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전사 소은하 창비아동문고 312
전수경 지음, 센개 그림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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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도서를 가끔씩 챙겨 읽는 편인데,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는 한동안 찾아읽지 않았다. '별빛 전사 소은하'는 오랜만에 읽는 동화였다. 독특한 점은 동화이면서 SF 요소가 들어가 있다는 점인데, 이를 반영한 제목과 표지 그림이 대상 연령층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긍정적인 느낌을 줄지 아닐지 살짝 의문이 들었다. 주요 키워드만 두고 본다면 좀 성숙한 아이들이 선호할 것 같은 내용인데, 제목은 살짝 올드하거나 유치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 싶었다. '우주전사'같은 수식을 붙인 창작물이 라떼부터 익숙해서 그런가. 요즘 아이들에게 어필이 될까 싶었다. 될까?

 

 읽기 전부터 이런저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이지만, SF적 요소가 들어있는 소설들을 읽었을 때 때로는 전문적인 내용이 나오기도 해서 읽기 까다롭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아무리 동화여도 조금은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혹은 동화적 상상력과 가상 세계가 조화롭게 섞여들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책을 읽었다. 결과적으로 이 두 염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현실세계와 우주 행성, 가상 세계가 게임이라는 소재와 연결되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복잡한 이론들이 사라진 자리를 동화적 상상력이 채워준다. 과학이나 게임같은 소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이야기의 규모에 비해 분량이 짧아 뒷부분의 중요한 흐름이 단순화되어 끝맺어진 게 아닐까 싶다. 초반 은하가 겪는 학급 내 갈등이나 게임 세계에 대한 설명이 자세한데에 비해 마무리는 단순화된 듯 했다. 자신에 대한 각성 이후 적응해가는 과정도 더 살을 붙여도 좋았을 것 같았다. 은하가 조심성 없이 사소한 데에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은 어린아이 답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타임리프 능력을 남용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들어 소소하게 재미있었지만, 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혼란을 겪는 과정도 제대로 나왔다면 독자에게 더 많은 의미를 주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마지막 무렵, 지구를 구하기 위한 싸움에 못지 않게 주인공이 겪게 되는 사건이 심각하고 커다란 일인데 그 상황이나 심리를 어루만질 수 있는 내용은 잘 다뤄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이야기의 방향을 다르게, 좀 더 밝게 끌고 갔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뻔한 내용이 흔하고 틀에 박힌 것 같아도 동화에 바라고픈 결말이 있는 법이니까. 만화 시리즈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 설정도 독특하고, 이야기 안에 있는 떡밥들도 좀 더 살을 붙일 수 있는 요소가 충분하다.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도록 선택할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 좀 더 본격적이었어도 좋았겠구나 싶기도 했다. 은하는 육학년이지만 3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읽기에 좋을 내용이 아닐까 싶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자라 언젠가 중학생이 된 은하를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그것도 멋진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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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
마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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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마음에 든 책은 아니다. 젊은 작가라고 하기 좀 그렇지만, 대략 동시대를 살아온 작가들 사이에서 흔히 보이는 성장팔이 글이라 생각했다. 초반에는 가끔 보이는 독특한 수식들도 툭툭 거슬리게 눈에 들어왔다. 착 붙는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읽다 도드라지는데 굳이 이런 표현을 썼을까, 이런 마음으로 까칠하게 읽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을 뭐 대단히 풍요롭게 보낸 것이 아니라면 다들 조금씩은 공감할 법한 과거들이 나온다. 사람 사는것도 다 똑같고 정도는 달라도 비슷비슷한 것들을 느끼며 살겠지.

 

 초반내용은 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려다 실패했나 싶게 먹먹한 내용들이 있다. 딱히 어렵게 자랐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남들이 봐도 평범하다 할 만하게 컸지만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구석이 있다. 아주 어릴 적에는 몰라도 크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얼룩들이 있다. 거기에 새겨진 무늬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얼룩이었던 것들, 작고 희미해서 신경쓰이는데도 얼룩인지 몰랐던 것들, 어쩌다 받은 용돈으로 슈퍼에 가서 과자를 고를때 상자에 든 것보다 봉지과자를 고르게 되는 선택이나, 무한리필 집에 배부르고 만족했던 입맛, 제한된 취향 같은 것들을 꽤 솔직하게 드러냈다.

 

 자꾸만 먹는 부분을 집어내서 그렇지만, 외식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는 부분의 경험이 아주 비슷했다. 저자가 자신과 가족들이 겪은 변화를 풀어내며 무엇이 변하게 된 것인지 되짚는 부분까지 공감했다. 개인적으로 최근에는 거기서 더 나가 새로운 굴절을 느끼고 있는데, 괜찮은 식당에 방문하면서 생긴 씁쓸함이었다. 한끼에 십여만원 이상하는 음식점을 다녀오고 나면 그게 일상처럼 유지될 수 없다는 현실이 문득 마음을 잡아챈다. 그전에도 분명 더 좋고 나은 새로운 경험으로 나를 이끌었을텐데, 그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이상하게 더 박탈감이 든다. 누군가에겐 일상이라는 점 때문일까, '앞으로'에 대한 기대가 갈수록 적어져서 그런걸까.

 

 계속해서 이렇게 씁쓸한 얘기만 나오는 건 아니다. 야동왕과의 첫키스 추억은 읽는 내가 민망할정도로 솔직하고 웃기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처절한 내용은 제일 재밌게 읽으면서도 읽기가 괴롭다. 요즘 흔히 말하는 공감성수치때문인가. 쌍커풀 수술에 대한 내용도 공감이 많이 됐다. 한참 성형에 대해 말이 많을적에 수술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며 억울해했던 저자와 달리 나는 수술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한쪽에 백만원씩 이백이나 들여서 했다고 거짓말을 하곤 했다. 우스운 것은 대부분 했다고 하면 도리어 멈칫하며 안한거 같은데,하고 물러선다. 곤란하게 만들거나 놀리려고 했다가 당당하게 말하니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얼굴에 보이곤 했다.

 

 굳이 수술여부를 면전에서 물어보는 심보에 맞서 수술 맞다고 대답해주었다가, 나중에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내가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가 맞네 아니네 자기들끼리 입씨름하기도 하고, 도리어 안했는데 왜 했다고 소문내고 다니냐고 면박을 당하고 오는 일도 있었다. 왜 거짓말을 했냐고 따지는 사람에게 내가 수술했다고 뒷말하고 다닌거냐고 물어보면 입을 다물었다. 무례하거나 뒷말하는 사람도 거르고 나름 속시원하게 멕이는 방법이었긴 했는데 이래서 예전에 알던 사람들 중 일부는 수술한거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거라는게 문득 생각났다. 뭐 어떠랴.

 

 큰 기대없이 읽었지만 끝까지 재미있게 읽혀져서 만족스럽게 마지막 장을 덮었다. 책을 읽다가 아 친구가 이 책을 읽으면 재밌다고 생각하겠다 싶어졌다. 가을이니까 마땅히 책을 한 권 선물해야지 마음먹었다. 그리고 저자도 책을 통해 웹툰 미리보기 200원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으시길,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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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쓸모 - 시대를 읽고 기회를 창조하는 32가지 통찰
강은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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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가 퍼지기 전에 몇몇 전시의 표를 구해두었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때때로 전시장을 찾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였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갔고, 여러 사정이 겹쳐 기껏 구해놓은 표는 기한을 넘긴채 사용하지 못하고 말았다. 문득 예술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다녀오려고 마음을 먹었음에도, 전염병이 도는 불안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된 예술작품 관람은 과연 삶에서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일까. 반년 이상 찾지 않은 도서관, 예매했다 취소된 콘서트 표 등을 떠올리면,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기꺼이 포기하고 있는 것들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을 예술 분야가 차지하고 있을까?

 

 아주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투모로우'라는 영화다. 재난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봤을 법한 이 영화는 한국인의 성향에 맞춰 제목을 바꿔 성공한 사례로 이미 유명할 것이다. 영화에서 이상기후로 인한 추위때문에 위기 상황에 처한 주인공 일행이 도서관에서 생존을 위해 책을 불태우는 장면이 나온다. 인류의 문화유산과도 같은 책을 불태우다니, 물론 그들도 책을 분야에 따라 선별하여 불태우기는 했지만 꽤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환경을 보호하지 않으면 언젠가 인류가 쌓아온 문명이 자연앞에서 무력해질 때가 오리라는 예고같았다. 버리지 않고 서랍에 넣어둔 관람 기간이 지나버린 표를 보면서 문득 그때의 장면을 떠올린다.

 

 코로나로 인한 혼란과 함께 단기간에 찾아온 예술에 대한 냉담을 추스리고 책을 찾아 들었다. '예술의 쓸모'라니, 그건 무용한데서 오는 가치 아니었나. 사회적 혼란속에서 가장 먼저 포기해버린 것들 중 하나인 예술에게서 저자가 어떤 쓸모를 발견했을지, 그리고 독자로하여금 그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아주 쉽게 굳은 마음이 풀리는 경험을 했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란 그림을 마주했을 때였다. 유명한 그림이라 전에도 본 적이 있는데, 생각이 복잡한 와중에 만나게 되니 또 새로웠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주는 은근한 스트레스와 고독감, 그리고 때로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던 밤이 그림속에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이 평범한 거리의 그림이 왜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지 찬찬한 설명을 곁들여 읽으며 공감했다.

 

 일단 마음을 열고 나니 친절한 책의 내용도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전시장을 찾아다니는 서툰 관람객에게 딱 적당한 눈높이로 다양한 시각을 일깨워주는 내용이다. 책에 실린 그림들 대부분이 어디서 한번쯤 봤을 법한 대중적인 작품들이라 모르는 작품들을 보면서 배워야한다는 부담도 없이 읽을 수 있다. 오히려 그림에 눈도장을 찍으며 반갑게 느낄만한 목록들이다. 그림 뿐 아니라 도자기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게 읽었는데, 얼마 전 찻잔을 살려고 이리저리 살펴봤던 웨지우드나 로열코펜하겐 등의 브랜드에 대한 얘기도 나와서 재밌었다. 이 그릇들이 왜 이렇게나 비싼걸까 생각했었던 부분을 정곡으로 찌르는 대목도 나온다. "과학과 예술의 접점에서 꽃피운 아름다움이자, 끊임없는 노력의 성과물(228)"이니, 찻잔의 차도 더 향기롭겠지 생각하기로 했다. 

 

 한동안 메말랐던 감성적 부분을 다시 채워주는 책이었다. 쓸모라는 것이 기능적인 용도를 채우는 것에만 있는것이 아니고, 예술은 여전히 무용하지만 거기에서 오는 마음의 곁은 무한하단 생각을 했다. 한동안 모든 것에서 거리를 두고, 현생을 살아내는데 벅차게 지내느라 마음이 좀 딱딱해졌다면 '예술의 쓸모'로 굳어가는 감성을 되살리는 준비운동을 해줘도 좋을 것 같다. 부담스럽지 않은 내용으로 호기심을 유발하고 관심을 이끌어줄 것이다. 긴 연휴를 맞아 집에서 감상하는 마음 편한 전시 '예술의 쓸모' 전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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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89호 - 2020.가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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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과 비평의 2020년 가을호 계간지가 나왔다. 계간지를 읽은 것이 십여년 전이었는데, 그때보다 지금 더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계절을 받는다.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손안에 들어오는 책 한 권으로 느낀다는 것이 이제는 왜 남다른 느낌이 들까. 계간지를 읽는 방식이 달라져서 그런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이 훨씬 즐겁다.

 

 여름호를 읽는 동안은 우한 폐렴의 직격탄을 맞은 생생한 상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면 가을호에서는 아마 이어지는 삶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을까 싶었다. 특집으로 다루고 있는 코로나 19를 보며 역시, 하고는 계속해서 막막했다. 이어지는 흐름으로 리베카 솔닛의 글을 실은 현장 부분도 흥미로웠다. '팬데믹과 마스크 쓰지 않는 남자들'이라니.  

 

 작가조명에는 출간전 미리보기를 했었던 '철도원 삼대'의 황석영 작가가 등장했다. 제목이나 작가나 전부 독자에게 한껏 부담을 주는 이름들이다. 삼대 그리고 황석영. 내심 작가조명에 등장한 노작가를 향한 치켜세움을 의심하던 눈길도, 스스로에게 읽고 싶은 것만 읽어도 된다고 습관적인 관대함을 펼치려던 마음도 접었다. 작가조명을 통해 책도 다시보게 되었다.

 

 가을을 보내는 동안 천천히 아직 더 읽어야하지만 미리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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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이랑 지음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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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펼치자마자 숨이 턱 막힌다. 솔직히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작가의 책이니 속시원한 까발림?같은 것도 있고, 그 당당함만큼의 벌이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월달 수입 42만원, 2월달 수입 감사하게도 96만원의 선명한 글씨가 눈에 들어오자 내 마음이 먼저 텁텁해졌다. 하필 또 오늘, 그동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구장창 사마시다가 이때에만 우유와 당분이 들어간 따뜻한 커피를 시켰을 줄이야. 벌컥 시원하게 들이켤 것도 없이 목이 마르고 입이 텁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오죽했으면 돈이 필요하다고 해야 했을까. 인생이 뭐 그렇게 시원시원했으면 이런 글도 없었겠지, 뒤늦은 자각이 온다.

 

 보여지는 삶은 멋졌다. 책안쪽 날개에 실린 압도적인 분위기의 사진도 그렇고, 시상식에 참석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예술가의 삶. 재능도 많은지 이것저것 하는 일도 다양하다. 작가는 이런 자신을 두고 남들은 하는 일이 많아서 돈을 잘 벌거라 생각하지만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것저것을 하는 것 자체가 슬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재능과 용기가 그 안에서 빛나는 것 같아서. 그럼에도 불쑥 들이밀어진 숫자 얘기에는 부럽다는 말도 갈 길을 잃는다. 저 특별함과 돈의 문제가 보기와는 다르게 반비례하는 것이라면 그 용기도 재능도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는 것이 더뎠다. 사실 나에게도 작가 지인이 있다. 이랑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그가 때로 흘려두는 팍팍함을 주워놓았다 만나서 밥이라도 한끼하고, 차라도 한 잔 할때 조금이나마 펴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작고 별 것 아니었어서 씁쓸했다. 그도 나에게 차마 다 하지 못한 말들이 이렇게 있었겠지 싶고, 어차피 서로 없는 처지에 때로 만나 밥 한 술 같이 하는 것으로 얼마나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 싶어졌다. 외국에 나가서 며칠을 머물고, 지방 이곳저곳을 돌고, 서울 어디를 찾아 강연을 하던 그의 바쁨이 책 안에 옮겨놓은듯 그대로 담겨있었다.

 

 읽으면서 전부 다 마음을 씁쓸하게만 했던 것은 아니다. 틈마다 비집고 들어선 짧은 만화들은 별 내용이 아닌데도 재밌다. 파란색 입술을 한 사진을 떠올렸을때, 소담하고 아기자기한듯한 만화의 분위기랑 잘 연관이 안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상하게도 일상적인 내용이고 짧고 단순한 그림인데도 마음이 간다. 사실 잘 모르던 작가였는데 다른 책들도 궁금해질만큼 괜찮았다. 책의 글들도 매우 솔직하고 인간적이라 예술을 하는 나랑 다른 사람의 삶이라는 느낌이 덜했다. 분명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는 맞는데, 큰 흐름에서는 공감되는 생활이 묻어나는 점이 좋았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분위기였지만, 오히려 더 좋았다. 요즘 많이 보이는 힐링에세이들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해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들이 끼워져있어서 저자의 여러 면모를 조금씩 엿보는 것 같다. 2부의 첫 내용에서는 당황하기도 하고, 4부의 어떤 내용에서는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 아플일이 점점 많아지는 나이가 되니 이렇게 전해듣는 이야기도 그냥 넘기기 어려워진다. 이상하게도,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음 잘 여미고 살아야지 싶은 다짐이 들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스스로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아마 20대 후반, 30대를 넘긴 여성이라면 공감할만한 여운이 아닐까 싶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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