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프라우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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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녀의 인생에서 그전까지의 모든 순간이, 중요했던 때와 중요하게 보이기만 했던 모든 대가 합쳐져 이 강렬한 순간의 총합, 단 한순간이 되었다. 심장 한 번이 뛰는 짧고 날카로운 찰나에, 그녀는 이제까지 했던 말, 했던 일 중 그 무엇도, 앞으로 하게 될 말, 하게 될 일 중 그 무엇도 이 비극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안나는 프리크에서 뭄프로 가는 기차 창문을 내다보았다.

그 남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전업주부인 여성들이 결혼을 위해 낯선 곳으로 이사를 하고 그 곳에서 새로운 터전을 잡는다는 것은 크나큰 고독이다. 그녀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모든 골목을 속속들이 알고, 어느 시간에나 만날 수 있는 친구나 가족들이 없는 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되는 것은 참 심심한 일이다. 더구나 성인이 된 이후로는 '같은 모임, 아는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친구를 사귀는 일도 쉽지 않다. 주인공 안나는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스위스에서 살게 된다. 안나는 독일어를 모른다. 그녀에게 스위스는 항상 낯선 외국으로 묘사된다. 안나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는 모든 것들은 다 건조하다. 자기 자신과 부주의하게 드러내놓은 숨겨야 할 비밀스런, 자기파괴적인 행동과 관계들을 제외하고는. 안나의 행동이 지나치게 충동적이고 부주의했다는 것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읽으면서 안나의 무절제하고 위태로운 행동들이 멈춰지고 그녀가 안정된 삶으로 돌아가길 바랐으나, 읽고 난 후에는 안나가 그녀의 삶에서 배척되고 상실감에 고독했을 것이 떠올랐다.

 

 안나에게는 가정만이 있다. 남편과 세 아이. 그녀의 일상에서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것은 남편의 가족들, 시어머니와 남편의 동생가족 뿐이다. 그녀로부터 연결된 것은 외국인이라는 공통점 뿐인 몇몇의 지인 뿐이다. 그들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스위스가 낯설고 배려받지 못한 대화에서 배재된다. 안나에게 말과 음성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여러번 묘사된다. 다른 이들의 억양, 발음을 유심히 듣거나 자주하는 실수가 무엇인지 짚어내거나, 근사한 음색을, '단어에서 느껴지는 살결'에 매료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 그녀가 소통할 수 없는 곳에서 소통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있으며 느낄 외로움이 구석구석에서 천천히 눈에 띈다. 안나는 남편을 사랑했다. 어느 순간에는 그것이 결혼을 결심할만큼 강렬했고 그 뒤로도 그녀의 삶이 지루할만큼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때로 보이는 의무감, 배려가 섞인 분리된 각자의 시간이 그녀가 원해서 주어진 것이 아님을, 브루노의 태도에 어떤 종류든 긍정적인 감정이 섞여있을 때면 그것을 기민하게 알아채거나, 끊임없이 자신이 매력적인지 확인하는 태도가 그녀가 원해서 주어진 겉으로 평온한 관계가 아님을 보여준다.

 

 안나는 아내로서 생활하는 것 이상으로 여성으로서 사랑받길 원한다. 그녀가 갈구했던 것은 그녀를 여성으로 사랑해줄 남성이었으며,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감을 줄 소속이었다. 안나는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있지만 그 안에서 조차 사람들은 인종별로 갈려있다. 영어권끼리, 아시안끼리, 쉬는 시간이 되면 따로 앉아 무리를 이룬다. 그녀 나름대로 무리 안에 속하여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독일어를 배웠지만 '그들'이 실제 구어로 사용하는 것은 독일어에서도 변형된 슈비처뒤치다. 안나가 아무리 따라하려해도 같아질 수 없는 시볼레스를 가진. 그녀는 낯선 곳에서 항상 이방인이었고, 그곳과 그녀가 분리된 상태를 느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더욱 그녀를 그곳과 분리되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원해도 들어갈 수 없는 경계밖에 있다는 의식이 스스로도 속하길 원치 않은 것처럼 보이도록 더욱더 자신을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남편인 브루노는 그녀가 슈비처뒤치를 배워야 함을 공공연히 드러내 표현한다. 파티에서 내국인들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면서, 더 이상의 새로운 사람과는 관계맺기를 거부하면서.

 

 흐름은 매설리 박사와의 상담과 긴밀히 교차된다. 안나의 일상, 행동들과 박사와의 상담 시간에 나누는 대화들이 오가며 안나가 드러내려고 하는 것, 하지만 숨기려고 하는 것들에 대해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안나의 생활과 상담 시간이 현실에서 교차하는 순간 그녀의 내면과 외면이 비로소 한데 모이듯이 안나는 자신의 삶을 직시하고 선택한다. 안나가 저지른 불륜들은 그녀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스위스의 기차가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듯, 정해진 결말로 흘러가는 단절되고 좌절된 공간에 놓여진 인간의 종착역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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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연대기 클래식 호러
로버트 E.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 / 책세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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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세상에! 그 친구는 죽어 있었어요! 머리가 쪼개져 있었어요. 골수와 엉겨 붙은 피가 얼굴로 흘러내렸고, 얼굴은 시체처럼 핏기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그 친구는 계단을 내려왔어요!"

 

 좀비물은 여타의 공포물과는 다르다. 귀신처럼 어느 곳에나 갑자기 나타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키지도 않고, 잔인한 연쇄살인마처럼 덫을 놓거나 머리를 써서 집요하게 다음 제물을 노리는 계산도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고 무조건 공격하고 무서운 속도로 전염되어 버린다. 요즘 좀비물이 가지고 있는 몇가지 기본 설정이 있는데, 좀비가 된다는 것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과 비슷하게 피나 타액이 몸안에 들어가면 전염된다. 전염되면 사망에 이르렀다 다시 깨어나게 되는데 이전의 이성이 없는 상태로 다른 인간에 대한 공격성이 강하다. 다른 신체부위를 공격하는 것은 소용 없으나 머리를 공격받으면 죽는다. 위협적인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식으로 위기를 벗어나 생존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사람의 심리 안에 존재하고 있어서일까 좀비물의 이런 요소들이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좀비와의 대치로 긴박감이 넘치는 좀비물들을 즐겨본 탓에 클래식 호러에서 엮어낸 '좀비 연대기'도 기대하며 읽었다.

 

 '좀비 연대기'는 접하게 되는 좀비에 대한 내용과는 달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의 원형에 가까운 설정으로 좀비를 묘사하고 있다. 아이티, 부두교, 강제 노동, 흑인 그리고 소금. 최근에 접하는 좀비물처럼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좀비의 모습이나 실험실에서 배양된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세련된 설정이 아닌 오히려 강제 노역에 혹사 당하는 노동자를 바라보는 동정적인 시선이 더 많다. 물론 좀비가 가진 특성 상 살아있지 않은 것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도 들어있다.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기존에 접하던 현대적 좀비물의 그것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생각보다 부드러운 전개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좀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접할 수 있어 색다른 재미를 준다. 특히 소금을 먹이면 안된다는 금기가 인상적이다. 과거 몇몇 작품들에서 소금을 먹여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좀비가 된 사람들을 구하는 내용을 본 적 있는데, '좀비 연대기' 안에 포함된 작품들은 소금을 먹은 좀비는 괴로움에 소리지르며 자신의 무덤으로 돌아가려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독특했다.

 

 짧은 여러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 작가마다 다른 작품 스타일, 좀비의 설정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그 중 잭 런던의 "천 번의 죽음" 편은 익히 알던 좀비라기 보다는 피실험체를 통한 죽음과 소생의 반복적 실험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좀 독특한 분위기라 생각하며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실험대상이 자신의 아들임에도 개의치 않고 실험을 진행하는 아버지의 맹목적인 태도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이질적인 작품이었다. 현대의 좀비와 가장 비슷하게 느껴진 것은 마지막 단편인 앨피어스 하이엇 베릴의 "좀비 감염 지대"인데 여타의 작품들에 비해 가장 엽기적이고 잔혹한 묘사가 등장한다. 가장 첫번째에 있는 로버트 어빈 하워드의 "지옥에서 온 비둘기"는 좀비 코드를 빌린 추리물같은 느낌이라 초반 몰입도를 높여주는 단편이었다. 좀비물을 좋아한다면 고전적인 좀비들을 '좀비 연대기'를 통해 만나보는 것도 색다를 것이다. 혹시 모를 좀비 사태를 대비해 하나라도 더 많은 정보를 알아둔다면 더 도움이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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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 빈센트 반 고흐 전기, 혹은 그를 찾는 여행의 기록
프레데릭 파작 지음, 김병욱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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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견자였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소유물에 눈이 먼 물질주의 소부르주아의 정확한 반대였다. 빈센트의 정신은 전혀 다른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세계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화가에 대한 신간이다. 너무나 유명하고, 또 그만큼 잦은 빈도로 생활속에서 소비되어 온 작가의 이미지와 작품들에 아직 더 할말이 남았을까? 수많은 반 고흐의 전기와 도록, 전시 사이에서, 지금 우리가 프리데릭 파작의 눈과 손으로 재탄생한 반 고흐에 무엇을 기대하며 만나봐야 하는 것인지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반 고흐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처럼 강렬히 드러낸 작품은 이전에 없었다"고 표현하는 소개 문구에 그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손꼽는 수많은 개인들을 떠올려보았다. 파작의 시선이 이들의 이목을 끌 수는 있으나 갈급까지 채워줄 수 있을지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의 등장이 반가운 소식이기는 하나, 그에 대한 풀이가 다소 중복적이거나 재해석된 '위인전기'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안고 봐야 했다. 경계와 흥미가 뒤섞인 시선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문체는 힘이 있으나 장황하지 않고, 세세하나 지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삽화의 넉넉한 등장이 아주 매력적인 책이었다. 그의 유명한 작품들로 채워져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약 260페이지의 질좋은 종이들에는 흑백으로 표현된 얼굴들과 풍경이 등장한다. 오히려 텍스트에 연연하지 않는 인상적인 구성에 초반부에는 마치 오래된 서양의 동화책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 색다름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읽으면서 불현듯 떠오른 것이 영국의 한 드라마 시리즈였다. '닥터 후'라는 시리즈인데, 그 드라마 중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를 꼽으라고 한다면 시즌 5에서 나왔던 10번째 에피일 것이다. 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우리의 반 고흐다. 에피소드 안에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화폭에 담기까지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구체화 해놓는 과정이 있으니 한번 쯤 본다면 좋을 것이다. 그 외에도 그의 작품과 책의 텍스트로 묘사된 '장소'들을 구현해놓은 장면들이 많이 나와 이 책을 읽으며 함께 보면 꽤 재미있을 것이다. 워낙 유명한 에피소드라 전에도 한번 본적이 있는데, 이번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를 읽으며 다시 봤는데 전보다 더 좋게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생전에 주고 받은 편지들을 모아놓은 책을 통해 그의 그림에서 다 읽어보지 못한 내면과 삶의 조각들을 길어올렸을 것이다. 왜 프레데릭 파작의 신간이 이러한 책은 이전에 없었을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는지 직접 읽으며 공감했다.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는 강렬하고도 매혹적인 책이다. 반어적으로 한번도 잊은 적 없었던 이에 대한 집요하고도 세밀한 추적이었다. 고흐의 사후에 마르지 않고 바쳐지는 영광과 찬미가 그의 지난했던 삶을 꿰뚫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접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번이라도 그가 그려낸 강렬한 색과 터치, 그리고 삶의 흔적에 매혹된 적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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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모르는 나에게 - 고민하는 청춘을 위한 심리학 수업
하유진 지음 / 책세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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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실, 제법 살았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지만 태어나 지금까지 보낸 시간도 꽤 된다. 당신이 스무 살이라면 1년 열두 달을 스무 번 산 셈이다. 하루로 계산하면 7300일이다. 스물다섯 살이면 9125일, 서른 살이면 1만 950일이다. 결코 적은 날이 아니다. - p88"

 

 사람의 성숙도는 대부분 시간의 속도를 맞추지 못한다. 때로 제 나이보다 많은 것을 겪고 생각한 아이들에게서 또래보다 성숙한 모습을 발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슬픈 기특함이다. 나이를 먹으면 먹으면 먹을수록 제 나이 이상의 성숙함은 꿈도 꾸기 어렵고 그에 맞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조차 버겁다. 늙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일까? 흔히 말하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마음만은 이팔청춘이고 싶다는 소망 때문일까? 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는 나이는 저절로 쌓이는데 정신은, 마음은, 그에 맞는 성숙함을 자연스럽게 갖추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은 그만큼 변화하는 시간에 맞춰 소망했던만큼 유연히 자신을 대처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아직도 십대때의 혹은 이십대때의 사고 그대로인 것 같은데 나이만 먹어서 난 아직 그대로라고 하면 나잇값도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나를 모르는 나에게'는 비슷한 지점에서 시작한다. 나와 남의 속도를 비교해보고 싶고, 지금껏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왔는데 이 다음 나아갈 곳의 방향조차 모르겠을때.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강의가 청춘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된 것 같다. 젊은이들 마음이, 위치가, 불안이 반영되어 있다.

 

 대학 강의에서 비롯된 책답게 자기자신을 찾는 법 중에 하나로 MBTI, 마이어브릭스 유형 지표를 소개한다. 요즘은 유명인들이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분류해놓은 내용들도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어 많이 알려져있다. 이런 류의 대학 교양 강좌나 특강에서 한번쯤 해보는 검사인데 혈액형이나 별자리보다 개인의 성향을 근거있게 분류해놓긴 하였지만 내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실제적인 선택은 또 다를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과도 달라지기 때문에 한번의 테스트로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이다'라고 정의내리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유형-기질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개선할 방법을 찾으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이 생각에 약간의 이견이 있는데, 한 개인의 모습이 자신의 특질에 따른 본모습이 정해져있다고만 보지 않는다. 내향형인 사람도 생존에 의해 외향형을 선택할수도,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서 외향형 사람도 내향형으로 행동할 수 있다. 언어학의 품사와 문장성분에 대한 설명에서 주로 나오는 예시처럼 '철수'라는 존재가 어떤 관계 안에서는 학생이 되고, 아들이 되고, 친구가 되어 기능하는 것처럼 그것이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인 판단이 작용했던 관계안에서 '철수'이지만 다른 모습으로 충분히 기능하며, 때에 따라 변환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6교시에 들어서면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책 중에 일자 샌드라는 상담가의 신작 '서툰 감정'이라는 책 내용과 비슷한 흐름이다. 질투, 두려움, 분노 같은 부정적인 연상을 주는 감정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진짜 감정을 가려 해석하는 것일 수 있다, 혹은 부정적인/긍정적인 감정으로 감정을 도덕적으로 나눠서 분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요지로 말한다. 여기서는 "부정적 정서가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더 좋아지고 싶은 바람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특성을 이해하면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약하고 무능하다고 탓하지 않게 된다. -p150"고 부정적 감정-불안-의 안에는 잘되고 싶다는-긍정적인-소망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전에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자신이나 타인을 상하게 한다면 부정적인 것으로 봐야한다고 결론지어 읽었는데 '나를 모르는 나에게'에도 연이어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생각해볼 내용이 나오니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스스로의 입장을 재고해보게 된다.

 

 이 책 역시 '청춘'을 대상으로 하는 여타의 책들과 비슷한 맥락으로 결말을 맺었다. "나는 당신이 욕심이 좀 있는 청춘이면 좋겠다. 세상에 맞서는 강한 맷집과 근성이 있는 청춘이기를 바란다. 할 수 있다고, 내가 해보겠다고 부지런히 손을 드는 청춘이기를 소망한다. -p368" 고 말하는 응원이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아 손조차 못드는 젊은이들에게 더 부담이 되겠구나 싶었다. 수업시간에 발언을 하려고 기다리다 지목받지 못해서 아쉬웠음을 토로하는 학생을 두고 왜 손을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나 안타까워 하기보다 내가 더 많은 기회를 주지 못했구나 하고 자신을 복기했음을 더 열렬히 털어놓는 저자였다면 하고 바라며 책을 덮게 되었다. 서른을 훌쩍 넘긴 후에야 이십대때 크게봤던 서른의 허들이 별거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마흔을 기다리는 내 일상도 별거 아니지만. 스물하나가 스물둘이 되는 것처럼 스물아홉이 서른이 되는 것도 그저 "또 하루 멀어져"가는 일일 뿐 인생의 지각변동이 오는 것이 아니다. 좋은 하루들이 모여 좋은 과거를, 좋은 내일 또한 기대하게끔 만든다. 만족할만한 하루를 사는 것을 목표로, 자신에게 잘해주며 살자. 가끔 책으로 위로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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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감정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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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 샌드의 책을 읽은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센서티브'라는 제목의 책이었는데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풀어놓은 내용이었다. 보통 외향적이길 기대하는 사회분위기에서 민감한 성향에 대해 소심하거나 예민하다는 등의 부정적인 표현들이 따라오기 마련인데 그것을 민감하다는 단어로 바꾸어 표현했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전작을 읽은지 몇개월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신간이 나왔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반년 정도 된 것 같은데 비슷한 류의 주제로 책을 낸다면 내용이 겹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다. 사람의 성향이나 감정에 대해 다년간의 상담 이력을 통해 나름의 시선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조절하며 생활할 수 있는 조언을 주는 흐름인데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내용은 아니다. 자신 내면의 감정이나 복잡한 생각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혹시 어떤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누구나 알고 있고 공감할만한 보편적인 내용을 정리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 자기계발서나 감성에세이의 구태의연한 흐름들에 현혹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툰 감정'도 일부 공감을 하며 읽었지만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이 빛나는 내용은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몇군데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소개한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은, 그 행동이 당신의 삶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당신 자신에게 금지하는 행동일 것이다."

전부터 다른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행동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라는 관점을 염두에 두었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속보이는 행동을 하는 동료나 친구가 꼴보기 싫거나, 모임에서 계산빠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불편하거나. 내가 할수도 있는 일이지만 체면이나 양심 때문에 하지 않은 일을 재빨리 해버리는 사람의 모습이 보기 싫다고 떠올리는 이 예들이 곧 나의 경우를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들은 내가 욕망하나 나 "자신에게 금지하는 행동"들 중 하나인 것이다. 넓게는 논란거리가 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들도 이런 범위 안에 있다. 일자 샌드의 '서툰 감정'에서 비슷한 관점의 내용을 접하게 되어 반가웠고 뒤이어 오는 '분노에 지배되지 않는 법'의 단락을 통해 4가지 경우의 갈래로 분노를 느끼게 되는 요인을 나누고 분석한 내용들을 보며 흥미로웠다. 하지만 개인 내면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외부적 요인을 통해 불어나 몸집을 키우는 사회적 분노 요인 등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본 내용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은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7장에 있는 질투에 관한 내용을 처음부터 관심있게 생각했는데 내용이 좀 짧고 확실한 마무리 없이 끝맺음을 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데서 오는 두려움, 경쟁에서 질 것이라는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질투를 야기한다고 하면서 이에 대한 해결법으로는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줄이기"나 "상대가 중요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주자"는 요지로 흘러간다. 더불어 질투를 느끼지 않기를 원한다면 원하는 것을 얻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포기하거나 둘 다 어렵다면 상담을 받기를 조언한다. 이것은 그저 관계를 끊어버리거나 외부적인 요인에 기댄 일시적인 해법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 공감되지 않았다. 조언으로 보기에는 좀 극단적인 방법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질투를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도덕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원하는 감정을 선택할 수도 없다."고 하면서 질투라는 감정도 나쁜 것이 아니라 서툰 것이라 주장하고 싶어하는 내용은 잘 정리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내면을 어지럽히거나 혹은 상대방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부정적인 감정인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있게 봤던 장이었는데 질투를 자존감과 연관시켜 풀어냈다면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2장에서는 꽤 실망스러운 내용도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많이 안고 읽었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당신에게도 그런 성향이 이다면, 지금 눈앞에 당신과 같은 성을 가졌고, 장애가 있으며,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그 사람과 당신을 비교해보라.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과 할 수 있는 일들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는 부분이었다.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떠올리며 그래도 내가 낫지라며 위안받느니 나보다 잘난 사람을 부러워하는 편이 더 낫겠다고 느꼈다. 남을 부러워하는 것도 못할 짓이지만 남에 비해 자신을 위안받는 것도 더욱 치졸하다. 아쉽고 안타깝고 왜 썼을까 이해가 되면서도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오히려 텍스트가 아닌 면대면의 대화를 한다면 저자에 대해 이보다 더 넓은 이해를 할 수 있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잘 정리된 내용을 읽으며 공감하다가도 왜 이렇게 마무리를 했을까, 왜 이런 관점에서 머물렀을까 싶은 부분들이 아쉬웠다. 좋은 리뷰가 되지 못했지만 솔직한 리뷰를 하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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