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세대 TURN 5
김달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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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에게 갑자기 나타나는 이상 식욕! 플라스틱에 대한 탐닉으로 이성이 마비되고 목숨까지 위협받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 

 시작이 어려웠다. 읽어야 할 책들이 몇 권 있었고, 그 중에는 오랜 시간을 요할 것 같은 책도 있고 도서관 대출기한이 끝나가 금방 반납해야 할 것도 있었다. '플라스틱 세대'는 그에게는 애석하지만 나에게는 다행히도 둘 다 해당되지 않았다. 거기다 다른 책들에 비하면 읽기도 편할 것 같아 뒤로 미뤄두고 나중에 읽어볼까 싶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 하루가 거의 끝나갈 무렵, 뭔가를 제대로 시작하기엔 부담스러운 시간에 가벼운 마음으로 한두장 읽어보다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속도감있는 빠른 전환은 몰입도 빠르게 만들었다. 재밌다. 재난물을 좋아하는 취향과도 맞았다. 

 " "웃기지 않아요? 연간 몇천만 톤씩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해서 환경을 망쳐왔던 인간들이 이제 그걸 다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는 게. 적어도 지구는 덜 아프겠어요." p36"
솔직히 좀 뻔하다고 생각한 면도 있다. 주로 인간이 파괴한 환경이 자연의 분노로 돌아와 그 댓가를 치른다는 메시지는 자연보호 표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안에 담긴 선한 의도를 넘어서는 특별함을 갖거나 매력을 찾기 어려운 주제다. '플라스틱 세대' 역시 특유의 공익광고스러움을 가지고 있지만 특별했다. 플라스틱을 먹는 이상식욕 증상이 나타났습니다,에서 끝나지 않고 세대로 이어지는 변화를 꾀했다. 이야기의 범위가 길어지면서 전개에 속도감을 더하고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가끔 인류의 진화는 어떻게 이루어질지 생각하곤 하는데,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는 조건은 무엇인지를 두고 신체와 심장, 폐 같은 장기를 대신하는 것이 인공물이라면 사람과 로봇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으로 두는가, 기억을 저장하고 학습을 보조할 수 있는 칩이 이용된다면 사람과 AI의 경계는 어떻게 되는가 같은 문제를 떠올렸다. '플라스틱 세대'는 새로운 진화를 맞이하는 인류를 상상하게 한다.  

 " 재현이 온라인에 남긴 증언은 과연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MZ세대라고 불리는 1990년대생을 중심으로 퍼진 알 수 없는 플라스틱 섭취 현상은 그동안 체내에 축적된 환경호르몬이 내분비계에 영향을 미쳐 끝도 없이 플라스틱을 원하도록 세포 변형을 일으킨 결과였다. 그들의 뇌는 플라스틱을 음식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의 몸은 자기가 원해서 받아들인 것에 의해서도 쉽게 파괴됐다. 플라스틱으로 인해 죽어가는 해양 포유류의 전철을 밟게 된 것이다. p55 " 애석하게도 MZ세대들이 그 플라스틱 세대의 첫 걸음이 되었는데, 안타까웠다.  MZ라는 명명도, 그걸 대표하는 이미지도 기성세대의 마음대로 규정지어졌는데 플라스틱 세대로도 꼽히다니. 자원을 마음껏 써온 MZ보다 더 윗세대는 이상식욕이 발현하지 않는데, 빨대도 종이로 대신하게 되었던 MZ세대들은 플라스틱 빨대를 그리워했던 만큼 플라스틱을 먹고 싶어하게 된다. 영원히 고통받는 MZ 살려. 

 재난영화에서 앞으로 닥쳐올 재난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주인공 집단이 늘 그러하듯, 이 이상식욕과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주인공 예인 역시 고단한 길 앞에 놓여진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야만 하는 주인공의 숙명을 안고 세대의 흐름을 거슬러 나아간다. " 예인은 두렵고 무서웠다. 그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을 강하게 결박한 경찰의 팔에 얼굴을 파묻고 매달렸다. 당신도 죽을 거야...... 비로소 예인의 중얼거림을 알아들은 경찰이 힘을 풀었다. 괜찮다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예인을 달랬다. "죽는다고요, 진짜 다 죽는다고." 예인은 현실감을 되찾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아니, 그것은 뒤늦게 찾아온 현실감이었다. p108 " 누가 모든게 안전하고 검증되었다는 말 대신 모든게 망가졌고 결국 다 죽을거라는 말을 믿고 싶겠는가. 듣기 조차 싫을 현실을 폭로한 예인은 재난의 중심으로 끌려간다. " 사람, 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눈은 완전히 풀려 있었다. 먹잇감을 찾으려 필사적으로 쓰레기통을 뒤지고 차도로 뛰어들었다. 충희의 시선을 따라 이 광경을 함께 보게 된 예인이 차게 얼어붙었다. 충희는 예인에게 등을 내보이며 업히라고 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p156 " 좀비를 다룬 아포칼립스 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요처럼 책을 읽으며 플라스틱으로 인해 상실된 인간성과 치안이 무너진 도시의 모습을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다. 인지의 순간은 부정과 함께하고, 진정한 혼란은 인식과 인정 사이에서 발생한다. 현실의 혼란에서 우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하겠지만. 

 하루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읽기 시작한 책은 다음날의 시작이라는 넉넉함을 맞이했다. 조금만 읽어봐야지,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빠져들어 멈출 수가 없었다. 아주 잠깐 사이에 남은 책장의 두께보다 읽은 책장의 두께가 더 두꺼워진 것 같았다. 그만큼 빨리 줄어드는 책장이, 어차피 조금만 더 읽으면 되니까 그냥 마저 읽어버리라고 부추겼다. 모자란 잠은 지금이 아닌 나중의 내가 감당하면 될 일이니까. 자연과 건강을 해치는 플라스틱을 다음 세대에게 넘기는 무뢰한처럼 생각했다. 다음날을 피곤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부디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첫 장을 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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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 - 삶이 풍요로워지는 여덟 번의 동양 고전 수업
강경희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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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필사를 시작했는데, 정말 이제 막 시작했는데 '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 출간 소식을 봤을 때 지금 딱 필요했던 책이라 여겨졌다. 아무래도 고전은 필사하기 좋은 문구들을 많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는데 다르긴 했다. 읽다보니 필사하기 좋은 문구들이 지나치게 많았다. 예전에는 뻔한 소리라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을 내용도 이것도 내 마음 같고, 저것도 내 마음 같아졌다. 그동안 나이만 헛먹었나 싶었는데 드디어 어른이 된 것일까 고전이 지루하거나 고루하게 느껴지지 않고 흥미롭고 재미있다니 좋으면서도 어떤지 씁쓸하다. 어쩌면 이 책이 사회초년생, 이제 막 성인이 된 이들에게 더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야 공자님 말씀을 좀 알겠구나 싶은 중년만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연령층에게 공감과 의지가 될만한 내용이 많다. 더불어 저자가 글을 잘 써서 받아들이기 쉬웠던 점도 있다. 

 티비 프로그램 중에 일반인이 나오는 연애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서 서로의 감정을 주고 받는 프로그램은 매번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놀라움과 재미를 준다. 굉장히 자극적이다. 방송이란 것에 준비되지 않은 일반인 출연자들이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던 말과 행동이 모든 사람에게 고스란히 보여진다는 것은 물론이고, 천천한 흐름에서라면 이해가 될 만한 면도 빠르게 편집되어 오해를 유발한다. 대체 왜 저런 언행을 하는 것일까 상대방을 어리석게 여기는 마음이 들 때면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판단하면 안된다는 말을 떠올린다. 누군가의 언행을 보고 그를 평가하고 비난하고 싶어질 때 쉽지는 않지만 "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사태의 일부라는 것, 입장이나 관점이 달라지면 얼마든지 다른 면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는 시비판단이나 독선, 아집 등으로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p120 " 는 내용을 떠올릴 것이다. 어떤 사건들이 시간이 지난 뒤에 다른 국면을 제시하여 놀라움과 반성을 야기하는 것처럼 남보다 자신을 우선하여 되돌아보기를 또다시 다짐한다. 

 " 동파는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해하거나 전전긍긍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므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이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냥 놓아두는 것 이야말로 마음의 짐을 가볍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p114 "
 첫 직장을 다닐 적 일이다. 금요일 퇴근 전에 내가 했던 일에 큰 실수가 있었음을 발견했다. 퇴근시간 이후엔 프로그램이 막히기 때문에 일이 어찌되었든 집에는 갔고, 그 주말 내내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어떡하지' 걱정하느라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입맛도 없었다. 월요일이 되면 문제를 발견한 누군가 나를 혼낼 것 같고, 큰일이 난 것만 같고, 어찌됐든 다 망해버린 것만 같았다. 늘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더 월요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세상이 망해서 출근을 안해도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커다란 불안과 공포를 안고 회사에 갔더니 주말 내내 나를 괴롭혔던 문제는 사실 내 업무 과정에서의 실수가 아니라 회사 시스템 내에서의 오류로 야기된 것이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때 나는 뭔가를 깨달았었다. 내가 그토록 걱정하고 불안해했던 문제들은 생각보다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었다. 내 인생은 그런 문제 한두가지를 이유로 내가 걱정하는 것만큼 망가지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시간을 낭비하고 괴롭게 만드는 것은 나의 불안이었다. 한때 너무나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 이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지나고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 뒤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278), 실수는 날 어떻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난 실수를 어떻게 할 수 있다, 어쩌라고' 같은 직장인 마음가짐을 얻었다.

 그럼에도 " 실패라는 말은 언제나 두렵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가능한 한 실패를 경험하지 않기를 바란다. 실패로 인해 겪는 마음의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아프다. 그처럼 자신이 초라하고 쓸모없고 무능해 보이는 때가 없다. 때론 남 탓, 부모 탓, 세상 탓 등 문제를 외부로 돌리기도 하지만, 실패가 가져다주는 쓰라림의 가장 밑바닥에는 결국 자기 자신의 무능함을 마주해야 하는 고통이 똬리를 틀고 있다. 특히 능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그 쓰라림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p177 "  과거의 나를 불안에 떨게 했던 것도 실패가 두려웠기 때문 아닐까. 그때의 나는 실패가 부끄러웠다. 아마 요즘의 실패는 그보다 더 할 것이다. 실패 후에 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기가 어려운 사회에서 실패의 리스크는 치명적이다. 실패하는 것이 스스로의 무능을 드러내는 수치와 고통뿐이라면 차라리 낫다. 지금의 실패는 생존에의 위협에 닿아있다. 실패를 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고? 실패를 하면 길이 막힌다. 요즘 세대는 앞에 놓여진 길이 최대한 막히지 않도록 가장 안전한 길을 찾아 나아갈 수 밖에 없다. 막힌 길 앞에서 뛰어넘을 계단을 만들기도, 뚫을 구멍을 내기도 시간을 너무 많이 소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창한 뜻을 세우기보다 그저 남들만큼만 되고 싶은 세대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노력을 믿으란 말을 할 수 없다. 대신, " 실패의 모든 원인이 자신의 능력하고만 결부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실패를 전적으로 자기 무능의 탓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많은 다른 요인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열어놓는 것이다. p203 " 탓을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실패는 복합적인 요인과 상황의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하라고 해두고 싶다. 

 앞서, 필사를 시작하면서 '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말을 했는데 책 안에서도 글로 쓰기에 대한 내용이 나와 반가웠다. " 그런데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글쓰기다. 글로 적는다는 것은 모호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종이 위에 문자로 옮기는 행위다. 종이에 적힌 것은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므로 직관적인 관찰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머릿속에서 어지럽고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클어진 것을 종이 위에 문자 형태로 고정시켜 놓는 것은 모호하고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이나 감정을 구체적으로 실체화시키는 일이다. p213 - 그리고 적은 것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면 현재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지, 사건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어떠한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과 고통 사이에 틈이 생기면 그 고통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고, 마침내 자신의 삶에 닥친 고통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때 비로소 치유와 성장이 시작된다. p225 "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의 입지마저 흔들리는 때에 직접 종이 위에 손으로 글을 적는 필사는 또 얼마나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필사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항상성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글로 적는다는 행위 안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내용을 보니 좀 더 의지가 다져졌다. 

​ 기대보다 재미있게 읽었고 얻어가는 것이 많았다. 선입견을 버리고 고전에 발을 들여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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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도 유행이 될 수 있을까? 
간만에 필사를 시작해서 필사에 대한 ㅇ이야길 쓰려고 했더니 상품도 이미지도 넣을 방법이 없다 
글씨크기 조차 바꿀수없는데 투표넣기는 활성화되어 있다.. 페이퍼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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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목민심서 (다산의 지혜 에디션) 다산의 지혜 에디션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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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이 공직에 오른 사람이 갖춰야 할 처신인지라 공과 사의 구분을 확실히 해야 함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받은 
 서신을 읽을 때는 관용초를 끄고 개인초를 켜서 읽었다는(p87 율기 6조 5. 씀씀이를 절약함) 내용은 인상적이기도 하고, 회사에서 개인 전자기기 충전을 금지한다는 일본의 사회 분위기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정선 역시 한국인이라 이는 '지나치'긴 하단 내용도 덧붙여져 있어 재밌었다. 공직에 몸담고 있는 것이 아니어도 공공의 물품을 아끼고 주어진 몫 이상의 것을 탐내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직장에서 제공하는 편의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소확횡'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사회 분위기에 반해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깨닫게 된다. 

 여러모로 자극이 되고 생각할 점이 많지만 모든 내용이 교훈적으로 공감되는 것은 아니다. " 내가 바야흐로 힘써야 하는데 어찌 남을 책망하겠는가? 나를 예로써 규율하고 남을 보통사람으로 기대하는 것이 원망을 사지 않는 길이다. p73 율기 3. 집안을 다스림 " 같은 내용에서 남=백성=사람 들을 가르치고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한정해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언뜻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게 대하라는 의미로 보이지만 " 백성들은 조, 쌀, 실, 삼 등을 내어서 위를 섬기는 것을 본분으로 여기기 때문에p120", "백성이란 즐거워도 머물러 있고 괴로워도 떠나지 못한다. 몸이 토지에 박혀 마치 밧줄에 묶여 매를 맞는 것과 같으니 비록 그곳을 떠나지 않더라도 고통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p69" 같이 애민과 우민의 사이에서 사람에게는 계급이 있고 그에 따라 주어지는 책임과 소양이 다르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음이 보이기도 한다. 

 또 하나, 의외로 외모에 관해 박하게 평하고 구분짓는 내용이 종종 나오는데 " 가장 불쌍한 것은 못생긴 수급비이다. p176 / 무릇 사람 보는 법은 본래 위엄 있는 모습에 있다. 무인은 용모와 풍채가 더욱 중요하다. 키가 난쟁이 같고 누추하기가 농사꾼 같으며, 물고기 업에 개 이마를 가져 그 모습이 괴상한 사람은 앞에 나란히 세워서 백성들을 대하기 어렵다. p179 이전 6조 3. 사람 쓰기 " 다른 부분들은 지나치리만큼 공정하게 처신해야 함을 강조하는데 이런 민감한 내용이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드러나있는 점이 달라진 시대와 인식을 느끼게 해준다. 

 목민심서를 두고 오랜만에 필사를 시작했다. 한동안 필기구를 잡지 않은 손에서 펜이 헛돌았다. 읽는 중간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고르고 손에 힘을 주어 따라 적으면서도 속으로는 더 보기 좋게 쓰고 싶다는 조바심이 일었다. 다른 사람들은 잘하는데 내 것은 형편없어 보여 공개하고 싶지 않다가도, 그런 생각이 들면 또 시작한 필사를 금방 그만두게 될 것 같아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럴 때 " 어리석은 자는 배우지 못하고 무식해서 산뜻한 옷에 좋은 갓을 쓰고 좋은 안장에 날랜 말을 타는 것으로 위풍을 떨치려고 한다. p28 부임 6조 2. 부임하는 행장 꾸리기 " 는 문장을 떠올렸다. 남의 눈에 보기 좋게 꾸며보이려는 어리석은 마음을 버리자고, 아무리 꾸며도 내 것이 아니면 남의 눈에도 가치없음이 드러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을 비우는데 도움이 됐다. 

 고전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지루하고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이미지는 벗어나고 시대를 넘나들며 관통하는 삶의 지혜에는 감탄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고전 읽기, 필사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목민심서로 시작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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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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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투모로우'에서 이상기온 때문에 뉴욕이 물에 잠기고 기온이 급격히 낮아져 주인공 일행이 뉴욕 공립 도서관으로 몸을 피하는 내용이 나온다. 도서관은 튼튼하게 지어졌으며 충분한 대피 공간이 있고 유사시 활용할 땔감(!)들도 대량 보유하고 있었다. 세상이 망하게 될 만한 상황에서 인류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쌓아올린 거의 모든 것에 대해 기록해둔 도서관의 실용성이었다. 새로 생기는 도서관들이 교육을 받는다면 필수로 봐야할 영화로 투모로우를 꼽지 않을까. 이 영화를 보고 난 뒤로 재난이 오면 어쩌면 도서관이 가장 최후까지 남을 공간이 될 것 같아 도서관에 가서 숨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도서관으로 도망가야지, 계획을 세우는 것은 둘째치고 하다하다 도서관에 대한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긴 시간동안 책을 읽어왔으니 너네 집은 어떠냐며 호구조사를 좀 해봐도 그렇게 큰 실례는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종종 도서관의 책들을 데리고 나와 바깥 공기를 마시게 해주고 다시 들여보내는 산책을 함께 해놓고, 지금껏 그리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외려 무심했을지도 모른다.

 배우고 담은 것이 많은 댁이라 그런가 책들의 집이라 할 수 있는 도서관의 역사는 깊다. 그리고 대부분 오랜 시간을 굵직한 사건들 틈에 자리하고 있어 굴곡있는 여정을 지나왔다. 그토록 역사적인 도서관들은 어김없이 일제의 횡포 아래 명맥이 끊겨 있거나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오점을 달고 있다.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대학도서관을 갖지 못한 이유(p29)"는 소제목만 봐도 또 일본이구나 싶어진다. 책을 펼치고 백여 쪽을 읽는 내내 도서관이 외압과 매국에 시달리는 내용이 이어진다. 심지어 우리가 쓰고 있는 도서관과 사서라는 단어조차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용어(p394)"가 그대로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도서관의 수난은 강점기가 지나고 나서도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잖는가. 평화로운 미국은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한 배경으로 도서관이 쓰이지만 격동의 근현대사를 가진 우리의 도서관은 말 그대로 피난처이자 싸움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도서관은 민주주의를 담고 있는 책의 보관처가 아니라, " '투쟁의 현장'으로, '민주화의 무대'로 기능(p255 도서관이 '민주주의의 최전선'이었던 시절)"했다. 이 역사는 다시 기록이 되어 도서관에 남겨져있다.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다양하게 존재하는 '국가도서관'의 기능과 의의를 꼬집은 내용(p338 한국에 '국가도서관'이 많은 이유?)이다. 대학도서관이 가진 역사와 상징성을 잘 보여주었던 것처럼 국가도서관이 가진 문제점과 한계 또한 잘 정리했다. 특히나 우리 세금으로 운영이 되는 시설이니(p366) 이용률은 적으면서 '관장' 직위나 문제시 되는 현실을 알게되는 꽤 불만스럽다. 도서관이란 시설은 그 자체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 여겼던 단순함을 재고하도록 만들었다. 도서관에 대한 책을 읽게 되면서 그저 역사성이 있는 유명한 도서관에 대한 정보를 조금 얻고 가까운 몇 곳을 직접 방문해보면 좋겠다는 가벼운 기대를 했는데 북한(p368)이나 개신교(p426)와 관련된 내용까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북한 도서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니(p384). 책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들이 많이 생겨났다지만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문화를 조성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어렸을 때 동네 주민센터 이층에 아주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사무실 크기 공간 안에 서너줄 쯤 되어 보이는 칸막이 책상들이 있고 사방 벽에 이러저러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찾는 사람도 별로 없어 침묵이 내려 앉은 작은 도서관은 갑갑했지만 그 안에 있는 책들 아무거나 마음대로 가져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때 어떤 책을 봤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도서관의 분위기만은 아직도 기억 난다. 중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하러 곧잘 찾아갔지만 더 시간이 지나 주민센터의 이름이 몇 번 바뀌면서 이층의 도서관이 없어지고 휴게공간으로 바뀌었단 소식을 듣고 섭섭했었다. 박완서라는 작가를 탄생시킨 "어린 날의 찬란한 빛(p418)"까지 되지는 않지만, 그 작은 도서관의 존재는 변변치 않은 사람이 가진 얼마 되지 않는 좋은 점을 남기는데 분명한 도움이 되었다. 요즘 정부의 긴축 재정으로 지역의 작은 도서관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때의 생각이 떠올랐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고 사람들의 마음이 식고 생각이 굳어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사유하도록 해야 할 텐데.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을 읽으며 도서관이 어떤 때에 힘든 시기를 지나왔는지 자연히 알게 된다. 특히 경복구의 집옥재를 수식하는 '작은 도서관'과 "주인이 제 역할을 못 할 때 나라는 어떻게 될까(p275)"는 내용은 요즘의 상황을 연상토록 한다. 얼마 되지 않는 이용자들이 안타까워하는,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크게 체감하는 작은 도서관들의 고난은 지금 우리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1873년 프랑스 해군 쥐베르의 '조선 원정기' 기록에 따르면 "이 곳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 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고 했다. 남의 나라에 싸우러 와서 잘도 봤네 싶지만, 인상적인 기록이다. 요즘은 책 읽는 사람이 드물다. 독서가 우리에게 자극을 주기까지 속도가 느리고, 직관적이고 공감각적인 콘텐츠들 사이에서 번거로운 이해의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겠다. 그렇다고 해서 독서에 대한 열망이 사그러진 것만은 아니다. 도서전에 가는 것을 팝업스토어를 찾는 것처럼 힙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십수년 전에 독서 열풍을 일으킨 독서장려 티비 프로그램 재방영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세계적 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관심으로 서점에 오픈런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읽는다. 도서관이 시대의 굴곡에도 종하지 않고 그 역사를 계속해서 이어나간 것 처럼, 책을 읽는다는 오래된 행위는 앞으로도 그 역사를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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