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리미널 씽킹 - 변화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데이브 그레이 지음, 양희경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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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인 '리미널 씽킹'이라는 말이 매우 생소했다. "'리미널'이라는 단어는 '문턱'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리멘'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문턱을 "경계, 한계, 또는 가장자리"의 의미로 보고 리미널 씽킹을 "경계에서 생각하기"로 정의한다. "경계는 바뀌고, 재고되며, 재구성되고, 재편성"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이의 경계, 익숙한 것과 색다른 것 사이의 경계, 낡은 방식과 새로운 방식 사이의 경계, 과거와 미래 사이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기를 통해 타인에게도 이와 비슷한 변화를 이끌어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힘"을 꾀하는 것이다. 언뜻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쉽게 말하자면 다방향으로 시선을 옮겨 문제를 바라보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혁신적 사고를 하자는 의미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책에서 여러번 강조하고 있는 점은 아집을 버리고 관용적 시선을 가지라는 내용이었다. 첫 예로 나왔던 맹인과 코끼리 우화부터 90년대 초의 저자의 이직 경험에 관한 내용들은 자신이 보는 것으로 전체를 이해하는 것과 자신이 이해하는 것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경구 "문제는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이해하는가'이다"를 인용하며, 자신이 본 것, 경험한 것의 아집에 빠지면 스노글로브 속 세상에서 창조된 자기 폐쇄적 믿음 거품에 둘러싸인 것과 같으며 이는 맹인이 손으로 커다란 코끼리를 더듬어 전체를 이해하려는 시도와 다르지 않음을 역설한다. 처음 어색했던 것에 비해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내용을 설명하고 있고, 읽어보면 보편적인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어 부담없이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러 제안들을 흥미롭게 읽었지만 그 중에 가족 치료와 관련된 예시가 있는 "실천 6 일상의 틀을 깨라" 단락은 다소 아쉬웠다.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가 생긴 예를 들고 있는데, 귀가가 늦고 자신의 방을 정리하지 않는 반항적인 아이와 게임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예시 안의 부모는 그들을 단속하고 언성을 높여 화를 내며 훈육하는 태도를 취했고, 이는 모든 상황 자체가 "일상의 틀"로 구조화 되어 문제가 악화될 뿐 해결될 수 없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취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다른 반응을 보이면 아이 역시 문제 행동을 멈추고 달라진 반응를 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는 다소 이론적인 예시로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특히 아이가 게임을 하고 있을 때 와이파이 장치를 꺼버린다는 해결법은 오히려 반항심을 더 키우는 행동 아닐까 싶었다.

 

 자기 계발이나 성공법이 담긴 내용의 책들을 읽을 때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데, '기적의 리미널 씽킹'은 부담없이 가볍게 읽어나간 편이다. 책의 구성이 한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은데, 폰트가 약간 크고 첨부된 표나 간단한 그림들이 중간중간 개념을 단순화 시켜주면서 가독성을 높여주었다. 강조하고 있는 내용들이 크게 새롭거나 획기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이 느껴질때 혹은 활력을 위한 약간의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가볍게 읽어보면 좋을 내용이다. 책의 관점을 조금 더 확장한다면 책에서 내세우는 9가지 실천을 통해 역지사지의 태도를 훈련해보고 싶다면 좋은 계기가 되어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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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밀리언 특별판) - 20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8.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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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처음 읽으면서 든 생각은, '협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 것일까. 였다. 책에서 만나게 되는 가장 첫번째 사례는 이미 이륙 준비에 들어간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노력한 학생의 이야기다. 닫힌 탑승게이트 앞에서 실랑이하다 창 너머로 보이는 조종석의 기장 근처로 가서 그들을 간절히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예외적으로 비행기의 엔진 소리가 잦아들고 기장의 탑승 허가가 떨어져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이륙 준비중인 비행기를 세웠다고 하니, 엄청 대단해보이는데 사실 이런 일들은 일상에서 종종 경험해볼 수 있는 유형이다. 버스 정류장을 벗어나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따라가 문을 두드려 탄 경험이 있다면 느낌이 올 것이다. 이 부분에서 '협상'의 범위가 모호하게 느껴졌다. 이 첫 예에서부터 이는 협상이라기 보다는 상대방의 인정에 호소한 일방적인 부탁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 학생이 도착지에 내려서 기장을 만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우린 좋은 협상을 했습니다. 라고 하면 그것이 적합한 표현이 될까? 예시의 범위를 넓게 잡은 것은 아닌지 아쉬운 시작이었다.

 

 이 책에서는 협상을 위한 열두 가지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1 목표에 집중하라, 2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라, 3 감정에 신경 써라, 4 모든 상황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라, 5 점진적으로 접근하라, 6 가치가 다른 대상을 고려하라, 7 상대방이 따르는 표준을 활용하라, 8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마라, 9 의사소통에 만전을 기하라, 10 숨겨진 걸림돌을 찾아라, 11 차이를 인정하라, 12 협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라. 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그것이다. 이 열두 가지의 전략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내용이고 특히, 첫번째 목표에 집중하라는 부분에서 언급한 회의 준비 내용은 크게 공감되었다. 한 안건을 가지고 회의에 참여하는 공동체 인원들이 서로 목표를 달리 해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때 회의는 장거리가 되는데, 회의에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는 커녕 서로의 이견을 가다듬는 일에만 진을 빼는 상황이 생긴다.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일이라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보통의 내용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미리 준비하여 대비하라는 위주의 조언을 한다. 감정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강조하는 한 편, 때로 인정에 호소해서 해결되는 일들의 예를 뒤엎고, 타인에 대한 인정없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는 예도 있었다. "한 학생이 밤 11시 5분 전에 맥도날드에 가서 감자튀김을 샀다. 그는 감자튀김이 눅눅한 것을 보고 새걸로 바꾸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점원은 5분 뒤면 문을 닫는다며 거절했다. 학생은 말없이 카운터 한 쪽 끝에 있는 광고지를 들고 다시 점원 앞에 섰다. 유인물에는 언제나 신선한 제품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기 맥도날드 맞죠?" 점원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광고지에 언제나 신선함을 보장한다고 적혀 있네요. 문 닫기 5분 전에는 신선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없는데요?" 결국 학생은 새 감자튀김을 먹을 수 있었다. -p.92 제 4강 표준과 프레이밍에 대하여" 의 내용을 보며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고 호소하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상대의 감정과 상황은 철저히 배제하라는 내용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사례들은 책에서 강조하는 협상법이 아닌 제목 그대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법에 가깝다.

 

 10강에 이르면 사회적 분위기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도,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의 마음을 어지럽힐 만한 취업준비 사례들이 나온다. "나는 면접에서 까다로운 면접관을 만났다고 불평하는 학생들에게 "면접 볼 때가 그나마 그 사람이 제일 친절한 것"이라는 일침을 놓는다"는 내용이나, "나는 해마다 수백 개의 이력서를 받아본다. 그러나 우리 회사에 대해 제대로 조사한 흔적이 보이는 이력서는 드물다.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보지 않은 탓이다."는 내용들은 약간은 꼰대스럽다. 게다가 14강의 원하는 서비스를 얻는 법으로 가면, 서비스업을 조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읽기 곤혹스러운 진상 사례들도 마치 '협상'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은 것으로 끼워냈다. 흥미로운 내용이긴 하지만 호감가는 내용은 아니었다. 자신이 너무나 손해만 보고 사는 것 같다면, 그 예로 제대로 된 컴플레인을 못해서 잘못나온 메뉴을 억지로 먹어 후회된 적 있다면, 불량품을 사놓고 교환, 환불을 하는 일이 망설여져 그냥 방치해둔 적 있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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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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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남 오빠에게'를 받은 택배 포장을 풀면서 속으로 '드디어 이 불온서적이 내 손에 들어왔구나'하고 생각했다. 이 시대에 이를테면, 불온서적이란 것을 정한다면 페미니즘의 필터에 걸리는 책들이지 않을까. 워낙 입장이 분명히 갈리는 쟁점이기 때문에, 집에서도 다른 책들 사이에 '현남 오빠에게'를 밀어넣어뒀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궁금했던만큼 이 책이 가지는 의미가 싫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대지 않고서 밖으로 표출되기 어려운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가깝더라도-가족이더라도- 평소의 생각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더욱이 가까울수록 더 알고싶지 않고, 들키고 싶지 않은 다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이어지는 단편들은 고통스럽게 읽었다. '불편'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사소한 일에 예민하게 구는 일부 여성들을 희화화하고 비꼬며 대표하는 것이 되어버린 탓에 대체될 다른 표현을 쓸까 생각해봤지만, 정말이지 불편한 요소들이 줄지어 나오는 내용에 읽는 것이 고역스러웠다. 묘사된 인물과 상황들은 지극히도 보통의 평범한 것들이었는데도, 지금 종이위에 인쇄된 글로 마주하니 수동적이고 어리석게 받아넘겨온 부조리들로 점철된 후회와 분노가 느껴졌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책들 사이에 '현남오빠에게'를 밀어넣는 자신도 있었다.

 

 자신이 느낀 부조리와 괴로움을 의식하면서도 고작 소설 책 한 권조차 책상 위에 놓기 꺼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페미니즘이 잘못되었다, 입맛 좋을대로 해석한다, 이기적이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일부 여자들이 내세우는 비논리다. 이런 말들이 이 책 한 권을 들고 거리로 나가 어디서든 책을 읽을 시도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 생각을 드러낸다는 것은 "너도 00이었어?" 라는 이상한 질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때로 자신이 느낀 것조차 진짜 그렇게 느껴도 괜찮은 것인지 검열해야 한다는 강박을 지우지 못하게 만든다. 가끔 '현남 오빠'가 해줬던 것들 중에서 '그래도 이건 괜찮네'하고 평가하던 자신도 있었으니까.

 

 문득 '이방인'이나 '화성의 아이'로 내용이 흘러갔을때는 이어진 고통들에 비하는 자극이 왜 더 주어지지 않는 단편들이 나올까 의아했다. 좀 더 공감하고 분노하고 싶었다. 결국은 또 수많은 여성들이 읽겠지만, 여기 미지의 인물로 그려진 현실의 단면이 있음이 명시된 단편들이 이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당신의 평화'나 '현남 오빠에게'처럼 즉각적인 반응이 올만한 자극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이들 작품들이 가진 의도 역시 충분히 공감되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에피소드라 생각하고 있었던 '라이카'에 대한 내용은 특유의 처연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추모곡과 함께 감상하기를.

 

 솔직히 말하자면 표제작 '현남 오빠에게'에서 느낄 수 있는 작품적 감흥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점차 고조되어 마지막에 표출된 분노와 경멸은 아쉬운 마무리였다. 이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같이 병맛스러운 에피소드들과 가까운 이의 연애사정을 듣고 참견하고 싶어하는 심사가 자극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작품이 나와 많은 관심을 받게 된 상황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더 괜찮게 느껴진다. 아직 '82년생 김지영'이나 '딸에 대하여'를 읽지 않았는데, 곧 짬을 내어 읽어보고 싶어졌다. 더 큰 자극을 기대하는 중독자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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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인문학 - 조선 최고 지성에게 사람다움의 길을 묻다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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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풀어진 마음을 달랠 길 없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긴 연휴가 일상을 잠깐 무너뜨렸다고 생각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도 아닌 것만 같다. 그동안 버릇처럼 해오던 일들이 쉽게 손이 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한껏 풀어짐에 기대어 얼마간을 지나보내고 나니 이제서야 퍼뜩 정신이 드는 것 같다. 아침에 본 일기예보에서 주말 즈음 눈이나 비가 올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제서야 짧고도 어설프게 한 계절을 지나왔구나 싶어졌다. 어쩌면 가을을 탔으리라.  

 

 역사평론가 겸 고전연구가인 저자 한정주의 신간 '율곡 인문학'은 율곡의 "자경문"을 통해 그의 삶과 사상을 살펴보고 있다. 각 장은 입지, 치언, 정심, 근독, 공부, 진성 그리고 정의로 구분되는 7장으로 되어 있다. 각 장 안에서도 소주제들이 나뉘어져 있어 설명이 지리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큰 장점이었다. 자칫 생몰을 늘어놓는 위인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일화들은 그의 사상적 기반을 설명하는 정도의 에피소드로 기능해서 오히려 아쉬움을 느꼈다.

 

 전에 유시민 선생이 방송의 한 티비 프로그램에서 강릉의 오죽헌을 찾아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의 역할만 부각되어 있음을 지적한 바가 있었다. 마침 인상적으로 생각했던 두 인물이 3장 정심의 구방심공 [어지러이 흩어진 마음을 다잡아라] 부분에서 나왔을 때 주의깊게 읽었다. 특히 이이가 자경문을 쓰게 된 배경 중에 1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정신적인 방황을 한 4년이란 시간이 있었으니 이이의 생에서 신사임당이 미친 영향이 매우 컸음을 짐작하게 했다.

 

 특히 이와 비교되는 일화로 6장 진성의 전력어인 [사람을 정성껏 대하라] 부분에 그의 서모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어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위인전을 읽으면서도 두 사람에 대한 내용만 알았지, 서모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었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운 내용이었으면서 한편으로는 이이의 아버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주지 못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사임당에 비해 부족한 롤모델이었다면 그는 어디에서 빈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인물을 찾았을까 궁금해졌다.

 

 율곡의 삶을 위인전으로 읽던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으나 이제 다시 살펴보니 그가 가진 기량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새삼 안타까웠다. 이 책의 근간이 되는 "자경문"은 그가 20세 때 지었다고 한다.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성숙도가 과거와 지금이 다르다고는 하나, 그 나이에 이미 스스로의 삶에 있어 그 방향을 정하여 세울 수 있었다니 뛰어난 인재로 평가될 만하였다. 또한 퇴계와의 접점이 짧아 두 학자가 동시대에 활동할 수 없었던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보통은 책을 읽으면 2-3일을 넘기지 않는다. 하지만 긴 시간을 더디게 보내면서 '율곡 인문학' 역시 더디게 읽었다. 그동안 항상 인문학이란 대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사전에 정의된 말로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나름의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과 기대했던 인문학의 범위를 '사람다움의 길'로 끝맺기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배움을 확장시키지 못한 자신의 소양탓으로, 적당히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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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멍키 - 혼돈의 시대, 어떻게 기회를 낚아챌 것인가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지음, 문수민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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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 때문에 월가는 싸구려 여인숙과 닮은 구석이 있다. 사람들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다. 보너스를 두어 번 받고, 1월 중순경 통장에 찍히는 목돈을 보고 나면, 그런 돈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된다. 월가에 자리 잡은 은행의 경영진은 그런 심리상태를 조장한다. 월가의 투자은행가가 개라고 가정한다면, 주인의 진짜 의도가 뭔지 깨닫지 못한 채 값비싼 목줄과 가죽끈을 '사회적 위치'라며 과시하는 셈이다. 내 목줄은 전반적으로 볼 때 가느다란 편이었지만, 그래도 목덜미가 쓸려 쓰라리게 하기엔 충분했다. -p.47 혼돈을 향한 행진"

 

 '카오스 멍키'는 다소 난해했다. 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는 그 자신 그대로 난잡한 사고를 일으키고 다니는 원숭이처럼 느껴졌고, 저자의 느낌 그대로 문체도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다.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소설적인 묘사가 들어가 있는 부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저자는 모든 것이 저장된 대화를 그대로 발췌했으며 곡해된 부분이 없이 전달하도록 노력했다고 하지만, 누구도 모든 것을 날 것 그대로 옮겨놓을수는 없기 때문에, 또한 문체에서 느껴지는 과장됨이 계속해서 의심을 눈을 거두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경이 되는 실리콘 밸리라는 무대가 낯설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치 최첨단의 수트를 입고 재기를 뽐내는 아이언맨의 모습을 보는 듯한 저자의 글은 자신만만하고 공격적이다. '성공하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는 생각이 근간에 깔려있는 성공한 사람을 봤을 때 느끼게 될 약간의 불쾌감이 부러움과 시기에 버무려져 느껴진다. 성공하는 소수의 사람들 중 비상한 머리와 감각으로 세상이 무엇으로 돌아가는지 깨닫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를 보면 그는 분명히 그 구조와 헛점을 알고 있고, 가장 크고 탐스러운 송이를 움켜쥐진 못했어도 떨어진 바나나를 챙겨가질 정도의 능력을 가졌음이 느껴진다. 이런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보편적인 삶과 동떨어진 느낌에 어떤 감명을 받진 못했다.

 

 특히나 sns를 하지 않아 제대로 활용할 줄도 모르는 편이라 페이스북의 시스템이나 기능에 대해서도 생소했다. 간혹 시선을 끄는 부분들은 보일 것이라 생각지 못했던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범한 일화들에 대한 짧은 언급이었다. 때로 누가 남긴 스파게티를 먹었는가를 두고 날선 모습을 보이거나 사내 연애에 대한 시도는 단 한 번의 기회로 제한, 여직원은 '동료직원에게 방해가 되는 옷을 입지 말 것'이라는 지침이 있다는 부분들은 사소한 것엔 신경쓰지 않으며 새로움과 돈이 되는 것들이라면 무엇이든 기민하게 시도할 것이라는 개인적인 예상을 훨씬 벗어나는 평범하고 완고한 규제였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매우 단편적이고 주된 내용은 전문적인 업계 내용이다.

 

 무엇보다 '카오스 멍키'를 읽으며 잠시 다른 사람이 몸담고 있는 사회생활이 어떤지 들어서 체험해 본 기분이 들었다. 때로 친구들과 술을 한 잔 마시며 오늘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경쟁하듯 푸념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아예 차원이 다른 리그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엿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IT업계에 관심이 있거나 새롭고 빠른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SNS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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