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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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육은 한 자리에 모이는 횟수가 줄어 서로 떨어져 지내도 질긴 인연의 줄로 엮여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때로는 상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시공간을 초월해 공생하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짐처럼 걸머지고 겨우 버텨 왔던 것처럼 지방 관청의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상사의 말에 복종하며 부조리인 줄 알면서도 그것의 부당함을 말하지 않고 묵묵히 수행해 왔다.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를 따라 아버지는 유랑하며 낯선 땅에서 힘든 생활을 견디며 지금까지 생존해 왔던 것처럼 맞닥뜨린 현실에 순응해 왔을 뿐이다. 온갖 노역에 끌려 다니느라 기운이 쇠해진 말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잇는 연결고리이기도 했다. 좆내논은 늙은 절름발이 말에 지나지 않지만 할아버지에게만큼은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반려 동물이었던 셈이다. 사살된 말은 어머니의 잠재된 의식 속에 환영처럼 살아나 다가올 일을 알려 살아남은 자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를 줬다. 선택의지도 없이 할아버지를 따라 정든 공간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돈 아버지는 교도소라는 낯선 공간에서 수인으로 지내는 시간이 더 안온하였을 지도 모른다며 그 딸은 위안을 삼았다.

 

 

  각기 다른 사고방식과 문화적 생활에 젖어 지내왔던 타인이 한 가정을 이루고 의좋게 살아가는 일이 수월한 일은 아니다. 헤어짐이 잦은 시대에 부부가 갈라서는 일이 다반사처럼 보이는 시대에도 한 가정의 인위적인 해체는 크고 작은 상처를 떠안고 살아야 할 숙명에 놓이고 만다. 그저 살면서 지내왔을 뿐인 어머니는 살던 집을 처분하고 작은 아파트 두 채를 마련해 남편과 따로 살겠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죄와 알선수재 혐의로 복역 중인 남편을 그 인간으로 명명하며 혐오감을 드러내고 익명화하는 모습은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바람을 강하게 투영한 것이다. 사랑보다는 미움의 정만 강하게 남은 연주 어머니를 보면서 청상으로 지내 온 친정 엄마가 떠올랐다. 하지만 친정 엄마는 병든 남편이라도 곁에 있는 게 의지가 된다며 늘 남편의 그늘을 크게 생각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 어떤 추억도 남기지 못한 채 서둘러 저승을 찾은 남편에 대한 원망이 그 말 속에는 묻어 있었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봄 소풍지로 종종 찾은 인근의 수목원은 단장한 나무들 사이로 꽃들이 피어 곳곳에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어 싱그러움을 더했다. 안내자의 인도 아래 원색의 옷을 입은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나무들의 생태를 살피고 활발히 움직이며 만끽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그 뒤를 따르는 보호자들은 아이들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앞 다퉈 사진에 담느라 활기를 더하였다. 하지만 민간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정해진 시간 내에 통행증을 발급받아 들어갈 수 있는 민통선 수목원은 폐쇄적인 공간으로 내면의 세계로 침잠해 사유하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세밀화 작가인 연주는 민통선 부근에 자리한 수목원의 계약직 공무원으로 발령받아 괴괴한 숲으로 들어갔다. 수목원 생활을 앞두고 그녀는 의지가지없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아버지를 보고 돌아오는 길 마음의 멍에를 가득 안고 수목원 직원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영치금으로 넣어 준 돈을 딸에게 건네며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폐아인 아들과 함께 사는 안요한 실장의 우울한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결핍이 낳은 크고 작은 숙제를 안고 사는 이들이 또 다른 결핍을 부르면서 대물림하는 질긴 인연은 쉽사리 융화하기 힘든 가족의 일면을 투영한다. 부부가 수십 년을 함께 살다 보면 사랑보다는 미움이 더 많이 채워져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사는 일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남편의 그늘에서 찾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소극적인 저항을 생각한 어머니는 교회에 나가 신앙인으로 살면서 그들과 마음의 짐을 나누려 했고, 남편과의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자구책을 마련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식물 종자학을 전공한 연구원 안 실장은 꽃이 피어나는 배경을 찾으려 애썼고, 식물의 종자 안에 잠재해 있는 형태가 발현태로 이행하는지의 여부를 찾는 과업에 매달렸다. 식물의 관찰된 내용을 식물의 살아 있는 질감과 표정으로 화폭에 담아내는 일이 조연주 작가에게 부여된 작업이었다.

 

 

  수목원 안에서 나무를 관찰하고 그 모습을 화폭에 담아 표본관에 둘 세밀화를 완성하여 가는 과정은 지금껏 익숙해 있던 바깥세상과 절연한 채로 살아가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오로지 지금 앞에 있는 물상의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몰입하는 화가의 관찰은 손쉽게 놓쳐버린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잠이 안 온다는 이유로 딸에게 전화를 걸어 푸념을 늘어놓는 엄마는 쇠잔하여 가는 육신을 붙들고 과거의 망상에서 벗어나려 애써 보지만 제자리걸음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벗어나려 해도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인연은 어느 누가 인위적으로 끊고 싶다고 해서 끊어지지 않는 질긴 씨줄과 날줄로 이어진 숙명의 고리 같았다. 생애 가장 역동적인 순간에 작동하고 있는 생명의 표정을 화폭에 드러내라는 안 실장의 요청은 세밀화를 그려야 하는 연주를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연주의 어머니처럼 자신의 이혼을 객관화하여 표현하는 안 실장을 보면서 어머니와 아버지, 이혼한 안 실장 부부의 삶은 몹시도 닮아 보인다. 자신의 일을 마치 제 삼자의 일인 양 에둘러 말하며 그동안 살면서 일으켰던 무수한 파란에서 헤어나고 싶은 열망이 그 안에는 존재해 있는 듯했다. 안 실장은 마음의 빗장을 뽑고 소통의 문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디뎌 적막을 깨 잔잔한 울림을 전했다. 그의 아들 신우 역시 자신과 너무 닮아서 괴롭다며 연주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대목에서는 울울함을 떨쳐 버리려는 시도를 통해 자폐성에서 한 발짝 물러나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늙은 말 좆내논을 타고 어머니 꿈속에 나타난 아버지는 석가탄신일에 가석방이 되었다. 의협심이었든, 결탁이었든 간에 아버지 자백으로 형량이 가벼웠던 상사 최 국장은 일신 상조회를 만들어 자신들의 비리를 비호하는 세력에 힘을 주는 공적 부조 형태를 유지해 갔다. 아버지가 일을 할 수 없을 때 돈을 대줬던 최 국장의 도움에 감사하며 지내던 어머니의 단편적인 모습을 볼 때마다 연주는 소시민적 삶을 이어 온 자신의 생애를 되짚어 보기도 한다. 출소 후 예상대로 어머니가 마련한 아파트에 머물며 간병인의 도움으로 숨을 붙이고 사는 아버지는 삶의 무게를 다 짐 지우지 못하고 물기 없는 나뭇잎처럼 부서져 가고 있었다. 밤마다 잠이 오지 않는다며 전화를 해대는 어머니의 넋두리를 타고 전해지는 아버지의 근황은 떨어져 살아도 깊이 관여하는 부부의 연을 떠올리게 한다. 나무는 한 그루 안에서 늙음과 젊음이 순환한다는 연륜 있는 숲 해설사의 말대로 인간의 시간과는 대별되는 점이 오히려 다행처럼 여겨졌다.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기며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서 있는 나뭇가지에 앉았던 새는 인기척에 놀라 푸드득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새의 날개 짓을 보며 공허함으로 가득한 마음을 곧추 세운다. 초가을 숨을 거둔 이나모의 빈소를 찾은 김 주위는 숲 해설사의 마지막 가는 길이 너무나 쓸쓸하다며 연주에게 문상을 와주길 요청하여 인간미를 더했다. 빈소를 찾아 예를 갖춰 숲 해설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전송한 뒤 새로운 인연의 발단이 시작될 것만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 연주를 보면서 지금껏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을 가슴에 담을 수 있기를 바랐다. 유해 발굴 작업을 끝으로 전역하는 김민수 중위는 뼈 그림을 맡아 그려주기로 한 연주에게 감사하며 관찰자의 시선을 거두고 그녀에게 자신의 소소한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며 소통해 나갔다. 가을 잎을 떨어뜨리고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연주는 병세 악화로 점점 소진해 가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무들은 따로 따로 살아서 술을 이뤄내고 있지만 혈육의 인연으로 이어진 우리들의 삶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유기체이기에 따로 떼어 내 생각할 수 없는 개체들이다. 유해 발굴단 작업이 종료되고 식을 치르는 날 망자(亡者)가 남긴 편지를 낭독하며 슬픔에 잠긴 살아남은 자의 아픔은 헤아리기 힘든 슬픔의 분화구였다. 보존용 뼈 그림을 김민수 중위에게 넘긴 날 그는 12월 16일 시화강 상류에서의 군 생활을 마치고 시화강 하류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말을 연주에게 전하며 세밀화 소재가 많다는 소리로 새로운 인연의 물꼬를 트려는 의도가 강하게 전해졌다.

 

 

  딸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았던 아버지는,

  ‘미안하다, 괜찮다.’

  짧은 문장으로 이승에서의 아픔과 서러움, 형량의 무거움까지 떠안고 운명하였다. 좆내논이 아버지를 거적처럼 걸치고 걸어가다 하늘로 올라가더라는 어머니의 꿈은 아버지 마지막 날을 명중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죽어서 자유의 몸이 되어 죄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해졌지만, 죽어서도 형을 면제받지 못한 우울한 삶이 영정 사진에 깃들어 있다. 연신 불쌍하다며 숙성된 울음을 토해내는 어머니의 설움은 이승에서 병마와 고독하게 살다 간 남편의 안쓰러운 삶을 위로하는 울음이었는지는 확언하기 힘들다. 아버지 뼛가루를 민통선 자등령과 연결되는 6부 능선에서 뿌려 죽어서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혼백으로 시화평 고원 위를 훨훨 날아오르길 바라며 딸은 풍장을 선택했다. 자등령 능선과 시화평 고지에는 민간인들의 출입 통제가 엄격했던 만큼 자유로이 왕래하며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삶과는 대별되는 삶이 곳곳에 벌어져 있다. 살아남은 자와 덧없이 죽어 골짜기에 흩어진 자들과 공생하는 민통선 수목원은 존재 가치를 일깨우기에 그만인 곳이다. 숱한 이들이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산화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두는 순환처럼 폐쇄적인 연구 생활로 점철된 안 실장의 성과는 뚜렷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에 안 실장 논문이 게재됨으로써 목적보다는 과정을 깊이 있게 관찰하며 사유하여 이뤄낸 성과는 결핍된 생활이 이뤄 낸 또 다른 성과로 비춰진다. 

 

 

  자연적 질서에 따라 생명의 움이 트고 삭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두는 일련의 과정이 순환의 고리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달마다 그려야 할 식물들이 따로 존재했던 것처럼 계약 기간이 끝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길에 연주는 서 있다. 전역하며 명함을 그녀에게 건네고는 후방으로 나오면 연락 바란다는 김민수 중위의 말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연주의 일상에 밝은 빛을 희미하게나마 비춰줄 듯하다. 수목원을 떠나는 연주의 핸드백에 든 김민수 중위의 명함 한 장은 연주와 끝나지 않는 인연의 실타래를 차근차근히 풀어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숲이 모여 거대한 산을 이루듯 지난날 자신을 옥죄었던 관념에 빗장을 풀고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겨 더불어 숲을 이뤄야 할 때다. 내 젊은 날의 황량한 숲이 윤이 반지르르 흐르고 생동감이 넘쳐흘러 강렬히 살아 움직이는 숲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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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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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靈山)이라 불리는 지리산 아래 삼태기 모양으로 자리한 고향 하동은 벼농사를 짓기에 그만인 여건을 잘 갖추고 있다. 가물에도 농업용수로 끌어다 쓸 섬진강이 곁에 있어 땅바닥이 바닥을 드러내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드넓게 펼쳐진 무디미 벌판의 시월은 누렇게 익어가는 나락들이 창창하게 서 있는 사이사이 알록달록한 허수아비들이 바람이 부는 대로 우줄우줄 춤을 춘다. 삶의 가치를 찾아 깨어 있는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왕왕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움직이며 안주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정체성은 쏙 빠진 채 아무런 문제의식을 찾지 못하고 일상을 보냈던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아니었는지 반문해 본다. 무지몽매함에 얽혀 아무런 의식이나 자각도 없이 무책임하게 상부 조직의 수뇌가 시키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망령들의 모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깨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작가는 허수아비 춤에 담았는지 모른다.

 

 

  남들보다 이른 때에 피안의 세상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대신한 어머니는 어린 남매를 시어머니에게 의탁하고 늘 돈이 되는 일을 찾아 길을 떠났다. 계절에 따라 돈벌이의 수단도 각기 달랐던 어머니는 봄이면 야산에 고사리를 끊어 삶아 말린 것을 조금 싸게 사서 웃돈을 받고 도매상에 넘기는 형태로 장사를 이어갔다. 농한기에는 대도시로 나가 떼어 온 옷을 밤이면 고단한 몸을 눕힐 틈새도 없이 장사에 나섰다. 고단한 삶을 이어 가느라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던 어머니는 장사꾼으로 이익만을 좇기보다는 상대의 고민을 들어주며 그 고통을 나누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힘든 생활에 놓인 이들의 한 서린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눠 믿음을 켜켜이 쌓아 이웃들과 소통해 나갔다. 배움의 끈이 짧았던 어머니는 장사를 하면서 이익을 남기되 서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나누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비춰진다.

 

 

  ‘10리 안에 굶어주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경주의 최 부자는 부를 이루면서도 가난한 이웃들과 상생하려는 노력을 다했고,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는 사업으로 번 돈을 각종 공익 재단에 기부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영인으로 지금도 존경받고 있다.   지구촌 최고의 투자가인 워렌 버핏은,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이야말로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앤드류 카네기의 말을 신념처럼 삼으며 기부를 실천하는 기업인으로 귀감을 보인다. 특히, 그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일은 자식을 망치는 길이라며 기부 서약으로 그동안 모은 개인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공적 부조의 뜻을 이뤄가고 있다. 기업을 투명하게 경영하며 이윤을 극대화하여 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 일반인들에게 혜택을 돌리는 대목은 존경스러운 기업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와는 달리 일광 그룹의 남 회장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의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기에 그 누구도 재산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여기며 그 재산을 불려나가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철옹성처럼 단단한 부를 이뤄 낸 재벌은 그 부를 오롯이 지키기 위해 자식들에게 기업 경영권을 이양하여 세습하려는 움직임을 표면화해 존경받는 세계적인 부자와는 괴리된 모습을 담아가고 있는 듯해 씁쓸함이 더한다. 막강한 정보 관리를 토대로 한 문화 개척센터 조직을 위한 일광그룹 회장의 간절한 바람은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믿음 속에 유능한 재원을 뽑아내는 일에 몰두했다. 태봉그룹의 1급 첩보원 박재우를 스카우트하여 세를 불려 나가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 차명계좌를 개설하여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경 유착, 언론 로비 등의 불법을 자행하며 잇속을 찾아 무도덕함으로 윤성훈 실장을 위시한 박재우, 강기준 개척단은 사람을 빼내오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자본주의 왕족 사회인 로얄 패밀리 대열에는 끼이지 못하더라도 그 다음 급인 골든 패밀리 인이 되기 위해 골몰하는 이들은 자본에 현혹되어 돈의 노예로 살기를 자청하고 또 다른 길을 나선다. 박재우는 학연을 앞세워 법조인 신태하를 포섭해 일광기업인을 만들어 자발적 복종자로 길들여 나갔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글에서 승자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 온갖 불법을 자행하는 이들이 우리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현실은 민주화된 세상과는 요원해 보인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은 갖은 요술을 부려 필요한 이들을 빼내오는 전략에 맞아 들어갔다. 특별한 전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무한감동 로비로 마음을 움직여 나갔고, 탈세를 도와 줄 세무 공무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이삿날 두툼한 이사 비용을 건네며 기민하게 대응해 나갔다. 남 회장의 친위대인 문화 개척 센터는 목표로 삼고 있는 각 분야의 로비 대상자들을 점진적으로 늘려 그들을 포섭해 왔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돈 봉투를 돌리는 부분에서도 한 치의 착오도 용납하지 않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비정규직의 비인간적인  인건비 착취를 일삼으며 노조가 발을 붙일 수 없도록 법조인 신태하를 방패막이로 앞세워 법망을 피해 나갔다. 생계가 막막한 노조 위원장에게 큰돈을 건네며 증언대에 서서 위증을 강요하며 약자들을 이용해 갔다. 재벌의 재산권 불법 상속과 경영권 불법 승계사건을 저지르고도 무죄로 판결이 나 힘이 빠지는 대목에서는 국민들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의식으로 끔찍한 범죄를 철저히 감시하는 눈으로 불법을 자행하는 기업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그 기업의 생산품 불매 운동을 벌여서라도 일침을 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노예처럼 살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고 이상적인 사회 건설을 도모하는 역군을 양성하는  지성인들의 전당으로 지금껏 여겨왔다. 후학들을 양성하는 일에 보람을 찾고, 속물적인 군상과는 달리 순수한 모습으로 학문 연구에 힘쓰던 허민 교수는 재벌의 기업 경영의 비리를 고발하는 칼럼을 써 교수 재임용에 탈락된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아무런 예고 없이 교수직 박탈당한 당사자 뿐 아니라 허 교수 아내의 우울증은 설사가상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경제민주화실천연대의 고문 변호사 전인욱은 약자의 권익 옹호에 앞장서서 도덕성이 살아나는 시대를 위해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고 소신을 지켜 나갔다. 선거 기간에만 국민을 나라의 주인이라고 대접하며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치를 뿐 선거 후에는 기득권자가 부당한 권력행사를 일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권좌에 올라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던 권력자일수록 권력의 단맛을 보았으니 최고의 자리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 욕망이 역사적 진실에 반하는 술수로 선량한 국민들을 쥐락펴락하는 경우가 생긴다. 생존권과 재산권을 뒤흔드는 국가 권력을 송두리째 넘겨주고 감시와 감독을 제대로 행하지 않아 또 다른 불법을 자행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만 셈이다. 소유욕에 찌들어 재물에 집착하는 이들은 분배를 적절히 하여 상생하려는 노력과는 거리를 두고 지금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자산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려고 안달재신하며 지낸다.  화폐지상주의에 빠져 오로지 돈을 모아 지금보다 더 큰 힘을 과시하려는 움직임에 힘을 더하고 있어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더욱 요구된다.

 

  부의 사회적 환원을 알리고, 납세의 의무를 다하는 기업의 바람직한 형태를 제시하며 사회를 단결시키는 임무를 이행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하는 일이 늘어날 수 있도록 국민들은 나서야 한다. 사회적 공헌도가 낲은 기업의 상품을 사는 합리적인 소비에 나서야 한다. 그리하여 기업의 소유자는 경영자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라는 인식 아래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나 박애 자본주의로 환원되어야 한다. 갖은 회유와 술수 아래서도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해 한길을 걸어가는 허민과 전인욱처럼 서로의 고통을 덜어주며 함께 하는 모습 속에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경제적 부조리도 조금씩 사라져 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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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이 어때서? - 노경실 작가의 최초의 성장소설
노경실 지음 / 홍익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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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와 어른 사이 어디쯤에선가 바람 많은 날들을 보내고 있을 사춘기 소녀와 소년이 떠오른다. 어쩌면 청소년으로 지칭되는 본격적인 나이 열넷은 초등학교 시절의 유치함을 벗고 조금씩 성장하며 철이 나는 모습을 기대하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별 다른 준비 없이 세월 따라 6학년이 되었고 때가 되어 초등학교를 졸업하였을 뿐인데 기성세대들은 애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열네 살 연주는 중학교에 갓 입학하고 초등학교 생활과는 달리 획일화된 상황과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지낸다. 열세 살과 열네 살은 고작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중학생이 되어 감내하여야 할 일들은 많이도 늘었다. 생떼를 쓰고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던 초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스스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아져 여유를 부리며 지낼 틈이 쉬이 나지 않았다.

   

  고작 열네 살밖에 먹지 않은 연주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환경과 외모, 보통의 능력밖에 지니지 않았지만 가수의 꿈을 꾸면서 뮤지션의 길을 걷기 위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한창 때는 꿈이 많았지만 그 꿈은 어느 새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전업주부로 가정을 오롯이 지켜내려는 중년의 엄마는 열네 살 연주에게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연주는 엄마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순응적인 아이의 길을 따를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녀 말대로 기껏 14년을 하루로 환산해 겨우 5,110일 살았을 뿐인데 부모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하며 자녀의 가능성을 사장해 왔는지도 모른다. 방과 후면 학원에서 다시 강의를 들으며 점점 자신의 꿈을 찾는 시간은 줄어들어 안타까움이 더한 날 연주는 민지가 전해 준 정보대로 오디션 장으로 향했다.

  엄마가 지리산으로 야유회를 떠난 날 연주는 학원을 빼 먹고 가수가 되기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히 밟기로 작정하고 경연장으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 비록 오디션에서 불합격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위한 지렛대로 삼기로 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외할머니, 엄마와 함께 사는 민지는 환경에 굴하지 않는 당당함을 보인다. 살면서 뜻하지 않는 일로 부부가 이혼할 수도 있다고 여기며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없는 일에는 현실을 받아들여 긍정적으로 무장하고 생활하는 모습은 주눅 들지 않는 열네 살의 당당함으로 비춰진다. 연주는 매사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동파 민지와 대화를 나누며 힘겨운 학교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지냈다.

  

   마음의 병을 앓아 미국으로 치료를 하러 간다는 지섭 오빠의 돌연한 소식은 지금껏 감지하지 못했던 연주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말았다. 이제 떠나면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은 생각에 연주의 머릿속에는 지섭 오빠로 가득 차 올랐다. 예전에 미처 느껴보지 못한 감정 앞에 당혹스러워하는 연주를 보고 민지는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다며 친구를 놀리기도 하지만 왠지 모를 아련함이 자꾸만 연주의 가슴에 크게 남았다. 이별의 시간을 앞두고 엄마들과 함께 한 모임에서 서로 기억에 남을 만한 선물을 주고받으며 이별의식을 치렀다. 연주는 지섭이 영어 발표 대회에서 부상으로 받은 파란 시계를 들고 와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에 잠 못 이루며 그 소리에 번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연주는 또 다른 생각에 귀착되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이 순간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세상은 변화해 감을 강조하던 담임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 비춰진 선생님 말은 자기만의 색깔을 찾느라 고심하는 시간도 낭비처럼 치부하며 규칙적인 틀을 벗어나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연주는 이런저런 일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대로 따르기에는 이제 겨우 열네 살인 연주에게는 가혹한 부탁일는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삶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조금 더디고 힘들더라도 자신만의 빛깔과 향기로 인생을 설계해 나가길 바란다.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열네 살이 될 아들과 딸 같은 연주를 포함한 모든 중학생 새내기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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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아 푸른도서관 40
안오일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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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시까지 등교하라는 학교 방침대로 등교 시간을 엄수하기 위해 가방을 둘러메고 아이들은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려 들어온다. 교실에 발을 걸치고는 숨을 할딱거리며 인사를 하는 아이 얼굴은 어느 새 당근 빛깔처럼 발갛게 달아 올랐다.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면 쪽지를 내서는 그것을 외우느라 손끝이 바삐 움직인다. 책 속에는 우리들이 가보지 못한 길들이 경험 속에 살아 있다며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시험에 쫓겨 책 읽을 겨를이 없다고 항변한다. 야자 시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있는 학생의 등짝을 때리며 헛짓거리 한다고 타박하는 감독 선생님의 말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괜찮아』안오일 청소년 시집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눈에 포착된 시적 소재를 짧은 리듬 속에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예순 네 편의 시를 네 부분으로 나눠 분류된 시를 각기 다른 제목으로 아우르고 있는 시들은 평이해 보이지마는 시 속에 담긴 의미는 자못 깊다. 학교, 집, 학원을 획일적인 순으로 움직이는 청소년들의 동선은 무미건조함을 더한다. 학원에서 이미 배운 내용을 학교에서 건성으로 배우며 교과서 지식과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내용을 왜 말하느냐는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리할 것인지 냉소적인 시선으로 물었다. 잘나가는 어른이 되기 위해 열여섯 살 지금의 나를 잃어버린 시적화자가 빠져 버린 내 소리를 찾아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시에서는 점점 자신의 본질을 망각한 채 지내는 청소년들의 정체성을 찾게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각박한 생활은 지금 행하는 규칙을 수동적으로 따르며 지내느라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자기표현이 미숙한 아이, 남의 물건을 제 물건처럼 빌려 쓰고는 돌려주지 않는 아이, 돈 잘 쓰는 아이 앞에서 굽실거리는 녀석의 등짝을 한 대 쳐 주고 싶다는 시에서는 한 교실에 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부정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천 냥 하우스에서 팔리는 물건들은 모두 한 자리에 들어있는 모습에 착안하여 각기 다른 취미를 안고 사는 아이들 역시 적성과 취미를 고려하기보다는 모두 수학 심화반에 넣어진 점을 들어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있다.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내려다보는데

내 신발코가 불안하게 나를 쳐다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문처럼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다, 괜찮아...........

나는 신발코를 어루만져 주었다.

나를 만지듯

 

  현실의 부정적인 모습에 좌절하면서도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을 찾는 청소년들의 모습에 희망을 발견한다. 이 외에도 많은 시에서 청소년들의 각박한 삶을 반영하면서도 그들의 고민과 생각을 어루만져주는 모습에 진정성이 더해진다. 위만 쳐다보고 내달리는 청소년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위로의 말이 절실한 현대에 청소년들의 마음을 헤아릴 만한 시를 통해 그들이 삶 속에 이울 대는 단면을 보며 안쓰러움이 더한다. 청소년들의 현실적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이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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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방 푸른도서관 41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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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는 어린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며 지내야 했다. 서른이 채 되기도 전에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엄마는 여성이라는 삶의 고리를 끊고서라도 살아가야 했다. 돌배기 아들과 다섯 살 어린 딸을 위해서라도 이를 앙다물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계절마다 행상을 나간 엄마가 오지로 떠돌 때는 교통이 불편하여 사나흘이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말을 잘 안 듣는 손녀에게 엄마가 도망가서 다시는 안 돌아온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행여 할머니 말을 잘 안 듣고 있으면 엄마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할머니 말은 손녀를 점점 순응적인 아이로 만들어버렸다.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생명체의 죽음은 한 가정의 기틀을 무너뜨려 결핍으로 잇게 하여 상처 입은 가슴에 흉을 남기는 사례가 많다. 철이 들기도 전에 맞닥뜨린 부모님의 부재는 어린 소녀가 떠안고 살아가기에는 족쇄를 채우고 걷는 것처럼 힘겨울 것이다. 아들의 돌연한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할머니는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할 며느리에 대한 연민보다는 자식을 앗아간 장본인으로 낙인을 찍고는 며느리 스스로 집을 떠나는 순으로 마무리 짓고 말았다. 영문도 모른 채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소희는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가슴 속 한 마당에서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자리했다. 할머니를 의지하며 살던 소희에게 천수를 누리고 간 할머니의 죽음은 친척 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으면서 지내야 했다. 

  달밭마을을 떠나던 날 소희는 그곳에서 두터운 정을 나누며 친하게 지낸 바우와 미르를 먼저 버리고 소중히 여겼던 일기장을 함께 버렸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사실 중 하나가 눈치를 보면서 지내게 된다는 점이다. 소희는 사촌들과 함께 생활하며 학업성적이 뛰어나도 기뻐하기는커녕 식구들 눈치를 봐야 했고, 숙모가 운영 중인 미용실 바닥의 머리카락을 쓸며 애어른이 되어 갔다. 삼촌 집을 나와 엄마가 사는 곳으로 거처를 옮길 때 아기 때 헤어진 엄마를 만나 살아갈 수 있다는 기대도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십 수 년이 지난 세월의 간극이 빚은 틈새를 메워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자리해 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냉랭한 어조로 우진이와 우혁이를 우리 애들로 명명하며 자신과는 선을 긋는 엄마를 볼 때 소희는 가슴 속 큰 짐을 안고 지내야 했다. 
 

   아저씨 딸 리나가 머무르다 미국을 가버린 곳에 가방을 푼 소희는 자신만의 자율성이 확보되는 공간에서 정소희, 윤소희를 떠나 오롯이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 소희는 이전의 무상 급식 대상자라는 연민의 시선과 함께 감내해야 했던 모멸감, 수치심에서 벗어나 엄친아의 가면을 쓰고 살아갔다. 소희는 영화감상 반에서 활동하며 진솔한 모습으로 적극적인 생활을 잇는 채경,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힘겹게 생활하면서도 영화감독을 꿈꾸는 지훈과 정을 나누며 그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빚는 외로움을 상쇄해 나갔다. 소희는 차갑게 대하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바라는 모범생에서 점점 비껴나 자기감정에 충실한 열다섯 살 소녀로 존재해 나갔다. 엄마가 사다 준 비싼 옷보다는 아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골라 입고는 그동안 가슴 속에 재워 둔 말을 하나씩 꺼내며 자신에게 냉담했던 엄마와 마음의 문을 열어 대화하며 소통해 갔다. 

   자신의 본질을 숨기고 과거의 윤소희와는 단절한 채 살아가던 정소희는 디졸브로 활동하는 재서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위로받고 적절한 조언으로 생활의 변화를 이끌어 갔다. 처음부터 소희가 어떤 아이였는지 알고 있던 재서에게 자신의 치부를 다 틀어넣고 만 듯해 그를 대하기 힘들기도 했지만 서서히 둘의 관계는 회복해 간다. 아저씨의 달 리나가 스물이 되어 다시 집을 찾았을 때의 서먹서먹함이 애틋한 동질감으로 화해 갔듯이 소희는 찬란함 뒤에 숨겨진 초라함을 끌어안으며 하늘을 쳐다보며 꿋꿋이 살아가는 하늘말나리라처럼 성장해 갈 것이다. 소희가 가슴에 묻어두고 사는 달밭마을의 느티나무가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굳건히 살아나 무성한 잎을 달고 한여름 시원한 그늘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듯 사랑을 베풀며 자신의 본질을 깨우쳐 가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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