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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의 목적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단숨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작가 다나베 세이코의 이름을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싶었는데, 저 유명한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작가였다. 영화는 금새 보다가
말았지만 원작은 읽어본 기억이 있다. 워낙 유명해서 영화든 소설이든 둘 중 하나는 봐야겠단 생각을 했었던 몇년 전의 내가 떠오른다. 사실
유명하다기에 '그 자리에 나도 가리다.'하는 마음으로 봤던 것이지 큰 감흥은 없었다. 그래서 였는지 저자의 이름이 어딘지 낯익다 싶으면서도
어디서 마주쳤는지 전혀 깜깜이었나보다. 침대의 목적을 읽고 리뷰를 쓰려다가 이력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보통 사람들이 한국 여자와 일본 여자에 대해 비교하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귓등으로 들을 땐 그렇게 비교할 만큼 다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침대의 목적]은 읽으면서 '일본 여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나?'하고 의아했던 부분이 많았다. 특히 그 결혼에 대한 목표 설정
혹은 -이렇게 표현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집착은 좀 놀라웠다. 결혼하면 쓰려고 장식품을 사서 모으던가, 어차피 결혼할 거니까 하는 생각으로
자신의 생활 패턴을 맞춰서 지내는 등 혹은 결혼에 적합한 여성상이 어떤 것인지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모습 등은 낯설었다. 요즘 특히
결혼 생각을 하는 2-30대 여성들이 적어지는 추세라 더욱 그런것일까. '남자를 만나는 것' 이전에 '결혼이 필요해'를 더 큰 갈망으로 여기는
것 같은 부분은 공감하기 어려웠다.
주인공 아카리가 원룸을 얻어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이사를 하면서 새로 만든 자신의 공간을 특별하게
꾸미기로 마음 먹는데, 그 중에서도 약간은 충동적으로 구입한 특별주문제작한 침대를 향한 각오는 더욱더 남달랐다. "정성 들인 침대에서는 정성
들인 정사를"을 모토로 그녀는 자신 주변의 세 명의 남자들과 침대로 향하는, 침대가 목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녀 외에도 친구들인 스님과
만나고 있는 자유분방한 마사코와 자위관을 애인으로 둔 마도카, 그리고 처녀를 간직하고 있는 요시코 등 각기 다른 스타일의 올드미스 캐릭터들도
나온다.
각 캐릭터를 전부 다 완전하게 살려낸 편은 아니지만 네명 각각의 캐릭터가 약간 [섹스 앤 더 시티]와 비슷하다고 생각됐다. 아카리가
캐리, 마사코가 사만다, 마도카가 미란다, 요시코가 샬롯. 어느 정도 사회적 기반이 있는 여성들의 삶과 사랑에 대해 다룬 내용은 이런 구도로 갈
수 밖에 없나- 혹은 이것이 가장 안정적인 구조로 인물을 설정하는 정석적인 방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워낙 인물들에게
깔려있는 정서적 근본이나 사회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 똑같다는 느낌을 들지 않는다.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읽다가 문득 [섹스 앤 더
시티]랑 좀 비슷한 것 같네.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다.
책의 첫 느낌은 '수다스럽다'였다. 문장 하나하나가 어찌나 조급하게 쏟아내는 재빠른 말덩이처럼 느껴지는지 모른다. 나이가 약간 차서 제
할말은 다 챙겨서 꼼꼼하게 쏟아내는 수다스럽고 깐깐한 직장 선배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기분이었다. 중간중간 이런 얘기는 갑자기 왜 툭
튀어나오나 싶을만한 사족을 덧붙이기도 하고, '이건 이거다'하고 자기 생각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곤조를 보일 때도 있어 정말 피곤하지만, 듣다보면
결국 귀여운 면도 있는 것 같고 피식 웃게 되는. 마음에 드는 인물은 아닌데, 또 밉지 않은 아카리의 독신 생활을 지켜보았다.
[침대의 목적]이라고 해서 침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닐까 생각할만한 내용은 없다. 그리고 분홍빛의 소녀감성 표지답게,
올드미스를 위한 그 나름의 판타지가 여운처럼 남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지치고 힘든 여름밤을 보내면서, 침대를 한 번 깨끗하게 정리해주고, 내
침대는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떠올리며, 읽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