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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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확실히 "연애의 기억"은 파격적이다. 끊임없이 케이시 폴이 그와 수전 사이의 "사랑"이란 것을 늘어놓은 문장들을 반쯤은 회의적이고 경멸적인 눈으로 읽어내렸다. 솔직하자면 문체는 건조하고 복잡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회고라고 치기엔 열아홉 그대로의 거칠고 서툰 표현들이 문득 튀어나왔다. 게다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유적 표현들도 많았기 때문에 읽는 흐름조차 매끄럽지 못했다. 줄리언 반스의 신작이 주는 기대감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아무리좋게 표현하려해도, 혹은 불분명한 말들로 덮으려 해도 열아홉의 소년과 마흔여덟의 여자가 사랑한다는 내용은 곱지 않다. 반대의 경우라도 그렇다. 솔직히 더욱. 그러다 그들이 가입한 테니스 클럽으로부터 '사정상' 회원 자격을 박탈 당했을 때부터 뭔가 느낌이 왔다. 삼분의 일에 달하는 내용동안 기다려왔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됐다는 느낌.

"첫사랑은 삶을 영원히 정해버린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래도 이 정도는 발견했다. 첫사랑은 그 뒤에 오는 사랑들보다 윗자리에 있지는 않을 수 있지만, 그 존재로 늘 뒤의 사랑들에 영향을 미친다. 모범 노릇을 할 수도 있고, 반면교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뒤에 오는 사랑들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다. 반면 더 쉽게, 더 좋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물론 가끔은, 첫사랑이 심장을 소작해버려, 그 뒤로는 어떤 탐침을 들이밀어도 흉터 조직만 나올 수도 있지만. p.136"

아아, 아름다운 말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겨웠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에 관한 의미부여에 염증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건축학개론'이야 대히트를 쳤지만, 그 사이에 많은 시간이 지났고 또 한번 첫사랑을 이야기하는 '너의 결혼식'같은 경우는 비슷한 맥락으로 스러져버렸다. 첫사랑이 아름답고 강렬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첫사랑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매몰된 자들은 대개 그 뒤의 삶이나 사랑에게 무례하다. "연애의 기억"에서 중간중간 이런 대목을 마주할 때마다 지루한 첫사랑 타령을 굳이 지켜봐야할까 의심했다. 한편으론 첫사랑이 지나보내며 찢어지고 그을린 상처의 시간을 지나왔더라도, 결국 '첫사랑이 뭐 저렇게까지 대단하다고' 하며 무덤덤해진 까닭은 자신이 무감한 탓이거나 남자가 아니기 때문인가 의문도 가져봤다. 흔한 말로 남자의 마음엔 여러개의 방이 있고, 여자는 하나만... 어쩌고 하는게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폴은 무모했고, 수전의 선택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도주'같은 말들도 한심했다. 연애의 기억이라기 보다는 파멸과 막장의 변명같은게 더 잘 어울렸다. 전혀 행복하거나 사랑스러운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 사랑이야기였다. 젋고 잘생긴 청년과 사랑에 빠지는 중년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파격적이게도 그렇지 않았다. 인생은 실전이고, 여기에 실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내용이다. 연애소설이라면, 연애소설이 맞다면, 좀 더 달콤해도 좋았을텐데, 아쉬웠다. 누구에게 이 책을 추천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줄리언 반스를 좋아하는 독자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식으로 표현해보자. 나는 열아홉이었고, 나는 사랑은 썩지 않는 것이라고, 시간과 퇴색에 내력이 있다고 믿었다. p.102"

사랑을 믿는 사람들이 가지는 사랑에 대한 믿음은 맹목적이고 강압적이다. 감정적 휴지기에 들어간 것인지 수많은 감정선의 경계를 무참히 오가는 사랑이란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의문을 느끼는 요즘, 왜 사랑이 이토록 절대적인 것으로 묘사되어야 하는가를 곱씹으며 읽었다. 읽으면서 우호적인 시선은 없었다. 열아홉과 마흔여덟의 사랑에 우호적으로 보일 구석이 없지 않은가. 시대가 맞지 않는 사랑은 서로의 시기를 침범하고 온전치 못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연애의 기억"이 그 모든 것을 납득시킬만한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을까? 이 모든 불편함에서도 조금이나마 마음을 움직일만한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 기대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끝내 깨달았다. 계속 의심하고 차가운 눈으로 멀찍이 떨어져 바라봤지만, 사랑을 믿고 싶었던 자신이 어딘가에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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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너를 찾아서
케리 론스데일 지음, 박산호 옮김 / 책세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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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각 이상으로 내용이 잔혹해서 당황스러웠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버린다면 어떨까. 에이미는 결혼식으로 앞두고 약혼자를 잃었다. 바다에서 발견된 약혼자의 시신은 상태가 좋지 않아 마지막 인사를 할 수도 없었고, 그의 가족은 잔인하게도 두사람이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날 그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룬다. 충격적인 상황 앞에서 수상한 여자가 다가와 '당신의 약혼자는 살아있다'고 한다. 모두가 그의 죽음을 인정하라고 위로하고 조언해주는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에 개봉한 '서치'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와 비슷한 느낌을 좀 받았다. 서치를 재밌게 봤다면 이 책도 흥미롭게 읽지 않을까 싶다.

 

 이미 제목에서부터 '사라진 너를 찾'는다고 했기에, 약혼자의 죽음과 그가 살아있다는 증언?들에 에이미가 왜 빨리 약혼자를 찾아나서지 않는 것일까 흐름이 좀 느리다고 생각했다. 한국식 전개라면 내 눈으로 봐야겠다며 시신도 확인하고, 빠르면 약혼자 제임스의 상자가 몇 개 없어졌을 때부터 뒷조사를 시작하거나 늦어도 반년 안에는 찾아나섰을텐데. 제임스의 형인 토머스가 거액의 유산을 건네줬을때 자금 삼아서 마지막 목격지로 추적을 나섰을 것이다. 숨은 비밀을 파헤치는 스실러물로 변했겠지만 아마 그런 식으로 내용이 전개됐어도 재밌었을 거다. 하지만 나라마다 행동과 생각 방식이 다르니까, 이 책은 에이미가 상실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 천천히 보여준다. 어쩌면 그 느린 전개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 된다.

 

 한동안 영화든 책이든 결국은 끝이 좋게 마무리되는 것들만 골라보았다. 아예 가볍고 밝은 하이틴 영화 목록을 늘여놓고 줄줄이 본 적도 있다. 가볍게 말했지만 안그래도 현실이 우울한데 굳이 다른 매체로도 우울한 내용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라진 너를 찾아서'를 읽으면서도 전형적이지만 에이미가 오랜 연인이자 친구인 약혼자 제임스를 무사히 되찾아오고 다시 사랑하며 사는 결말이 오길 기대하며 읽었다. 느린 전개 속에서 에이미의 삶이 흘러가고 이언이 그녀에게 다가가고 점점 사랑에 빠지는 것을 지켜보며 그런 결말이 오지 않을까봐 마음을 졸였다. 순간에는, 결국은 순간일 수밖에 없는 그 현재에선 최선의 선택들로 결말이 났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지막까지 고통스러운 흐름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책 안의 핵심적인 내용이 나오게 된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앓던 어머니를 가진 이언과 해리성 둔주 혹은 기억상실을 앓고 있는 약혼자를 둔 에이미의 만남은 지나치게 극적이었다. 너무나 같은 결핍을 가진 사람이 서로를 만나 한쌍이 된다니. 게다가 해리성 둔주로 만들어진? 나타난? 또 다른 자아를 인정해버린다니. 그럴 수 있을까. 그저 괴로운 사건으로부터 갈라져 내려온 또 하나의 인격인데도. 카를로스라는 인물이 가진 19개월의 삶으로 제임스의 20여년을 대체할 권리를 주는 것이 옳을까. 주변인들이 그를 그렇게 놔둘 수 있었다는 것이 새삼 선뜩하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한 사람의 삶을 방치해버리다니. 에이미는 카를로스가 된 제임스에게 의지대로 살 수 없는 삶을 강요하지 않겠다며 관계를 정리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했고, 심지어 아이까지 둘이나 두고 있다는 현실에 질렸던 게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자신에게 새로이 다가온 다른 인연을 만나도 괜찮다는 면죄부 또한 주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했다.

 

 사랑이란 것이 뭘까.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었던 이후로 -사랑이 너무나 취약하고 형편없는 지속성을 가졌음에도- 그것이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한 것이라 세뇌되었던 기억 때문에, 이에 지나친 환상과 무결함을 추구해왔던 것 같다. 현실이 그렇지 않을수록 더욱 이상적인 것에 매달리듯이. 때문에 에이미의 경우에도 사랑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폭력적이어서 읽으며 더욱 공감했었다. 그리고 그만큼 괴로웠다. 그녀가 오랫동안 사랑한 제임스를 과거로 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이언같은 사람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이언이 없었더라면 그녀의 선택이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그래도 그녀는 사라진 약혼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혼자 자신의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 점이 가장 아쉽게 남을 것 같다. 이언이라는 기댈 곳, 도피처가 없는 에이미의 행보가 미지수로 남아서. 어쩌면 속편이 그 아쉬움을 메워줄지 모르겠다. 속편은 없지만 이 책의 마지막이 다음을 예고하듯이 끝을 맺는다. 이 점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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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낙관주의자 - 심플하고 유능하게 사는 법에 대하여
옌스 바이드너 지음, 이지윤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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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인 낙관주의자' 안에 담긴 내용이 내 인생을 "다른 사람보다 한발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인생 기술"을 알려주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계발서나 코칭북도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가 실천하지 않는 이상. 다만 이 책이 남긴 것이 몇 가지 있다면 하나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에 대해 명확히 정리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었고, 하나는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리뷰가 될 것이다.

 

 자신은 어느 쪽에 속하느냐면 지금은 덜하지만 전에는 주변으로부터 비관주의자라는 말을 뼈있는 웃음과 함께 들었던 편이다. 회의에서 새로운 안건이 나오면 '필요한가' '가능한가' '실행 시 발생할 문제상황은 무엇일까' '얼마나 더 업무를 분담해야 하는가' 같은 계산부터 돌아간다. 침묵은 금이요 참여는 추가업무라는 회의에서, 심지어 윗선의 안건에 딴지를 건다는 것. "네 알겠습니다" 라고 해도 부족할 일에 '그런데, 만약에, 혹시, 제 생각은' 과 같은 말을 붙이는 것이다.

 

 사실 이런 말들을 입밖으로 내봤자 자신이 낸 계획에 도취되어 있는 낙관주의자들에게 "넌 왜 그렇게 비관적/부정적이야?" 라는 말밖에 더 들을 것도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스스로를 비관주의자라 생각했다. 그들의 무신경한 목표와 부주의한 안건에 도움을 주고 피해를 줄이고자 경고했을 뿐인데. 아마 이런 일들로 자신을 비관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사람들이 더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말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도 낙관주의자다. 세상은 망해버릴거고, 내 인생은 쓰레기처럼 될거고, 차라리 태어나질 말았어야 했어. 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단순히 딴지 조금 건다고 해서, 계획의 실패를 먼저 예상한다고 해서 당신이 비관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그저 14403332번의 미래를 보고 성공하는 하나의 경우를 찾으려는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사람일 뿐인 것이다. 책에서 말하듯 '결국 성공하는 것은 낙관주의자다.' 라고 하지만 매사 그들이 내놓은 기획을 보완하고 완성시키는 것은 비관주의자라 치부된 사람들의 부정이다. 미리 떠올려 본 수많은 문제상황들이 실제적인 사고에 대처 가능하도록 도움이 된다.

 

 다만 낙관주의를 열성 숭배하는 이 책의 과격한 표현은 나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초반부터 비관주의자들을 철저히 패배자처럼 보이게 만들고 교묘한 방법으로 그들을 배제하는 것까지 정당화하는 한편, 낙관주의에 점철해 둔 멋진 수식들을 바라보며 불편함을 느꼈다. 그런데 이를 넘어서 "유사성 원리의 활용 p,194" 와 같은 부분을 보면 "중화 기술"이 언급되는데, 내용을 읽다보면 말하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조차 의문이 들게 만든다. 게다가 p.44 의 두번째 문단과 같은 내용도 읽어 넘기기에 지나치다.

 

 왜 이런 껄끄러운 부분들이 있는 것일까 생각해니 이 책은 단순히 삶의 자세를 낙관적으로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취지를 넘어서 목표를 지나치게 '성공'을 강조하였다. 저자는 왜 이런 표현과 방식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막히는 길이 많았는데, '성공'에 대한 강박이 다른 무엇보다 강하게 박혀있어서 였다는 것을 알고 나니 보였다. 책을 읽으면서 이 점이 가장 많이 아쉬웠다.  

 

 긍정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어느 멋진 책의 유명한 문구가 그러하듯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줄 것'이라고 하지 않은가. 바라는 것에 대한 긍정과 추구가 곧 자신을 그 길로 데려다 놓는다는 내용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낙관주의의 필요성도 이를 강조하기 위한 폭력성을 덜어내고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한다면 처음에 품었던 불만에 가까운 마음도 조금은 상쇄된다.

 

 '지적인 낙관주의자'를 읽는 일은 쉽지 않다. 약간의 지루함을 잘 참아낼 수 있는 보통의 독자라면 자기계발서, 코칭북 같은 류의 책 한 권 정도는 쉽게 읽어낼 것이다. 반나절이면 읽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낙관보다는 비관주의자에 조금 더 가깝다면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당신이 비관적인만큼 더 늘어날 것이다. 진짜로 일이 바빴다는 이유 외에, 읽다 정신적으로 지나치게 피로해져서 혹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서 쉬게되는 시간이 생길 것이다.

 

  물론 물 흐르듯이 그보다 더 유연하게 이 책을 읽을수도 있다. 아마 당신이 낙관주의자라면. 당신은 기쁜 마음으로 공감하며 읽었을 것이다. 마치 혈액형이나 별자리에 자신의 유형을 맞춰보듯이. 다만 당신이 얼마만큼은 비관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책에서 표현하는 것 만큼이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이 책을 읽으며 당신이 어떤 사람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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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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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주의하게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초크맨의 인상은 조금 이상하게도, 지금 배가 고파서일지 모르겠지만- 땅콩버터를 발라 살짝 겉을 구워낸 토스트를 먹는 것 같다. 알러지만 없다면 누구나 알고 좋아할 것 같은 기호성. 크게 베어먹듯 덥석덥석 단숨에 읽어나갈 것 같은 몰입도.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 파운드를 쓰는 영국 배경인데도, 미국의 정키함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오후에 집어든 책을 저녁까지 읽는 도중에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샤워를 했다. 차가운 물에 머리속이 조금 시원해졌을때 문득 떠올린 생각이 '스티븐 킹의 느낌이 나는데'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얽힌 사건의 장막이 조금씩 벗겨지는 것과, 마을의 구성원들을 훑듯이 소개해오는 점이 특히 그랬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다 거실로 돌아와 탁자에 놓아둔 책을 보니 띠지에 스티븐 킹의 강력한 추천을 받았단 말이 적혀있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싶었다. 이제 막 초크맨으로 첫 책을 내놓은 작가가- 누구라도 당연하겠지만, 그동안 어떤 작품들을 봐왔을지 짐작이 되었다. 이것도 예단이 되려나. 어쨌든, 초크맨은 꽤 괜찮다. 피넛버터 샌드위치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듯이.

 

 하얀 분필로 그려진 그림, 백색증의 외지인, 연달아 일어나는 잔인한 사건들을 두고 '초크맨'이라는 살인마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에디 먼스터, 뚱뚱이 개브, 메탈 미키, 호포 그리고 니키. 다섯 친구들이 어린시절 겪었던 사건이 30년 뒤에 서서히 밝혀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흰 분필로 그려진 표식을 따라가다 보면 토막난 소녀의 몸이 차례로 발견된다. 소녀를 죽이고 흰 분필로 절단된 신체 위치를 표시한 사람은 누구일까. 다섯 아이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분필은 색이 있었다. 그걸 이용해 누군가 아이들을 불러내고 숨겨진 시체를 찾게 만들었다. 언뜻 불가사의한 존재같기도 한 초크맨의 정체를 분필로 사인을 주고 받는 놀이를 알려준 핼로런 선생이 아닐까 쉽게 의심하게 만든다. 그는 흰 분필로 그린 그림처럼 온몸이 하얀 백색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겨우 그런 요소들로 그를 의심할 수 있을까. 게다가 우리가 따르는 에디의 시선이 그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낸다. 그일까 아닐까.

 

 장르소설은 그만의 색이 있고 또 그것을 좋아하는 독자층이 있다. 고전이라 불리는 타고난 이야기꾼들의 작품들을 좀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독자의 눈치도 빨라진다. 작가가 뿌려놓는 간단한 밑밥을 물지 않도록 주의하며 책장을 넘긴다. 작가가 읽은만큼, 혹은 고민하는 만큼 안에 숨겨진 악의와 거짓을 뚫어보려 노력한다. 독자는 끊임없이 주어지는 정보를 의심하고, 인물을 재며 읽어내다가 결국엔 전혀 예상할 수 없이 교묘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 내면의 어두운 욕망과 맞닿은 동기로 벌어졌을때 감탄하며 책을 덮는다. 그럼에 있어서 초크맨은 다소 헐거운 연결고리가 눈에 띈다. 특히 메탈 미키가 연관된 사건에서 설명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에디가 그랬듯, 메탈 미키에 대해서 작가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소설을 아우르는 재미라는 요소가 전체적인 만족감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단단히 지탱한다.

 

 주말의 하루쯤은 전기세도 아낄 겸 텀블러와 책을 들고 대형 커피숍 구석진 자리에 틀어박혀 한나절을 보낼만한 책이다. 평소에 장편을 읽지 않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읽어낼만한 밀도다. 간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며 책을 읽었는데, 가끔은 이런 시간도 필요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영화 '그것 It'을 재밌게 봤거나, 평소 추리, 스릴러, 스티븐 킹의 작품 등을 좋아했다면 즐겁게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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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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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이라는 거대한 기록 앞에서 당연하게도 위축됐다. 먼 옛날 국사 공부를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서 '아마 난 안될거야, 틀렸어.'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 참 이상한게 그때 못했으면서 왠지 지금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는 그저 막막했다지만, 이제는 머리 속으로 이래저래하면 이렇게 될 거라는 예상 지도가 훤하게 그려져서 실천도 쉬울 것이라 착각하나 보다. 나 자신은 그대로인데. 그래서 예전에는 국사가 어려웠어도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실록을 읽기만 하는 거니 괜찮겠지 하고 책을 잡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도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란 인간 참 그대로구나. 반갑다, 나 자신아. 아무리 공부하는게 아니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쉽지 않다. 초심자와 호기심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지 말 것.

 

 1권을 읽었는데, 전 10권에 달하는 내용 중 당연하게도 이 첫권의 내용이 가장 친숙하다.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이 알려진 세종을 제외하고, '국사 공부를 시작해볼까'라고 마음 먹었을 때 조선을 건국한 태조 부분만 공부하고 그 뒤로 흐지부지 된 경험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를 10권까지 다 읽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태조만 보고 그 뒤는 역사의 소중한 한 페이지로 남겨둔 사례가 또 한 번 남겨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예감이 꽤나 강렬하다. 눈에 띄었던 점은 태조가 차지하는 분량이다. 태조가 1권의 모든 분량을 혼자 소화하는 반면 다른 왕들은 둘, 평균적으로 셋씩 뭉쳐 한 권을 이룬다. 앞으로 나올 세종의 분량이 생각보다 적다는 게 의외였다. 태조에 대해 실록에 남아있는 부분이 그만큼 많았던 것인지 조선 건국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일부러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혁명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 왕조 건국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분배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개인적 경험으로 어린시절 정몽주에 관한 위인전은 읽고 태조에 관한 위인전은 읽지 못했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씩 외웠다는 만인의 시조 단심가도 마음에 걸리고, 태조와 이방원, 정도전에 관한 인상이 그리 좋지 못하다.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내심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역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변방의 무장 이성계가 창업군주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겸손과 섬김의 리더십이 있다. 일곱 살 어린 정도전을 스승으로 삼았고, 혁명에 반대한 이색도 끝까지 우대했다."는 소개에서도 정몽주 위인전을 읽고 자란 키드가 가지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린시절 읽었던 책에서는 정몽주가 충절과 이성의 상징이었고 이방원은 잔인한 무뢰한처럼 그러졌기 때문이다. 그 책만 그런건가. 하지만 이성계 측에 선 시선으로 자세히 적힌 글을 오랜 시간 읽다보니 과거에 느꼈던 반감이 좀 사라짐을 느꼈다. 이래서 양쪽말을 다 들어보고 판단해야 된다고 하나보다. 위인전에서 정몽주를 다뤘으면 이성계도 같이 썼어야 했다. 특히 어린 시절에 읽는 것이니 더욱 양쪽 입장을 알 수 있게.

 

 생각보다 읽기 쉬웠다. 여름밤은 덥고, 잠이 쉽게 오지 않아 마실 것 하나를 만들어 한참을 아무 생각없이 몰두할 수 있었다. 여름방학 동안 할일이 없다면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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