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
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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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스토리카는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것, 또는 설명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과학의 필수 요건이며 글이 있기에 과학은 이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글은 우리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지금, 여기에만 묶여 있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다. 8" 

 책은 총 5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고대 세상의 기록은 1200년경까지의 기록물들에 대한 내용, 2장 출판의 르네상스는 책 제작 방식에 인쇄술이 도입된 후 나타난 변화들에 관한 내용, 3장 근대의 고전은 과학책이 대중으로 독자층을 넓혀나간 후의 변화, 4장 고전을 벗어난 과학책은 과학이 전문 분야로 자리잡으며 나타난 변화, 5장 다음 세대는 1980년 경 부터 대중 교육에서 흥미와 정보 전달로 달라지기 시작한 과학책의 경향을 담고 있다. 궁금한 장부터 찾아 읽어봐도 좋겠다. 
 최근 읽은 책에서는 우리가 글을 씀으로 기억을 하려는 능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주장을 봤다. 적어두었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정보를 머리속에 저장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다소 엉뚱한 주장이었는데, 지금 과학의 발전과 글에 대한 내용을 보니 글의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다는 특성에 크게 공감했다. 
뒤로 이어지는 인쇄술 이야기에서 목판 인쇄술로 제작된 가장 오래된 책으로 [금강반야바라밀경 868년]을 꼽고 중국 중심으로 흘러가는 내용은 아쉽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현존 최고의 인쇄물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704~751년 추정]인데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이 없다니 아쉽다. 

 첫번째 장을 읽으며 "로마인들에 관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과학 발전에는 거의 기여한 게 없다는 것(14)"이나 알하킴이 나일강 물줄기를 바꾸겠단 약속을 했다 못 지키게 되자 죽을 때까지 미친 척했다는 일화(78), 피보나치수열의 피보나치가 이름이 아니라 별명이었다는(84), 그러나 영원히 피보나치로 불리며 고통받는 피보나치의 이야기처럼 소소하게 재미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두번째 장으로 들어서면 "과학의 혁명에 관한 이야기는 늘 인기가 좋다(96)"는 시작처럼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등장 만으로도 내용 자체가 그냥 흥미롭고 재밌다. 
 마찬가지로 갈릴레오가 등장했을 때도 관심을 가지고 읽었는데 "피사의 사탑의 낙하 실험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146)"고 보고 있는 내용은 의외였고 어쩐지 실망스러웠다. 같은 장에서 소개되는 다윈의 [식물원]은 삽화도 아름답고 진화론을 떠올렸던 데에 비하면 신선한 접근이 되어주어 반가웠다. 

 세번째 장에서 근대로 들어오며 돌턴이 등장하는데, 얼마 전 탄소의 원소 기호를 물어오는 일이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수헬리베붕탄질산을 내뱉고는 어리둥절 했던 기억이 나 반가웠다. 과학 저술의 범위를 천문학, 물리, 화학에만 두지 않고 생물학, 해부학 저서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다양한 삽화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해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전에는 다윈의 [식물원]을 소개했다면 3장에서는 [종의 기원]을 다루기 때문에 더욱 익숙한 내용을 만나볼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주목해야 할 인물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연구에 대해 간략한 안내를 해주기 때문에 내용이 너무 깊거나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다. "379쪽에 이르러서야 "지금까지 정의한 대로 덧셈하면, 이 명제에 따라 1 더하기 1은 2가 된다." 233 [수학의 원리]"는 내용이 나올 염려는 없는 것이다. 

 3장 끝부분에 들어서서야 과학에서의 여성에 대해 나오기 시작하는데, 4장은 아인슈타인과 함께 마리 퀴리로 내용을 시작한다. 더불어 레이첼 카슨의 명저 [침묵의 봄]을 만나볼 수 있다. DDT 사용 제한 조치 때문에 모기 박멸의 기회를 놓쳤다는 책의 내용이 사실일지 궁금해졌다.
 1976년 첫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소개되는데, 얼마 전 [불멸의 유전자]를 읽었기 때문에 특히 더 반가운 장이었다. 불멸의 유전자가 자연철학자들에게 받는 비난에 반박하는 "과학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더이상 감탄하지 않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더 깊이 통찰해 더 큰 감탄을 일으킨다. 288"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의 장들이 과학이 철학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자신의 영역으로 넓혀지고 확고해졌는지를 살펴봤다면, 4장은 다시 철학적 사고로 돌아가는 흐름을 보여준다.  
확실히 현대로 오면서 유명한 책들의 제목이 익숙해지고, 어떤 책들은 전체나 일부를 직접 읽어본 것들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떠먹여 주는 최신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330)"이는 독자밖에 될 수 없지만 그 조차도 접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 혹시 여러분은 제 설명을 듣고 나면 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뇨,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저는 왜 여기서 여러분을 귀찮게 하고 있을까요? 여러분은 제가 설명할 내용을 어차피 이해하지도 못할 텐데 왜 거기에 앉아 계시죠? 왜냐하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외면하면 안 된다고 여러분을 설득하는 게 제 일이기 때문입니다. 후략... 271" 

 책을 읽다가 문득 지치거나 좌절하게 될 때 경쾌한 어조로 힘을 북돋아주는 문장이었다. 리처드 파인먼의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의 서문에 있는 내용이다. 모든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한 부분을 알고 흥미와 즐거움을 느꼈다면 괜찮은 독서였던 것이다. '책을 쓰는 과학자들'은 과학적인 세계관의 발달을 수를 셈하려는 시도부터 보고 있는 시작이 흥미로웠다. 더불어 '기록'이 과학 발전과 정리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기 때문에 문자의 발달과정부터 첫 내용이 시작되는 점도 재밌다. 아주 넓은 범위로 시작하는 인류의 발전과정을 이야기로 들려주듯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 장점이자 매력이었다.
 첨부된 사진, 그림 자료들도 많아서 보는 동안 따로 찾아볼 필요없이 언급된 자료에 대해 더 이해하기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료들의 색감이 더해지고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선명해지고 가독성이 좋아지는 변화도 직접 느껴볼 수 있다. 에른스트 헤켈의 [자연의 예술적 형상] 삽화들(225-227)을 보다보면 한 가지만 잘해서는 세계사에 이름을 올릴 수 없겠구나 싶어진다. 다만 인쇄술의 발전과 함께 꽃등에 머리를 확대해서 그려놓은 섬세한 그림(154)도 함께 보게 될 것이다. 
핵심적인 이론, 인물, 저서 등을 키워드로 삼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주제와 크고 두꺼운 책의 무게감에 비해서는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다. 생각보다 익숙한 내용, 아는 내용이 많다고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책을 썼다면, 독자인 우리들은 그 부름에 마땅히 응하도록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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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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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한 소설집 관련된 영상을 보다 들은 말이 떠올랐다. 아마 가장 마지막에 작품이 실린 사람이었을 것이다, 앞에서부터 읽다 자신의 글을 안 읽을수도 있으니 뒤에서부터 읽어달라는 부탁이었는데 그 말이 참 부주의하다 여기면서도 이렇게 기억에 남아 '서른 번의 힌트'를 앞두고 이번엔 뒤에서부터 읽어봐야지 싶었다 

 "난 안간힘으로 딸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다. 딸은 어쩌다 전화를 거는 은전을 베푸신다. 그럼 나는 걱정부터 앞서 그렇게 물어왔던 것이다. 뭘 묻고, 뭘 묻지 말아야 할지도 어려워 내가 변사처럼 혼자서 떠들긴 했었다. 엄마 노릇을 흉내라도 내려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거구나. 381" 

 세상 모든 딸들은 엄마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까? 책을 읽다 문득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엄마를 사랑만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엄마보다 내가 더 많이 말하던 그 때, 내 모든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의 품에 안겨 쏟아내던 날들. 나는 어땠더라 되새겨보게 만드는 '길 위의 에트랑제'가 조금은 부담스럽고, 조금은 목이 메었다. 

 관심있게 보아둔 이름인 최진영 작가의 '무명'을 읽은 날 아침엔 70대 노인이 열 살짜리 초등학생을 유괴하려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초등학생의 엄마에게 저지되어 미수에 그쳤다는 뉴스를 보았다. 사람들이 역겹다며 저런 인간은 죽어야 된다는 댓글을 달아놓은 것을 수백개는 넘게 봤는데, 첫 시작이 살인사건을 보도하는 뉴스로 시작해서 아이러니했다. 가능성과 사실들. 

 '불펜의 시간'은 읽는 내내 기분이 나쁜 내용이었다. 기현이 어떤 야구를 하건 희롱과 무시를 당하는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기현의 내면이 어떻던 진호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쓰여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의 신이 진호를 버리기 전에 인간의 범위에서도 버려진 것은 아니었나, 진호뿐만이 아니라 지긋지긋하리만큼 저속하게 그려진 야구부원들 전부. 

 이와 비슷하게 주원규의 '외계인' 역시 야구선수와 배가 부푼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의 환영을 말한다. 실제 야구 선수들이 치던 사고도 떠오르니 연달아 읽으면서 야구 성적도 중요하지만 사람 좀 되자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운동도 좋지만 최소한의 학습과 인성 교육도 필요하지 않은가에 대한 생각을 최근 더 자주하게 되어 읽으며 부러 더 심각했다. 

 여러 작품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한 편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단숨에 읽어내려가다보면 어느새 제법 두께가 있는 책이 다 끝나있다. 읽다보니 문득 어느 재밌는 장편의 도입부만 골라 읽은 느낌도 드는데, '서른 번의 힌트'안의 작품들이 작가들이 예전에 수상했던 한겨례문학상 당선작의 내용을 모티프로 써 내려간 단편들이기 때문인 듯 하다. 

 책의 뒷표지 날개에 언제 어떤 작가가가 무슨 작품으로 수상했는지 목록이 나와 있으니 좋아하는 작품을 찾아 먼저 만나보거나, 읽은 작품 중에 마음에 드는 작가의 수상작을 다시 찾아봐도 좋겠다. 모든 수상작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읽어보았던 작품의 또 다른 갈래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인상적인 재회였고 재미있는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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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먼 이름에게 소설의 첫 만남 36
길상효 지음, 신은정 그림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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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인간을 사랑한다. 나에게 사납게 짖어 대지 않는, 나를 굶기지도 걷어차지도 않는 인간을. 
나를 씻기고 먹이는, 숨이 막히도록 나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벼 대는, 밤이면 곁을 내주고 함께 잠드는, 해가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나를 울고 싶게 하는 인간을. 그러나 그를 사랑할수록 내 반쪽에 차오르는 것은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나는, 우리는 어쩌다가 인간의 세상에 왔는가. 26"

 첫 시작은 안타까워서 눈물이 났다면, 마지막은 벅차올라서 눈물이 났다. 이 작은 개의 이야기는 번식장에서 학대를 당하다 구조되어 한 인간의 집으로 입양되면서 시작된다. 짧게 줄인 문장 안에도 왜 한 생명이 다른 생명에 의해 이렇게까지 이용당하고 고통받아야 하는가, 모두가 알고 있는 부조리가 왜 개선되지 않는가 성토하게 만든다. 

 고통스러웠던 번식장에서의 시간부터 자신을 보살피는 알 수 없는 존재인 인간과 함께하기까지 작은 개에게 세상은 낯선 곳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작은 개는 번식장의 학대에서 살아난 생존자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색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계속되는 질문이 지금껏 이어져 온 인간과 개, 두 세상의 첫 만남을 찾아 시간을 거스른다. 오래 전 야생에서 생활하던 늑대가 두 발로 걸으며 두 손으로 사냥하던 인간 무리에게 첫 발을 내딛던 그 순간으로. 작은 개는 그토록 궁금해하던 질문의 현장에서도 그를 부르는 인간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데, 그런 점이 안타까우면서도 곁에 있는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고 머리를 한 번 쓰다듬게 만들기도 했다. 

 고대 늑대 무리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책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 읽었던 시튼의 동물기가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늑대왕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는데, 그때의 즐거움이 떠올라 금새 읽어나갔다. 먼 옛날 인간이 생존을 위해 늑대들의 습성을 따라했고, 늑대들 역시 생존을 위해 인간과의 공존을 모색했다는 주고받음을 잘 녹여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세상'이 동물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는지, 또 그 세상에 맞춰 살아가게 된 첫 시작은 어떠했는지를 '나의 먼 이름에게'는 그려내고 있다. 냄새를 맡아서 동족을 확인하거나, 두려울 때의 본능,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의 고통, 애견 카페 앞에서 견종으로 구분되는 차별 등 개의 시선에서 보는 세상은 어떨까 많은 생각을 하고 썼으리라 짐작된다.   

 짧은 분량과 익숙하면서도 섬세한 삽화, 여운을 남기는 내용이 한 번 읽었어도 자꾸만 책에 손이 가게 만든다. 자신 곁의 소중한 존재가 어떤 마음으로 나의 세상에 편입되어 왔을지, '나의 먼 이름에게'를 읽으며 가늠해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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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0
김선미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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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딪혀야지. 부딪쳐도 깨지지 않도록 널 단단하게 만들어야지. 지금은 이 아이가 입김만 불어도 날아가게 생겼잖아. 네가 널 지켜 줘. 땅에 딛고 선 두 다리에 힘주고 눈에도, 가슴에도, 손가락에도 힘을 빡 주고 계속 널 지켜 내는 거야. 널 욕하고, 때리고, 힘들게 하는 아이들에게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거야. 처음에는 힘들 수 있어. 하지만 갈수록 나아질 거야. 약속해. 오늘부터 널 지켜 내는 연습을 하면 시간이 지나 네 앞에 어떤 멍청이가 나타나도 너는 깨지지 않을 수 있어." 
아, 그렇구나 지켜 줘야 하는 거였구나. 마음이 부서지려고 할 때, 나쁜 마음이 날 잡아먹으려고 할 때, 내가 날 지켜 줘야 했구나. 204" 

 스티커와 저주? 요즘 스티커하면 다이어리 꾸미기만 떠오르는데 저주와 나란히 놓이니 어쩐지 어색했다. 말이 안되는 것 같은데, MZ식 부적이 스티커 같은게 되려나? 이런 궁금증을 품고 읽기 시작했다. 첫 의뢰 내용을 보고그만 시루야, 하다가 시루 선생님!하고 부르고 싶어졌다. 꼴보기 싫은 직장 동료를 제거하는 의뢰비용이 30만원이라니? 심지어 5명 정도 되는 인원을 살짝 손봐주는(?) 비용도 80만원이다. 요즘같은 고물가 시대에 이정도 비용에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신건강을 챙길 수 있다면! 이 아니라,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저주를 하는 나쁜 행동은 본인의 정서에도 좋지 않으니까 건강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인간관계 문제를 해결해보도록 하자. 

 주인공 시루는 민속학자인 엄마 몰래 손에 넣게 된 저주책과 칠보로 장식 된 펜을 가지고 저주의 내용이 담긴 스티커를 만든다. 공부는 잘 못하지만 셈과 인터넷은 잘하는 시루는 이 스티커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할 방법을 생각해냈고, 사용자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에서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몇백까지 가격을 붙여 저주 판매를 시작한다. 시루는 나름 기준을 세워 저주를 판매하지만 저주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악의와 거짓을 목격하고 저주팔이에 회의감을 느낀다. 그때 사람들에게 붙은 저주 스티커를 떼어내는 아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저와 마찬가지로 혼자 밥을 먹는 소우주였다. 만든 사람과 붙인 사람 외에는 볼 수 없는 저주 스티커를 볼 수 있고 떼어낼 수도 있는 우주의 등장과 함께 스티커에 얽힌 과거와 반작용이 드러나며 시루의 갈등도 깊어진다. 

 고등학생인 시루와 우주에게 맡기기엔 너무나 큰 사건으로 일이 번져가지만 나름의 용기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무모함은 한 편의 모험 동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반쯤은 빈말인 가슴속의 상처를 쏟아내던 시루는 정말 세상을 흔들만한 저주의 위해 앞에서,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고 괴로워하는 사람들 앞에서 치기어렸던 마음을 정리하고 한층 성장하게 된다. 저주가 모이면 큰 재해가 일어난다는 '스티커'의 설정은 얼마 전 보았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혼문'과 비슷해보였다. 이쪽은 반대로 긍정적인 힘이 모여서 세상을 지키는 '혼문'이라는 방패막이 생긴다고 했는데, 저주가 모여 재해가 되는 것도 애니메이션에서 본 것과 비슷한 이미지로 떠올리게 되어서 흥미로웠다. 

 '스티커'는 흡입력마저 접착력 못지 않은 소설이다. 어떤 내용인지 살짝 훑어볼까 하고 잡았다가 앉은 자리에서 다음 장, 다음 장 넘어가다 다 읽어버렸다. '저주는 스릴, 쇼크, 서스펜스!' 이 모든 것들을 다 챙겨 넣은 고자극, 꿀잼 보장 청소년 소설이 등장! 초판 한정으로 책꾸 스티커도 증정하고 있다. 사실 스티커 실물 보고 약간 제작 감성을 의심하긴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보면 조금 귀여워보이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시루랑 우주 얼굴 말고 개미떼랑 구름, 스마일 넣어주시지! 다크웹 저주 구매 작성 양식 넣어주시지! 하지마요, 가까이 오지 마요, 말 걸지 마요 스티커 만들어주시지! 하고 아쉬운 마음도 남았지만, 책표지는 이미 잘 꾸며져 있는 관계로 스티커는 잘 보관해보기로 한다. 저주의 신이 퍼트린 저주책이 아직 더 남아있다면 또 다른 이야기로 '스티커'를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가득찬 재미와 반전, 약간의 감동까지! 모두 담은 '스티커'를 여름과 함께 할 청소년 도서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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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면허 - 이동하는 인류의 자유와 통제의 역사
패트릭 빅스비 지음, 박중서 옮김 / 작가정신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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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면허'의 도입부를 읽으며 "전 세계 이동이 사실상 그치다시피 한 순간(14)" 지난 코로나 팬데믹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책을 읽는 기간 동안 다시 한 번 코로나에 걸려 고생했었기 때문에 전세계를 멈추게 만든 여행의 규제는 둘째치고 코로나의 사악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하기도 했다. 

 여권이 가진 유용성에 초점을 맞춘 내용일거라 생각했는데 그 유용성의 그늘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만나게 되면서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묘한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이 불안감은 영화 [터미널]의 소개(44)가 등장했을때 극대화된다. 빅토르 나보르스키는 신분이자 보호가 되어 줄 여권이 아무 소용도 의미도 없어진 채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의 공항에서 머무르게 된다. 

 갑자기 소속과 증명이 없어져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보다 더 강한 힘과 의미를 가진 여권/증명서/물건을 강조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보다도 더 비싼 값어치를 지닌 물건, 미라에게도 "유효 여권이 제공하는 보호가 필요(61)"하다는 주장이 나온 람세스 2세의 미라 여권 사건과 대비된다. 

 앞서 입국심사대에서 묘한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는데, 책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었다. 증명이 부정되고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난데없는 이 불안이 생각보다 보편적인가 싶었다. "[파르마 수도원]의 파브리스가 오스트리아 국경 검문소를 질레티의 여권을 이용해 빠져나가려고 할 때 느끼는 불안감은 고전에 해당하는 이후의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묘사된 '여권 불안'의 전조에 해당한다. 136" 

 더불어 최근 전시를 하고 있는 마르크 샤갈의 이야기(222,250)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비록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의 신분으로 압박의 피해 국경을 넘어야 했던 샤갈 개인에게는 고난과 불운의 시간들이었겠지만, 작품세계에 대해 이해를 더해주는 이 이야기를 미리 읽고 전시를 다녀왔다면 더욱 깊이있게 관람할 수 있었을 것 같다. 

 " 어느 러시아인 망명자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은 단지 신체와 영혼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권도 필요하며, 그게 없으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할 겁니다." 시민권을 포기하고 체류하는 국민국가의 환대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자, 츠바이크는 "인간은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객체이며, 만사가 공무상의 은혜에 의한 호의 말고 자신이 권리는 전혀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고 절실히 자각하게 되었다. 238" 

 책에서 현 미국의 이민자 정책 변화로 인한 상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내용들이 있었다. 이민자 단속 반대 시위로 트럼프 정권은 60년만에 진압을 위한 군대까지 투입하여 전쟁이나 다름 없는 진압을 이어나갔다. 출생 시민권제를 폐지하고 이미 취득한 시민권이나 영주권도 박탈할 수 있다는 상황에서 츠바이크가 느꼈을 무력함과 불합리를 현재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 인종 차별이 자행되던 시대의 "여권 제도의 역사적 아이러니 (실제로 여권이 필요한 주변인과 추방자에게는 발급이 거절되었던 반면, 여권 없이도 다닐 수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특권층에게는 불편과 짜증만 야기했으므로) 160" 는 우경화 된 국제 정세와 이를 앞세워 미국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트럼프 정권에서 반복되고 있다. 

 또, 여권과 여성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 있었는데, "헤밍웨이의 '아내 동반' 여권(201)이나 조이스 가족의 여권 사진(173)"을 통해 여성은 여권에 남성의 세부 내용으로 언급/첨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초기 남성/가장의 여권 없이 여성/아내 심지어 사진에 함께 찍힌 아이들은 이동할 수 없었다. 후에 여성 개인의 서류를 소지할 수 있게 되면서 여권은 새로운 '자율성(206)'의 기념품이 되었다. 

 언젠가 세계 각국의 여권 파워를 비교하며 우리나라 여권이 가진 가치가 상당히 높다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에 퍼진 적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순위를 보며 자랑스러워하고 우리나라 여권에 적혀 있는 문구,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를 보며 감동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해나 아렌트는 "출생국과 연계가 끊어지는 것이야말로 인권에 엄청난 위기라고 주장(225)"했는데, 아마 우리가 여권 파워나 문구에 긍정적 감정을 느낀 이유도 바로 국가로부터 공인된 외부로부터의 보호와 보장을 느낄 수 있는 증명서임을 실감했기 때문이겠다. 여권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시대에 따른 사회의 변화와 별 생각 없이 10년마다 갱신하곤 하는 여권이 지닌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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