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먼 이름에게 소설의 첫 만남 36
길상효 지음, 신은정 그림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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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인간을 사랑한다. 나에게 사납게 짖어 대지 않는, 나를 굶기지도 걷어차지도 않는 인간을. 
나를 씻기고 먹이는, 숨이 막히도록 나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벼 대는, 밤이면 곁을 내주고 함께 잠드는, 해가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나를 울고 싶게 하는 인간을. 그러나 그를 사랑할수록 내 반쪽에 차오르는 것은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나는, 우리는 어쩌다가 인간의 세상에 왔는가. 26"

 첫 시작은 안타까워서 눈물이 났다면, 마지막은 벅차올라서 눈물이 났다. 이 작은 개의 이야기는 번식장에서 학대를 당하다 구조되어 한 인간의 집으로 입양되면서 시작된다. 짧게 줄인 문장 안에도 왜 한 생명이 다른 생명에 의해 이렇게까지 이용당하고 고통받아야 하는가, 모두가 알고 있는 부조리가 왜 개선되지 않는가 성토하게 만든다. 

 고통스러웠던 번식장에서의 시간부터 자신을 보살피는 알 수 없는 존재인 인간과 함께하기까지 작은 개에게 세상은 낯선 곳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작은 개는 번식장의 학대에서 살아난 생존자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색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계속되는 질문이 지금껏 이어져 온 인간과 개, 두 세상의 첫 만남을 찾아 시간을 거스른다. 오래 전 야생에서 생활하던 늑대가 두 발로 걸으며 두 손으로 사냥하던 인간 무리에게 첫 발을 내딛던 그 순간으로. 작은 개는 그토록 궁금해하던 질문의 현장에서도 그를 부르는 인간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데, 그런 점이 안타까우면서도 곁에 있는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고 머리를 한 번 쓰다듬게 만들기도 했다. 

 고대 늑대 무리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책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 읽었던 시튼의 동물기가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늑대왕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는데, 그때의 즐거움이 떠올라 금새 읽어나갔다. 먼 옛날 인간이 생존을 위해 늑대들의 습성을 따라했고, 늑대들 역시 생존을 위해 인간과의 공존을 모색했다는 주고받음을 잘 녹여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세상'이 동물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는지, 또 그 세상에 맞춰 살아가게 된 첫 시작은 어떠했는지를 '나의 먼 이름에게'는 그려내고 있다. 냄새를 맡아서 동족을 확인하거나, 두려울 때의 본능,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의 고통, 애견 카페 앞에서 견종으로 구분되는 차별 등 개의 시선에서 보는 세상은 어떨까 많은 생각을 하고 썼으리라 짐작된다.   

 짧은 분량과 익숙하면서도 섬세한 삽화, 여운을 남기는 내용이 한 번 읽었어도 자꾸만 책에 손이 가게 만든다. 자신 곁의 소중한 존재가 어떤 마음으로 나의 세상에 편입되어 왔을지, '나의 먼 이름에게'를 읽으며 가늠해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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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0
김선미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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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딪혀야지. 부딪쳐도 깨지지 않도록 널 단단하게 만들어야지. 지금은 이 아이가 입김만 불어도 날아가게 생겼잖아. 네가 널 지켜 줘. 땅에 딛고 선 두 다리에 힘주고 눈에도, 가슴에도, 손가락에도 힘을 빡 주고 계속 널 지켜 내는 거야. 널 욕하고, 때리고, 힘들게 하는 아이들에게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거야. 처음에는 힘들 수 있어. 하지만 갈수록 나아질 거야. 약속해. 오늘부터 널 지켜 내는 연습을 하면 시간이 지나 네 앞에 어떤 멍청이가 나타나도 너는 깨지지 않을 수 있어." 
아, 그렇구나 지켜 줘야 하는 거였구나. 마음이 부서지려고 할 때, 나쁜 마음이 날 잡아먹으려고 할 때, 내가 날 지켜 줘야 했구나. 204" 

 스티커와 저주? 요즘 스티커하면 다이어리 꾸미기만 떠오르는데 저주와 나란히 놓이니 어쩐지 어색했다. 말이 안되는 것 같은데, MZ식 부적이 스티커 같은게 되려나? 이런 궁금증을 품고 읽기 시작했다. 첫 의뢰 내용을 보고그만 시루야, 하다가 시루 선생님!하고 부르고 싶어졌다. 꼴보기 싫은 직장 동료를 제거하는 의뢰비용이 30만원이라니? 심지어 5명 정도 되는 인원을 살짝 손봐주는(?) 비용도 80만원이다. 요즘같은 고물가 시대에 이정도 비용에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신건강을 챙길 수 있다면! 이 아니라,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저주를 하는 나쁜 행동은 본인의 정서에도 좋지 않으니까 건강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인간관계 문제를 해결해보도록 하자. 

 주인공 시루는 민속학자인 엄마 몰래 손에 넣게 된 저주책과 칠보로 장식 된 펜을 가지고 저주의 내용이 담긴 스티커를 만든다. 공부는 잘 못하지만 셈과 인터넷은 잘하는 시루는 이 스티커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할 방법을 생각해냈고, 사용자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에서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몇백까지 가격을 붙여 저주 판매를 시작한다. 시루는 나름 기준을 세워 저주를 판매하지만 저주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악의와 거짓을 목격하고 저주팔이에 회의감을 느낀다. 그때 사람들에게 붙은 저주 스티커를 떼어내는 아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저와 마찬가지로 혼자 밥을 먹는 소우주였다. 만든 사람과 붙인 사람 외에는 볼 수 없는 저주 스티커를 볼 수 있고 떼어낼 수도 있는 우주의 등장과 함께 스티커에 얽힌 과거와 반작용이 드러나며 시루의 갈등도 깊어진다. 

 고등학생인 시루와 우주에게 맡기기엔 너무나 큰 사건으로 일이 번져가지만 나름의 용기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무모함은 한 편의 모험 동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반쯤은 빈말인 가슴속의 상처를 쏟아내던 시루는 정말 세상을 흔들만한 저주의 위해 앞에서,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고 괴로워하는 사람들 앞에서 치기어렸던 마음을 정리하고 한층 성장하게 된다. 저주가 모이면 큰 재해가 일어난다는 '스티커'의 설정은 얼마 전 보았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혼문'과 비슷해보였다. 이쪽은 반대로 긍정적인 힘이 모여서 세상을 지키는 '혼문'이라는 방패막이 생긴다고 했는데, 저주가 모여 재해가 되는 것도 애니메이션에서 본 것과 비슷한 이미지로 떠올리게 되어서 흥미로웠다. 

 '스티커'는 흡입력마저 접착력 못지 않은 소설이다. 어떤 내용인지 살짝 훑어볼까 하고 잡았다가 앉은 자리에서 다음 장, 다음 장 넘어가다 다 읽어버렸다. '저주는 스릴, 쇼크, 서스펜스!' 이 모든 것들을 다 챙겨 넣은 고자극, 꿀잼 보장 청소년 소설이 등장! 초판 한정으로 책꾸 스티커도 증정하고 있다. 사실 스티커 실물 보고 약간 제작 감성을 의심하긴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보면 조금 귀여워보이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시루랑 우주 얼굴 말고 개미떼랑 구름, 스마일 넣어주시지! 다크웹 저주 구매 작성 양식 넣어주시지! 하지마요, 가까이 오지 마요, 말 걸지 마요 스티커 만들어주시지! 하고 아쉬운 마음도 남았지만, 책표지는 이미 잘 꾸며져 있는 관계로 스티커는 잘 보관해보기로 한다. 저주의 신이 퍼트린 저주책이 아직 더 남아있다면 또 다른 이야기로 '스티커'를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가득찬 재미와 반전, 약간의 감동까지! 모두 담은 '스티커'를 여름과 함께 할 청소년 도서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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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면허 - 이동하는 인류의 자유와 통제의 역사
패트릭 빅스비 지음, 박중서 옮김 / 작가정신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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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면허'의 도입부를 읽으며 "전 세계 이동이 사실상 그치다시피 한 순간(14)" 지난 코로나 팬데믹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책을 읽는 기간 동안 다시 한 번 코로나에 걸려 고생했었기 때문에 전세계를 멈추게 만든 여행의 규제는 둘째치고 코로나의 사악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하기도 했다. 

 여권이 가진 유용성에 초점을 맞춘 내용일거라 생각했는데 그 유용성의 그늘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만나게 되면서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묘한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이 불안감은 영화 [터미널]의 소개(44)가 등장했을때 극대화된다. 빅토르 나보르스키는 신분이자 보호가 되어 줄 여권이 아무 소용도 의미도 없어진 채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의 공항에서 머무르게 된다. 

 갑자기 소속과 증명이 없어져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보다 더 강한 힘과 의미를 가진 여권/증명서/물건을 강조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보다도 더 비싼 값어치를 지닌 물건, 미라에게도 "유효 여권이 제공하는 보호가 필요(61)"하다는 주장이 나온 람세스 2세의 미라 여권 사건과 대비된다. 

 앞서 입국심사대에서 묘한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는데, 책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었다. 증명이 부정되고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난데없는 이 불안이 생각보다 보편적인가 싶었다. "[파르마 수도원]의 파브리스가 오스트리아 국경 검문소를 질레티의 여권을 이용해 빠져나가려고 할 때 느끼는 불안감은 고전에 해당하는 이후의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묘사된 '여권 불안'의 전조에 해당한다. 136" 

 더불어 최근 전시를 하고 있는 마르크 샤갈의 이야기(222,250)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비록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의 신분으로 압박의 피해 국경을 넘어야 했던 샤갈 개인에게는 고난과 불운의 시간들이었겠지만, 작품세계에 대해 이해를 더해주는 이 이야기를 미리 읽고 전시를 다녀왔다면 더욱 깊이있게 관람할 수 있었을 것 같다. 

 " 어느 러시아인 망명자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은 단지 신체와 영혼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권도 필요하며, 그게 없으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할 겁니다." 시민권을 포기하고 체류하는 국민국가의 환대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자, 츠바이크는 "인간은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객체이며, 만사가 공무상의 은혜에 의한 호의 말고 자신이 권리는 전혀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고 절실히 자각하게 되었다. 238" 

 책에서 현 미국의 이민자 정책 변화로 인한 상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내용들이 있었다. 이민자 단속 반대 시위로 트럼프 정권은 60년만에 진압을 위한 군대까지 투입하여 전쟁이나 다름 없는 진압을 이어나갔다. 출생 시민권제를 폐지하고 이미 취득한 시민권이나 영주권도 박탈할 수 있다는 상황에서 츠바이크가 느꼈을 무력함과 불합리를 현재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 인종 차별이 자행되던 시대의 "여권 제도의 역사적 아이러니 (실제로 여권이 필요한 주변인과 추방자에게는 발급이 거절되었던 반면, 여권 없이도 다닐 수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특권층에게는 불편과 짜증만 야기했으므로) 160" 는 우경화 된 국제 정세와 이를 앞세워 미국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트럼프 정권에서 반복되고 있다. 

 또, 여권과 여성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 있었는데, "헤밍웨이의 '아내 동반' 여권(201)이나 조이스 가족의 여권 사진(173)"을 통해 여성은 여권에 남성의 세부 내용으로 언급/첨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초기 남성/가장의 여권 없이 여성/아내 심지어 사진에 함께 찍힌 아이들은 이동할 수 없었다. 후에 여성 개인의 서류를 소지할 수 있게 되면서 여권은 새로운 '자율성(206)'의 기념품이 되었다. 

 언젠가 세계 각국의 여권 파워를 비교하며 우리나라 여권이 가진 가치가 상당히 높다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에 퍼진 적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순위를 보며 자랑스러워하고 우리나라 여권에 적혀 있는 문구,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를 보며 감동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해나 아렌트는 "출생국과 연계가 끊어지는 것이야말로 인권에 엄청난 위기라고 주장(225)"했는데, 아마 우리가 여권 파워나 문구에 긍정적 감정을 느낀 이유도 바로 국가로부터 공인된 외부로부터의 보호와 보장을 느낄 수 있는 증명서임을 실감했기 때문이겠다. 여권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시대에 따른 사회의 변화와 별 생각 없이 10년마다 갱신하곤 하는 여권이 지닌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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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워서 생각하기로 했다 - 현명하고 지적인 인생을 위한 20가지 조언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장은주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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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책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인간은 모름지기 누워야만 한다. (126)"는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누워있을 수 있는데 왜 누워있지 않죠?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누워서 하면 이득이 아닌가. 누워서 할 수 없어서 굳이 몸을 일으키게 만드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범상치 않은 사람인가 싶어 흥미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기 시작하기 무섭게 멈추게 되는 문장을 발견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군대에 들어갔고, 전쟁에 패한 후 어영부영 대학을 나와 17" 하는 부분이었다. 이 전쟁이 그 전쟁이 맞나? 저자가 23년 생으로 나와 있어 그 전쟁이 맞구나 헤아려보니 갑자기 눕거나 말거나 싶어졌다. 

 책의 구성이 단호한 제목을 붙이고 그에 따른 완곡한 설명으로 되어 있는데, 제목이 단호하고 다소 극단적으로 지어진 탓에 '왜? 꼭 그래야 하나?' 약간의 반발심이 섞인 의문을 갖게 되는 면이 있다. 어떤 내용인지 받아들이기 전에 벽을 먼저 쌓으며 공격적으로 책을 읽는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 생각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생활 습관으로 본다면 그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이해가 가지 않고 의문이 든다면 허심탄회하게 "왜?", "어째서?"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99"는 내용을 책에서 보고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며 읽어나가기로 했다. 

 " 아침에는 활력이 가득해서 의욕이 지나치기 쉽다. 무모한 일정을 짜기 십상이다. 36" 는 부분이 있는데 나와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보통 잠들기 전에 내일 뭐할지 생각하곤 하는데, 난 꼭 그때 의욕이 충만해져서 오늘 못했던 일들을 내일 일어나면 꼭 해야지 다짐하곤 한다. 내일은 꼭 운동을 하고, 냉장고 정리하고, 집청소도 해야지 완벽한 하루를 계획했다 일어나면 피곤해서 다시 드러눕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보통 아침에 계획한 일은 그날 반드시 하고 전날 밤에 잠들기 전 계획한 일은 아침에 일어나서 취소하곤 한다. 어떤 성향의 사람이 더 많을까? 

 책의 내용을 전부 거리두며 읽은 것만은 아니다. 누워서 생각하면 힘을 아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읽으며 공감하게 된 부분은 "다른 분야 사람하고 놀아라 (104)"였다. 확실히 분야가 다른 사람들과 모이게 되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지점을 찔러 들어오기도 하고, 몰랐던 분야에서 닮은 점을 찾게 되는 등 새롭고 신선한 활력이 도는 때가 있다. 다만 이런 경우는 정말 성공적인 날이고 대부분은 서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다 끝나거나, 배려하느라 대화의 흐름이 겉돌다가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아래의 문장만 봐도 저자는 전자의 경우를 주로 경험했음이 분명한 듯 하다. 

 " 듣기로는, 요즘 젊은 연구자들은 사람 만나길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예전 같으면 학회가 끝나고 함께 한 잔 마시곤 했는데, 지금은 각자 재빨리 돌아가 버린다. 모임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담론풍발을 경험하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게 되지 않을까. 쓸쓸하기 그지없다. 111" 

 많은 부분에서 저자가 나이 많은 구세대의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긴 하는데 이 부분에서 특히 강렬하게 다가온다. 특유의 꼬장꼬장함과 자기자랑이 곳곳에서 보이는 데다가,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다른 모임 자리가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못한 듯한 태도가 조금 웃기기도 하다. 이 뒤로도 '가로쓰기'에 대한 폭발적인 거부반응(누워서는 안 되는 문자117)이 나오는데 일본어 가로쓰기를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행위(120)"로 규정하는 이 내용도 극단적인 반대표현이라 웃음이 나온다. 또, 하이쿠 모임에 여성회원이 증가하면서 명사 중심에서 동사 중심의 변화가 생기자 즐기던 하이쿠에서 멀어지게 되었다(202)고 말하는 내용에서도 특유의 경직된 사고가 느껴지는데 이를 비판적 의식이나 개선의 여지 없이 드러내곤 한다. 

 '나는 누워서 생각하기로 했다'는 솔직하다. 이 솔직함은 때로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236)를 들었을 때의 어색함 같기도 하고, 타인의 렌즈에 찍힌 자신의 모습(237)을 낯설게 보는 것과도 비슷하다. 저자가 오랫만에 만난 아침 운동 지인이 인사차 건넨 말을 들으며 한동안 만나지 못해 고령인 당신이 " "죽은 줄 알았다"라고 말하려는 듯한 표정이어서 조금 우스웠다.(155)"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어서, 감기약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공복인 식전에 먹어야 된다는 이론(162)을 만들고 실천하는 사람이어서, 그걸 솔직히 글로 적어내는 사람이라서 불쑥 들이치는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었다. 생각보다 가볍게 빠르게 읽히는 책이니 부담없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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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살 수 없지만 요가는 할 수 있어요 - 요가, 세계여행, 그리고 제주에서 요가원 창업
곽새미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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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똑같이 쳇바퀴 굴러가는 듯한 생활에서 요가 동작을 하나씩 만들어 갈 때면 일상에 생기가 추가됐다. 21" 

 시작부터 대단했다. 운동은 일상의 남은 생기를 다 뽑아내 배달 주문할 손가락 들 힘도 없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것 아닌가요. 저자를 거쳐간 '하체 비만 탈출 계획(15)' 운동 목록은 이 분 대단한 인싸구나 싶어진다. 특히나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운동이라 여기고 있는 헬스에는 마음을 못 붙였다는 점이 더욱 재밌었다. 나랑 이렇게 성향이 다르구나. 길거리에서 우연히 전단지를 받아든 것을 계기로 성큼 요가원 1년 결제를 질러버리는 호쾌한 저자도, 그 1년 뒤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흐름으로 삶이 변할 것이라고는 몰랐음을 고백하며 시작하는 도입부는 재밌고 흥미로웠다. 

 '아무도 내가 처음인지 모른다. 그저 그들은 한 시간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온 것이다.' 33 
예전에 처음 학생들 앞에서 서면서 인삿말로 '우리가 오늘 처음 만났듯 나도 이 앞에 처음 서게 되어 특별하다는' 말을 건넸었는데, 나중에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피드백 받았던 기억이 났다. 하지말라기에 알겠다 하고 넘어갔는데 이유를 듣지 못해 아직도 왜인지 몰랐는데, 아마 저런 이유였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납득했을 것이다. 저자도 이 문구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변화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언제고 마음을 정리하기에 좋은말을 하나 얻은 것 같다. 

 두번째 파트를 읽다보면 세상이 지금 요가에 열광하고 있는 것만 같다. 요가 자석처럼 요가를 하기 위한 곳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더 그렇겠지만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요가를 배우고 즐기고 있는 줄은 몰랐다. 요가가 어렵고 유연성이 많이 필요하고 가끔 생리현상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선입견이 있었나보다. 다양한 요가 수업들과 소소한 여행기를 읽다보면 여행가서 관광 명소만 찾지 말고 내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것들을 꼽아 방문해보면 더욱 특별한 기억이 되겠구나 싶었다. 주로 마트를 구경하러 다녀오긴 했었는데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봐도 좋겠다. 

 세번째 파트에 들어서면 여행에서 돌아와 직접 요가원을 운영하게 되는 도전기를 만나게 된다. 좋아하는 것과 밥벌이가 같아지면 어떨까, 좋다는 사람 싫다는 사람으로 나뉘던데 저자의 취미와 업의 일치는 4년 동안 다녀간 오천여명의 수강생들의 평가가 말해주듯 성공적인 것 같다. 물론 그 사이에 많은 고민도 있었고 임신과 출산을 겪는 등 일상의 변화도 겪었겠지만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평화롭고 자연과 어우러진 장소에서 마음껏 요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진들을 볼 때면 행복과 만족도 함께 느껴진다. 

 게다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네번째 파트에 요가원 창업 시 알아두면 좋은 것을 담아두기 까지 했다. 요가원이 너무 많다(180)고 했던 글을 막 다 읽었는데 바로 다른 요가원들의 창업을 돕기 위해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누는 모습에 놀랐다. 심지어 보기 좋게 만들어진 2주 플랜도 따로 정리해두었다. 이 모습에서 요가원이 아무리 많아져도 선택받고 만족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이는 듯 했다. 요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자신감과 요가원 관리에 담긴 세심함을 보니 수업을 받으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덕분에 새로운 기회와 삶의 방식을 접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요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행복은 살 수 없지만 요가는 할 수 있어요'를 읽으며 더 공감도 많이 하고 얻게 되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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