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히말라야 씨
스티븐 얼터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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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작점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과거의 그에게 일어났던 매우 불운했던 어느 날의 한 지점을 내밀하면서도 관조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가 그날에 겪었던 일이 실재적이지 않게 느껴질만큼 비현실적인 폭력성이 드러났기도 하며, 그의 기억 속에서도 채 다 끼워맞춰지지 않은 부분들이 전달된 상태로 재구성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때문에 그와 그의 아내가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던 그날의 일을 읽으며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한무리의 괴한들에게 불시에 습격당한 노부부가 나오던 장면, 그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폭행을 당하던 무차별적이고 가학적이었던 씬을 떠올리며 저자에게 일어났을 고통을 짐작해봤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욱 가혹했을 것이다. 그곳엔 어떤 연출도 의도도 없이 오롯이 살의에 찬 끔찍한 폭력이 날 것으로 그의 생명을 위협했을테니.

 

 "악을 대면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도 악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마냥 편치는 않다. 그날 우리를 공격한 놈들이 사악한 인간들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인데도 말이다. 종교나 철학적 맥락 안에서 벌어지는 모호한 윤리 논쟁과는 달리, 내가 경험한 악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악귀의 빙의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실재하고 현존하는 악이었다. 나를 짓누르고 질식시키려 했던 인간은 사악한 존재다. 아미타를 사정없이 발로 차고 칼로 찌른 녀석들도 똑같이 사악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기도 하다.  59-60p"

 

 폭행을 당한다는 것이 단지 신체적인 상처만으로 그친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아주 큰 확률로 피해자의 정신- 심리적인 부분도 손상시킨다. 몇 번이고 자신이 노출되었던 당혹스럽고 무자비했던 야만적인 순간을 되새기며 그때 나는 어떻게 대처했던가, 혹은 이렇게 행동했다면 좋았을 걸, 아니면 그때 만약 내가 이랬더라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텐데 하고 자책이나 후회와 비슷한 감정을 곱씹는다. 무엇이 되었든 폭력을 휘두른 자의 잘못이고 야만인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자기 자신을 검열하고 비슷한 공간이나 분위기가 느껴지는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긴장하고 패닉하게 된다. 비참한 일이다. 그들도 그랬다.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뒤로 그는 산을 오른다. 처음에는 근처의 낮은 산책로부터 시작했다. 전에 가볍게 오가던 길을 지팡이를 구해 짚고 힘겹게 오르면서, 그래도 이 길을 다 걸어내면 자신 안에서도 뭔가 새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을 갖는다. 

 

 그가 산을 오르려 하는 것과 많은 사람들이 삶의 어떤 시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길을 걷는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매우 유사하게 느껴졌다. 읽는 내내 나에게 처음으로 길을 걷는 사람들과, "순례길"이란 것을 알려주었던 책이 떠올랐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은 두 여자의 이야기였는데 약 십년쯤 전에 처음 읽고 나름의 놀라움을 담아 단단히 기억해두었었다. 순례길에 대한 글들을 읽어보면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저 종교적인 신념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길고 긴 길을 며칠동안이나 묵묵히 자신의 두발로 걷다보면 그 안에서 혹은 길 위에서, 걸어낸 자들은 무언가를 얻어왔다. 걷고 걸었을 뿐인데도 그 안에서 무언갈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 히말라야를 오른다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저 가장 높은 고지에 다다르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는 산과 교감하고 자신안에 있던 감정과 상념의 찌끄러기들을 때때로 정리하고 환기시키기를 반복한다.

 

 "성스러운 산에 닿기 위해 여행하는 우리 같은 순례자들이 밟는 길들은 이 세상 너머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땅, 마법의 비기와 무시무시한 장애물, 대답 없는 질문들을 품은 신비로운 땅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나 이런 여정에서 경험하는 고난과 의구심을 통해 우리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다다른다. 진정한 순례는 얼마나 먼 길을 걸었는가 혹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가가 아니라 오직 마음이 가리키는 길을 걸었는가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242-243p"

 

 처음엔 산의 꼭대를 향해 오르거나, 길의 끝까지 걷겠다는 목표가 나를 '무언가'로 만들어주거나, 변화시켜 줄 것만 같다고 여기며 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그들은 길 위에서 깨닫는다. 혹은 가장 높은 봉우리 위에서, 그들이 바라본 꼭지점이 무언가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발로 디뎌낸 땅이 버텨낸 중력이 주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마주한 자기 자신이 그 이전의 나와 후의 나를 구분토록 만드는 것이라고. 길을 떠나고 싶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상처받았든 무기력하든 혹은 지금이 아니면 더는 기회가 없을 것 같든 무엇이든 이유를 붙여서 걷다가, 왜 걷고싶었는지라도 깨닫고 싶어진다. 읽다가 문득 나는 아미타가 걱정되었다. 그가 산을 오르는 동안 또 다른 피해자인 그녀는 어떤 식으로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였을까, 하고. 히말라야와 그가 걸었던 길들이 그를 치유하고 성장시켜 주었다면, 그녀에게도 자신만의 히말라야가 존재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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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 - 16년차 부장검사가 쓴 법과 정의, 그 경계의 기록
안종오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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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사라고 하면 실생활에서 직접 마주하기는 어려운데 드라마나 영화 속에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인물이라는 이미지 뿐이다. 보통은 정치, 경제권에 연결되어 있는 부패한 모습이나, 정의롭지만 폭력적이고 자신의 직업을 앞세워 다른 사람들에게 고압적이거나 하는 모습이 다반사다. 그런데 저자 안종오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일상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의 직업을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거나 하는 등의 보통의 아저씨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면면을 느끼게 만든다. 어떤 부분에서는 다소 글 분위기가 올드한 감수성에 충만해지기도 한다. 자기 자신에게 남기는 짧은 위로의 말 같은 것을 남기다던지, 하는.

 

 글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다뤘던 사건들이 어땠는지 보다, 일을 하면서 지친 자신의 마음을 글을 씀으로써 달래고 위안을 받았다는 부분에서 놀랍고 또 대단하게 여겨졌다. 생활과 일을 바쁘게 오가는 와중에 이런식으로 글을 써서 기록을 남기는 일이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앞서 '올드한 감수성'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저자가 투박하고 솔직한 자신의 감성을 가감없이 드러냈다는 부분도 좋았다. 벽이 느껴지지 않아 마치 서로 좀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무슨 일 있으면 안종오 검사 같은 검사에게 상담받고 도움을 청하고 싶다는 생각이들게.

 

 더불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 역시 어떤 영향을 주고 또 받으며 지낼텐데,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구나 싶어졌다. 저자만큼 인생의 기로에 서있는 위태롭고 절박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작은 배려나 관심이 한 사람의 태도를 바꾸고 인생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고 나니 사람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의 중요성에 대해 재고해보게 된다. 적어도 남의 하루에 웃음 한 번 더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싶어졌다. 따뜻한 글이었다.

 

 짧은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고 직업적인 전문적은 내용은 적어 읽기 편하고 재미있었다. 종합적인 감상은 다소 전형적인 분위기로 진행되었다는 것. 의사, 변호사, 수사관, 교사 또는 상담사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직업적으로 겪었던 일들에 대해 풀어내는 책을 썼을때 그 책들이 갖게되는 구성과 분위기가 있는 줄 의식하지 못했는데 문득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를 읽다보니 느껴졌다. 처음엔 강력 범죄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뭔가 자극적인 소재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사람 냄새나는 소재들을 주로 다룬 상당히 평이한 분위기다. 가볍게 읽어보기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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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으로부터 - 감히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오스카 와일드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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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연으로부터'는 오스카 와일드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쓴 편지를 묶은 책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아마도 동화로 더 익숙하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지만,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쓴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당시 작가로 화려하고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사교계에 이름 난 인물이었으나 이 편지의 수신인이 되는 앨프레드 더글러스와의 동성애 관계로 풍기문란 죄목의 소송에 패소하여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간단히 설명하였지만 책 안에 '옮긴이의 말'부터 영향력있으며 능력있던 주요 인사로서의 풍족한 생활을 누리던 그가 한순간에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고 죄인이 되어버린 몰락이 어떤 배경에 기인했는가 꽤 자세하게 나와 있다.

 

 최근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몰입하여 읽었던 것 같다. 사실 모든 책들이 눈길을 끄는 순간"들을 가졌었지만, '심연으로부터'는 사무쳐서 마음으로 들어오는 면이 있었다. 고통에 싸인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상황에서 조차 버릴 수 없었던 미문으로 써내려간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안에 담아두었던 자잘한 상처들이 다시금 날을 세워 올라오는 기분이 든다. 특히나 문장과 표현들이 쉽게 말하자면 타인을 원망하는 말들을 늘어놓고 있음에도 경솔하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들이 당신한테는 몹시 관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치 크리스털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바라보듯 당신에게 삶의 기이하고 비극적인 형태들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게 한 걸 보면. 당신은 쳐다보기만 해도 사람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메두사의 머리도 거울을 통해서만 보도록 허락받았고 말이지. 당신을 꽃들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 수 있지. 하지만 나는 색채와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세상을 모두 빼앗겨버렸어. / 이 편지에서 난 먼저 당신한테 나 자신을 엄청나게 자책하고 있다는 이야기부터 하려고 해. 불명예와 파산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했던 나는 지금 죄수복을 입고 이곳 컴컴한 감방에 앉아서 나 자신을 탓하고 있어. 잠을 설치고 혼란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밤에도, 고통만이 단조롭고 길게 이어지는 낮에도 나는 나 자신을 자책하고 있어. 비지성적인 우정, 그 첫번째 목적이 아름다운 것들의 창조와 관조가 아닌 우정이 내 삶을 전적으로 지배하도록 내버려둔 나 자신을 탓하는 거야." 이처럼 사실 그대로의 상황에 대해서 썼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요소들과 솔직하게 후회와 자책, 원망을 드러내면서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수식들이 매력적이었다.

 

 관심이 가는 책을 읽고 싶을 때면 읽어보고 난 뒤에 정말 마음에 들면 그 책을 사야겠단 생각 때문에 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편이다. -다른 어떤 물건을 살 때도 써보고 결정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책에 대해 인색하기 때문인지 책만큼 경험해볼 수 있는 바탕이 잘 마련되어 있는 것이 없어서인지 모를 일이다.- '심연으로부터'도 마찬가지 였는데,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바로 읽기 시작한 다음날 구매를 했다. 우리는 살면서 때로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일들을 겪지 않는가. 그것이 특히나 인간관계와 같은 문제와 맞닿아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며 깊이 공감하게 될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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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힘 -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경식 지음, 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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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들어서 한달에 한 권 정도는 시집을 읽자고 생각한 뒤로 그 결심을 따라 시를 읽은 때도 있고, 사실 그저 지나보낸 달도 있었다. 시를 읽어야 겠다고 한 뒤로 읽기 전엔 어떻게 읽어야 할까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막상 책장을 마주하고 보니 읽는 것이야 어떻게든 될 것이지만,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에 대한 어려움이 컸다. 때문에 현암사로부터 저자 서경식의 신간 '시의 힘' 출간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에 이런 부분에 대한 도움을 얻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제목만 보고 오해하여 읽기를 결심하게 된 사정이 있다. 읽기를 희망하시는 다른 분들은 혹여나 이런 과정이 없길 바라며, 읽게 된 계기를 밝힌다. 다소 어려운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의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책을 한 번 읽어보자고 낸 용기는

 

대표적 재일조선인 문필가 서경식의 첫 문학 에세이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본 ‘시’와 ‘문학’의 초월성

 

라는 문구에 주의를 크게 기울이지 않고 단순히 '시'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을 것이라 여겼던 단순함과 무지의 탓이 크다. '에세이'이고 '디아스포라' 문학에 속할 뿐더러 '시'와 '문학'의 어떤 초월성을 이야기 할 것인가를 읽기 전에는 주의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했던 '시'에 관한 이론적 접근이나 정리가 되어 있지는 않았어도 여러모로 흥미롭거나 공감되는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덧붙여, 예상했던 내용과는 달랐지만 읽다보면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확고한 시각으로 목소리를 내는 저자의 입장에 공감하게 되는 바도 많고 남다른 개인사의 조각들을 보며 재미있게 완독할 수 있었다.

 

 본문의 내용은 구분해놓은 단락에 따라 크게 개인적인 성장과정을 다룬 2장과 시를 소개하며 바라보는 강점기, 그리고 그 이후의 민주화운동 시절에 대한 내용이 있는 3장. 후쿠시마 사태를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접근하여 평한 6-7장 등이 있다.

 

 사실 저자의 개인사를 담은 2장의 내용은 그 굴곡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크게 흥미를 당기는 부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부분의 내용이 집중적이고도 필수적으로 읽혔어야 하는 까닭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입장이다. 재일교포로 자라온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리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그 갈등이 적확하게 드러난 부분이 고등학교 시절에 쓴 글이었는데, [그런데 아마도 이 책자는 나의 마지막 시집이 될 것이다. 나에겐 일본어로 '고향'을 쓴다는 것의 한계가 보이고, 모국어로 쓰기엔 난 너무 '일본인'이니.] 하는 부분이었다. 그 양측 어딘가를 오가면서 자신의 근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에 대한 입장조차도 정리하지 못했으나, 글에서처럼의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기에는 지나치게 연연하고 있는 뉘앙스를 풍긴다. '시의 힘'은 그 자신의 거칠었던 부분까지도 담아놓고 고스란히 목도할 수 있도록 함에 따라 천천히 '디아스포라'를 바라보고 디아스포라 '문학'이 어떤 면모를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 이해하도록 해준다.

 

 읽으면서 꽤 여러 부분에 표시를 남겨두었는데,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문학평론가인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언급이 나온 부분도 꽤 흥미로웠다. ('평행과 역설'을 아직까지도 다 읽지 못한 채 어렵게 이어가고 있는 터라) 저자가 읽어 낸 사이드의 '펜과 칼' 의 단락을 눈으로 따르며 이해에 도움을 받은 부분도 있었다. 거기에 4장에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나온 나쓰메 소세키와 이시카와 다쿠보쿠에 관한 대조 부분도 그동안 출판사 현암사를 통한 소세키 전집 읽기를 하며 친숙해진 작가에 대한 언급이 된 부분이라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웠다. 그동안 소세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관통'하는 주제 의식과 인간에 대한 공감대가 발견되는 부분에 많이 집중했는데 그의 작품들이 일본 독자로 하여금 '국민 의식'을 형성하도록 하는데 기여 바가 크다는 내용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경중은 다르다 해도 '목격자'의 입장에서 살아가고 싶은 것에 대한 내용인데, 저자의 경우는 시대적 '증인'의 입장에서 방관하지 않고 그것을 '목격'하여 제 입과 존재로 '증거'가 될 수 있는 존재로서의 '목격자'를 말한다. 앞서 옮겨적었던 시인의 고등학교 시절의 글에서도 그 '목격자'에 대한 내용이 나와있기도 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어떤 강렬한 사건이 생겨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문제가 발생할 때, 종종 그 사건의 순간을 살았던 '목격자'가 될 수 있음에 대한 의식을 할 때가 있어서 일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마치 911 테러의 순간을 티비로 봤던 그 날의 생생한 충격이나, 세월호 사건의 무력감을 짊어지며 지나온 4월의 숨막힘, 안전에 대한 지속적인 염려를 낳은 후쿠시마 사고를 실제적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현장성을, 아주 소소하여 어떤 증명도 될 수 없는 개인이지만 '사건'들을 목격할 수 있었던 시대의 일부가 되는 존재였다는 역할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 단순한 응시로 보여진 것 이상이 되지 못했을지라도.

 

 또한 7장의 패트리어티즘에서는 [이러한 포괄적 레토릭으로 국민적 단결을 고취하고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것이겠지만, 그 단결을 위해서는 '국민의 적'이 필요해지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앞으로 어려움이 장기화되고 지배층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쌓이면 반드시 '적'을 만들어내려 할 것이다.] 고 밝힌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국가에서도 이러한 '만들어 낸 적'을 필요로 하지만, 적은 구성원이 모인 작은 집단 안에서도 억압과 압박이 계속되면 이내 불만과 분노를 표출해 낼 '적'을 만들곤 하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여직껏 이런 '적'의 존재가 집단 안에서 사라진 경우가 드물고, 일명 '따돌림'이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이 미치게 되니 인상적이었다.  

 

 근현대사를 망라하여 작가가 가감없이 보여주는 비판적인 시각은 시원스러운 읽기를 재촉한다. 내용의 깊이에 비해 읽기 어려운 문장으로 되어 있지 않은 점이 좋았고, 덧붙이자면 시인 김지하에 대한 평에 공감하는 바도 있어 리뷰를 쓴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쓰고 보니 흐름상 빠졌기에 언급만 해둔다. 또 덧붙이자면 저자가 오는 9월에 인천에서 있을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초청되어 특강과 대담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이 부분도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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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산보
플로랑 샤부에 지음, 최유정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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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적인 일러스트로 가득한 책은 특이하다. 이런 책들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저자인 플로랑 샤부에의 시선이 도발적인 것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일러스트로 표현하는 타국의 생활이면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점철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솔직한 부분이 더 많았다. 일본 남자들의 헤어스타일에 대한 일러스트를 보면서 각자의 헤어스타일과 그런 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의 주된 특성을 써놓았는데 코멘트가 솔직하다 못해 웃기도록 예리하다. 스맙의 멤버들을 그려놓으면서 감히, 기무라 타쿠야에게 여장남자 같다는 말을 하거나 초난강이 한 드라마 캐릭터가 좀 모자란 사람 역이었는데 잘 어울렸다는 둥의 말을 써놓은 것도 배짱이 있네 싶었다.

 

 일본에 대해 그래도 옆나라이니 많이 안다 싶었는데 확실히 직접 몇달이고 다녀온 사람의 시선으로 본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았구나 싶었다. 바퀴벌레가 많다는 것도 그렇고, 과일 가격이 망고 하나에 이천엔이라면 한화로는... 살인적인 물가구나 싶었다. 망고가격이야 우리나라도 비싸긴 하지만. 별별 것들을 다 그리고 적어놓은 실용적이면서 편집증적인 책이다. 기억해두기 위한 기록용 수첩을 그대로 공개한 느낌이라 작은 코멘트 하나도 챙겨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보다보면 일본에 대한 여행욕구보다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진다. 시각도 좀 색다른 것 같고 그가 그려낸 일러스트 들이 사실적이면서 예쁜 색감을 보일 때가 있어서 좋았다.

 

 한번쯤은 유럽에 다녀오라는 계시인가. 요즘들어 프랑스라는 아이콘이 자주 눈에 밟힌다. 얼마 전에는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프랑스 사람과 영어로 대화를 했다. 작년 말에는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프랑스 사람과 잠깐 개인교습을 한 적이 있었다. 그가 금방 대만으로 떠나는 바람에 잠깐에 그쳤는데 그때 프랑스 말을 두마디 배웠다. 그 중 하나가 '올랄라'였던가. 자신도 모르게 조금 놀랄만한 사건에 대해 얘기할때 '올랄라'하고 나온 그 감탄사가 익숙하면서도 생소해서 한참 웃었다. 개인적인 얘기만 잔뜩 늘어놨지만, 이 '도쿄 산보' 역시 나더러 프랑스에 다녀오라는 계시 중 하나로 생각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쓸 수 밖에 없는 애기였다. 일본에 관한 책이지만, 저자는 프랑스 사람이니까. 나보고 프랑스에 다녀오라는 얘기이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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