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의 밤 - 네덜란드 은손가락상 수상작
안나 볼츠 지음, 오승민 그림, 나현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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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이었지만 셋이 되었고, 우리가 넷이었다는 사실이 도움이 되었다는 도입부는 '터널의 밤'이 정해진 슬픔으로 갈 수 밖에 없음을 알려주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독일의 공습을 받고 있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죽음과 폐허가 된 일상이 담겨 있으리란 예감은 했지만 엘라와 로비, 제이, 크윈을 차례로 만나며 그 애들이 넷에서 셋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어리단 생각을 했다. 이 소년소녀들의 만나 함께 폭격을 버텨내는 상황은 만화 '세븐시즈'*를 떠올리게 했다.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는 2차 세계대전 - 우리는 이 슬픔과 고통을 우리의 것에 비추어 함께 이해해주는데, 반대로 우리의 슬픔과 고통이 저들에게 얼마나 이해받고 있는가를 떠올리면 씁쓸하다. 하켄크로이츠가 왜 티셔츠의 무늬로 사용되거나 의도되지 않은 배경으로도 소모되어서는 안되는지, 욱일기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인지하는 서양인들이 얼마나 될까. 얼마 전 읽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우리 것을 훔쳐가 이렇게 잘 보존하고 전시해놓은 나라에서 자신들의 것은 얼마나 더 귀히 다루겠는가**했던 문장이 떠올랐다. 자신들이 겪은 고통과 상실의 역사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이를 마땅히 함께 존중하고 분담하도록 하면서 같은 시기의 일본이 행한 침략과 착취, 비인도적 행위를 연결해내지는 못하는 점이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가 과거를 두고 어떤 반성과 교훈을 얻었던간에 전세계적으로 극우정당이 다시금 힘을 얻고 있고, '지나간 역사'로 일컬어지던 파시즘이 불길한 역사의 반복을 향해 그림자를 뻗어나가는 흐름을 보인다. 이미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들이 있고, 그 안에 우리와 같은 언어와 뿌리를 가진 사람들도 군인으로 생명을 빼앗으며 동시에 잃어가고 있다. 전쟁을 하고 있지 않은 나라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서로 이권을 놓고 다투며 갈등과 긴장의 양상이 흐르고 있다. 심지어 한 국가 안에서도 국민을 향해 총부리가 겨눠지고, 한 사람의 시민이 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서는 밤이 지났다. 평화를 말하는 모든 의미있는 것들 문학, 음악, 미디어, 선행, 생명까지도 차갑고 무력하게 느껴질 때 그래도 평범한 우리들은 이렇게 책을 읽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터널의 밤'은 그런 의미를 전해준다. 

마구간 소년이 많이 등장하고 강조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크윈의 귀족적인 면모를 상쇄해줄 인물이 아니라 새장161를 한번 더 드러나게 해주는 인물로 작용하는 부분이 좋았다. 

얼마 전에 영화를 한 편 봤는데, 굉장히 아름답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다. '화이트 버드'***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터널의 밤'과 배경, 인물이 비슷했다. 전쟁 상황에서 유대인인 여자주인공 사라가 독일군에게 끌려갈 위험에 처했을 때 남자주인공 줄리안과 그의 가족이 그녀를 돕는다. 줄리안 역시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하다. 줄리안은 예쁜 소녀인 사라를 짝사랑하고 있었지만 절름발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사라에게 자신의 이름조차 알리지 못했다. 이 짧은 소개만으로도 소아마비로 특수신발을 신고 다니는 엘라와 지나치게 잘생겨 땀냄새까지도 달콤한 소년 제이가 떠오를 것이다. '터널의 밤'을 감명깊게 읽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매료되었다면,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스크린으로 옮겨 환상적인 동화처럼 -그러나 그 슬픔을 찬연하게 담아낸 이 영화를 함께 감상하길 추천한다. 

*'세븐시즈, 타무라 유미'가 뭐냐면, 이 설명이 필요한 분은 그냥 보세요. 물론 저는 요즘 행복한 사이다 형식이 아니면 못보는 병에 걸려 감상을 중단하긴 했지만 괜찮은 만화입니다. '터널의 밤'은 특히 '겨울 팀'을 떠오르게 한다.
** 뺏어 온 것도 잘 보관하고 또 그 역사를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니 자기들 것에 대한 애착은 말할 나위도 없겠구나. 이미 많이 빼앗긴 우리들은 그나마 남은 것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지 돌이켜보아야 하겠군'하고 말이에요. 17. 서장 빠리에 오세요 중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창비
***화이트버드, 2025개봉 
동명 원작소설 '화이트 버드'와 같은 작가의 데뷔작 '아름다운 아이'가 각각 영화 '화이트 버드', '원더'로 만들어져 이어지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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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조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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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에서 신체 부상은 고통스럽다고 지각된다. 어떤 행동에 고통이 뒤따르면, 그 행동을 되풀이할 확률은 줄어든다. 그것은 우리가 처벌을 정의하는 방식일 뿐 아니라, 다윈주의적 의미에서 고통이 무엇을 위해 있는지도 설명한다. 부상은 종종 죽음, 따라서 번식 실패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신경계는 신체 부상을 고통스럽다고 정의한다. 207"

 해가 높이 떠올랐다. 그림자마저 짧아진 길에 서서 들어갈 곳을 찾는다. 어제 날이 흐려서였을까 좁은 화단과 붙은 도보 위로 말라버린 작은 지렁이들이 보인다. 어떤 것들은 언뜻 나뭇가지처럼 보인다. 횡단보도를 앞둔 삼거리 코너에서 아직은 죽지 않은, 그러나 고통스럽게 햇볕 아래에 꿈틀거리고 있는 지렁이를 발견한다. 15센치는 되어보인다. 근처에 떨어진 진짜 나뭇가지를 하나 찾는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나뭇가지가 닿을때마다 더 몸부림치는 지렁이를 들어올려 화단 풀숲에 던져 옮긴다. 지렁이와 나 사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은 알지 못한다. 저 지렁이는 살 수 있을까.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길 위에 느닷없이 놓여진 지렁이를 발견하고 문득 읽고 있던 '불멸의 유전자'를 떠올렸다. 지렁이에게 새겨진 "유전적 예측*"에 분명 햇빛은 피하고 습기와 양질의 토양을 좇으라는 본능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어떤 변수가 생겼던 것이기에 수많은 지렁이들이 본능에 반한 움직임을 보였을까. 길 위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이 환형동물의 오늘, 펠림프세스트+에 죽음 직전 다가온 나뭇가지와 초고속 이동에 대해서도 기록될 것인가.

 '불멸의 유전자'는 흥미롭지만 정말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책의 두께만큼이나 많은 분량도 분량이지만, 정보들을 읽어내는 일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생물에게서 발견되는 연결이 그 모든 인과가 진심으로 즐겁고 흥미로운 사람이 펴낸 책은 일반인에게 비슷한 흥미와 약간의 당황스러움도 전달한다. 고슴도치, 참돌고래, 가비알, 익티오사우루스, 작은개미핥기, 큰개미핥기, 천산갑, 아르마딜로, 가시두더지(106-110)에 이르기까지 머리뼈골격을 비교해보게 되리라 예상치 못했다. 물론 날다람쥐 친구들은(137) 귀여웠다. 

 읽는동안 사람에게서는 어떤 진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혁신**'이 각기 다른 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나타났듯이(125) 근래 각기 다른 나라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반목의 세계정세가 인류의 유전자에 새겨진 또다른 반복의 흔적이 아닐까. 비록 우리가 지난 두번의 세계적인 전쟁 이후 얻어진 교훈과 그 사이 더 발전했다고 믿은 문명과 교양에도 불구하고 세번째 세계적인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예상치 못했더라도 말이다.  

 또 하나는 하렘을 가지고 있는 일부 동물들의 비대칭(329)을 살펴보면서 시작되었다. 많은 수의 수컷들이 짝을 이루지 못하고 일부 선택된 수컷만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수 있다는 내용에서 현대사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음을 떠올렸다. 심지어 이 현상의 바탕은 앞에서 언급한 갈등 양상과 '계획 경제 유전***'의 일부 선택 방식을 여성에게 적용하는 것에서 그 영향을 미쳤다. 이 은밀한 반복이 어쩌면 재생산의 단절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미래와 인류에 대해 생각하면 회의적이지만, '불멸의 유전자'를 읽으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우리의 유전자들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기기 위한 선택을 하고 있을까,였다. 어쩌면 생존과 유전자의 전달에는 인간이 지닌 인지 관점에서의 납득 여부보다 뻐꾸기(317-325) 새끼의 벌어진 입에도 먹이를 떨구도록 프로그래밍 된 새의 경우가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저자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면 오늘날 이 '불멸성'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흥미로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충실한 시간이었다. 

 *"알에서 깨어날 때 이 도마뱀은 태양에 바짝 달궈진 모래와 돌의 세계에 있을 것이라는 유전적 예측을 하고 있었다. 그 유전적 예측에 어긋난다면 예를 들어 길을 잃어서 사막에서 골프장으로 들어간다면 지나가던 맹금류가 곧바로 낚아챌 것이다. 또는 세계 자체가 바뀌어서 그 유전적 예측이 틀렸음이 드러날 때에도 같은 운명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모든 유용한 예측은 적어도 통계적인 의미에서 미래가 과거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18"

**마찬가지로 인상적인 점은 한 동물이 유연관계가 없는 다른 동물을 세세한 부분까지 닮는다는 것이다. 양쪽이 같은 생활 방식으로 수렴되었기 때문이다. 매트 리들리는 [혁신에 대한 모든 것]에서 인류의 가장 위대한 혁신 중에는 각기 다른 나라의 창안자들이 서로가 한 일을 모른 채 독자적으로 중복해서 해낸 사례가 많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도 마찬가지다. 125 

***사려 깊은 계획 경제가 다윈주의적 수단을 통해서 출현하려면, 성비를 제어하는 유전자들의 자연 선택을 거쳐야 할 것이다. 불가능하지는 않다. 어떤 유전자가 수컷이 생산하는 X 정자 대 Y 정자의 수를 편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어떤 수컷 태아를 선택적으로 유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갓 태어난 수컷 새끼들을 굶겨 죽이고 선호하는 소수만을 키우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개의치 말자. 그냥 이 가상의 유전자를 계획 경제 유전자라고 하자. 흔히 생각하는 하향식 체계다. 332

+펠림프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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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와 왕국 알베르 카뮈 전집 개정판 4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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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지와 왕국'은 카뮈의 유일한 소설집이다. 총 6개의 단편이 실려있는 '적지와 왕국'의 독특한 제목은 부조리로 가득한 ‘적지’에서 자기만의 ‘왕국’을 좇는 현대인의 삶을 그린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제목이 가장 크게 와닿았던 두 작품이 [손님]과 [요나 혹은 작업 중인 예술가] 였다. 

 " 그는 불을 켜고 아랍인에게 식사를 갖다줬다. "자, 먹어." 아랍인은 전병 한 개를 집어 들고 부리나케 입으로 가져가다가 멈추었다. "너는?"하고 그는 말했다. "먼저 먹어. 나도 곧 먹지." 아랍인은 두툼한 입술이 약간 벌어지더니 잠시 망설였다. 이윽고 결심한 듯 전병을 덥석 깨물었다. 식사가 끝나자 아랍인은 교사를 건너다봤다. "네가 재판관이야?" "아니야. 내일까지 널 데리고 있을 거야." "왜, 그럼 나와 같이 식사하는 거지?" "배고파서." -손님 119"

 " "왜? 먹어." 
정우성 국수를 허겁지겁 먹는다. 함께 국수를 먹던 곽도원 수갑을 차고 불편하게 국수를 먹는 정우성을 본다. 
"손 줘봐." 
정우성의 수갑 한쪽을 풀어 자신의 팔에 채우는 곽도원.
"같은 편이다? 같은 편이야!" -영화 강철비 중"

 이 뒤로 이어지는 장면은 곽도원이 정우성의 팔에 남은 수갑마저 아예 풀어주는 모습이 나온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에는 이런 교류가 존재한다. 다뤼의 마음을 거북스럽게 했던 그 친밀감이 영화 [강철비]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는 아랍인을 바라보는 다뤼의 마음처럼, 분절된 세계의 두 사람이 연대와 고독을 보여주던 영화의 내용도 비슷한 결말로 흘러갔음은 우연일까. 

  " 그때까지 살아온 것에 비하면 사막이나 무덤 속처럼 느껴지는 이 희미한 정적,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는 스스로의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다락에까지 이르는 소리들은 그를 향해서 나는 것이었으면서도 이제는 그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가 홀로 죽는다. 아침이 되어 전화 벨소리가 텅 빈 집 안에서 영원히 귀가 먹어버린 몸뚱어리 위로 요란하고 끈질기게 울려댄다. 그는 마치 그런 사람들과 같았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었다. -요나 혹은 작업 중인 예술가 176"

 요나는 다락으로 들어간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그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에서부터 다락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요나의 화폭에 적힌 단어, 카뮈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고독 혹은 연대 어쩌면 그 둘 모두가 이 단편 안에 드러나 있다. 그리고 요나의 이야기 중 또 하나 그냥 지나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 요나의 제자들은 요나가 그린 것을, 그리고 그것을 그린 이유를 그에게 오랫동안 설명하곤 했다. 그리하여 요나는 작품 속에서 스스로 생각해도 약간 뜻밖인 여러 의도와, 자기는 담아놓은 일이 없는 많은 것들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을 빈약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제자들 덕분에 돌연 풍부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요나 혹은 작업 중인 예술가 149"

 최승호 시인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는 2004년 자신의 시로 출제된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다 틀린 일화로 유명한데, 그의 작품 ‘북어’ ‘아마존 수족관’ ‘대설주의보’ 등은 수능 모의고사 등에 단골로 출제 돼 왔었다. 의도주의적인 해석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와 다르게 오독되거나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 쓴웃음을 짓게 하는 일이긴 하다.

 작품이 읽힌다는 것은 읽는 사람과 만나 새로운 시각을 통해 저마다의 생각으로 의미를 낳는 과정이라 생각했는데, 문득 그 안의 의도 역시 전달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특히 이렇게 긴밀한 연결이 폭 넓은 이해와 사유를 거치길 필요로 하는 글에서는 더욱 그렇다. '적지와 왕국'의 후기를 적고 있는 동안에도 일방적인 의미 붙이기나 마찬가지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하다.

 좋은 기회를 통해 알베르 카뮈의 '적지와 왕국'의 개정판을 먼저 만나볼 수 있었다. 출판사 책세상에서 카뮈의 전집을 개정판으로 출간하며 [시지프 신화]와 [반항하는 인간]의 북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알베르 카뮈의 최고 권위자인 김화영 교수가 그 전권의 번역을 맡아 전세계 유일 한 명의 번역자가 번역한 판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별하고 매력적이다. 11일이 마감인 펀딩은 이미 400% 가까운 금액을 달성할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으니 서둘러 확인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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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몽골 - 고비사막, 타왕복드, 홉스골, 사진작가 시즈닝그라피의 몽골 여행
차은서 지음, 김창규 사진 / 푸른향기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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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사막 타령은 십년이 넘었다. 사실 그 사막 타령의 근본은 n십년전 이집트부터 시작되었는데, 몽골은 그 사막 타령의 가장 현실적인 목적지가 되었다. 비슷한 타령으로는 극지방 타령, 오로라와 펭귄 타령이 있다. 이 타령이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 목적지에 다녀온 사람들을 보면 너무너무 부러워서 질투가 날 지경이다. 일곱번의 몽골 여행이라니, 몽골 여행 총량이 이란 것이 있어서 한 사람이 일곱번 몽골을 다녀오면 나머지 여섯명은 혹시 못가게 되는 것일까. '그럼에도 몽골'의 표지만 봐도 질투를 안할 수가 없었다. 몽골에 다녀온 것도 부러운데 이 포토제닉한 낙타라니. 나만 없어 낙타. 

 여행은 수학여행 이후로 자유여행 외엔 단체 행동을 쳐다도 보지 않았었는데 몽골,하면 가이드가 함께하는 단체 여행 말고는 생각해본적이 없다.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감각이었을까, 책을 보다 놀랐다. 제네바 협약과 비엔나 협약(19)이 이런 큰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었다니. 저자가 제시하는 몽골 여행의 기본 조건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역시 딱 나야 중얼거리면서도 몽골에 대해 뭐 하나 아는 것이 없었구나 싶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읽는 것을 그리 선호하는 편이 아닌데 초반에 낯선 사람들에게 엉덩이 까이는 생리현상에 대한 얘길해서 일까, '그럼에도 몽골'을 너무나 새롭고 재밌어서 자꾸만 다음 페이지로 시선이 옮아갔다. 

 '너에게 당연한 게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야'는 말이 종종 나오는 상황들도 재밌다. 당연히 몽골에서의 생활과 많은 것이 다르겠지만 '화장실에서 노래를 불렀어야지(45)', 하거나 먹고 남은 과자를 잘 정리해두지 않으면 회색 손님이 찾아온다거나(83), 대부분 결혼을 일찍한다는 것이(268) 두드러졌다. 하지만 닮은 점들도 있었다. 우리 농가에서 어린 소에게 옷을 입혀주는 것처럼 옷을 입은 하네크들을 만난 이야기(282)나 고시레와 비슷하게 술을 마시기 전 땅에 몇방울 흘리는 것, 이름에 쓰는 돌림자(209)도 비슷하다. 더불어 몽골 사회에 여기저기 스며든 한국문화가 반갑고, 무엇보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친숙한 외모가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몽골'을 읽으면 읽을수록 몽골이 더 가보고 싶어지고 좋아졌다. 몽골의 풍경들이 멋진 탓도 있지만 사진을 잘 찍어서 몇배로 멋져보인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몽골을 이만큼이나 많이 다녀온 작가도 아직 몽마르다고 하는데, 원래부터 몽골에 가보고 싶었던 몽골 타령인의 마음은 얼마나 몽골몽골 해졌겠는가. 몽골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던 사람이라도 '그럼에도 몽골'을 몇 장 넘겨보면 점차 빠져들게 될 것이다. 몽골 특별 사진집이나 다름 없는 멋진 몽골 여행기 덕분에 반드시 몽골을 가보기로 마음 먹는다. 기다려,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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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 조기 은퇴 후 부모님과 함께 밭으로 출근하는 오십 살의 인생 소풍 일기, 2023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
황승희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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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고, 늙고 힘들어서 농사 못 헌다고 시골마다 땅을 내논다는데, 시상에... 팔순 너머에 농사를 한다고 그걸 또 사는 사람이 있네. 아부지한테 늙어 편하게 사시라구랴. 머더러 힘들게 농사를... 쯧쯧. 농사 지긋지긋혀." 61" 

 남 일이 아니다. 함께 늙어가는 부모님과 밭농사라니. 그것도 칠할 정도를 살아온 동네를 벗어나 낯선 동네로 거처를 옮겨서. 있는 땅도 헐값이든 제값이든 팔아 없애라고 성화를 부리고 있는 나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세대에게는 그 분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부모님 세대에는 귀농이나 전원생활이라는 비슷한 황혼기의 로망이 있는 듯하다. 평생을 한동네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아빠가 느닷없이 차로 두시간쯤 떨어진 곳에 땅을 샀다. 본인 계획대로라면 아마 지금쯤 그곳에서 노년을 보낼 것이었겠지만 삶이 뭐 어디 계획대로만 흘러가던가. 노년은 되었지만 집과 땅을 오가며 두배로 바쁜 삶을 살고 계신다. 애물단지나 다름없어 보이는 땅을 정리하고 좀 편히 지내시라고 몇년 전부터 권유하다못해 진절머리를 내는 자식에게 부모님은 그저 묵묵부답이다. 생활반경에 모든 필요한 편의시설이 존재해야 함을 주장하는, 편의시설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는 성향인 사람과 길이 다르기 때문일까. 자연으로 돌아가길 결심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뭘 키워내고 싶은걸까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뱉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 아빠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다는 완벽한 사실, 나를 전적으로 믿고 내 선택과 인생을 소중하게 생각해주시는 아빠인데 말이다. 엄마를 구해야 한다는 만화 같은 마음이 언제 나에게 있었나 싶게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 만화는 나에게 아득해졌다. 아빠에 대한 두려움이 차차 무뎌진 건 사실이다. 119" 나이를 먹을수록 이상하게도 나는 아빠와 가까워지고 있다. 아주 잘 맞는 사이는 아니지만 나는 가족 중 아빠와 성격이나 외향이 가장 많이 닮았다. 내가 가진 성질머리도 친근한 사람들 앞에서 내보이는 유머감각도 불규칙해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치열도 짙은 쌍커풀이 있는 눈매도 아빠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대화를 나누고 이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 쌓여서인지 모르지만 아빠는 나에게 가장 많은 참을성을 보인다. 아빠와 의견 차이가 생길 것 같은 문제를 두고 협상과 회유 테이블에 가장 많이 올라가는 것은 내가 되었다. 이와 비슷한 관계의 모양이 책에서 보일 때가 종종 있었다.  

 비슷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이답게 '다인 가정'을 선택한 친구와의 일화(149)도 재밌게 읽었다. 인터넷에도 그런 불만은 종종 올라온다. 나는 친구를 만나서 대화하고 싶은 것이지 친구의 남편이나 아이를 함께 부르는 것은 아니라고. 결혼한 친구의 삶에서 자기는 없어지고 남편과 아이로 중심이 옮겨가는 것 같아 아쉽다고. 저자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1인 가족을 선택한 자신의 삶과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라는 이해와 더 다양한 친구맺기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자꾸만 생일이 기대가 되지 않는 변화도, 폐경이 오길 바랐다는 얘기도, 심지어 요즘 더워할 때마다 증상으로 의심받고 있는 갱년기도, 부모님이 갈수록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겨난다는 것도 전부 공감가는 것들이었다. 사는 일이 다 똑같구나 싶어진다. 어떤 날은 나만 이렇게 사는가 싶은데 이렇게 문득 다 비슷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면 묘하게 안도하게 된다. 남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고 남보다 더 잘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 했던 것도 같은데, 인생이라는 큰 흐름 안에서 각자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왜 위안이 될까.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면에서 비슷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 이혼한다 하면 열이면 열 명이 왜? 라고 묻지만 결혼한다 하면 왜? 라고 묻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15"는 말에 결혼한다 하면 왜?하고 묻는 사람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 중 하나가 나다. 요즘은 더 많은 사람들이 왜인지 묻겠지만, 난 전부터 궁금했다. 어떤 점이 결혼을 결심하게 만들었을까, 그 쉽지 않은 결심을 하게 된 이유를 물어보곤 했는데 저마다 내놓는 답을 들어도 매번 궁금하고 신기하긴 했다. 그 밖에도 에어컨에 대한 이야기(197)나 예쁜 여자애는 꼭 못생긴 애들과 친한 법(226)이란 말들은 가까이 다가서러던 마음을 주춤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나에게도 누군가가 다가오려다가도 발걸음을 돌리게 될 만한 점들이 있겠지 생각이 번져나가면서, 뭐 어떤 면들은 나랑 좀 다를 수도 있지 싶어졌다. 그보다는 평범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는 이런 삶도 있다고 말해준다. 인간극장이나 자연인 같은 프로그램에 나올 것만 같은 독특함을 가지고 있는데 읽고 나면 나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맺는다. 남들은 대체 어떻게 삶을 견디고 있는지 궁금해질때, 인스타그램 밖에서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엿보고 싶을 때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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