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대중 자서전 - 전2권 ㅣ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 지음 / 삼인 / 2010년 7월
평점 :
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자식이 서자였지만 대성하기를 바라며 자식들에게 따스한 가르침과 사랑 속에 세상의 빛을 보게 했다. 난산 끝에 아들을 낳은 어머니는 호랑이를 품에 안고 있는 꿈을 꿨던 일을 떠올리며 늘 아들에게 높은 데서 나왔으니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머니는 자식 교육을 위해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 뭍으로 나오려는 꿈을 품고는 가족들을 설득하여 신안군 하의도 외딴 섬에서 목포로 나와 아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호흡하게 했다. 목포 상고 재학 시절 3학년 담임은 삶의 원칙을 확고히 지켜야 함을 강조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고수할 때 승리자가 된다는 가르침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삶을 살게 한 원동력이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옳은 길이라면 목숨 걸고 싸우라고 말하던 아내 차용애는 자식 둘을 책임질 테니부당한 처사에 굴복하지 말고 당당히 살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정계로 투신한 뒤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선거자금은 많이 들어 집안 형편은 갈수록 나빠져 회생 불능의 상태로 치달았다. 전쟁 중 서울 간 남편을 기다리다 방공호에서 아이를 낳았던 아내 차용애는 그동안 힘든 내색 없이 지내느라 가슴앓이로 지내다 이승을 뜨고 말았다. 훗날 대통령은 늘 헌신적으로 살다 영면한 부인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을 지니고 살아왔다.
아내를 잃고 어린 자식들을 키우며 정계에 투신하여 그 끈을 놓지 않던 시절 나라의 운명과 장래를 논의하는 모임에서 또 다른 삶의 희망인 평생 동지를 만났다. 힘든 시절 누군가가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날 때가 있다. 수감되어 지낼 때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이 차디찬 감방에서 고초를 겪고 있다는 생각에 난방하지 않은 채 겨울을 났다는 아내 이희호는 영적인 동반자로 남편에게 희망을 전하는 이로 자리했다.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 여러 날을 진주에 머무르며 남편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애썼다. 털옷과 털장갑을 손수 떠서 꽁꽁 언 수감자의 마음을 녹여줬고, 남편이 사형선고를 받고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절망감에 휩싸이게 될까 염려하여 바다 가운에서 목숨을 건졌던 일을 떠올리며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지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아내는 수감 생활 내내 편지를 남편에게 전하며 궁금증을 풀어 폐쇄적인 공간에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가족이나 측근들의 근황에서부터 대통령이 그토록 아끼던 화초와 강아지 소식까지 담았으니 남편을 향한 아내의 사랑과 정성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처음으로 들른 양장점에서 선물한 옷 한 벌에 좋아하던 아내의 모습은 지난한 세월 속 대통령을 뒤돌아보게 했다. 결혼 생활 동안 대통령을 내조하며 꿋꿋이 곁을 지켜 내느라 내색하지 않았지만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무심했다는 반성과 함께 아내가 곁에 있어 더욱 감사한 일상에 고마워했다.
감옥은 또 다른 보물창고
늘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가족들은 곁에 있는 식구들의 소중함을 간과하고 지내기 일쑤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내 본 사람들은 지금 가까이 있는 식구가 얼마나 귀하고 중한 존재인지 절감할 때가 종종 있다. 자유를 속박당한 채 매달 한 번 10분이라는 짧은 면회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한정된 시간 속에 가족과 나눈 정신적 교감은 삶의 존재 이유로 작용하기에 충분했다. 점심 후 주어지는 운동 시간 그는 교도소 마당의 화단을 돌보며 정직한 꽃들의 성장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며 지냈다. 감옥에 있는 동안 꽃들은 주인의 정성만큼 자라고 꽃을 피워 특별한 기쁨을 선물해 줬다. 그리하여 아잘리아와 코스모스 등은 감옥에 있는 동안 교감을 나누며 지낼 수 있었다.
사람은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도 생존하는 법을 터득하며 존재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영어(囹圄)의 몸으로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대통령은 생존의 지혜를 발휘해 나갔다. 많은 사상가들의 책을 섭렵하며 사유하는 삶 속에 혜안을 쌓았고, 신학 서적과 문학 서적을 탐독하며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을 영위해 나갔다. 하루에 10시간 남짓 책을 읽으며 신지식을 쌓고 진리를 깨쳐가는 가운데 감옥 생활을 감내해 나갈 수 있었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읽으며 미래에 대한 확신과 영감을 통해 정치가로서 예지력을 바탕으로 올바른 정치를 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처럼 보인다. 문명은 도전에 상응하는 선물이라며 지금의 환경에 도전하여 성공한 집단만이 문명의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은 자신이 처한 시련을 극복해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미국에서 지낼 때 ABC 방송의 ‘나이트라인’프로그램에 출연해 현지 진행자와 영어로 토론을 벌이며 자신의 논리를 찾아 가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을 당시에도 김대중은 적극적이었다. 옥중 생활에서 삼위일체를 비롯한 영어 문법책을 여러 권 반복해 읽으며 문법을 제대로 익혔기에 내용면에서는 논리적인 표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지만 50줄에 들어 영어 공부를 해나가는 일이 녹록치 않았을 텐데도 부단한 노력으로 영어 문법의 틀을 완성하여 훗날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며 또 다른 성취감에 젖을 수 있었다.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독재 정치의 극단을 보일 때마다 대통령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 땅의 민주 열사들과 뜻을 같이 하여 지도자로서 선구자적인 삶을 살아 왔다. 평생을 조국의 민주주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해 헌신적 삶을 살았던 대통령은 일관된 삶을 살아왔다. 다섯 번이나 닥친 죽음의 고비, 6년 동안의 옥중 생활, 십 수 년 동안의 감금 생활에서도 어떤 회유와 압박에도 굴하지 않은 특별한 신념의 소유자였다. 걷잡을 수 없는 고통에 빠져들 때마다 그 나름대로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며 흔들릴 수 있는 마음을 다잡아 나갔다. 민주주의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올 때마다 대통령 곁에는 뜻을 같이 하는 막역한 이들이 함께 하여 외롭지 않았다고 했다. 유신 시대의 망명 생활은 교민들 사회에 현 조국의 실상을 정확히 전하는 정보제공으로 이어져 통일에 앞서 민주화 세상 실현의 당위성을 알려 나가는 계기로 삼아 만주화의 꽃씨를 심어 나갔다.
1980년 5월 불법적인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정치군부 세력의 비인간적인 폭거에 맞서 일어선 무고한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서는 살육전을 벌였다. 그 당시 신군부는 오월 민주화 운동의 배후로 김대중을 기소하였다.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 맞선 민중의 항거는 이 땅의 민족적 지도자를 죄인으로 몰아넣는 빌미로 작용해 그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위기에 직면하고 말았다.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전 대통령은 김대중 감형을 전제로 회담을 제의한 레이건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형에서 감형되어 무기징역을 언도 받게 되었다. 그 후 국내외의 역풍에 몰린 전 정권은 울며 겨자 먹기로 김대중 가족을 미국으로 보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대중은 고국보다는 타국에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열정가로 인정받으며 신변보호를 받았다. 그 후 대통령이 되어 그는 비록 지금은 올바른 일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않더라도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안고 정의를 위해 뜻을 굽히지 않는 정치인의 길을 걸어 나갔다.
15대 대통령으로 새 역사를 쓰다.
선거를 앞두고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선거는 기득권의 부당한 권력행사로 부정적인 현상을 야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권좌에 올라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던 권력자일수록 권력의 단맛을 보았으니 최고의 자리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 욕망이 역사적 진실에 반하는 술수로 선량한 국민들을 쥐락펴락하는 경우가 생긴다. 대통령은 과거 선거에서 낙선할 때마다 자신을 후원하고 응원해 준 이들을 잊지 않았다. 낙선한 뒤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접고는 해외로 나가 그동안 못다 했던 공부를 계속 하기로 마음먹고 세계의 석학들과 교류하며 지식의 폭을 넓혀가는 계기로 삼았다. 스티븐 호킹 박사와 이웃에 살며 집념과 실천 의지를 통해 쌓은 학문적 성과에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며 유대를 쌓아가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1998년 12월 18일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는 40.3% 득표율로 당선되어 여야 간의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수평적으로 이뤄냈다. 쓸려왔다가 밀려가기를 반복하며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바다를 보고 자란 대통령은 과거 자신이 당한 일을 정치적 보복으로 되갚으려 하지 않았다. 갖은 고초로 스스로 만신창이가 되어 고통을 겪으면서도 가해하던 이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여 화해와 용서의 정치를 펴나갔다. 진정한 승리자는 상대를 이기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상대를 용서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권위주의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였고,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정격유착의 고리를 끊는 혁신으로 투명한 기업 경영체제 아래 시장 경제의 기본 원칙인 자유 경쟁과 책임 경영으로 기업 발전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냉전 시대 이후 유례없는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남한과 북한의 통합은 새로운 시대의 과제로 남겨졌다.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가운데 평화적인 회담으로 경직된 틀을 부수고 화합과 상생의 물꼬를 트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해졌다. 지나가는 행인의 외투를 벗기는 데는 햇볕이 강한 바람보다 효과적이라는 우화처럼 냉각된 북한을 녹이기에는 햇볕정책이 유효했다. 소떼를 몰고 북으로 간 정주영 명예회장은 어려운 대북 사업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금강산 관광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한반도 긴장 완화 속에 동질성 회복하는 길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 남북 공동성명으로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여 이산가족 상봉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실향민들의 아픔을 달래줬다.
IMF환란 위기를 맞아 턱없이 부족한 외환 보유고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에서는 금 모으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고, 해외로 나가서는 적극저적인 외교로 외환 보유고를 늘려 부족분을 채워 나갔다. 옥중에서 읽었던 앨빈 토플러의 지적대로 미래는 신지식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여 정보와 지식이 소중한 자산이 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며 국경의 벽을 넘어 세계인들과 넷 망으로 교류하며 자신의 역량을 키워 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귀중한 일임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국민들에게 PC공급을 서둘러 정보화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때 신정보에 뒤처지지 않는 이로 자리할 수 있음에 착안했다.
자서전 속에 드러나는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
봄이면 선연한 핏빛으로 산하를 물들이는 진달래를 좋아하고 가을이면 길가에 늘어서 한들한들 춤을 추는 코스모스를 좋아한다던 대통령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정치 생활 40년 동안 죽음의 문턱에서도 절대자의 뜻대로 처분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으로 천리(天理)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자신보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뜨지 않기를 바라며 가족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일의 소중함을 곳곳에 드러냈다. 화초를 자식처럼 돌보며 씨앗을 뿌리고 꽃을 피워 열매를 거두는 일련의 과정을 자연적 질서로 받아들이며 소중히 여겼다. 영국의 폭압적인 횡포에도 비폭력적인 평화 시위로 승리를 끌어낸 간디의 사상을 흠모하며 군사정권의 폭압에 맞서 싸울 때도 비폭력주의를 고수했다.
어려서부터 눈물이 많던 대통령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을 애도하며 죽을 때까지 불의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한국 문학계의 거목이었던 박경리 선생이 타계했을 때도 친히 빈소를 방문해 유족들을 위로하며 눈물 흘렸고,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앞에서는 민주화 동지를 잃은 슬픔에 오열하며 비통함을 더했다. 대통령 재위 당시에는 남다른 문화적 관심으로 대한민국 문화 산업이 더욱 융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알아차린 대통령은 그동안 썼던 메모와 일기를 토대로 자서전을 써내려가며 현대사의 비극적 삶 속에 올곧은 정치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종결지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정치인으로 자유와 정의를 위해 일관되게 살았던 대통령은 역사 속에 정당한 평가를 받으며 민주화를 열망하는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