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지막 말들
박희병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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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겹게 읽어나갔다. 한 생명이 스러지는 과정은, 그것도 누군가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과정을 적어놓은 글을 읽는다는 것을 생각보다 만만히 봤다고 생각했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고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라 이 글을 읽는데에도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제 밤 지인의 부친상 부고를 듣고 어제 저녁 장례식장엘 다녀왔다. 책을 읽는 동안, 장례식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한숨과도 같은 짙은 무거움이 마음에 하나씩 깔렸다. 준비한다고 더 나아질 것도 없지만 이별에 대해서는 아직 너무나 아무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

 

 책의 각 꼭지마다 저자의 어머니가 남긴 말들을 옮겨놓은 것으로 시작하는데 사투리가 참 투박하고 정겹다. 언저 어떤 상황에서 그 말을 하셨는지 때로는 짧게 때로는 자세하게 살을 붙여 놓은 글을 보면서 간병을 하며 육체적으로도 지치지만 심리적인 부담과 우울감도 컸을텐데 꼼꼼하고 세심하게 기록해놓았구나 싶었다. 전에는 나는 왜 이렇게 기록해 남겨놓는 것을 못했지 싶은 생각을 했는데, 이제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서 잘 생각나지 않는 일들을 되짚어보다 말 적에는 가끔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괴로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을 자세히 기록해놨었다면 아마 잊혀질때쯤 다시 꺼내보고는 또 그대로 간직하고 몇번이나 곱씹어봤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안에 있는 것들 때문에 아주 많이 멈췄고 또 깊이 슬퍼졌다. 그래서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해야할지 모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 어떤 사람들이 혹은 어떤 상황에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곤 하는데 내가 너무 힘겹게 읽은 탓에 권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절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66번째 말에서는 '그동안 모친이 자녀들을 위해 연등을 달아 복을 빌었는데 이제 자식들이 모친을 위해 복을 빌어야겠다'는 스님의 말을 보고는 어느 절에선가 내 이름을 달고 불을 밝혔을 연등과 초, 엄마가 드렸을 수많은 절들이 떠올랐다. 딱히 종교가 없는 나지만 나를 위해 기도하는 정성이 있다는 사실이 가끔 나를 안심케하는 뒷배가 되었었다. 언제고 어느 날 산에 올랐다 절에 들리게 되는 날이면 이번에는 내가 가족들을 위해 초를 하나 올려야겠단 생각을 했다.  

 

 사람은 언젠가 늙고 죽는다. 나와 가까운 이의 죽음에 대해서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나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그 때가 온다면 누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줄까, 모르겠다. 어쩌면 그때쯤이면 보호자가 필요하지 않을수도 있겠다. 로봇이 그 역할을 대신 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모양으로 소망해본다. 자신의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기 힘든 환자 대신 보호자가 환자의 상황과 앞으로의 치료에 대해 결정하기도 한다는데 그 역할을 해줄만한 사람이 먼훗날-이기를 바랄 그때에- 내게도 있을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나의 마지막 날들을 기억하고 기록해줄만한 사람은 더더욱 없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말들도 사랑이지만 이 말들을 옮겨 써내려간 과정도 사랑이었다. 이제 자신이 원하는 죽음의 방식을 생각해나가야겠다는 문장을 끝으로 책을 덮으면서 불확실한 그 미래를 조금은 길게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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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천예진 2020-11-17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순간부터 엄마.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시기가 있는가봅니다. 누구나 피해갈수 없는게 죽음이라고도 하지만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운것 같아요.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2020-11-18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밥을 짓읍니다
박정윤 지음 / 책과강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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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이렇게 추워지기 전 어느날이었다. 그날 오후는 유난히도 한가해서 대충 청소를 끝마친 거실 쇼파에 앉아서 환기를 하려고 열어둔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찬 바람을 쐬며 시간이 천천히 저녁으로 옮겨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녁보다는 조금 이른 시간, 갑자기 바람에 어느 집일지 모를 곳의 저녁 반찬 냄새가 섞여들어왔다. 별다를 것 없는 기름 냄새와 나물 양념 냄새같은 것들을 번갈아 맡으면서 문득 이상한 향수가 느껴졌다. 가정의 저녁 식사 준비 냄새라는 것을 내가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게 갑자기 그리워졌다. '밥을 짓읍니다' 도 그런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거나 채워줄 책이 아닐까 싶었다.

 

 누구나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날에 당신이 선택할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늘 먹었던 가정의 밥상이나 아주 고가의 맛있었던 음식을 꼽기도 하고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균일한 맛을 낸다는 체인점의 메뉴를 꼽기도 한다. 누군가의 선택은 공감이 될테고, 또 안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각기 다른 선택에는 각기 다른 취향과 이유가 있다. 음식은 우리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몫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 그에 얽힌 이야기와 취향을 가지고 있을테다. 개인적으로 음식을 아주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탓에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거기다 요리법도 함께 소개하고 있는 이 에세이를 꼭 읽어보고 싶었다.

 

 소소한 삶이 고스란히 담긴 글을 읽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내 인생의 음식들에 대해 떠올려보게 되었다. 우선, 커피. 첫 직장에서 피곤함과 업무 피로가 쌓일 때마다 마시던 것이 시도때도 없이 네개의 샷이 들어가는 가장 큰 사이즈의 아메리카노에 샷을 더 추가한 독한 커피를 물 대신 들이켜게 될 정도가 되어버렸다. 속을 버리는 줄도 모르고 살려고 마셨던 커피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보답을 해주고 싶을 때는 커피를 사주었고, 지나가는 말로 나에게선 항상 커피 냄새가 난다고까지 했다. 결국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건강과 정신적 피로로 첫직장을 그만두었는데 그것도 십년쯤 전이다. 얼마전 오랜 친구를 만나서 커피를 마시려는데 그애가 갑자기 벤티에 샷추가 좋아하지 않았냐고 물어와 오래 전 취향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에 놀라며 옛 기억이 떠올랐었다.

 

 커피에 별로 안 좋았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커피를 좋아하고, 그 시절 직장에서 어렵게 생각했던 선배와 커피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두고 친밀한 대화를 나눴던 일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따로 대화를 해본 적도 없고 서로 뭔가를 나눌 연결고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날 선배는 공들여 드립커피를 내리며 회사에 구비된 원두를 이용해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커피를 내리는 법을 설명해주고 열심히 내린 그 커피를 나누어주었다. 그 커피는 같은 원두로 내가 내렸던 것보다 놀랄만큼 더 맛있었고, 그날 그 선배를 처음으로 제대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가끔 커피를 내려 마실때면 조금은 희미해진 기억으로 그날 그 선배를 떠올린다.    

 

 별 이야기 아니지만 이런 사소함이 누구에게나 하나씩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도 하고, 요리법을 참고 하기 위해 따로 옮겨적어 보며 맛있는 독서를 하기 바란다. 더불어 자신의 음식과 이야기도 떠올려본다면 더더욱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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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라면 - 완전하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행복의 가능성들
성진환.오지은 지음 / 수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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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나서야 확실하게 알았지만, 표지에 나와있는 작고 귀여운 까만 강아지를 이전에 본 적 있었다. 흑당이라는 이름과 까맣고 윤기나는 털이 인상적인 강아지였다. '괜찮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라면'이 흑당이네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면 더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받아들었을거다. 물론 새로운 책은 항상 반갑지만. 이 가족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귀여운 흑당이를 자랑하는 것? 그들 인생에 벌어진 "꿀 같은 일"은 뭘까?

 

 처음부터 약간 삐걱거렸다. 보통의 에세이들은 내가 남들과 달라보이겠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아,라는 뭐랄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편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난 달라. 이건 좋고, 이건 싫어, 내 생각은 이래.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건 이게 나야. 하는 모습이었다. 그게 적대적이란 건 아니지만 가끔 자기자신이 강렬한 사람을 만나면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괜찮을까 이 삶을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서 이 다름의 폭이 꽤 크게 느껴졌었다. 좋아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행동력이나 홍대에서의 생활 같은 것들. 행복의 가능성, 살면서 만나게 되는 의외성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만 나랑 비교를 했다. 경기도에 사니까 홍대에 가면 항상 집으로 돌아가는 막차 시간 같은 걸 생각하게 됐었고, 첫차가 지나갈 시간동안 24시간 하는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에서 지루하고 긴 새벽을 보내야만 했던 일을 떠올렸다.

 

 자꾸 나와 다른 점만 찾게 됐던, 맞지 않을 것 같았던 책과는 흑당이가 등장하면서 달라졌다. 그애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하나의 점에서 서로 이어진 두 사람이 삼각형으로 바뀌면서 이들이 둥글어진 것일까 아니면 흑당이를 통해 나와의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에 좀 더 긍정하게 된걸까. 더불어 꼬마의 합류로 그들이 말하는 행복의 모양에 대해서 깨달았다. 이전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책을 내려놓고는 마지막에는 어쩐지 안심했다.   

 

 앞으로 흑당이의 사진을 보게 되면 더욱 반가울 것 같다.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지만, 실례되지 않게 내적으로 인사를 건네게 될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비슷한 시간의 흐름으로 살고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비교도 하곤 했다. 각자의 마음에 드는 작고 반짝이는 돌을 행복이란 이름으로 주워모으고 있을 뿐이지만, 다른 사람의 돌이 가끔은 더 좋아보일때도 있으니까. 예쁜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었다.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읽어봐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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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고민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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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와 길을 잃은 것 같다, 연애.

 아, 연애...... 어떻게 하는 거였지? (53) "

 

 지금와서 연애얘길하면 조금 멋쩍은 시절이 되었다. 예전에는 어르신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배우자분께 사랑한다고 한마디 해주세요', 하는 요청에 '사랑은 무슨' 이라며 손사래치는 모습이 잘 이해가 안됐는데 요즘은 조금 알 것도 같아졌다. 사랑에 빠져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 '맞아맞아' 하기보다는 '그게 뭐 대수라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지금 이 사람, 이 감정, 이 순간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도 지나고보면 또 그게 전부는 아니었구나 할 수 있어지기도 한다고 알게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만큼의 열정이 얼마쯤은 소진되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고민정의 '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를 읽으면서 가장 눈에 박힌 문장이 바로 저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감성이 좀 바삭바삭해진 것 같아 수분 한 껏 머금은 누군가의 문장들로 촉촉하게 만들어볼까 싶은 생각이었다. 감성 충전, 이라는 말이 책으로 옮겨진다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어쩐지 길어진 어스름이 마음에 걸리고, 차가운 바람이 몸이 아니라 마음까지 불어오는 것만 같은 계절에 외로움 쓸쓸함 따위의 마음들에게서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제목도 표지도 그렇고 싸늘해지는 가을날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가볍게 읽어볼 생각으로 시작했고, 감성에 젖은 소소한 문장들을 비는 시간에 틈틈히 조금씩 읽어나갔다. 그런데 저 문장을 마주하고 갑자기 내가 사랑이나 연애를 혹시 잃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였지?'

 

 사실 저자가 참여한 '연애의 참견'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악명을 가끔 본 적이 있어서, 그런 사연들 속에서 헤쳐나온 사람이 꺼내드는 사랑이란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궁금했다. 이런데도 고민하고 있단 말이야? 또 사랑을 하고 싶단 말이야? 그게 왜 가능하지? 같은 의문을 던져주는 사랑의 연약함이나 부질없음을 말하는 프로그램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작가는 그 안에서 사랑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니 의외였다. 오히려 사랑이나 연애라고 하는 것들을 피해서 돌아가고 싶어질 것 같은데도. 저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만이 나를 평온하게 만들어주었다고 말한다. 그 '사랑'이란 것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을 찬찬히 읽으니 어떤 구석은 쓸쓸해도 전체적으로 마음이 한층 몽글몽글 부드러워지는 것도 같다.

 

 처음 받아들고 한번 책을 훑어보았을때, 이미나 작가의 '그 남자 그 여자'가 떠올랐다. 옛날 사람이라 그렇다. 아마 나와 같은 옛날 사람들은 2000년대 초반쯤을 관통했던 그 책을 기억할 것이다. '이소라의 음악도시' 라디오도 같이 떠올리겠지. 아무리도 '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의 저자도 작가이다보니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다면 고전급인 '그 남자 그 여자'도 찾아보면 취향에 맞을 것 같다. 반대로 그 시절 그 책을 읽었던 독자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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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
마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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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마음에 든 책은 아니다. 젊은 작가라고 하기 좀 그렇지만, 대략 동시대를 살아온 작가들 사이에서 흔히 보이는 성장팔이 글이라 생각했다. 초반에는 가끔 보이는 독특한 수식들도 툭툭 거슬리게 눈에 들어왔다. 착 붙는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읽다 도드라지는데 굳이 이런 표현을 썼을까, 이런 마음으로 까칠하게 읽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을 뭐 대단히 풍요롭게 보낸 것이 아니라면 다들 조금씩은 공감할 법한 과거들이 나온다. 사람 사는것도 다 똑같고 정도는 달라도 비슷비슷한 것들을 느끼며 살겠지.

 

 초반내용은 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려다 실패했나 싶게 먹먹한 내용들이 있다. 딱히 어렵게 자랐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남들이 봐도 평범하다 할 만하게 컸지만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구석이 있다. 아주 어릴 적에는 몰라도 크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얼룩들이 있다. 거기에 새겨진 무늬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얼룩이었던 것들, 작고 희미해서 신경쓰이는데도 얼룩인지 몰랐던 것들, 어쩌다 받은 용돈으로 슈퍼에 가서 과자를 고를때 상자에 든 것보다 봉지과자를 고르게 되는 선택이나, 무한리필 집에 배부르고 만족했던 입맛, 제한된 취향 같은 것들을 꽤 솔직하게 드러냈다.

 

 자꾸만 먹는 부분을 집어내서 그렇지만, 외식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는 부분의 경험이 아주 비슷했다. 저자가 자신과 가족들이 겪은 변화를 풀어내며 무엇이 변하게 된 것인지 되짚는 부분까지 공감했다. 개인적으로 최근에는 거기서 더 나가 새로운 굴절을 느끼고 있는데, 괜찮은 식당에 방문하면서 생긴 씁쓸함이었다. 한끼에 십여만원 이상하는 음식점을 다녀오고 나면 그게 일상처럼 유지될 수 없다는 현실이 문득 마음을 잡아챈다. 그전에도 분명 더 좋고 나은 새로운 경험으로 나를 이끌었을텐데, 그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이상하게 더 박탈감이 든다. 누군가에겐 일상이라는 점 때문일까, '앞으로'에 대한 기대가 갈수록 적어져서 그런걸까.

 

 계속해서 이렇게 씁쓸한 얘기만 나오는 건 아니다. 야동왕과의 첫키스 추억은 읽는 내가 민망할정도로 솔직하고 웃기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처절한 내용은 제일 재밌게 읽으면서도 읽기가 괴롭다. 요즘 흔히 말하는 공감성수치때문인가. 쌍커풀 수술에 대한 내용도 공감이 많이 됐다. 한참 성형에 대해 말이 많을적에 수술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며 억울해했던 저자와 달리 나는 수술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한쪽에 백만원씩 이백이나 들여서 했다고 거짓말을 하곤 했다. 우스운 것은 대부분 했다고 하면 도리어 멈칫하며 안한거 같은데,하고 물러선다. 곤란하게 만들거나 놀리려고 했다가 당당하게 말하니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얼굴에 보이곤 했다.

 

 굳이 수술여부를 면전에서 물어보는 심보에 맞서 수술 맞다고 대답해주었다가, 나중에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내가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가 맞네 아니네 자기들끼리 입씨름하기도 하고, 도리어 안했는데 왜 했다고 소문내고 다니냐고 면박을 당하고 오는 일도 있었다. 왜 거짓말을 했냐고 따지는 사람에게 내가 수술했다고 뒷말하고 다닌거냐고 물어보면 입을 다물었다. 무례하거나 뒷말하는 사람도 거르고 나름 속시원하게 멕이는 방법이었긴 했는데 이래서 예전에 알던 사람들 중 일부는 수술한거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거라는게 문득 생각났다. 뭐 어떠랴.

 

 큰 기대없이 읽었지만 끝까지 재미있게 읽혀져서 만족스럽게 마지막 장을 덮었다. 책을 읽다가 아 친구가 이 책을 읽으면 재밌다고 생각하겠다 싶어졌다. 가을이니까 마땅히 책을 한 권 선물해야지 마음먹었다. 그리고 저자도 책을 통해 웹툰 미리보기 200원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으시길,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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