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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의 삶, 사랑의 말 -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양효실 지음 / 현실문화 / 2017년 4월
평점 :
'불구의 삶, 사랑의 말'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라며 포문을 열었다. 반면으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면 당신은
세상을 정확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 아프니까 청춘처럼, 늙으니까 서럽'지 하고 위로해줄 것만 같았는데 뜬금없는 팩트로 묵직한 한방을
선사한다.
책의 분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주로 대학교 시절 읽었던 참고서적들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시와 시인, 그리고 근대에 관한 언급이
있을 때마다 더욱 그랬다. 교수님께 권해드렸다면 좋아하셨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 것은 풍겨지는 분위기에 비해 읽기에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제가 어려웠을지언정, 내용을 읽다보면 오히려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편에 속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대해 나왔던 내용이었다. 사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언젠가 한번 봐야겠다고 리스트에 보관해둔 영화 목록 중 하나였는데 여기서 모든
내용의 흐름을 다 읽어버리는 바람에 자발적 스포일러를 당해버렸다. 뮤지컬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과 호불호가 갈린다는 말 때문에 미뤄두고
있었는데, 짧게 정리된 내용으로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 책의 내용이 워낙 강렬하고 잘 정돈되어 있어 내
자신의 해석을 가질 여지는 박탈당한 것 같다.
또 하나는 3장의 딸과 아버지에 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여자의 삶에서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이어지는 남성의 존재가 왜 이렇게 크게
비중을 차지하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과도 같은 의문을 남긴 장이다. 여성의 삶이 제대로 된 롤모델을 통해 성장하여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보다
어머니의 역할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여야 하는데, 본문에서 다룬 '실비아 플라스'의 경우에도 아버지의 부재와 남편의 부정을 통해 자기 자신이
파괴되었다고 단정 자살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작품이 아무리 파격적이었다 하더라도, 인물의 삶에서 느끼게 된 실망감이 그것들을 상쇄할만큼
컸다. 물론 그럴만큼 우리는 우리 외부의 존재들로부터 상처받는다는 부분에서도 깊은 공감을 했다. 때문에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답습된
복사본과 같지만, 그 이름들로부터 벗어난 존재가 되길 소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딸로서, 아버지와 같거나 혹은 같지 않은 남자랑 결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겠다는 또다른 아버지인 남편의 아내로서, 가정 안의 삶에 고립되지 않는 개인이자 여성의 삶을 살아보길 다시금 소원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다. '서른을 넘겼으니 이제 죽어도 요절은 못되고, 노환으로 칠 거야.' 하고.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서글펐던 것일까, 한참 서울 바닥을 누비고 다니던 시절에도 서른을 넘기고 나면 이미 모든 것이 다 늦은 뒤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더 어릴 적에도 항상 나이를 먹는 것이 싫었다. 빨리 어른이 되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소원하는 친구가 이해가 안됐었다. 가장
가까이서 보는 부모님의 '어른의 삶'이 그토록 자유롭게 보이지 않았다. 술이나 담배같은 것을 하거나 늦은 밤 유흥가를 헤맬 수 있는 일 따위는
특권도 아니었다. 기껏해봐야 저녁 나절 학원을 빠지고 한가로이 친구들과 밤바람이나 맞을 수 있는 이탈이 가장 큰 사건이 될 수 있는 미성년의
시절이 가장 안전하고 자유롭게 여겨졌었다.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자격없이 살아가고 있는 어른이 되었다. 정말이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이정도의 텍스트를 읽고 공감할만한 과거가 쌓였다는 것은 기쁘다. 간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