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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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요즘 읽은 책 중에서 괜찮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서른셋‘을 권할 것이다. 읽어보시라,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알고보면 외롭고 좋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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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감력 수업 - 신경 쓰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우에니시 아키라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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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둔감력이란 무엇일까. 일본 사람들은 **력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듯 하다. 둔감력이라는 말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들었다. 둔감함에도 근육처럼 단련해서 키울 수 있는 힘과 지수가 있으려나? 무엇보다 둔감력이란 것이 어떤 의미와 필요가 있을까 생소했다. 가장 최근에 들었던 못마땅한 말은 여자력이란 말이었다. 여성스러움이라고 해얄지 하는 표현인데, 여기서 평가되는 여성스러움의 항목이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를 얼마나 갖추었나로 반영되는 개념인 것 같았다. 사람 구색 맞춰서 살기도 힘든 세상에 굳이 여자력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여자력 지수를 평가하다니. 둔감력이란 말도 사실은 나 자신을 몰아세우는 평가항목이 되는 것은 아닐까 조금 의심하며 읽었다. 둔감력을 신경써야 하는 성향의 사람이라면 둔감함을 의식하기 위해 더 신경이 예민해지는 역효과를 맞는것을 아닐까, 하고.

 

 저자는 줄곧 둔감하다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지만 이 책에서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강조한다. " 보통 '둔감하다'는 말에는 좋은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p.23 " 로 시작해서 " 이렇듯 둔감하다는 말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p.24 " 로 마무리되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둔감하다거나 예민하다는 말을 어느 한쪽의 의미로 사용한다기보단 자신의 성향을 표현하는데 보통으로 쓰는 말이라 굳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계속해서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보통 우리가 '난 좀 둔감한 편이라' 라고 말하거나 '난 예민한 부분이 있어' 라고 할 때는 그것들이 흠이라고 생각해서 밝힌다기 보다는 난 좀 그런 편/성향이야 라고 표현하는 정도이다. '둔감에 나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은 이렇게 좋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은 저자로 인해 둔감함이 부정적 의미를 공연히 받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는 표현이나 시선이 좀 불만스럽게 다가왔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나니 이런 의심과 부정적인 생각은 자신이 둔감한 편이기 때문에 나오는 반발 반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둔감함이 왜 부정적으로 해석됐어야 하지? 앞으로 다가올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여러 불안요소들을 깊게 생각하는 일이 왜 불필요한 것처럼 표현되지? 하고 의문을 가질뿐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애초에 이 책은 나같은 둔감성향의 사람들이 아니라 예민해서 자신의 예민함으로부터 오는 괴로움을 상담받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나온 듯 하다. 둔감한 상대방 때문에 속이 타봤을 사람이나, 앞일을 걱정하고 변수를 고민하다 기회를 놓쳐버린 적 있는 예민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할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책을 읽었는데, 카운슬러 활동을 한 저자의 이력을 떠올리며 이해해보려 생각하니 분명 이런 문제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만났고,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을 담은 책을 쓴 것이구나 싶어졌다. 예전에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가 살이 많이 빠졌길래 체중조절을 했나 싶었는데,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고민되는 문제들을 결정하기 전에는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신경이 쓰여서 살이 저절로 빠졌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자신도 너무 힘들어서 안그러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었다. 친구에게 위로와 걱정을 해주었지만 성향상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보면 되는 일을 왜 밤새 걱정했을까 잘 이해가 안됐었다. 218에서 221쪽의 내용이 그때 그 친구의 상황과 매우 흡사했는데 아마 그에게 필요한 위로와 조언이 이 책에 담겨있나보다.  

 

 나에게 덜 집중하고, 타인에게 덜 둔감하기 위해서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내는 편이라 책에서 조언하는 내용이 잘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보다 남을 이해하는데에 더 도움이 된 내용이었다. 앞으로 고민하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좀 더 이해하고, 공감이 담긴 위로와 조언을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읽으면서 '센서티브'라는 책이 떠올랐는데, 그 책을 인상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둔감력 수업'을 읽으며 의미를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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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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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출은 휘파람만 분다. "아파트 슈퍼 앞에 횡단보도 있죠? 거길 건너는데 기분이 좀 이상한 거예요. 옆을 봤죠. 비둘기가요, 저랑 같이 뒤뚱뒤뚱 걸어가다가 눈이 딱 마주친 거예요. 아니 무슨 비둘기가 횡단보도로 이족 보행을 해요. 완전 귀여웠던 거죠. 그런데요, 어쩐지 좀 슬프기도 했어요. 마음 한구석이 그랬어요. 할아버지, 신이 있다면요, 신도 우리를 볼 때마다 그런 마음 아닐까요?" -p.293 " 

 

 언제부터인가 나이먹는 일이 시시했다. 때때로 내 나이가 몇이더라 기억이 가물할 적도 있다. 서른 어쩌고 하는 의미부여가 서른이 되기 전에는 크게 다가왔는데, 서른이 되고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아이들에겐 스물이 가장 강렬하겠다. 적어도 스물이 되면 안됐던 것들을 할 수 있으니까. 운전하기 술마시기 담배피기 클럽가기 같은 것들을 해도 된다. 해도 될 때 하면 막상 재미도 없지만 스물이 되면 변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서른은 없다. 김광석의 노래 말고는 주어지는 게 하나도 없는데 서른이 뭐가 대단한 것이라고 서른, 서른하나 싶었다. 이런 느낌이라면 마흔이고 쉰이고 환갑이 되어도 그러려니 하고 살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도 그래서 기대가 없었다.

 

 서른이 뭘 어쨌다고.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이란 말을 어르신들이 들으면 웃겠네.'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작 서른 어쩌고로 나이타령하는 뻔한 내용이겠거니 악독한 마음을 품고 대충 책을 들었다. 학교 안다니겠다는 남다른 성격의 미지가 나올 때도 '따돌림 당하던 친구를 도와주지 못한 상처가 있겠지' 넘겨짚고, 영오를 보면서 '일하는데 전화하고 참견하는 꼬맹이랑 진짜로 대화가 하고 싶을까' 의심했다. 이처럼 내 마음이 악독했는데, 자꾸 읽으면서 마음이 가고, 마음이 가니까 감동을 받았다. 끝내는 우리가 이렇게 서로 얽혀있어서 다행이야, 하고 안심하며 책을 덮었다.

 

 호석이 죽고 난 뒤에 남긴 수첩으로 시작된 이 로드무비는 영오, 강주, 보라, 덕배 네 사람이 무덤 여행을 떠나며 절정을 이룬다. 거기에 미지가 두출을 찾아 범수와 강화도로 향하면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로드무비라고 했더니 진짜 차를 타고 길을 떠나는 진정한 로드무비를 구현해냈달까? 꽁하니 마음만 차가워져서 때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우습게 여겼었는데, 줄여서 '서른셋'을 읽으며 언제 어디서고 겹겹이 쌓이는 인물간의 관계성을 지켜보고 있자니 냉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거기에 나도 알고싶은 김밥의 비밀은 미지가 챙기고, 보라이모는 네일보다 먹방 찍으면 대성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개인방송 크리에이터로 성공하길.

 

 소설을 많이 읽지도 않으면서 요즘 나오는 책들은 구정물 튄 자국만 남은 청춘에 몰입해서 싫어'라든가, 내면과 일상 범주에 갇혀있어서 별로'라는 생각만 갖고 있던 것 같다. 그런 것들 안에서도 이렇게 '좋다'는 감동을 느낄 수 있을만한 책을 만나게 된다. 영오가 수첩안에서 만난 사람 모두가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니, 너무나 동화같은 이야기지만 그래서 좋았다. 사는게 그렇지 못하다면 꿈이라도 꿀 수 있으니까. 언젠가부터 너무 어둡고 절망적이기만 한 이야기는 가슴이 답답해서 보기 어려워졌다. 그런 일들은 현실에 가득 쌓여있는데, 가끔은 뉴스조차도 보기 싫어진다. 그러니 부정적 소식에 지친 분들이여, 문학에서 오아시스를 찾으시라.

 

 간만에 좋은 느낌을 남기는 이야기를 만났더니 가슴 안에 쌓여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털어내고 환기시킨 기분이 들었다. 목공소 앞 목련나무가 꽃을 피우듯이, 이 봄도 맞을만 하겠다. 내 마음도 따뜻해져서 봄을 맞을 준비가 된 것 같다. 누군가 요즘 읽은 책 중에서 괜찮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서른셋'을 권할 것이다. 읽어보시라,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알고보면 외롭고 좋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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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한국 현대미술
정하윤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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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책이 아니니 안심하고 읽으세요. 라고 띠지를 둘러 알리고 싶다. 현대미술이라는 말은 이상하게 그 자체로 사람을 뒷걸음치게 만드는 느낌이다. 나만 그런가. 미술작품은 시와 같아서 어떤 것들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압도되어 감탄이 나오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벽 앞에 놓여진 것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때가 많았다. 그런 경험들 앞에서 이 책 안에서 만나게 될 내용도 나같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염려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강렬하고 세련된 외양안에 대하기 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 쉽게 읽었다. 조금 관심이 있을 뿐인데 미술에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할 책이다. 알려는 주는데 독자를 향해 아는 척은 하지 않는 톤앤매너도 매력적이다.

 

 처음 대하기 어려웠던 마음이 사라지니 이 책의 판형이 우리가 머리속으로 책을 떠올렸을때 연상될 법한 표준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눈을 끈다. 이 한권의 책 안에 미술가 30인의 삶과 작품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지어 두께까지도 평범하다니. 30명이라니, 말이 30명이지 300쪽도 되지 않는 책안에 주목할만한 작품까지 실어서 그들을 소개하는 일이 가능할까. 이미 책을 떠올리는 머리속은 도떼기 시장처럼 번잡하다.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커튼콜 뒤에서 호명되는 개성넘치는 예술가들은 저마다 순서를 기다리며 간결하다. 이들을 한권에 담아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선별하고 정리하려 애썼다는 티가 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책을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깊게 들어가기엔 너무 깊고, 살짝만 파기엔 뭐가 뭔지 감도 안오는 미술사와 미술가에 대한 명료한 정리.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책 안에 기본적이지만 이 정도의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압축되어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름이라도 들어보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는 인물과 만날 경우엔 이 책에서의 만남이 큰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버스 운전 기사님들이 맞은편에 오는 같은 회사 차량에 짧은 손인사만을 표하고 지나가는 것처럼 순간의 만남이다.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작가를 만나게 된다면 안타깝게도 다른책으로의 환승이 필수다.

 

 아마 대학 교양 강의를 듣기 전에 미리 읽어간다면 좋을듯한 느낌이다. 합격 발표를 듣고 나서 할일이 없다면 이 책을 사서 한번 읽어보길. 중고교 미술교과서에서 주관식 문제 정답 정도로 출제 될만큼 아주 유명한 미술가가 아닌 경우에는 여기서 재회한 낯익은 인물들은 다 대학 강의에서 처음 그 이름을 들어보게 되었다. 이들의 이름과 함께 실린 대표작 정도만 눈에 익히고 들어가도 '니들은 대체 000도 모르고 뭐하다 대학 들어왔냐'는 핀잔은 안듣게 될 것 같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다만 단점은 합격 발표 들을 때 쯤 너무 할 것도 놀 것도 많아서 할일 없어서 이 책을 사 읽는 젊은이가 없을 것이라는 것일까.

 

 30명이나 되는 미술가에 대해 훑어보려니 컨베이어 돌리는 것처럼 다소 피로감이 느껴지는 면이 있지만, 초심자를 위해 나온 접근하기 좋은 배리어 프리 한국 현대 미술사 책이니 감사하고 읽을만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컨베이어는 너무하니 회전초밥집의 레일 보듯이 다음 작가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눈으로 읽도록 하자. 신기하게도 더 오래된 시대의 인물들은 한명이라도 아는 사람이 나오는데, 80년대 이후로 들어서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졌다. 때때로 미술관을 찾아간다 했는데도 참 무심했다 싶어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을 만나 이제라도 눈도장을 찍어 좋은 시간이었다 생각했다.

 

 추천하는 대상으로 예술 문외한의 대학생을 꼽았지만 굳이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젊은이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이 조금 더 다채로우려면 좋아하는 작가와 미술가 정도는 있어야겠다. 없는 것보다 본새나고 좋지 않은가. 백남준 작가도 싱거운 인생을 "짭짤하고 재미있게 만들려고(p.194)" 예술을 했단다. 개인적 추천으로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나혜석을 좋아하면 조금 더 간단해질 일이다. 나혜석 한 사람만 관심을 두면 좋아하는 작가도 미술가도 한번에 생긴다. 아니면 작가로서 우리가 잘 아는 이상의 친구 구본웅을 좋아해도 괜찮을 일. 한시라도 젊을때 미리미리 교양서로 읽어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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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K
돈 드릴로 지음, 황가한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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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돈 드릴로의 책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유해졌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꽤 강렬한 힘이 있는 작가라는 인상이 남았다. 사실 '제로K'를 읽는 내내 잡히지 않는 이미지들 사이를 헤매는 기분이 들었는데, '제로K'가 보여주는 미래적이고 전위적인 이미지들 사이로 일상적이고 내면적인 현실의 단편이 섞여들어가 마지막에서야 하나의 단단하고 분명한 소실점을 이루는 형상이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에 집중해서 한참을 정신없이 파고 들어가다 마지막에서야 이미 지나온 궤적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뒤돌아봤을때에야 비로소 마음이 단단해지는 묘한 경험이었다.

 

 이야기는 어느 날 제프리가 아버지 로스의 부름으로 '컨버전스 프로젝트' 센터를 찾아가며 시작된다. 그곳에서 신체 냉동 보존을 앞둔 로스와 그의 새 아내 아티스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서다. 고고학자인 아티스는 불치병에 걸려있는데 죽음을 앞두고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미래까지 몸을 냉동 보존하는 실험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수수께끼의 장소에서 삶의 쉼표를 선택하는 가까운 사람들의 결정을 마주한 제프리는 혼란과 상처로 뒤덮여 고민한다. 이런 선택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 궁금증과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윤리적 물음, 왜 이런 선택을 하려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당황과 분노, 조소와 체념으로 섞여 표출된다. 

 

 제프리는 낯선 사람을 볼 때마다 집착적으로 상대방을 살펴보며 출신지를 가늠해보고 그 사람에게 어울릴 이름을 짓는다. 처음엔 다인종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미국인의 습관인가 했지만 타인의 근간, 뿌리를 찾는 집착적 버릇은 제프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로스는 자신에게만 충실했던 과거, 아내-매들린-와 아들을 버리다시피 살았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을 언젠가 서가에서 책의 제목을 읊어주던 순간마저 기억하는 제프리와는 다르게, 로스는 아들이 함께했던 것조차 잊은 채 혼자만의 시간으로 갖고 있다. 두사람 사이의 거리가 그만큼 벌어진다. 아버지의 부재가 제프리를 뿌리없이 흔들리며 살아가게 만드는데 한 역할을 했음이 분명해보인다.

 

 이 때문일까 제프리와 연인 에마의 관계에서도 확고한 위치를 갖지 못한다. 에마와 전남편 사이에 아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적당한 거리 두기를 멈추지 않는다. 결국 제프리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잃는다. 어머니는 죽음으로,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자발적 냉동 보존으로, 연인은 제대로 붙잡아 보지도 않고 끝맺음의 말도 없이 이별한다. 그리고 때로 연인이 살던 거리를 산책하며 "그녀의 거리에서 내가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안 했던 가능성을(p.273)" 떠올릴 뿐이다. 이런 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제프리가 의미없는 삶을 중지시키고 그 너머의 확신을 갖고 시도하려는 로스를 설득할 수 있을리가 없다.

 

 아버지가 없는 시간 속에서 혼자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야 했던 제프리 앞에 다시 나타난 로스는 거의 다른 사람과 같다. 가족을 버리고 훌쩍 떠났던 그가 아티스를 만나 이제 그녀가 없는 세상을 견딜 수 없어 냉동보존기술에 집중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삶도 그녀의 시간과 함께 봉인하길 결정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의 마지막을 제프리에게 맡긴다. 이 와중에 다시 남겨지는 제프리의 마음은 어떠할까. 아티스를 따라가려는 아버지를 말려보려 하지만 이 시간에 로스를 붙잡아 둘 수 있는 의미있는 것은 없어보인다. 자신이 아닌, 자신이 남겨둘 것들 중에서 바라는 것을 골라 가지라는 로스의 권유에 제프리는 아무것도 고를 수 없어진다. 제프리가 고르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뿐이리라.

 

 제프리가 겪는 상실과 절망에 공감가는 한 편, 냉동된 사람들이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과거의 냉동인간들은 기술 부족을 이유로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먼 미래에 기술이 발전했을때 보면 지금의 기술로 냉동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얻게 되는 게 아닐까? 냉동된 사람들은 무의식의 상태로 정신까지 함께 냉동될까? 꿈꾸는 것과 같은 의식이 있다면 자신의 의식 안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 몸안에 갇힌 식물인간과 다른 점이 있을까? 의식이 있다면 깨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 어떻게 할까. 문득 냉동된 몸 안에서 살아가는 일이 끔찍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냉동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무 의식없이 평온하기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에 '완벽한 은둔자'라는 단편이 있다. 뇌만 용액에 담겨진 채 생명을 유지하는 귀스타브 루블레 박사라는 인물이 나온다. 육체적 활동을 버리고 정신만 남은 그는 하염없이 생각만 계속하는데, 그의 뇌는 오랜시간 동안 보존되고, 끝이 기약되지 않은 영원한 사고의 세계에서 그도 그의 뇌의 존재도 잊혀진다. 냉동된 사람들의 여정도 이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깨어나더라도 자신 외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낯선 세계에서 발굴된 과거인일 뿐이고 -이는 아티스의 직업인 고고학자를 연상시킨다-, 깨어나지 못한다면 먼지쌓인 채 보관된 루블레 박사의 뇌와 다름 없다. 혹 냉동인간이라는 실험에 도전했다는 것으로 역사적인 가치를 얻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삶의 과정에서 본다면, 과연 어떨까.

 

 다만 누구보다 죽음을 중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장 삶을 사랑해서 집착적으로 좇는 사람일수도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먼 후에 깨어나더라도 지금 자신이 사랑했던 삶의 시간들은 이미 지나가고 난 후일텐데. '제로K'를 읽으며 누구나 죽음이 달갑지 않겠지만 삶에서 죽음이 왜 필수적인 것인지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읽기 편하지는 않지만, 인상적인 주제와 이미지가 매력적인 책이다. 

 

 "아버지의 회사 경력이 가진 광범위한 힘이 있다. 컨버전스라는 최후의 땅이 있다. 나는 이에 대한 반발 혹은 보복인 삶 속에 숨어 있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리고 또다시 나는 영원히 로스와 아티스의 그림자 속에 서 있고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들의 감명적인 삶이 아니라 그들이 죽은 방식이다.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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