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8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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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반의 여러 말들은, 자기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나 직업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변해버린 친구 히라오카의 집안 사정이니 돈을 빌려주는 문제이니 모든 것들이 결국은 하나로 귀결되고야 말았다. 그 순간 역시나 싶으면서도 차라리 간단하고 명료해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모든 일의 움직임이 미치요에 대한 마음이었고, 그것이 진작에 엇갈린 방향으로 틀어졌다 바로 잡아진 것이라면. 이처럼 로맨틱한 글도 쓸 수 있었구나 싶었다. 비로 좀 괴상하도록 뻣뻣한 사고를 통해 얻어진 감정이라도. 그 후의 전신이 되는 산시로를 아직 읽지 않아서 이런 인물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좀 아쉬웠지만, 그 후는 그 후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있고, 의미도 있었다. 특히나 성인이 된 젊은이들이 가지게 되는 삶의 목표와 생업의 향방에 대한 밀접한 고뇌의 흔적이 맞물려서 아직까지도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품이었다.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다이스케가 다른 인물들과 나누게 되는 토론식의 대화였다. 나름 치열하고 교묘한 화법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 애쓰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 실감나도록 각 인물만의 특성이나 어조가 잘 드러나면서도 양 편의 입장을 팽팽하게 나타내었다. 다이스케가 늘 몇 수나 아래로 두고 보던 형수가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받아 생활하는 입장의 다이스케가 친구 돈을 갚아주겠다며 돈을 빌리러 왔을때 그를 마주하고 하자던 이야기는 다이스케의 시선으로 주변 인물들을 바라보던 독자의 입장에서도 놀라운 반격이었다. 거기에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 어떤 식으로 행간을 읽는지 일본 특유의 태도가 잘 드러나는 부분들이 많아 흥미로웠다.

 

 다이스케는 참 재미있고 흥미로운 인물이었는데, 형수와 다이스케의 관계를 보고 있자면 아무리 형수가 옳은 소리를 한대도 다이스케는 그녀를 결국은 여성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자일 뿐이며, 그래서 더욱 귀여운 면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음이 느껴진다. 어떤 의미에선 자신의 삶을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은 남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주제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노동이니 결국 밥을 얻기 위한 노동이니 하는 기조를 논하려 하는 다이스케의 모습이 현실감 없는 공론이나 따지길 좋아하는 철없는 투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선 그가 그런 식으로 굽히고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공감하고 응원하게 되기도 한다.

 

 몇 편의 글을 접하면서 일에 대한 소세키의 관심이 대단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직업을 구하기 위해 모르는 사람을 따라 먼 길을 떠난 갱부나 일을 하지 않는 다이스케를 둘러싼 주위의 평가가 대단히 많았던 그 후도 그렇고, 직장에서 생긴 우스우면서도 우습지 않은 사건사고를 그린 도련님도 떠오르고. '일'을 사람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으로 두고 생각하는지 이제 느껴진달까. 결국 이 글은 미치요와 다이스케가 먼 길을 돌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그로인해 -사랑으로 말미암아- 결국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게 된 한 남자가 느끼게는 현실이라는 첫 단추의 현기증으로 마무리되는 셈이다. 이토록 가볍게 감상을 마무리하게 되는 점이 좀 유감이지만, 로맨틱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재미있었다. 초반에 비해 후반으로 갈수록 내용이 좀 빠르게 전개되는 것 같았는데 이제 이 다음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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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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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몸이 좋지 않아, 읽은 것은 있어도 막상 적으려고 앉지 못했다. 다른 일들은 잠깐씩 했지만, 해야할 일은 조금씩 미루게 된 것이 씁쓸했다. 그 중의 하나가 갱부에 대해서 적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그저 재미있게 읽었던 이 작품에 점점 동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결국은 해야 할 말을 점점 더 줄여야 하게 될 만큼.

 

 한번도 무엇을 해본 적 없는 나는 길에서 만난 사람을 좇아 멀리 떨어진 곳의 갱부 일을 소개받게 된다.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번지르르한 말에 혹한 것은 아니지만, 어디든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있고 싶던 차에 그만 별 생각없이 따라나서게 된 것이 갱부의 일이었던 것이다. '인생 되는대로'의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걸었더니 그 끝이 갱부의 길이었다니, 더이상 떨어질 나락이 없을 정도에 다다랐다는 뜻으로 주로 쓰는 말이 막장인 것과 미묘하게 닿아있는 것이 여전했다.

 

 소세키의 다른 글들도 그렇지만, 특히나 잇속과는 좀 동 떨어진 것 같고 어딘가 엉뚱해보이기 까지 한 인물들 중에서 '갱부'의 주인공이 가장 애착이 가도록 여겨졌는데 그가 무구해보이면서도 사실은 자신의 죄로부터 도피하고 있는 비겁한 인물이고 어떤 것도 책임질 자세도 없으면서 오기는 남아 있는 고집스런 인물이기도 해서 이다. 게다가 변덕스럽기도 해서 금새 힘들다고 마음을 바꾸었다가도 남을 의식해서 고쳐먹기도 하는 점이 보는 사람이 민망하게도 인간적인 점도 재미있었다.

 

 [ 나는 명령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내를 만나고 나니 이제 혼자 나갈 생각이 가시고 말았다. 죽어도 혼자 나가 보이겠다고 큰소리쳤던 결심이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 변화를 알고 있었다. 그래도 별로 창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남에게 공언한 일이 아니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에게 공언했기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번번이 했다. 남에게 공언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엄청나게 다른 법이다. ]

 

 이상하게도 가장 인상깊은 부분이, 그제 막 튀겨 신선하며 파리가 잔뜩 앉은 모래 묻은 아게만주를 도테라와 마주한 채 몇 개라도 먹어치우던 것이었다. 읽기만해도 기분이 나빠질 것만 같은 모양인데도 읽다보면 어쩐지 나도 몇 개 쯤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치우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상대방에게 권한다던지 먹은 갯수를 가늠한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예를 차리거나 속으로 셈을 하고 있는 일본적인 느낌도 물씬 풍겨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사회에 만연한 막장이라는 말을 거두어 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되는대로 길을 놓아버린 청년이 다다른 깊은 광 속 막장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흔히 붙이는 수식으로 전락해버린 막장이 오히려 안타까워진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싸구려 드라마에 제목처럼 붙어 나오는 막장이란 단어를 조용히 거둬오고 싶고, 되도 않는 일을 저지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막장이네, 하고 말하는 가벼운 한 마디도 거두어 오고 싶어진다. 주인공이 야쓰라는 인물을 긍정하는 방법과 같이, 막장이라는 말 자체에 떨어진 의미를 떠올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 사회가 야스 씨를 죽인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 말한 대로 사회란 어떤 것인지는 요령부득이었다. 그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인간이 왜 야스 씨처럼 좋은 사람을 죽였는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사회가 나쁜거라고 단정해봤지만, 그렇다고 결코 사회가 미워지지는 않았다. 그저 야스 씨가 딱할 뿐이었다. 가능하다면 나와 바꿔주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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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양국일.양국명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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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공저'라는 것이다. 애석하다.는 것은 차치하고, 어떻게 두 사람이 한 작품을 사이좋게 같이 쓸 수 있지 싶다. 만화야, 스토리와 그림 파트가 나뉘어져 있기도 하니까 흔한 일인데, 글을 쓴다는 것은... 한명이 아이디어를 내고 한명이 글을 쓸 수도 없고, - 그랬다간 누구의 안에서라도 내 것을 완벽하게 써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것이 자연하니까 - 부분을 나눠서 하자니 문체가 확연히 달라지거나, 굳이 나눠서 쓰더라도 마지막엔 둘 중 한명의 손으로 전체적인 흐름을 다듬기 위한 정리가 필요할텐데 어떻게 공저가 되었을까 하는 점이 제일 흥미로웠다. 전에 여러명이 하나의 글을 썼던 적이 있는데, A4지로 6-7장 정도 되는 분량이었으면서도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어 더 그랬다.

 

 악령의 내용은, 덮어놓고 좀 분위기를 강요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책에선지 읽어봤던 내용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한 세시간 딴짓하면서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도 책 이름이 기억 안나서 답답하다. 결국 이렇게 늦은 시간이 되어 버렸네. 'KM문화예술고등학교' 라는 곳을 무대로 해놓고, 거긴 폐쇄적이어서 외부와 닿기도 어렵고 정말 이상하고 무서운 곳이라는 이미지를 너무 직접적으로 주입시키려는 흔적이 너무나 많아서 생생함이 부족했다. 글쎄, 아무리 진학률이 높은 곳이라도 아이들이 몇이나 '실종'이 되는 학교에 제대로 된 항의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묘하다. 거기다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을 전도가 유망한 학생들이니, 더욱이.

 

 환상적인 것은 좋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되도록 '느껴져야' 좋은 것이지, 주입식으로 "여긴 환상적인 곳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너무나도 리얼한 눈으로 건조하게 환상이 덧붙여진 균열의 부분을 짚어내게 되는 것이다. 이니그마로 초대되는 태인의 모습들도 그런 균열로 가득찬 것처럼 보였다. 의외로 수지의 비중이 적었고, 유미의 외모 때문에 무조건 적으로 이니그마라는 서클의 방향으로 끌리게 되는 점도 너무 빨랐다. 게다가 전교 1등 석규라는 캐릭터도 1시간 2-30분 남짓의 러닝타임 공포영화에 주로 나올법한 급변하게 되는 광기 서린 인물의 전형처럼 느껴졌다. 신선함의 부재와 많은 인물들로 인한 잔가지로 전체 흐름이 부자연스럽게 빠른 진행으로 되었다는 점이 심히 아쉬웠다.

 

 게다가 엄마가 남겨준 만년필로 물리친 여우귀신이라니. 이런 흐름을 왜 두 사람이서 만들어냈을까. 애초에 대상 연령층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졌다. 대상 연령층을 가늠해보기 위해 새삼 표지를 훑어보자니 내용 자체로 보면 제목에 매우 충실한 것이기도 한데...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다. 청소년 도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속도감이나 인물의 감정선 등이 러프한 부분이 있다고 넘어가기엔 섬세하고 감명깊은 청소년 도서들이 버젓이 존재하기 때문에 찜찜하다. 아마 초등학생 정도면 읽으면서 진중한 무서움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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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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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들이 낳은 아이를 살해하고 유기하는 선택을 하게 된 어린 연인. 그리고 8살 난 여자아이가 온 몸이 묶인 채 살해당하는 사건. 귀가길 돈을 갈취하려는 목적의 강도에게 우발적인 살해를 당한 이혼녀.

 

 다른 두 직선이 마주하는 점을 어쩌면 인연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공허한 십자가' 안에서의 그 접점은 그다지 로맨틱한 면은 없었지만 그 악연도 결국은 인연이니. 바로 그 사람과 사람이 삶의 교차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읽으며 떠올랐다.

 

20여년 동안 일어난 세 번의 살인사건과 맞물리면서 사형제도에 대한 각 인물들의 입장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마치 독자에게 당신은 어디에 속하고 있느냐고 선택을 하라는 듯 종용하듯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있는 문제이니만큼 읽으면서 이 편에 휘둘렸다가 저편에 섰다가 자꾸만 생각을 바꾸게 되는데, 책을 덮을 때까지 끝내 뭐라 결정하기 힘든 문제였다. 게다가 한번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은 재범을 저지를만한 상황이 오면 또 다시 그러한 짓을 저지르기 쉽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나오는 점도 쉬운 내용을 쓴 것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에 천명이라는 프리뷰 독자 모집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북 제공이라는 말에 단념해야 했는데, 기쁘게도 책 한 권이 내 손에 들려지게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라니.

 

이 작가는 정말 독특하다. 대단한 것은 당연하고, 작가로서 이 정도 수준의 작품들을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발표해나가는 역량은. 이런 소설들을 떠올리고, 구성을 하고 인물을 만들어나가는 일이 그렇게 쉬운가 마치 그날 그날의 일기 몇 편을 모아 발표하듯이 빠른 속도라니. 오히려 독자가 되어 그의 글을 차례로 읽어나가는 일이 더 숨가쁘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그러기엔 몰입도가 너무 높은 글을 쓰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번 작품도 수준급이었다. 잘 읽혀지면서도 그 안에 의식을 담아내고 주제를 생각해보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좋았다. 그 때문에 다소 무겁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의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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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줘, 레너드 피콕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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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를 바라보며 어떤 내용일지 떠올려봤을때 사실, 음악과 마약이나, 총기 같은 것이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읽고보니 온통 치열하고 복잡한 그야말로 자신과 싸우느라 지쳐 너무나 작아보이는 한 소년의 이야기였다.

 

 [ "내 삶이 나아질 거라고요? 정말 그렇게 믿으세요?" 나는 선생님이 뭐라고 말할지 알면서도 그렇게 물어봤다.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대부분의 어른들이 의무적으로 그렇게 해야 하다고 느끼는 그런 대답이 돌아온다. 물론 압도적인 증거들과 그동안 쌓아온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사람들의 삶이란 죽을 때까지 더 나빠지기만 하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정말 행복하지 않다. 그게 진실이다. 하지만 실버맨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면 덜 거짓말처럼 들릴 거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그럴 수 있어. 네가 기꺼이 그 일을 하려고 들면." "무슨 일이요?"

"세상이 널 망가뜨리게 내버려두지 않는 거지. 그건 매일매일 싸워야 하는 전쟁이야." ]

 

 창밖으로 세 대의 소방차와 두 대의 응급차가 긴급한 경보를 울리며 도로를 헤쳐 달리는 경광등을 바라보았다. 어떤 이에게 벌어지고 있을 불운한 사고를 떠올린다. 방금 손에서 떼어낸 레너드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있는 와중에. 누가 혹은 무엇이 다른 존재를 죽음으로 내모는가 생각해보았다. 증오, 총이나 칼, 분노나 미움 같은 것들도 분명하지만 기댈 길 없는 외로움이나 풀어낼 수 없는 괴로움, 막혀있는 듯한 절망도 안에서 스스로를 좀먹어가는 죽음의 일부같다 생각했다. 레너드의 괴로움들은 너무나 일반적이고 일상적이어서 안쓰러웠다. 상처를 - '그의 것'을 통칭으로 상처라 불러야 하는 것이 유감이지만, - 받은 자가 어디에도 그 아픔을 호소할 수 없는 외로움에 고립되어 있을 때, 치료되거나 한 번도 드러내어진 적 없는 아픔이 어떻게 곪아가는가를 우리에게 적나라히 보여줬다. 끔찍하고 괴로운 일 앞에서 사람을 다시 서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전화번호를 건네주는 일이나 어리석은 일이라 한대도 택시비로 이십만원 정도로 써서 함께 돌아갈 여지를 남겨두는 일이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는 사소함이라니. 막막한 와중에 한켠으로는 안심되도록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레너드는 분명 복잡하고 또 까다로워서 다루기 힘든 소년이다. 그의 상담 선생이거나 학교의 교감이라면 때로 골치를 앓을 수 있을 만큼.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많은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또 기꺼이 그것을 웃음으로 만들 줄 아는 매력있는 학생이기도 하다. 그를 학생으로만 본다면. 애셔를 죽이고 자신도 죽을 생각을 하면서도 축하받지 못한 생일에 대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들은 그것에 아직도 많은 의미를 두는 레너드의 어린아이다운 점이기도 했다.  

 

 안쓰럽게도 그 아이는 누구에게도 사과를 받지 못한 소년이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이 소년의 이야기를 하려면 반드시 그에게 사과를 건네야만 하는 작은 장치를 마련해놓은 점이 재치있다고 느껴졌다. 마치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가 시대적으로, 또한 범인류적인 애도를 가지고 사과해야하는 것처럼. 다행히도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애처로우면서도 눈길을 끄는 상처받은 연약한 존재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느껴지므로, 누군가와 레너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에 - 그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느냐고 알려주고 싶을 때에도, 반드시 사과받지 못한 그 소년을 위해 기꺼이 말할 용의가 있다. '용서해줘, 레너드 피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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