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워서 생각하기로 했다 - 현명하고 지적인 인생을 위한 20가지 조언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장은주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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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책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인간은 모름지기 누워야만 한다. (126)"는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누워있을 수 있는데 왜 누워있지 않죠?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누워서 하면 이득이 아닌가. 누워서 할 수 없어서 굳이 몸을 일으키게 만드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범상치 않은 사람인가 싶어 흥미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기 시작하기 무섭게 멈추게 되는 문장을 발견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군대에 들어갔고, 전쟁에 패한 후 어영부영 대학을 나와 17" 하는 부분이었다. 이 전쟁이 그 전쟁이 맞나? 저자가 23년 생으로 나와 있어 그 전쟁이 맞구나 헤아려보니 갑자기 눕거나 말거나 싶어졌다. 

 책의 구성이 단호한 제목을 붙이고 그에 따른 완곡한 설명으로 되어 있는데, 제목이 단호하고 다소 극단적으로 지어진 탓에 '왜? 꼭 그래야 하나?' 약간의 반발심이 섞인 의문을 갖게 되는 면이 있다. 어떤 내용인지 받아들이기 전에 벽을 먼저 쌓으며 공격적으로 책을 읽는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 생각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생활 습관으로 본다면 그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이해가 가지 않고 의문이 든다면 허심탄회하게 "왜?", "어째서?"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99"는 내용을 책에서 보고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며 읽어나가기로 했다. 

 " 아침에는 활력이 가득해서 의욕이 지나치기 쉽다. 무모한 일정을 짜기 십상이다. 36" 는 부분이 있는데 나와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보통 잠들기 전에 내일 뭐할지 생각하곤 하는데, 난 꼭 그때 의욕이 충만해져서 오늘 못했던 일들을 내일 일어나면 꼭 해야지 다짐하곤 한다. 내일은 꼭 운동을 하고, 냉장고 정리하고, 집청소도 해야지 완벽한 하루를 계획했다 일어나면 피곤해서 다시 드러눕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보통 아침에 계획한 일은 그날 반드시 하고 전날 밤에 잠들기 전 계획한 일은 아침에 일어나서 취소하곤 한다. 어떤 성향의 사람이 더 많을까? 

 책의 내용을 전부 거리두며 읽은 것만은 아니다. 누워서 생각하면 힘을 아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읽으며 공감하게 된 부분은 "다른 분야 사람하고 놀아라 (104)"였다. 확실히 분야가 다른 사람들과 모이게 되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지점을 찔러 들어오기도 하고, 몰랐던 분야에서 닮은 점을 찾게 되는 등 새롭고 신선한 활력이 도는 때가 있다. 다만 이런 경우는 정말 성공적인 날이고 대부분은 서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다 끝나거나, 배려하느라 대화의 흐름이 겉돌다가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아래의 문장만 봐도 저자는 전자의 경우를 주로 경험했음이 분명한 듯 하다. 

 " 듣기로는, 요즘 젊은 연구자들은 사람 만나길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예전 같으면 학회가 끝나고 함께 한 잔 마시곤 했는데, 지금은 각자 재빨리 돌아가 버린다. 모임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담론풍발을 경험하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게 되지 않을까. 쓸쓸하기 그지없다. 111" 

 많은 부분에서 저자가 나이 많은 구세대의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긴 하는데 이 부분에서 특히 강렬하게 다가온다. 특유의 꼬장꼬장함과 자기자랑이 곳곳에서 보이는 데다가,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다른 모임 자리가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못한 듯한 태도가 조금 웃기기도 하다. 이 뒤로도 '가로쓰기'에 대한 폭발적인 거부반응(누워서는 안 되는 문자117)이 나오는데 일본어 가로쓰기를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행위(120)"로 규정하는 이 내용도 극단적인 반대표현이라 웃음이 나온다. 또, 하이쿠 모임에 여성회원이 증가하면서 명사 중심에서 동사 중심의 변화가 생기자 즐기던 하이쿠에서 멀어지게 되었다(202)고 말하는 내용에서도 특유의 경직된 사고가 느껴지는데 이를 비판적 의식이나 개선의 여지 없이 드러내곤 한다. 

 '나는 누워서 생각하기로 했다'는 솔직하다. 이 솔직함은 때로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236)를 들었을 때의 어색함 같기도 하고, 타인의 렌즈에 찍힌 자신의 모습(237)을 낯설게 보는 것과도 비슷하다. 저자가 오랫만에 만난 아침 운동 지인이 인사차 건넨 말을 들으며 한동안 만나지 못해 고령인 당신이 " "죽은 줄 알았다"라고 말하려는 듯한 표정이어서 조금 우스웠다.(155)"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어서, 감기약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공복인 식전에 먹어야 된다는 이론(162)을 만들고 실천하는 사람이어서, 그걸 솔직히 글로 적어내는 사람이라서 불쑥 들이치는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었다. 생각보다 가볍게 빠르게 읽히는 책이니 부담없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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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살 수 없지만 요가는 할 수 있어요 - 요가, 세계여행, 그리고 제주에서 요가원 창업
곽새미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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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똑같이 쳇바퀴 굴러가는 듯한 생활에서 요가 동작을 하나씩 만들어 갈 때면 일상에 생기가 추가됐다. 21" 

 시작부터 대단했다. 운동은 일상의 남은 생기를 다 뽑아내 배달 주문할 손가락 들 힘도 없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것 아닌가요. 저자를 거쳐간 '하체 비만 탈출 계획(15)' 운동 목록은 이 분 대단한 인싸구나 싶어진다. 특히나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운동이라 여기고 있는 헬스에는 마음을 못 붙였다는 점이 더욱 재밌었다. 나랑 이렇게 성향이 다르구나. 길거리에서 우연히 전단지를 받아든 것을 계기로 성큼 요가원 1년 결제를 질러버리는 호쾌한 저자도, 그 1년 뒤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흐름으로 삶이 변할 것이라고는 몰랐음을 고백하며 시작하는 도입부는 재밌고 흥미로웠다. 

 '아무도 내가 처음인지 모른다. 그저 그들은 한 시간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온 것이다.' 33 
예전에 처음 학생들 앞에서 서면서 인삿말로 '우리가 오늘 처음 만났듯 나도 이 앞에 처음 서게 되어 특별하다는' 말을 건넸었는데, 나중에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피드백 받았던 기억이 났다. 하지말라기에 알겠다 하고 넘어갔는데 이유를 듣지 못해 아직도 왜인지 몰랐는데, 아마 저런 이유였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납득했을 것이다. 저자도 이 문구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변화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언제고 마음을 정리하기에 좋은말을 하나 얻은 것 같다. 

 두번째 파트를 읽다보면 세상이 지금 요가에 열광하고 있는 것만 같다. 요가 자석처럼 요가를 하기 위한 곳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더 그렇겠지만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요가를 배우고 즐기고 있는 줄은 몰랐다. 요가가 어렵고 유연성이 많이 필요하고 가끔 생리현상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선입견이 있었나보다. 다양한 요가 수업들과 소소한 여행기를 읽다보면 여행가서 관광 명소만 찾지 말고 내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것들을 꼽아 방문해보면 더욱 특별한 기억이 되겠구나 싶었다. 주로 마트를 구경하러 다녀오긴 했었는데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봐도 좋겠다. 

 세번째 파트에 들어서면 여행에서 돌아와 직접 요가원을 운영하게 되는 도전기를 만나게 된다. 좋아하는 것과 밥벌이가 같아지면 어떨까, 좋다는 사람 싫다는 사람으로 나뉘던데 저자의 취미와 업의 일치는 4년 동안 다녀간 오천여명의 수강생들의 평가가 말해주듯 성공적인 것 같다. 물론 그 사이에 많은 고민도 있었고 임신과 출산을 겪는 등 일상의 변화도 겪었겠지만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평화롭고 자연과 어우러진 장소에서 마음껏 요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진들을 볼 때면 행복과 만족도 함께 느껴진다. 

 게다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네번째 파트에 요가원 창업 시 알아두면 좋은 것을 담아두기 까지 했다. 요가원이 너무 많다(180)고 했던 글을 막 다 읽었는데 바로 다른 요가원들의 창업을 돕기 위해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누는 모습에 놀랐다. 심지어 보기 좋게 만들어진 2주 플랜도 따로 정리해두었다. 이 모습에서 요가원이 아무리 많아져도 선택받고 만족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이는 듯 했다. 요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자신감과 요가원 관리에 담긴 세심함을 보니 수업을 받으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덕분에 새로운 기회와 삶의 방식을 접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요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행복은 살 수 없지만 요가는 할 수 있어요'를 읽으며 더 공감도 많이 하고 얻게 되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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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배신과 흔들리는 세계 교양 100그램 7
김준형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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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도 만난 적 있는데, 창비에서 나오는 이 교양100 문고들은 읽을수록 마음에 든다. 가벼운 분량과 실제적으로도 가벼운 무게이고, 어떤 내용이 이 시기에 알맞은 주제의 교양이 될 것인지도 잘 짚어냈다. 게다가 내용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어 독자의 부담을 덜어준다. 특히 이번에 만난 '미국의 배신과 흔들리는 세계'를 아주 유용하게 잘 읽어 더욱 기꺼운 마음에 책의 좋은점을 우수수 쏟아내며 감상을 시작한다. 자꾸만 여기저기 전쟁난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요즘 세상 돌아가는게 왜 이런가, 불안하고 궁금한데 뉴스를 봐도 잘 모르겠고 인터넷에 검색하자니 제대로 된 답을 얻기 어려울 것 같다면 이 책을 가볍게(물리) 손에 들어보자. 

 " 지금까지 미국에 이익을 줬던 국제 협력체제 혹은 세계화 구조가 더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미국은 이제 자의적으로 규칙을 바꾸고 있습니다. 미국이 여태 내세웠던 수많은 가치들이 거의 다 뒤집히고 있습니다. 그동안 최소한 겉으로는 자유, 평등, 민주주의, 환경 드의 가치를 내세우며 세계화 시대의 패권을 유지했는데 이제 그 시대가 저물어버린 겁니다. 이런 시대 변화의 엔진인 동시에 결과물이 트럼프이고, 트럼피즘입니다. 34"
 전세계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우경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새로운 시대를 향한 변화임을 말해주고 있어 선뜩하면서도 수긍이 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변화 흐름 속에서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의 방향이 외부로 향하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자신들의 요구가 미국의 어느 기관에 고발하면 해결이 될 것이라 여기거나, 성조기를 태극기와 함께 흔들며 트럼피즘* 찬동의사를 보인다. 또 이들의 대부분은 친일 성향도 가지고 있다. 책에도 이런 행태를 짚어내는데 " 보통 민족주의는 외세의존적이지 않은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매우 기형적입니다. 친미, 친일의 식민주의가 그대로 살아남아 있거든요.(75)" 우리나라의 보수는 왜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흔들며 일본의 손을 잡으려 하는지, 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에 대해서도 후에 교양100에서 만나게 된다면 좋겠다. 

 " 가상의 적을 만들어서 울분과 불만, 불안을 덮어씌우고 적대시하면 권력을 빠르게 잡을 수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방안을 내거나 좋은 대안을 논의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은 너무 오래 걸리고 밖으로 표도 잘 안 나니까요. 따라서 이 불안의 과도기에서 사적 권력을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선동 그리고 선동할 수 있는 적을 만드는 것이고, 그 적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48"
이 부분을 읽으며 지난 대선토론의 문제적이고 참혹한 순간을 떠올렸다. 후보 이전에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자질부터 검증을 받아야 했던 사람과 문제의식 없이 이를 진행시킨 방송사 모든 노동자의 윤리의식도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어지러워졌는가 고민하게 만든다. 분열과 혐오의 틀로 진영을 나누고 선동하는 것을 17대 정부부터 어떻게 이용해왔고 또 어떤 결과물로 우리 사회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지 체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책은 국제사회 변화 흐름을 우리나라의 지난 대선 이전까지의 혼란스러운 탄핵 정국과 함께 짚어 쉽게 접근해준다. 이후 새 정권이 들어서고 미국이 전쟁에 직접적 개입을 하는 등 굵직한 사건이 들어선 탓에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더 깊이있게 다루지 못하고 끝맺어진 것이 아쉽다. 덕분에 쉽고 재밌게 읽으며 배웠으니 다음 교양도 더 달라는 뜻. 지난 겨울을 지나며 세상이 왜 이런가 관심과 이해를 더하고 싶은데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하다면 '미국의 배신과 흔들리는 세계'를 추천한다. 이 외에도 교양100에는 추천할만한 책들이 더 있으니, 예를들면 인간신경안정제님의 책,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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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
브라이언 애터버리 지음, 신솔잎 옮김 / 푸른숲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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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가 원한다면 유토피아는 SF, 판타지 심지어 디스토피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명시적으로는 유토피아가 아니지만 기존의 사회와는 다르고 교훈이 되는 모델이자 상호 작용의 도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를 이루는 진정한 조건은 독서라는 행위와 그에 따른 독자의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찾고 있는 유토피아는 바로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283"


 판타지 작품에 흥미를 가지고 있고 더불어 장르에 대한 조예를 겸하고 있는 독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될 책이다. 물론 그렇기에는 조금 부족한 바탕을 가지고 있는 독자에게는 아예 낯선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판타지 작품보다 어렵게 다가올 것이다.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는 판타지라는 장르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책이다. 서문을 제외한 총 아홉가지 주제로 판타지 안에서 기능하는 메타포와 구조, 또 외부로 작용하는 영향력을 분석한다.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면 그 분석이 자세하고 다채로울수록 아쉬워질 때가 있는데, 책에서 예를 들며 설명하는 작품들의 태반을 모르고 있을 때이다. 책에 나오는 짧은 설명으로는 감을 잡기 어렵기도 하고, 어떤 내용인지 재밌을 것 같아 궁금해져 읽다가 아쉬워지는 지점들이 많았다. 이 책이 출판사에서 출간한 판타지 문고 기획물의 특별판이나 끝맺음으로 등장했어야 더 좋았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판타지 기획으로 쭉 낯선 작품들을 따라 읽어왔는데 사실 이 책의 이해와 재미를 위한 발판이었다,는 것이었다면 더욱 흥미로웠겠다. 

 초반보다 후반으로 갈 수록 더 익숙한 작품들을 마주칠 수 있는데 '환상 동화'가 판타지 작품의 계보 앞에 서면서 '잭과 콩나무', '백조 왕자', '푸른 수염', '용감한 꼬마 재봉사' 나 많은 공주들이 등장한다. 내용은 살짝 아동문학에 담긴 시대적 배경 같은 흐름으로 이어지지만 확실히 이해가 쉽다. 읽으면서 한국형 판타지로는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홍길동전'이나 '심청전'같은 작품도 판타지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의 고난과 모험이나 현실과 닿은 다른 "더 나은 세계가 있다는 생각(241 유토피아 문학)"도 그 안에 존재하고 있고. 이들보다 좀 더 세련된 작품으로는 '연이와 버들 도령'이 떠오르는데, 이 작품 기억하는 사람 있으려나 모르겠다. 

 인상적인 정의 중 하나였던 '두려움은 스토리의 원동력이다(376)' 부분은 여러 작품들 안에 존재하는 갈등과 충돌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야기에는 항상 갈등이 존재한다.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의 충돌이 있고 주인공이 현실에서 성장해나가며 겪는 충돌이 있다. 주인공은 마치 알을 깨고 나오려는 것처럼 세상 밖으로 나가려 한다. 이 투쟁(데미안), 성벽 너머 세상에서 자신만의 황금별을 찾기 위한 여정을 꿈꾸는 자들(뮤지컬 모차르트), 위험한 섬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사람들과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려는 첫 도전(영화 모아나)에서 모든 모험이 시작됨을 떠올리게한다. 

 더불어 이 모험을 통해 " 우리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그에 대한 공포에 압도되거나 지배당하지 않는 법을, 다만 두려움에 이름과 얼굴을 부여하고 우리 삶의 한 공간을 내어주는 법을 배운다. 411"고 판타지가 우리 삶에 어떻게 그 영향을 미치는지 말해주며 끝을 맺는다. 처음엔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온 책이지만 읽다보면 나름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재미를 추구하던 '문학의 미토콘드리아(230)'가 정치, 성, 사회, 역사를 두루 거쳐 판타지를 바라보도록 해준다. 흥미로운 책이었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공을 걸고 도전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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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이 이야기 암실문고
김안나 지음, 최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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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뿌리가 있어요. 나한텐 분명한 뿌리가 있다고요. 이렇게 말한 뒤 나는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자마자 사람들은 나만보면 뿌리가 없냐는 노래를 해대기 시작했어요. 인생이 좀 꼬였다고 해서 딱히 다른 뭔가를 시도해 볼 수도 없는 애한테 뿌리를 잊고 사는 거냐는 말을 해댔다고요. 그사람들이 말하는 '뿌리 없음'이란 시장의 야채상이 나에게 건네는 곤니치와라는 말하고 같은 거예요. 나에 대한 인종 검사를 수행하려는 행동이라고요. 137"
 
 [ 1950년대 미국의 한 소도시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미혼모인 어머니는 아이가 입양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런데 곧 병원에서 문제를 발견한다. 어머니는 백인인데 아이가 흑인 혼혈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작은 도시는 아이에 관한 소문으로 들썩인다. 아버지는 누구이며, 왜 이 어머니는 입을 열지 않는가? 출판사 소개글] '어느 아이 이야기'의 큰 줄기 중 하나인 이 사건을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본 탓에 한동안 의아했다. 어차피 생모는 아이에 대한 권한을 포기했는데 아버지가 누구인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나? 싶었던 것이다. 출산 후 친권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입양을 희망하면 기본적인 정보를 기록하고 생모와 분리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조사는 계속해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혀야만 할까, 캐럴은 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제대로 밝히지 않은 것일까. 흑인과 어울렸다는 불명예 때문에? 백인과 어울린 흑인이 감수해야할 위험에서 상대방을 방어하기 위해서? 
 
 소문만으로도 도시가 들썩일 정도의 일인데 실제 캐럴이 부주의하게 누군가와 가졌을 만남이 조용히 이루어졌다는 점은 의외다. 보고서를 읽다보면 코의 모양 머리결, 피부와 눈의 색, 심지어 IQ 측정값을 통틀어 대니얼이 누가봐도-가시성으로 물라토*이고, 실제로도-생물학적으로 물라토라면, 대니얼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한 확인이 왜 필요한지 역시 의문이 된다. 대니얼의 아버지가 어떤 인종이던 대니얼의 가시적 입양 조건은 달라지지 않는다. 혹 대니얼의 아버지가 흑인이 아니고 대니얼도 물라토가 아니게 된다면 부여받게 되는 새로운 정체성은 가시적 조건을 상쇄할 수 있는 권리증이 되는가. 마치 이 아이는 물라토의 외형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물라토가 아닙니다, 하는 주의문구가 적힌 꼬리표와 함께. 하지만 그 꼬리표를 위해 혹은 친부모의 확실한 신원 기록을 위해, 대니얼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한 과정은 꼬리표보다는 확실히 대니얼과 캐럴에게 악조건이 되었다.  

 솔직한 감각으로는 그 당시의 인종차별에 대해서 이게 얼마만큼이나 큰 사건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에멧 틸 사건**'이 1955년, [미시시피 버닝***]의 배경이 1960년대였었다고 하니 대니얼의 출생은 그 이상의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보고서는 집요하게 아이의 출생을 파고든다. 그 의도는 아이에게 '적합한 가정'을 찾아주기 위함에 초점이 맞춰진 선량함을 두르고 있다.
" 우리는 아이에게 맞는 입양 부모를 찾기 전에 생부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하다는 점을 할 수 있는 한 강하게 설명했다. 우리의 목표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서로에게 적합한 아이와 부모를 맺어 주는 것입니다. 최선의 경우는 입양 부모와 아이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거죠.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자연스러워 보이는 가정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럴 경우에만 이 아이들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으니까요. 36"
 그러나 그 선량한 의도는 인종차별로 재단되어 있다. 아이의 성장에 대한 세심한 관찰, 입양처를 찾아주기 위한 물색 마저도 눈금자 아래(257) 놓여진 수치를 피할 수 없었다. 보고서를 읽으며 기대었던 선량함은 차별과 시혜의 그늘에서 종내 불유쾌함을 남겼다.  

 대니얼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혹은 어떤 인종인가에 대한 선량한 추적은 구분지어짐으로 비롯되었고, 구분하기를 위함이다. 읽는 내내 계속되었던 조앤의 시선(20/136), 대니의 거울(148), 질비아의 스케치(263)처럼 '바라보기'가 강조된 장면들이 떠오른다. 눈을 통해 얻게 되는 정보 혹은 선입견을 생각해보자. 단지 인종의 문제를 떠나, 오히려 인종에 대한 정보는 훨씬 직접적이다. 성별, 나이, 언어, 옷차림, 표정, 시선, 귀금속 같은 소지품, 손톱이나 피부, 머리결같은 것들, 심지어 생김새마저 타인을 판단하는 항목이 된다. 인종적으로 소수자 위치의 삶을 경험해보지도, 불일치하는 '뿌리'에 대한 질문과 심판도 받아보지 못한 탓에 공감할 수 없는 영역이 있어서일까, 넘어가보지 못한 한 걸음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때문에 도리어 가시적 조건들을 확장해 인간이 어떠한 분류없이 오직 한 명의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혹은 어떤 분류는 괜찮고 또 괜찮지 않은가. 선입견과 구분짓기의 '모든' 틀에서 벗어난다면 그 끝은 획일성 외에 무엇이 남는가. 자신을 인종과 국적과 같은 틀에서 벗어나 오직 한 명의 개인으로 봐달라는 말은 오히려 자신이 '규정짓는 대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말로 들린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외모와 내면의 분리/불일치 - 이 부분에 이르러 성정체성 문제가 떠올랐다. 
" 가끔은 내 자신이 주장하는 나와 실제 내가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착시 같은 존재, 늑대 가죽 속의 양, 나는 그런 변장 속에서 태어났다. ...중략... 어쨌든, 만약 내가 만들어진 환상이라면 문제가 생긴다. 내 외모가 착각이고 내 내면이 진실인가 아니면 정반대로 내 외모가 진실이고 내 영혼은 그 반대인가라는 문제 말이다. 주변 세계가 나에게 보이는 반응에서 출발하면, 즉 사람들이 내 내면과는 맞지 않는 내 외형에 먼저 반응을 보인다는 것에서 출발하면, 나의 외모가 옳고 나는 옳지 않은 것이다. 감히 생물학이 틀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140"
이들의 주장과 갈등도 같은 부분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규정짓는 대로 인정받기'. 하지만 주변 세계가 그 모든 불일치를 수용할 수 있는가? 수용해야만 하는가? 이 불일치로 인해 가시성이 멍에(135)가 된다면 그 멍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눈 위에 멍에를 씌운 채 후각과 촉각에 의지해(101)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남겼다.  

 대니얼이 스스로를 백인으로 여긴다해도 그의 신체에 흑인의 특성이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대니얼만이 아니다, 서양인에 비해 췌장 크기가 작은 동양인은 당뇨에 취약하다. 눈동자 색에 따라 빛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다. 흑인은 피부암 발병율이 낮다, 같은 차이는 그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마저도 '수치에 의존해 인간을 분류하려 드는 선입견'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아쉽다. 그가 자신을 백인이 아닌 미국인으로 규정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지금도 일정 부분 그렇겠지만, 미국인이 곧 백인이었던 배경이었다면 왜 그가 스스로를 백인처럼 증명(명예백인 148)하려 했을지에 대한 이해가 된다. 책을 읽고 생각을 남기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에 비해 머리속을 떠돌던 생각을 어느 하나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것 같아 여러모로 아쉬웠다. 처음 책을 읽으며 꽤 먼 시선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느끼던 거리감에 비해 책의 무게가 깊었던 듯 하다. 암실문고의 선정은 남다르다. 
  

* 물라토 백인과 흑인 혼혈 1세대
** 1955년 백인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만으로 린치를 당해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 10대 흑인 소년 에멧 틸 이름을 딴 사건. 2020년 인종적 증오범죄에 근거한 사적 린치를 처벌하는 '에멧 틸 법'이 입법 되었다
*** 영화 [미시시피 버닝(1988)] 1964년에 일어난 흑인 인권 운동가 살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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