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186호 - 2019.겨울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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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지를 곱씹어 읽으면서 혹은 파헤쳐내면서 생각지 못했던 것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글을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작가의 선택한 작품만을 읽을 수 밖에 없는데, 겨울호를 읽으면서는 한 권 안에서 다양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그 점이 좋았고 그래서 힘들기도 했다. 익숙치 못한 글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든 읽어냈다는 것. 흔한 표현이지만 과자가 종류별로 담긴 종합선물세트의 베스트 상품과 끼워팔기 상품까지 천천히 먹어치운 것과 비슷하다. 늘 고르던 익숙한 맛이 아닌 낯섦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솔직히, 읽으면서 가장 재밌었던 것은 자주 접했던 소설 부분이었다. 최근 관심이 생긴 작가의 글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승은 작가의 글은 처음 읽어보았는데 인상이 강렬했다. 단편 자체도 읽으면서 영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날선 분위기와 히스테릭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 더 부각한다면 영화로 나와도 될 법하다는 생각을 했다. 읽는 동안 장류진 작가의 연수11회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승은 작가의 '공포가 우리를 지킨다'와 함께 굳이 찾아 읽어볼 만 할 것이다.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작가조명이었다. 작가조명을 읽었다고 해서 은희경에 대해 잘 알게된 것은 아니지만, 그를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 오해였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의 글을 몇 편 읽고 내가 느낀 것들은 나로 인해 해석된 일부에 지나지 않고, 그조차도 고집스럽게 굳어있거나 너무나 쉽게 변해버린다. 작가조명을 읽으면서 작품을 통해 들여다 본 은희경이 아닌, 은희경을 통해 작품을 돌아보는 체험을 했다. 다만 이조차도 은희경을 이해했다기 보다는 그의 순간에 닿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주로 작품에만 집중했는데 때로는 작가를 향해 시선을 돌려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논단이나 현장의 글들은 타인의 시선이 강하게 묻어나오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읽었다. 아주 작은 것에도 나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들어갔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선택이 틀렸다고 부정하기 쉽다. 나와 같으면 ‘*잘알이고 다르면 알못이 되는 세상 아닌가. 특히 조국사태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스럽고 예민한 시선이다. 다만 우리가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청산되지 못한 것들이 남은 임기 동안 좀 더 나아지기를. 때로 실망하더라도 냉소적 입장으로 마주보기를 피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읽었다. 

 

  벌써 2020년이 된지 한달쯤이 지났다. 어쩐지 2019년을 달고 있는 겨울의 계간지를 읽는 일이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직 이 겨울이 다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요즘 들려오는 전염병에 대한 소식들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보니 몇몇 이슈들은 아득히 멀게도 느껴진다. 2020년 봄호에서는 어쩌면 이 주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늘이 지나면 1월이 끝나고 곧 입춘이다. 벌써부터 창비의 계간지 봄호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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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여름 1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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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만들고 우리 부모님을 죽게 만든 게 하나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어서 벌을 주려고, 내가 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려고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는 루스 이모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과 일련의 사건뿐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엄마가 지진을 피해 살아남은 뒤 30년이 지나 결국은 퀘이크 호수에서 익사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무슨 교훈이 있는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하나님이 주신 교훈이 아니다. 오히려 퍼즐 조각을 맞춰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그런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끊임없이, 무한히 이어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작아지고 투명해져서 그 생각들로부터 숨고 싶고 멀어지고 싶었다. (63) "

 

 뭐가 이렇게 복잡해?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1989년, 90년대 초라는 배경은 지금하고 얼마나 다른걸까.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주변에 이해받기까지는 사실 지금도 그때와는 그리 달라진 것이 없는 건 아닐까.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말이다. 간단할 일도 아니지만 캐머런은 모든 일을 실제보다 더 복잡하게 만들고만 있는 것 같았다. 왜 조금 더 교묘하게 굴지 못하는거지, 십대는 원래 그런가. 십대가 어떤지를 이해하기에는 또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90년대가 지나가버린 것만큼, 멀리.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가장 먼저 생각해봤다. 나 역시도 캐머런처럼 숨기거나 참지를 못했을까. 서로를 다 아는 작은 동네에서 산다면 그 안에서 나와 키스를 할만한 첫사랑 상대를 찾아 짝사랑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 무언가를 절대 티내지는 못했으리라. 작은 동네와 소문이 주는 타격이 얼마나 큰지 사춘기무렵에는 잘 알법했다. 그래서 금방 자신이 사랑할만한 여자애를 찾아 헤매는 캐머런의 행동이 불안하고 답답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몬태나의 마일스시티에서 벗어나 얼마든지 익명의 레즈비언으로 살 수 있는 도시로 나갈 수 있을텐데. 그럼 어려운 길이라도 좀 더 쉬운 방법으로 갈 수 있을텐데.

 

 왜 이렇게까지 숨기려 하냐면, 십대시절 내가 만났던 과거의 캐머런들을 떠올려보았기 때문이다. 그애들이 '진짜'로 동성애자였든 한때의 호기심이었든, 조금이라도 그런 기미를 보인다면 확실히 소문은 잘 퍼져나갔다. 사실 그 당시의 아이들이 '조금만' 기미를 보였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십대였을 적에는 그애들 특유의 스타일이 있었다. 재밌는 점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캐머런의 동네보다 훨씬 더 동성애에 대해 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랬어도 그애들은(그들 스스로가 부러 그런 차림을 하고 다님에도) 충분히 소문에 민감해하고 괴로워도 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고는 한때의 치기로 덮으려하는 쪽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서툴고 예민한 시기에 가질만한 고민은 가능한 숨겨두는 편이 나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도 내 생각도 어느새 굳은 편견덩어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염려라는 것으로 잘 숨겨둔. 하지만 굳이 가장 아프고 괴로운 길로 십대를 지나가는 모습은 그리 보고싶지 않다. 책을 읽는 내내 따라왔던 불안의 꼬리표는, 얄궂게도 1권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터져나온다. 모든 원인이 서툴기만한 소녀 캐머런에게 붙어서,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캐머런이 조금이라도 더 뻔뻔했다면 상황은 이렇게 흐르지 않았을텐데, 그날 6월 말의 그때 캐머런이 부모님을 잃지 않았더라면 내용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만약들을 떠올려본다. 이제 막 중반부에 들어선 1권의 끝에서 2권부터는 전보다 더한 괴로운 분량이 진행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소설의 후반부로 가기까지 캐머런이 처하게 될 상황이 어떨까. 문득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가 떠올랐다. 책을 읽기 전에는 십대, 정체성, 여름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영원한 여름'이라는 대만 영화가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읽으면서는 '바비를 위한 기도'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두 영화 모두 괜찮은 퀴어 영화이니, '사라지지 않는 여름'을 읽으면서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캐머런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날이 바비보다는 빨리 오는 결말이 있기를 바라며 2권을 기다린다.

 

p243 마지막 줄 노쳐녀-노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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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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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만 대학 때는 가능하던 그런 관계가 서른이 가까워지면서는 쉽지 않았다. 패턴이라는 것은 관계의 피로를 만들어냈고 여기다 일종의 '사는 문제'가 겹치면서 셋은 전처럼 섞여 들지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만나면 즐거운 식사를 했고 마음을 터놓고 대화했지만 문득문득 서로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29) "

 

 김금희의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를 읽기로 한 건, 인터넷에서 몇번이고 마주쳤던 '희소한 영자매'에 대한 영업글 때문이었다. 제목이 '규까스를 먹을래'라는 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지만, 읽는 동안 역시나 달콤쌉싸름했다. 이상하게도 언젠가부터 친구와는 여행가면 안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도시괴담처럼 퍼져나갔다. 십여년 전만해도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일이 아무런 수식어도 없었는데, 최근들어 인간관계 파탄나는데는 친구와의 여행 특히 해외여행만한 것이 없다는 말들이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규까스를 먹을래'에 나오는 세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켜켜이 쌓여간 오래된 친구관계가 시간이 흐르면서 왜 더 단단해지기는 커녕 위태로워지는 일이 생기는지 곱씹어보았다. 조건이나 현실같은 것을 모르고 만나 놀 수 있던 어린시절이면 몰라도, 서로 사이에 다른 부분이 나도 모르게 눈에 띄고야마는 어른이 되고나니 나도 모르게 상처주고 상처받는 일들이 불가피하게 생기는걸까. 격없이 친해졌지만 친밀함을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격을 맞춰 서로를 대하는 것이 더 요령있는 연령이 된 것 같아, 남에게 잘해야지 상처주지 말아야지 자꾸만 생각한다.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것이 '규까스를 먹을래' 였지만 다른 단편들도 꽤 괜찮았다. 아주 일상적이고 그래서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 무심한 어제와 오늘의 풍경들이 잠깐 종이 위에 올려간 듯한 느낌을 준다. " 나 누군지 알지? (54)" 같은 말을 하는 기업 간부급 인물이나 이른 새벽의 노점상들, 회사사람들을 피하고 싶은 점심시간, 출근전에 짬을 내서 어학원을 다니는 직장인들의 일상은 나에게도 익숙한 것들이었다. 언젠가 봤었던 듯한 풍경들을 찬찬히 읽어내면서 나도 스쳐지나보냈던 그것들에 대해 잠깐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나와보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장면들이 곳곳에 심어져있었다. 술자리에 붙은 뒷말과 시비나 집안일을 직접하게 되면서 그릇을 따로 잘 쓰지 않게 되는 습관, 대학에서 만나게 되는 알 수 없는 인연들. 얼마 전에 위내시경을 했던 탓인지 '온난한 하루'도 묘한 느낌으로 읽었다. '미국식 홈비디오'는 인기있었던 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글로 옮겨놓은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단편을 기억에 남는 것으로 꼽을지 궁금해졌다. 자기 안에 쌓인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른 부분들에 눈길이 머물겠지.

 

 영업을 통해 굳이 읽어보게 된 책인데, 짧은 시간을 소소히 보내기에 좋은 책이었다. 언제든 부담없이 단편 하나쯤 읽을 시간을 들일 수 있을만한 분량이라 좋았다. 누구든 아무렇지 않지만 어쩐지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는 이상한 날이, 도드라진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 묘한 느낌을 잘 담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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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사람을 읽다 - 소비로 보는 사람, 시간 그리고 공간
BC카드 빅데이터센터 지음 / 미래의창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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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데이터로 분석된 소비 패턴은 재미있었다. 이런 비유를 하면 세련된 기술, 분석가들은 이마를 칠지도 모르지만, 마치 혈액형이나 별자리 유형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들이 가진 소비 패턴을 가지고 이용자들이 어떤 유형인지 분리해놓고 각각의 이름을 붙여놓은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나는 어느 그룹에 속하는지, 내 성향을 맞게 분석해놓았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다만 오랜 시간동안 허무맹랑하게 이어져온 별자리나 혈액형은 보다보면 다 내 이야기같은 기분이 드는 반면, 빅데이터가 제시한 소비 유형은 어느 것도 나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 달랐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하지만 비슷한 소비 패턴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왜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까. 확실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된 유형에 속하기는 거부하고, 별자리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직 빅데이터가 인간의 깊은 내면까지 분석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BC카드를 안써서 나와 같은 유형의 데이터가 쌓이지 않아서일까. 

 

 책의 내용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래프로 옮기고 수치화해놓은 것들이 많지만 읽기에 전혀 어렵지 않았다. '돈을 쓴다'는 것은 생활에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내용 하나 관심가지 않는 부분이 없고 대부분의 내용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해봤던 경험이 있었다. 다만 막연히 내가 생활하면서 만들어 낸 모든 흔적들이 정보로 수집되어 통계를 이루고 있을 거라는 짐작이 있었지만, 기업에서 실제로 그것을 활용하여 데이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 것은 신선했다. 핸드폰으로 검색한 키워드에 관한 광고가 인터넷 페이지의 배너로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경험이, 카드사에서 보내주는 할인 안내가 내가 남긴 정보를 통한 상술이자, 정보안내 서비스라니. 그동안 수없이 팔리고 털린 나의 개인정보, 별 생각없이 동의한 각종 사이트 약관들, 이대로 괜찮은가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프로파일에 관련된 미드를 너무나 재밌게 봤던 경험 때문에 소비자 프로파일링에 대한 부분을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각 유형별로 체크리스트도 확인해가며 세세하게 읽었는데 어디에도 딱히 부합되지 않는 것 같아 유형 자체가 구분이 좀 애매한 게 아닐까 싶었다. 책에 조금 아쉬움을 느낄 때 쯤 요즘 상권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을지로가 힙지로로 이름을 날리게 된 이후로 의식적으로라도 을지로 쪽으로는 약속을 잡지 않았다. 힙을 따라가기 어려울만큼 나이를 먹은 것 같다는 탓도 있고, 힙이나 분위기같은 것을 체험하고 싶은 욕구보다는 맛과 안정을 원하는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책에서 꼽아놓은 트렌디한 거리들을 가본 일이나 유행을 따라가 본 적이 없는 것을 보니 어느 유형에 속해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소비 자체와 멀어진 삶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졌다. 책의 유형 구분의 스펙트럼이 좁고 단순한 것이 아니라 내 소비욕이 떨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석해놓은 각종 데이터들을 보면서 내가 어떤 분류에 있는 사람인가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현대인은 물질에 의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소비하는 인간(호모 콘스무스)이라 명명될 수 있는 소비인류로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운이 좋은 BC카드 사용자라면 데이터를 읽고 요즘의 흐름을 분석해보는 재미와 함께 당신이 속한 소비 유형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좀 더 규모에 맞는 계획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거나 혹은 기왕 쓰는 거 제대로 돈을 쓸 수 있는 소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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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빗 - 내 안의 충동을 이겨내는 습관 설계의 법칙
웬디 우드 지음, 김윤재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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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나은 나'가 되라며 험난한 과제를 안겨주지만, 또 한편에서는 그 과제를 달성하는데 더 큰 비용을 지불하도록 몰아붙인다. 험악한 세상이다. 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정확히 간파해야 한다. (49) ]

 

 험악한 세상이다. 어김없이 연초는 찾아왔다. 시간의 흐름은 유연한 것인데 거기에 기준을 두어 시작과 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매년의 의식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작심삼일' 새해가 시작한지 삼일이 지났다. 19년의 31일밤부터 20년의 1일의 첫날까지 당신이 세운 올해의 목표들을 이루기 위한 수많은 계획은 3일의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있는가? '해빗'은 3일째 슬슬 의지가 무너져가고 있는 당신이 또 다른 실패를 기록하지 않도록 도와줄 책이다. 어쩌면 이번에는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희망을 안겨줄 책일지도 모른다.

 

 삶의 변화, 성공적인 삶 같은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자기계발 같은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빗'의 내용이 익숙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책은 당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습관'을 활용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당신이 목표로 하고 있는 행동이 습관으로 형성되면 당신은 그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당신의 '의식적 자아(43)'는 목표도 잘 세우고 계획도 잘 잡지만, 특히나 그것이 장기적이고 복잡한 것일수록 하지 않아도 될 핑계를 찾는데도 열심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살을 빼기 위해 식단을 만들고 운동을 하기로 계획표를 짜는 것도 잘하지만, 오늘 야식을 시키고 운동을 빼먹으려는 구실도 잘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습관화된다면 '비의식적 자아'가 저항을 줄여주기 때문에 이를 강조한다. 

 

 책에서는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행동들이 패턴화 된 것이 그것이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읽으면서 정말일까 싶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하는 일이나, 안전벨트를 하는 것, 아이에게 자기전에 책을 읽어주는 일등을 꼽았는데, 습관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것들 역시 해야만 하는 일들이기 때문에 혹은 요구받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 같다. 늦게 일어나 시간이 없거나 양치가 너무 귀찮아도 남들 앞에 그냥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양치를 한다. 안전벨트는 법으로 강제되어 있기도 하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도 아이가 원하기 때문과 더불어 자신이 잡은 좋은 부모의 이상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습관은 무의식의 영역이 더 크게 작용하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마트에서 늘 먹던 브랜드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습관적 선택에 가깝다. 또 책을 읽을 때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여 앉는 것 같은 버릇처럼 일상의 영역에서 조금 벗어난 특이성이기도 하고.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제시된 방법들이 습관 설계라기 보다는 좀 더 오래가는 계획 실행 방법 제시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 나오는 많은 예가 다이어트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바꿔치기 전략(190)'은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는 우리 뇌는 우리가 다이어트를 위해 열량이 낮은 식단으로 식사를 대체한다면 그 차이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이내 다른 음식을 요구한다고 한다. 우리가 뇌를 속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이는 습관화로는 이루기 어려운 의지의 문제 가까울 것이다. 좋은 습관을 들이고자 희망하는 우리를 매번 좌절하게 했던 그 '의지(170)'.

 

 참 이상한 것이 왜 우리가 피하고자 하는 일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습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육식, 밀가루 음식, 단 음식 먹기, 전혀 운동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있기, 다리떨기, 늦잠자기 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습관이 된다. 보상이나 바꿔치기 같은 것도 필요없이! 이 때문에 습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것이, 노력이 필요하다는 부분에서 습관과는 이미 떨어져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졌다. 습관도 이미 본성에 가까운 것이라 노력을 통해 얻은 습관은 지치고 방심한 때에 와해되지 않을까? 습관을 만들려는 노력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을수록 나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습관을 들이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습관화 된 행동으로 이루어진 삶이 만족스러울까. 비록 전부 좋은 습관이라하더라도. 습관적으로 삶을 산다면 완벽할지 몰라도 어쩐지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한잔 마시고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그 앞에서 물을 맞으며 서있는 안좋은 습관없이)씻고 신선한 채소를 곁들여 균형잡힌 아침식사를 하고 몸에 좋지 않은 커피 등의 음료를 마시지 않고 고구마나 과일, 채소스틱으로 간식을 먹고 매일 집청소도 하고 30분 이상 책을 읽고 30분 이상 운동을 하고 2시간 이상 티비를 보지 않고 할일을 미루지 않고 일할때는 일에 집중하고 6시에 저녁을 먹으면 야식을 먹지 않고 스킨케어를 빼먹지 않고 자기 전에 핸드폰을 하지 않고 12시 전에는 꼭 잠자리에 든다면. 인생이 완벽할지는 몰라도 사는게 즐겁거나 좋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읽으면서 평소의 생활태도와 그동안 목표를 세우고 실패했던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든 책이었다. '습관은 애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에게 들여지지 않은 행동을 습관으로 설계하려면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약간의 모순을 느꼈다. 복잡한 생각은 접고 올해의 목표에 집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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