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F 지음, 송아람 그림, 이홍이 옮김 / 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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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울 때는 실컷 외로워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투정을 부렸어야 했다. 추억이란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때 더 부끄러운 짓을 했었더라면 지금보다 덜 후회하고 살고 있을 것이다. p.201 "

 

 이 책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을 모르겠다기 보다는 일본 사람들을 모르겠다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어떤 부분에서는 요즘말로 하는 인스타감성 가득한 내용을 써내리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나이 든 남자를 공략하는 방법' 같은 걸 들이민다. 그런 방법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는걸까. 이미 여기서 더 나이 든 남자를 만났다가는 금새 병수발 들게 생긴 내 늙음 탓에 따라가지 못하는 걸까. 익명의 SNS 작가고 아직 머리카락이 까맣다길래 굉장히 트렌디한 문장들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무리 그렇더래도 이건 좀 촌스러운데 싶은 내용들이 지뢰처럼 등장해서 깜짝깜짝 놀래키곤 한다.

 

 우리가 원래 인터넷에 쓰는 글들이 다 그렇듯 전에 했던 요지의 내용과 나중에 나오는 내용이 서로 다르게 부딪치기도 한다. 몇 개의 내용을 읽으면서 일본에서 넘어왔다는 '여자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는데 이 책에서도 여자력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그것도 '여자력이란 말을 없애'자는 내용으로 등장해서 당황스러웠다. 남자 꼬시는 법이나, 남자 점수 매기기, 속마음 번역하기, 악녀되기 등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잡지책같은 키치한 면모를 자랑하다 갑자기 여자력은 필요없어! 너는 그냥 너 자신이 되면 돼! 하고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제대로 된 말이 나오는가 싶어도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뜨악해지곤 한다.

 

 처음엔 감상적인 내용이 많길래 여자가 작가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남자였다. 뒤늦게 알아차린게 이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특히 백엔짜리 반지 얘기같은 건 전형적인 감성이라 나도 모르게 김건모의 '미안해요'라는 노래를 싫어한다는 한 희극인의 일갈을 떠올렸다. 혹은 문방구 반지 커플링 같은 그런 인터넷 괴담들을. 앞서서 남자에 대해 분석하고 점수매긴 글들이 왜 이렇게 나왔나 했더니 남자어 번역 같은 느낌으로 나름 객관과 주관을 섞어낸 것이었다. 코스모폴리탄 같은 잡지를 한 5년 정도는 정기 구독한 여자인줄 알았더니 90년대에 태어난 우리들이란 표현을 쓰는 애늙은이였다.

 

 다행이도 공감대가 없어 뻘쭘한 이 어색함은 연애에 관한 부분에서 특히 강조되었을 뿐이었는지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서는 약간씩 흥미를 회복해갈 수 있었다. 친구와 만나 신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내놓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긴다던지, SNS로 애매한 저격글을 올리는 일 같은 사소함에 공감이 됐다. 어찌보면 본문의 내용보다 삽화에 더 눈길이 갔다. 송아람 작가가 그린 이 삽화가 내용까지 원작가의 확인을 통해서 담아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짧으면서도 직접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치사한 방법이고 남들 앞에서는 잘 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만화나오는 부분만 먼저 골라가며 읽었다.

 

 이 책이 18만부 넘게 팔리고 품귀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흥했다는 문구에 문득 '언어의 온도'를 떠올렸다. 결이 좀 다르지만 가진 것 이상의 관심을 받았다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혹 '언어의 온도'를 좋게 읽었다면 이 책도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글마다 호불호가 널을 뛰었기 때문에 무엇을 기대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지 가늠이 잘 오지 않는다. 불편을 감수하고 기꺼이 예민한 감각을 가졌다거나 말장난을 해놓은 것 같은 SNS 감성은 원치 않는다면 마음에 안들겠지만, 에세이를 좋아하고 킬링타임용 가벼운 책을 찾는다면 혹은 늦은밤 감성에 취해있을때 곁들이고 싶은 책이 있다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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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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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인 모리 마리에 대한 짧은 소개글을 초입에 읽고 어쩐지 기가 질렸다. 짧은 문장들만 봤을 때는 '우리는 같은 과'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 그녀와 나는 너무나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홍차와 장미의 나날"로 표현되는 사람을 가성비와 포기의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담아낼 수 있겠느냔 말이다. 집안이 항상 어질러져 있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비워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 서로 다른 사람들. 플라스틱 컵을 쓰지 않지만 유리컵으로 분위기를 내는, 스테인레스 컵으로 보온을 강조하는 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맞닿을 지점이 있을까.

 

 " 괜찮아, 먹고 싶은 건 매일 있으니까! " "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소설이 안 써진다 "  "좀 곤란한 인생이지만 잘 먹겠습니다 " 와 같은 문구들은 어머, 당신은 나의 정신적 쌍둥이 아닌가요 붙들고 물어보고 싶을 만큼 호감이 갔다. 때때로 일기처럼 쓰던 블로그에 한 꼭지 정도는 뭘 먹었거나, 뭘 먹고 싶다는 얘기가 꼭꼭 들어갔던만큼 핸드폰 사진첩에 온통 먹을 것, 먹을 방법, 먹은 것 사진들이 폴더별로 정리되어 있는 만큼 나름 미식의 세계에 들어가고자 열심히 발돋움하고 있는 만큼 '홍차와 장미의 나날'이 궁금했고 읽어보고도 싶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이 사람, 나와는 안 맞는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에세이니만큼 저자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게 작용했다. 세대도 차이지고, 나라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실제로 만났어도 성향이 너무나 달랐을거라 생각되는 젠체하는 듯한 표현방식이 시선을 냉담하게 만들었다. 유복한 생활을 한 탓에 프랑스에서도 생활하고 했겠지만 '일본은 아시아의 유럽'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태도나 "파리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미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p.38) " , " 나는 구두쇠에 욕심쟁이인 프랑스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p.227) "같은 표현은 '일본은 아시아의 그냥 아시아! 아시아 섬나라 사람!' 이라고 어딘가를 향해 소리치고 싶게 만드는 면이 있다.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녀의 솔직함. 그것도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독이었다. 주로 과거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것과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초면에 시종일관 천연덕스럽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을 좋아해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 긴자의 가게에도 취향이 고급스러운 사람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멍청이 직원만 넘쳐나고 있는 모양이니 p.157 " 하는 부분이나 " 나는 엄청나게 애지중지 자란 아가씨라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엌 쪽으로 가서 하녀에게 "얼굴 씻을 더운물"하고 말씀하신다. 그런 다음 세면대가 딸린 삼첩방에서 더운물로 얼굴을 씻으시고 간식을 드시는 순서였다. p.131 " 이런 내용을 읽으면 떨떠름해진다.

 

 특히 이 삼첩방 더운물이 나오는 '애지중지 자란 아가씨' 단락의 내용에서는 그 앞에 "조센아메 (조선엿)" 라는 음식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시기적으로 '우리나라가 일제의 수탈에 고통을 받고~' 하는 생각이 들면 내 안에 자리잡은 독립투사의 혼이 불쑥 솟구쳐오른다. 그럼 나도 모르게 "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육첩방은 남의 나라 (쉽게 쓰여진 시_윤동주) " 하고 떠올리며 마음이 문득 고요해지는 것이다. 너무 나갔나 싶지만, 혹 누군가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모리 마리라는 사람이 밉살스럽기에 이러저러한 불평을 늘어놨지만, 다른 사람들이 평하는 그런데도 밉지 않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는 3 퍼센트 정도쯤은 알 것도 같다. 사랑만 받고 자라 물색없고 솔직하기만 한 사람이랄까. 의도없이 단지 느낀 그대로를 말하기 때문에 가깝고 싶진 않아도 나쁘게 평할 수는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대체적으로 나는 앞으로 글을 쓰거나 말할 때 저렇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때로는 그 단호하고 확고한 취향을 에둘러말하지 않는 당당함이 부럽기도 했다. 굉장히 호감가는 첫인상이지만 의외로 호불호가 갈리는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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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귤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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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귤'을 읽는 동안 두통이 일었다. 그 두통이 '청귤'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지, 날이 추워지면서 몸상태가 난조를 보이는 까닭인지, 아니면 책을 읽기 싫었던 내가 만들어 낸 두통인지 모를 일이다. '청귤'의 탓이 아니더라도 '청귤'에는 두통의 책임소재를 물을만한 요소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어쩌면 근래의 정신이 순두부처럼 무뎌져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청귤'의 표지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제발 미숙하고 일러 청량하고 싱그러운 이야기가 있으라 생각했는데, 그 안에서 시큼하고 씁쓰레한 것만 흘러나왔다. 머리도 아프고 뒷맛도 좋지 않아 책을 읽고 나서 공연히 개수대에 쌓여있던 설거지를 해보기도 하고, 잠깐 밖으로 나가 커피전문점에 다녀와볼까 생각해보다 냉장고 깊숙이 넣어둔 술을 한 캔 꺼내었다. 시원하고 짜릿한 것이 목을 따라 내려가자 그제야 좀 '청귤'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가 생겼다.

 

 사실 '로레나'라는 첫 시작부터 어딘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네일을 하는 로레나의 모습을 읽으며 얼마 전 휴가로 다녀온 베트남에서 받은 마사지가 떠올랐다. 나에게 처음 마사지를 해준 사람은 한눈에 봐도 어리고 체구가 작은 소녀였다. 베트남도 마사지도 처음이라 알아보며 '내가 마사지를 잘 받을 수 있을까'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마사지를 받아야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동남아 가면 1 일 3 마사지도 받는대더라며 불편함을 다독이며 마사지를 받았었다. 그런데 '청귤' 안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외면했던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던 마음을 도망가지도 못하고 마주하고 만 것이다. 페디큐어를 하겠다며 로레나에게 발을 턱 들이민 큰 삼촌이 된 느낌이었다.  

 

 그 뒤로도 '청귤'은 내 안에 있던 불편함의 고리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싶게 하나씩 들이밀었다. 어릴 때 앓은 뇌수막염으로 사춘기시절까지 사시가 있던 혜정의 이야기는 어린시절 사시가 있었던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아이는 한쪽눈에 하얀 의료용 안대를 하고 다녔는데, 사시가 꽤 심해 초등학교 무렵 수술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애의 눈이 교정되는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한동안 조용한 따돌림을 당했다. 처음엔 그 아이의 눈이 상대방을 째려보는 것 같아서, 그 뒤로는 남들과는 달라서. 그 아이가 이사를 가기 전까지 나는 꽤 절친한 그애의 친구였는데, 수많은 추억이 생겼어도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것은 어린시절 혼자 놀이터 모래밭에서 놀고 있던 그애의 모습이었다.

 

 '청귤'을 읽으며 이상하게도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준다기 보다는 내 안에 흩어져있던 조각들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내볼까도 싶었지만 책을 읽고 너무 내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나 역시도 좋은 이야기꾼은 아니니까. 소설집 안의 모든 내용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고 기대보다 무거웠지만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런 계기없이는 좀처럼 떠올리지 않을 것들을 문득 꺼내보게 되기도 했고. 흐린 가을날에 읽어볼만한 책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더 궁금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내 이야기만 늘어놓은 감상평이 되었지만, 이쪽은 진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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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산다는 것 - 불필요한 감정에 의연해지는 삶의 태도
양창순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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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계절을 지나오는 동안 반대로 몇몇의 인간관계를 잃으며/정리하며 정서적으로는 차갑고 서늘한 시련을 맞았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나왔고 가볍고 거추장스러운 인맥은 이미 다 정리했다고 여겼는데, 이제서야 찾아온 소원함은 의외였고 뜻밖의 상실이었다. 섭하고 혼란한 마음에 지인들을 붙잡고 토로해보기도 하고 얼마간을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어떤 의미로 받아들어야 하지' 고민해보았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에서도 서로의 경중이 달랐던 탓이고 나의 욕심이었던 탓이지 다른 결론은 없었다. 소란했던 마음도 계절에 따라 가라앉고 이제 막 안과 밖 온도가 반전되어 가려는 시기에 이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만나게 되었다. 어떤 부분은 그렇구나 싶고 어떤 부분은 조금 아쉽구나 싶은 다소 심심한, 이 책의 표현을 빌자면 담백한 책이다.

 

 고민의 터널을 지나오고 난 뒤이고 평소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범위에서의 내용이라 책을 읽으며 큰 감흥은 없었다. 다만 지금 막 인간관계로 괴로움을 겪고 있거나 삶이 너무 번잡하여 방향성을 찾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는 2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마음 결을 정리할 틈은 되어 줄 것 같다. 머리로는 다 아는 내용이어도 괴로울 때는 생각이 마음까지 가서 닿기 오래 걸릴 때도 있고, 평소보다 감정의 낙폭이 크니 책이 주는 영향도 더 크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이 있거나 이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도 비슷한 결의 흐름으로 공감하며 읽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몇 부분이 '하얀 개 소니아'일 것으로 추정되는 소재가 짧게 등장하는데 다른 개의 이야기라면 어쩔 수 없지만, 알고 있는 소니아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게 설명되어 있었다. 주인 할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 까맣던 털이 하얗게 변해버린 리트리버 소니아의 이야기는 일본 티비 프로그램에 소개되고 책으로 나올 정도로 유명해서 몇번이고 찾아봤던 내용이다. 여기서도 까만 털이 하얗게 되고, 원반 장난감과 관련된 내용, 나중에 다시 털이 까맣게 돌아왔다는 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몇가지 요소가 비슷해 소니아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주요 골자를 뺀 내용이 달라 왜 이렇게 내용을 옮겼을까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p.175-176 4장 담백한 삶을 위한 마음 솔루션 중)

 

 그 외에도 1장의 첫 꼭지부터 '먹방'에 대한 언급이 눈에 들어왔다. " 그런 의미에서 나는 먹방의 유행이 일종의 '정신적 퇴행 현상'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덜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병이 나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 엄마부터 생각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p.25 1장 먹방과 스트레스, 담백함의 연결고리 중) " 앞뒤의 내용을 살펴 읽으며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마땅히 풀 다양한 방법이 없어 이를 위한 한 갈래로 먹방이 대두되었다는 요지로 전달하려는 뜻을 이해하긴 했지만 '정신적 퇴행 현상' 이라는 표현에 우선 깜짝 놀랐던 마음은 " 혼밥은 사회적 자폐"라는 표현을 봤을 때의 뜨악함을 연상시켰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핵심은 마음가짐을 담백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는 몇 해 전부터 열심히 유행해오던 미니멀라이프 적인 삶의 태도와 같다. 다만 이 담백함에 대한 방향성이 내부와 외부로 갈라진다. 인간관계든 물건이든 필요해서, 좋아서, 보여주려고, 욕심이 나서 같이 여러 이유로 더 많이 좋은 것으로만 가지려고 하기를 멈춘다. 그리고 가급적 비워내고, 내려놓으려 노력한다는 의도가 공통적이다. 하지만 욕망을 내려놓고 비워내는 일이 어디 쉬운가. 오히려 다른 저작물인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는 제목의 책에서 더 심리적인 친밀함을 느낀다. 12년에 까칠하게 살기로 했던 사람이 까칠과는 거리가 먼 담백한 삶을 이야기하는 약 6년 사이의 간극이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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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반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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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어가는 용기, 나이 든 '지금'을 행복하게 사는 용기란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아주 조금 바꾸는 용기인지도 모릅니다. _ p.93 4장 다시 살아갈 용기"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을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최근 대형 검색 포털 사이트의 내리막을 실감했을 때였다. 길게 풀어서 돌려말할 것 없이 '네이버'는 한 시대를 풍미한 검색 엔진이었다. 서로의 지식을 나눈다는 의미로 누구나 질문하고 답변할 수 있는 '지식인'이며, 개인 '블로그'에 사진과 정보를 빼곡히 올려놓은 글들로 정보를 검색하고 얻은 경험이 구세대라면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십대들은 이 정보의 창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초록창을 켜서 00하는 법 등을 검색했던 우리와 달리 구글과 유투브에 정보를 검색한단다. 다른 이유는 차치하고서라도 특히 게시글, 사용 방법 등을 설명해놓은 글을 보는 것보다 유투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는 방법을 선호한단다. 읽는 세대에서 보는 세대로 변화한 것이다. 학교 교실에 우리가 생각하는 칠판이 사라지고 대형 스크린이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변화는 분명하다. 덧붙여 과학시간에 공부한 뒤로 누군가 침을 튀기면 '아밀라아제 나왔어/묻었어' 하던 장난도 '아밀레이스'로 표기가 바뀌었단다. 그렇다면 '아이오딘'은 무엇일까? 구세대들이여, 세대차이를 느껴보라.

 

 신체적인 노화는 사실 스무살이 넘어가면서부터 해가 다르게 작년이랑 차이가 남을 서서히 느껴온터라 조금씩 늙어가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데, 정신적인 부분 요즘의 세태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느낄때면 타격이 크다.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쉽게 보편의 상황에서 어리둥절해지고 만다. 거리에서 어떤 여자가 혼잣말을 하길래 이상한 사람인가 생각했더니 줄이 없는 이어폰을 꼽고 있더라, 혹은 청소년들이 '문상' 있냐 가져왔냐 하는 말을 하길래 애들이 웬 문상을 하는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문화상품권의 줄임말이더라는 얘기는 우습지도 못한 일화가 됐다. 하다못해 편의점 간식도 'ㅇㄱㄹㅇ'이니 'ㅂㅂㅂㄱ'니 하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세상이니 더욱 그렇다. 세상의 속도에서 뒤쳐지며 생기는 이런 어리둥절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질 것이다. 책에서는 좀 더 먼 삶의 시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지만, 어찌됐든 책의 제목과 가까운 나이이다보니 조금씩 멀어지는 것들을 떠올리며 책을 읽었다.

 

 마음의 준비는 가볍게 시작했지만 책은 시종 진지한 어조로 노화와 간병,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소 고루한 면도 있다. 인생을 계절에 비유한 표현도 지나치게 익숙해서 큰 위안이나 전환이 되기 어렵고, 본인이 늦은 나이에도 한국어 배우기에 도전하고 있다는 내용이나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의 재활에 대한 내용 등은 의지에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어쩐지 멀게만 느껴진다. 나도 소소한 도전을 해야겠다기 보단 '대단하시네요' 하고 말아버리게 된다. 거기에 부모님의 나이듦에 관한 내용은 인상적이면서 안타까웠다. 고령화와 핵가족화를 넘어선 1인 가구의 증가 등으로 심화될 노인 간병 등의 문제를 인생의 한 부분으로 다룬 점에는 공감되었다. 그런데 간병으로서 오는 어려움을 "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생겼다'라고 생각해보(p.162) "자는 맺음은 매우 아쉽다. 물론 매우 옳은 말이고,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그 시간조차 소중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지만 실제적 간병 상황, 간병인에 대한 현실적 조언보다 못한 형이상학적인 위로의 말만 남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어지는 8장과 9장의 내용은 좀 더 계발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아쉬웠던 마음을 풀어가며 읽었다. 전체적인 내용보다 소제목들이 간결하고 핵심적이라는 인상이 남았다. 자기계발서여서인지, 일본저자 특유의 감성을 건드리려는 의미부여들 때문인지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큰 감흥을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계절도 가을이고, 올해도 벌써 다 끝나가고, 나는 한 살 더 늙는거고, 혹은 이제 곧 마흔 즈음이 되가고, 아니 이미 넘은지 오래고, 어쩐지 마음이 우울하고, 문득 살펴본 부모님 얼굴에서 주름을 더 발견했고, 갑자기 한숨도 나오는 것 같고, 날은 또 왜 이렇게 빨리 어두워지는지 모르겠는 마음이 자꾸만 불쑥 솟아나는 사람들은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어른이 되니까 하고싶은대로 하고 살고 좋다!거나, 가을이 되니까 붕어빵 사먹을 수 있어서 이득!이라거나, 할로윈, 크리스마스, 눈오는 날 제일 좋아! 등 약간의 긍정적임이 남은 사람들보다 인생의 황혼, 가을과 겨울이라는 계절, 한 해의 마무리가 아쉽기만 한 사람들에게 어쩌면 조금 공감을 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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