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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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리멸렬한 삶의 현장 속으로

  생계를 위해 여러 곳을 떠돌던 엄마를 대신해 하루하루 때를 끓이며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다음 날 공부를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시되었던 사춘기 시절을 떠올릴 때면 회한으로 가득해진다. 빨리 어른이 되어 매캐한 연기로 가득한 아궁이와는 결별하고 싶은 소망이 앞섰던지 때 이른 유학으로 도회에서 생활하며 지내는 행운을 맞게 되었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고 행하지 못할 게 없어 의기보다는 객기로 충만했던 20대 청춘시절을 추억해 본다.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만족하기보다는 가지 못한 길을 동경하며 돌파구를 찾아 방황을 일삼으며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늘 새로운 것을 갈구하면서도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고 살던 그 시절 때때로 내 마음이 내 안에 있지 않고 주변을 맴돌거나 멀찌감치 떨어져 배회할 때가 더 많았다.

일기장에 아름다운 문구를 적어 넣던 소녀 수경은 사라지고 기득권자에게 종속된 채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여 오로지 참아내는 것만으로 시간을 소진하며 지내왔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이 로봇이라고 주장하는 낯선 남자의 집요한 접근에 자리를 함께 하여 그가 말하는 로봇 3원칙을 들었다. 수경은 그와 만나 대화하며 억눌린 감정을 분출하며 찰나지만 카타르시스를 맛봤는지도 모른다. 급기야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그에게서 생애 최고의 희열을 느낀 수경은 그를 사랑하기에 모든 걸 잃어도 좋다고 말하는 순간 남자는 떠나 버린다. 로봇 3원칙을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 스스로를 지킨다는 조항을 들어 수경을 떠나간 사내는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사랑하며 자신을 지키고 살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 아래 그녀를 떠났는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복종하는 것은 나의 운명.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나의 기쁨. 그러나 그것이 당신을 해치는 것이라면 따를 수가 없습니다. 안녕, 내 사랑’으로 결별을 선언하였다. 사장의 욕망을 배설하는 성적 대상에서 벗어나 사랑의 본질을 조금 알아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갈 수도 있는 상황에 수경은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 가정을 이루고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해가는 중에도 가끔씩 떠오르는 상대의 이름을 검색해 볼 때가 있다. 나이 마흔을 훌쩍 넘어 서서는 외로워도 혼자 꿋꿋이 잘 버텨낼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가슴이 말을 듣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아련한 추억 속에 떠오르는 인물을 검색하여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알아내는 일쯤은 손쉬워 진 정보혁명 시대의 위력을 새삼 깨닫는다. 한선은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여자 친구 수진과 헤어진 뒤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듣고는 계륵(鷄肋)이야기가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그는 돌연 수진에게 결혼 전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하고는 수진의 집 앞에서 그녀를 납치하듯 차에 태우고 동해로 향하였고, 그곳에서 뜻밖의 테러를 당하고 민다. 응급조치를 취하던 구급대원이 수진에게 보호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고 서울로 회귀하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지금 곁에 있는 이에게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면서도 가끔은 옛 사랑을 그리워하며 한 번쯤은 그 시절로 돌아가 연인처럼 교감을 나누고 싶은 욕구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시 되돌리기에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나와 벌어진 틈새를 메우기도 힘들 정도로 어긋나 있을 때가 많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변성기를 겪으며 미성(美聲)을 선물 받은 소년은 직업 가수로 무대를 발판으로 성공적인 삶을 열어갈 것처럼 비춰졌다. 노래로 청중을 사로잡는 힘을 지닌 그는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서도 가끔은 아무런 노력 없이 성장과정을 겪으며 덤으로 얻게 된 목소리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생각이 부정을 낳았는지 그는 목소리를 잃게 되고 입을 벌린 채로 죽어 있던 악어를 발견하였다. 악어 농장을 구경해 본 사람들은 낚싯대에 매달린 고깃덩어리를 향해 입을 쩍쩍 벌리며 달려드는 악어를 봤을 것이다. 그 역시 먹잇감을 향해 이 무대 저 무대를 전전하며 정체성을 찾기도 전에 소진해 가버린 우울한 이들의 자화상을 투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폭력으로 이지러진 삶 속에서 피어나는 슬픔의 변주곡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골든 벨 프로를 보면서 서로 문제를 듣고 정답을 맞히겠다며 너스레를 떨 때가 종종 있다. 정답을 맞히게 되면 왠지 모를 의기양양함은 승자를 우대하는 풍토에서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 듯 찰나의 행복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퀴즈쇼>의 은이는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묻지 마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로 한순간에 맞닥뜨린 부모와 동생의 죽음은 그녀를 공황장애로 몰고 갔다. 그동안 성실히 살아 온 부모님이 남긴 재산의 유일한 상속녀로 스무 살이면 그 유산을 자신의 명의로 돌릴 수 있는 수혜자이기에 더더욱 세상 사람들을 믿고 살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점점 위축되어 가던 은이가 찾은 성당의 수녀는 공포에 굴복하지 말고 공포에 맞서 이겨나가야 한다며 그녀가 퀴즈쇼에 출연할 수 있게 했다. 마침내 그녀는 퀴즈쇼에서 옛 중학 동기를 만나 그동안 겪은 일들을 털어놓으며 또 다른 인연의 끈을 이어 외로움을 탈피하여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였다. 지금껏 타인을 믿지 못한 채 말문을 닫아버렸던 그녀가 동국과 소통하며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일의 전조로 비춰진다.

 

 

  서로 사랑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부부이지만 본질적인 희구(希求)와 사랑에는 무관심한 이들이 부부라는 무늬로 여러 빛깔로 수를 놓으며 살아가는 삶인지도 모른다. 칠월 칠석 은하수 건너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단 한번 만나는 날처럼 낯선 땅에서 옛사랑을 우연히 만나 또 다른 만남을 이어가는 <밀회>에서는 중년의 삶에 묻어 있는 고단한 삶의 돌파구를 그려내고 있다. 그녀가 독일로 이주한 것은 남편이 ‘카푸그라증후군’이라는 특이한 뇌질환을 앓고 있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을 보여 평범한 삶의 행복을 맛보며 살기에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매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찾는 주인공은 그 때마다 한번은 그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돌아가지만 그녀가 안고 있는 숙명 같은 과제를 나눌 수 없는 처지에 안타까움만 더했을 듯하다. 그녀가 자신을 찾는 날 쿵쾅거리는 소리에 달뜬 마음으로 쾌감에 젖은 채로 죽어가던 주인공은 혼미해진 의식을 부여안고 그녀의 비통한 울음을 애도의 소리로 받아들이며 밀회를 끝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짝사랑은 돈이 안 들어 경제적이라지만 혹독한 열병을 앓아 본 사람이라면 그 어떤 상실과 열패감보다 더 가혹한 실연을 주는 일임을 잘 안다. 마코토는 민족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소수자로 고독을 견디며 지낼 때 사랑의 주파수를 높이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이를 당할 재간이 없어 보인다. 한국 유학생 마코토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현주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야 했던 주인공은 긴자 커피숍에서 그를 만나 유학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일을 아느냐고 물으며 뜻 모를 키스로 의식을 치렀다. 키스 세례가 무엇을 의미할는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그 시간에 충실할 뿐이었다. 잃어버린 짝사랑의 실체를 만나 그 사랑을 확인시키려는 의도성이 강하게 배인 행위로 그동안 거세당한 마음을 보상 받으려는 듯 마코토가 이끄는 대로 그녀는 몰입할 뿐이었다.

아득해지는 감각 속에서 내 영혼이 마치 잘 맞는 야구공처럼 펜스 너머 저 광대한 우주로, 하나의 작음 점이 되어 사라져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암전. (137쪽)

 

 



  화장기 없는 뽀얀 피부가 뭇사람들의 로망으로 떠오르는 요즘 피부과 창구 직원의 곱고 아름다운 피부는 그 병원의 기대지수를 충족시키기에 안성맞춤일 듯하다. 하지만 고운 피부를 지녔던 여자의 피부 트러블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기적 욕망 앞에 굴복하고 만 스물한 살의 앳된 여인의 비통함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에 씁쓸함이 더하다. 의고소침하게 지내던 이가 술기운을 빌려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오늘의 커피> 에서는 커피의 쌉쌀하면서도 코끝에 스미는 짙은 향기가 주변을 맴 돌아 감정의 파고를 넘나듦을 조율하며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투영하는 듯하다.

 

 
 

그들이 사는 세상 속으로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상이 심드렁해질 때면 늘 새로운 변화를 찾아 또 다른 길을 찾을 때가 있다. 성실한 삶을 살다가도 요행을 바라며 백일몽을 꿈꿀 때 그 순간만이라도 쾌감에 젖어 행복함을 맛보고 싶어할 때가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욕구가 기저에 강하게 깔릴 때면 망상에 가까운 희망은 더욱 강렬해진다. 낱개로 포장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까먹으며 더위와 지금의 신산함을 벗어나려 하지만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동규와 혜선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기름 냄새가 난다는 점에 착안해 소비자 고발센터에 전화를 걸어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 보지만 돌아온 것은 참담함 뿐이었다. 담당자가 두고 간 초콜릿을 들고는 미츠 값의 열 배라고 위안을 삼으려 하지만 실상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비웃는 웃음만으로 퀘퀘한 방안을 가득 채웠을 뿐이다.

 

‘이것은 타락에 관한 이야기다.’

로 시작하는 형사 조의 일상을 추적하며 그의 내밀한 생각을 양파 껍질 벗기듯이 하나하나 드러내기 시작한다. 백화점 순찰을 돌며 범죄를 막는 일에 솔선해야 할 주인공은 그보다 눈에 들어오는 백화점 여직원들이 주된 관심사로 비춰진다. 반 지하에 살면서도 프라다 정장을 입는 화장품 판매원, 성실하게 일하는 구두 매장의 김, 점점 궁핍한 환경으로 내몰려 힘들게 살아가는 시계 매장 정의 움직임과 생각을 좇기에 조는 바쁘다. 그 중에서도 구정물 속의 연꽃으로 화한 정을 볼 때마다 조는 연민의 정을 느끼며 지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좀도둑을 사랑한다는 조는 도둑들의 장물(臟物)을 맡아서는 임의로 처리할 때가 있었다. 장물인 불가리 시계를 정에게 부치고 그 사실이 부메랑이 되어 조는 구치소에 감금된다. 진흙 속에 핀 연꽃처럼 귀한 정에 대한 애정이 이지러진 선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욕망에서 기인했던 것일까? 조에게는 마음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한 때는 즐거움을 주고 허황된 희망을 심어주기도 했던 일들이 사라지고 현실을 직시하게 된 조는 벌을 받으며 어떤 생각을 떠올리게 될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또 다른 희망을 꿈꾸며

 

  6년 만에 출간한 소설집 속 13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현대인들의 다양한 삶 속으로 들어가 내면을 뚫어보는 즐거움이 무엇보다 컸다. 하지만 즐거움 속에만 침잠할 수 없었던 것은 희망적인 내용보다는 절망적인 아픔과 불행한 우리들의 모습이 용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젖은 우산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젖은 우산을 탈탈 털어 빠르게 건조시킬 수도 있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음을 살아가면서 새삼 느끼게 된다. 상대적으로 소설 속 아바타는 또 다른 현대인의 얼굴로 가슴 속에 남아 좀 더 진실한 삶을 살아 진한 울림을 주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라고 당부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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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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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비가 흩뿌리던 날 마음까지 가라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청계천 6가 버들다리를 전태일 다리로 부른다는 보도와 함께 전태일 반신 부조 상을 부추며 서거 40주년이 머지않았음을 알렸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던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부르짖으며 화염에 휩싸인 채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자 말라며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피복 공장 재단사로 취직한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며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어렵게 구한 근로기준법에는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 임금 규정 등을 명시해 두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효력 발생이 없어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 전태일은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만 수포로 돌아가 절망한 그는 분신으로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세상에 알리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캐서린 패터슨의 빵과 장미를 읽는 내내 노동 현장에서 일하며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고통 속에 노동 운동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한 전태일이 떠오른 것은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에 있다는 데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육신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사는 이유 중 하나는 노동의 대가로 받은 임금으로 단란한 가족의 행복을 영위해 나갈 기본적인 생계유지 뿐 아니라 문화적인 향유를 위한 정신적인 충족까지 겸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힘을 내세워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고용주의 임금삭감 은 각국에서 몰려 든 노동자들을 공장 대신 거리로 나가 그 사실을 알리고 자신들의 정당한 권익을 실현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빵과 장미를 위해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벌어진 파업은 갖은 방법으로 파업 사태를 막으려 했지만 노동자들의 연대는 도도한 강물처럼 쉼 없이 이어졌다. 일을 해도 자식들이 배를 곪고, 일을 안 해도 가족이 굶주림을 면하기 힘들다면 싸우고 굶는 게 더 낫다며 로사의 엄마는 뜻을 명확히 했다. 엄동설한에 파업 노동자들에게 소방 호스를 들이대는 경찰의 파업 저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국 토박이인 제이크 빌은 부모의 보호 아래 학교 다닐 어린 나이이지만 방직공장에서 일하며, 판잣집에서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함께 지낸다. 걸핏하면 아들에게 매질을 하는 아버지의 횡포는 자식을 거리로 내몰고 말았다. 로렌스의 추운 겨울 밤, 싸구려 공동주택 뒷골목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잠을 청하던 열세 살 제이크 빌은 신발을 찾으러 온 열두 살의 로사 세루티와 만났다. 이탈리아계인 로사는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엄마와 언니, 어린 남동생과 함께 공동 주택에서 어렵게 지내고 있지만, 학교 성적이 뛰어난 데다 학교생활에 모범적인 소녀다. 그녀는 제이크 빌이 자신의 구두를 찾아준 호의로 오갈 데가 없는 그를 식구들 몰래 하룻밤 재워 줘 파업 현장을 그들의 시선으로 관찰하며 또 다른 삶의 전환점을 맞는 계기로 작용했다. 
 

  로렌스에서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공장의 이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파업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이어졌다. 핀치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파업은 위험하고 정당하지 않은 일이라며 부모님을 설득해 파업 대열에서 이탈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로사는 엄마와 언니가 공장에 나가지 않고 파업에 참여하는 가족들의 안위를 염려하며 전전긍긍하였다. 엄마와 언니가 파업을 계속하면 자신도 파업할 것이라 큰소리를 쳐 보지만 엄마는 그 소리를 귓등으로도 안 들어 로사는 더욱 마음을 졸여야 했다. 파업으로 공장에서 일하지 못하게 된 제이크는 돈을 벌어 술을 사다주지 않으면 매질을 하는 아버지를 피해 이탈리아계 파업 노동자들을 따라다니며 끼니를 해결하고 가끔은 성당에 몰래 들어가 포도주와 성채를 훔치며 불안한 생활을 이어갔다.

 ‘우리는 결코, 우리는 결코 움직이지 않으리.’

  단호한 부르짖음을 담은 노래는 파업 노동자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기능을 하였다. 로사는 체포된 조 오브라이언처럼 엄마와 언니가 체포되었을 때를 가정하고 불행한 일들을 떠올리며 파업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들끓었다. 하지만 로사의 바람과는 달리 파업을 지지하는 전국의 지원자들이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 설치, 파업하는 동안 돌볼 수 없는 자녀들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면 기꺼이 그들을 돌봐 준 사람들이 베푼 사랑은 로사와 제이크 빌의 삶을 변화시켜 나갔다. 곳곳에서 파업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을 보살펴 줄 사람을 모집해 이들 가정에 임시로 아이들을 위탁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지원서를 내러 간 이탈리아 회관에서 로사를 다시 만난 제이크 빌은 로사가 뉴욕으로 간다는 소리에 그도 뉴욕에 가고 싶어 신분을 속이고 동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부모 서명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판잣집으로 돌아간 그는 잠든 아버지 곁에 누웠다가 뻣뻣하게 식어 버린 아버지 주검을 목격하고 도망치듯이 집을 빠져 나왔다. 생전에는 자식을 괴롭히며 술로 세상을 살다 저승으로 떠난 아버지의 죽음은 제이크 빌에게는 또 다른 마음의 멍에로 남아 현장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려는 마음을 부추겼다. 무작정 기차에 올라 탄 제이크나 낯선 공간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로사 역시 버몬트 주로 가는 길이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했을 듯하다. 
 

  낯선 길을 함께 걸어가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힘을 줄 때가 있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지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하며 버몬트로 향하는 기차에서 내려 제르바티 씨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둘은 제르바티 씨 부인의 따스한 보살핌에 감사하며 버몬트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로사는 학교로 나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고, 문맹인인 제이크는 제르바티 씨의 석공소에서 일을 거들며 배움의 길로 나섰다. 늘 가족의 안위가 염려스러웠던 로사는 파업이 끝나 로렌스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제이크는 돈을 마련해 뉴욕으로 도망칠 궁리를 실행으로 옮기던 날 금고를 털지도 못한 채 제르바티 씨에게 들키고 말아 지금껏 가장하고 살았던 생활이 폭로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제르바티 씨는 감각이 없는 돌에 갖가지 꽃을 새겨 생명을 불어넣듯이 제이크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게 지켜볼 뿐이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희망을 품고 어떤 위난(危難)이 닥치더라도 용기 있게 일어난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여 과업을 이뤄가는 과정은 감동을 더한다. 파업에 동참한 이들을 돕기 위해 그 자식들을 떠맡아 아낌없는 사랑으로 부양하는 모습은 차별 없이 아이들을 대하는 아름다운 보살핌이었다. 로렌스를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로사는 엄마를 아름다운 나무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땅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나무는 비가 몰아치고 바람이 매몰차게 불어도 의연하게 불의에 맞서 뜻을 이뤄내는 거대한 사람처럼 비춰졌다. 제이크는 제르바티 씨 집에 남아 석공 일을 계속 배우며 과거의 좀스러운 범죄를 둘러싼 두려움에서 벗어나 빵이 넘치고 돌에서 장미가 자라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소년과 소녀는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두려움을 걷어내고 불행의 늪에서 헤어났을 때 문득 쳐다 본 하늘이 더욱 투명하게 빛날 때 희망을 꿈꾸는 이의 새로운 출발은 가슴에서부터 시작됨을 알아차렸고, 가슴으로 이기는 싸움이 더욱 숭고한 가치가 있음을 깨달으며 행복을 찾아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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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길고양이 - 제8회 푸른문학상 동화집 미래의 고전 21
김현욱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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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씨년스러움이 더하는 가을에는 지나 온 시간을 자꾸만 돌아보며 그동안 성의껏 살지 못했다는 회한으로 마음이 헛헛하고 심드렁할 때 한 편의 동화는 따스함이 주는 잔잔한 울림 속으로 빠져들 때가 있다.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 동화집에 실린 일곱 편의 글은 소소한 일상을 화제로 삼아 이지러진 마음을 바로 세우고 밋밋한 생활에 마음의 무늬를 아로새겨 변화를 더한다. 아동을 독자로 하는 동화에서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더 큰 힘으로 마음을 채우는 힘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요즘 들어 자신의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며 원망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 일이 늘어나 우울할 때가 많아졌다. 기대하고 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쉽게 그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보호 속에 자유롭게 잘 자라야 할 아이들이 가슴에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엄마의 부재와 아빠의 병환으로 할머니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스무 명도 안 되는 분교로 전학 와 생활하는 욱삼이 이야기는 분교 아이들이 그를 따스한 기운으로 감싸 겨드랑이에 날개를 돋게 하는 듯하였다. 산을 찾았을 때 행복하다는 아버지는 실족사로 이승을 뜨고 남매와 함께 생활하는 엄마는 분식집을 경영하며 또 다른 삶의 궤적을 따라 갔다. 지금껏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마뜩치 않았던 정민이 엄마 가게를 홍보하는 정우를 보며 자신이야말로 부정적인 그림자를 안고 살았던 멍에를 거둬야 함을 알아차린 슬픔을 대하는 자세가 주는 여운은 무엇보다 강렬했다.

  이기적인 습관이 배인 평범한 이들은 조금의 불편함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일 때가 있다. 유해시설 설치를 반대하는 님비 현상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 떠오른다. 냄새 나는 쓰레기 수거함을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가까이 두지 않으려는 어른들의 이기심은 어린 아이들 마음까지 타산적으로 흐르게 했다. <<일곱 발, 열아홉 발>> 동화 제목처럼 서로 자기 집 가까이 학원 차를 세우려는 아이들의 마음을 옮겨 놓아 씁쓸함이 더했지만 그것이 잘못된 생각에서 나왔음을 깨우치는 모습은 살가운 풍경이었다. 책은 세상을 보는 눈이라는 안목으로 딸 다미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독서를 극도로 싫어하는 딸에게 책을 가까이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도서관 사서인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딸에게 방학 중 일주일만 도서관에 함께 가자는 약속을 하고는 동행했다. 쉽사리 책을 읽지 않던 다미는 도서관에 머무르는 길고양이로 오인한 늙수그레한 할아버지가 책을 읽는 현장을 목격하고는 자신도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도서관 길고양이>> 할아버지가 책에 빠져드는 것처럼 다미도 책 속 흥미로움을 찾아 길을 떠날 듯하다. 

  오늘도 남편은 밥 먹다 말고 아들에게 너 학교에서 대장하는지 넌지시 물어 본다. 아들은 별 것을 다 알고 싶어 한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누가 대장을 하는지 무척 중요한 사안처럼 보였다. 대장 놀이에서 늘 부하 대원만 해 불만이 컸던 주인공은 여동생을 부하삼아 보물찾기 원정대의 대장이 되어 권위를 펴고 싶은데 그 일도 만만치 않았다. 동생은 자신이 부하임을 망각하고 대장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공주로 변신하여 오빠의 애를 먹였다. 동생과 티격태격하다 대장만 하던 형을 만나 대장자리를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주인공을 여동생은 감싸주며 보물 원정대 대장의 권위를 세워줬다.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들 하는지 모르겠다. 폐쇄적인 공간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엘리베이터는 또 다른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엘리베이터 괴물>>에서 주인공은 실용적인 승강기가 괴물처럼 자신을 집어 삼켜버릴 까 겁을 내며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짧은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종종 이상 행동을 보이는 영민이 유일한 친구로 여기던 준호마저 그를 놀리는 아이들과 합세하여 자신의 곁을 떠날 때 슬픔은 컸을 텐데도 영민이는 준호와 함께 하려고 했다. 친구가 자전거 사고를 당했을 때 부상을 당하면서까지 도움을 준 영민이와 준호가 우정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앞에 놓인 괴물은 바로 불신의 벽이 낳은 씨앗이 아닐는지 반문해 본다. 


‘하늘에 세수를 하면 얼마나 좋겠니? 멱을 감으면 마음까지 깨끗하겠지?’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돌연 새엄마로 자리하게 된 날 민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무척 힘들었다. 떠나버린 엄마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는 엄마 역할을 한다는 점을 수긍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을 듯하다. 미스 박 아줌마가 챙겨주는 음식을 본 체 만 체하며 외톨이로 지내던 민주는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와 친구로 삼으려 했다. 아줌마가 데려온 개와는 서로 원수처럼 지내리라 믿었던 동물들이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는 서서히 닫힌 마음을 문을 열어 나갔다. 민주가 여인으로 새롭게 태어난 날 새엄마가 손수 마련해 준 주머니 속 선물로 상황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가족을 인정해 갔다. 지금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불순물들을 떨쳐내고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은 날이면 맑은 하늘에 투명한 물로 세수를 한 뒤 어지러운 마음을 다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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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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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을 받고 싶어도 교육 받을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에 여성으로서 꿈을 품고 이상을 실현하며 정체성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일이 수월치 않았다. 병약한 동생을 대신해 누이는 남장을 하고 동생으로 살며 한 집안의 생계를 맡아야 할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불편함을 감수해서라도 남자처럼 행동하며 거벽과 사수 일로 경제력을 갖추고 살아야 했다. 윤식의 차도 없는 병세와 끝없이 이어지는 어머니의 고생에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윤희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학문이 이끄는 세계로 흠뻑 빠져 들었다. 필사를 비롯한 다른 일거리가 없을 때는 굶을 판이라 윤희는 조금은 안정적인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동생의 호패로 과거를 치르고 급제하면 작은 관리직에라도 올라 집안을 돌볼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그녀의 생각에 날개를 달았다.

 

  진사시와 생원시에 잇따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선준과 윤식은 일산(日傘)을 함께 쓴 인연을 시작으로 서로에게 호감을 표하며 두터운 정을 쌓아가는 길에 섰다. 남자들만 생활하는 성균관에서 여자임을 숨기고 남자의 몸으로 지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 속에 놓인 윤희는 오해를 받지 않고 윤식처럼 살아야 하므로 늘 긴장하고 지내야만 했다.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에서 생활하는 유생들의 일상에 가늠하기 힘든 일들이 어우러져 그들의 삶을 진하게 뿜어내고 있다.

 

  보수적 성향을 띤 노론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개혁적인 자세로 조선 시대 문예 부흥기를 이끈 정조 임금은 종묘와 사직을 굳건히 해 나갈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는데 정성을 쏟았다. 선준의 학문적 소양을 한눈에 알아차린 임금은 대과를 치르지 않고 출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고 했다. 훌륭한 인재들과 소통하려던 임금은 직접 성균관 유생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그들의 학문적 깊이를 더욱 공고히 하는 일에 주력했다. 개방적인 자세로 당파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당파에 치우치지 않는 인재 발굴로 그들을 포용하여 나갔다.

 

  성균관 유생으로 살아가는 일은 첫 관문을 통과하는 것부터 하나의 의례를 치러야했다. 암호처럼 얽히고설킨 과제를 해결하는 신방례 명령을 통해 문제해결력을 평가하는 과정을  한정된 시간 속에 해결해 갔다. 남인 아버지와 노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멸시당하며 살았던 윤희는 성균관에 들어가 영민함을 더욱 쌓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모란각의 최고 기생인 초선의 속곳을 가져와 대물이라는 낯 뜨거운 별호를 받게 되었고, 노론의 명문벌족의 후손인 선준은 과거에 장원 급제할 정도의 실력과 멋진 용모에 착한 마음까지 겸해 가랑이라는 별호에 부합하는 인물로 거듭났다. 선진에게 음식을 바치는 상읍례가 열리던 날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쑥떡을 입에 넣고 소박한 음식을 함부로 대한 이들에게 쐐기를 박은 선준의 모습은 윤희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기억에는 없지만 장가 든 용하는 돈줄 때문에 성균관 유생으로 생활하며 어느 당파에도 휩쓸리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기를 자처하면서도 뼈 있는 말로 주변을 놀라게 하는 재주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여색을 밝히고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좌중을 웃기는 재주까지 겸해 여림이라는 별호를 받았다. 재신은 노론의 부정적인 외압으로 형을 잃고 울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야생마처럼 격하게 들고 일어나 분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명문장으로 현실을 풍자하는 시를 써서 부당한 권력을 일삼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였다. 미친 말이[걸오]라는 별호로 불리는 그이지만 밤사이 도성 안에 있는 관서와 조정 대신의 대문에 벽서를 붙이고 사라지는 신출귀몰함으로 조정 대신들을 능멸하였다.

 

  재신의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해주며 계집처럼 허구한 날 옷에 피를 묻히냐며 반색하는 대목에서 윤희를 겨냥한 질문은 그녀를 더욱 당혹스럽게 했지만 의연히 대처하려 애썼다. 여자임을 숨기고 가랑과 걸오와 함께 같은 방에서 지내느라 잠을 설치고 긴장 속에 지내야 하는 윤희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홍소가 피어난다. 높은 학식을 갖춘 유생 가랑은 병약한 윤식을 배려하는 진중함으로 윤희의 마음을 달뜨게 했다. 그녀는 궁색한 가정 형편에 변변치 않은 자신을 돌아볼수록 명문대가의 자녀인 효은과는 견주기도 힘든 처지에 탄식이 늘었다. 아리따운 모습에 강단진 태도로 자기관리에 능한 윤희의 진면목을 가랑이 알아줄 것이라 믿으며 1권을 마저 읽었다.

 

  단편적 지식을 암기했다가 토해내는 얕은 공부로 내신 관리를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학문적 깊이를 더하는 탐구 활동으로 교육적 본보기로 들 만한 성균관 유생(儒生)들이 떠올랐다. 이들은 학문 수양에 힘쓰면서 윤리적 규범을 따라 엄격하고도 질서 있는 생활로 이어졌다. 과거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에 한해 특별히 입학할 수 있는 성균관 생활은 선비들의 이상이자 동경이었을 듯하다. 꽉 짜여진 일정 속에 규율을 따르며 사는 일이 녹록치는 않지만 경전을 수차례 읽어 내리며 경전 속에 들어있는 깊은 뜻을 깨달을 때까지 끊임없이 책 내용의 창조적인 궁구(窮究)를 위해 연마하였다. 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윤리를 저버리지 않고 박사에게는 깍듯한 예의를 갖추며 국가의 장래를 맡아 나갈 인재로 커가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가랑, 대물, 걸오, 여림이 각기 다른 색깔로 개성을 드러내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다가도 의기투합하여 어떤 일을 해결할 때면 누구보다 연대하는 모습은 꽉 짜여진 틀을 넘나드는 상상을 더한다. 완벽한 정책보다는 보다 나은 정책으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유생들의 생각은 보다 나은 조선을 위하는 유생들의 일상 속으로 점점 파고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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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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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 끝자락 작렬하는 태양 아래 2박 3일 간의 예스 문학 캠프를 다녀왔다. 캠프를 떠나기 전 우리나라 대표 작가 두 사람을 초청해 강의를 듣고 질의 응답하는 시간이 있다는 말에 설렘과 기대로 마음은 부풀어 올랐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개성을 중시하는 문단의 기인(奇人) 괴벽스러운 이로 치부하고 살았던 이외수 작가와의 만남이 예정된 첫날은 호기심이 더했다. 연륜에 걸맞은 반백의 머리를 뒤로 넘겨 한 갈래로 땋아 생경함을 더했고, 스트라이프 셔츠에 파란 넥타이를 멋스럽게 연출한 작가는 예순 넷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에서 충북 보은 속리산 아래까지 내달려 왔으니 피로할 법도 한데 우렁찬 소리로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열정은 더없이 귀한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푼푼해진다.

   디지털 세상은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여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장년 세대들에게 다소 생소한 소통의 산물인 트위터를 이용해 짧은 글 속에 지혜로운 말을 담아 세상을 살아가는 앎을 제공하는 역할도 서슴지 않는 작가 이외수는 그만큼 독자들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사는 이처럼 여겨진다. 무엇보다 독자와 소통하는 즐거움이 지극한 즐거움이라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과 소통하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지금도 시간은 들리지 않는 초침 사이로 흐르며 나이 들어감을 재촉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구태의연함으로 안이하게 살았던 삶을 반성하고 스스로가 인생의 주체로 우뚝 서야 함을 <<아불류 시불류>>에는 담고 있는 듯하다. 소설가, 화가, 시인, 연기자로 다중적인 삶을 사는 작가는 단조로운 일상에 변화를 시도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 가는 가운데 자신만의 창조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가능성을 열어 실력가로 거듭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차나 한 잔 하고 가소.’
  선사들이 수행 정진 중에 정신적 여유를 찾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담은 풍류와 운치는 오늘날 회식 문화와는 다른 면모를 띠고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풍진(風塵) 세상도 돌려 생각하면 살 만하다는 판단을 내릴 때도 있다. 모든 감정의 씨앗은 마음에서 자아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처럼 믿음은 마음에서 만들어지고 오해는 머리에서 만들어진다는 짧은 글이 자꾸만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공부해서 남 안 주는 사람들은 헛공부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접할 때는 만물을 사랑하며 대상과 나를 하나로 보려는 작가의 시도가 드넓은 사랑의 실천으로 퍼져나갈 듯하다. 사계절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 인생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늘 봄날만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더 불행헤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글이 제대로 써내려갈 수 없다며 탄식하고 새벽까지 깨어 있을 때가 왕왕 있다. 젊은이들 역시 불확실한 현실을 앞에 두고 또 다른 기회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정성을 쏟는 대목은 언제 봐도 가슴 뭉클하다. 한 가지 생각으로 집중하여 몰입하다 보면 문리가 트인다는 성현의 말처럼 고수는 머릿속이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에 공감하며 자신은 갖가지 생각으로 얽히고설킨 하수라는 생각에 미치자 우울해진다. 평범한 인간이기에 숙면을 취하지 못한 경우 누적된 피로로 수마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휴식으로서 잠을 잠으로써 심신을 가볍게 할 수 있지만 나태함으로 잠을 자는 경우 심신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는 말에 깨어 있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절감케 한다. 작가는 무생물이 아파하는 것까지 느껴진다니 사랑하는 이가 아플 때는 차라리 자신이 앓는 게 낫다는 말을 전할 정도로 나와 그 대상을 동일시해 합일하는 자세로 살아가가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농부는 파종을 하기 전부터 터를 고르고 이랑을 만들어 그 위에 씨앗을 뿌리고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거름을 줘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두기까지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하지만 씨앗을 심는다고 모두 싹이 트는 것은 아님을 알아차리고 노력과 정성으로 씨앗을 관리해 나가는 일이 의미 있다. 한 줄의 글을 건졌다고 만족해하지 말고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이 없는지 거듭 생각하여 글을 쓰는 일은 쉽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반문케 한다. 폐쇄적인 사회에서 독자들에게 인정받고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 최고의 실력가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스스로 창조자로 자리할 수 있어야 함을 역설했다. 앞길이 막막한 젊은이가 조언을 구하러 왔을 때 그에게 10년 동안 병뚜껑을 줍다 보면 문리가 트일 것이라는 다소 엉뚱한 답변 속에는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레 길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적 암시를 담고 있었다.

  일상에 매몰되어 여유를 찾기보다는 그 속에 허우적거리다 보니 어느 새 40대 중반에 이르고 말았다. 늘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하며 붙박이별처럼 한곳에 머물며 지낸 시간은 회한으로 가득하다. 자유로운 자신을 찾아 길을 떠날 때도 칼로 무 자르듯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은 스스로 지어 낸 업력이 커서일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인생에는 반전이 있어도 게으른 자의 인생에는 반전이 없다는 구절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성실하게 살라는 당부로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게 한다. 외롭고 지치는 세상을 살 만한 세상으로 화하는 바탕에 빛을 내며 자리하는 사랑은 이 시대를 희망으로 바꿔 놓을 소중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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