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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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잘 모르는 낯선 동창이 25년만에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 '넌 날 도와주리라 믿'는다, '난 널 잘 안'다고 말하며 가지고 있는 친일파 자료를 공유해달라고 요청한다. 정수기나 장판을 사달라고 해도 불편할텐데 그 이상으로 불안한 시작이다. 곧 전환되는 시점에서도 허동식의 행보는 어딘지 찜찜하다. '곧 알게 될 거(23)'라는 허동식의 말을 최주호가 깨닫게 되었을때, 최주호가 아무것도 모른 채 기이한 음모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이 은밀한 움직임을 예감했으면서도 모른체 했던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강렬한 시작을 안겨주었던 친일파, 인간쓰레기의 청산이라는 내용은 다소 잔인한 면이 있지만 심정적으로는 대리 쾌감을 전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미처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잔재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오죽하면 독립운동을 하면 대대로 형편이 어렵다는 말이 경구처럼 옮겨지고, 친일로 쌓은 부가 그대로 이어져 한국 땅에서 일본 명패를 사용하는 저택에서 살 수 있을까. 노창룡이 끌려 간 장소가 양수리의 폐가가 된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이라는 장소도 상징적이었다. '집행관들'의 매력에 훅 몰입되기에 충분했다.  

 

 그들이 이내 인터넷 영웅이 되었듯이 독자의 입장에서도 자연스럽게 다음 행보를 응원하고 잡히지 않고 직접적인 청산의 행보를 이어가길 바라게 된다. 그것이 과연 옳은 방법일까 생각해보기 전에 사회가 과연 옳은 방법으로 나아가고 있었던가 무게추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친일파에, 부패 정치인, 악덕 기업인들까지 비단 이 일만이 아니라 그동안 뉴스로 접해온 각종 범죄와 사회문제들이 그 경중에 맞지 않는 법의 심판을 받았을때, 우리가 느끼는 불만과 불평등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여가던 요즘이다. 그래서 '집행관들'이 더 재미있고 흥미롭기도 했다.

 

 5장의 숨은그림찾기까지 집행관들과 수사관들 사이의 송곳같은 대립이 이어진다. 쫓고 쫓기는 관계 속에서 긴장이 느껴지는 내용이 이어져 순식간에 읽었다. 무소처럼 뚜벅뚜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6장에 이르러서는 이윽고 이 추적극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 확실한 예감을 하게 된다. 어쩌면 고루하지 않을까 싶었던 정치, 사회, 역사를 키워드를 달고 있는 책이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다산의 신간은 항상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고 만나지만, 충분히 충족되는 시간이었다. 부담없이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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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
나태주 엮음 / &(앤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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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사는게 참 외롭단 생각을 한다. 그럴때는 가만히 타타타의 가사를 떠올린다. 우스운 것 같아도 그 가사가 얼마나 철학적인지. 문득 외로움도 납득하고만다. '바람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오면 비에 젖어' 산다는 가사가 마음을 채워주는데 문득 가사도 시구나 싶었다. 나태주 시인이 엮어낸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의 책머리에도 그런 말이 있다. '시가 사람을 살리는 좋은 약이라는 믿음을 나는 한순간도 놓아본 적이 없(6)'다는 고백이다. 노래 가사에 위로받는 것처럼 시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위로해줄 것이다.

 

 시 옆에 나태주 시인이 붙여둔 짧은 글들이 안정감을 준다. 아마 오롯이 시만 120편 소개되어 있었다면 다소 밋밋했을지도 모르지만, 옆에 놓여진 시인의 글귀를 함께 읽으니 훨씬 풍요로운 감상이 가능하다. 그냥 읽고 넘길 수 있는 시도 자신의 감상을 좀 더 확장할 수 있고, 때로는 이리저리 한정없이 퍼져나가는 감상을 갈무리하도록 돕기도 한다. 시집 '풀잎'의 서문(57)을 옮기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함께 소개하기도 하고, 폴 베를렌의 시(174) 옆에는 어떤 상황에서 쓰여진 시인지 덧붙여 정보를 주기도 한다.


 가장 인상깊었던 시는 아우구스트 슈트람의 '해 질 무렵'(166) 이라는 시였다. 유명한 시인과 시들 사이에서 처음 들어보는 시인의 처음 보는 시였는데, 공간의 모든 감각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말없이 나를 '이상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너의 존재까지 따뜻하고 말랑한 느낌을 주는 시였다. 마침 데미안을 막 읽어낸 뒤에 시집에서도 헤르만 헤세의 시를 만나니 반가웠다. '어머니께(20)'라는 시나 '들을 지나서(232)'는 문득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의 느낌을 준다. 우리는 때로 객지에서도 혹 자신의 집 방 안에서도 집으로 돌아가고픈 느낌을 받는다. 내 방 천장이 아득히 낯설어질 때 왜 그런 느낌이 들까 싶었는데, 이 깊고 오래된 홀로됨을 어쩌면 어머니의 옆에서 치유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 가을 국내 명시 114편을 엮어낸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이후로 나태주 시인이 엮은 해외 명시들을 만나니 또 새로웠다. 다음에는 나태주 시인과 함께 또 어떤 시들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도 된다. 다가오는 봄과 어울리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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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BTS 앨범의 콘셉트 소설 그리고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헤르만 헤세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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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미안을 왜 지금껏 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이런 고전들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온 이유가 있기 때문에 보장된 작품이지만 웬만해서는 책을 읽자고 마음먹게 되지 않기도 한다. 그동안 생각은 있었지만 딱히 계기가 없었던터라 읽지 못하고 있던 데미안을 스타북스의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방송 스페셜 에디션 출간을 계기로 읽게 되었다. 읽는 기간을 다른 책들에 비해 오래걸렸지만 들인 시간만큼의 재미도 충분했다.

 

 " '데미안을 잊어버렸어?'(84) "

 

 데미안이라는 인물의 매력이 드러나기 시작한 부분이었다. 표현이 섬세하고 유려한 문장들 속에서 유약하고 어린 내가 주위 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간교한 주변 인물들의 행동을 간접적으로 유추해보는 것도 꽤 즐거운 과정이었다. 알 수 없는 경로로 프란츠 크로머에게서 벗어난 싱클레어가 "교실의 양로원을 연상케 하는 퀴퀴한 공기 속에서 그의 목덜미 근처에서 풍겨오는 향기로은 비누냄새를 아주 기쁜 마음으로 들이마(101)"시게 되면서부터 한층 성숙된, 새로운 근심이 찾아오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데미안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가 싶을 때 찾아온 에바 부인과의 만남은 불안하면서도 묘했다. 데미안과 에바 부인은 모자의 관계이면서 마치 둘로 나뉘어진 한 사람인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데, 싱클레어가 그 둘에게 함께 끌리면서 '부르는 방법'을 썼다는 부분은 어딘지 모르게 기묘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갑자기 들려온 전쟁 소식과 함께 마무리 지어진 내용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뒷이야기가 더 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끝나버린 이야기의 아쉬움을 덧붙여진 옮긴이의 후기와 100편의 시로 달랬다. 스타북스의 데미안이 특별한 이유도 100선의 시가 함께 담겨 있다는 점이 컸다. 100편의 시가 데미안의 내용으로 고양된 감성을 증폭시켜주는 감상이 되었다.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면서 지드의 '좁은문'을 떠올리는 순간이 많았다. 성장의 시기를 다루는, 영향이 깊은 누군가가 인생에 새겨지게 되면서 그에 빗대어 자신도 완성해나가는 화자의 시점이 비슷하다고 여겨졌다. 실제로 글의 맨 초반 '인간의 생애란 각자가 자기 자신이 지향한 바에 도달하기 위한 길,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길인 것이다.(13)'고 하는 부분에서부터 '좁은문'을 떠올렸었다. 데미안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은 독자라면 지드의 좁은문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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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뒤바꾼 가짜뉴스 - 거짓으로 대중을 현혹시킨 36가지 이야기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장하나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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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읽은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매일경제신문사의 신간 '세계사를 뒤바꾼 가짜뉴스'는 그보다 점잖은 제목으로 다가온다. 어려서부터 신문은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것으로 하나씩 두 부를 읽어야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게 된다고 배웠다. 뉴스는 얼핏 공정하게 소식을 전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뒤에는 뉴스를 작성하는 사람과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뉴스는 대중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생각도 움직일 수 있다. 가짜뉴스가 오래도록 이용되어 온 이유도 이를 위해서 였을 것이다. 세계사에서 어떤 가짜뉴스들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책을 통해 알아보고 싶었다.  

 

 책의 소개부터 나치 프로파간다의 수장인 괴벨스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생각해서 궁금했는데, 간결하게 소개되어 있는 내용이 다소 짧아 아쉬웠다.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보니 각 역사적 사건들이 아주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역사내용이고, 잘 알려진 유명한 사건들이 등장한다는 점에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호흡이지만 다소 얕고 짧게 느껴지는 깊이감이 아쉽기도 했다.

 

 책의 내용 중에서는 셔츠의 색으로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헸던 무솔리니(233)의 검은 셔츠나, 나폴레옹을 위해 다비드가 그린 그림처럼 눈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중이 영향을 받는 것까지 치밀한 밑바탕이 되는 사례들이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디즈니 랜드에서 나뭇잎에 미키마우스 모양을 내어 구멍을 뚫은 것을 보고 한국 네티즌들이 기묘사화를 떠올려 웃은 일이 있다. 이처럼 세계의 다양한 사례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결을 보이는 사례를 떠올리며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가짜뉴스에 관련된 문장은 아니지만 그리스의 쇠퇴를 두고 폴리비오스가 남긴 말(64)이다. 이 챕터를 끝마치며 '현재의 우리와 닮은' 것 같다던 저자의 끝맺음도 그렇지만 확실히 먼 그리스 시대의 폴리비오스의 말은 요즘의 저출생 현상과 비슷한 점이 있다. 오래도록 도시의 흥망이 반복되어 오는 흐름속에 있는걸까,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고령화, 출생감소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메인으로 나온 역사 이야기 뿐 아니라 에피소드에서 소개되는 일화들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에피소드 중 여성 인물인 잔 다르크나 마리 앙투아네트는 영화와 매체에서도 많이 다루는 내용으로 다양한 해석을 접했기 때문에 책의 내용도 익숙했다. 이들과 함께 클레오파트라(70)가 미인으로 알려지게 된 이유도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본질보다 더 낮은 방향으로 평가되는 일이 공통적으로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됐다.   

 

  지금도 가짜뉴스를 구분하기 어렵다. 워낙 정보가 많은 때지만 그 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때로는 진실보다 더 자극적인 거짓을 믿기 쉬울 때가 많다. 자극적인 소식은 더 빨리 더 넓게 더 강렬하게 퍼진다. 소식이 퍼져나가는 경로가 한정적이고 정보가 지금보다 더 적었을 시절에도 이는 비슷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사이버 공간의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해 염려를 남겼는데 시간이 지난 뒤에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정보 전쟁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되는 일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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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와이너리 여행 - 식탁 위에서 즐기는 지구 한 바퀴
이민우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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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은 매력적이다. 전에 한참 와인과 관련된 만화가 유행한 적이 있다. '신의 물방울'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와인에 관심을 갖고 또 그에 맞춘 와인들이 대거 소개되는 때가 있었다. 만화로 소개되는 와인에 대한 쉬운 접근법에 몇 권 읽어봤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폭발적인 붐은 아니더라도 차츰 와인이 일상적 주류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와인은 고가라는 사실과 인식 때문에 약간의 장벽과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요즘 핫한 김은희 장항준 부부의 일화도 웃음과 공감을 준다. 전에는 소주를 즐겨마시던 장감독이 요즘은 와인을 마신다는 변화를 전한 김은희 작가의 말에 장감독이 예전엔 왜 그랬나싶게 와인이 맛있어졌다고 응수한다. 와인의 매력이 대체 무엇이길래 많은 사람들이 그 매력에 빠지는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 와인과 와이너리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었다.

 

 아무래도 와인을 잘 알아서 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잘 몰라서 읽기 때문에 낯선 내용들이 많다. 하지만 잘 모르는 어려운 내용만 가득할 것 같아 염려도 되지만 '최고의 와인은 레드일까 화이트일까(61)' 같은 소소한 궁금증도 주제가 되기 때문에 가볍게 정보를 선별해서 얻을 수 있다. 와인이 향과 맛(92) 계열로 나뉜다는 것도 알게되고, '가장 우아한 샴페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테탕제라는 샴페인도 마셔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동안 와인에 대해서는 떫은 맛이 덜한 달콤한 맛의 품종을 선호한다는 정도만 가지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나니 어디가서 한두마디 더 얹을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뿌듯해졌다.  

 

 다만 아쉬운 점은 와이너리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전경을 담은 사진이 더 많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것이다. 피에몬테의 안개 낀 포토밭(229)이나 펜폴즈의 포도밭 전경(257)을 보면 다른 지역의 와인들보다 사진으로나마 접한 자연환경의 와인을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듯이 즉각적인 호감이 생겨난다. 아무래도 각지의 와이너리는 일반인이 쉽게 접해볼 수 없는 곳들이니 책을 통해 사진으로나마 보는 재미와 관심을 충족시킬 수 있길 기대하게 된다. 사진 자료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300쪽이 안되는 책의 분량이 더 늘어나더라도 풍부한 구성으로 나왔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았다.  

 

 저자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 새로운 와인의 세계를 접해보았다. 새로운 교양과 취미의 세계에 대해 알고 싶다면 도움이 될만한 책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곳들이 있다는 소식을 매스컴을 통해 가끔 접한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와인과 와이너리에 대한 책도 만나게 된다면 기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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