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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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 넘어져도 자전거를 배울 수 있다(157) "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귀를 기울여 듣게 되는 책이다. ASMR을 글로 옮겨놓으면 이런 느낌일까. 박솔뫼의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니 들어도 그만 듣지 않아도 그만인 것 같은 아무렇지도 않은 투로 끊임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유려히 늘어놓는 어떤 목소리를 듣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글을 읽는데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니, 묘하다.


 아주 길고 긴 시를 한 편 읽는 것 같기도 한데, 표제작 '우리의 사람들'에서 숲과 숲에 간 친구들과 숲에 가지 않기로 한 친구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자신을 떠올릴 수 없는 나(25)에 대한 문장들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자전거를 잘 탄다(153)'의 내용이었다. 넘어지면서 배우는 것, 심지어 우리는 술자리 게임을 하면서도 마시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하지 않나. 뭐든지 닥치고 깨지고 져봐야 결국 깨우쳐 이길 것이라는 말을 순순하게도 부정한다. 넘어질 것 같으면 이리저리고 피하고 피하다 결국 자전거를 던져 몸만 빠져나와서 까지 넘어지지 않고 배웠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담담한 위로 아니었을까. 굳이 너 자신을 상처입히고 경험이라 위로할 필요 없다고, 넘어지지 않고 이룰 수 있다면 그렇게 성장해도 된다고 얘기해주는 듯 하다.


 아주 오래 전 여의도에서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친구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준 기억이 있다. 손잡이를 잡은 친구가 발을 구르면 뒤에서 중심을 잡아주며 공원을 한두바퀴 돌자 어느새 손을 떼도 혼자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었다. 저마다 빌린 자전거를 쌩쌩타고 이리저리 공원을 누비는 친구들 사이로 자전거를 못 탄다며 애석해했던 그가 혼자 페달을 굴려 자전거를 탔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보였던 웃음이 떠올랐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자처럼 '넘어지지 않고도 배울 수 있음'을 알려주었던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독특한 분위기에 처음엔 조금 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가 우러나오는 책이었다. 부산 사람과 만나다가 부산시장엘 나가야겠다(166)는 싱거운 농담에도 함께 웃어넘길 수 있는 한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친구가 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요즘은 매일이 봄이다. 하루하루가 봄으로 다가가는 날인 것만 같은 때 싱그러움을 담은 푸릇한 표지의 '우리의 사람들'을 들고 밖으로 나가보길 추천한다. 볕 아래서 천천히 읽어보기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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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멘탈을 위한 심리책 - 사소한 일에도 흔들리고 부서지는 당신에게 필요한 마음의 기술
미즈시마 히로코 지음, 전경아 옮김 / 갤리온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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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탈이 강하다고 나이를 먹으면서 흔들릴 일도 충격을 받을 일도 없이 좀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아주 사소한 일이 마음에 박혀 몇번씩 곱씹으며 후회할때가 있다.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다고 머리로는 알아도 이 때, 이 사람에게 이렇게 했어야 했나 만약 그랬다면 어땠을까 후회도 자책도 하게된다. 사람과 아무리 많이 부딪히고 단단해졌다 생각해도 사람 사이의 부딪힘에서 오는 파편은 생각보다 날카롭고 강하다. 한때는 모든 것에서 웅크려보기도 했고, 목이 아프도록 아무 말이나 다 내뱉기도하고, 속으로 속으로 담아두기도 했는데 그 어느 것도 답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다잡아도 불안한 멘탈을 단단히 강화하기 위해서 '유리멘탈을 위한 심리책'을 꺼내들었다. 


 아이들이 넘어졌을때 대처하는 방법으로 들은 이야기가 있다. 넘어진 아이에게 부모가 놀라 달려가서 일으켜 안아주고 걱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덤덤하게 일어나서 더러워진 곳을 털고 다시 뛰어놀으라고 하라는 것이다. 넘어진 아이에게 놀라고 걱정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었을때 울지 않고 아이도 다시 일어나서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부서진 멘탈을 금세 회복하는 방법'을 읽으면서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평범하게 고통을 받아들(31)'이라는 말이 '몸의 충격만이 아니라 마음의 충격에 대해서도' 같게 적용된다는 의미가 잘 이해되었다.


 읽으면서 가장 공감되었던 내용은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면 피곤해진다(105)'의 시작 부분이었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때로 가만히 차 안에 앉아서 그날 하루를 돌이켜볼때 너무 많은 말을 쏟아냈다고 후회하는 날이 있곤 했다. 조금 덜 말할 걸, 이런 말은 괜히 했나,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했던 생각들이 책에 그대로 적혀있었다. 조심하지 못하고 말을 쏟아냈다고 나만 이러는걸까 자책도 했었는데 아마 책에서도 나오는 걸 보니 꼭 나만 이런 후회를 하는 건 아닌가보구나 싶었다. 내가 느끼는 것들이 사실은 그날 하루동안 겪은 상황에서 오는 피로감과 환경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일시적인 후회나 가라앉은 기분이 회복될 것이라는 조언이 인상적이었다.


 날이 점점 풀리니 주변에서 '외로움'에 대한 얘기가 들려온다. 사실 혼자여서도, 또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근본적인 외로움에 대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았을텐데 '연결되어 있지 않(166)'은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책의 말을 오래도록 곱씹어보았다. 메신저로 연락을 하고, 일상의 순간들을 공유하기 위해 SNS를 하고, 밖으로 나가 누군가를 만나고, 자신의 생각을 떠들어대는 행동들이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다시보였다. 그 순간의 연결이 일회성으로 휘발되고 우리 안의 외로움은 해결해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고독력을 기르고 나 자신과 잘 지내는 법을 터득하라는 내용이 어쩌면 가장 중요하겠다 싶었다. 결국 나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는 한걸음 떨어져서 보기 쉬운데 막상 내 일이 되면 작은 것도 커다랗게 보이고,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잘 잡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데, 책의 내용이 정신 건강을 챙기기 위한 비교적 깔끔하고 쉬운 내용들로 조언을 해주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유리멘탈을 위한 심리책'이 제목과는 달리 멘탈의 강약 여부와 상관없이 마음을 다잡고 성숙한 의식과 태도를 가지게 하는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어렵지 않게 가볍게 읽으면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괜찮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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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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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잘 모르는 낯선 동창이 25년만에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 '넌 날 도와주리라 믿'는다, '난 널 잘 안'다고 말하며 가지고 있는 친일파 자료를 공유해달라고 요청한다. 정수기나 장판을 사달라고 해도 불편할텐데 그 이상으로 불안한 시작이다. 곧 전환되는 시점에서도 허동식의 행보는 어딘지 찜찜하다. '곧 알게 될 거(23)'라는 허동식의 말을 최주호가 깨닫게 되었을때, 최주호가 아무것도 모른 채 기이한 음모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이 은밀한 움직임을 예감했으면서도 모른체 했던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강렬한 시작을 안겨주었던 친일파, 인간쓰레기의 청산이라는 내용은 다소 잔인한 면이 있지만 심정적으로는 대리 쾌감을 전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미처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잔재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오죽하면 독립운동을 하면 대대로 형편이 어렵다는 말이 경구처럼 옮겨지고, 친일로 쌓은 부가 그대로 이어져 한국 땅에서 일본 명패를 사용하는 저택에서 살 수 있을까. 노창룡이 끌려 간 장소가 양수리의 폐가가 된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이라는 장소도 상징적이었다. '집행관들'의 매력에 훅 몰입되기에 충분했다.  

 

 그들이 이내 인터넷 영웅이 되었듯이 독자의 입장에서도 자연스럽게 다음 행보를 응원하고 잡히지 않고 직접적인 청산의 행보를 이어가길 바라게 된다. 그것이 과연 옳은 방법일까 생각해보기 전에 사회가 과연 옳은 방법으로 나아가고 있었던가 무게추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친일파에, 부패 정치인, 악덕 기업인들까지 비단 이 일만이 아니라 그동안 뉴스로 접해온 각종 범죄와 사회문제들이 그 경중에 맞지 않는 법의 심판을 받았을때, 우리가 느끼는 불만과 불평등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여가던 요즘이다. 그래서 '집행관들'이 더 재미있고 흥미롭기도 했다.

 

 5장의 숨은그림찾기까지 집행관들과 수사관들 사이의 송곳같은 대립이 이어진다. 쫓고 쫓기는 관계 속에서 긴장이 느껴지는 내용이 이어져 순식간에 읽었다. 무소처럼 뚜벅뚜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6장에 이르러서는 이윽고 이 추적극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 확실한 예감을 하게 된다. 어쩌면 고루하지 않을까 싶었던 정치, 사회, 역사를 키워드를 달고 있는 책이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다산의 신간은 항상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고 만나지만, 충분히 충족되는 시간이었다. 부담없이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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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
나태주 엮음 / &(앤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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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사는게 참 외롭단 생각을 한다. 그럴때는 가만히 타타타의 가사를 떠올린다. 우스운 것 같아도 그 가사가 얼마나 철학적인지. 문득 외로움도 납득하고만다. '바람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오면 비에 젖어' 산다는 가사가 마음을 채워주는데 문득 가사도 시구나 싶었다. 나태주 시인이 엮어낸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의 책머리에도 그런 말이 있다. '시가 사람을 살리는 좋은 약이라는 믿음을 나는 한순간도 놓아본 적이 없(6)'다는 고백이다. 노래 가사에 위로받는 것처럼 시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위로해줄 것이다.

 

 시 옆에 나태주 시인이 붙여둔 짧은 글들이 안정감을 준다. 아마 오롯이 시만 120편 소개되어 있었다면 다소 밋밋했을지도 모르지만, 옆에 놓여진 시인의 글귀를 함께 읽으니 훨씬 풍요로운 감상이 가능하다. 그냥 읽고 넘길 수 있는 시도 자신의 감상을 좀 더 확장할 수 있고, 때로는 이리저리 한정없이 퍼져나가는 감상을 갈무리하도록 돕기도 한다. 시집 '풀잎'의 서문(57)을 옮기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함께 소개하기도 하고, 폴 베를렌의 시(174) 옆에는 어떤 상황에서 쓰여진 시인지 덧붙여 정보를 주기도 한다.


 가장 인상깊었던 시는 아우구스트 슈트람의 '해 질 무렵'(166) 이라는 시였다. 유명한 시인과 시들 사이에서 처음 들어보는 시인의 처음 보는 시였는데, 공간의 모든 감각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말없이 나를 '이상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너의 존재까지 따뜻하고 말랑한 느낌을 주는 시였다. 마침 데미안을 막 읽어낸 뒤에 시집에서도 헤르만 헤세의 시를 만나니 반가웠다. '어머니께(20)'라는 시나 '들을 지나서(232)'는 문득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의 느낌을 준다. 우리는 때로 객지에서도 혹 자신의 집 방 안에서도 집으로 돌아가고픈 느낌을 받는다. 내 방 천장이 아득히 낯설어질 때 왜 그런 느낌이 들까 싶었는데, 이 깊고 오래된 홀로됨을 어쩌면 어머니의 옆에서 치유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 가을 국내 명시 114편을 엮어낸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이후로 나태주 시인이 엮은 해외 명시들을 만나니 또 새로웠다. 다음에는 나태주 시인과 함께 또 어떤 시들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도 된다. 다가오는 봄과 어울리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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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BTS 앨범의 콘셉트 소설 그리고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헤르만 헤세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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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미안을 왜 지금껏 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이런 고전들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온 이유가 있기 때문에 보장된 작품이지만 웬만해서는 책을 읽자고 마음먹게 되지 않기도 한다. 그동안 생각은 있었지만 딱히 계기가 없었던터라 읽지 못하고 있던 데미안을 스타북스의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방송 스페셜 에디션 출간을 계기로 읽게 되었다. 읽는 기간을 다른 책들에 비해 오래걸렸지만 들인 시간만큼의 재미도 충분했다.

 

 " '데미안을 잊어버렸어?'(84) "

 

 데미안이라는 인물의 매력이 드러나기 시작한 부분이었다. 표현이 섬세하고 유려한 문장들 속에서 유약하고 어린 내가 주위 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간교한 주변 인물들의 행동을 간접적으로 유추해보는 것도 꽤 즐거운 과정이었다. 알 수 없는 경로로 프란츠 크로머에게서 벗어난 싱클레어가 "교실의 양로원을 연상케 하는 퀴퀴한 공기 속에서 그의 목덜미 근처에서 풍겨오는 향기로은 비누냄새를 아주 기쁜 마음으로 들이마(101)"시게 되면서부터 한층 성숙된, 새로운 근심이 찾아오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데미안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가 싶을 때 찾아온 에바 부인과의 만남은 불안하면서도 묘했다. 데미안과 에바 부인은 모자의 관계이면서 마치 둘로 나뉘어진 한 사람인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데, 싱클레어가 그 둘에게 함께 끌리면서 '부르는 방법'을 썼다는 부분은 어딘지 모르게 기묘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갑자기 들려온 전쟁 소식과 함께 마무리 지어진 내용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뒷이야기가 더 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끝나버린 이야기의 아쉬움을 덧붙여진 옮긴이의 후기와 100편의 시로 달랬다. 스타북스의 데미안이 특별한 이유도 100선의 시가 함께 담겨 있다는 점이 컸다. 100편의 시가 데미안의 내용으로 고양된 감성을 증폭시켜주는 감상이 되었다.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면서 지드의 '좁은문'을 떠올리는 순간이 많았다. 성장의 시기를 다루는, 영향이 깊은 누군가가 인생에 새겨지게 되면서 그에 빗대어 자신도 완성해나가는 화자의 시점이 비슷하다고 여겨졌다. 실제로 글의 맨 초반 '인간의 생애란 각자가 자기 자신이 지향한 바에 도달하기 위한 길,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길인 것이다.(13)'고 하는 부분에서부터 '좁은문'을 떠올렸었다. 데미안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은 독자라면 지드의 좁은문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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