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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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때, 그래 얼마나 재미있게 잘 쓰셨는지 감상해보겠습니다. 하는 마음가짐 - 곱게 말하면 기대를 안고 읽는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때 교과서가 아님에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저자들의 책이 있다.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의 저자 장석주가 그러하고,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의 저자 정혜윤이 그러하고 또, 팟캐스트 '빨간책방'을 방송하는 '밤은 책이다'의 저자 이동진이 그러하다. 다독을 하며 그것이 깊은 사유와 통섭의 경계로까지 이어지는 소양을 지닌 저자들이라는 것이 그 공통이다. 때문에 저자 장석주의 신간 소식을 현암사로부터 들었을때 기대가 많이 됐다. 더불어 걱정도 됐다. 배우면서 읽는 시간들이 얼마나 더디게 지나는지 예상이 되니까.

 

 신간은 총 네분류로 나뉘어져 있다. 사계절. 계절마다 부제가 달려있는데, 각기 [ 봄 : 고갈된 사색의 능력이 살아나다 - 여름 : 책 읽기는 독충이나 돌발사고도 없고 그리고 비행기 편으로 부친 수화물도 분실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여행이다 - 가을 : 가슴이 뛰는 이유는 책상 위에 쌓인 책들로 인해 내 지고한 쾌락이 더 감미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 겨울 : 정신적 침잠 속에서 사소한 기억들을 모아 잇고 철학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으로 되어 있다. 봄의 부제를 보는 순간부터 저릿하고 달려오는 환기에, 저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질 못한 채로 지난 몇 개월의 시간을 돌이켜봤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여가라 여겼던 독서나 영화감상 등에서 멀어져 있었다. 아무리 보고 읽어도 지겹지 않던 것들을 지속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 만으로도 버거웠던 시간.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려해도 집중도 되지 않고 그저 말초적인 자극에만 의지하여 핸드폰만 만지작대던 시간이 떠올랐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봤는데 당장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 내려놓고 사색하는 것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지나치게 광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부제들이 삶과 사유를 한단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한 과정을 한 해 살이로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사계를 다 거치고 나면 끝나서 텅 빈 것이 아니라 자신을 리프레쉬하기 위해 다져진 한 해를 완성하게 되는 것 같이.

 

 대부분 배우면서 읽었는데, -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읽는 버릇만 없었다면 밑줄이라도 치고 필기도 할 요량으로- 그 중에서 공감하면서 읽은 부분은 도서관에 대한 언급이 되어 있는 단락이었다. [도서관은 가슴을 뛰게 하는 공간 중의 하나다. 도서관이 각별한 것은 젊은 시절 한때 절망과 불안을 억누르며 하염없이 소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어떤 사람에게는 '비밀스러운 낭만의 공간'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꿈을 잉태하고 키우는 모태 공간이기도 하다. ...중략... 왜 도서관들은 접근이 쉬운 도심 한가운데 있지 않고 변방의 녹지나 공원 귀퉁이에 있는 것일까? 첫째, 도서관들이 도시 중심부에 상업 업무 시설이 다 들어찬 다음에 지어졌기 때문이고, 둘째, 도서관이 이윤 창출이 없는 공공건물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무슨 수로 도심 한가운데의 높은 지가를 감당할 수 있으랴! 도서관이 소음이 덜한 도심 외곽에 있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더 다양한 작은 도서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라는 내용인데, 이사오기 전 살던 지역이 작은 규모로 집중적으로 발달한 곳이라 중심부와 도서관이 멀지 않아 도보로 이동 가능하고 역사와 연계된 대여 서비스도 잘 운영하고 있어 정말 감사히 이용했던 기억이 있다. 즐겁게 사용했던 발달된 도서대여 시스템에 멀리서도 찬양과 감탄을 보내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눈에 많이 밟히는 내용이었다. 도서와 독서를 위해 마련된 도서관이 이윤 창출이 없는 건물이라는 이유로 외따른.. 곳에 지어져야 한다는 것 또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가치라는 것이 이윤으로 상응되어야 하는 것일까, 하고.

 

 또 하나는 '미국이라는 타자'에 대한 내용을 담은 장이었는데, 개봉으로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생각 이상으로 졸렬한 내용에 모두가 실망을 감추지 못했던 '인터뷰'라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고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이나 '식코'같은 영화들도 떠올랐다. 어떤 내용이 인상깊게 여겨지거나 더 주의깊게 보게 되는 계기가 내가 가진 바탕에 따라 좌우하기 마련이니, 감상과 생각은 자신이 체득한 만큼의 경험과 배경에서 이루어진다는 확실한 증거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단 한 장을 읽어보라 추천해줄 것을 말한다면 '이 여름은 전대미문의 여름이다'를 꼽을 것 같다. [ 태어남과 죽음은 우주적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나방이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듯 나도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존재의 일의성 앞에서 겸허하게 나의 태어남을 우주적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아울러 나는 정직한 방식으로 세계의 다채로운 삶에 참여하고 있다. ...중략... 나는 '영원성'에 대한 상념을 멈추지는 않지만, 오늘 여기에서의 하루가 결코 도무지 알 수 없는 추상적인 '영원성'에 견줘 하찮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내일은 또다시 황옥같은 해가 뜨고, 그 해가 내일의 삶을 비추리라. 이 여름이 내 생에게 단 한 번 나타나는 전대미문의 여름임을, 해가 뜨고 지는 이 평범한 하루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금보다 더 값진 하루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 일상적이면서도 시간과 공간의 분위기가 글 안으로 녹아들어가 있는 듯한 흐름이 영상을 읽는 것 같은 아름다움을 준다. 더불어 '8월에는 휴업 중이니, 글쓰기도 사양합니다'도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무심결에 떠올려봤는데, 물론 다 실행하기 정말 힘들겠지만 각 장마다 나온 책들 중 한권 정도를 선택해 사계절에 맞춰 읽으며 보내면 어떨까 생각했다. 12권에서 13권 정도 되니까 계절마다 3개월 일주일에 한 권의 책 정도면 된다는 계산이 얼핏 나온다. 이런 생각을 꿈같이 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서워진다. 이러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던 뜬구름이 진짜 계획이 되어 산처럼 내려지는 아득함? 책을 고르는 일부터가 1개월치의 괴로움은 될 것이다. 벤야민의 책은 '일방통행로'가 되겠다, 아마도. '아케이드 프로젝트'도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궁금하지만 1, 2권으로 나뉘어져 있기도 하고. 헤르만 헤세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세번째부터는 롤랑 바르트의 책을 선택할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로 정하고 빼먹을지 선택의 연속이다. 이런저런 궁리를 책 덮기도 전에 시작하고 수많은 책들 중 읽은 것은 손에 꼽기도 어렵게 적다는 사실에 낙담하기도 한다. 사실 언급된 책들을 읽고 서평을 써보겠단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첫 장에서 이미 그 생각은 접게 되었으니, 떠올리며 읽을 수 있는 독자가 있다면 심히 부럽고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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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산보
플로랑 샤부에 지음, 최유정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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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적인 일러스트로 가득한 책은 특이하다. 이런 책들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저자인 플로랑 샤부에의 시선이 도발적인 것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일러스트로 표현하는 타국의 생활이면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점철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솔직한 부분이 더 많았다. 일본 남자들의 헤어스타일에 대한 일러스트를 보면서 각자의 헤어스타일과 그런 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의 주된 특성을 써놓았는데 코멘트가 솔직하다 못해 웃기도록 예리하다. 스맙의 멤버들을 그려놓으면서 감히, 기무라 타쿠야에게 여장남자 같다는 말을 하거나 초난강이 한 드라마 캐릭터가 좀 모자란 사람 역이었는데 잘 어울렸다는 둥의 말을 써놓은 것도 배짱이 있네 싶었다.

 

 일본에 대해 그래도 옆나라이니 많이 안다 싶었는데 확실히 직접 몇달이고 다녀온 사람의 시선으로 본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았구나 싶었다. 바퀴벌레가 많다는 것도 그렇고, 과일 가격이 망고 하나에 이천엔이라면 한화로는... 살인적인 물가구나 싶었다. 망고가격이야 우리나라도 비싸긴 하지만. 별별 것들을 다 그리고 적어놓은 실용적이면서 편집증적인 책이다. 기억해두기 위한 기록용 수첩을 그대로 공개한 느낌이라 작은 코멘트 하나도 챙겨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보다보면 일본에 대한 여행욕구보다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진다. 시각도 좀 색다른 것 같고 그가 그려낸 일러스트 들이 사실적이면서 예쁜 색감을 보일 때가 있어서 좋았다.

 

 한번쯤은 유럽에 다녀오라는 계시인가. 요즘들어 프랑스라는 아이콘이 자주 눈에 밟힌다. 얼마 전에는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프랑스 사람과 영어로 대화를 했다. 작년 말에는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프랑스 사람과 잠깐 개인교습을 한 적이 있었다. 그가 금방 대만으로 떠나는 바람에 잠깐에 그쳤는데 그때 프랑스 말을 두마디 배웠다. 그 중 하나가 '올랄라'였던가. 자신도 모르게 조금 놀랄만한 사건에 대해 얘기할때 '올랄라'하고 나온 그 감탄사가 익숙하면서도 생소해서 한참 웃었다. 개인적인 얘기만 잔뜩 늘어놨지만, 이 '도쿄 산보' 역시 나더러 프랑스에 다녀오라는 계시 중 하나로 생각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쓸 수 밖에 없는 애기였다. 일본에 관한 책이지만, 저자는 프랑스 사람이니까. 나보고 프랑스에 다녀오라는 얘기이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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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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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이시로군요"

 

 첫 시작이 얼마 되지 않아서 눈이 크게 뜨일 정도의 도발이 들어와 박혔다. 소세키는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의 인물을 구성할 때, 그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에 대한 것도 이런 식으로 에피소드화 하여 풀어내는 것을 같이 하는 것일까. 새삼 감탄스러웠다. 결국은 바로 이 한마디가 소설의 처음부터 끝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문장이 바로 산시로이니까. 이 수미상관식 구조를 바로 그렇다고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 약 300쪽에 걸쳐있다. 그가 그런 인물이라는 것을 그 하룻밤으로 전부 풀어내었는데도 나머지 300쪽의 자취를 좇아 증명하여 알고 싶도록 만드는 소세키의 힘에 의해.

 

 

 

 산시로를 읽으며 문득 내 대학시절을 떠올렸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던 터라 낯선 환경으로 가게 된 것은 아니었는데 간혹 애써 사투리 흔적을 지우며 서울말을 쓰는 학생이 몇 있었다. 그네들은 혹 산시로처럼 고향과 서울 사이에서 오는 간극을 느꼈을까. 우리는 순대를 소금에 찍어먹는데 너네는 장에 찍어서 먹었구나 서로 그게 뭔 맛이대? 하고 묻거나 서울 오면 가보고 싶었던 데가 있었냐고 묻자 애인 생기면 같이 남산타워 가겠단 포부에 평생 근처도 못가보기 전에 혼자 다녀오라며 열없이 웃었던 기억이 문득문득 난다. 그들도 보란듯한 서울사람이 되어  방학에 고향엘 가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말투가 이상해졌다며 구박받고 오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어쩐지 산시로가 바로 그런 그들의 얼굴을 하고 마치 내 옆에 서있던 것만 같다. 재미있다.  

 

 

 

[ "헬리오트로프"

 

미네코가 조용히 말했다. 산시로는 무심코 얼굴을 뒤로 당겼다. 헬리오트로프의 병. 해 질 녘의 혼고 4가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 하늘에는 환한 해가 높다랗게 걸려 있다.

 

"결혼한다면서요?"

 

미네코는 하얀 손수건을 소맷자락에 넣었다.

 

"알고 있었군요."

 

미네코는 이렇게 말하면서 쌍커풀진 눈을 가늘게 뜨고 산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산시로를 멀리에 두고, 오히려 멀리 있는 것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눈빛이다. 그러면서도 눈썹만큼은 확실히 차분하다. 산시로의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렸다. ]

 

 

 

 미네코와의 에피소드들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일본판 건축학개론처럼 느껴진다. 순서로 따진다면 건축학개론이 한국판 산시로라고 해야 하겠지만. 딱 그 두 작품의 시기가 그렇다. 순수로 성장한 성인이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사회는 아니지만 사회와 가까운- 바로 그 앞 지점의 공간에서 성인 대 성인의 만남을 갖는다. 그 안에서의 성장은 신체적, 정신적 성장에서 사회적인 성장으로 -이전까지의 순수성을 잃고 사회로 나가기 위해 적당히 때를 묻히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소극적임이 얌전함일 수 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의 비겁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개인이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린 탓에 묘한 씁쓸함을 준다. 성장한다고 해얄지 때가 탄다고 해얄지, 성장이 주는 단어의 긍정적인 뉘앙스만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청춘의 한 때를 절묘하게 그려내었다.

 

 

 

 전체적으로 세련되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운 티가 났다. 그 촌스러운 티라는 것이 악의적인 뜻은 없고, 그저 패션과 같은 의미이다. 흔히들 패션은 유행이 도는 주기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20년이라고 했던가 혹은 그 이상도 될 법한 흐름을 타고 예전에 유행했던 아이템들이 다시 유행하게 되어 옷장을 뒤져 예전 옷들을 찾아내어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바로 그런 기분이 산시로에서 들었다. 멋지고 질도 좋고 지금봐도 트렌디함이 묻어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미묘하게 엇나간 포인트가 지금이랑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작품들을 보면서 지금봐도 트렌디함이 묻어난다는 부분에 큰 의미를 두고 대문호의 작품에는 사람의 삶이란 것을 관통하는 한 획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산시로에서는 그런데, 그럼에도 시대의 흐름이 변하긴 하였구나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서양에 대한 언급이 많이 되어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무엇 때문에 그럴까 생각을 오래 해봐도 속시원히 결론은 나지 않는다. 언제고 시간을 두고서라도 왜 이렇게 느끼는지 정확히 떠올리게 된다면 덧붙여 써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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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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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아홉개의 단편으로 되어 있는 책은, SF라고 불러도 될지 의아했다. 워낙 현실성을 바탕으로 둔 탓에 뭔가 좀 설득력이 있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해 설명해보라면 복잡하겠지만, 그래도 자꾸만 장르소설이라고 묶어두기엔 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 어쩌면 뭐 그런 것을 구분짓겠다고 하는 것 자체도 의미없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그 둘 사이에서 어느 곳에 끼워넣기 애매하단 생각을 떠올리는 것을 보니 SF라고 하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가보다. 뭔가 더 우주적이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스케일에 대한 고정관념같은 것. 물론 소설집 '라면의 황제' 역시 그런 면모가 있다. 조금 소소하긴 하지만 충분히 기발하고 미래적인 상상력의 산물들이 이 안에 담겨 있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나, 우주전쟁 그리고 유에프오에 대한 이야기들. 근데도 묘하게 집요한 이 소설의 현실성 때문에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 진지한 얼굴로 얼토당토 않은 얘기를 몇 시간씩이나 떠들어대는 허풍선이의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듯이 읽게 되는 책이었다.

 

 인상적인 단편들도 있고, 어쩐지 진도가 안나간다고 여겨지는 단편들도 있었다. 첫 단편에서는 어쩐지 김중혁 작가의 '미스터 모노레일'이란 책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인데 생각해보니 분위기가 좀 비슷한 것도 같다. 거기서도 '볼스 무브먼트'같은 읽으면서도 난감한데 어딘지 묘하게 설득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요소들이 등장하니까. 한국과 이란 친선 외교의 상징인 페르시안 카펫의 존재가 마치 기정사실인양 여겨지도록 말이다. 좋아하는 책과 비슷한 분위기니 '페르시아 양탄자 흥망사'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나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표제작 '라면의 황제'도 좋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거진 달리는 지하철 위나 12시간 넘은 야심밤에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라면을 먹으며 '라면의 황제'를 읽을 수는 없었다.  '한 겨울에도 라면 한그릇이면 거뜬하다'는 말에 현혹되어 표지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라면 한그릇을 끓이는 대신 부셔서 먹었다. 다행이도 덕분에 책은 라면 받침이 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원래 안 쓴다. 진짜.

 

 시쳇말로 '약을 빨'고 써내려간 듯한 느낌이 나기도 한다. 후안 곤잘레스와 전 시청 공무원 김씨의 만남이 주는 위화감도 그렇고, 어디서 갑자기 한국 속담으로 '아프니까 청춘'이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거기다가 김범식 군의 심신미약 상태를 증명하는 동시에 지적능력에 대한 판단도 가능하게 만드는 파괴적인 노트의 제목, '개들의 死生活'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덕분에 다 읽고 나면 '와, 재밌네요, 각 단편마다 하나같이 재기가 넘칩니다.'하고 말문을 열 것 같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워낙 주거니 받거니 읽어가던 책이라서인지 책한테 읽은 감상을 주저리주저리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싶었다. 당연하게도. 문체에도 유행하는 방식이랄까 하는 것이 있는지 요즘 좀 읽힌다 싶은 책들은 이런 느낌이 든다. 실제와 허구를 교묘히 섞어서 말장난하듯이 슬쩍, 진지하게 눙을 치는 듯한 문체다. 계속 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꽉 진 오른손을 바라보라고 해서 보고 있었는데 막상 기다리던 구슬은 오른손 주변에서 정신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던 왼손 소맷자락에서 굴러나온, 그런 마술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진지한 어조에 저도 모르게 귀도 기울이고 시선을 꼭 붙들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또 그런 게 재미있다. 엉뚱하고 발랄하여 그래서? 하고 그 다음으로 자꾸 마음을 빼앗기게 만드는 문체로 독자에게 인사한다. 당신이 아는 세상을 비틀고 꼬아내어 만든 이 새로운 세계로 헤라트 카펫 자락을 따라 온 당신을 환영한다고, 라면 먹고 가실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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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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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머리가 그것이었다. [서울대학교. 내가 입학하고 졸업한 학교다. 으스댈 뜻은 없다. 굳이 그 이름을 피하고 싶지 않을 뿐.] 책 날개에 붙어 있었던 작가의 사진이나 약력같은 것은 무심결에 넘긴 뒤였다. 그런데 묘하게 사람 뒷머리를 잡아채는 현실성이 있었다. 장편'소설'이라며? 그런데 왠지 소설이 아닌 것 같은 시작이었다. 다시 책 날개로 장을 돌렸다.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내 감이 맞았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굳이 [으스댈 뜻은 없다.]는 말이 꼬아 보인다. 아니 그럼 혹시 곱창전문대 돼지막창학과를 졸업했어도 이렇게 자신을 바탕으로 책 한 권 펼쳐내며 으스댈 뜻 없다고 썼을까. 하는 생각을 불현듯 떠올렸다가 고개를 휘저었다. 흔한 말로 갑자기 책 한 바닥 읽기도 전에 왠 열등감 폭발이세요, 할 것 같다. 그냥, 뭐. 자랑할 만한 건 자랑하는게 차라리 보는 입장에서 인정하기 쉽다는 거죠. 하는 회피와 더불어 그 건조한 어조조차 뭔가 있어 보여서 반 장난식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렸는데, 하는 변명이 머릿속을 오간다.

 

 뭐 이런 조잡한 사고가 독자의 머릿속에서 한바탕 그려지다 사그러들 것을 예상했는지, [굳이 그 이름을 피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그랬다. 이야기의 이해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그가 피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낸 바람에 오는 소설과 현실의 묘한 설킴이 독자들에게 혼동을 주고 있다는 점을 생각했다. 한두장 분량으로 자잘히 쪼개진 단락들은 읽다보면 생생하고 실제적인데 결국 이거 '소설'이었지 하고 머릿속으로 쌓아놓은 현실적인 공간을 휙 세트로 바꾸어버린다. 보통 다른 글들을 읽었을 때 소설의 세계를 허구로 구상하며 실제적인 요소를 넣으려 노력한다면, 이 글은 실제적인 세계를 바탕으로 읽다가 문득 만들어진 진짜 세계를 착각하기 전에 허구적인 공간이라고 인지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거다. 거짓말을 잘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거짓된 판을 짜는 것이 아니라, 전부 진짜로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살짝만 거짓을 끼워넣어야 한다고 했던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손아람의 '디 마이너스'는 독자를 현혹시키는 잘 짜여진 소설을 내놓은 셈이다.  

 

 사람들의 집중력이 글 읽는데에 한해서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어떤 논문이라도 읽은 것일까, 장으로 나뉘지 않고 한두장 될 법한 분량들로 나누어진 내용들은 끊기지만 불편하지 않은 흐름으로 연이어 읽힌다. 매일이 자잘한 사건이고 사고인 젊은 시절의 일기장을 돌아보는 것 같은 소소함도 있고 소소한 속에 황당할 정도로 웃픈 사연도 껴들어 있다. 거기에 시위와 사회문제들, 화염병, 쇠파이프, 전경 같은 단어들이 무섭도록 실제적으로 마치 그런 일상들 중에 하나인 게 자연스러운 일처럼 놓여있다는 점도 웃펐다. 예를 들면 축제 공연을 온 가수가 여학생들 호응을 얻겠다며 가슴 크기 운운하다 냉랭해진 분위기 속에서 무대를 내려와야 했단 부분은 가련하면서도 웃긴다. 대공분실에 갔다온 선배는 그와 그의 여자친구를 위해 기꺼이 기숙사 방을 빌려주었던 후배의 이름을 설렁탕 그릇 앞에서 불었고, 후배도 그 설렁탕 그릇 옆 깍두기 비닐을 떠올리며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을 불었다는 꼬리물기도 웃펐다. 그런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유쾌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음울했던 디 마이너스는 사실 그 제목 그대로였다. 어쨌든 에프는 아니니까 실패는 아닌데 그래도 성공적이라는 둘레의 축에도 낄 수 없는 학점. 디가 나온 과목의 학점은 일부러 삭제 신청을 하고 재수강을 해서 어떻게든 안좋은 학점을 세탁하려고 시도했던 때가 벌써 십년 전 쯤 되는 나는- 이제 생각해보니 삭제했던 디 학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게 남아있으면 먹구름만 가득 차버릴 것 같았던 내 인생이 사실, 그것들이 남아있었어도 결국은 이렇게 평탄하게 다른 평행우주에서도 오늘같은 밤에 똑같이 거실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디 마이너스를 떠올리고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 그래서 끝까지 남아있는 의문은- 미학과에서 배우는 건 도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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