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 이곳이 싫어 떠난 여행에서 어디든 괜찮다고 깨달은 순간의 기록
봉현 지음 / 김영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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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을 중학교 2학년 때에 앓는 것도 복이라는 말을 보았다. 웃긴 말이고 웃긴 명칭이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는 간다. '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의 저자가 이십대에 한국을 떠나 독일 파리 중동 산티아고 인도 등을 머물며 앓았던 외로움과 고독을 나는 그보다 십 년 정도는 늦게 앓았다. 이제는 누구나 그런 때가 있구나, 하지만 괴로울 땐 이 마음이 왜 이런지 몰랐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는 조용한 시간이 흘러갔던 날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이십대 때에는 사람과 사랑 사이에 취해서 빈 공간을 바라볼 줄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반짝이고 정신없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자신만 남았는데, 그게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고 초라해보였다. 그렇게 대단했던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푸르를 때 빛나고 앓았어야 했던 청춘을 뒤늦게 앓았던 것 같다. 청춘이란 말 싫다(353)고 했지만 그 지난하고 치열한 걸음이 청춘일 수 밖에. 

씁쓰레한 맛을 삼키며 책을 읽었다. '만약'이란 단어를 막연히 그렸다. 그러다 " 환갑이 되면 연애하고 싶고 마흔이 되면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는 김광석 아저씨의 말, 삶에서 꿈꾸는 시간이 있기 마련이니 인생에서 2년 정도는 길지 않은 세월인 것 같다고, 그 정도는 마음 놓고 놀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에 눈물이 날 만큼 위로를 받는다. p190" 는 문장에서 멈췄다. 그래, 맞다. 인생 긴데 늦은만큼 더 살면 흐름이 좀 더뎠을 뿐 그리 늦은 것도 아닐지도, 싶었다. 내가 그렇게 늦었나 참 부족했다 아쉬웠던 마음이, 언제 무엇을 하든 내가 그때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면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졌다. " 시기와 나이는 중요치 않다. 누구나 자신만의 치열했던 순간과 가장 반짝이던 시절이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그 한 시절은 그 누구도, 그 어떤 단어로도 단언할 수 없는 제각각의 인생이라 생각한다. p353" 

" 주위에는 외로움을 많이 타면서도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 자신이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투성이였다. 우리는 함께 있는 듯했지만, 헤어지고 나면 허전함에 잠 못 들어 했다. p9" 처음 책을 펼쳤을 때부터 떠오르는 노래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외로운 사람들 어쩌다 어렵게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 혼자 있기 싫어서 우린 사랑을 하네 거리를 거닐고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얘기들을 나누다가 집에 돌아와 혼자 있으면 밀려오는 외로운 파도 (외로운 사람들/이정선)' 책을 읽을 때마다 오래된 노래를 종종 듣곤 했다. 가사를 곱씹다가, 책장 어딘가를 더듬어 헤매다가 한참 시간을 보냈다. " 나만 외로운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외롭게 삶을 살고 있었다. 사랑하며 살아야 했다. 외로움도 슬픔도 견뎌내야 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p246" 외롭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그조차도 할 수 없어서 그냥 나도 너도 그렇겠구나, 언젠가 만나는 날 그만큼 더 반가워하고 사랑해야지 하며 보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나이를 먹을수록 밝고 가벼운 것들만 보고 싶어졌다. 안그래도 사는게 갈수록 무겁고 어려우니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했다. 결말이 슬픈 것들은 손에 대지도 않으려 했는데, '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의 어조도 그리 밝지 않아서 읽는 동안 가라앉고 있는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 계절이 봄으로 가는 동안 수런했던 마음을 가지런히 빗어내리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게다가 결말도 긍정적이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거야(베르세르크)' 처럼 시작했다가 행복은 내 안에 있는거야, 하는 동화 파랑새 같은 따뜻함으로 매듭지어졌다. 이 과정을 함께하는 여정 동안 소박하면서 섬세한 그림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욱 기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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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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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쇄살식마인 나는 식물을 키우는 것에서 손을 떼기로 마음 먹었다. 마음은 사실 수년전에 먹었지만 그 와중에도 식물을 주겠다는 사람이나, 버려질 위기에 처한 식물을 데려오는 등 몇번의 연이 있어서 들였으나 작년 봄 즈음해서 꽤 오래 간신히 살려두었던 식물들과도 작별하고 정말 이제 더는 집안에 살아있는 식물은 없다. 길가다 보는 예쁜 꽃들만 예쁘다,하고 즐길 뿐이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마일로 작가의 '크레이지 가드너'를 보기 시작했다. 식덕인 마일로 작가의 '크레이지 가드너'를 보면 식물은 꺾어도 의지는 꺾이지 않는 애정과 노력이 보인다. 더불어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도 읽기 시작했다. 저자가 그려낸 섬세하고 아름다운 식물들을 보고 있자면 매혹된다. 갑자기 식물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책 안에서는 나는 종종 당황스러웠다. 나에겐 지나치게 감성적인 시선이 어색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분명 어딘가 상처받고 치유를 위해 애쓰는 저자의 모습이 느껴지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선 전해진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일년간 외국의 연구소에 머물면서 지독한 향수에 고생했던 얘기도 감정적 교류와 유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구나 싶었다. 가장 멀게 다가왔던 것은 눈 내린 풍경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부분이었다. " 도시에 살 때 사람들이 눈 덮인 풍경이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얘기하면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건 비겁한 풍경이라 생각했다. 지저분하고 아름답지 못한 것이 눈 밑에 그대로 있으니 그건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두껍게 쌓인 눈을 뚫고 뾰족뾰족 튀어나와 있는 풀잎들을 발견했을 땐 '거봐, 어떤 건 절대 덮을 수 없어'라는 생각이 더해졌다. p23" 세상의 모든 것을 그대로 감싸 더 고요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편이라 사람들은 정말 다 다른 생각을 품고 사는구나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눈 덮인 풍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비슷한 시선으로 " 지금 이 순간에도 원예품종은 개발되고 있다. 우리가 꽃 가게에서 마주치는 난초 대부분이 그렇다. 난초뿐만이 아니라 판매되는 대다수 꽃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꽃집에서 꽃을 사서 그리길 꺼린다. 원예품종은 야생식물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식물학자에게 식물종이라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야생난초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계속 개발되는 품종과 사람들의 열렬한 난초 사랑의 본질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꽃을 사랑하며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p45" 는 문장을 발견했다. 처음엔 그런 구분에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좀 냉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문득 얼마 전 길을 걷다 구경한 펫샵이 생각났다. 판매를 위해 개량되고 강제로 교배되어 더 귀엽고 유행하는 어린 개체를 만들어내는 시장이 거기에 존재하고 있었다. 동물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은 이 산업에 반대한다. 태어난 어린 동물들도, 개발되어 피어난 원예품종들도 아무 잘못이 없이 참 보기 좋고 귀하지만 그 과정과 목적에서 본질을 찾게 되는 것은 저자도 그 자체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구나 이해되었다. 

 이해가 되니 조금씩 이야기가 전달됐다. 살구를 좋아한다(105)는 공통점도 발견하고, 추수감사절 칠면조 요리를 맘에 들어하는 점(196), 인간과 다른 생물 사이의 권력 불균형에 대한 시선(193)도 비슷했다. 처음 어렴풋이 짐작했던 내면의 괴로움은 계절이 다 한 인연들을 정리하면서 비롯된 것(206)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 헤어져야 함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붙잡고 있는 건 나의 욕심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방이 가진 무언가를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존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상대방을 탓하기 쉽지만 사실 그가 나를 사랑할 이유는 없다. 사랑했지만 이제는 사랑하지 않을 수 있고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가 무심하다고 느껴 상처받고 있을 때 그는 내게 상처를 주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 그런 만남이라면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헤어져야 한다. 건강한 만남도 소중하지만 건강한 헤어짐도 소중하다. p208" 이런 맺음에 이르기까지 속안에 가득 찬 것들을 덜어내 비우고 정리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먹먹했다.  

 책을 읽다보니 나무는 잘 죽지 않아 나무를 죽이는 방법을 소개(64)하기도 한다는데, 지난 산불로 그렇게 잘 죽지 않을 나무들이 너무나 많이 불에 타버렸음이 생각나 더욱 안타까웠다. 사실 그 전부터 차를 타고 다른 지역을 다녀올 때 산에 죽은 나무들이 눈에 띌 때가 전보다 늘어난 것 같아 환경 문제 때문일까 혼자 염려했었다. 얼마 전 '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이라는 나무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도로 확장이나 재건축 등을 이유로 가로수들을 다 베어버려 아쉬웠단 얘기를 한 적도 있었다. 잘 죽지 않아 죽이는 것 조차 오래 시간을 들여야 하는 자연 환경이 결국은 사람 때문에 이렇게 쉽게 파괴되는 것이 씁쓸했다. 제왕나비를 위해 감자 몇 알 대신 밀크위드의 덤불을 남겨두는 것처럼(183) 위태로운 자연을 위해 우리의 욕심에서 항상 뭔가를 더 남기고 비워두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덕분에 요즘처럼 벚꽃이 만개하여 잔바람에도 빗방울에도 금방 떨어져내리는 꽃잎이 너무 성급한 것 같아 아쉬울 때면, '화려한 꽃잎들이 떨어져 꽃이 모두 사라진 듯 보이지만 나무엔 어린 열매들이 남겨져 있다고. p60' 떠올릴 수 있어서 기쁘다. 책의 내용만큼이나 그림이 예뻐서 볼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그림이 더 많았어도 좋았겠다. 사실 그림과 짧은 이야기를 엮은 컬러링북을 내셔도 좋을 것 같단 사심이 생겼다. 청초한 표지도 참 마음에 들어서 더는 식물을 들여 생명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탓에 심심해진 책장에 화분 대신 책의 표지가 잘 보이도록 놓아두기로 했다. 저자가 식물학자이면서 그림을 그리고 또 이렇듯 섬세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어서 책을 읽는 시간 동안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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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 교양 100그램 5
하지현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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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도,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속으로 당당히도 난 별로 불안감을 느끼거나 그런 것 때문에 불편하지 않은데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염려했다. 일상은 대체로 무난하게 지나가는 것 같고 때때로 느끼는 압박은 약속시간에 늦을지도 모른다거나 요즘 살이 좀 찐 것 같다는 사소하고 고만고만한 것들이다. 그런데 책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p17)'이라고 예를 들어 8차선 도로를 그냥 건너는 것과 같다고 하자마자 내가 그동안 가졌던 불안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불안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 내게도 불안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중요한 일정이 있다고 생각되는 날 전날에는 잠을 못잔다. 잘자고 좋은 상태로 다음날 일정을 소화해야 된다는 생각에 자야한다는 압박감이 들고, 그럼 잠이 잘 오지 않고, 잠이 안온다는 압박감에 다음날 내 상태에 영향이 미칠 것을 걱정하고, 결국 초조해져서 더 잠이 안오는 것이다. 장시간 산에 오르거나, 고속버스 같은 대중 교통을 이용해야 하거나, 기대되는 영화를 보러갈 때도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어쩌지? 걱정하는 것도 일상의 사소한 불안들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 저자가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는 '잘 먹고 잘 자는 생활리듬(p77)'이 깨지는 불안상태였던 것이다. 왜 나는 불안의 이름조차 몰랐던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소름끼치게 내 이야기야! 라고 공감한 것이 '집에 손님이 오신다(p30)'였다. "예를 들어 집에 손님이 오신다 그러면 불고기 굽고 있는 반찬 차려서 대접하자 이럴 수도 있는데, 손님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고기도 차리고 회도 차리고 반찬도 열개쯤 새로 해서 놓는 거예요. 그러면 준비하다 지쳐버리고 다시는 손님 부르지 말아야지 싶어지죠." 이걸 과잉 반응으로 인한 불안이라고 하는데 정말 집에 누가 오는게 싫은 이유가 청소하다 지쳐서인 나로써는 내 몸이 100의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이 상황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책에서도 MBTI에 대한 얘기(p38)가 나오긴 하지만 그동안 내향적인 면이 있어서 그런가 생각했던 손님싫어 현상에 다른 이유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타인과 어울림에 있어 두드러지는 내향적인 면이나 짜증을 느낄 때면 죄의식이 생기곤 했는데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 단순히 내가 덜 된 사람이라서만이 아니라 " 내 몸이 '너 오늘 여기까지야' 하고 나에게 보내는 위험 신호 p43"였다고 생각하니 불편한 마음이 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보면 예민하고 짜증 많은 사람인 것 같은데 어느 정도는 맞지만 그런 면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 함께 밝혀둔다. 책에서도 " 성격 문제와 같이 고치기 어려운 것으로 생긴 불안이라고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불안은 지금 내 상태에 대해서 내 몸과 마음이 신호를 보내는 것일 뿐입니다. p74" 라니 성격보단 체력 문제인 것으로. 

나이에 따라 불안의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도 인상적인데 중년기에 겪을 불안에 대한 영화배우 안성기 씨의 이야기(p60)가 공감됐다. 늘 주연만 맡아서 들어오던 배역이 어느 순간 조역으로 달라지면서 처음엔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비슷하게도 최근 영화 '서브스턴스'를 보고 그동안 나이듦에 대해 느꼈던 압박과 불안이 떠올랐었다. 여성은 젊고 날씬하고 예뻐야만 한다는 강박을 꿰뚫는 영화인데,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을 덧칠하다 지우는 데미 무어의 모습에서 강렬한 공포와 슬픔을 느꼈다. 인생의 주연에서 조연으로 젊음에서 나이듦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야 하는 요즘이라 이 불안을 '올 게 왔다(p64)'고 인정하고 성숙해질 수 있을지 책을 붙잡고도 한동안 심란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모든 불안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저자도 불안은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정상범위 안에서 잘 관리하는 것(p8)'이라 표현한다. '난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를 통해 내 안의 불안을 인지하고, 조금 낮은 기준으로 불안의 원인을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불안이 다른 것처럼 책을 통해 다른 것들을 얻어가게 될 것이다. 교양 100시리즈는 처음 접하는데 말미에 필사를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 더 마음에 들었다. 짧지만 알찬 도움을 챙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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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국정 노트 - DJ 친필 메모로 읽는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박찬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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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적인 척 정치인들 다 똑같다, 좋은 정치인을 뽑는게 아니라 덜 나쁜놈을 뽑는 것이 선거라고 말했지만 요 몇년간을 보내면서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구나 체감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부작용인가 싶게 선택의 형벌은 모두에게 공평히 찾아왔다. 누군가는 엉망이 된 지난 몇년간을 형벌로써 깨닫지도 못하겠지만 겨울이 길었던만큼 세상이 차고, 앞으로 놓여질 청산의 과제가 여름의 뙤약볕만큼이나 고될 것이다. 뉴스에 곧잘 나오는 국회의 모습, 공약만 번드르하고 버스값조차 모르는 꼴을 보며 정치한다고 나서는 건 자기들 밥그릇이나 챙겨먹는 노릇이라 생각했는데 국정 노트를 읽으면서 이게 바로 정치를 한다는 것이구나 비교하며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넷플릭스 순위나, 음악 차트 같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 컨텐츠들이 세계 순위권에 올라있다. 부끄러운 한국밈 중 하나인 '두유노김치'나 우리가 보기에도 식욕이 떨어지는데 외국인은 오죽할까 싶은 대형비빔밥 만들기 행사 같이 그토록 열심히 했던 헛발질이 어느새 땅에 닿아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문화를 알렸더니 자연스럽게 '두유노'하지 않아도 우리를 알아준다. 그 바탕에는 " '노동력보다 사고와 지식의 힘이 시장을 지배하는 뉴 이코노미 시대가 도래했다'는 앨빈 토플러의 언급을 인용했다. 이어 영화,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음반, 출판 등 분야별로 한국과 세계 시장 규모를 비교하면서, 우리 문화 산업을 확장할 여지가 매우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p48" 문화의 힘을 강조한 정책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좋은 컨텐츠만 만들어내면 일본에서 항상 한국은 국가에서 보조해주니까,하며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깎아내리는 말을 하던데 아마 이 시기를 말하는 듯 하다. 

더불어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해서는 요즘 여러 생각이 든다. 확실히 우려했던 만화, 음악 같은 것들엔 오히려 영향이 덜하지만 술, 여행, 알 수 없는 일본풍 식당이나 술집 같은 것들의 수요가 늘어났다. " 김 대통령이 "최 교수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 최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이미 많이 돌려보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께서도 금서 읽어 보셨죠? 저도 많이 읽었습니다. 금서의 정의는 '금지된 책'이 아니라 '인기 있는 책'입니다. 금서를 없애려면 단속할 게 아니라 그냥 풀어 줘야 합니다. 금서는 풀리는 그 순간부터 인기가 없어져서 사람들이 읽지 않습니다. 일본 대중문화도 똑같다고 봅니다." p53" 금서에 관한 생각은 확실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가치보다 더욱 욕망하게 된다는 시각이 맞지만, 청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있는 와중에 일본문화에 무비판적으로 노출되는 세대들이 많아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 

책에 어쩔 수 없이 탄핵 당한 전 대통령의 행태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노트 내용을 보다가 윤석열이 제1야당 대표와 회담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 내용(p123)을 보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진다. 공교롭게도 또 12.3인 비상계엄과 국제 사회의 위태로운 행보로 박살이 난 경제는 10조원 규모의 추경 필요성을 화두로 올려놓았다. 요즘 쓰레기 파파라치 때문에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데 언론사 세무 조사를 강행(p193)했던 것처럼 장기고액체납자들부터 과거 친일파 부당이득, 재산 환수 등 세수 확보를 위한 현명한 방안을 21대 당선자는 밀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언론사 세무 조사에 있어 추징만 좀 많이 당할 것이란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3개 언론사 사주 구속(p210)까지 굴러간 스노우볼이었단 소회에 웃음이 나왔다. 

전임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특히 다음 대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과의 이야기(p215)가 최근 탄핵된 대통령의 행보와 비교되어 읽혔다. 국민들은 달라고 한 적도 없는 청와대를 돌려주겠다며 아까운 청와대 자리만 날리느라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찾아볼 수도 없는 행태에, 공부하고 시험봐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자리에 서는 것보다 격부터 갖추고 인성을 다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더불어 현재의 교육방식도 뿌리부터 개선되어야 하지 않나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꽤 유명하게 퍼져있는 대통령의 '문패p100' 일화는 이희호 여사와의 로맨스도 일부 함께 알려져 있는데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감탄이 나올만큼 진보된 사고다. 이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보육을 강조한 모성 보호법과 여성의 경제활동 필요성 역설p106'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 뒤로 페미니즘의 움이 트려는 시도 끝에 이에 반발하는 역풍이 불어 갈등이 깊어지고 사회의 분위기는 더욱 경직되어 있으니 앞으로의 인식 개선 또한 멀다. 

각 장의 내용마다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던 국정 노트의 복사본이 그대로 실려있는데 보고 놀랐다. 대부분이 한자로 적혀 있어 곁들인 조사나 어미, 간단한 한자와 간간히 적힌 영어 단어 말고는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나같은 사람은 이 중요한 노트를 대통령이 직접 미리 보여주었대도 아무 소용없었겠구나 싶어졌다. 다행이도 책에는 저자가 독자를 위해 직접 한자 내용을 하고 싶다. 솔직히 책 제목이나 표지를 보면 지루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과 이를 어떻게 타개해나가려 했는지 함께 설명이 되어 있어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왜 여기에 이 돌을 두었는지, 몇 수 앞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는지 시류를 읽어나가는 힘이 마치 바둑 풀이를 보는 느낌이다. 6월을 앞두고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생각을 가다듬으며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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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꽃 - 내 마음을 환히 밝히는 명화 속 꽃 이야기
앵거스 하일랜드.켄드라 윌슨 지음, 안진이 옮김 / 푸른숲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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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읽은 책을 모아서 분류한다. 다른 사람에게 줄 것과 간직할 것. 대부분은 욕심껏 간직하는데 읽으면서 누군가가 떠오르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라고 주거나 혹은 새로 한 권을 사서 선물하기도 한다. 요즘은 책장 빈자리가 위태로워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런 말을 왜 하냐면, '화가들의 꽃'은 책장이 무너져도 간직하고 싶은 책이다. 

 처음 책을 펼쳐보고 책인지 꽃다발인지 모를 화사하고 아름답고 섬세하고 매혹적이고 다채롭고 관능적이고 강렬하고 감각적이며 암튼 좋은 수식어가 와르르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테면 그림도 좋은데 그것도 명화들 중에 더욱이 꽃이라는 주제로 책을 내었다니! 좋은것에 좋은것을 더하면 더더욱 좋기밖에 더하나? 게다가 이 색감을 고스란히 살려내려 작정한 듯한 재질이라니. 푸른숲 정말 무서운 곳이다. 

 요즘 책을 읽을 때 뜻대로 진도가 안나가면 어디든지 들고 다니면서 한줄 읽고 다시 다른 일을 하고 늘 같이 다니려고 해보는데, '화가들의 꽃'은 그냥 좋아서 안고다녔다. 어딜 펼쳐봐도 빤히 들여다보게 되고, 예뻐서 홀리듯이 보고 또 보게 된다. 이런 제가 이상해보이겠지만 정말 책을 한 번이라도 보게 된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게다가 더 마음에 드는 점은 입은 닫고 직접 보여주는 편이 더 강렬하다는 것을 실행하듯 설명은 간결하고 작품은 풍부하다는 것이다. 

 페이지 전체가 작품으로 가득한 곳을 펼쳐놓고 있자면 시각부터 시작된 강렬함이 마음까지 스트로크로 전달된다. 책멍도 가능하다. 레이철 레비 '장미(p96/97)'들을 보고 있자면 향이 진해지다 못해 살짝 단내가 섞인 장미의 향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꽃은 그 자체로 균형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섬세히 그려낸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눈길을 끌지만 스탠리 비엘렌의 '라눙쿨루스(p84/85)'들이나 이본 히친스의 '짙은 색 양귀비(p80/81)'같은 작품을 보면 단순함이 주는 매력도 느껴진다. 

 얼마 전 다녀온 불교박람회에서는 주로 연꽃이나 모란이 그림 속에 등장했는데 마찬가지로 책에서 만나는 연꽃, 모란, 국화등 익숙한 꽃들은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서양 쪽에서는 수선화나 팬지, 백일홍 등의 낯익은 꽃들도 등장하지만 특히 장미와 양귀비가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화가들의 꽃 동양편도 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개나 자수로 표현된 꽃들도 함께 볼 수 있다면 정말 화려하고 예쁠텐데. 

 영화 '콘클라베'를 보며 사람은 오래된 것, 거대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 압도당함을 느꼈는데, '화가들의 꽃'은 아름다움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책이다. 어느 새 만개한 봄꽃들을 보며 봄에 참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지만, 어느 계절인들 또 안 어울릴까 싶다. 봄을 맞아 책장에 시들지 않는 꽃을 간직하고 싶다면 '화가들의 꽃'을 선택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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