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 말보다 깊은 눈빛, 양조위의 삶·사랑·작품
주성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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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양조위일까. 책을 보고 가장 많이 떠올린 생각이다. 그는 항상 그로써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이란 수식을 붙인 채 그에 대한 두툼한 책이 한 권 나올만한 어떤 기점일까 의아함이 깔렸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봄 햇살이 슬며시 새어 들어오(214)*'는 계절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 배경이 어떠하든 영상 속 그의 눈빛에 매료되어 빠져들 듯, 책장 사이를 읽어내리게 될 것이다. 

언제 이렇게 홍콩영화와 배우들을 사랑했었나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을만큼 익숙한 얼굴들을 만난다. 요즘은 중화권이라하면 주로 대만영화를 접하게 되는데 어린시절엔 아마 한국영화보다 홍콩영화를 더 많이 봤던 것도 같다. 명절이면 낮시간대에는 주로 성룡이 나오는 영화가 매번 배정되었던 것 같다. 주말 밤시간대에는 이연걸이나 장국영이 나오는 영화가 자주 등장했다. 이상하지, 양조위는 그보다 조금 더 자랐을 때 등장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가 가진, 더 나이가 든다해도 훼손될 것 같지 않은 소년스러운 웃음과 동시에 섹시함이 묻어나는 상반된 분위기를 소화할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그를 바로 보게 된 듯 하다.   

<아비정전>의 흥행 실패와 <동사서독>의 제작비 고갈로 후반 작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두 달 만에 완성한 영화가 <중경삼림>(1994)이라니(173-6), 흥미로운 뒷 이야기를 읽으며 어떤 흐름 위에 선 사람을 보는 듯 했다. 특히나 '그 에스컬레이터' 위에 서보기 위해 일부러 홍콩에 다녀와 본 적이 있던만큼, 그리고 '그 홍콩'이 이제 거의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끼는만큼 3부 8장의 이야기는 각별했다. 그때 당시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가 '두 인물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어 내려오던 그 길의 시간을 단숨에 지워버린 기계장치(179)'로 편리함 이면의 상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지금은 네온과 함께 사라져가는 과거와의 길고 지난한 이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책은 재미있게도 양조위를 말하지만, 양조위보다 그 주변 인물들에 더 많은 이야기를 담는다. 그의 우상으로 꼽히는 주윤발(70)이나, 오랜 시간 동안 홍콩사람들의 도파민을 책임졌을 연애담, 친구이자 동료인 장국영,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자 기꺼이 페르소나가 되어 연기한 왕가위(71), 2000년 이후의 홍콩영화를 보여준 유위강 감독 등의 등장이 가볍지 않게 풀어진다. 거기다 시대와 영화를 읽는 저자의 시선마저 깊이 있어 그냥 흘러넘겼던 영화의 장면이, 이를테면 <화양연화>에서 분위기만으로 암시한 관계가 왜 <색, 계>에서는 파격적인 형태로 드러났는지(316), 97년 <해피 투게더>에서의 떠남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209) 먼 시간 속의 관객이자 독자에게 전달한다.      

문득 '마지막'이라는 수식이 마음을 찌른다. 저자 역시 "<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라는 제목으로 양조위와 멸종 위기에 처한 홍콩영화에 대해 쓰다 보니 괜히 비장해졌는데,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실의 양조위는 정작 이를 반길까 싶다.(396)"며 같은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요즘은 명절에 티비에서 방영해주는 특선영화 같은 것에 그리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도 하지만, 어린시절 처럼 홍콩영화가 편성되는 것도 드물어진 듯 하다. 그처럼 자연히 홍콩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헤아리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이렇게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와 배우, 그리고 지나간 과거의 편린이 흩어지지 않고 남아있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어진다. 아마 그 마음을 애정과 함께 담아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 누군가 <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는 표지가 전부라고 얘기하면 기쁠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느낀다. 13" 

책의 표지를 두고 '이 책은 표지가 사기다. 어떻게 이 책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느냐'고 주접을 남겼던 기억이 있다. 가끔 이렇게 작가의 의도에 그대로 순응한 자신을 보면 놀랍고 재밌다. 저자는 그 시절 430 우주선에 탑승해 어른으로 가는 시간을 거슬러 온 홍콩사람인가 싶게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수상하다. 하지만 그만큼 세세하고 친절한 인도자이다. 없던 사연도 짐작하게끔 만드는 눈빛을 가진 잘생긴 배우를 적당히 흠모해왔다면 책을 읽으면서는 점점 더 궁금하도록 만든다. 자신이 사랑하는 배우를 향한 관심을 모을 수 있다니 성공한 팬은 행복할 것이다. 정말이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그**'에 대한 긴 팬레터였다. 덕분에 읽는 동안 즐거웠다.


*춘광사설(1997) 영제 Happy Together(해피 투게더)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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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시대의 귀환 -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무한 각축의 시작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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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미국의 패권이 쇠락해가고 있다는 말은 묘한 감상을 준다. 미국과 별 상관도 없는데 아주 어린시절부터 가져온 어떤 이미지, 크리스마스 라고 하면 90년대 미국 중산층 가정을 보여주는 <나홀로집에> 같은 영화가 떠오르거나 늘 지구의 재난과 멸망 위기에 펄럭이는 성조기와 함께 등장해 세상을 구하는 미국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며 자라와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메리칸 드림이 사라진 지금, 미국의 패권 말기는 어떤 의미와 현상을 가져올 것인가 <야만 시대의 귀환>과 함께 알아보고 싶었다. 

올림픽과 산불 같은 소식들도 있지만 미국의 상호관세 10퍼센트 부과 소식이 뉴스의 시작이었다. 미국의 행보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만큼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이전에 합의했던 상호관세와 투자 협상은 어떻게 될 것인지 긴 시간 다양한 방식으로 보도가 이어졌다. 트럼프의 영향 아래 예측불가능한 국제 정세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라고 썼다가 자고 일어나니 관세를 15퍼센트로 조정했다는 뉴스가 속보로 올라와 있었다. 이쯤되니 우리가 무언가를 예측하고 대비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싶어진다. 

차례를 살피며 2장의 미국은 왜 그럴까와 3장 트럼프는 왜 이럴까를 가장 궁금하게 여겼는데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함께 패권의 중심이 중국으로 넘어갔음/넘어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어 위기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중국은 아직, 이라는 방심 혹은 방어적 생각과 약간의 경시가 내면에 잔존해있었기 때문이리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몇몇 중심이 되는 도시의 놀라운 발전과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흡수한 기술과 정보가 세계 최상의 수준이라는 사실이 경고처럼 전달되었다. 결국은 그 마저도 자원이 될 넓은 땅의 개발되지 않은 지역들을 꼬집으며 현실을 부정하려 해도 그 둘은 엄연한 진실이었다.  

" 높은 충성도를 전제로 하고 강력한 집단성을 특징으로 하는 그룹들의 경우에는, 일단 믿는 이에게 그 삶을 아주 간편하게 만듭니다. 세상만사를 설명할 수 있다 싶은, 만능의 설명틀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깥세계가 타자시되고 이질시되는 만큼, '우리끼리'는 더 강력하게 따듯한 정을 나눌 수 있죠. 내부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정 말입니다. 188" 

이 위기에서 미국의 선택은 또다시 트럼프였는데 이를통해 대중들이 무엇에 자신을 동일시하려하고, 현실의 이해관계를 파악하는데 어떤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두려움과 무지가 어떤 맹목을 낳는지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비단 미국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몇 차례의 선거와 집회, 심판과 분열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이 쥐고 있던 패권에 소요되던 부담을 전가하기 시작한 지금, 세계 패권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때 이에 영리하게 대처할 수 있는 대비가 필요한데 4년 뒤에 또 어떤 선택을 할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도 치명적이다. 

" 1990년대식 자유주의를 뒷받침하는 두 다리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였습니다. 한데 노동 인구의 다수를 경향적으로 빈민화시키는 신자유주의는 결국 노동자들의 상당수를 신자유주의 체제를 수용한 좌파로부터 떼어내 민족주의적 우파의 지지자로 만들었습니다. 285" 

지구촌과 세계화의 슬로건 아래 성장해 온 세대들에게 현재의 변화는 당혹스럽다. 세상이 더 확장된 평화의 그늘 아래 무한한 발전의 풍요를 얻으리라 여겼지만 오히려 불안과 긴장이 극대화되고 발전은 격차와 갈등으로 변모하여 위협이 되었다. 과도한 경쟁과 계층 사이의 간극을 일반적인 수단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좌절이 내부의 분노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다름을 이용한다. 보호주의와 고립주의, 인종주의적 이민 반대 등의 우파 레퍼토리를 이용해 우월심리를 자극해 심어진 극우 사상은 기득권과의 갈등을 교묘히 빗겨나가 대중들을 입맛에 맞게 결속시키는 수단이 된다. 

'야만 시대의 귀환'은 미국을 읽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현 주소를 고민하도록 만든다. 세상은 약간의 속도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흐름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이 특히 빠른 속도로 위기에 접근했던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치명적인 약점(186)을 딛고, 이 혼란속에서 우리가 패권의 변동이라는 미중 사이의 힘 겨루기에도 균형을 유지하여 이 '생존 문제'에 대처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읽었다.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어렵지 않게 풀어내어 좋았다. 솔직하자면 개인적으론 지금으로 이른 배경을 채우는데 더 도움이 되었지만 누군가는 이를 통해 앞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세상을 읽기에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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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중심 잡는 아이들의 비밀, 자기결정력
김효원.김현웅 지음 / 심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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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평가와 경쟁, 훈육이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위축시킬까봐 교육 과정에서 배제해나가는 추세라고 한다. 너무나 달라진 교육 현장에 대해 가끔 뉴스를 볼 때면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는 옛 세대들이 있을 것이다. 사고 등의 문제가 생길까봐 이제는 학교에서 소풍도 가지 않는다는 변화가 며칠 전에도 뉴스에 나왔다. 그런데 어른의 의도는 분명 좋았는데 그 의도가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건 아니어서 경쟁과 성취의 즐거움을, 배움과 반성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성장한 아이들은 도전과 좌절 앞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는 일이 왕왕 발생한다고 한다. 처음 경험한 벽 앞에서 극복의 경험 없이 지나치게 낙심하고 포기해버린다는 것이다. 한 아이라는 세계를, 우주를 키워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하고, 어떻게 해야할까? 요즘은 이렇다, 요즘 아이들은 이렇다고 하기 전에 어른과 사회구성원으로서 어떤 생각과 자세를 준비해야할지 '스스로 중심 잡는 아이들의 비밀, 자기결정력'을 통해 파악해보고 싶었다. 

차례를 눈으로 살펴보았을때 가장 궁금했던 내용이 4장 진짜 똑똑함과 가짜 똑똑함 중에 '엄마가 만들어준 똑똑함 130' 이었다. 어린시절에 비추어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거나, 반장이 되거나 하는 뛰어남은 본인의 능력보다 어떤 뒷받침을 받느냐로 티가 나는 경우가 많았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그 효과가 초6 선우의 예시 뿐 아니라, 고2 학생의 예로 나오고 있었다. 타인이 만들어준 지도대로 길을 찾아가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와 부합하는가, 스스로의 길을 갈 수 있는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가는 다른 문제의 이야기다. 남들이 다하는 것, 하라고 하는 것을 어영부영 따라가는 것도 벅찼는데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는 항상 깜깜한 문제였던 것이 생각났다. 모범적이거나 우등생으로 꼽히지 않더라도 하고싶은 것이 있었던 친구들이 얼마나 빛나보였던지, 그것이 남들과 다른 길이더라도 개의치않아 하는 모습이 얼마나 즐거워보였던지 모른다. 그게 중심/목표를 가진다는 것이었구나 싶다. 

요즘은 지식을 쌓는 교육 뿐 아니라 인격과 품성을 위한 윤리와 도덕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고 느끼는데, 특히 호주의 16세 미만 SNS 금지법에 대해 크게 공감하고 있다. 책에서도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공감 능력과 도덕성 발달에 미치는 영향(168)' 같은 단락에서 이 점을 짚어주고 있어 관심있게 읽었다. 우리도 호주처럼 인터넷에서 무분별하게 마주하는 혐오와 도덕적 해이가 그저 재미라는 말로 뭉그러진 채 아이들에게 노출되는 현실을 제대로 짚고, 다소 극단적일지라도 분리하고 교육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이 점은 '개인의 윤리성은 사회 전체의 윤리성을 넘어설 수 없다(170)'는 말처럼 성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좀 더 강력한 처벌과 규제, 인식 개선이 필요함을 느끼게 했다. 결국 사회와 어른의 모습을 거울 삼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니, 요즘 애들은 하고 탓하기 전에 제대로 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었구나 반성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자꾸만 생각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으로 옮겨갔다. 우리 삶에서 '관계'속에 생겨나는 문제의 대부분은 상대방을 통제하고픈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 한국식 연애 방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통제성이 강하다는 비판을 본 적이 있다. 하루에 연락을 몇번이나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 시작이었는데 한국만큼 연락을 자주, 많이 하고 또 그 빈도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잘 잤는지, 밥은 먹었는지, 지금은 뭘 하는지 물어보고 답을 듣는 평범한 일이, 아무리 바빠도 잠시 짬을 내서 상대방에게 연락은 한 번 해줄 수 있지 않냐는 말이 과한 집착과 통제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이것이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 아니라 상대방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욕구라고? 그런데 이 '통제'는 연인 뿐 아니라 가족간에서도 동일하게 보였다. 

'스스로 중심 잡는 아이들의 비밀, 자기결정력'을 읽을 때도 먼저 등장하는 것이 "과잉보호와 과잉통제(25)"에 대한 언급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태도를 보이도록 만들고 싶다는 부모의 보호와 통제가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혼란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그래도 미성년 시기에는 어느 정도 통금이 필요한 것은 맞지 않나 통제에 동의하고 있는 자신이 있다. 어른의 시선으로 본다는 한계 때문일까. 같은 통제는 반대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부모를 향해 그 영향을 끼친다. 부모님이 건강검진을 꼬박꼬박 받고, 운동도 하시고, 자잘한 것을 아끼거나 하는 오래된 습관같은 것을 바꾸시길 바라며 잔소리를 한다. 키오스크 같은 것의 사용법도 배웠으면 하고, 제사나 명절 음식 같은 것도 그만하고, 요즘은 책 잡히기 쉬운 옛세대 특유의 오지랖도 웬만하면 참으시라 하고 싶다. 내가 바라는대로 하면 더 편하고 좋을테니 바꿨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도 사실은 상대방에 대한 통제가 아니었나. 

교육서를 앞에 두고 너무 멀리 다른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이렇게 통제 받았던 청소년이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는 것이다. 이 통제가 이렇게 우리 삶과 관계 속의 전반적이고 고질적인 특성이자 문제라면, 이러한 경향을 해소해줄 수 있는 방법은 책에서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소년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 교육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관계맺기에 있어 통제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생각된다면 함께 고민해보며 읽어도 좋겠다. 아이들이 자기만의 생태계를 가지고 성장해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먼저 좋은 본보기가 되는 기준을 세워야하고, 그 기준을 강요나 압박이 아닌 방식으로 제시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이 고민을 하는 어른에게 든든한 받침이 되어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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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 - 기후 붕괴 현장에서 마주친 인간과 비인간동물들
남종영 지음, 불키드 그림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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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자신과 함께 유치한데 왜 재밌지 의아함이 따라붙었다. 첫 시작부터 당당히 밝힌 장르가 뭐였더라, 'SF논픽션'이었다. 강경한 어조로 강조하길래 그게 그렇게 특별하기라도 하나 싶었는데, 유치한데 결국은 그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을 보니 그의 선택이 맞았다. 전달 방식을 달리하면 달리 걸려드는 독자가 생기게 마련이었다. 처음엔 파닭이니 하는 말들도 너무 사변적이고 이런 형식의 글에서는 큰 매력이 안 느껴진다고 세모눈을 하고 봤는데, 이상하게 자꾸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궁금해졌다. 머리말부터 '어른들을 위한'이란 것이 붙어서 수상했는데, 이런 걸 다 예상해서 쳐 둔 그물이었을까. 속는 걸 알면서도 재밌게 속아넘어가는 기분이다. 거기에 환경에 대한 깨달음까지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으니 안 넘어갈 이유도 없다. 방학 기간을 통해 책을 읽히고 싶다면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를 선택해서 함께 읽어보자. 

어린시절에 자연 다큐를 보면 보통은 세상에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있다는 소개의 내용이었다. 이들이 혹독한 환경과 엄중한 섭리 아래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요즘은 대부분 이들이 이렇게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다는 내용의 다큐가 많았다. 그만큼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일까. 책에서 북극곰들의 사냥 방식이 바뀌었다고 한 다큐멘터리(74)를 언급해 떠올랐는데, 몇 해 전 '북극의 눈물'을 보다 북극곰이 위태롭게 헤엄치며 사냥하려는 장면에서 더는 보고있기 괴로워 그만 보고 싶었다. 인간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아니까 시청을 그만두고 죄책감과 동정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들었는데, 그런 체험들은 일상에서의 불편으로 조금씩 남겨졌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그런 직접적인 고통은 적었다. 전달 방식이 부드러운 것은 좋지만 그 부드러움이 충격에서 오는 각인과 변화를 둔화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 책에서도 실제적인 충격을 전달해주었던 것은 한 사진이었다. 투발루의 마을이 물에 잠겨 어린 아이를 데리고 물을 헤치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담긴 사진(154)은 여행지로 유명한 물의 도시들이 가라앉고 있다는 소식보다 강렬한 충격과 위기를 전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를 신경쓰이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오직 단 하나의 바나나 품종(165)만을 먹고 있고, 그 품종이 취약해지게 되면 지금까지 알던 단 하나의 바나나 맛과 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 "이러다간 우리 사과를 못 먹는 거 아닙니까?" 99" 하는 질문에서 내심 깜짝 놀랐다. 머리 속에서 하던 생각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그게 이 상황에서 날 법한 생각이던가, 고작 내 입에 과일이 하나 들어가고 말고의 문제로 이 상황을 바꿔버려도 되나. 저 멀리 있는 사람의 생활 기반이 모두 무너져내린다는데도, 제 입에 들어갈 것이 신경쓰이다니 사람이 이렇게 이기적이고 어리석어서 자꾸만 이러다 진짜 큰일이 난다고 반복해서 위기를 경고하고 있는 것이리라. 

"거북이 콧구멍에서 빨대 빼는 유튜브 영상은 그만 보시고, 빨대를 종이로 바꾸든지 재활용하든지. 108" 엊그제 읽었던 일본 작가의 책에서 종이 빨대에 대한 불평을 보고는 종이 빨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공통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종이 빨대가 내 죄책감을 덜어주는 수단 중 하나여서 음료에 녹아 뭉개지거나 말거나 종이 빨대를 좋아했던 어둠의 종이 빨대단이라 이 부분에서 격한 공감을 했다. 대형 커피 체인이 다시 종이 빨대에서 플라스틱 빨대로 바꾼다는 발표를 한 뒤로 어딘지 마음이 답답했는데 다시 종이 빨대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물범이 사라지면 북극곰도 없다. (216)'는 사실을 물범들도 아는데 기후 위기가 곧 인류의 위기라는 것을 사람들이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다.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는 가르침을 강제하거나 행동을 강요하는 내용은 아니다. 읽으면서 이야기가 이렇게 변화구를 때려도 되는가 싶은 부분도 있었다. '치킨해방전선'과 연대해서 같이 행동하기까지 했으면서 떨어지자 마자 치킨버거를 먹는 홈스와 왓슨의 모습에서 의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소고기를 먹는 일'이 끼치는 영향을 시종 언급하는 것을 보니 슈퍼 저탄소 소를 이용한 그린 워싱(250)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되나 싶다. 지구 곳곳을 누비며 세상의 문제를 파악하며 다니지만 홈스와 왓슨이 그저 관찰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점점 마음에 걸렸다. 뭔가를 더 해야하는 것 아닌가, 이것 참 문제군요. 사실은 이랬군요. 하며 알려주고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버리는 일이 반복되자 이야기 안에서라도 도움을 주길, 어느 문제 하나라도 해결해주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정작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편함을 그대로 두고 누가 해결했으면, 괜찮다고 넘길 수 있도록 부채감을 덜어주길 바란 것이 씁쓸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재미있지 않는 내용을 담은 묘한 책이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지만 어른에게도 필요한 책이니,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생활 속에서 변화와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독후활동까지 해본다면 좋겠다.
... 그런데 30대 6의 경기가 기후변화의 참사(117)이라면 6한 놈들은 어디 빙기에서 야구하나? 6한 놈들의 위기고 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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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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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친구와 한참 이야기를 하다 이제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멸종을 앞둔 위기종처럼 보인다는 말을 했다. 결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인 세상에서 자라오다 도착해보니 아무도 결혼하지 않는 세상에 온 것 같아 낯선데, 몰려오는 사람들의 무리가 너무도 당연히 결혼하지 않는 상식을 말하는 것 같아 자칫하다간 그 전의 세상에서도 이 후의 세상에서도 밀려나버릴 것만 같단 이야기였다. 그래서 '필연적 혼자의 시대'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다 낯선 세상에 불시착해버린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였음을 확인받고 싶었다.  

남과 비교해서 부족하거나 결핍이 있는 것을 못견뎌하는 세상에서 왜 사람들은 유독 '전통적 가정'의 형태만은 잃어도 괜찮아하는걸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세뇌되어 왔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혼자 살 수 있고, 혼자 사는 삶이 더 이득이라는 계산을 끝낸 것 아닐까. 외부조건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평균적인 교육 수준이 일정 기준을 넘어섰을때 그동안 유지되어 왔던 공식이 깨지고 새롭게 수정된 결과값이 나온 것이다. 이 변화가 생존을 위해 무리를 이루도록 판단내렸던 계산값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어쩌면 애초의 목표가 달라져 새로운 계산법으로 내린 결과인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런 분석이나 이유같은건 필요없이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왜 결혼을 하지 않을까, '왜'로 시작하는 질문들은 전 세대의 것이다. 새로운 세대에게 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전에 결혼이 때가 되면 당연히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처럼, 그냥 안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세상인 것이다. 왜 결혼을 하는가에 남들이 다 하니까, 종의 유전자를 후대로 잇기 위한 본능이니까 같은 오래된 답들처럼 남들도 다 안하니까, 이 종이 이제는 자연히 사라지게 될 흐름이니까.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마 저자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생각하기로 이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부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임과 조건에 대한 부담.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서 내가 너를 책임질 수 있을까, 영원하지도 않을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유로 이 관계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게다가 결혼으로 인해 엮이는 관계들도 부담이다. 결혼도 되돌리기 어려운데, 출산은 더더욱이다. 이렇게 멀리 생각하지 않아도 책임을 위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과정 마저도 부담이다. 취업하고 차나 집을 마련할 돈을 모으고, 한 가구의 가장들이 되기에 거쳐야 할 조건들이 많다. 없으면 없는대로 꾸려나가면 된다지만 부족할 바에야 차라리 없는게 더 낫다고 '낳음 당했다'는 표현까지 나오는 세상이다. 

" 내가 만난 1인가구들도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카페, 버스, 빨래방, 그리고 자기만의 방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타인의 존재는 어떤 의미도 담겨 있지 않은 백색소음으로 떠돌았다. 110"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서적으로는 고독한 현대 미국 사회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호퍼의 그림과 1인가구들의 일상속의 뷰가 닮아있다는 점을 역설했는데, 그렇다면 저런 장소들에서 대체 타인과 어떤 관계맺기를 해야하는 것인지 알수가 없어서 의아했다. 카페, 버스, 빨래방, 자기만의 방에서 너무나도 타인의 존재는 의미가 없다. 그 공간을 이용하기 위한 목적에 타인이 고려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결혼을 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들의 특징이라고 규정될 수 있는가. 이들에 대한 어떤 규정들은 결과를 위한 규정같이 느껴졌다.    

마찬가지로 '조카바보(281)'같은 것도 형제자매의 자식이어도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 조금 더 관심이 가고 예뻐할 뿐이지 프레임만큼 애정을 쏟지 않는다거나 사실 큰 교류나 관심이 없다는 입장인 사람들도 다수 보았다. 이들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성향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점이 아닐까 생각했다. 

" 가족은 장시간 노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존재다. ...중략... 혼자 사는 노동자들은 이런 요구를 받거나 걱정 섞인 잔소리를 들을 일이 거의 없다. 언뜻 보면 이는 자유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시간과 공간을 다시 일에 투입하다 보면, 이들의 일상은 자신도 모르게 일에 잠식당한다. 브레이크 없는 자유는 결국 멈출 수 없는 질주가 된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업무용 인생이 된다. 61" 

이 부분에서도 의아함을 느꼈다. 1인 가구의 가장들은 무엇보다 스스로가 이끄는 가정에서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시간을 다시 노동에 투입하다니, 요즘은 정해진 값어치 이상의 노동,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업무는 거부하는 '새로운 보통'들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인터뷰 대상의 연령층이 너무 높게 고정되어 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개인의 삶을 유지해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있어 가사노동은 피할 수 없는 화제였다. 밥이라는 것이 대체 뭐길래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 어렵다(29)"는 답이 혼자 살 때 가장 어려운 점 1위일까. 결혼을 해서 가족이 있으면 식단의 균형이 저절로 잡히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이들이 떠올린 균형 잡힌 식사라는 것은 어쩌면 엄마와 살 때 제공되던 엄마의 가사노동의 결과(엄마 아니면 플랫폼 111)였을지도 모른다. 결혼 후 아이가 생겼을 때 아이 식사를 챙기기 위한 변화를 염두에 두었을 수 있지만, 그 역시 엄마의 가사노동 결과일 것이다. 그러니 '엄마처럼'은 살고 싶지 않을지도(25).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는 말. 사실, 엄마들도 이 새로운 세대를 키울 때 비슷한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분명 결혼해서 가정을 잘 꾸리고 살아가라는 바람도 있었겠지만, 하고 싶은 일도 하고 결혼함과 동시에 사회적인 자신을 멈추지말고 돈을 벌어서 스스로 쓰며 살아가라는 바람도 강하게 담았다. 그동안 지속되어 온 여성의 삶에 대한 의문과 저항이 두 세대의 바람으로 묶여 지금 진통을 겪으며 결과로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왜 혼자서 살아가기로 했을까, 앞으로 우리가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책을 앞에 두고 많이 생각해보며 읽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혼자로 존재하되 함께 가는 방향을 모색하여 나아갈 필요성을 크게 느끼며 '필연적 혼자의 시대'를 읽었다. 어떤 내용들은 나의 체감이나 생각과는 다르기도 했지만, 어떤 내용들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바탕을 짚어낸 듯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뭐든지 혼자 해내는 새로운 시대에 대해 발빠르게 파악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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