망함도 있다. 

 오차즈케(69)에 대한 얘기는 제목도 눈에 들어왔지만, 그 내용이 생리적인 거부감을 들게 한다. 찌개 냄비에 숟가락을 담구기를 어색해하지 않던 시절을 보내왔으면서, 아직도 팥빙수는 앞접시 없이 공용으로 퍼먹으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와 한 음식을 공유하는 일이 불편해졌다. 먹다 남긴 오차즈케를 맛보면서 상대의 '엄마나 자식(70)'이라도 된 것 같아 좋았다는 말에, 이 대책없는 사랑 중독자에게 머리를 내저으며 나와 타인 사이의 거리감을 헤아린다. 이제 더이상 그렇게 할 수 없고,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얼마 전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를 읽을 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재능이 필요하다는 문구를 봤다. 이 산문집의 내용이 대부분 작가의 삶 안에서 자라나온 것이 맞다면 그 재능이 얼마나 넘치게 가득한 사람인 것일까. 애정이 가는 상대의 싸이월드 " 아이디를 뭘로 해놓았는지, 미니홈피 색깔은 어떻게 설정해놓았는지, 배경음악은 어떤 건지 그런 것을 아는 게 내 인생에는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91" 말하는 절박함이 신기하고 재밌어 보였다. 1부에서 이렇게 큰 자극을 느끼고 나니 2부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쉽다. 과일이나 음악, 여름에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단상은 연인들에 비해서는 덜 뜨겁다. 

 " 친구들은 내 집에서 신기하게 움직인다. 내가 이 공간을 쓰지 않는 방식으로 쓴다. 233"는 문장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2부에서 다소 식은 긴장감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타인이 내 공간 안에 있을 때 느끼던 불편함에는 바로 이런 낯섦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섬세함이 예리함으로도 바뀌는구나, 감탄했다. " 나보다 몇 살 많은 사람을 두고, "걔 잘 지낸대? 정헌이 착했는데" 하고 말하는 것은 어린 시절에 만나봤던 사람들끼리만 가능한 특별 대우다. 241" 같은 말버릇도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게 될만큼 놀랐다가,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게 여기도 적용이 되던가 입술을 말아 물었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멋대로 거리를 재가는 동안 금새 마지막 장이 되고만다. 여름 저녁 차가운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잡은 책은 순식간에 다 읽게 된다. 

 비슷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언급되고 있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헤어질 결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하이퍼나이프], [행인] 같은 것들이 하나씩 겹쳐질 때마다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다른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작가가 꽤나 공들여 소개한 [워터 릴리스]를 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모르고 지나친 영화 안에 이렇게 얄궂은 관계(52)가 있다고. 그런데 왜 나는 몰랐었지, 아쉬웠는데 다행이다, 웨이브에 있었다. 같은 것을 공유한 목록이 한 줄 더 채워지고, 그럼 책을 읽을 때보다 83분 정도 더 겹쳐지는 부분이 하나 생겨날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과정, 나를 대신해 여름을 하루 더 좋아해 줄 사람을 알아가는 감각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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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의 눈
토마 슐레세 지음, 위효정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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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의 눈'은 실명의 위협이라는 불안을 품은 동시에 삶과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색으로 채워진 깊은 애정과 신뢰가 담겨 있다.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아무 전조도 없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나의 눈은 63분간 기능을 멈춘다. "엄마, 온통 까매요! (11)" 10월의 일요일, '그냥 그렇게' 열 살 소녀의 눈이 잠시간 멀었다. 원인도 해결 방안도 알 수 없이 언제 또 같은 문제가 얼마나 길게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나의 부모님은 모나가 가장 믿고 따르는 할아버지 앙리에게-모나는 하비라고 부르는- 매주 수요일마다 아동정신의학과를 함께 통원해주길 부탁한다. 사랑하는 손녀를 위해 앙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앙리와 모나 둘만의 비밀스럽고 특별한 상담치료가 시작된다.  

 " 할아버지는 계획을 세웠다. ...... 일주일에 한 번, 한결같이, 그는 모나의 손을 잡고 미술관으로 가 작품 하나를, 단 하나의 작품만을 바라보게 할 것이다. 처음에는 색과 선이 펼쳐내는 무한한 진미가 손녀의 마음을 꿰뚫을 수 있도록 말없이 오래 바라보리라. 그런 뒤에는 시각적 희열의 단계를 지나 예술가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삶에 대해 말해주는지, 예술가들이 얼마나 삶을 빛나게 해주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말로 풀어내리라. 31" 

 이들이 일주일에 하루, 딱 한 점씩 살펴보기로 한 예술 작품들을 독자는 책의 뒷편에서 사진으로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각 단락에서 작품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면 그들처럼 똑같이 책의 뒷부분으로 넘어가 가능한 오래도록 면밀하고 주의깊게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머리속으로 여유가 된다면 종이에 떠오르는 감상, 의문, 사소한 어떤 것들이라도 간단히 적어본 뒤에 다시 그 둘의 대화로 돌아와 조용히 들어보자. 내 감상과 같거나 다른 점, 더 확대된 서사나 비어있는 의문들을 따로 채워가며 읽어나간다면 사진으로 대신하는 작품 감상의 아쉬움같은 것은 털어내고 책의 두께만큼이나 충실한 감상이 될 것이다.  

 예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독자가 이 두툼한 두께의 책을 앞에 두고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앙리는 모나-와 독자-를 위해 충분히 쉽게 시대와 문화를 통한 작품의 배경과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다. 어린아이 대하듯 생략하거나 꾸미지 않았는데 책에서는 이를 앙리가 '모나를 존중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이는 더 폭넓은 층의 독자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장치로 다가온다. 열 살 아이를 대상으로 한 내용이라고 무시할 수 없이, 때로 모나가 이해하고 감상한 것보다 더 얕게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을 절감하며 읽게 되는데 " 흔한 생각과는 달리 예술의 깊이를 뚫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건 냉큼 찾아드는 열락이 아니라 지루한 연습이라는 것을. 39" 독자도 함께 깨우친다. 

 모나와 앙리가 일주일에 한 번 하나의 그림을 살펴보는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모나는 열 한 살이 되고, 친구 릴리와의 이별을 경험하기도 하고, 신경 쓰이지만 마음도 쓰이게 하는 남학생을 의식하기도 하고, 오르셰의 학예사 엘렌과 새로운 만남을 갖기도 하고, 경영난에 빠져 알콜에 의존하는 아빠를 살피기도 하고, 최면 치료를 통해 내면에 도사린 줄 하나(401)를 파헤치기도 하며 천천히 성장해나간다. "계속 나아가야 한다. 모든 것이 덧없다는 생각에 덴 가슴을 진정시키고 모나는 수긍했다. 그래, 계속 나아가야 하는 거였다. 247" 어린 아이의 유년 시절이 하나둘 천진함을 벗어가는 과정이 조금은 슬픈 색채를 띄며 성숙해질 때마다 쌉쌀하고 아린 느낌을 받았다. 

 마침내 52번의 감상이 끝나고 난 뒤, 책을 덮으며 묘한 감상에 사로잡힌다. "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모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자기가 들은 것에서 스스로 메시지를 끌어낸 뒤 할아버지에게 그걸 따르라고 권했다. 앙리는 지금 눈앞에서 놀라운 변혁이 이뤄지고 있음을 인지했다. 그는 현기증에 사로잡혔다. 470" 앙리가 느꼈을 그 현기증에 가까운 감각, 모나의 성장 뿐 아니라 책을 읽는 잠깐의 시간동안 마치 52주의 시간을 순식간에 겪어낸 듯한 어지러움을 공유한다. 처음엔 시련을 이겨내며 예술의 아름다움과 함께 성숙해가는 소녀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라 기대했는데, 한 번 더 비틀어 새로운 세상으로 발돋움하는 고통스럽지만 빛나는 성장과정을 세심하게 담아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모나의 눈'이 어른들에게는 물론, 예민한 감수성으로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뜨는 시기의 아동청소년들에게도 인상깊은 책이 되어주리라 믿으며 추천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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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5
박지영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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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죄다 쓰레기였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결국엔 쓰레기로 판명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설마 나도. 그러나 상관없었다. 이런 것은 다 맥거핀에 불과하다고, 그때의 복미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40" 

 솔직하자면,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를 보자마자 읽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보고 웃고 싶었다. 덕질하던 최애의 병크에 현타를 맞고 방황하던 그녀가 결국 스스로 덕질의 대상이 되고자한다는 내용이, 직접 자신의 팬클럽을 만들고 팬이 복미영에게 입덕하는게 아니라 복미영이 팬을 선택해 가입시키는 전례없는 헤드헌팅 방식으로 운영하는 내용이 척 봐도 웃겼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복미영을 '그래도 되는 사람(165)'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며 공감도 하고, 알량한 훈수도 좀 두고, 못내 응원해보고 싶었다. 덕질만 하기엔 너무나 두툼한 두께를 보고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 안에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 1이 아닌 2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을. 

 " 김지은에게는 아무 관계없는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거나 일방적인 애정을 쏟는 재능이 부족했다. 그런 건 확실히 재능이었다. 52" 

 복미영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처음, 나는 가볍게 낄낄 댔고 무방비하게 허를 찔렸다. 사실 나는 한번도 누군가의 팬이었던 적이 없다. 적당히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척 했지만 한번도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응원해본 적이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적당히 가장 인기많은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사실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열정이 부족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것도 맞고. 음원이 잘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컴백하면 좋고 해체하면 안됐고 흐지부지했다. 늘 모든걸 적당히만 좋아하게 되는데, 열정과 애정을 위장하려 해봐도 남들처럼은 잘 안됐다. 그런 나와 비슷한 지은의 등장에 놀랐다. 이것도 재능이라고 볼 수 있는 영역이구나.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감정이 부족한 것보다는 재능이 없는 편이 훨씬 나으니까. 

 이 마음 편해짐의 다른 방식으로 미영씨는 침을 뱉었던 것일까. 미영씨의 침뱉기가 볼 때마다 당황스러웠는데,-아마 미영씨와 연인도 친구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은조의 손을 놓은 뒤로 미영씨의 관계맺기가 일그러진 형태, 상처의 모양이라 생각하니, 아니 그래도 이건 안된다. '재능'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미영씨의 침뱉기는 넘어설 수 없는 극복이 되질 않는 입덕할 수 없는 사유였다. 차라리 미영씨가 그냥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더라면 이 요상한 팬클럽 흥망사를 더 가볍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미영씨를 아낄 수는 없었어도 지은을 바라보며 점점 가까워졌다. 은수이모를 버리려는 지은의 결심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그럴 수 있다'고 마음 속에서 은연 중 동조하는 자신을 깨닫고, 사실 난 재능이 없는게 아니라 감정이 부족한 것이 맞나보다고 생각했다. 

 " 그렇게 불온하고 위험한 마음은 우리를 미친년으로 만들고야 말 거였다. 복미영은 미치고 싶지 않았다. 195" 

 베로니카와 은수이모가 만나고 가까워지는 동안 베로니카가 있는 순례 씨의 국수집까지 운전을 해서 은수이모를 데려다주었던 미영씨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침을 뱉어도 피할 수 없던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누군가를 떠넘기려는/버리려는 것이었을까. 책임지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버리기 위해, '돌봄'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아냈던 이모를 돌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지은의 두려움과 같았을까. 미영씨와 지은, 은수이모와 베로니카의 관계를 통해 지난 '2013년 40년 동거한 여고동창의 비극적 죽음[SBS 2013.10.31]'을 다룬 기사의 내용을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미영씨의 삶에 지은이 끼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누구의 이야기도 누가 주인공인 것도 아니라 누구나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저 각자의 삶에서 순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얽혀있었다.  

 단순한 팬질 분투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w의 병크와 미영씨의 탈덕은 하나의 사건일 뿐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안에는 더 큰 흐름이 있었다. 뜬구름 같은 미영씨의 말에 귀 기울이다보니 어느새 입안에 쓴 침이 고여 자꾸만 침을 뱉고 싶어진다.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와 함께 도착한 굿즈들의 의미를 그제서야 다시 본다. 쏠쏠히 마련된 팬클럽을 위한 역조공은 관념적 버리기 아티스트였던 복미영씨를 강조하고 있었다. 그녀가 버렸던 것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처지에, 깜냥에, 네, 안, 못. 미영씨는 병크 터뜨린 최애가 아니라 이렇게 삶에서 하나씩 모나게 튀어나와 마음을 찌르던 것들을 하나씩 버리고 고치며 '그래도 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 다른 사람에게 우습게 보인다는 건 뭔가 다정하고 귀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스워지고 싶다. 더 우스워지고 싶다. 뜬금없이 그런 마음도 들었다. 97" 미영씨의 팬이 될 수는 없었지만, 잠시나마 그 우스움에 기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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