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검색해보니 작가의 다른 낯익은 책 표지들이 보였다. 이제라도 접할수 있어서 다행... 짧은 분량이지만 자전적 소설(오토픽션?) 이어서 그런지 한사람의 감정이,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공감이 되었다.


말이나 문장, 웃음조차도 내 생각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 입 속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듯 했다. - P11

가끔, 이러한 열정을 누리는 일은 한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필요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하는 점이 그랬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서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 죽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 P20

이 기간 동안 나의 생각, 나의 행동들은 모두 과거를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현재를, 행복을 향해 열려 있던 과거로 바꾸어 놓고 싶었다. - P49

살아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기와 작은 흔적들이 되어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 P59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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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읽은 단편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 누군가 잃어버린 많은 잔상들이 남는다. 두친구, 피크낙. 침대, 고해성사, 머리채, 유산이 특히 좋았다.(거의 다네)
이전에 여자의 일생만 읽었었는데, 다른 작품도 곧 읽어봐야겠다.

나는 그들을 너무도 잘 이해한다. 그들은 약한 데다 거듭되는 불운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언젠가는 보답을 받으리라는 희망조차 잃어버렸다. 이승에서 부당하게 고통을 받았을지라도 저승에서는 필연코 신의 정의가 이루어지리라는 믿음마저도 잃어버렸다. 더 이상 행복이라는 신기루에 속을 힘조차 없다. 그래서 그들은 진저리치며 휴식도 없이 몰아치는 생의 드라마를 마감한다. 그렇게 이 부끄러운 코미디를 끝내려는 거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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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하루키 다시 읽기 4번째 책
(가장좋아하는 작가다)
초기 3부작(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다음으로 읽을 책. 순서대로 읽으려고 생각중.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원더랜드,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1Q84는 그동안 너무너무너무 많이 읽어서 일단 제외)


마치 12월의 비에 젖은, 다리가 셋밖에 없는 검은 개처럼 애처로워 보였다. - P13

양 사나이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을, 나도 이제는 알겠다. 그녀의 목적은 나를 거기로 인도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운명과 같은 것이었다. - P15

나는 평균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진 모르나, 그렇다고 특이한 인간도 아니다.

타인이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파악했다 하더라도 나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그것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문제이다. 그들의 문제이다. - P26

그들은 내게로 와서 나와 관련을 맺고, 그리고 어느 날 가버린다. 어떻든 간에, 다들 내 곁을 떠나간다. 그들은 체념하고, 혹은 절망하고, 혹은 침묵하고, 그리고 사라져 간다. - P27

이야기 할것이 많을 때엔 조금씩 이야기하는 게 제일 좋은거아. 그렇게 생각해. 어쩌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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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비겁해진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절망적으로 분노한 사람 앞에서 군중이 으레 그리하듯이. - P75

앙리는 그녀에게 자신이 이 장소를 매우 사랑하며, 일요일이면 종종 이곳에 와서 여러가지 추억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오랫동안 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저는요, 매일 저녁마다 떠올려요." 그녀가 말했다. 그때 남편이 깨어나 하품을 하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소." - P99

침대는 우리 인생의 전부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나고 사랑하고 또 죽습니다.....

같은 순간에 같은 생각과 같은 기대와 같은 기쁨을 주는, 그리하여 천상의 불 같은 격렬한 기쁨이 자신들에게 내려온다고 느끼는 것보다 더한 게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저의 죽음을 생각해 보세요. 이 침대에서 숨을 거둔 모든 사람들을 떠올려 보세요. 이 침대는 또한 끝나 버린 희망의 무덤이니까요. - P103

과거는 나를 끌어당기고, 현재는 나를 두렵게 한다. 미래는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나간 것을 아쉬워하고, 이전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을 애도한다. 나는 세월을, 시간을 중지시키고 싶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지나간다. 그것은 시시각각 나를 조금씩 소모시키며 내일의 무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고 나면 나는 절대로 되살아날 수 없다.

과거의 연인들이여, 안녕히, 나는 당신들을 사랑한다. - P140

이 몽상의 시기는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가 버리는지, 이세상에서 다시없는 이 행복한 시기는 왜 그렇게 빨리 사라지는지...혼자가 될 때마다 희망의 꿈속을 헤맬 능력이 있다면 우리는 결코 외롭거나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비통하지 않을 터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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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를 1주일동안 읽었다. 읽으면서 가끔씩 정신착란이 올 것 같았다. (죄와 벌도 마찬가지였던것 같은데...) 동경과 타락, 이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나와 다르지 않았다. 당분간은 가버운 책을 읽어야겠다.

당신은 착하긴 한데 좀 바보스런 구석이 있군. 누가 동전 두 닢만 적선하기라도 한다면, 마치 생명의 은인이라도 되는 양 그 사람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 걸세. 당신은 그런 점에 대해 칭송이라도 받을 줄 아나 본데, 오히려 그 반대네. - P845

가끔은 바보스러워지는 편이 좋을 때도, 아니 오히려 더 나을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서로에게 보다 빨리 용서를 구하고 화해 할 수 있으니까요. 모든 것을 단번에 이해하고, 항상 완전함을 갖추고 일을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완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단계를 거쳐야만 합니다. 너무 빨리 모든 걸 알려고 들면,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지나쳐 버릴 수 있어요. - P850

이따금 이 여자가 냉소적이면서 뻔뻔스런 태도를 취하긴 했지만, 그녀는 실제로 그녀에 대한 선입견 이상으로 훨씬 수줍음도 많이 타고 상냥한 데다가 믿음이 많이 가는 여자였다. 사실 그녀의 내면 속에 문학적이고, 공상적이고, 자폐적이면서도 환상을 쫓는 면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대신 강인하고 깊은 속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 P877

만약 슈나이더 교수가 스위스로부터 나타나 예전의 제자이자 환자인 공작을 지금 본다면, 치료차 스위스에 처음 도착했던 공작의 상태를 기억해 내곤, 손을 내저으면서 마치 그 당시처럼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백치! - P938

그만큼 외국 것에 한눈을 팔았으면 충분하지. 이젠 이성을 찾을 때도 됐는데 말이야. 이 모든 것, 이 모든 외국 것, 당신네 유럽의 모든 것은 오직 환상에 불과해. 외국에 나와 있는 우리 모두도 환상일 뿐이아. - P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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